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에 집착하는 이유... 처음엔 내가 그것을 진정 좋아했기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 지을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은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이삼 년 전에 비해 많이 식어버린 것 같다. 한편 내가 듣는 실험적인 음악이 너희들이 듣는 '생각 없는' 팝송보다 우월하다는 생각까지 했을 만큼 자신의 발달된 심미안에 대한 도취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인디펜던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중 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심정을 느껴 봤을 것이다(단 한 번이라도). 하지만, 웃기는 건 그 음악이 얼마나 실험적이고 인디적인가를 떠나서 그것이 청자인, '대중'인 나(우리)의 귀에 들어오는 이상, 수많은 상업적 체계를 거치는 이상, 그것은 더이상 대중 음악이 아닐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중 음악이라는 점에서는 한때나마 우리가 경멸하였을 수도 있던 팝송(예를 들면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과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사이먼 프리스의 혜안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우리가 록을 대중 음악이 아닌 예술로서 해석하려 든다는 것을 꿰뚫고 미리 배수진을 치고 있다. 팔리지 않는 레코드, 인기가 없는 레코드는 대중의 의식에 들어가지 못 하며, 이것은 이데올로기를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는 록에 대한 레코드의 영향력 즉, '대중 음악으로서의 록'을 중요한 논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 음악일 수밖에 없는 록은 왜 자신이 거쳐야만 하는 상업적 시스템에 줄기차게 도전하는가라는 물음이 생긴다. 이에 대하여 '전혀 가당치 않은 변증법'을 동원한 나의 해답은 바로 이것이다. 책 속에서 잠시 언급되고 있는 아도르노를 인용하자면 즉, 록이 자본주의 문화의 어떤 형식이긴 해도, 록은 그 안에서 항상 비타협적 노선을 견지하며 자신의 기반을 부패시키고 무력하게 만드는 체제에 대한 투쟁을 전개시킨다는 것이다(하지만, 그것이 체제 전복적 성격을 내포한 것은 아니다). 상업 혹은 자본주의는 물론 어떠한 의도를 지닌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록의 힘겨운 줄타기랄까, 그것이 바로 록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의 배경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부분 또한 그렇다. 내용인즉, "음악 사업은 과잉 생산의 실재 위에 기초하며 그들의 일일 작업은 욕구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고 '욕구에 응하는 작업'이다"라고 말하는 한편, 대중의 레코드 선택은 게이트키퍼(레코드 회사의 기획부원, 음악 저널리스트, 레코드점 주인 등)에 의해 제한된다고, 사람들이 '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들이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급자는 자신의 인정적 이익을 위해 제한되어진 욕구에만 응한다는 소린가? 그럼 결과적으로 우리는 취향의 결정권도 부분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인가? 뮤지션에 비해 청자는 능동적일래야 능동적일 수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을 부정할 순 없는 것인가? 명쾌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사이먼 프리스는 록의 상업적 기능과 문화적 사용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개념을 들어가며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하지만, 구체적인 듯하면서도 피상적이거나 적합하지 못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오히려 그로 인해 앞서 보았던 것처럼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안타깝게도 내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역효과가 났다. 하지만, 록을 예술로서 접근했을 때의 비생산성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족하다. "록은 대중 문화이다.록은 포크나 예술이 아니라 '상품화된 꿈'이다." 비록 이 책이 쓰여진 이십 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많이 변했고 이러한 접근의 결점 또한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내가 록을 이해하고 좋아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