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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오늘 날. 여기저기에서 이에 대한 대안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 질이 양을 받쳐주지 못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몬드라곤에 대한 이야기도 결국 그 수많은 대안들 중의 하나이다. 문제는 이것이 대안으로서 어느 정도의 질을 담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리라.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나는 몬드라곤을 단순히 협동조합의 연합체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이 책을 접한 이후에는 협동조합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지식도 많았고,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권의 책 중에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평자로 하여금 협동조합주의자로의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던 앙금이 몬드라곤의 기적을 읽으면서 조금은 가시화하는 것을 느꼈다. 하나의 대안으로서 몬드라곤은 분명히 그 의의가 적지 않다. 특히 필자(김)가 말했던 것처럼 협동조합형태의 기업지배구조가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는 것이야말로 이 두 권의 책이 가진 가장 큰 의의이다. 독자로서 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배우자를 읽으며 쌓였던 앙금이 기적을 통해 가시화하는 순간을 나름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선택지는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노동자가 기업을 경영하는 형태는 분명히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통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공격을 받을 것이다. 한겨레의 한 서평에 달린 댓글이 가리키는 대로 “결론은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혹자의 말대로 노동자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을 “시장경제 체제에서 이미 실패한 실험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기업 소유자의 사익이 침해될 것을 우려하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의 틀에 갇힌 획일적 시각일 뿐이다.” 이미 몬드라곤이라는 ‘실례’가 있고, 이로써 그 가능성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읽으며 느꼈던 감동과는 별개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우려는 바로 몬드라곤의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협동조합이 지배하는 기업경영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가장 핵심은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것이었고, 이것은 조직이기주의라는 말로 표현되고는 했다. 즉, 노동운동이 바라보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라고 했을 때 협동조합은 그 출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소위 ‘착한 자본주의’라는 형용모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아마 협동조합주의자들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본의 종속성”이기 때문이다. 칼 폴라니가 간파했던 것처럼 시장교환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시장이 생산영역을 장악함으로써 사회로부터 ‘튀어나간(脫배태)’ 일이다. 때문에 협동조합의 이러한 가치는 자본이 사회로부터의 독립되어 있음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커다란 공격 무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협동조합주의의 상상력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필자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몬드라곤의 글로벌화는 협동조합의 민주적 성격에 중대한 결함을 야기했다. 국제연대가 글로벌화와 동일어가 되지 못한 이러한 현상은 결국 협동조합의 상상력이 여전히 자본주의의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어딘가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지 않을 수 있다”는 상상력이 이미 대안 그 자체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非자본주의자로서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평자는 매우 비겁하게도 아직까지 이러한 부분을 방관하는 중이다(학생이라 그런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 책의 가장 좋았던 점은 필자(김)가 최소한 방관자는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알고 보았더니 남장을 한 여자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 사실일 것이다. 소위 386세대 중 운동권이었던 이들이 오늘 날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모습은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필자가 취한 일종의 방어태세는 분명히 정당하다. 그는 노동자에 대한 신뢰를 협동조합주의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지켰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 몬드라곤과 현대를 비교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필자(김성오)는 스스로를 협동조합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몬드라곤에 대한 기대를 거의 신앙처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몬드라곤이 점차 거대화하면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이는 단지 “지켜볼 문제”일 뿐이다. 왜냐하면, 짐작건대 협동조합이 지난 200년 동안 지켜온 정신과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몬드라곤과 같은, 이미 글로벌화된 협동조합 복합체가 내부적으로 가지게 된 문제, 이를테면 민주적 운영 원리의 퇴색 등이 그 부정적인 모습을 극대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아마도 필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이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진행하고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책을 통해서 그러한 노력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그가 협동조합의 원칙에 기댈 수 있는 원인은 우선 ‘역사’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74년 울고의 파업은 협동조합 내부의 자기비판을 보여주는 한 사례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가 가지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신뢰이다. 협동조합의 원칙이 관철될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는 연대와 희생이라는 일종의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김)는 어떻게 본다면 순수한 사회주의자 이상으로 노동자에 대한 신뢰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지만, 국제연대가 곧 글로벌화라는 주장은 보다 신중한 논의를 요한다. 이러한 논의는 역사나 노동자에 대한 신뢰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지역경제의 정체성을 공동체주의가 강화된 방향으로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렇게 강화된 지역경제끼리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협동조합 복합체가 기업경영을 지배하는 사례가 지역경제라는 차원에서 축적된 경우가 “양적으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주워듣기에는 몬드라곤 이외에 이탈리아의 어느 지역이나 퀘백 등도 그 예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정말 지역경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은 최초의 지역공동체를 어떤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만들어내는 방법론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몬드라곤이 ‘MONDRAGON’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필요한 것은 글로벌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동시에 그러한 글로벌화된 조직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이지 않을까? 단순히 “지켜볼 일”이 아닌 것이다. 결국 ‘실례’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외침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공허하다. 몬드라곤에서 노동자 기업이 나올 수 있었던 지역성이란 것을 한국에 비춰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평가하자면 조금만 알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제안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분명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한 현재까지의 연구 수준일 터인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현재의 몬드라곤의 글로벌화를 ‘부러워하는’ 느낌조차 들었다. 따라서 곽노현의 추천사에 나오는 필자의 말, “문제는 실천이다”라는 것을 해명할 필요는 없다. 결국 문제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나는 협동조합주의자는 아니지만, 언젠가 한국의 협동조합 복합체가 일종의 모범 사례로 거론되는 것을 기대한다. 선택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그리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몬드라곤으로부터 한국의 협동조합주의자들의 인식이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실천은 한국에서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론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것에서 구체화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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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학교 3학년 때 한 수업에서 원주의 여러 협동조합을 둘러보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협동조합이란 ‘농협’밖에 몰랐고, 농협의 관변단체화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그에 아쉬워했던 필자에게 원주에서의 협동조합들의 존재는 새롭게 다가왔다. 신용협동조합과 의료생협, 사회적 기업, 그리고 그 조합들이 농촌사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파괴적 형태의 자본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이채로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형태가 어떻게 다른 지역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러한 협동조합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유지에 대한 우려가 너무 잘 되어가는 기대감을 너무나도 주는 사례가 소개되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에 관한 두 책이 역사비평사에 의해 출판된 것이다. 오랫동안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또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한 김성오가 옮기고 직접 쓴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이하 1권), 몬드라곤의 기적(이하 2권)이다. 1권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화이트 부부가 몬드라곤이라는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이 돈 호세 마리아 신부에 의해 창설된 과정부터 그들이 현지조사를 마지막으로 수행한 1990년 무렵까지 몬드라곤의 발전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미 출판이 되었던 것을 이번에 새롭게 출간한 것이다. 2권은 그 이후 몬드라곤이 그룹으로 발전하여 다국적 기업집단으로 확대되고 변화를 겪은 것, 또 이러한 몬드라곤의 실험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지를 김성오가 쓴 내용이다. 따라서 두 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협동조합은 다른 기업과 비교하여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성장의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소규모 지역에서만 유지될 것이다. 그렇기에 협동조합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협동조합에 대한 그러한 편견과 비판이 많다. 하지만 두 책을 읽고 몬드라곤을 접하고나면 어느 정도 그러한 편견과 비판이 불식될 수 있다. 몬드라곤은 약 260개 회사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기업 집단으로 조직되어 있다. 몬드라곤은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의 매출을 능가할 정도이며, 해외에 수십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몬드라곤은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고, 내부의 조합원, 노동자들은 한국의 여러 대기업과는 다르게 고용 안정을 보장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조합의 이사와 경영진들은 기업과 조합을 누구들처럼 자신들만의 ‘소유물’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몬드라곤의 성장과 해외로까지의 팽창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기도 한다. 이 역시 협동조합의 탈을 쓴 다국적 자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글을 읽는 내내 그러한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권에서 나오듯이 조합에 속한 노동자들의 설문을 보면서 의심이 풀렸다. 135명의 노동자들은 사기업에 일하는 게 더 좋다는 점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고, 다른 직장에서 많은 보수를 준다고 해도 모두가 몬드라곤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수익성이 노동자의 만족에 앞서느냐는 질문에도 모두 부정하였다. 의사결정 과정의 발언권이 본인이 버는 돈의 액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에도 모두 동의하였다. 이와 같이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생각, 연대와 협동의 정신, 공동체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몬드라곤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아무리 대다수가 바라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어도 불만이 팽배하고 불안정성을 느끼고 있는 한국의 직장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큰 차이이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1권 357쪽) 창립자 돈 호세 마리아 신부가 자주 썼던 말, 이후 협동조합의 하나의 모토라고도 볼 수 있는 문장이다. 몬드라곤은 성장에도 자족하지 않고, 항상 변화를 추구하였다. 그것이 현재의 몬드라곤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다른 사회주의와 다르게 어떤 특정한 유토피아를 상정하지 않고, 하나의 가치를 옳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여기에 성장과 수익의 창출이라는 가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비와 상술, 협박으로 성장하지 않는 진정한 슘페터리안적인 혁신적 기업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초기 협동조합의 연대와 협동의 원칙은 고수해갔고, 그 방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몬드라곤은 현대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물론 두 책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몬드라곤의 구조와 성장 과정은 잘 정리되었지만, 정작 초기 몬드라곤의 성공을 가져다준 요인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에 가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설명되지 않았다. 돈 호세 마리아 신부는 어떻게 사회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협동조합을 경험하고 그 사상을 공부하게 되었을까? 그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협동조합의 씨앗을 어떻게 뿌려나갈 수 있었는지는 현재 한국사회 등 여러 곳의 협동조합 운동에서 실천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데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생략된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몬드라곤의 존재는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읽힐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대안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몬드라곤의 존재가 김성오의 말과 같이 자본주의 문명에 새로운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 매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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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몬드라곤에 대한 이 두 책은 기존이 알지 못했던 협동조합의 설립과 성장에 대해서 설파하고 있다. 특히 몬드라곤의 기적 부분에서는 현재까지 몬드라곤이 위기를 해결하면서 성장해온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현 몬드라곤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에는 한국사회에 대한 제안사항까지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을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책을 읽으면서 마치 한 기업에서 만든 자료정리보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고용에 대한, 그리고 기업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몬드라곤을 자세히 아는 것에는 이의가 없으나 이 책을 읽은 후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어떠한 점들을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또, 어쩔 수 없이 몬드라곤에 대해 편파적인 서술이 있지는 않았을지 의문이 든다. 그 점은 로버트오언에게서 협동조합의 시초를 찾는 것에서 느껴졌는데, 그 당시 시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뉴라나크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국에도 농협과 수협등 협동조합들이 이미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조합문화가 고용에 있어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지 못한 데에는 협동조합만의 한계점들도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그리고 몬드라곤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들이 더불어졌다면 독자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몬드라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에 보다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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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이 붐이자 봄이다. 물론, 그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과도 같다. 농협이나 수협, 서울우유협동조합 등과 같은 무늬만 협동조합은 일단 빼고 시작하자. 나도 (노동자)협동조합을 조합원이자 동료들과 함께 꾸리고 있는데, 2012년 12월을 기점으로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협동조합은 서울에만 이미 1600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 중에 실제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곳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몬드라곤을 빼고 협동조합을 말할 순 없겠다. 몬드라곤은 우선, 도시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협동조합 자체를 가리킨다. 1941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는 내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 협동의 정신과 함께 기술을 전수했다. 이에 2년 뒤 기술학교를 세우고, 1956년 5명의 젊은이와 함께 난로를 생산하는 노동자협동조합 ‘울고르’를 설립했다. (울고르는 2014년 파산한 파고르 전자의 전신이다.) 이처럼 몬드라곤은 협동조합 운동과 제조업·금융·유통·연구·교육을 포괄한 협동조합 자체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몬드라곤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져야할까. 1부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몬드라곤의 경영구조, 체계, 개편 등 몬드라곤이 쌓은 협동조합 구조물을 살필 수 있게 한다. 그런 한편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 이야기다. 호세 신부와 몬드라곤을 함께 만들어간 사람들의 ‘인간극장’이 협동조합의 가치를 더 잘 말해준다. 최초의 협동조합을 세우고, 강한 반대에도 협동조합은행(노동인민금고)를 만들며, 함께 공부하면서 지지고 볶는 과정, 그리고 1974년 최초의 파업과 해고 사건을 통해 단단해지는 모습 등 몬드라곤 드라마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2부인 《몬드라곤의 기적》은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몬드라곤의 변화와 문제의식을 담았다. 이 두 권의 책은 몬드라곤이 2010년대 한국 사회의 협동조합 성지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이기도 하다. 몬드라곤이 완벽한 협동조합은 아니다. 아니 완벽한 협동조합은 없다. 그렇다고 몬드라곤이 교과서도 아니다. 몬드라곤은 스페인, 바스크, 호세 마리아 신부, 무엇보다 몬드라곤 사람들이자 조합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들)은 분명 시사점을 준다. 몬드라곤의 것을 우리의 협동조합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19장에는 호세 신부의 사상이 정리돼 있으니 꼭 읽어보시라. 그 중 하나만 소개하겠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일부 사람이 자신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타인의 노동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제도는 일종의 사회적 괴물이다. 협동조합주의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자본주의자와 구분된다. 즉 후자가 자신에 봉사하는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자본을 이용하는 반면, 전자는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자본을 이용한다.” 사회적 괴물을 등에 업고 사는 우리는 노동에 대해 점점 더 야박해지고 걍팍해진다. 노동을 벌레 취급하는 자본의 횡포에 놀아나는 우리는 노동 감수성을 키울 여지도 없이 죽어간다. 타인의 노동은커녕 나의 노동도 자발적으로 실종시키는 풍토에서 협동조합은 특히 노동자협동조합은 다르고 싶다. 몬드라곤은 그래서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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