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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드라마 <태조 왕건>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졌겠으나 사실 한국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 훨씬 전부터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이름입니다. 이 정도로 중요한 인명이 겨우 드라마 때문에 유명해질 정도라면 한국 필수 교육 과정의 효율성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를 두고 신라 왕실의 후손인데 유년기에 급박하고도 끔찍한 일을 겪어 눈이 애꾸가 되었다느니, 그래서 유독 신라에 대해 격한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느니 하는 분석이 예전부터 유력하지만 이는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대목도 있습니다. 초적의 우두머리라고 하나 여튼 혈통이 고귀하다면 대중을 향해 카리스마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이를 두고 오히려 증오심을 키우는 제스처를 취했다면 "내가 고작 이런 것에 기대어 덕을 보려는 게 아니며, 나는 그저 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모든 걸 쟁취하고자 한다"는 식의, 다소 과장된 자의식 발현일 수도 있습니다. 속으로는 좋으면서 말이죠. 후삼국사에서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는 명주(현재의 강릉) 호족 김순식이 대뜸 궁예에 복속하고 들었으면서, 그를 대체한 왕건에게는 오랜 동안 충성을 바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는데 독자인 저 개인 생각으로는 그저 간단하게, 궁예한테는 미처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제압당한 사정이 있었으며(혹은 그 시점에 유독 명주의 방어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든가), 왕건은 애초에 명주에 신경을 쓸 여력이 부족했고 대 호족 정책이 강압적이지 않았기에 김순식도 그에 맞추어 대응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헌데 이런 제 생각은 문제가 있는 게, 김순식이 최종적으로 고려에 귀부한 시점이 하필이면 왕건이 이모저모로 코너에 몰릴 무렵이었다는 점이죠. 김순식이 그저 대세에 수동적으로 따를 뿐이었다면 이 점은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여튼 하고자 하는 말은, 아무 기반도 없던 궁예가 초기에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각지 호족, 실력자들로부터 쉽사리 충성을 받아낸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겁니다. 견훤의 경우 본디부터 신라 지방군을 거느린 커리어, 무력의 배경이 있었고 개인의 무용도 출중했지만 궁예의 경우 그런 점이 기록상에 보이지 않기에 하는 말입니다. 900여년 뒤 중국 강남에서 태평군의 난이 터졌을 때 가문, 세력마다 차이는 있었겠으나 대부분의 향신, 신사층은 이들 종교 결사에 대해 단호한 적대 스탠스를 취했습니다. 궁예 역시 흔한(?) 미륵 신앙을 내세웠을 뿐인데 결과는 저것과 전혀 딴판이니 더욱 궁금해집니다. 드라마에서는 "삼국 중 가장 너른 영토를 확보하고..." 라는 말이 나오지만 그 시절에는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거주하는 백성의 수, 농산물의 생산력 등이 국력을 재는 데 훨씬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도에서 만주 방면의 광대한 고구려 영역을 보고 감탄하지만 경제력 기준으로 과연 현대인이 환상을 가질 만한 판도였을지는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후삼국에서 궁예의 고려가 가진 세력이 과연 그리 강성했을지는 고개가 갸웃해지며, 오히려 당시 기준으로 최강국은 비옥한 호남 평야를 영유한 후백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