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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에서 나계성으로...
"진성에서 나계성으로..." 내용보기
잊고 지내다가 문득 기억이 났다. 나도 시를 읽곤 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각이 많은 요즘 다시 읽기 시작한 시집 중 하나가 황보현 작가의 「진성에서 나계성으로」 이다. 진성은 주작의 꼬리에 해당하는 별, 나계성은 해와 달을 지켜주는 별 이름인 나후성, 계도성의 준말이란다.   「아리다」   곤드레 밥을 먹었다.먹는 것보다 잠이 더 급했지만   은행에 갔다
"진성에서 나계성으로..." 내용보기

 

 잊고 지내다가 문득 기억이 났다. 나도 시를 읽곤 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각이 많은 요즘 다시 읽기 시작한 시집 중 하나가 황보현 작가의 진성에서 나계성으로」 이다. 진성은 주작의 꼬리에 해당하는 별, 나계성은 해와 달을 지켜주는 별 이름인 나후성, 계도성의 준말이란다.

 

아리다

 

곤드레 밥을 먹었다.

먹는 것보다 잠이 더 급했지만

 

은행에 갔다

도서관에 가야 했지만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그의 눈썹을 만지고 싶었지만

 

이제 곧 하지를 지나 찌는 더위가 올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한다. 고민의 빈도가 잦아질수록 공허감과 좌절감도 크다. 시인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아리다는 일상적인 모습을 덤덤히 적고 있지만 자꾸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꿈틀거린다.

 

계단」 

          

세상 곳곳을 날아다녔다 그녀는 나에게

무서우냐고 물었다

나는 흙을 얼른 집어 먹었다

이리하여 나는 살아오는 동안

밤에 길을 잃었을 때

비행날개를 접어 숨기는 법을

날개를 만드는 법을

날개를 부수는 법을 배웠다

 

동굴 밖에서 비단뱀은

박쥐를 씹지도 않고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다

 

비단뱀을 본다

 

나는 비단뱀을 배 속에 그려 넣었다 곰곰이

더 이상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여섯 달 동안 비단 같은 잠만 자며 앓고 있다

 

->요즘 부쩍 계단 올라가듯이 천천히...라고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그래서인지 계단이라는 제목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계단을 차례로 밟고 올라가듯이 천천히 올라가라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만나게 될 만만하지 않은 세상이 문제다. 세상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무섭다. 박쥐를 씹지도 않고 통째로 삼키는 비단뱀처럼 말이다.

 

시를 읽는 동안 많은 생각과 기억이 오가고 복잡하다. 하지만 이 시집의 시를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일상에 지쳤을 때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보면 좋을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c******4 2018.09.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