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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급자족한다』의 주인공 카프카가 던진 질문의 답부터 먼저 한다. 나는 리뷰를 자급자족한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긴다. 종이책을 모으다가 공간이 남아나질 않아 처분한 뒤로는 전자책을 모은다. 책을 모으는 건 자급자족이 아니다. 읽고 간단한 감상이라도 남긴다. 그게 전부다. 내 생활의 자급자족은. 카프카 님처럼 텃밭을 일구지도 않고 이야기를 만들지도 않는다. 숨의 양을 조절해서 생명 유지를 해야 하는 코는 간신히 호흡을 하고 매일 누워서 책을 읽다가 허리가 안 좋아졌다. 몸은 그저 몸뚱이에 불과하다. 보편적인 미인도 아니어서 얼굴로 먹고살지도 못한다. 피해 망상은 심한 편이어서 자주 불안에 시달린다. 이 정도 쓸모없는 인간도 살아간다. 버스에 올라 멍하게 있다가도 하차 벨을 정확하게 누를 줄 안다.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불성실하게 지낸다. 오한기의 장편 소설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읽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 CIA, 국정원, 수제 총, 보고서, 암호명이 나오니까 스파이 소설의 외피를 감싸고 있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건 삼십 대 가장이 먹고살기 위해 노력하다가 사람을 잘못 만나 재수 없는 일로 엮인 취업 호러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세계는 무한 경쟁 시대에 신자유주의로 살기는 더욱 각박해지고 이곳저곳에서 테러는 일어나고 그와 상관없이도 내 삶은 한 발자국 나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체 나이 삼십 언저리의 사람들이 결혼하면서 내 집을 마련하고 혼수는 최고급으로 해가면서 슬쩍 슬쩍 집 사진을 찍어 올리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냔 말인가. 아파트는 무섭게 층수를 올려가며 공사 중인데 매물이 없어 서울 밖으로 밖으로 나오는 청춘들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자급자족한다』의 주인공 카프카는(스파이 코드명이다) 글을 쓴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덜컥 대상을 받았고 그 길로 유명해졌냐 하면 그건 아니고 자서전 대필의 길로 뛰어들었다. 성폭행 혐의를 받는 연예인의 인생을 각색해서 써주었다. 대박이 났다. 물들어 올 때 노 젓는다고 결혼도 했다. 카프카의 부인은 해인. 대기업에 다녔다. 다니다가 회사 우울증에 걸려 퇴직했다. 처음에는 퇴직금을 까먹으며 좋은 나날이었다. 곧 현실이 닥쳤다. 줄어드는 통장의 잔고. 해인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미니멀리즘. 욕심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버리는 것. 물건을 버리고 줄이고 급기야 카프카의 책까지 버린다. 카프카는 매일 오전이면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아내가 왜 그러는지 짐작이 간다. 자신 때문이다. 되지도 않는 소설을 쓴다고 매일 카페에 가서 죽을 치고 있으니 없던 우울증도 올만하다. 카프카는 온갖 곳에 이력서를 보낸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이야기 짓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자기소개서와 함께. 그전까지 그는 보수정당이나 재벌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썼다. 원고지 매 수 당 돈을 받았다. 그대로 생활은 풀리지 않았다. 마구잡이식으로 자기소개서를 보냈는데 연락이 왔다. 짐작하겠지만 CIA에서. 자신을 미아 모닝 스타라고 소개하는 코드명은 붉은 카멜레온이라는 여자에게서. CIA 한국지부 비밀공작처장인 미아와 그는 반 테러 단체라고 불리는 자급자족단을 해체할 임무를 맡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능력, 스토리텔링의 진가를 발휘한다. 이야기를 해체하고 새롭게 꾸며내는 일로 자급자족단을 없애버릴 수 있을까. 헬조선에서 살아남는 일은 이제 자급자족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결혼을 하며 내 집 장만하기는 우주에서 외계인을 만나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일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일을 열심히 하려면 빚이 있어야 한다는 농담을 듣고도 웃지 못하는 세대. 도시에서 비어 있는 땅이라고 텃밭을 일구었는데 알고 보니 집주인의 땅이었고 상추, 오이 좀 심었다고 고소를 하는 더럽고 치사한 세상. 청춘들의 어깨는 무겁다 못해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다. 카프카는 꼬여 있는 일을 마무리하고 해인과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불안, 망상을 자급자족한다. 대출금을 갚다가 쓰러질 인생이여. 빚으로 시작해서 빚으로 끝나는 빛 볼일 없는 청년들 에게 바치는 소설 오한기의 『나는 자급자족한다』는 스파이 소설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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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소설을 씁니다. 진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여 있는 이야기, 과연 그 속에 진실은 얼만큼일까요? <나는 자급자족 한다>의 주인공 역시 서른네 살의 소설가입니다. 그가 겪었던 일들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시작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지금 시각은 2018년 3월 3일 오전 열 시 49분. 나는 집에서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10p) ".... 뭐니 뭐니 해도 이 글의 최우선 목적은 경고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2017년 봄부터 지금까지 서울, 아니 한반도, 아니 전 세계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장담하건대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당신 곁에서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게 당신이나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목을 옥죄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조심하시길 " (9p) 한낱 프리랜서 작가였던 그가 CIA 요원 미아 모닝스타를 만난 건 2017년 4월 중순입니다. 그녀는 CIA 한국지부 비밀공작처장으로 코드명 붉은 카멜레온입니다. 제법 큰 돈의 보수를 제시하며 모니터링 요원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밀이라면서. 다만 앞으로 할 일은 세계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한 업무니까 마음 놓고 투신해도 된다고. 그리하여 CIA는 소설가를 고용했고, 소설가는 특이한 창작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CIA가 소설가를 고용했다는 점입니다. 왜? 무엇때문에? 그들은 진실을 가공해내는 소설가의 창작 능력을 이용해서 적으로 규정한 자급자족단을 와해시키고자 했던 것.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이 소설을 그냥 허무맹랑한 소설로 치부했겠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세월호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대부분의 첫 반응은 "설마~"였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고, 그 설마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물며 사회 비리를 고발한 영화들이 현실을 이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안타까운 건 소설가의 아내가 자급자족단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단체에서 활동함으로써 소설가의 갈등상황은 최고조에 이릅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를 돌이켜보자면 전조는 있었습니다. 아내가 가입한 미니멀리즘 동호회에 쓴 게시글 - 배우자를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을 보려고 클릭했다가 회원 가입까지 하게 됩니다. 그때 가입 절차상 질문은 - 최근에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 이에 대한 답변은 "양심, 꿈, 목표, 자존심, 걸작을 쓰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소설가는 자급자족과 미니멀리즘을 경멸하는 조직에서 일하면서 정작 본인이 자급자족했다는 걸 깨닫는 모순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현실입니다. 과연 소설 속 현실과 우리 사는 현실은 얼만큼 다른 걸까요? 소설이 소설 같지 않아서 더 소름돋는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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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저의 『나는 자급자족한다』 를 읽고 우리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각자의 생활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본다. 내 자신이 생각여하에 의하든지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체험에 의한 모습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적절하게 적용하여 나름대로의 생활을 행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러할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행해온 것 못지않게 평소 대해온 좋은 책들도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좋은 작가와 작품들을 생활하면서 대한다는 것도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해본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 등을 통해서 변해가는 시류에 빨리 적응하면서 나름대로의 원만한 가치관과 자세를 통해 당당하게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나름의 자세를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뜻깊은 좋은 소설책을 만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젊은 소설 작가 오한기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보통의 소설하고는 많이 다른 모습의 지금 시대 한국 문학의 가장 신선한 시도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등단하였고, 2015년 등단 3년 만에 첫 소설집 <의인법>을 펴냈다. 그리고 2016년 제 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동시에 첫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를 출간하였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소설 창작 과정을 노출하는 메타소설의 양식을 띠거나 자유롭고도 방대한 텍스트 인용과 차용, 각종 패러디가 종횡 무진한 '소설 이후의 소설'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의 대담한 시도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러한 모습들이 이번 두 번째 작품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문학평론가인 한영인은 한국 문학에서 가장 "적극적인 끈질긴 '소설가 소설' 발신처"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 만큼 이 작품은 많은 것을 우리 독자들에게 주리라 확신해본다. 우선 등장하는 인물들 모습과 시대적 배경 등이 특별하다. 마치 정신이 번쩍번쩍 왔다 갔다 하는 첩보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인 프란츠 카프카, 해인, CIA 요원, 자급자족단, 미아모닝스타, 천재해커 비비양, 볼셰비키(볼키), 훼밍웨이 요윈 등의 인물들의 이름도 특별나다. '프란츠 카프카'란 이름의 '나'로서 프리랜서 작가가 된다. 글이라면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게 된다. 진보 성향이지만 우파 댓글알바도 가리지 않는다. 결국 CIA요원까지 발탁이 된다. 스파이 활동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량생산에 끊임없이 소비하는 존재(아마도 노동자들)가 있어야 굴러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3.0 시대에 '자급 자족단'이야말로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최고의 사악한 무리 글로벌 캐피털리즘에 역행하며 시대정신을 저해하는 반체제 조직이다. 자급자족이라는 가치를 핑계 삼아 세계 주도권 탈취를 목표로 테러와 범죄를 자행하고 발전을 방해하며, 문명 및 문화유산 파괴, 좌파 정부/진보정당/독립지원국 지원, 시민사회 및 무정부주의 단체 설립 등으로 자본주의가 안정기에 접어든 현재 국가를 전복하고 국경을 해체하는 등 세계 질서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 SNS를 적극 이용,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강경하고 조속한 대응을 다루고 있다. '자급자족'과 '미니멀리즘'이 자본주의의 적?!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차라리 진실을 가공해내는 서술의 힘인 것이다. 이런 내용을 직접 책을 통해서 확인해보는 그래서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한 여름에 좋은 추억으로 되리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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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성공, 다짐, 나만의 철저한 관리와 노력으로 부를 이룰 수 있는 시대, 어떤 면에서는 지난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진보한 사회,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는 보편의 시대, 경쟁은 치열해지며 갖춰야 할 조건이나 덕목도 많아졌습니다. 편법은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고, 다양한 불법적인 경로로 부를 이루는 시대도 갔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준비와 관리,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까운 미래부터 장기적인 미래계획까지, 개인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과제입니다. 우리의 현실이나 민낯, 자본주의적 풍요의 양극화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최근 인생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는 미니멀라이프, 이를 추앙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비교,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비움, 미니멀 과정을 통해, 소유의 개념이 아닌 렌트나 공유의 개념으로 넘어가고 있는 경제, 이런 틈새시장이나 트렌드를 읽는 사업성이나 창업을 한다면 또 다른 성공이나 부를 이룰 수 있고, 현실적인 부의 계층이동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소수의 영리한 자, 미리 정보와 미디어, 캐릭터를 구축한 자에 한해서 이뤄지고 있고, 여기에 둔감한 사람이나 도태된 사람은 강제적인 미니멀리스타가 되곤 합니다. 죽도록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벽, 사람들이 말하는 수저계급롭이나 취업에 있어서 더욱 높아진 진입장벽, 그들만의 청탁이나 추천으로 이뤄지는 채용비리, 모든 악조건이나 사회문제에 대입할 수 있는 자급자족의 현실, 하지만 이를 소설적 기법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성장과정,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바라본 자본주의와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생각차이, 결국에는 어떤 종말적 결과로 맞이할 것인지, 미래에 대한 예측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미래로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역사는 번영하면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인간사가 그렇고 우리의 문명사, 문화사도 비슷한 기류로 흘러왔습니다. 특정 계급이나 국가, 민족, 지역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한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신자본주의라고 포장된 새로운 제도나 이념, 부의 분배나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젊을 수록, 느끼는 현실의 높은 벽, 이를 통해 더욱 심화되는 사람관계의 경계나 개인주의 성향의 강화, 경제가 주는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숨어있는 씁쓸한 현실, 하지만 이를 완벽히 대체하기란 어렵다는 현실의 모습, 자급자족의 개념, 미니멀라이프를 바라보는 현실적인 조명,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방향성으로 갈 것인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더 큰 문제와 사건으로 발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소설이 현실과 평행이론을 걷고 있는 나는 자급자족한다,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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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自給自足),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생산하여 충당한다는 의미를 역설적 할 수도 있지만 재미와 흥미를 이끌어 내는 소설로서의 채용이라면 그리고 있다면 매우 긍정적인 역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있는 책은 아니다. 우리 사는 세상사가 바로 요지경속이고, 소설의 확장판과 같은 모습을 갖고 그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듯 보이는데.... 있고 왜 아내는 위험에 빠졌을지를 고민하는 나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데.... 은근 슬쩍 눈여겨 보게되듯 자꾸 마음에 그려져 또다른 작품에 대한 갈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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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급자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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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급자족한다. 오한기 저자는 1985년에 태어난 소설가입니다. 2016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해네요. 기대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자급자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닙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을 예상했지만 전혀 다른 첩보물이지요. 주인공은 서른네 살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작가로서 아주 잘나가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엉겁결에 CIA 요원으로 발탁됩니다. 미아라고 하는 CIA의 전설적 인물이 ‘당신이 먼저 연락했잖아요’라고 하며 뽑았죠. 주인공은 아내 해인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결국 아내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CIA가 뽑은 최고의 적으로 만들죠. CIA는 자급자족단이라고 하는 반체제 단체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 해인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를 소박하게나마 해결해보려고 하죠. CIA는 해인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도 자급자족단이라고 승격시켜 해인을 죽이려 합니다. 지나친 억측으로 아무나 자급자족단이라고 하면서 납치·감금·살인까지 일삼는 미아를 배신합니다. 그리고 CIA의 타깃이었던 볼키와 한 편이 됩니다. 졸지에 CIA의 타깃이 된 세계적인 테러리스트 해인은 단순 미니멀리즘을 넘어 진짜 테러리스트가 됩니다. 대기업 총수를 납치해서 빌딩 옥상으로 올라가서 현금을 뿌리기도 하고, 그 빌딩에서 뛰어내리면서 낙하산을 펼쳐 유유히 경찰들을 따돌리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죽을 뻔한 상황에서 CIA 요원의 미간에 총알을 쏴서 제압하기도 하죠. 소설 내용이 좀 어렵습니다. 현실보다 더 개연성이 높고 사실적인 문학이 소설이잖아요? 그런데 저자는 일부러 개연성을 떨어뜨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이 우연히 미아에게 전화를 했는데 마침 미아도 그런 인물이 필요했다거나, 헤밍웨이라고 하는 CIA가 우연히 주인공이 소설을 쓰는 까페 지정석에 몇날 몇일을 앉게 된다는 식입니다. 소설의 결론도 ‘나는 자급자족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이글 곳곳에 나와 있다.’, ‘힌트, 그는 이 모든 걸 만들어낸 창조자다. 그는 자급자족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끔 영화를 보다보면 ‘에이, 저런 게 어딨어! 말도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어 몰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죠. 그 대단한 CIA가 해인이라고 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주부에게 하나 둘 쓰러지는 모습에 저도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평범한 주부거든요. ‘나’의 글쓰기가 핍진해지고 자연스러울수록 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흐려진다. 미아의 망상인 줄만 알았던 자급자족단이 CIA의 진짜 타깃이었다. 이 글은 유서다. 유언을 적은 글이라기보다 죽음을 각오하고 쓴 글이다. 이 글의 최우선 목적은 경고다. 전 세계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이런 대목에서나, “예측 말이에요. 좋은 첩보는 문학과 같아요. 탁월한 문학 작품은 미래를 예측한다죠. 인정할 건 인정하죠. 그들이 실제 했던 건 환경보호 운동 정도였어요.” “일부의 경우를 확대 해석하는 거 아닙니까? 추측과 예견만으로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범죄자로 모는 겁니까?” “인권이 뭐 대수인가요? 징후를 예측해서 안전을 꾀하고 범죄를 방지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미아와 주인공의 이 대사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소설가로서 자기 삶에 대한 자조적인 반성일까요? 저는 소설가의 자조적인 반성이라는 데에 한 표를 주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