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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님은 존경하는 위인 설문조사에 매년 랭킹 3위안에 들어간다고 한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제외하고 현대 인물로는 단연 으뜸이다! 호감가는 인물, 본받고 싶은 인물, 자랑스런 인물에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뜻일게다. 참 잘 사셨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백범 김구 선생님은 어쩌면 그렇게 멋진 삶을 사셨을까?
원래 이름은 김창수. 혈기 가득한 약관의 나이에 일본인을 죽이고 감옥에 수감되고 즉결처형을 간신히 넘기고 수형 생활을 하던 중 탈옥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지고, 황해도 일대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을 고통을 넘긴다. 형기를 채우고 나라 잃은 비운을 가슴에 간직한 채 중국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인 그는 독립된 나라에서 문지기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이름을 '백범'으로 바꾼다. 백정과 같이 나는 평범한 사람을 섬기겠다! 라는 뜻이다.
일본 패망 후 일반인의 자격으로 어렵게 고국에 돌아온 백범은 사망 직전까지 광폭 횡보를 이어간다. 『백범의 길: 조국의 산하를 걷다- 서울경기인천편』은 1945~1949년까지 일흔의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조국을 돌아다닌 백범의 발자취를 담아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포병 소위였던 안두희로부터 저격을 당한 그날은 남대문교회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준비하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집을 잃고 중국만주 등지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일에도 발벗고 나섰다. 거금 9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마땅히 자선단체가 없었던 시절, 백범은 교회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쳤다. 백범의 교회에 대한 신뢰가 남달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가장 가슴 아프게 여겼던 사람 중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한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였다고 한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시신도 고국의 품으로 가지고 오게 했다.)
국가를 세우는 일에 교육이 중요함을 알고 대학을 세우는 일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백범의 노력으로 세워진 대학이 현재 국민대학교, 홍익대학교, 단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라고 한다. 백범의 정신을 잘 간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영원하길 소망해 본다.
정치인 백범은 정치적 노선이 다른 이들과도 만남을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소통하는 정치인이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만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정치생명에 걸림돌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38선을 넘어 김일성을 만났다. 결국 미군정청으로부터 등돌림을 당했지만 분단될 조국의 미래를 일치감치 예상하고 큰 위험을 감수했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백범을 거울삼아 자신을 뒤돌아 보며 시민을 섬기는 종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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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그는 누구인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요 인사 중 하나로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반탁운동에 힘을 쓰다가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총에 맞아 사망한 비운의 사나이다. 한국근현대사에서 빠질수 없는 인물이며, 세월이 흘러 점점 잊혀져가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이 서평은 북이십일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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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백범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 서울 경기 인천 편
백범의 길 은 김구라는 한 인생의 역정을 더듬어 감으로써 사람 냄새나는 그의 모습을 젊은이들에게 보여 주고자 마련된 전기이자 답사기이다 또한 김구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 전국 각지를 필자들이 몸소 찾아보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모아 그의 인생을 다시 구성했다 목차에서 보이듯 김구 선생의 걸었던 길은 하나하나 풀어 놓고 있다 이렇게 장소에 주목한 것은 역사가에게 현장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의 발자취에는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 서울,경기,인천편이라 주위를 둘러보면 접할 수 있다 나는 역사에 대해 소홀한 면은 있었다 후손 대대로 선조 조상들의 업적을 기억하고 후손에게 전달하는 것이 우리들의 해야 할 행동인 것 같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에 힘쓰신 백범 김구 선생 과거로 돌아가 그 길을 걷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