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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픔을 잣는 누에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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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슬픔의 파파라치라네. 출근길 1 ##   당신으로 인해 단단해지거나 포기하게 되는 것들의 실체를 봤지요. 출근길, 돌멩이 사이에 핀 잡초, 잡초 사이에 핀 돌멩이들을 지나는 빗물에 다시 한 번 약속합니다. 결코 당신을 멀리 보내지 않겠다고. 들키고 싶지 않은 짙은 슬픔이 옷고름을 푸네요. 이른 아침, 맑은 공기마저 당신을 피해 가지 못하고 새까맣게 뭉쳐지는 계절.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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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슬픔의 파파라치라네. 출근길 1 ##

 

당신으로 인해 단단해지거나 포기하게 되는 것들의 실체를 봤지요. 출근길, 돌멩이 사이에 핀 잡초, 잡초 사이에 핀 돌멩이들을 지나는 빗물에 다시 한 번 약속합니다. 결코 당신을 멀리 보내지 않겠다고. 들키고 싶지 않은 짙은 슬픔이 옷고름을 푸네요. 이른 아침, 맑은 공기마저 당신을 피해 가지 못하고 새까맣게 뭉쳐지는 계절. 버스에 실려 가는 게 나인지 당신인지 모르겠는 초가을, 그렇잖아도 나는 울긋불긋 염색될 터였지요. 당신을 한번쯤 심하게, 자주, 독하게 만나본 이라면 떠올릴 법한 개성적인 당신의 지기들을 불러봅니다.

 

여전히 당신과 나를 위한 시가 흐르네요. 슬픔의 슬픔에 의한 슬픔을 위한 시가. 이 정도면 우리 행복하게 슬프지 아니한가요. 당신을 나에게 배달한 이가 있습니다. 황.인.숙. 그녀의 다른 이름은 슬픔, 역시 당신이랍니다. 당신을 알처럼 품고 산 그 여인을 나는 금세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외출을 할 때도 따라나서는 슬픔이

어느 결엔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내 방을 향하여 한발 한발 돌아갈 때

나는 그곳에서 슬픔이

방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슬픔이 나를 깨운다, 57쪽)

 

## 나는 슬픔을 잣는 누에라네. 출근길 2 ##

 

저 홀로 당신으로 물든 새를 봤지요. 무거운 몸을 낮게 내린 채, 구부정 거리는 모양새가 어쩐지 이상했습니다. 때마침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직장에 다다르자 당신은 슬그머니 몸을 숨기더군요. 나는 힘들지 않게 당신의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성격과 취향이 제각각인 당신의 자식들과 부비적 거리다 우린 곧 견고한 집도 장만하게 되었지요. 무기한 계약 연장이 가능한 그 집에서 우리는 언제까지고 행복하게, 지지고 볶기만 하면 되었지요. 참, 며칠 전 만장일치로 동거인 한 명 더 들이기로 했던 거 기억하죠? 황.인.숙. 시인인 그녀는 혈통적으로 우리와 동류였기에 우리 모두 그녀의 등장이 너무나 설레고 기뻤지요. 우린 슬픔수급자로서 부양가족이 많아, 이례적이자 최초로 다가올 추석위로금으로 가을까지 선물 받았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응집력이 좋은 우린 가을밤마다 울어 젖힐 만반의 준비가 된 거지요.

 

-햇빛이 오래 앉았다 간 자리

바람이 오래 만지작거린 하늘

새들이 날아간다

빈 하늘이 날아가버리지 못하게

매달아놓은 추처럼.(다시 가을, 60쪽)

 

## 그래도 가끔은 슬픔 다이어트. 출근길 3 ##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네요. 어슬렁어슬렁. 점점 비만해져가는 당신처럼. 나는 본디 당신의 짝으로 운명 지어진 고양이로서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곤 했습니다. 가르릉 가르릉. 연인을 가리지 않고 두려워하는 이도 없이 당신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매너를 갖추곤 했지요. 긴 그림자를 닮은 꼬리로 누군가의 문을 두드렸지요. 그게 내가 되었을 때, 나는 당신의 몇 번째의 몇 번째의 몇 번째 부인이 되어 당신 앞에 납작 엎드리곤 했지요. 쓸쓸함이 당신의 주식이었으므로, 나는 다른 쓸쓸함을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배부른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네요. 나는 지금 당신으로 배를 채우는 중입니다. 눈물이 길을 나서는군요. 얼른 길을 열어주어야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당신이여.

 

당신의 손끝이 내 등을 스치면

별들이 벌떼처럼 날아오르죠

당신의 손은 게을러요

당신의 손을 핥을 때

당신의 무릎에 턱을 비빌 때

떨어지는 몇 개의 별처럼

야아옹 서글피 당신을 부르는 걸

자, 그만. 하고는 마시지요

(중간생략)

별들이 반짝이는 건

몹시 흔들리기 때문이죠.(고양이, 74쪽)

 

## 내일은 또 내일의 당신이 떠오를 테니까. 퇴근길 ##

 

당신의 출퇴근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되었던 날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나이 들수록 당신의 매력에 걷잡을 수없이 빠져들었던 것만 생생하지요. 어둠을 바로세우는 당신의 능력을 압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처럼 내게 다가와 말 걸어준 유일한 당신. 아! 나는, 나는 그것이 나만이 가진 행운이 아님을 알아버렸습니다. 밤夜이 내립니다. 버스는 달립니다. 나도 달리죠. 당신에게로.

 

마루를 걸으면

삐걱이는 뼛속에서

철썩거리는 어둠.

방파제를 쌓듯

담요를 두른다.(가을밤, 79쪽)

 

...

그리고 마침표,

 

찍는 것이지요.

그리는 게 아니구요.

질질 끄는 게 아니어요.(마침표, 98쪽)

 

a*********9 2014.09.06.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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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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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 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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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 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리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슬픔은 가볍게 한숨지며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외출을 할 때도 따라나서는 슬픔이

  어느 결엔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내 방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돌아갈 때

  나는 그곳에서 슬픔이

  방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다 보면, 가슴이 꽉 막혀 몸 아래위가 따로 노는 경험을 하기 십상이다. 나를 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슬픔에 깊숙이 빠지다 보면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어느덧 사라져버린다. 슬픔이 나를 부린다. 우울증은 이런 상황 속에서 내 몸을, 내 마음을 지배한다. 슬픔의 맨얼굴과 대면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울증이라는 병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시인은 슬픔이 나를 깨운다.”라고 이야기한다. 매일 새벽 시인은 자신을 깨우러 오는 슬픔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슬픔이 시인을 깨우는 시간은 점점 빨라진다. 그만큼 시인은 슬픔에 물들어 있다. 소리 없이 다가온 슬픔은 깨어난 시인을 지켜보다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시인은 슬픔과 더불어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슬픔은 어제와 그제, 그끄제에 일어난 일들을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슬픔이 들려주는 말은 마음 깊숙한 장소에서 나온다. 듣고 싶지 않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나직하고 쉰 목소리로 슬픔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인은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소용없다. 울어야 속이 시원해지기라도 하듯 시인은 울음을 쉽게 그치지 못한다. 가벼운 한숨을 지며 슬픔이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시인에게 묻는다. 오늘은 무엇을 할 거냐고? 슬픔에 빠진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슬픔에 빠진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슬픔이라는 저수지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르겠어……라는 말만 중얼댈 뿐이다.

 

슬픔이 지나치면 멜랑콜리로 빠져든다. 슬픈 마음이 온몸에 깊은 상처를 낸다. 마음만 다친 게 아니라 몸까지 다쳤으니 제대로 일상을 영위할 수가 없다.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떠안고 있다. 상처가 곧 그 사람이 된다. 상처에 대한 애착에 빠지는 경우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은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지 않고 자기 마음에 묻는다. 죽은 사람은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다. ()는 죽은 사람을 마음 밖으로 내보내는 걸 한없이 두려워한다. 죽은 자(유령 혹은 증상이라고 해도 좋다)에 홀린 사람은 슬픔을 기꺼이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 묘한 존재이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연상하면 된다. 물고기는 자신이 물에 있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물고기와 물은 이미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이 곧 물고기의 일상이 되는 격이라고나 할까 

 

슬픔에 깊이 물든 이는 그래서 자기 마음 깊숙한 곳에 쇠말뚝을 박는다. 시인의 말마따나 슬픔이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주는 것도 슬픔이다. 슬픔이 없으면 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밥조차도 슬픔이 하는 걸 보면, 시인에게 슬픔은 생명을 잇는 동아줄인 것도 같다. 간혹 외출을 해도 슬픔은 어김없이 따라나선다. 간혹 슬픔이 눈에 띄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즈음이면 슬픔은 언제 사라진 적이 있느냐는 듯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을 증명한다. 시인은 날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친구를 만난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슬픔과 함께 있고, 잠을 자면서도 그녀는 슬픔과 함께 있다. 슬픔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면 다시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슬픔은 도대체 시인을 어디로 이끌려고 하는 것일까 

 

온몸이 슬픔인 시인이니 시작(詩作) 또한 당연히 슬픔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슬픔에 대한 시를 쓸 수 있는 것일까? 시인은 어찌 보면 시를 쓰는 순간만은 슬픔과 맨얼굴로 대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슬픔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맨얼굴로 슬픔과 대면한 시인이 시를 쓴다는 얘기다. 요컨대 시인은 시를 통해 슬픔과 맞서는 길을 찾고 있다. 어디를 가든 슬픔은 시인을 따라다닌다. 슬픔이 시인을 따라다니지 않았다면 시인은 더 이상 일상을 영위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슬픔의 힘이다. 슬픔에 깊숙이 빠짐으로써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는 역설을 시인은 실천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런 슬픔의 힘을 사용하려면 슬픔과 거리를 두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인은 슬픔의 힘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아직 슬픔과 거리를 확보하는 힘을 기르지는 못한 듯싶다. 슬픔이 나를 깨우는 상황이 그것을 입증한다.

 

 

 

o*****s 2019.08.2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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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시집-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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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을>   구름은 비를 쏟았다 날짜들이 흘러가고 사과나무는 여기저기 사과를 쏟고 마른 나뭇잎 속에서 늙은 거미는 연약하게 댕댕거린다   햇빛이 오래 앉았다 간 자리 바람이 오래 만지작거린 하늘   새들이 날아간다 빈 하늘이 날아가버리지 못하게 매달아놓은 추처럼    햇빛이 오래 앉았다간 자리라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 본다. 가을은 충만함으로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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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가을>

 

구름은 비를 쏟았다

날짜들이 흘러가고

사과나무는 여기저기 사과를 쏟고

마른 나뭇잎 속에서 늙은 거미는

연약하게 댕댕거린다

 

햇빛이 오래 앉았다 간 자리

바람이 오래 만지작거린 하늘

 

새들이 날아간다

빈 하늘이 날아가버리지 못하게

매달아놓은 추처럼

 

 햇빛이 오래 앉았다간 자리라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 본다.

가을은 충만함으로 가득한 계절일 수도 있지만,모든 것이 비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뜻한 가을햇살은 그렇게 마지막을 태우고,철새들처럼 떠나는 것이구나...

그래서 시인은 날아가는 가을을 붙잡아 둘 샘이었을까?

가을이 스산하고 허전했던 이유는,한해의 끝자락을 마감한다는 마음도 있었거니와

충만함에서 비워냄으로 가는 시간이여서 일수도 있겠구나...

 

<삶>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정호승시인의<밥값>이란 시를 읽으면서,밥값은 하며 살아가겠다 다짐을했다지...

어쩌면 덤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

삶이란 시가 내 자신의 거울처럼 다가왔다.

특히,힘겨운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신문을 통해 만나는 요즘은 더욱더 그렇다.

 

<비유에 바침>

나는 아직 무사히 쓸쓸하고

내 쓸쓸함도 무사하다네.

 

하루가 얼마나 짤막한지

알지 못했다면

단 하룬들

참지 못했으리.

 

배를 타려 하네.

깊은 독서 끝에

처박혀지는.

 

나는 아직 무사히 쓸쓸하고

왜냐하면 그게 그거인 그날,

그러나 비유는 다채롭기에.

 

 비유는 다채롭다는 말을,사람들의 생각은 다채롭기에 바꿔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친구에게 한참 푸념을 늘어 놓으니,친구 왈,자신은 이미 초연했다고 한다..

같은말도 내 감정이 어떠냐에 따라 달리 받아 들여지기도 한다는 것.

아니라고 하면서도,나는 사람들의 말에 많이도 민감했던 것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신이아니니까 라고 애써 항변에 보지만,알고 있다,그것은 억지라는 것을.

어쩄든 친구를 통해 한바탕 푸념을 늘어 놓고,황인숙시인의 시도 반복해서 읽고 있으려니,마음이 한결편해진다. 더불어 내가 옹졸했는지도 모른다는 마음까지 들었으니...'다양성인정하기'라고 말로만 떠들지 않겠다.이제는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황인숙시인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마도,서점가에 꽂혀 있는 시집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였을까?

사실,시집의 제목은,이미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시니까!

그렇게 구입한 시들은 내가 살아온 시간과 함께 묵은지처럼 익혀지고 익혀져서

어느날 짜잔 하고..내 감정으로 들어온다.

시에 대한 리뷰를 이렇게라도 쓸수 있는 것 또한 고맙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고 그냥 덮어버리기엔 아쉬우니까...

w*******i 2010.11.23.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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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나를 깨운다 -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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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나를 깨운다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 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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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나를 깨운다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 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 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리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슬픔은 가볍게 한숨지으며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외출할 때에도 따라나서는 슬픔이

어느 결엔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내 방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돌아갈 때

나는 그곳에서 슬픔이 방 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슬픔이 나를 깨운다』 황인숙. 문학과지성사. 1990년.)

 


얼마나 같이 지냈나.

빈 방에 슬픔이 있으니 고적하지는 않겠다.

좀 울면 어떠랴.

슬픈데.

슬프니 책을 읽고, 슬프니 굶기도 한다.

청소하고, 발을 씻고 나서도 슬퍼서 전화를 한다.

시인의 마음이 고와서 슬픔도 곱다.

방 안 가득 웅크린 슬픔이 온전하여 낯설지 않다.

 

1990년의 슬픔. 

20년이 흘렀다.

어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