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인 또는 자신이 모델로 삼은 인물의 자살 소식에 동조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일컫는 '베르테르 효과'는 꽤 자주 인용되는 용어이다.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상황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용어를 만들어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된다. 도대체 이 작품의 주인공인 베르테르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떠한 점에서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비운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왜 유독 이 작품의 비극적 결말에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이 책에 대한 읽기로 이어진다. 또한 독일의 대문호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괴테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 작품을 통한 그와의 만남 역시 이유라면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이미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비극적인 사랑은 바로 로테가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결국 그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은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는 꽤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베르테르의 그러한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결말보다는 그 결말에 다다르기까지의 베르테르의 심경 변화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이야기에 치중한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하여 오히려 실망할 수 있을테니까.
이 작품은 베르테르가 절친인 빌헬름에게 자신의 심경과 상황을 토로하는 편지의 형식을 띄고 있다. 로테를 만나기 전에 베르테르의 모습은 건전하면서도 이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존경을 유지하기 위해 소위 천한 무리로부터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패배가 두려워 적을 피해 도망치는 비겁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네. - p. 16 中에서 -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살기 위해 허비하고,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이 생기면 그것을 불안해하며 어떻게든 그 시간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아, 인간이란! - p. 18 中에서 - 귀족들이 농민에게 거만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주어진 시간을 즐겁게 만끽해야 한다는 베르테르의 이러한 생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발하임에서 자연의 경관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대하던 베르테르의 심경이 로테와의 만남을 통하여 어떻게 변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묘미라 생각된다. 무도회장에서 이루어진 로테와의 만남, 실로 강렬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유부녀였던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가 서로 격정적인 사랑을 예감한 그 화려한 무도회장이 이 순간 겹쳐진다. 비록 베르테르와 로테가 만난 무도회장은 작은 마을의 친목을 위한 소박한 것이었지만,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이 일었다는 점에서 안나와 브론스키의 만남에 뒤지지 않는다. 심지어 베르테르의 파트너가 로테에게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의 사랑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이미 약혼자가 있던 로테의 마음을 되돌릴 자신이 있었던 것일까? 베르테르는 이후 로테의 집을 자주 방문하면서 그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물론 로테가 바라보는 베르테르와 베르테르가 바라보는 로테의 시선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이 둘의 관계는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의 등장과 더불어 이내 흔들리게 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알베르트가 로테의 약혼자로서 너무나 완벽하다는 점이다. 알베르트에게 문제나 심각한 결점이 있다면 분명 독자들은 베르테르를 응원하겠지만, 알베르트 역시 베르테르만큼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하면서도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주며 심지어 로테를 너무나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알베르트에 대한 로테의 마음 역시 베르테르가 쉽게 허물기란 불가능해보인다. 그렇다고 베르테르의 사랑을 위하여 로테와 알베르트의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보통 주인공에 대한 응원과 동정은 베르테르에게 통용될 수 없는 것 같다. 알베르트의 존재와 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진 로테 사이에서는 베르테르가 끼어들 틈이 없기에 이미 이 작품의 비극적인 결말이 암시되어 있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면 당연히 죄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게다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빼았는 것인데 당연히 죄가 아닐까요? - p. 55 ~ 56 中에서 - 알베르트와의 논쟁에서 베르테르가 말하는 이 대목이 훗날 베르테르 자신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베르테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들을 피하여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하였지만, 결국 로테와 알베르트가 결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돌아온다. 스스로 로테에 대한 그의 사랑과 감정을 결말짓기 위하여.
그러나, 그의 감정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시의 낭독을 통하여 서로에 대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된 베르테르와 그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로테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동시에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도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하여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려달라고 요청을 하고, 그 권총을 로테가 베르테르의 하인에게 건네는 장면. 과연 알베르트와 로테는 이 권총을 빌려달라는 의미를 알지 못했을까? 아니, 알베르트는 논외로 하더라도 분명 로테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총을 건네준 로테의 심경은 어쩌면 베르테르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베르테르와 로테, 알베르트의 이 관계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득 영화 [글루미 선데이]가 떠오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일로나가 애인이었던 자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드라스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이들의 삼각관계는 위기에 다다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의 그러한 사랑이 일로나를 홀로 독차지하려는 한스의 등장으로 인하여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공유와 독점에 대한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는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러한 관점에서 들여다 볼 여지가 충분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베르테르와 알베르트의 로테에 대한 사랑이 공존하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로테와 베르테르가 시 낭독 이후에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에 대한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생각하여 결국 베르테르의 자살과 로테의 묵인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도 왠지 가능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이 작품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기에 이 작품을 통하여 괴테의 삶을 들여다보는 통로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약혼자가 있던 샤를로테에 대한 연모와 더불어 거절을 당했던 괴테의 젊었을 적의 경험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다. 물론 베르테르와 달리 이후 괴테는 장수하면서 여성과의 관계에서 구설수에 올랐으니 작품과 그의 삶에서 오는 동질감과 괴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오타 : 48쪽 3번째 줄 : 잃버린 -> 잃어버린 |
|
한때 젊은이들에게 자살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는 이 소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스스로를 죽게 만들었는지 궁금한 마음에 책을 펼쳐 들었다.
|
|
다양한 출판사의 번역으로 익히 접해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작품의 팬이다. ( 언어 능력의 한계로 원문은 읽어본적 없지만 다양한 역자들의 책을 읽어봤다.)
가히 직관적인 제목대로 정말 베르테르의 처절한 슬픔을 담고 있는 책이다. 베르테르효과라는 비극적인 사회현상을 만들어 낼 정도로, 작품 출간 이후 거대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
더디 출판사의 책은 상당히 깔끔했다. 역자이신 이상희님의 번역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편지형식으로, 시처럼 쓰인 작품이라 무감정한 상태에서 읽는다면 이는 재미없는 책이라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과거 어린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책을 읽는다면 감상에 젖어 구절 하나 하나가 아름답고 슬프게 느껴질 것이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순수한 열망은 페이지를 지날 수록 처절해져 끝내 읽는 이의 마음을 비통에 잠기게 한다. 로테를 보고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주변인의 농담섞인 말을 가볍게 웃으며 넘기던 베르테르는 거짓말처럼 로테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미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은 인격적으로 훌륭하여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질투를 할 수 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베르테르는 그들을 떠나지만, 그들을 떠나서도 계속 로테에 대한 생각 뿐이다. 결국 점점 더 격정적인 기분에 사로잡힌 베르테르의 심정은 고스란히 친구인 빌헬름에게 남긴 편지에 담긴다. 다시금 로테와 만나, 결국 감정을 온 몸으로 표현하게 되고, 혼란스러워 하는 로테(로테도 개인적으로 베르테르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를 떠나 유서를 남긴 베르테르는 이미 복선으로 예고 된 이야기 대로, 알베르트에게 여행을 위한 목적으로 총을 빌려 떠난다. 그 후는 짐작대로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어릴 때는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생각했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결국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그 과정이 지독히도 아팠기 때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슬픔에 잠기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 않는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직도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더라도 이 베르테르의 사랑이야기에 각각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 열병을 앓은 사람이라면 베르테르의 사랑에 공감하며 같이 가슴 아파할 것이고 이성적이고 냉혹한 사람들은 베르테르의 사랑에 공감하거나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랑했다는 점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여행이 시작된 순간부터 시작된 것만 같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이 편지에 녹아있다. 그림과 아이들, 보리수나무에 대한 그의 마음을 읽으면 평화롭고 따뜻하다. 로테에 대한 애정은 뜨겁고 간절하다. 편지에 나와있는 그의 시선, 그의 몸짓, 그의 마음들은 마치 순수한 소년이 꿈꾸는 사랑과 비슷하다. 로테에 대한 찬사와 그녀에 대한 묘사는 올곧고 뚜렷해서 맹목적인 종교에 대한 믿음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베르테르의 사랑이 더 안타까웠다. 지금 시대에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개관적으로 봤을 때는 집착남에 스토커(?) 수준으로 보여질 수 있다. 또한 이미 알베르트의 약혼녀였고, 부인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사랑은 말리고 싶은 사랑이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억지로 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로테와 알베르트도 이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와의 관계를 어느정도 거리감을 두고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은 베르테르의 깊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의 관점에서, 미숙했던 베르테르의 사랑에 대해 보여준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유명한 말을 그대로 따르자면 베르테르는 사랑이 무르익고 과실을 맺지는 못했다. 하지만 맺히지 못한 감정을 추스리는 것 또한 사랑의 한 과정이고, 그것을 죽음이라는 거친 방식으로 끝내버린 것에는 문제가 있다. 그의 사랑은 사랑하던 로테와 알베르트, 베르테르의 주변인들까지 슬픔에 몰아넣어 상처를 남겼다. 끝맺음도 좋아야 사랑이라는 것이 온전해지고 또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나의 입장으로써는 베르테르의 사랑은 문제가 있다. 베르테르는 과실을 맺지 못한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고 흉한 큰 구멍을 남겨버린 사랑인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우선 이렇게 훌륭한 책을 접하게 해주신 "YES24" 와 도서출판 "더디"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이야 누구나 줄거리 다 알고 누구나 학창시절 한번 읽지는 아니하였어도 제목쯤은 접했을 고전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이 도서출판 더디에서 나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번역과 주석이었습니다.
해석, 번역... 뭐 그건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매끄러울수도 있고 껄끄러울수도 있습니다.
그걸 일정일오 하는건 너무 과할수 있습니다. "언냐들 나만 불편해?" 같은 식의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학창시절에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제대로 제가 이해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고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읽었었을때와 지금 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을때와 가장 다른점...
그게 바로 해석과 주석이었습니다.
제가 읽은 학창시절(20년도 더 전에) 의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떻게 보면 예전 중역 (외국 서적을 직접 번역한게 아니라 영어 , 일본어등 문화적으로 한번 타국에서 번역과 해석을 거친것을 다시금 우리말로 재 번역하는 것)을 거친 책입니다.
사실상 그시절 책들이 그런게 적지 않았죠.
한자 표기가 일본에서나 쓰는 한자나 일본식 어휘로 번역된 책들 적지 않았고
영어권 문화가 아닌 서적을 영어로 번역한 책을 다시 번역하다 보니 껄끄러운 느낌이 나중에야 (학창시절에는 몰랐으니까) 드는걸 알았죠.
왜 삼장법사.. 경장, 논장, 율장.. 이 세가지 불경에 정통한 삼장법사가 불경을 얻고자 천축(인도)으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데리고 갔을까요?
인도의 언어를 중국식 한자로 재 해석한 불경이 아닌 보다 원문에 가까운 불경을 접해보고자 했던겁니다.
논어는 어떻습니까?
금고문 논쟁때부터 네가 맞다 내가 틀리다 해가면서 수많은 세월을 거쳐 주소(주해본과 그 주해본을 또 해석한 소통본)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학작품에 있는 내용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냐 모르냐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
![]()
![]()
![]()
![]()
![]()
![]()
![]()
![]()
거짓말 안보태고 어 조금 막히네 어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생각이 날때 책 하단부를 보면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지없이 주석이 달려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읽었던 책들이 과연 이런식으로 주석과 해석이 친절했느냐?
전 절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 책읽으라고 재잘대던 586 세대들은 오히려 중역에 제대로된 주소 없는 그런 막힌책을 가지고 의문조차 품지 않은 그런 세대들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지금의
젊은 학자와 젊은 번역가분들이 당시보다 더 열정적이고 더 세심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여 이런 결과물이 나왔고.. 우리가 이제는 고전을 읽을때 더이상의 의문점 없이 그리고 읽는 독자가 뭘 모르는지 조차 모를때.. 사실은 네가 이걸 모르고 있는거다. 라고 짚어주면서 고전을 해석해 줍니다.
앞서도 말했듯.. 불경에 정통해서 삼장이란 법호까지 얻었는데도 해석이 이해가 안된다 하여 인도의 말을 배워 인도의 불경을 가지고 공부해보겠다는 현장
유생 초입의 학자도 달달외는 누구나 아는 논어에 대해서.. 수천년간 주소가 끊이지 않았고 좀더 이해하기 쉽게 해석을 달기 위해 노력한 학자들...
그러한 결실이 이 책에도 모범을 보이니 저로서는 그리고 제 아이를 보면서
고전을 읽히기에 부끄럽지도 어렵지도 않은 시대가 된것을 알고 몹시 흐뭇해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도서출판 "더디"애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부끄럽게도, 이렇게 유명한 작품을
이제서야 제대로 읽어봅니다^^;;
베르테르라는 실존 인물이 있는 것처럼 시작해서
그의 흔적을 찾고, 그가 쓴 편지를 모아서
제3의 작가의 시선으로 엮은 형태예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아.. 그래서, 노랫말에 베르테르의 '편지'가 나왔던거군요^^;;;
친구인 '빌헬름'에게 자주 편지를 보냅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엔 전화가 없으니
편지에 자신의 감정과 신변잡기들을
아주 자세하게 쓰는 게 일반적이었나봐요.
그저 자연이 주는 포근함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한가로이 타지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아름다운 여인 로테를 만나게 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사랑은 이뤄질 수 없어요.
로테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거든요.
운명은 어찌나 가혹한 지, 그 약혼자는
지적이고 인품도 훌륭한 사람이었죠.
하지만,,,그 어떤 조건도
베르테르의 마음을 억누르지는 못해요.
수많은 꽃이 피었다가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 중 적은 수의 꽃만 열매를 맺으며,
그 중 적은 수의 열매만 충실히 익어간다.
그 적은 수의 열매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하다
베르테르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니, 그런데 로테와 남편인 알베르트는
매일 같이 만나서 얘기하고 식사하고 우정을 나누었으면서
이렇게 아파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몰랐던건가요?
어떻게 이렇게도 잔인할 수가 있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베르테르의 편지 챕터 말고, 작가가 적은 글을 보니
로테도 남편도 알고 있었어요. 암묵적으로 서로 말을 하지 않았던거예요.
어느새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에, 베르테르가 없어진다면 큰 구멍이 생길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욕심이 많아서 둘 다 놓치지 않고 싶어하는 마음... 이해는 됩니다 ㅠ.ㅠ
베르테르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아니, 그 고통에서 영원히 자유로워지기 위해
로테에게 편지를 남기고
그 선택을 했습니다.
괴테 자신의 경험과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은
'한번이라도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각박하고 사랑도 조건을 따지는 요즘 시대,
베르테르의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으로
치유되고 풍성해지길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