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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곡에 철학이 있던가? 설마.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자. 철학자는 유행가 따위 흥얼거리지도 않을까? 심리학자는? 역사학자는? 사회학자는? 고매하신 시인은? 누구도 그 달콤한 덫을 피할 수 없다. 귀가 열려 있는 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고상한 예술에 빠져 있어도 한번쯤은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들려오는 노래에 박자를 맞춰 걷기 마련이다. 또는 누구라도 빠른 댄스곡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들고, 슬픈 발라드을 들으며 감상에 젖기 마련이다. 부자도 가난한자도, 지식인도 일용직 노동자도 그 순간만큼은 다 마찬가지다. 누구나 사랑을 하듯, 우리는 유행가에 빠져든다.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여행자처럼 달콤하고도 씁쓸한 여운에 잠겼다. 글은 때로 리드미컬하고 때로 사색적이다. 노래뿐만 아니라 영화와 철학, 문학을 넘나드는 센디의 글쓰기는 꽤 매력적이다. 이런 문체주의자의 글쓰기는 오랜만이다. 벤야민, 바르트, 데리다 류의 글쓰기를 잘 소화하고 흡수한 후속세대의 지식인이다. 선배들에 굳이 도전하거나 범접할 욕심 따윈 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성실하게, 재치있게, 즐기며 파헤친다. 영리한 저자다. 이 책에서 말하는 '히트곡'은 상품의 은유이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영혼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 귀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히트곡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 책은 귓속에 들어와 사는 귀벌레에서 출발해 세계일주로 끝난다. 무수한 개인들의 영혼에 자리 잡으면서도, 동시에 이러지러 흘러흘러 세계를 일주하는 노래. 이 히트곡의 생명은 사실 자본주의의 탄생과 궤를 같이한다. 파리 아케이드 상점가를 거닐던 벤야민의 산책자에서 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아케이드는 초기 자본주의의 풍경이 아니던가. 히트곡도 이 아케이드에서 탄생한다. 현대인은 어쩔 수 없이 자본의 '유희' 노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돈을 벌어 상품을 사서 소비하며 산다. 자본에 종속되었지만 약에 취한 듯 이를 즐기며 산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구원의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상품물신에 기대는 순환 속에 삶의 희노애락이 다 있다. 그것에 거리를 두고 초연하게 관조하고 비판하고 성찰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우리 모두의 영혼 일부는 이미 거기에 침윤돼 있기 때문이다. 미몽 속에서 즐기거나 미몽을 깨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거나. 19세기에 소설이 했던 몫을 이제 유행가가 대신하는지도 모른다.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이 노래 역시 세계를 일주했다. 마치 노래가 우리의 내밀한 곳까지 다 아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가 거기 없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