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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에게 멋진 집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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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욕망하다!    씨앗에서 우주까지 세상의 집들은 수 없이 많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집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벌레의 고치, 새 둥지, 등에 진 달팽이의 집만큼 합리적이고 자연적인 집들이 있을까? 이런 것들은 자신들의 할 일이나 생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흡수된다. 거미는 자신의 몸 속에서 실을 뽑아 허공에 줄을 척 걸어놓으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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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욕망하다!

 

 씨앗에서 우주까지 세상의 집들은 수 없이 많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집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벌레의 고치, 새 둥지, 등에 진 달팽이의 집만큼 합리적이고 자연적인 집들이 있을까? 이런 것들은 자신들의 할 일이나 생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흡수된다. 거미는 자신의 몸 속에서 실을 뽑아 허공에 줄을 척 걸어놓으면 바로 집이 된다. 짐승들은 숲이나 땅 속에 자신들의 몸을 깃들면 그만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떤가? 죽어서까지 자신들의 욕망을 덕지덕지 실현시키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는 결혼 전부터 필요이상으로 집을 크게 늘리거나 화려하게 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 투자하는 대신 그 돈으로 지적인 활동이나 배움에 투자하거나 여행을 하여 삶을 풍부하게 살찌우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변변치 못한  주변머리로 여윳돈이 있거나 시간이 되어 아직 여행을 할 처지는 못 되고 있으나, 지금도 내 한 몸 뉘이는 공간에 큰 돈과 시간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 자꾸 늘어나는 책 때문에 집을 넓혀야 되지 않나하는 필요성은 있지만 여전히 집을 탐욕을 실현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 건축이나 집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일까?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지은 달고 따듯한 삶의 체온이 담긴 8개의 집 이야기'가 담겨있는 <다시, 집을 순례하다>를 왜 읽었는가? 그것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집은 하나의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예술을 좋아하는 나의 감각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집을 통해 그 주인의 '삶과 철학'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집의 주인이 어떤 사고와 철학으로 공간을 구성했는지에 관심이 가고 거기에서 그들의 삶과 철학과 욕망을 읽어내는 것이 좋다. 그것은 사람의 심리와도 연결되고 분명 나와도 연결된다.

 

법정스님이 생전에 생활하던 암자를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다. 방안에는 승복과 책상, 책, 다기세트 등 몇 가지만이 있었다. 실로 단순하기 그지없는 방이었다. 물론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러했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네 식구가 살아가는데 이리도 많은 물건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지금이라도 꼭 필요하지 않은 욕망의 덩어리들을 버리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싶은데 마음만 앞설 뿐 아직 정리는 못 하고 있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정리하고 물건들이 주인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일본의 주택 전문 건축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1995년부터 7년 간 세계 각지에 남아있는 주택의 명작을 30채 정도 견학했고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를 통해  그 가운데 17채의 주택을 선별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의 전편인 <집을, 순례하다>에서는 르 코르뷔지에가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지은 18평의 <어머니의 집>을 비롯해, 8명의 거장이 지은 9개의 '작은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후속편인 <다시, 집을 순례하다>는 안도 다다오를 비롯한 20세기 후반 건축의 거장 8명이 지은 8개의 집을 다루고 있다.

 

나는 이 8채의 집을 소개한 글과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이 집을 '자신의 정신적 욕구의 수단으로, 또는 자신의 탐욕의 대상으로, 자기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책에서 내 관심을 주목받은 집은 두 집이다. 가장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멕시코의 '루이스의 바라간의 집'과 가장 넓은 부지와 건축물을 세운 미국의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이다. 이 두 집은 가장 거리가 먼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루이스 바라간의 집도 외양으로 보면 색상도 화려하고 넓은 편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는 시점은 집에 서려있는 철학적인 면이다. 루이스 바라간은 수도승 같은 삶을 위한 집을 지었고, 필립 존슨은 자신의 부를 실현시킨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근대건축의 명작이라는 큰 접시에는 근대건축의 선구자라 불리는 뛰어난 건축가들이 펼친 구조 혹은 신공법을 향한 도전, 신소재의 채용과 그 참신한 사용법, 회화적인 공간 구성의 아름다움, 다이내믹한 공간구성 등 다양한 창작 아이디어가 어김없이 담겨 있음을 목격했다. 즉, 그에게 있어 집을 순례한다는 것은 큰 접시에 가득 담긴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고 칭찬하는 여행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루이스 바라간의 집'은 근대건축이라는 진미가(공간구성이라는 주식 조차도)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견학을 마친 후에는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루이스 바라간의 집에는 '집'이라는 것의 근원적인 모습과 집의 정수, 즉 <집이 품어야 마땅할 정신>이 제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간이 먼저 이 집에 담았던 것은 '평온'과 '침묵' 그리고 '추억'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담은 것은 분수의 물소리와 나뭇가지 끝의 웅성거림, 그리고 사랑스러운 가구들과 선명한 색채였습니다. 그리고, 이 유형무형의 것들은 동굴을 거처로 정한 고대 원시인들이 내쉬었던 안도의 깊은 한숨이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느꼈을 달고 따뜻한 체온의 기억들과 심층적인 부분에서 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관의 대면이 가능한 고독과 함께하는 때뿐입니다."

이 말을 통해, 집은 육체뿐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편히 살 수 있는 장소>이어야 하며, <자기 자신과 곧바로 대면하는 장소>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156~157쪽)

 

바라간의 집과는 대조적인 필립 존슨의 집인 '글라스 하우스'를 보면서 나는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 때 부친으로부터 한평생 우아하게 즐기며 살아도 될 만큼의 재산을 물려 받은 필립 존슨은 3년 동안 27번이나 살계도를 고친 끝에 고급 주말주택을 지었다. 반세기 이상 주말마다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그 집의 침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바라간이나 필립 존슨이나 모두 독신이었다. 개인 한 사람의 욕망을 고스란히 집에 실현시킨 그를 보면서 나는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욕망대로 살았던 것에는 감히 무어라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좋아했던 건축분야에 지원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예술분야에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도 있고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내 놓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제 3세계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동굴에서 마천루까지 세상엔 수 많은 집들이 존재해 왔고, 이 세상은 '집'의 합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하나의 집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집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나'는 '누구'의 집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내가 건축에 관심이 갔던 것은 바로 이 질문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멋진 집이 되어 주고 싶다는 것, '나'라는 집을 멋지게 짓고 싶다는 것!

 

YES마니아 : 플래티넘 i****l 2012.06.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