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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어 인디언,,,캐나다 그레이트베어 호수 북서쭉에 사는 캐나다 원주민을 말한다 카우초틴이라고도하며 위대한 토끼 부족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북극토끼를 주식으로 먹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21세기 초 인구 조사에 따르면 해어 인디언 후손은 약 1,000명 정도라고 한다
"가르친다,배운다"는 행위가 각 문화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인간사회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다 해어 인디언을 알게 되면서 배운다는 행위는 인류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가르친다,배운다는 행위는 절대보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르친다, 배운다는 행위가 지나쳐, 성장하는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들의 배운다는 태도까지 짓누르는 경향마저 보인다. 고도로 분업화된 현대사횡에서 가르친다, 배운다 는 행위를 없앤다면 아마 그사회는 서서히 붕괴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운다 는 행위는 짓눌리면 어떻게 될까? 해어 인디언 사회를 조사하며 겪었던 경험과 만났던 놀라운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자 북극에 가까운 캐나다 북서부의 타이가 숲속에는 해어 인디언이라는 수렵채집 부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무스(말코손바닥사슴), 카리부(야생순록) 같은 동물들을 사냥하고 강과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 살아간다
해어 인디언 어른들은 아이에게 위험하다고 가르치기보다 아이가 하루빨리 칼을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칼 다음은 도끼, 도끼 다음은 콥, 이렇게 차례차레 날붙이에 익숙해진다 해어인디언 아이들의 세계에서 자르기와 쪼개기는 만들기와 이어져 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능숙하게 자르고 능숙하게 쪼갤 줄 알아야 한다 일곱살쯤 된 아이가 혼자서 통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쪼개고 칼로 깎아 카누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것은 부모나 다른 어들들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라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아이들은 놀랄 만큼 폭넓은 재능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 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곤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가 타고난 가능성을 특정방향으로 뻗어나가게 해주는 일인 동시에 또 다른 가능성을 억누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카르타 아슬리 사회는 그들이 믿는 이슬람교에 따르면 아버지가 가족의 생게를 책임져야 하므로 자녀가 식비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게 그들의 논리 가족 사이의 관계가 권리와 의무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아이는 자기가 번 돈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면 대개 독립을 한다 그리고 아이가 제법 부자가 되더라도 경제력이 없어진 아버지는 어머니와 여전히 가난하게 사는 경우도 많고 이들 사회에서는 가족은 운명공동체가 아니다 그들은 "가족이 서로 도와 고난을 이겨내고 운명을 개척한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운명은 알라신의 뜻에 따라 저마다 다르므로 가족이 힘을 모은다 해도 아무 소용 없다고 생각하낟 해어인디언은 사람마다 수호령이 깃들어있고 수호령과 의논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설사 부모나 형제라 해도 개인의 생활에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카프타 아슬리는 해어 인디언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간은 혼자 살아간다"고 생각하낟 자카르타 아술리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거나 조언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각자의 책임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다른 개인의 세계를 침범하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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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어 인디언의 교육이 궁금하네요. 해어 인디언 아이들이 무언가를 익히는 방식은 ‘스스로 관찰하고, 해 보고, 수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이가 원하기 전에 부모가 알아서 하나하나 다 해줄려고 하는 우리의 방식과는 너무 다르네요, 아이들의 교육방식들을 알아가보고 싶어집니다. 북극에 가까운 캐나다 북서부의 타이가 숲속에는 '해어 인디언'이라는 수렵채집 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스, 카리부 같은 동물들을 사냥하고 강과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갑니다. 해어 인디언 어른들은 아이에게 위험하다고 가르치기보다 아이가 하루빨리 칼을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칼 다음은 도끼, 도끼 다음은 톱, 이렇게 차례차례 날붙이에 익숙해집니다. 더욱이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부모나 다른 어른들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해어 인디언은 어릴 때부터 극단적일 만큼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린아이조차도 자신이 정신만 바짝 차리면 큰일을 당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치죠,, 그리고 아이들의 신체를 보호하는 주도권도 부모가 갖습니다. '가르친다, 배운다'는 개념이 없는 해어 인디언이 무언가를 익히는 방식은 '스스로 관찰하고, 해 보고, 수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아이들 또한 '잘 보고', '스스로 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 시간 동안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져야 하구요,, 해어 인디언의 문화를 통해서 우리의 삶도 되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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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류학자가 바라본 부모와 아이 사이는 과연 어떨까?' 그리고 '해어 인디언은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두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인 문화 인류학자 하라 히로코는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교양학부를 졸업했다.
문화인류학 전공자답게 캐나다와 자카르타 등 현지 사회 속에 들어가 다양한 문화와 삶의 방식을 연구하였다. 이 책의 목차에도 나와있지만 다양한 나라의 현지 사회 속에서 직접 생활하며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소개되는데,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일정한 교육과정 속에서 교육이 체계적인 단계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해어 인디언들을 비롯해 아직도 많은 사회에서는 이러한 교육이 없다. 그건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해어 인디언들은 '가르친다'와 '배운다'라는 말이 없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다. 어찌 되었든, 현대인이라고 해야 하나- (편을 가르는 건 아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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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어인디언은 캐나다 그레이트베어 호수 북서족에 사는 원주민을 말한다. 위대한 토끼부족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북극토끼를 주식으로 먹고 가죽으로 못을 만들어 입는다. 그들의 후손을 약 1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작가는 문화인류학자로 현지사회 속에 들어가 현장조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한다. 11개월 동안 그들과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을 소개하고 있다. 해어 인디언 문화에는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그들에게 무언가를 익힌다는 것은 스스로 관찰하고 해 보고 수정하는 것이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여섯 살때 톱질을 할 수 있고 일곱 살 아이들은 혼자서 통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도끼도 쪼갤 수 있다. 열 살 전후 사내아이들은 토끼잡이 덫을 놓기도 한다. 열살 쯤 되면 작은 상처 정도 스스로 응급처치 할 수 있다. 학원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 작가는 아이들이 너무 위험한 일을 한다고 놀라는 일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절대 헤엄치지 않는다고 한다. 깊은 물에 들어가면 물 속 괴물이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 간다고 생가가기 때문이다. 아무도 헤엄칠 줄 모르는 그들. 카누가 뒤집히면 그냥 죽게 된다. 그들 문화 속에는 '헤엄'이 없다. 생존 수영을 배우기 위해 몇 년씩 수영을 배우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 몸과 사귀는 법을 배운다. 겨울에 영하 50도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그 추위를 견뎌야 한다. 너무 몸이 얼어붙어 금방 따뜻해지지 않을 때 고통을 참아내고, 야외에서 불을 피워 몸을 따뜻하게 데우는 과정과 굶주림을 통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것들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알게 되는지.... 현대인들은 대부분을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의학의 기술을 통해 복하려고 노력한다. 해어 인들언들은 이제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죽는게 일반적인 형태의 죽음이다. 개인 안에 깃든 수호령을 통해 죽음이 다가 왔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죽는구나 생각하면 머지 않아 죽는다. 안타까운 것은 작은 질병에도 쉽게 삶이 의욕을 잃고 집착을 버린다. 경미한 화상이나 폐렴에도 허무하게 삶을 놓아버린다고 한다. 우리와 너무나 다른 자연환경과 문화, 사고 방식이 낯설기만 했다. 안타깝기도 한 부분도 있고 부러운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을 모두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참 흥미로운 일이다. 오늘은 문화인류학자가 참 부러운 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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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화 인류학자인 저자가 캐나다 북쪽 수렵채집부족인 해어족의 사회문화뿐 아니라 여러 지역의 독특한 부족들의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여러 모습들을 보여준다.
인상적인 글
가르친다, 배운다는 개념이 없는 해어 인디언이 무언가를 익히는
방식은 ‘스스로 관찰하고, 해보고, 수정하는 것이다.
‘가르친다, 배운다’라는 개념이 없는 해어 부족 문화 저면에는 ‘인간은 인간에게 지시하거나
명령할 수 없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스스로 익힌다’는
자신감에 찬 모습, 생기 넘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주체적으로 주위 세계와 만나고 스스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즐거움을 아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본문 170쪽
감상
이 책은 배움에 대한 방법과 육아법이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어떤 문화와 사회에 속해있는지, 그리고
아이들에 따라 관심이나 흥미가 다르고 폭발적으로 흡수하는 시기도 다르다. 그래서 자녀를 성공시킨 부모의
사례에 감동받는다고 해서 나와 내 자녀가 모방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로 해보면 부모인 나의 한계와 서로 다른 아이들로 인해 배운 대로 할 수 없음을. 같은
부모 밑의 아이들도 다 다르다. 아이의 미래를 돕기 위해 공부노동을 시키고 아이의 재능을 찾아주기 위해
지나치게 아이가 아닌 외부 기관에 의존하고 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 큰 아이는 손그림과 자신이 콘티를 짜서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즐긴다.
1분짜리 동영상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반복해서 그림을 그리고 편집하고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수없이 지우고 다시 그리는 지루한 과정을 아이는 전혀 힘들지 않게 해서 가끔 물어보면
짧은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수 십장의 그림을 그리는 일은 때론 고통스럽지만 완성되는 과정이 너무도 즐겁다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한다.
내가 개입했던 영어나 수학에선 그런 즐거움을 느끼지를
못했으며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를 다그쳐서 오히려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과목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림은 내가 개입하지
않았고 별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아이의 작품을 소중히 하고 벽에 걸어주고 좋은 그리기
도구를 사주며 디지털로 그릴 수 있는 휴대폰을 사주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허용해주며 양질의 만화책을 볼 수 있도록 도운 정도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을까? 개입해서 아이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기에 아이는 비교적 부모의 기대 없이 자유롭게 그릴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기 내면의 아이디어를 기획해서 도구를 스스로 익혀 표현하며 그런 제작과정을
즐기고 작품으로 결과물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일이야 말로 창조적인 과정이며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아이가 예술가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아이는 학원으로 배운 것이 아닌 스스로 유투브나 책을 찾아서 익힌 것이며 내가 봐도 꽤 잘 그린다. 만일 아이의 재능을 살린다며 학원을 보내고 아이의 작품을 평가했다면 아이는 이런 창작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의 재능을 살려준다면서 그 동안 아이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었는데 해어 부족의 아이들이 배우는 과정은 우리 아이가 진짜 스스로 배우는 과정과 유사해서 깜짝 놀랐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면서 기다림은 부모가 성숙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나 역시 내가 개입하지 않은 부분에서 아이의 작은 성취를 발견했기에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해어 아이들의 삶을 우리 문명의 삶에 적용하기엔 많은 무리가 있고 해어 부족의 모든 문화를 수긍하기는 힘들지만 해어부족의 삶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양육과 배움,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어떤 통찰력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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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을 보면 어린 아이가 트렉터나 경운기를 손수 운전하는 것을 비출 때가 있다. 다른 기계와 달리 농기계는 타인에게 위험하진 않지만 그것이 가지는 차체 무게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면, 농기계는 어린 아이들도 직접 운전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보자면 아이들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아이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보편적인 생각이 나타난다. 아이는 고개를 돌리면 위험한 행동을 하고, 통제되고 관리해고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해어인디언들의 삶을 모습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관, 문화에서 벗어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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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부모와 아이 사이 -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이 책을 읽으며 해어 인디언이 캐나다 그레이트베어 호수 북서쪽에 사는 캐나다 원주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우초틴이라고도 하며, 위대한 토끼부족을 뜻한다. 21세기 초 인구조사에 따르면 해어 인디언의 후손은 약 1,000명 정도! 스스로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들! 해어 인디언의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섯 살 무렵이 되면 도끼 쓰는 법과 장작 쪼개는 법을 스스로 익힌다. ![]() ![]() ] 해어 인디언 사회는 '배움'에 관련해서 '스스로 익히는 것'을 강조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자신의 방식대로 배움에 다가가는 게 인상 깊었다. 스스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즐거움을 아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성장하는 해아 인디언들! 배울점이 참 많았다. ![]() 목차 프롤로그_ ‘가르친다, 배운다’는 의미
- 예스24 제공 - ![]() ![]() ![]()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가 타고난 가능성을 특정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해주는 일인 동시에 또 다른 가능성을 억누르는 일" 해어 인디언 사회에서는 한 아이, 한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많다. ![]() ![]() 우리나라에 부모들 중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아이가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강해서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하지만 해아 인디언 부모는 아이가 하는 행동과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모습이 사뭇 달라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해어 인디언들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지 않나 싶다. ![]() ![]()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기 때문에 과잉 보호(?)를 많이 하지 않나 싶다. 자기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많지만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주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만 집중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생각을 해 봤다. ![]() ![]() 요즘처럼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닐 수 없다. 주변에서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될지 갈팡질팡하고 확신이 없어서 '공부가 답'이라고 믿는 주변 분위기도 많다. 아이를 부모의 틀에 가두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인생이 더욱 풍부해지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주고 어른들이 그 시간 동안 기다려주는 여유를 갖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 ![]() 세계 여러 부족들의 독특한 풍습과 육아법 부모 자식 간의 관계, 가족 관계, 놀이의 역할, 부모의 역할 등을 보며 아이들이 자립심 강하고, 자신만만하게 커가는 자유로운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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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만큼 예측 불허의 생명체가 지구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있어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은 저에게 무척 관심도가 높은 분야였는데
현지 사회 속에 들어가서 현장 조사를 통해서 얻은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되는 그들의 기록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어요.
특히나 육아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저의 시간 속에서 한울림 출판사의 신간도서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책은 지금까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부모와 아이 사이를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더라구요.
물론 어느 정도의 대부분 인류들의 부모와 자식 사이의 모습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부분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해어 인디언 사회는 보편적인 부분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존재했어요.
물론 어느 정도의 대부분 인류들의 부모와 자식 사이의 모습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부분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해어 인디언 사회는 보편적인 부분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존재했어요.
북극에 가까운 캐나다 북서부의 타이가 숲속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
부족 해어 인디언들은 강과 호수에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간다고 하는데 이 책의
소개를 보기 전까지는 이런 인디언 종족이 존재하는지도 저는 알지 못했어요.
이 도서의 저자인 문화인류학자 하라 히로코님과 똑같이 저도 해어 인디언
아이들의 일상 생활을 보고 크게 놀랐는데 그녀는 그들을 놀라운 애들이라고 평가했고
저에게는 아이들을 위험에 어느 정도 노출하면서 불이든 칼이든 도끼든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숙지한 놀라운 부모들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칼 도끼 톱 이렇게 순차적으로 날붙이에 익숙해지도록
관찰하고 다룰 수 있도록 허용하여 도와주는 역할이 부모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이미 어린 아기때부터 생존을 위한 교육을 시작되고 있더라구요.
연장자나 부모가 가르쳐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었고 살아 나가고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점을
아이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독립심을 갖고 있어서 놀라웠답니다.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해어 인디언 아이들의 세상과 문화는 현대의 문명이
발달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저에게 있어 아이들이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던
모든 주도권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강제로 박탈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 책을 읽고 난 후 정말 놀라운 변화는 저같이 안전염려증이라고 할 정도로 걱정이
많은 제가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하는 일은 위험하더라도 관찰을 한계로 두고
허용하고 해보도록 허용하고 최대한 가르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예요.
제가 해어 인디언 사회에서 배운 것은 바로 양융태도 중에서 즐거움이었어요.
항상 육아가 예측불허에 어렵다고만 전 느꼈는데 그들은 진정으로 내가 낳은
아이라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아이의 교육 자체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로의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의 즐거움에 집중하더군요.
결국 아이의 성장은 스스로 익히는 것이고 부모는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여
소중한 아이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의 육아 방법을 만나게 된 것이
이 책에서 제가 느낀 새로운 신세계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사회 문화적인
배경이 전혀 다른 해어 인디언 아이들처럼 우리 애들을 키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좋은 장점과 양육 태도에서 현명한 강점을 기억하고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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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문화인류학자라 바라본 부모와 아이 사이 싸움에 대처하는 자세. 자카르타 뒷골목 투베드 지역에는 "오랑 자바"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오랑 자바 어른들은 아이들이 싸움을 벌이면 곧바로 각가 방에 가두거나 떨어트려 놓는다고 합니다. 주먹질을 해서 서로 다치거나 해서 그런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싸움이라는 거친 행위는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을 할때도 차분하게 대화며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육아는 즐거운 놀이 해어 인디언은 일과 놀이와 휴식을 구별한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과 놀이,휴식 요렇게 나누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놀이도 휴식의 일부라고 생각을. 해어 인디언 사람들에게 일이란 사냥하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땔나무를 줍는 활동 놀이는 같은 야영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잡담을 하거나 포커를 치는 활동 그리고 그 일과 놀이 사이에 휴식을 취한다고 합니다. 휴식은 말 그래도 쉴휴 인듯 합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곳에 사는 사람들 보며 우리는 너무 아이들을 감싸기만 하고 하나의 독립체로 생각하지 않은체 나의 소유물로만 여기면 살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을 보면 어릴때부터 직접 해보게 함으로써 어떤것이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능력을 깨닫고 내가 무얼 잘하고 못 하는지도 판단하는거 같습니다. 허나 우리는~ 어릴때부터 독립된 인격체라기 보다는 부모에게 속해있는 소유물로 보고, 먼저 나서서 차단할껀 차단하거나 위험한건 미리미리 없애거나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되도록이면 아이도 자유로은 인격체이니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터득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부모는 답답하겠지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면 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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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배타성이 눈에 띄게 늘어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다. 지역주의가 조금씩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요즘은 성별을 갈라 싸운다. 자신의 좁은 편견을 충족시키는 사례를 발견하면 "역시"를 외치며 의기양양해지기도 한다. 숱한 반대의 사례에는 눈길을 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편견과 증오를 몸으로 학습하며 자란 이들이 앞으로 만들어낼 또 다른 배타성의 가능성이다. 이해와 타협과 수용이 아닌,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라면, 나는 결국 생기를 잃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