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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공원에는 퇴계(1501-1570) 선생의 동상이 서있다. 선생의 동상을 보면서 인간의 길, 도학의 길을 생각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솔직히 퇴계의 글을 직접 읽어본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 시대에 퇴계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퇴계는 우리에게 인간의 길을 밝혀준 스승이다. 금장태 선생은 도학자 퇴계보다는 인간 퇴계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조선의 주자, 조선 성리학의 집대성자로 퇴계를 꼽고 있지만 저자는 퇴계의 따스하고 너그러운 인간적 품격을 더 높이 사고 있다. 제자들이 퇴계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것을 정리한 [퇴계선생언행록]을 보면 사표로서의 삶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제자 정유일은 퇴계의 학문자세를 이렇게 정리했다. "선생의 학문은 한결같이 정자와 주자를 표준으로 삼았다. 경(敬)과 의(義)를 양쪽에 끼고 지(知)와 행(行)을 아울러 추진하며, 안(內)과 밖(外)이 하나같고 근본(本)과 지말(末)을 겸비하여, 큰 근원을 훤히 보고 큰 근본을 세웠다. 만일 그 지극한 정도를 논한다면 우리 동방에 한 사람뿐일 것이다. "(45쪽) 퇴계의 생애는 초년의 수학기, 중년의 사환기, 만년의 강학기라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초년의 수학기는 출생에서 33세 때까지 유교 경전과 주자학 연구에 열중하였던 시기다. 중년의 사환기는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면서 49세 때 풍기군수를 사직하고 귀향할 때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만년의 강학기는 50세 때부터 70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로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을 짓고, 그후 도산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치며 연구와 저술에 몰두한 시기를 말한다. 퇴계는 치도(治道)를 추구하는 경세가의 길이 아니라 수도(修道)를 추구하는 스승의 길을 걸어갔다. 즉 벼슬에 나가 한 시대를 바로 잡는 일보다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올바른 삶의 도리를 밝혀 후세를 위해 참다운 표준을 제시하는 일에 자신의 역할이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퇴계는 성리설의 철학 이론을 가장 정밀하게 해석하였으며, 수양론의 인격형성 방법을 가장 깊이 심화시킴으로써 도학정신을 드높은 산봉우리처럼 우뚝하게 정립해, ‘조선도학’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물론 이는 퇴계 혼자만의 공로는 아니었다. 16세기에는 퇴계를 비롯하여 정암 조광조, 화담 서경덕, 회재 이언적, 남명 조식, 하서 김인후, 율곡 이이 등 기라성 같은 학자와 사상가들이 대거 출현하였는데 이런 지적 공동체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흠모하는 퇴계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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