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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이기엔 너무나 특별한 아이티(?)
"'보편'적이기엔 너무나 특별한 아이티(?)" 내용보기
2010년 1월 12일. 세상은 흔들렸다.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진흙을 구워 먹던 아이들은 그마저도 사치임을 깨달으며 싸늘하게 식어갔다. 마땅한 철골 구조물 없이 지어진 건물들은 제 나약함을 드러내며 무너졌기에 피해는 더욱 컸다. 사람들의 온정이 이어졌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땅의 재생은 버거워 보일 뿐이다. 그런데 가난과 자연재해가 드리운 그림자가 너무 큰 아이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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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2일. 세상은 흔들렸다.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진흙을 구워 먹던 아이들은 그마저도 사치임을 깨달으며 싸늘하게 식어갔다. 마땅한 철골 구조물 없이 지어진 건물들은 제 나약함을 드러내며 무너졌기에 피해는 더욱 컸다. 사람들의 온정이 이어졌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땅의 재생은 버거워 보일 뿐이다. 그런데 가난과 자연재해가 드리운 그림자가 너무 큰 아이티를 떠올릴 때면 사람들이 잊는 게 한 가지 있다. 북미와 남미 사이에 있는 이 나라는 1804년 흑인들이 혁명을 통해 세운 최초의 독립 국가이다. 아프리카로부터 유입된 흑인노예들이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유럽 군대들을 연이어 격파하고 세운 이 국가는 이후 중남미 각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며 독자적인 입지 구축에 나섰었다. 하지만 흑인이 세운 국가로서의 한계도 있었으니, 노예 제도를 견고히 유지하고자 했던 서구 국가들의 노력은 곧 아이티에 대한 제재로 이어졌다. 오늘날 아이티가 짊어지고 있는 가난의 책임은 아이티만의 것이 아닌 셈이다.

헤겔은 독일의 관념론을 집대성시킨 학자라는 평을 받는 인물이다. 그를 무시한다면 포이어바흐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가 내세운 변증법, 즉 정(正)-반(反)-합(合)에 기초한 역사의 전개가 아니었더라면 20세기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칼 마르크스라는 인물의 탄생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헤겔과 아이티를 한데 묶다니, 제목에서부터 이 책은 기이한 인상을 풍겼다. 게다가 저자까지 나서서 이 책을 ‘추리소설처럼 쓴 글’이라 언급했으니 더더욱 호기심을 잠재우기가 힘들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책의 내용은 나의 기대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혁신과는 다소 거리가 먼 헤겔의 사상을 고려할 때 저자가 헤겔이 직접적으로 나서 아이티의 혁명을 주도했다거나 혁명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진 않을 걸로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이 책의 중심은 아이티가 아니라 흑인이 중심이 된 집단, 세력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티는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흑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수립된 국가라는 점에서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충족시키기에 딱 부합하는 예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은 헤겔이 저자가 헤겔이 아이티의 존재를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명 ‘(노예)변증법’이 아이티라는 국가의 성립을 가능하게 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실제로 아이티의 초창기 역사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급진적인 움직임을 시도했던 자코뱅파와 많은 부분 맥락을 같이 하기는 한다. 그러나 백인 그리고 물라토. 흑인은 이 두 집단보다 확실히 열악했는데 아이티의 독립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운 투생 루베르튀르의 경우 단절에 기초한 흑인집단의 무조건적인 승리를 부르짖기보다는 조화와 통합이라는 다소 온순한 방법에의 기대감을 놓치 않았다. 그의 사후 황제로 즉위한 장 자크 데살린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실 유럽 사회를 뒤흔든 혁명적 기질과 아이티의 시도에는 아주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차이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흑인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티에서는 흑인이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흑인’이라는 하나의 큰 틀로 묶이기는 했으나 그 내부에 들어가 보았을 땐 결코 하나의 세력이 아니었다. 분화된 세력들은 암암리에 투쟁했고 서로 협력하고 배제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국가라는 하나의 거대한 실체로 나아갔다. 유럽 지식인들도 명목상으로는 평등을 지향했다. 그렇지만 그 평등의 이면에는 백색 피부에 대한 우월감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었으며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 입으로 울부짖지도 않았을 뿐더러 혹 그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겼을지라도 제 주장을 현실에 적용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론과 실제의 분리. 그것은 서구 사회가 품은 모순이자 동시에 한계였다. 그런 면에서 아이티는 서구 사회보다 분명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였으며, 그와 같은 진보의 주체가 유럽에서는 저 하층, 심지어 인간으로 취급받지도 못했던 흑인이라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형식만 놓고 보면 유럽이 해내지 못한 변증법의 완성을 아이티는 해낸 것으로 보인다. 헤겔적인 역사 해석에 충실한 사례로 아이티는 언급될 만하다. 그렇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헤겔의 이론을 아이티의 흑인들이 수용해 실천에 옮겼다는 식의 주장도 물론 무리가 따르겠지만, 그 반대로 아이티의 상황을 헤겔이 충분히 인지하고 이의 실천을 지원하기 위해 제 이론을 발전시켰다는 주장 역시 억지에 가까워 보인다. 오히려 훗날 헤겔의 철학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부흥과 함께 철저히 해체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전복보다는 현실 공고화에 더욱 부합해 보이는 헤겔의 사상과 아이티를 연결시키기란 나에게 쉽지가 않게 느껴졌다. 프리메이슨과 부두교의 유사함을 언급하는 대목 역시, 어느 종교나 의식이나 사상 면에서 유사함을 지니고 있기 마련인데, 프리메이슨을 종교로 볼 것인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양자간에 많은 부분이 유사하기에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고 또 승인했다는 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은 저자가 지적했듯 헤겔의 철학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만 변용해가며 이해해온 이제까지의 내 사고로부터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실천의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선 결국 헤겔과 마르크스 사이의 연결고리를 한 번은 건드려 줄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난 생각한다. 보편사로 나아가는 길은 아직 멀었다. 아니, 보편적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관점인지부터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티는 보편사를 언급하기에는, 안타깝지만, 너무도 독특한 사례인 듯하기 때문이다.



이달의 사락 q*****2 2012.02.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