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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영원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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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니 확실히 난 김인숙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참 이런 일도 다 있다. 아무리 그의 작품 제목을 들여다봐도 읽었다고 확신을 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왠지 김인숙의 소설은 세련된 도시인들의 일과 사랑에 대해 쓴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그것은 나의 선입견이라는 것을 알았다. 맨 처음에 실린 <델마와 루이스>를 읽으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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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아니 확실히 난 김인숙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참 이런 일도 다 있다. 아무리 그의 작품 제목을 들여다봐도 읽었다고 확신을 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왠지 김인숙의 소설은 세련된 도시인들의 일과 사랑에 대해 쓴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그것은 나의 선입견이라는 것을 알았다. 맨 처음에 실린 델마와 루이스를 읽으면서부터가. 의외였다. 우리 주변에서 친숙한 사람들이 등장인물이었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어디서 본 듯한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 실수도 하고 그것으로 인해 평생을 어두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남아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이제라도 인연이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차용했다는 제목의 델마와 루이스87,89세 할머니 자매들의 유쾌한 일탈을 그려낸 이야기다. 이렇게 연로한 노인의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다. 환갑이 넘은 며느리와 아들의 집에서 살고 있는 동생 델마를 보러 미국에 살던 루이스가 며칠만 있겠다고 왔다가 아예 눌러 앉게 된다. 며느리의 분노는 남편에게 향할 수밖에. 그 공간의 불편함을 감지해서였을까. 자매는 어느 날 밤에 택시를 잡아타고 가출을 한다.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모의하면서 마음은 들떴으리라. 모텔에서 하룻밤을 거의 뜬 눈으로 보내고 매운탕집에서 밥을 먹으려다가 지갑을 잃어버렸음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이 뒤엉키기 시작한다. 사장의 지갑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진다. 자유분방한 미국에서 살던 영향인지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루이스는 델마에 비하면 무척 대범하다. 가출로 인해 며느리에게 격렬한 분노를 안겨 주었다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신속하게 판단하고 움직인다. 델마와 루이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식당 여자 최영자와 딸 부영희는 서로 의기투합하여 바다를 보러 간다. 매이고 매인 삶, 핍박 받던 삶에서 벗어나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은 얼마나 후련했을까.

 

이 나이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최영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 손을 잡듯이 델마의 손을 잡았다. 델마가 그 손을 마주잡았다. 그러나 쪽지 한 장만 달랑 놓고 떠나온 집의 자식들을 떠올려서는 아니었다. 델마는 자식 생각들을 그때 아주 잊었다. 첫 새끼를 낳고부터 그날에 이르도록 육십여 년이 넘게 자식 생각을 잊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P55)

 

 

 그 나이가 되면 걱정을 끼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서글프다. 노인이 되면 주변의 보호 아래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고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반면 그것을 당하는 편에서는 얼마나 불편하고 괴로울까하는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박웃음을 웃는 그녀들을 보며 후련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달라질 것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이어가는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아홉 번째 파도내 이럴 줄 알았어에 나오는 화자인 의 부모와 언뜻 닮은 모습이 보인다. <아홉 번째 파도>의 그 남녀는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헤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뜨거운 열정도 없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삶, 버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끈끈이 엮어지지도 못하는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났다가 휴대폰을 도둑맞돌아온 후 어느 날 클라우드에서 도둑이 찍은 사진을 발견한다.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빨간머리의 여자의 얼굴.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고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싱싱한 사랑, 햇살처럼 환한 웃음'을 환기시킨다. 이제 앞으로의 삶은 더이상 '버티는 삶'이 아니라 '이겨낼 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후자는 더는 같이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은부모의 홍콩여행에 실직자인 아들이 따라가는데 극심한 태풍을 만나 호텔에 묶이는 상황이 나온다.

 

좀 무서웠지만, 사는 건 안 무서웠나, . 꿈속에서 울면서도 그렇더라고. 왜 우는지를 모르겠는 거야. 죽는 게 슬픈가? 그럼 사는 건 안 슬펐나. . ‘그는 이처럼 기꺼이 굴복하는 삶을 다시 묵인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P252)

 

 어머니는 혼자 암 검사를 받고 암이란  암은 다 아니라고 했다는데 왜 아픈거냐고 아들에게 묻는다. 헤밍웨이의 소설에 나오는 이 구절을 말하면서 지나온 삶을 토로하는 어머니가 낯설기만 하다. 어쩌면 어머니의 지난날을 그토록 괴롭혔던 것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내 이럴 줄 알았지. 결국 이럴 줄.'(P258) 마치 의지하고 싶었던 일이 엇나가서 실망스럽다는 듯이 쓸쓸하게 들린다. 특별히 행복하지 않더라도 특별히 불행하지 않다면 그냥 견디며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는 것일까. 어쩌면 모나지 않고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한 삶에 안주하려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반면 하루하루 견디는 삶이 얼마나 지독한 일인지 일깨워주는 넝쿨도 있다. 형오와 형윤은 연년생 남매다. 형오의 군 입대를 앞두고 송별식이 있던 날 오빠의 친구 김정호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난장판이 된 분위기를 피해 밖에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다. 그 범인이 김정호 인 줄 알았는데 진범이 따로 있다는 소식은 그들의 인생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기억이 단번에 뒤엉키는 순간이다. 형윤은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고 형오는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마치 형벌처럼 삶을 점령당한 채 살아가야 하는 그들. ‘아무것도 아니게 된 삶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

 

토기박물관

 

 영어학원에서 알게 된 67세의 미라가 65세의 제니와 토기박물관에 가서 발굴된 토기, 깨어진 토기가 온전한 모습을 갖춘 것을 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다. 딸이 다니다 만 날수를 채우기 위해 대신 다닌다는 제니가 우습고,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신은 그녀와 다르다는 생각에 퉁명스럽게 대한다. 우연히 무너져 내린 제니의 울고 있는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질그릇처럼 다 깨져 더는 담을 게 없어진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깨어져 상처투성이인 삶도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모두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고만고만한 사정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인생이 끝나지 않은 이상 삶도 아직 진행형이라는 것을.

 

단 하루의 영원한 밤

 

 이 소설집의 표제로 붙은 이 작품은 3인칭 시점으로 선생의 숨겨진 딸 M과 연애를 했던 를 내세워 선생의 삶을 이야기한다. 삼십 년 전, 하룻밤의 실수로 영원한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선생이 있다. 선생은 해안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여제자와 동행했는데 충동적으로 도중에 하차를 하고 밤을 같이 보내고 여자는 딸을 낳는다. 덕망 있는 학자라고 주변에서는 오히려 여자에게만 돌팔매질을 하였다. 여자는 한복집을 운영하며 홀로 딸을 키우는데. 선생은 여자와 아이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침묵으로 일관한다. 학문적인 명성보다는 세상의 모든 모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연히 꾼 악몽쯤으로 여겼을까. 나쁜 꿈을 막아준다는 인디언의 부적인 깃털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을 만큼 절실했을까.

 

선생은 언제나 기차역이 바라보이는 여관의 창가에 서 있었고, 창문 바깥에서는 키 큰 나무의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P143)

 

분명한 것은 선생이 주기적으로 그 기차역의 여관방에 관한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혹은 그것을 꿈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꿈이라고 믿고 싶은 살아 있는 날의 한낮인지, 아니면 살아 있는 날의 한낮으로 굴절된 꿈의 한 장면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선생은 언제나 가방 속에 깃털 하나를 지닌 채 나뭇잎이 흔들리는 창가에 서 있는 것이다.’(P147)

 

 

 잊고 싶다고 해서 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 남아서 자신을 괴롭힌다. 이미 저질러진 일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졌으면 되었을 텐데. 그렇게 방관자처럼 회피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자신도 용서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세상의 뭇매를 맞은 여자의 삶도 얼마나 고단했을까. ‘꽉 붙들어! 꽉 붙들란 말이야, 이 늙은이야.”(P150) 사랑과 미움이 애증이 되어 메아리치는 삶이었다.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창피한 마음을 지닌 채 감당해야만 하는 삶, 그 고통을 마주하면서 끝까지 가야하는 삶이었다. 세간의 이목을 떠나 좀 더 용기를 내어 책임을 지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더라면 어땠을까. 선생은 떠났어도 남은 사람은 따뜻한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빈 집

 

 남편과 27년을 살아온 쉰다섯 살의 그녀가 나온다. 수더분한 남편과 이제는 더 이상 전율도 아니고 고통도 아닌 편안한 느낌을 갖게 된 이 여자는 추리소설을 읽는 것을 낙으로 살아간다. 이삿짐과 화물을 운송하는 남편의 일터에서 젊은 애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 중얼거리다가 택시기사의 핀잔을 듣고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도 그리 나을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남편을 경멸했지만 속으로는 사랑했다는 것을. 미웠던 마음이 문득 그에게 얹혀진 삶의 무게가 가엾음을 느낀다. 팔리지도 않는 쓰레기같은 영천 집을 고모부에게 상속받은 남편은 그곳에 자신만의 내밀한 기쁨의 공간을 구축한다. 교통사고로 죽은 개 대신 또 하나의 백구를 키우면서. ‘소리 내는것을 키워 본 적이 없어서. 어쩌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온 답답함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이리저리 치이고 치인 마음의 상처를 보상이라도 하듯이. 남아있는 삶은 그렇게 자신을 위한 세계를 쌓고 서로 보듬을 수 있는 정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으리라.

 

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

 

 여기에도 그다지 성공한 인생과는 거리가 먼 소시민이 나온다.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하여 전처가 두 명이고 아들이 두 명인 남자. 두 명의 아들은 히어로를 좋아해서 히어로 영화를 보고 히어로 장난감을 사고 히어로를 이야기한다. 일 년에 한 번 밖에 만날 수 없어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혼을 내지 못하고 오히려 아들의 눈치를 보는 주눅이 든 아빠다. 아들에게조차도 히어로가 되지 못하는 남자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특별한 쓸쓸함이 뭔지는 알 것도 같았다. 적어도 그 쓸쓸하고 달콤한 느낌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사소한, 그래서 비루하기까지 한, 그러나 누구에게나 특별한, 아니 오직 자신에게만 특별한. 그걸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 그도 어쩌면 저 사소한 히어로들의 소그룹 하나쯤에는 끼어들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P225)

 

 가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나중에라도 이룰 수 있는 거창한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우리는 아주 사소한히어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힘들게 살기보다는 오직 자신에게만 특별한삶은 살 수 있지 않을까. 내 눈에 비친 타인들은 모두 잘 나가는 인생으로 보일지 몰라도 한두 개의 아픔은 지니고 산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삶의 과정에서 시간은 아픔의 흔적을 조금씩 희석시켜 줄 것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인생이지만 우리는 문학 작품을 통해서 조금 나은 길을 안내받는다. 알 듯 말 듯한 친근한 이웃처럼 개성이 넘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내밀한 감정 묘사는 웃음과 쓸쓸함, 따뜻한 연민을 품어주었다. 마치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어, 인생 다 비슷하지 않아?’ 라고 위로해 주는 듯했다.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 너머로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그녀의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가교가 되고 한동안 울림을 줄 것 같다.

 

 

 

 

h*****7 2018.09.12. 신고 공감 13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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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영원한 밤 -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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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낯선 작품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금 헤맸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할머니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여 델마 할머니의 이야기, 루이스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 두 할머니가 거리로 나서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갈 때 혼란스러웠다. 왜 제목이 델마와 루이스지? 왜 이 두 할머니는 제대로 된 이름이 나오지 않는거야? 결말 꼭지 부분에 이르러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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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낯선 작품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금 헤맸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할머니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여 델마 할머니의 이야기, 루이스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 두 할머니가 거리로 나서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갈 때 혼란스러웠다. 왜 제목이 델마와 루이스지? 왜 이 두 할머니는 제대로 된 이름이 나오지 않는거야? 결말 꼭지 부분에 이르러서야 저자는 이 작품의 제목이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빌어온 것이 맞다는 확인과 함께, 그러나 그 영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 역시 맞다는 확인을 해 준다. 불친절한 저자와는 달리 이 작품의 결말은 친절하다. 두 할머니들은 집을 나온 채로 죽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고, 그 두 할머니의 가족들은 할머니들의 장사를 외지에서 치른 후에 겪을 기묘한 분노와 당혹감, 의문에 휩싸인채로 여생을 보내지 않을 터다. 할머니들은 이제까지의 삶이 그러했듯 가족의 옆에서 그들의 염치를 증명하다가 아무런 잡음도 남기지 않고 소천하고 남은 가족들은 또 그들의 생애를 따라 살아가겠지.

 

 첫 작품을 읽고 나서 <아홉번째 파도>, <토기박물관>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짚어내는 지겹고도 지겨운 삶의 맥을 따라 가게 되었다. 그 맥은 참 고단하면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징글징글하면서도 그렇게 쉽게 떨쳐지지 않는 묘한 박동이었다. 분명 더 나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는 데로 하지 못하는 삶. 갯바위에서 던지면 분명 아홉 번째 파도에 이르기 전에 월척을 낚을 수 있게 될 좋은 낚싯대를 수중에 쥐고도 예전의 선택을 다시 하게 되는 여자(<아홉번째 파도>의 인물)나 남편이 죽은 후 지나온 삶의 조각을 꿰어 맞추며 이리저리 분열하며 어그적거리는 생애를 살고 있는 여자(<토기박물관>의 미라)의 이야기는 지겹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이 슬픔은 <넝쿨>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내 기억이 진실이 아닐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여러 가지가 있다. 어제 술값을 계산했던 게 내 친구인 걸로 기억하는데 실은 나였을 때 다음달 카드값 청구서가 꽤나 묵직하겠지. 그리고 내 식사는 가벼워질 터다. 새로 알게 된 거래처 직원이 하도 낯이 익어 대학 동창인 걸로 기억해냈는데 실은 학부 때 미팅으로 만나 아주 더럽게 헤어진 썸남이었을 때, 당분간 회사 생활이 골치 아파지겠지. 기억이란 시간과 공간이 채색하는 대로 갖가지 색을 덧입거나 지우기 마련이다. 더구나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중 자기방어력이 가장 강한 생물아닌가. 왜곡되고 비틀려진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이 불러온 비극. 영국의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이 주제를 아주 세련되고 날렵하게 잘 다루었는데, 그의 소설을 읽을 때보다 좀더 명료하고 쓰린 충격을 준 작품이 <넝쿨>이다. 


 <넝쿨>이 그린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내가 진범이라고 지목하여 사회적으로 사형을 당하고 실제로 투옥되어 형을 살고 있는 인물이 실은 진범이 아니었다고, 진범이 따로 있었다는 전개는 아프지 않다. 그것은 놀라움의 일이지 아픔의 일이 아니다. 내가 아팠던 부분은 주인공 형윤의 의식이었다. 범인을 잡고 난 이후에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공포와 충격. 진범이 밝혀지고 난 이후에는 가해자가 응당 받기에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비난과 자기 자신이 주는 자책이라는 채찍질이 더해져, 그녀는 실로 순교자 같았다. 그녀 자신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그녀의 기억을, 단 한 번도 재생하기 싫은 그 끔찍한 순간들을 여러 번 오가며 그녀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징계는 가혹하고 처절했다. 누구에게라도 이 순간의 원인을 떠맡기고 싶어지는 밤,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가해자여서 어디 피할 데도 없어진 형윤은 하느님이야말로 이 게임의 범인이 아니냐고 묻는다.
 같은 가해자가 된 형오(형윤의 오빠)는 타국으로 도망을 가는 길을 택했으나 그녀는 아니었다. 형윤은 그녀가 짊어져야 하는 생애를 악을 쓰고, 눈을 부릅뜨고 견디는 쪽을 택했다. 이런 삶이라도 견디고 있다는, 도망가고 싶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만 그저 여기 있기를 택한 형윤의 의지는 <넝쿨>의 뒤를 이어 전개되는, 이 책의 표제작 <단 하루의 영원한 밤>으로 이어진다.

 

“세상에는 분명히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있다고.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개체마다 다르게 시작되는 운명의 차원이나 상처의 방식도 아니라고. 그것은 존재의 방식이라고. 더럽고, 냄새나고, 그저 꿀떡꿀떡 삼켜야 하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여자는 어떻게 그 험한 세월을 다 견뎌올 수 있었을 것인가.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그것은 오직 그들이 동일한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150쪽)”

 

 이 한 구절이야말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여러 개의 이야기와 다양한 인물들과 그 수많은 삶을 꿰는 단 하나의 실이 아닐까.

 

 어린 제자와 동행했던 하룻밤에 P선생은 어린 제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그때 P선생은 악몽을 막아준다는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이후 P선생의 일생은 온통 악몽의 도가니에서, 도저히 삼켜지지 않는 그 생애를 삼키려 경련하는 시간이었다. P선생의 사생아인 M의 연이이었던 화자는 M으로부터 악몽을 막아준다는 깃털장식을 선물 받았다. 그러나 화자 역시 인간의 도리를 거스르는 상상, 이를테면 헤어진 M을 다시 만나려면 P선생의 장례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그러다 실제로 P선생의 장례 소식이 전해지고, 그 장례식장에서 화자는 P선생과 그 여인 그리고 M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입밖으로 확인하고는 그런 것 따위를, 누군가의 악몽 따위를 서슴없이 전하고 믿는 부끄러운 인생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 밤, 화자는 생이 통째로 멈출 길 없이, 덜커덕 달리고 있어 사람은 통증을 잊기 위해 꿈속으로 들어가고 참회를 하지만 그 역시 잠꼬대에 불과하며 생은 영원히 반복되는 또 하나의 밤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모두 밤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밤은 깊어가도 끝나는 대신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그 밤을 빗겨가는 길은 꿈이지만 꿈에서의 생애는 잠꼬대. 그러니 살아있는, 살아가는 태도는 악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이 든 교수의 아이를 가진 미혼모가 된 여자가 보리밥을 욱여넣어 삼키고는 방귀를 뿡뿡 뀌는 우악스러운 몰골일이지라도, 이미 태어나 시작된 존재의 방식을 부정하지 못하고 살아낸다. 고고한 교수가 온갖 오물보다 더한 루머와 오명 속을 악몽을 꾸듯 거닐어도 그만의 존재 방식으로 살아간다. 


 별난 능력도 없고, 대단한 사람도 아닌 그냥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도 오늘 현실 속에서 밤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미 시작된 생애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은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윤처럼 자신도 모진 일을 당하고 누군가에게 역시 모진 일을 행했을지라도, 미라처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을 더듬어 꿰어 맞추는 쓸쓸하고 혼란스러운 말년일지라도, 두 번의 이혼 끝에 실패자(본인 기분으로는 쓰레기)가 된 기분으로 아들의 눈물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아빠(<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의 주인공)일지라도 그냥 거기 살아있음으로 해서 존재한다. 그 안에서 꿈을 꾸거나, 고요한 비밀에서 가만히 빗겨 있는 채로 생이 평탄하다고 착각하거나, 아니면 특별한 쓸쓸함을 마주하는 시공인 밤. 밤은 때로 고통으로 때로 위로하며 이들을 덮는다. 그래서 때로 영화 주인공 같은 순간을 보내기도 하고(델마 할머니), 슈퍼히어로가 되기도 하면서 생은 통째로 덜커덕 달리는 것이다.

 

 사람은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심지어 그 자신에 대한 것조차도 다 알지 못한 채로 생애를 살아간다. 그 사이에서 사람이 겪는 혼란과 갈증, 끝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불만들은 그 자신이 유별나게 문제적 사람이기 때문이라거나 어딘가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사람이란 다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겪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한계이자 짐인 것 아닐까.
 사람이 겪는 이 한계와 짐 그러니까 밤 같은 인생의 어려움을 소설로 그려낸 저자는 위로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이야기를 건넨다. 말하자면 ‘인생 다 그래요. 그 생애는 그 개체만의 것, 아주 사소하고 별거 없지만 이미 시작된 것이고 나 자신에게만은 사소하지 않아요.’라는 쓸쓸하고 달콤한 느낌으로.  


 언젠가 이 쓸쓸하고 달콤한, 특별한 쓸쓸함을 지금보다 더 깊이 느끼게 되는 나이에 나는 내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을 반추하기 위하여 혹은 다가올 밤을 지낼 소박한 용기를 얻기 위하여 이 단편집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o********e 2018.09.29.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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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영원한 밤 - 내 인생에 켜켜이 쌓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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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나서.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화장은 뜨고, 부랴부랴 집어 들어 입고 출근한 옷은 여기저기 다 구겨져 있고. 길지 않은 점심시간에 개인적인 볼일을 보겠다며 동분서주 땀 흘리고, 간신히 먹을거리를 사들고 회사로 들어가는 중에 뭐가 좋은지 하하 호호 웃고 있는 젊고 예쁜, 그리고 잘 꾸민 친구들이 자꾸 눈에 밟힐 때. 별것도 아닌데 나 자신이 마냥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그런 날이 있다. 

김인숙의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은 8개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모두 너무나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이야기 속에서 이상하게 그런 날의 나, 괜히 거울도 보기 싫고, 잠시 나 자신에게서 눈을 감고 싶어지는 내가 계속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날의 '나'에게라도, Life goes on. 삶은 계속된다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말해봐. 왜 나랑 헤어진 건데? 왜 하필이면 그때 헤어진 건데? 그때 헤어질 거면 그동안은 왜 만났던 건데?   - 아홉 번째 파도

[델마와 루이스]의 두 할머니는 야심찬 가출을 감행하지만, 보호자 없이 다니는 그들은 무시당하고, 카드를 도난 당하고, 결국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홉 번째 파도]에서는 함께 여행 가기로 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예약해둔 여행지에 혼자 여행 간 여자가 나온다. 그와 함께 하기로 했던 숙소에 혼자 묶고, 낚싯대를 봐달라던 남자에게 휴대폰을 날치기 당한다. [토기 박물관]의 처량하고 구질하다 싶었던 영어학원의 친구는 알고 보니 자신의 모습과 판박이처럼 닮아있고, [빈집]의 무식하고 처량맞은 근육질의 대머리 남편을 그리 구박하던 아내는 남편에게 혼자만의 빈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소설 속에서는 산불 하나 본 것으로 무언가 특별해졌다 싶은 기분에 더 우울해지는 [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의 주인공도, [단 하루의 영원한 밤]에서는 불륜으로 사회적으로도 불륜녀로부터도 구박받는 스승도 나온다. 

너무나 처참한 지경에 처한 이 주인공들에게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마법 같은 반전은 없다. 상황을 역전시켜줄 무엇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 여전히 처해있고,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 아니겠느냐는 힌트 정도는 주어진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어떻게 해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을 거라는걸. 그러나 그는 이제 특별한 쓸쓸함이 뭔지는 알 것도 같았다. 적어도 쓸쓸하고 달콤한 느낌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사소한, 그래서 비루하기까지 한, 그러나 누구에게나 특별한, 아니 오직 자신에게만 특별한. 그걸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 그도 어쩌면 저 사소한 히어로들의 소그룹 하나쯤에는 끼어들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초대장은 이미 도착했다. 이제 이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

[델마와 루이스]의 두 할머니는 가출에는 실패했고, 죽은 뒤 틀니를 포함한 소지품 몇 가지로 기억될 그녀들이지만, 그 하룻밤 그들은 어느 누군가에겐 유쾌함을, 희망을 주었고, 본인들 스스로에게도 잊지 못할 하룻밤을 만들었다. [아홉 번째 파도]의 주인공은 무언가 변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인식한다. [빈집]의 남편은 피난처가 될 빈집이 있고, 아내는 그 사실과 상관없이 그를 기다리는 것이 사랑일 거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180도 돌려야만 해결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제니는 모를 것이다. 어떤 존재가 디테일을 갖기 위해서는 상실이 필요하다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뒤에야 오히려 생생하고 너무나 세세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그러니, 병들어 죽어가던 내 남편의 모습은 내가 노망이나 나야 잊을까. - 토기 박물관 

그 결과가 처참하고 잔인하더라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그 자리에 계속 있던, 앞으로 나아가던, 뒤로 퇴보를 하던 할 수 있다. 잃어봐야 어떤 존재가 디테일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밤이 깊어가고, 밤은 살아 있는 동안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어느 날의 밤은 행복한 기억으로, 어느 날의 밤은 끔찍한 기억으로 계속 기억될지 모른다. 이왕이면 행복한 기억만 계속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이 다른가.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밤과 함께 쌓이다 보면 그게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어느 하루에도 눈을 돌리지 말자 다짐한다.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영원히 반복될, 그저 또 하나의 밤이었다.  - 단 하루의 영원한 밤

f********r 2018.09.15.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