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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이 다른 사람이 '동시대인'처럼 느껴지려면, 얼마나 깊이 그 사람에 빠져들어야 할까?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무시로 그 사람과 무수히 대화하고 그 사람의 성향과 사고 및 생활방식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려면, 얼마나 오래 그 사람에게 빠져들어야 할까?
특히, 그 사람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의 사람이라면? 너무 깊이 이 타인의 세계에 빠져들어보고 싶어 아예 그 사람이 살던 나라에 자리를 잡고선 그 사람의 궤적에 얽힌 장소들을 세세히 짚어보는 지경에 빠진다면? 죽은 이를 스토킹하는 것 같아 섬뜩한 인상을 풍기기도 하지만, 내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해 보고 싶은 미션이다. 이 다소 '제정신이 아닌' 미션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없지 않다. 리스본에 자리를 잡고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포르투갈의 작가를 강도 높게 파고든 사람(김한민)이 있고, 이런 부류의 흔하지 않은 결행이 과연 어떠한 형국으로 펼쳐지는지 궁금하여 <<페소아 × 김한민>>을 읽어본다.
책과의 인연은 참 오묘하며 알고 보면 '필연'이다. <<책들의 그림자>>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게 되었고, <<내성적인 여행자>>로 리스본이라는 도시 자체를 보고 싶어 하게 되었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내성적인 여행자>>에서 동시에 운운하는 <<불안의 서>>가 궁금해져 '폐소아'를 알게 되었고, 이 난해해 보이는 책을 바로 읽기가 부담스러운 차에, 이의 친절한 안내서로 보이는 <<페소아×김한민>>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이제는 리스본에 대해 나만의 인상을 가지게 되었고, 이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둥 같은 인물 페소아에 대해 전반적인 윤곽을 얻었다. (용기를 내어) 두껍고 다소 비싼 <<불안의 서>>를 샀다. 리스본 여행에 앞서 리스본의 정신, 리스본 사람들의 정서 등을 이해하는 데에 상당히 도움 될 터.
한 권의 책으로, 열정과 지식을 갖춘 한 명의 작가를 통해, '너무나 괜찮은 사람' 페소아를 알게 된다
'페소아 상'이 제정되어 있을 만큼 페르난두 페소아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국민작가이다. 어린 시절 남아공에서 몇 해를 지낸 이후 17세에 리스본에 돌아왔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나라 밖을 나간 적 없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20대에 동료들과 <오르페우>라는 문예지를 창간, 단 두 권만 발행하고 폐간의 불운을 겪었지만 당시 침체되어 있던 포르투갈 문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자신이 직접 출판사도 차렸고 탁월한 영어실력으로 영어로 여러 시집을 펴냈지만, 정작 포르투갈어로는 사망하기 1년 전에 단 한 권의 책만 썼다. 건강을 챙기지 않은 긴 세월 끝, 47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죽음과 더불어 유명세도 인정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미발표 원고들이 담긴 트렁크 하나가 발견되고, 이 원고들이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되면서 '국민 시인'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 책들 중 하나 또는 가장 사랑받는 책이 바로 <<불안의 서 Livro do Desassossego>>이고, 내가 이 책을 잘 읽어내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책이 <<페소아 ×김한민>>인 셈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 김한민이 몸소 리스본에 체류하며 지독한 '페소아' 파헤치기, 열정적인 '페소아' 찾아내기의 과업을 진심을 다해 수행한 과정을 지켜보았다.
페소아, 불안의 서, 리스본 그리고 포르투갈 --- 내가 알아야 할 그 무엇들이 되었다.
어떤 기분일까? 자신이 온갖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거의 한 시인의 행적을 쫓아다닌다면? 그 시인이 써낸 시마다의 배경이 된 장소에 직접 가서 다시 그 시를 읊어본다는 것은? 페소아가 살던 집을 개조한 '페소아박물관'내 도서관을 매일 드나들며 '페소아'를 읽고 또 읽으며 '페소아'에 대한 글을 쓰다니--- 소름이 끼칠 만큼 좋았지 않았을까? 포르투갈에서도 인정하는 페소아 전문가들을 만나 페소아에 대해 대화하고 페소아가 즐겨 다녔던 거리와 카페 등을 수시로 들락날락, 글로 알아 온 페소아가 마치 살아 있는 '요즘'의 사람처럼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동시대인'이 되는 것이다!
<<페소아×김한민>>에서 페소아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페소아 ×김한민>>를 통해 알게 된 페소아의 가장 독특한(이상한) 점은 '이명異名'이다. 필명이 아니고 아예 여러 개의(수십 개라고 함) 이름을 만들어내고 그중 세 개의 이명에 대해서는 각각의 성향이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단다. 페소아라는 한 인물이 스스로를 세 개로 분리되어 혹은 세 명으로 증식되어 글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산다? 세 명의 이명은 알바루 드 캄푸스-알베르투 카에이루-리카르두 레이스(리스본 인문대학 입구에 벽화로 이 세 이명들이 그려져 있다 함). 저서도 이들의 이름으로 출간했다.
페소아의 이명은 그만의 고유한 문체, 인격, 목소리가 원저자와 별도로 변화-발전해나간다는 특징이 있다. 이 점에 페소아의 독창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처럼 각 이명의 문학적 정체성을 다양하고 꾸준하게 전개시키며 서로 다른 이명들 간의 관계까지 구체적이고 완성도 있게 구현해낸 경우는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페소아 ×김한민>> p.55
페소아는 이 셋의 문학 세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며 발전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 간의 관계까지 상정하여 이명들로 이루어진 작은 생태계를 구축했다.(---) 객관성을 담보해주는 장치로 이명을 활용했다. 자기 주관에서 벗어나 타자의 관점을 취해 가능한 한 넓은 시야를 확보하려는 본능은 페소아의 에세이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 이명은 그만의 '창작 기계'였다."복수 複數가 되어라, 저 우주만큼!'이라는 그의 모토처럼, 모든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던 그의 놀라울 정도로 큰 문학적 꿈은,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이기 어려운 너무나 다양한 창작 욕망들로 꿈틀거렸다. <<페소아 ×김한민>> p.62~64
처음엔 이 '이명'이라는 발상이 좀 섬뜩하기도 했다. 혹 정신분열의 증세는 아니었을까 혹은 다중인격자는 아니겠지 등 처음 접하는 시인에 대해 '무례한' 억측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하고 냉정히 생각해보면 '내 안에 여러 명이 살고 있는' 기분, '내가 나이면서 내가 아닌 타자가 되고 싶은'바람을 나도 가질 때가 있지 않던가? 이런 나 자신을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삶을 다양하게 활성화하는 원동력쯤으로 건강하게 여기고 있지 않는가! 김한민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은 페소아에게서 자아분열 증세를 창조적으로 승화시킨 한 인물을 본다. 정신분석의 시각에서는 분열된 자아가 통합되어야 할 하나의 치료 대상인지 모르지만, 사실 내면에 '두 얼굴'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굳건하고 조화롭게 통합된 하나의 정체성보다, 내 안의 인격들끼리 충돌하는 편이 더 흔하지 않을까?(---)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일상에 완전히 편입되어, 그 세계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아이디나 '아바타'등을 통해 마음대로 정체성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되면서, 온라인상의 나와 실제의 나가 크게 달라진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모두 조금은 페소아가 아닐까,라는 질문도 가능하겠다. <<페소아×김한민>> p.141
내가 <<페소아 ×김한민>>을 '먼저'읽기로 한 이유가 되는 <<불안의 서>>에 대해서도 이 책은 '『불안의 책』을 즐기는 법'이라고 5장에서 '페소아 전문가'의 시선에서 안내해준다. 저자의 한 줄 평은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책'이란다. '불안'인 이유는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성격의 글들이라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을지 페소아 자신도 몰라 했고, 그의 사후 페소아 연구가들이 똘똘 뭉쳐 오랜 고민 끝에 서로 연결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으려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저자 김한민이 <<페소아 ×김한민>>에서 인용해주는 글들, 내가 직접 몇 페이지 (급한 성격에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미리 읽어 본 몇 편의 글)에서 받은 인상은 굳이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내려 하지 말고 일기나 편지와 같은 '단상을 담은' 조각조각으로 읽어도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아, 이 책은 이런 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전반적인 흐름과 인상을 곱씹게 될 것 같다. 매번 같은 텍스트라도 다른 의미와 분위기를 이끌어내며 신선하게 빠져들 책이다. 어쨌든, <<불안의 서>>는 내가 지금껏 만난 책들 중 확실히 '대작'임에 틀림없다.
리스본 시내의 도라도레스 거리에서 회계사 보조로 일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베르나르두 수아르스라는 인물의 단상 약 500편을 모아놓은 『불안의 책』은, 언뜻 일기처럼 보이긴 하지만 날짜나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기록 없이 상념, 관찰, 사색이 주를 이루기에, 일기라기보다는 책 속 표현대로 "사실 없는 자서전"에 가까운 산문이다(---) 그가 죽은 지 47년 후, 즉 1982에야 처음으로 출판되었으며, 현재 그의 작품 중에 가장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책이다 <<페소아 ×김한민>> p. 122
<<페소아 ×김한민>>을 읽은 제1의 이유는 리스본을 알기 위해서, 리스본 여행을 위해서이다. 책을 넘기다 내 눈에 들어온 이 리스본 전경 사진 한 장으로(정여울의 <<내성적이 여행자>>에도 동일 광경을 찍은 사진이 있다!) 여러 날 리스본에 들떠 있다. 관심을 가진 지 일 년, 여행해보리라고 결심한지는 한 달---그야말로 리스본이 내 삶에 들어왔다. <<페소아 ×김한민>>은 페소아 +<<불안의 서>>+리스본 이렇게 3종 세트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오감적인 흥미를 불어넣으며 딴청을 부릴 틈을 주지 않는다.
리스본에 살면 폐허 예찬론자가 되기 쉽다(---) 리스본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폐허와 폐허 아닌 것들의 어우러짐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공간들을, 하루라도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지 않고 초연하게 내버려 두는 포르투갈 특유의 느긋함(혹은 귀찮음?) 없이는 생성될 수 없는 풍광이다.(---)이유야 어쨌든, 리스본의 폐허들은 내가 다녀본 그 어떤 도시의 폐허보다도 긴밀히 그 도시의 미학을 형성하고 있었다. <<페소아 ×김한민>>p. 127~128
책으로 먼저 꿈꾸게 된 '리스본'
리스본에서 페소아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들
페르난두 페소아의 작품적 특징을 알고 나면, 이 '사람'이 궁금해진다. 사생활, 특히 인간관계도 남달랐을까? 지극히 사교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페소아는 잡지 <오르페우>를 함께 발행, 평소에도 어울려 만나 이야기하기를 즐기던 친구들의 무리가 있었고, 그중에는 '절친'도 있었다. 비록 26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해버렸지만, '마리우 드 사-카르네이루'는 <오르페우>의 핵심 멤버로 페소아와 문학적 이상을 공유하고 깊은 우정을 나눈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사-카르네이루는 20세기 포르투갈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히며 '포르투갈의 랭보'로 일컬어진다.
리스본으로 돌아온 그(사-카르네이루)는 1912년 4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인 페소아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둘의 우정은 <오르페우>잡지 창간을 거쳐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문학적 성위만 놓고 보자면 <오르페우>의 핵심적인 성과는 모두 이 두 친구의 합작품이었고, 페소아가 진정 문학적으로 인정한 동시에 진짜 친구로 여긴 사람도 사-카르네이루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페소아 ×김한민>>p.258-259
페소아에게 연인도 있었다. 47세 그의 인생에 여인은 단 한 명뿐이었고, 이름은 '오펠리아'. 중산층 가정에 태어나 비교적유 복하게 자랐지만, 당대의 여성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일을 구하려 했던 그녀, 20세에 첫 면접을 보러 간 회사에서 첫날 페소아( 이 회사는 페소아의 친척이 동업자로 있던 곳이라 페소아가 일을 도와주러 자주 들렀다)를 만났다.페소아가 먼저 고백을 하고 본격적으로 사귀지만, 두 사람의 애정은 방향과 강도가 어긋났다. 페소아는 점점 연정이 시들고 있는 반면 오펠리아는 점점 더 좋아하게 되는 상황에서, 페소아는 '자신의 문학적 목표와 결혼이 양립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오펠리아는 200통이 넘는 편지를 썼지만, 페소아의 편지는 49통에 불과, 이 양적 차이는 결국 사랑의 평형이 오펠리아쪽으로 한참 기울어져있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 사랑은 지나갔어."라고 단칼에 모든 애정을 잘라내버린 페소아, 오펠리아는 "페르난두, 나빠, 많이 나빠!"라고 애절하게 외치며 이 막 내린 관계를 할 수 없이 받아들인다. 오펠리아는 페소아가 죽은 지 3년이 되던 해가 되어서야 결혼을 했고, 페소아에 대해 일절 함구하다가 '이제는 입을 열 때가 왔다'라고 생각한 어느 날, 페소아와 오고 갔던 편지와 쪽지들을 조카에게 들려주었다. 이 조카의 설득으로 페소아의 편지들만 출간이 되었고, 오펠리아의 사후에는 자신의 편지까지 출판되었다. 소설 같은 '이루지 않은 사랑'을 페소아가 선택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원래부터 사랑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이유일 수 있다.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개념이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페소아 ×김한민>>p. 181
페소아의 유일한 절친 '사-카르네이루', 페소아의 유일한 여인 '오펠리아'
리스본이라는 도시를 향해 촉발된 나의 호기심과 열망은 여러 책들의 안내를 받아 결국, 생전에 한 번도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는 포르투갈의 문인 '페르난두 페소아'로까지 이어졌다. 전혀 몰랐던 사람인데 갑자기 우연히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고, 이 '조금만의 앎'만으로도 ' 너무나 괜찮은' 사람임을 확신할 수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 물론, 이렇게 내 쪽에서 앞면을 트는 데에 결정적 다리가 되어 준 <<페소아 ×김한민>>도 역작이다. 페소아의 인간적 면면, 문학적 발자취, 사적인 관계, 그의 대표작 <<불안의 서>>등을 단 한 권의 책으로 나에게 지식을 열어주고,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일으켰으니 나에게는 두고두고 간직하며 읽을 수밖에 없는 '보물'이 되었다.
리스본은' 페소아' 그리고 '불안의 서'와 동격이다
좋은 책을 만난 '행운의 독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있다. 우선, 밑 줄쳐둔 부분들을 중심으로 이 책을 다시 한 번 통독해야 한다. 처음 읽을 때 그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하여 쏜살같이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곱씹을 시간을 갖지 못했지만, 다시 읽기를 통해 전체와 부분을 연결 지으며 '나만의 페소아'를 찬찬히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 (상당히 버겁겠지만) <<불안의 서>>를 꼬박꼬박 읽으려 한다. <<페소아 ×김한민>>자체에 인용된 부분과 미리 읽어 본 첫 십여 페이지만으로도 이 두꺼운 책이 담고 있는 정서와 사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욕심이 난다, 모두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마지막 한 줄까지 일단은 '읽어 내면서' 페소아를 좀 더 넓게 알아내고 싶다. 또한, 리스본을 거점으로 하는 포르투갈 여행을 할 것이다. 페소아 가 걸었던 리스본, <<페소아 ×김한민>>의 저자 김한민이 자신의 히어로 페소아를 찾아 쫓아다녔던 리스본, 이 리스본으로 나의 시간과 공간을 옮겨 볼 작정이다. '문학과 인물'을 테마로 하는 여행, 내가 가장 바라는 여행이 아마 곧 '리스본'에서 시작될 것이다.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 보도블록 '칼사다 포르투게사(검은색과 흰색 타일로 된 보도블록)'를 또각또각 밟으며 리스본의 구석구석을 걷고 있을 나, 내 손에는 당연히 <<페소아 ×김한민>>와 <<불안의 서>>의 발췌문이 들려 있을 테고. 책 머리말에 밝힌 저자의 바람을 충실히 이행하는 '썩 괜찮은 독자'임을 스스로 미리 입증한다.
내게 바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움직임을 촉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책이 다음과 같은 책이 되었으면 했다. 이 책 한 권을 들고 포르투갈로 떠날 수 있는, 그래서 여행이 좀 더 풍부해지고, 페소아가 좀 더 잘 이해되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고 페소아가 읽고 싶어져서 페소아의 책을 들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몸으로 하는 여행이든 머리로 하는 여행이든 말이다.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리스본의 어느 골목에서 페소아를 읽고 있는 여행객을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페소아 ×김한민>>p.27
리스본의 노란 트램속에 이미 내가 앉아 있고, 리스본의 칼사다 포트투게사 위를 이미 내가 걷고 있다.
<<페소아 ×김한민>>을 들고 리스본을 누벼 볼 준비, 다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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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출판사에서 발행되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팟캐스트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을 통해 먼저 소개되었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출판을 줄곧 기댜려 왔는데, 얼마전부터 착착 출판되고 있다. 책도, 팟캐스트도 여전히 진행형인데 현재까지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 페소아, 푸치니, 이렇게 총 다섯권이 출간되었다. 시리즈를 몽땅 모으겠다는 야심찬 계획하에 일단 두 권을 구입하였다. 궁금해하면서도 덥석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두 거장, <니체>와 <페소아>. 오늘의 두뇌가 이미 어제의 두뇌가 아닐 뿐은 물론, 오늘이라는 날조차 어제와는 다를진대? 일관성이 있다는 것, 그것은 병이고, 어쩌면 격세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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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 사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고 그의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아르테 시리즈 중에 올라와 있기에 구입하여 읽어 가면서 알게 된 인물이다. 꽤나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을까? 페소아는 여러 이름으로 활동한 작가이다. 여러 가면을 쓰고 본인을 다양하게 표현했던 포르투갈의 시인인데, 꽤나 특별한 자아를 가지고 잇지 않았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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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로 굉장히 유명한 페소아. 사실 불안의 서를 읽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페소아를 잘 모르겠다. 그러던 중 김한민 작가가 아르테 시리즈 페소아를 썼다길래 궁금하던 차에 다른 책들과 함께 주문. 김한민 작가의 그림과 책 들을 좋아한다. 북토크도 몇 번 갔었고. 그가 사랑한다는 페소아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김한민 작가의 생각과 말을 빌려 페소아를 다시 알아가보려고 한다.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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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가 누구인지도 모른체 선택을 한 책이었다. 삶이란 우리가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여행자 자신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이 기이하고도 천재적인 작가에게 일찍이 매력을 느끼고 국내에 페소아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왔다. 급기야 그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나 수년간 그곳에 체류하면서, 리스본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작가를, 하나이자 여럿인 이 신비로운 인물을 깊숙이 탐구했다. 여행기라기보다 체류기에 가까운 이 책은 저자 김한민이 100여 년 전의 인물 페소아와 동시대인으로 만난, 밀도 높은 시간의 기록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왜 페소아란 사람을 선택했는지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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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저 [대여]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複數의 화신 을 읽어본후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은 아주 오래전에 불안의책만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다른 페소아의 글들도 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페르난두 페소아에 대해 깊이 알 수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