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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처음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나쓰메 소세키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아마, 그때 읽은 책이 <마음>이나 <그 후>였고 그 이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을 읽으면서 더 좋아졌던 것 같다. 그동안 몇번이나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더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했으면서 정작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내 기억속에서 그의 글은 꽤나 신격화 되어있던 모양이다.
원래도 그의 글이 기운을 좀 빠지게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리고 그의 글 속에 있는 책 읽고 밥벌이와는 거리가 먼 남자들이 작가 본인을 많이 닮았다는 것은 알지만, 이제와서 보니 그저 염세주의자에 무기력한 인생들처럼 보인다. 한때는 그런 생각대신 '멋있다'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찌들었나. 도야의 아내에서 나를 본다. 도야의 아내에게 더 공감하고.
사실 도야는 꽤 좋았다. 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다카야나기. 젊음에도 그는 문학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가둬두는 것만 같다. 그래, 이런 모습에서 현대의 젊은이와 그 시절의 젊은이가 똑같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좀 웃음이 나기도 하고,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같이 음악회를 가게 된 상황에서 다카야나기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러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불편해하는 모습을 계속 나타내는 것도 좀 답답했지만, 그것도 나쓰메 소세키의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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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쓰여졌다는 이 소설은 지금과 비교하면, 100여년 간의 시간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서는 마치 지금도 살아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극명하게 대립하면서도 존재하는 시대, 재미나게도 같은 시기 함께 공부하고 함께 졸업한 절친으로 나오는 두 친구는 이 두 집단의 대표자로 뽑힌 것 같았다. 한 친구는 굉장한 부잣집 도련님에 부잣집 따님을 만나 호화스런 결혼식을 열고 행복한 미래가 막 펼쳐진 듯 보이지만, 다른 한 친구는 찢어지게 가난한데다가 애인도 없고 연애는 꿈도 못꾸며, 시골에는 앞으로 모셔야 하는 홀어머니가 있다. 거기다 결핵까지 걸려 비실비실대고 있으니 어떻게 두 사람이 친해지게 되었는지 미스테리중의 미스테리다.
졸업과 함께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이 젊은이들에게 저자는 가난하지만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장이자 전직 교사였고, 글을 쓰는 업을 하고 있는 주인공을 세워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 가장은 마치 저자 자신을 그린 것처럼 저자의 인생과 닮아 있었고, 그 메세지 역시 강렬했다.
돈은 노력에 대한 보수입니다. 따라서 더욱 노력하면 돈을 더욱 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세상도 공평합니다. (아니, 여기에조차 불공평한 일이 있습니다. 투기꾼들은 노력하지 않고도 돈을 법니다.) 그러나 한걸음 나아가서 생각해야 합니다. 고등한 노력에 고등한 보수가 따라오는가?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중략) 눈앞 이상의 먼 곳, 높은 곳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제아무리 미래에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인류에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보수는 더욱 줄어들 뿐입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 노력의 높고 낮음으로는 보수의 많고 적음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중략) 돈을 잣대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pp.231-232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연설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은, 당시 돈을 잣대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게 서러워서 젊은이들이 돈벌기에만 혈안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이런 연설을 한 것일까? 마치 요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많은 강연, 책들이 저술되는 것과 진배 없어 보인다.
어디를 가더라도 무슨 옷, 무슨 브랜드, 어떤 신발, 악세사리 등 차림새를 보고 판단하고 굽신거리는 사람들의 시선, 태도를 섬세하게 묘사한 대목, 결혼을 하였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좁혀지지 않는 부부간의 갈등을 다룬 대목 역시 돋보였다.
일본 화폐 천엔의 주인공으로도 오랫동안 얼굴이 실렸던 저자.(물론 지금은 위생학자 얼굴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100년전 호흡했던 소설가가 화폐에 실리는 나라 일본. 존경하는 일본인으로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저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소설이었다.
'국내 미출간 소설' 시리즈로 발간된 것이라고 표지에 적힌 문구 역시 마음에 들었다. 유명한 저자이지만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을 골라 보석같이 빛나는 그 매력을 공개한 이 책. '외톨이'라는 단어가 곳곳에 자주 보였는데, 마치 나를 보는 듯해서 더욱 친근감이 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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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끼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 활동하던 일본의 문학가이다. 당시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과 본격적인 교류를 하는 시점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이후 영문학박사라는 직함을 가질 정도로 서양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나쓰메 소세끼.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도 등장인물과 배경이 일본이라는 것 말고는 우리나라의 개화기의 지식인들이 활동하였던 시대의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혼돈의 시기에 지식인들의 고뇌를 담은 이야기라는 공통점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했던 것 같다. 등장 인물은 시라이 도야와 다카야나기이다. 물론 다카야나기의 친구인 나카노라는 부유한 친구가 있긴 하였으나, 그는 다카야나기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므로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시라이 도야는 대학을 나와서 결혼 후에 교사 생활을 하였으나, 교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문예가로서 어렵게 살아간다. 다카야나기는 곧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으로서 이전에 시라이 도야가 교사 생활을 할 때, 그 밑에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청년이었다. 다카야나기는 시라이 도야를 본 순간 과거 자신의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시라이 도야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둘의 공통점은 가난하다는 점과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라이 도야(나쓰메 소세끼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 하다.)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고수하며, 가난한 삶 속에서도 현실과 타협을 하지 않는다. 그가 배우고 쌓은 지식을 본인의 신념대로 행할 뿐이기에 그의 형이나 아내는 시라이 도야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으로 가득차게 된다. 다카야나기는 취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향에 홀어머니가 계신 형편이 아주 어려운 상태이며, 그 자신도 폐병으로 의심되는 병을 앓기 시작한다. 둘다 통속적인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지도 못하였고, 또한 거기에 녹아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시라이 도야 같은 경우에는 주위의 시선이나 관심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행할 뿐인데 반하여 다카야나기는 주위를 의식하여 본인의 모습에 대하여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다카야나기는 시라이 도야와의 대화를 통하여 처음에는 그의 의견에 납득을 하지 못한다. 그저 현실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변명을 듣는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그러나, 점차 다카야나기는 시라이 도야 선생의 의견에 조금씩 공감을 하면서 동화되는 느낌을 받으며, 책의 마지막에는 시라이 도야의 연설을 듣고 상당히 큰 감명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책의 초반부에 나쓰메 소세끼가 본인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을 설명하는데, 극중 시라이 도야와 상당히 닮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아무래도 시라이 도야는 극중 나쓰메 소세끼를 반영하는 인물로 보인다. 즉, 당시로서는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고급 인텔리이지만, 사회에서는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으며, 또한 성공하지 못한 삶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믿고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시라이 도야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야의 경우도 그렇고, 다카야나기도 그렇고 나도 요즈음에 느끼는 가치관의 혼란에 대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책과 현실간에 상당한 시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또한 일본 근대 문학에서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관심이 생긴 책이어서 의미가 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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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어려웠다. 어려운 한자어를 많이 사용한 것이나, 작가가 대중성을 염주에 두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주관과 소신을 작중인물의 입을 빌어 역설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다소 무거웠다. 소설의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세련되게 독자를 아우르는 테크닉은 거의 없고, 지성과 교양을 지닌 이가 배금주의의 사회에 고개를 숙여야하는 현실에 대한 개탄과 생활고의 지난한 일상을 상당히 리얼하고, 신랄하게 표현한듯 하다. 내게 익숙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마음','도련님'그리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있다. 각각의 작품들에는 상당한 진지함 혹은 유머 그리고 풍자가 제각각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정체성은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대중성이 많이 떨어지는 듯 하다. 그럼에도 저자가 나쓰메 소세키이기에 그의 작품에는 관대할수 밖에 없다. 그의 사고와 가치관과 일상들이 너무도 궁금하고, 작가이자 인간인 그의 삶이 내게는 큰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지는 못했지만, 그의 족적들은 활자로 살아남아 이렇게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나같은 독자와 조우할수 있으니 새삼 문학의 위대함을 절절히 느낀다. 암튼 저자에게 개인적인 호감과 호의가 있었기에 이작품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얼핏얼핏 엿보게 되는 문장들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마음','도련님'혹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전신이 될만한 내용들이 보여졌다. 흥미로운 일이다. 따로따로 감상한 작품이지만, 한 작가의 작품이기에 알게모르게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진 보이지 않는 끈을 재발견하는 기분을 맛보았다고나 할까..... 은밀하고 달콤하고, 유쾌한 감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