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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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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난다/2020.1.15.   수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개인적인 일상이나 생각을 위주로 펼쳐나가는 글이 되기 쉽다. 그래서 그런지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도 저자의 전공이 불문학이고, 교수 생활을 하면서 평론을 쓰다 보니 그쪽의 글들이 많이 실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볼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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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난다/2020.1.15.

 

수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개인적인 일상이나 생각을 위주로 펼쳐나가는 글이 되기 쉽다. 그래서 그런지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도 저자의 전공이 불문학이고, 교수 생활을 하면서 평론을 쓰다 보니 그쪽의 글들이 많이 실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볼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우물에서 하늘보기>, <밤이 선생이다>, <말과 시간의 깊이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어린 왕자등 여러 권이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1888일 별세 했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는 평론가로서의 활동을 하면서 기고한 글들이기 때문인지 영화, 시집, 소설, 평론집 등에 대한 글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그쪽 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풀어내는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쉽게 이해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수필들이 더러 있었다. 심하게 보면 지식유희를 보는 듯한 경우까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목으로 올려놓은 사소한 부탁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부탁하는 말에서는 우리말을 사랑하고 바르게 알려지길 원하는 저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시골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말이나 관습 등에 대한 글을 대할 때면 과거와 현재의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쨌든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빠르게 읽기 보다는 하나씩 곱씹어 가며 읽을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아랫녘의 평야 지대에서는 비가 한 줄금 반 내렸다두 줄금이 못되게 내렸다는 말을 흔히 쓴다. 이때 줄금은 옛날 강우량을 측정하는 도구에서 그 단위를 나타내는 을 말한다.(p.95)” 사라져가는 말, 또는 서울에서 쓰지 않는 말에 대해서는 그 용례를 채집하는 데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골에서는 지금도 비가 한 줄금 내렸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그 정확한 뜻을 알고 쓰는 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석작이라는 용기가 있다. 가는 대오리를 엮어 만든 직육면체 상자 형태에 뚜껑이 있는 바구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양이 직사각형일 때는 긴석이고 정사각형일 때는 말석이며, 가끔은 원통형도 있어서 둥글석이라고 한다. 이바지 음식을 담아갈 때 쓰는 고급 그릇이고 흔히 보는 그릇이다.(p.95)” 이렇게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용기를 석작이라는 이름에 한바구니라는 말을 붙여 상품으로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동구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투리라는 꼬리표를 달아서라도 사전에 올려주기를 부탁한다는 것이 이 책 전반을 흐르는 저자의 사소한 부탁이다.

 

바닷가 사람들인 우리 가족에게 시간은 늘 썰물과 연결되어 있다. 이 시간의 리듬은 곧 달의 숨결이며, 우주의 율려이다. 이 박자를 짚어 비도 오고 바람도 분다. 적어도 바닷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p.171)” 사리 때인 보름이나 그믐 에는 날이 맑고 그 사이에 있는 조금 때는 비가 온다. 초등학교 때 학교는 늘 이 리듬을 염두에 두고 소풍이나 운동회 날짜를 정했으며, 그 결정이 낭패한 적은 없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균일하게 분할해 놓은 것이 달력이지만 거기에는 천지의 리듬도 함께 표시된다. 그러나 요즘은 행사 계획을 세울 때 기상청의 장기예보를 확인해서 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날짜를 정하기 때문에 예전의 방식은 한물 간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추억의 한 부분으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기억 속에 한 장면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온갖 종류의 서사 앞에서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그의 하인에게 냉담한 것은 주인공이 더 높고 화려하고 더 많은 권력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사의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하인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다. 우리가 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지만 그의 하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몇 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p.177)” 일인칭 서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삼인칭 전지전능의 서사라고 하더라도 사건의 전개는 거의 언제나 주인공의 의식으로, 아니 최소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우리가 주인공은 직접 만날 수 있지만 하인은 간접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하인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멀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안겨 있는 사람은 눈을 감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다. 눈의 초점을 맞출 수 없을 만큼 너무 가까이 있는 얼굴은 성적 판타지 속에서 그 자체가 한 덩어리의 빛일 뿐이다.(p.265)”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할 때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된다고 한다. 감은 눈만이 이때 안겨 있는 사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보는 것이 세계를 파악하는 수단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감은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많고 문장이 유창하다고 해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만이, 마음속의 처절한 상처를 염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말할 수 있는 인간만이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된다.(p.312)” 그래서 시와 소설의 진실도 아름다움도 인간의 처절함과 염소의 무심함 사이에서 결정된다.

 

로망은 원래 로마의 말이라는 뜻으로 라틴어에 뿌리를 둔 언어를 통칭하는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 그것은 소설일 수도 있고 드라마일 수도 있는 거대 서사의 한 종류다.(p.322)” 일반적으로 그 서사에는 고결한 주인공과 순결한 사랑과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 있어야 하고, 그 관계는 유기적이어야 한다. 월터 스콧의 역사소설 아이반호에서 기사 아이반호와 로위너 공주는 고결한 인간이고 그들의 사랑은 순결하지만 그들의 결혼이 흑기사로 변복한 사자왕 리처드 1세와 로빈 후드 일당에 의한 사회적 정의의 실현과 결합되지 않았더라면, 소설은 거대 서사의 미학도 위엄도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이 3년 세월에는 깨어 있는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잠을 자며 꿈을 꾸는 시간까지 오직 그 열망에 바쳐야 한다.(p.53)” 이렇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만 시간이 그것도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일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 한다.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일만 하다 죽은 머슴이 박새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어스름 저녁과 어스름 새벽에 이랴 낄낄! 이랴 낄낄!’ 소를 몰아 밭가는 소리로 크게 울어댄다고 하는데, 요즘 사람이 과연 그 소리를 제대로 들 수 있을까? 어쩌면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이만 예술가가 되는 지도 모르겠다.

이달의 사락 k******4 2023.02.15. 신고 공감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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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했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했다." 내용보기
평론가인 황현산 선생은 잘 모른다.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평론이라는 것이 어쩐지 나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의 저작을 접해본 적은 없다. 그러다 그가 쓴 산문집이라기에, ‘사소한 부탁’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구매해 놓고 시간만 흘려 보낸 지가 꽤 되었다. 그러다 어떤 부탁이길래 사소한 부탁이라고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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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가인 황현산 선생은 잘 모른다.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평론이라는 것이 어쩐지 나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의 저작을 접해본 적은 없다. 그러다 그가 쓴 산문집이라기에, ‘사소한 부탁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구매해 놓고 시간만 흘려 보낸 지가 꽤 되었다. 그러다 어떤 부탁이길래 사소한 부탁이라고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은 20133월부터 201712월까지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저자가 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아마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글이리라.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지난 5년의 시간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정치, 사회의 일이야 굳이 저자가 아니래도 글을 쓴 사람이 많았고, 앞으로 쓸 사람도 많겠지만 그들의 글과 저자의 글은 무언지 모를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쓰는 글들은 단단하기만 하다. 옆으로 빠져나감도 없고, 주제에 흐트러짐도 없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읽히면서 필요한 말은 다 들어가 있다. 글은 쉽게 읽히면서도 글을 읽는 나 자신도 차분해지게 만든다. 특별히 격한 감정을 쏟아내지 않아도,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도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이나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들 모두가 우리의 정치, 우리의 사회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기에 그가 말하는 사소한 부탁은 바로 이런 말과 글들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소한 부탁]한글 날에 쓴 사소한 부탁이라는 글에 나온다. ‘말 그대로 사소한 부탁이지만, 이들 지엽적인 부탁이 어떤 알레고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했다.

 

  이 대목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멀리 정치, 사회까지 나아갈 것도 없다. 바로 나 자신을 두고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정말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늘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한번, 두번 더 살펴보고, 더 생각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소하다고, 당연한 것이기에 무시해도 된다고, 전체의 일부이기에 어떻게 하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저 마음이, 몸이 편한대로 하지 않았나 싶다. 그 사소함 속에 들어있는 것이 진짜 알맹이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저자는 우리의 이런 마음에 대해 부탁하고 싶었을 것이다.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했으니, 이제는 그러지 말라는 사소한 부탁을 하고 있는 게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눈은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은 이것, 저것 생각하고 있는 나자신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 ‘책은 도끼라고 니체는 말했다. 도끼는 우리를 찍어 넘어뜨린다. 이미 눈 앞에 책을 펼쳤으면 그 주위를 돌며 눈치를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 그때 넘어진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우리는 텍스트로써의 책만이 아니라 정치라는 책, 사회라는 책, 문화라는 책과 따로 떼어놓고 살아갈 수 없다. 저자의 사소한 부탁은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책에 대한 것이지 싶다.

 

  총5부로 되어있는 이 책은 4부와 5부에서는 영화나, 시집, 소설집과 같은 문화예술에 대한 저자의 논평이 담겨있다. 원래 평론을 어려워함에도 진득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읽은 그의 글에 적응이 되어서 일 게다. 앞으로 저자의 많은 글들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자는 지난 8월 영면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그의 명복을 빈다.

k*****1 2018.11.23. 신고 공감 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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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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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황현산난다/2020.1.15.sanbaram   수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개인적인 일상이나 생각을 위주로 펼쳐나가는 글이 되기 쉽다. 그래서 그런지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도 저자의 전공이 불문학이고, 교수 생활을 하면서 평론을 쓰다 보니 그쪽의 글들이 많이 실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볼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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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난다/2020.1.15.

sanbaram

 

수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개인적인 일상이나 생각을 위주로 펼쳐나가는 글이 되기 쉽다. 그래서 그런지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도 저자의 전공이 불문학이고, 교수 생활을 하면서 평론을 쓰다 보니 그쪽의 글들이 많이 실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볼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우물에서 하늘보기>, <밤이 선생이다>, <말과 시간의 깊이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어린 왕자등 여러 권이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1888일 별세 했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는 평론가로서의 활동을 하면서 기고한 글들이기 때문인지 영화, 시집, 소설, 평론집 등에 대한 글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그쪽 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풀어내는 때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쉽게 이해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수필들이 더러 있었다. 심하게 보면 지식유희를 보는 듯한 경우까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목으로 올려놓은 사소한 부탁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부탁하는 말에서는 우리말을 사랑하고 바르게 알려지길 원하는 저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시골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말이나 관습 등에 대한 글을 대할 때면 과거와 현재의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쨌든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빠르게 읽기 보다는 하나씩 곱씹어 가며 읽을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아랫녘의 평야 지대에서는 비가 한 줄금 반 내렸다두 줄금이 못되게 내렸다는 말을 흔히 쓴다. 이때 줄금은 옛날 강우량을 측정하는 도구에서 그 단위를 나타내는 을 말한다.(p.95)” 사라져가는 말, 또는 서울에서 쓰지 않는 말에 대해서는 그 용례를 채집하는 데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골에서는 지금도 비가 한 줄금 내렸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그 정확한 뜻을 알고 쓰는 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석작이라는 용기가 있다. 가는 대오리를 엮어 만든 직육면체 상자 형태에 뚜껑이 있는 바구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양이 직사각형일 때는 긴석이고 정사각형일 때는 말석이며, 가끔은 원통형도 있어서 둥글석이라고 한다. 이바지 음식을 담아갈 때 쓰는 고급 그릇이고 흔히 보는 그릇이다.(p.95)” 이렇게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용기를 석작이라는 이름에 한바구니라는 말을 붙여 상품으로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동구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투리라는 꼬리표를 달아서라도 사전에 올려주기를 부탁한다는 것이 이 책 전반을 흐르는 저자의 사소한 부탁이다.

 

바닷가 사람들인 우리 가족에게 시간은 늘 썰물과 연결되어 있다. 이 시간의 리듬은 곧 달의 숨결이며, 우주의 율려이다. 이 박자를 짚어 비도 오고 바람도 분다. 적어도 바닷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p.171)” 사리 때인 보름이나 그믐 에는 날이 맑고 그 사이에 있는 조금 때는 비가 온다. 초등학교 때 학교는 늘 이 리듬을 염두에 두고 소풍이나 운동회 날짜를 정했으며, 그 결정이 낭패한 적은 없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균일하게 분할해 놓은 것이 달력이지만 거기에는 천지의 리듬도 함께 표시된다. 그러나 요즘은 행사 계획을 세울 때 기상청의 장기예보를 확인해서 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날짜를 정하기 때문에 예전의 방식은 한물 간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추억의 한 부분으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기억 속에 한 장면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온갖 종류의 서사 앞에서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그의 하인에게 냉담한 것은 주인공이 더 높고 화려하고 더 많은 권력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사의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하인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다. 우리가 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지만 그의 하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몇 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p.177)” 일인칭 서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삼인칭 전지전능의 서사라고 하더라도 사건의 전개는 거의 언제나 주인공의 의식으로, 아니 최소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우리가 주인공은 직접 만날 수 있지만 하인은 간접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하인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멀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안겨 있는 사람은 눈을 감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다. 눈의 초점을 맞출 수 없을 만큼 너무 가까이 있는 얼굴은 성적 판타지 속에서 그 자체가 한 덩어리의 빛일 뿐이다.(p.265)”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할 때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된다고 한다. 감은 눈만이 이때 안겨 있는 사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보는 것이 세계를 파악하는 수단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감은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많고 문장이 유창하다고 해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만이, 마음속의 처절한 상처를 염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말할 수 있는 인간만이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된다.(p.312)” 그래서 시와 소설의 진실도 아름다움도 인간의 처절함과 염소의 무심함 사이에서 결정된다.

 

로망은 원래 로마의 말이라는 뜻으로 라틴어에 뿌리를 둔 언어를 통칭하는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 그것은 소설일 수도 있고 드라마일 수도 있는 거대 서사의 한 종류다.(p.322)” 일반적으로 그 서사에는 고결한 주인공과 순결한 사랑과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 있어야 하고, 그 관계는 유기적이어야 한다. 월터 스콧의 역사소설 아이반호에서 기사 아이반호와 로위너 공주는 고결한 인간이고 그들의 사랑은 순결하지만 그들의 결혼이 흑기사로 변복한 사자왕 리처드 1세와 로빈 후드 일당에 의한 사회적 정의의 실현과 결합되지 않았더라면, 소설은 거대 서사의 미학도 위엄도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이 3년 세월에는 깨어 있는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잠을 자며 꿈을 꾸는 시간까지 오직 그 열망에 바쳐야 한다.(p.53)” 이렇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만 시간이 그것도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일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 한다.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일만 하다 죽은 머슴이 박새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어스름 저녁과 어스름 새벽에 이랴 낄낄! 이랴 낄낄!’ 소를 몰아 밭가는 소리로 크게 울어댄다고 하는데, 요즘 사람이 과연 그 소리를 제대로 들 수 있을까? 어쩌면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이만 예술가가 되는 지도 모르겠다.

이달의 사락 k******4 2020.03.24. 신고 공감 8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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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을 부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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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을 부르는 시간 ― 황현산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2018, 난다)을 읽고   첫 번째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열심히 공부하며 감탄하며 읽었는데 이번 산문집 『사소한 부탁』은 내용까지 사소하지는 않아서 작가와 책, 문학사조, 표현 등 더 깊이 있는 가르침으로 사색과 성찰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내용들을 알아가는 기쁨에 더해 글쓰기에도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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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을 부르는 시간

황현산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2018, 난다)을 읽고

 

첫 번째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열심히 공부하며 감탄하며 읽었는데 이번 산문집 사소한 부탁은 내용까지 사소하지는 않아서 작가와 책, 문학사조, 표현 등 더 깊이 있는 가르침으로 사색과 성찰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내용들을 알아가는 기쁨에 더해 글쓰기에도 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여기저기 그어진 밑줄로 되새김질하듯 읽어 낸 책이라서 더 소중한 내용들을 배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문학 번역가인 저자는 보들레르를 비롯한 프랑스 작가나 책들을 인용해 현대의 상황을 설명하고 파헤쳐서 논리를 펼쳐나간다. 어떤 내용도 수긍이 가도록 또박또박 찬찬히 이해시켜 준다.

글의 면면에서 올곧고 단정한 그의 삶의 자세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한 소견을 많이 적었는데 적절한 표현들은 물론, 잘못 표기한 예시를 바로잡아 설명하기도 한다.

 

첫 번째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와 마찬가지로 이번 책에서도 당면한 사회현상에 대한 글들이 많다. 시대의 어른으로서 우리들이 새겨야 할 자세 등을 알려주고 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바른 지식을 소개하는 자상함을 느낄 수 있다.

용산참사와 세월호, 일본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흥분을 우리 민족에 자긍심이 두드러지는 것을 보면 그는 조정래 선생님처럼 민족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부까지 글쓰기에 관한 것이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서 자기 생각과 바른 정보들을 알려주고 우리에게 올바른 판단과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4부와 5부에서는 영화와 책을 읽은 소감들을 기록했다. 특히, 5부에서는 시집을 읽은 두 페이지 정도의 짧은 리뷰들이 있는데 적은 분량으로도 책 한 권에 대한 소감을 어떻게 쓰는지를 알려주는 모델로서의 글쓰기 표본이 아닐까 싶어서 큰 공부가 되었다. 요즘 새로운 작가와 시집들이 많아서 생소했는데 천양희, 장석남, 정진규 등 열심히 시집을 읽었던 시들이 나와서 반가웠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내용들이 많아서 책을 인용하여 기록하며 다시 새기고자 한다.

 

한글날에 쓴 사소한 부탁에서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라고 용례 등을 통해 언어 사용이 바르고 적확해야 함을 간곡히 부탁하셨다. 글을 쓸 때 그만큼 더 많이 생각하고 쉽게만 쓰려고 하지 말고 적확한 말을 찾아서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인문학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인간의 깊이란 의식적인 말이건 무의식적인 말이건 결국 말의 깊이인데, 한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존재의 가장 내밀한 자리와 연결된 말에서만 그 깊이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말이나 글이나 함부로 가벼이 할 일이 절대 아니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라도 고심하여 선택할 일이다.

 

변화 없다면 푸른 양이 무슨 소용인가에서는 그들이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새로운 농담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중략... 다른 땅에서 먼 길을 걸어온 손님은 새로운 농담을 전해주는 사람이고, 그래서 천사와 다름없다. 새로운 농담이 삶의 새로운 변화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그에 대한 기약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고 적었다. 나그네는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오는 사람일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가 글을 쓸 때 새로운 것을 찾아 쓰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상력이 낡은 상상력을 뛰어넘지 않으면 농담도 변화도 없는 것이 확실하다라고도 썼는데 누구나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글은 식상하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한 글감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

 

작은, 더 작은 현실에서는 모파상이 그의 소설 피에르와 장의 서문을 인용한다.

중요한 것은 표현하고 싶은 것이면 어느 것이건 충분히 오랫동안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살핌으로써 이제까지 아무도 본 적도 말한 적도 없는 어떤 모습을 거기서 발견해내는 것이다. 어느 것에나 아직 탐구되지 않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우리가 응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이전에 누군가가 이미 생각했던 바의 추억에 의지해서만 우리의 시선을 사용하는 데에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도 많게건 걱게건 미지의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자

 

플로베르가 모파상에게 가르치는 것은 작가가 그 자신의 시각에 질적 변화가 올 때까지 사물을 지켜보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해서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해 내는 글쓰기의 필요성을 강조한 새겨야 할 글인 것 같다.

어떤 작가든 선배 작가에게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상호텍스트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만의 독창적인 발상과 글쓰기를 위한 노력을 당부한 내용이다.

 

이렇듯 글쓰기의 정수를 배우는 듯한 내용들로 가득한 책이다. 내가 읽었던 책과 보았던 영화도 만나지만 처음 대하는 책과 영화는 읽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게 만든다. 내가 만약, 더 일찍 황현산 선생님을 알았고 어디선가 강의하신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달려가서 맨 앞줄에 앉아 두 눈을 반짝이며 숨을 참아가며 귀 기울여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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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부탁 -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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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상을 떠난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내가 예전 트위터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촌철살인의 재기 넘치는 글귀를 보는 재미, 또 하나는 짧은 글 속에 온갖 사연과 이야기, 번뜩이는 혜안을 무겁지 않게 툭 던져 놓는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다. 특히, 트위터는 글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몇 줄 안되는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응축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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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상을 떠난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내가 예전 트위터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촌철살인의 재기 넘치는 글귀를 보는 재미, 또 하나는 짧은 글 속에 온갖 사연과 이야기, 번뜩이는 혜안을 무겁지 않게 툭 던져 놓는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다. 특히, 트위터는 글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몇 줄 안되는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응축시켜 표현해야 하는데, 이건 여간한 내공과 연륜이 있지 않고서야 글 좀 쓴다는 사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후자의 이유로 트친 삼아 읽었던 분들 중 한 분이 황현산 선생이다. 처음 알게 된 것은 문학 평론가 신형철이 진행하던 문학동네 팟캐스트에 출연하셨을 때다. 벌써 4~5년이나 지났는데, 처음 냈던 책 밤은 선생이다인상 깊게 읽었고, 따뜻한 온기를 주는 글이 좋아서 가끔 선생의 글이 지면에 나올 때면 챙겨보곤 했다. 몇 년 전 아프셨는데 수술 경과도 좋으시고 문재인 정부에서 공직 비슷한 걸 맡으셔서 잘 지내시는구나 여겼는데, 최근에 이 책을 보려고 인터넷을 둘러보던 중 선생이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 이상 선생의 글을 못 읽는 것도 아쉽고, 좋은 글만큼이나 좋은 분이 떠나셨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다.


이 책은 선생이 신문이나 잡지에 먼저 썼던 글을 정리해서 펴낸 건데, 삶과 사회와 인간과 문학에 대해서 선생의 일상적인 생각과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고, 특히 문학과 관련해서는 약간은 전문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독창적인 글쓰기에 대해서 선생이 썼던 내용이 인상 깊은데, 읽으면서 생각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몰입’, 영어로는 flow라고 하는데, 미국의 긍정심리학자인 믹센트치하이 박사가 정립한 개념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를 한국에서 서울대 황농문 교수가 자신만의 경험과 시각으로 썼던 책이 몰입 think hard>라는 책인데, 간략히 정리하면 인간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답을 얻게 된다는 거다.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닐지라도 생각이 뇌의 깊은 곳에 있는 잠재 기억과 만나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솟아난다는 거다. 그런데 계속 생각한다는 것이 말 그대로 생각을 끊김 없이 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밥 먹을 때도, 운동할 때도 잠자리에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 말이다. 특히 선잠이 들 때 인간의 기억이 장기기억장치로 이동하는데, 이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가장 크다. 그래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잠이 들면 잠이 드는 순간 손에 든 것을 떨어뜨리게 되고, 선 잠에서 깨는 바로 그 순간에 ‘유레카’를 외치게 된다.


이게 독창적인 글쓰기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래 황현산 선생의 글을 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표현하고 싶은 것이면 어느 것이건 충분히 오랫동안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살핌으로써 이제까지 아무도 본 적도 말한 적도 없는 어떤 모습을 거기서 발견해내는 것이다. 어느 것에나 아직 탐구되지 않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우리가 응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이전에 누군가가 이미 생각했던 바의 추억에 의지해서만 우리의 시선을 사용하는 데에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도 많게건 적게건 미지의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자. 타오르는 불꽃 하나와 벌판의 나무 한 그루를 묘사하려면, 그 불꽃과 나무가 우리에게 다른 어떤 나무, 다른 어떤 불꽃과 더 이상 닮지 않을 때까지 그것들 앞에서 떠나지 말자…

우리는 이렇게 해서 독창적이 된다. … 온 세상에서 완전히 똑같은 두 알의 모래나, 두 마리 파리나, 두 개의 손이나, 두 개의 코가 없다는 진실….. 작가가 그 자신의 시각에 질적 변화가 올 때까지 사물을 지켜보는 방법이다.


마치 분야는 다르지만,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각자의 전문지식으로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과학의 발견, 인생의 의미도 오랜 시간을 지켜보고 주의를 기울여서 살피고 생각하면 그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거다. 글을 쓸 때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밤을 새워 생각하고 고민했는데, 결국 해답은 내가 처음 생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서 깊게 생각하는 것의 무용성을 말하기도 했지만, 그 결론을 구성하는 과정을 지내왔기 때문에 결과물이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응시한다면 뭔가 독창적인 번뜩임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그건 정말 평범함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그 무엇일 거라는 말이다.

c****s 2018.11.26. 신고 공감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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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위안부에 대한 황현산 선생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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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중에서   "전쟁위안부의 징집과 위안소의 운영은 넓게 보아 인류에 대한 범죄였고 좁고 구체적인 관점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른 죄악이었다~~~그들이 군국의 손아귀에 끌려갔건 제 발로 걸어갔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자들이 남자 노룻 한답시고 일으킨 전쟁의 처참한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한국소녀와 일본소녀의 차이는 없다. 소녀상의 한국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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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중에서

 

"전쟁위안부의 징집과 위안소의 운영은 넓게 보아 인류에 대한 범죄였고 좁고 구체적인 관점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른 죄악이었다~~~그들이 군국의 손아귀에 끌려갔건 제 발로 걸어갔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자들이 남자 노룻 한답시고 일으킨 전쟁의 처참한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한국소녀와 일본소녀의 차이는 없다. 소녀상의 한국 소녀는 한국 소녀이면서 동시에 중국 소녀이고 일본 소녀여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일본군의 위안소에는 일본의 창녀들이 있었다면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끌려간 소녀들도 그렇다는 주장을 하는 이영훈이나 이유연이나 같이 붙어먹은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저질스럽고 비인간적인지는 황현산 선생의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저런 인간들이 학자니 하면서 거들먹거리며 호의호식한 세월이 너무 길었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하는 상상력은 저급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황현산 선생의 다른 글도 하나 더 붙인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저 유명한 '민중 개돼지론'이 등장했다.~~내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것은 '개돼지'라는 표현도 아니고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그의 신념조차도 아니다. 그런 주장이나 표현은 토론이 가능하다. 놀라운 것은 늘 토론할 수 없는 것 속에 있다. 문제의 회식 자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획관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봐라." 그는 어떻게 "그게 자기 자식처럼 생각이 되냐"라고 되물으며,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잘라 말했다. 세상에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구의역의 수리공을 진실로 제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위선자가 아닌지 자문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비록 위선적일지라도 그 생각을 마음에 새기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다. 그 많은 사람은 제 생각을 버선목처럼 까 보일 수 없다. 그 사람들과 나향욱들은 끝내 만날 수 없다. 그것이 충격이다. 거기에는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상상력의 차이가 있다."

 

상상력이 남 달랐던 선생,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세상과 공감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선생은 작년 8월 8일 73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달리하셨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쉽게도 세상을 일찍 떠나고,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징그럽게 오래 살아 세상을 오염시킨다.

이 또한 하나님의 숨은 뜻이 없지는 않으리라.

 

 

s*****m 2022.01.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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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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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은 도끼라고 니체는 말했다. 도끼는 우리를 찍어 넘어뜨린다. 이미 눈앞에 책을 펼쳤으면 그 주위를 돌며 눈치를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 그때 넘어진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 일어난다.책이라는 이름의 도끼 앞에 우리를 바치는 것도 하나의 축제다. 몸을 위한 음식도 정신을 위한 음식도 겉도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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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은 도끼라고 니체는 말했다. 

도끼는 우리를 찍어 넘어뜨린다. 

이미 눈앞에 책을 펼쳤으면 그 주위를 돌며 

눈치를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 

그때 넘어진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책이라는 이름의 도끼 앞에 

우리를 바치는 것도 하나의 축제다. 

몸을 위한 음식도 정신을 위한 음식도 

겉도는 자들에게는 축제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사실 처음부터 그의 글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왕자의 번역이 그였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해 무얼하는가.

어느날 그가 쓴 사설을 하나 읽었고

뒷통수를 맞은 것같이 놀라움에 빠졌다. 


그 후 그의 책을 찾아 읽었고, 글을 읽었다.


그러다 어린왕자를 번역한 사람이라는 것도, 

나도 그의 번역을 가지고 있음도 알았다.


다 읽었던 글을 다시 읽는 데도

구절구절이 마음에 메이고 남는다. 

아무래도 나는 오랫동안 이 책을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배우기도 할 것 같다. 





g********r 2019.04.2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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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함 속에 숨겨둔 깊음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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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문학, 그것도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평생 고민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한국에서 참 파란만장한 시기였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황현산 선생이 번역 작업을 하며 인간과 언어를 고민하면서 정치 이슈, 사회 문제, 여러 작품에 대해 기고한 글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의 모든 글은 ‘인간 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쓰러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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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문학, 그것도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평생 고민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한국에서 참 파란만장한 시기였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황현산 선생이 번역 작업을 하며 인간과 언어를 고민하면서 정치 이슈, 사회 문제, 여러 작품에 대해 기고한 글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의 모든 글은 ‘인간 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쓰러지는 자가 누구를 용인하고 무엇을 관용하겠는가”(문제는 또다시 민주주의다)라고 일침을 놓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위태로움을 말했고, 홍어를 모욕과 비하의 의미로 쓰는 걸 개탄하며 천박한 근대주의 의식을 비판하기도 했고(홍어와 근대주의), 구의역 젊은 수리공의 죽음에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비인간성을 안타까워하기도 했고(간접화의 세계), “말은 제 힘을 다해 우리를 응원하는데말이 상투적으로 되는 것은 우리들의 나태함 때문이라고 지적했고(날카로운 근하신년), 생리적 분출인 욕설보다 과도한 말의 축약이 더 문제적(말의 힘)이라고도 봤다. 프랑스 문학에서 여성혐오 얼마나 많았는지 세세히 지적하며 페미니스트로의 당부도 여러 차례 했다(여성혐오라는 말의 번역론, 문단 내 성추행과 등단 비리, 풍속에 관해 글쓰기, 희생자의 서사).

 

“물론 그 혐오는 그 혐오가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설명을 거치고 나면 말은 얼마나 힘을 잃는가.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우리가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직장의 여성 동료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심지어는 만나지도 못할 여자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사실상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한다. 나는 한 사람의 번역가지만 ‘여성혐오’라는 번역어의 운명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고통의 시대에 더 많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불행을 그 오해 속에 묻어버리려는 태도가 비겁하다는 것은 명백하게 말할 수 있다.”
- 「'여성혐오'라는 말의 번역론」

“남자의 서사가 손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남자들의 행동거지가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벌써 풍속의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풍속이 만들어주고 승인해주는 남자들의 습관은 자주 남자들의 생리나 본성과 혼동되기 때문에 반성을 해도 그 반성의 효과는 없다. 생리와 본성을 어떻게 철저하게 반성할 수 있겠는가. 남자들의 권력 행사가 하나의 풍속이 되었다는 것은 그 권력의 힘이 일상의 미세한 틈에까지 스며들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 「풍속에 관해 글쓰기」 중에서

“보들레르의 살인자와 한국의 살인자들은 물론 다르다. 저쪽 나라 살인자는 여자에게서 해방되기 위해서 살인을 했지만, 지금 이 땅의 살인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에게서 떠났거나 떠나가려는 여자들을 살해한다. 억압과 해방의 주체가 역전되어 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살해된 여자들은 말할 수 있는 입이 없지만 남자 살인자들은 사랑의 서사건 증오의 서사건 자신의 서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사는 어느 나라 어느 남자를 막론하고 늘 똑같다. 남자에게 여자는 그가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사회의 얼굴이다. 어렸을 때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어머니가 대신해서 전달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아내가 대신해서 요구한다. 남자를 붙잡고 잔소리하는 여자나 거꾸로 남자에게서 해방되려는 여자나 본질적으로 그 요구 사항은 같다. 남자는 저 ‘명령하는 사회’를 자기 힘으로 파괴할 수는 없지만 여자는 만만해서 죽일 수 있다. … (중략) … 이 글을 읽는 남자들은 자기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가부장 사회에서 착한 남자건 나쁜 남자건 남자의 서사는 같다. 남자의 서사는 못난 살인자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웅의 서사다. 먼저 들어야 할 것은 희생자의 서사다. 역사의 발전은 늘 희생자의 서사로부터 시작한다.”
- 「희생자의 서사」

 

언어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하신 게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선생은 평생 언어를 다뤄온 만큼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에 더 신경을 써달라며 한글날 여러 당부를 담은 사소한 부탁을 남겼다. 바로 뒤이어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남기셔서 난감한 세태를 콕 집어 말씀하셨다 싶었다

 

“말에는 그렇게 부르기로 하는 정식 계약과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부르기로 양보하는 이면 계약이 있다. 언어는 통일될 수 있어도 이 이면 계약은 통일되지 않는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것이 다른 부류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되며, 어떤 언어로는 절실한 진실에 다른 언어는 관심조차 없다. 언어가 서로 만날 때 이 불확실한 것들이 솟아올라와 산과 들을, 사랑과 증오를 새롭게 고찰하고 새롭게 정의하게 한다.
진리는 늘 새로운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한 언어의 관점에서 다른 언어는 제가 표현하지 못하는 숨은 진실을 쌓아놓은 저장고와 같다. 그래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언어를 지키고 가꾼다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의무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의무가 된다. 우리가 추석에 고향에 가는 것은 우리의 언어가 닿지 못한 진실을 체험하기 위한 여행이기도 하다. 귀신은 어떤 언어에도 감응하지 않는다. 숨은 진실로 거기 있을 뿐이다.
- 「언어, 그 숨은 진실을 위한 여행」 중에서

“아폴리네르가 시 「마리」를 쓴 것은 그의 애인 마리 로랑생과 헤어졌을 때였다. 그는 뒷날 한 편지에서 로랑생과의 결별을 읊은 시들 가운데 이 시가 가장 통렬한 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왕방연의 시조는 이와 전혀 다른 정황에서 씌었다. 왕방연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사육신 등이 도모했던 단종 복위 사건이 사전에 발각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 중인 노산군에게 1457년 가을 사약이 내려질 때 그 책임을 맡은 의금부도사였다. 그는 이 고통스러운 책무를 수행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냇가에 앉아 이 시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시와 시조의 배경이 된 사건은 그 크기가 다르다. 하나는 두 연인 사이에 일어난 지극히 사소한 애정의 이력일 뿐이지만, 다른 하나는 한 나라의 운명과 연결된 사건이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감정의 크기가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제는 구체적인 생활 감정이 될 수 없는 임금과 신하 사이의 정서보다는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서도 늘 같은 호소력을 지니는 연인 사이의 정서가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두 연인 간의 사사로운 인연과 한 국가의 대사가 같은 말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어의 신비와 인간 심정의 깊이를 동시에 요약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 인간의 내적 삶에는 그가 포함된 사회의 온갖 감정의 추이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한 사회에는 거기 몸담은 한 인간의 감정이 옅지만 넓게 희석되어 있다. 한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슬픔은 이 세상의 역사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어야 할 일이다.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이다. 그 점에서도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다.”
- 「슬픔의 뿌리」 중에서

 

우리는 책을 왜 읽는가. 공부는 왜 하는가. 나를 살피지 못하면서 진리를 안다는 게 가능이나 할까. 황현산 선생은 제가 무지 앞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무지에 둘러싸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황현산 선생의 말씀은 사소하게 들을 게 없다

 

“여우가 ‘길들인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아닌 것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그것의 삶 속에,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있게 하는 일이다. 존재가 세상에 진정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권력이나 소유나 명성이 아니라 이 길들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사람들, 왕,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같은 사람들은 이 비밀을 모른다. 왕은 우주를 지배하고 사업가는 세상을 모두 소유하였지만 그들의 삶은 오히려 졸아들어 있다. 허영쟁이와 술꾼은 자기들 자신에게 사로잡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 왕자』에서 지식인을 대표하는 지리학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에게 세상 만물은 지식의 대상이지만, 그 물건 하나하나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다. 그는 알 뿐, 사랑하지 않는다.”
- 「『어린 왕자』에 관해, 새삼스럽게」

“독재자들이 견디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그것을 혼란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렸지만, 따지고 보면 그 혼란은 인간 심성의 복잡함이자 그 인간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복잡함이며, 거기에 토대를 둔 온갖 사회적 가능성과 창조력의 복잡함이었다. 박정희의 유신 체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노래에서건 영화에서건 시에서건 모든 종류의 새로운 발상법이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ㅡ「더디고 더딘 행복」 중에서

“문학 교육이건 다른 교육이건 교육만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도 없다. 미숙한 선생은 그 영향력의 깊이로 자신의 교육자적 자질과 가치를 가늠하려 한다. 그래서 마침내는 학생의 정신과 육체를 식민화하려 한다. 글쓰기 교실의 수업처럼 제도의 뒷배가 없는 교육일수록 그 식민화의 욕구가 더 커질 수 있고, 그 지배 방식이 폭력적일수록 학생에게 미치는 선생의 영향력이 깊어진 것 같은 환각이 일어난다. 그러나 학생을 식민화하려는 시도는 선생이 스스로 품고 있는 교육자적 자질에 대한 의구심과 연결될 때가 많다. 지배의 권력이 교육자의 자질을 확인해주지는 않는다. 가르치는 자는 지배하는 자가 아니며, 배우는 자는 지배받는 자가 아니다. 그 관계가 민주적일 때만 교육의 내용도 민주적 가치를 얻게 된다.
문학과 예술을 직업으로 삼고 그 기예를 익힌다는 것은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 좋은 아들이 되는 일이 아니며, 윤리적인 인간이나 좋은 시민이 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토마스 만이 그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에서 그 주인공의 입을 통해 발설했던 말이다. 문학과 예술이 한 시대의 윤리에 지배되는 것도 아니고, 그 윤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은 빈말도 헛말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문학과 예술이 비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며, 윤리적 탈선을 진보적 윤리관으로 포장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문학은 한 시대의 윤리적 인습에 굴복하거나 봉사하지 않기에, 그 윤리의 뿌리와 현재적 의의를 성찰하는 여유를 확보한다. 그래서 문학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이며 생생하게 윤리적이다. 윤리적 탈선이 권력의 위계에 이른다면 거기에서는 윤리의 뿌리도 그 생생함도 찾을 수 없다.”
- 「문단 내 성추행과 등단 비리」 중에서

“중요한 것은 표현하고 싶은 것이면 어느 것이건 충분히 오랫동안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살핌으로써 이제까지 아무도 본 적도 말한 적도 없는 어떤 모습을 거기서 발견해내는 것이다. 어느 것에나 아직 탐구되지 않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우리가 응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이전에 누군가가 이미 생각했던 바의 추억에 의지해서만 우리의 시선을 사용하는 데에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도 많게건 적게건 미지의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자. 타오르는 불꽃 하나와 벌판의 나무 한 그루를 묘사하려면, 그 불꽃과 나무가 우리에게 다른 어떤 나무, 다른 어떤 불꽃과 더이상 닮지 않을 때까지 그것들 앞에서 떠나지 말자.
우리는 이렇게 해서 독창적이 된다.”
- 「작은, 더 작은 현실-권여선의 「봄밤」을 읽으며」 중에서

“아는 것이 많고 문장이 유창하다고 해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만이, 마음속의 처절한 상처를 염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말할 수 있는 인간만이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된다. 그래서 시와 소설의 진실도 아름다움도 인간의 처절함과 염소의 무심함 사이에서 결정된다.”
- 「편집자 소설과 염소-김선재 연작소설집 『어디에도 어디서도』」

 

말할 자유와 권리를 내세우며 깊은 숙고 없이 함부로 말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지금 이런 귀한 말씀을 해주실 분이 이제 안 계신다니 생각할수록 슬프다.

 

 

 

 

 

 

 

g******i 2018.11.2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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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글의 힘에 주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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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글의 힘에 주목 한다고백하건데 매년 적지 않은 책을 읽지만 지독하게도 관심분야만 편독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매번 때를 놓치고 나서야 저자와 그의 책을 뒤늦게 발견한다. 최근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부음으로 처음 알게 된 황현산黃鉉産(1945~2018) 선생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조심스런 마음으로 처음 만난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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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글의 힘에 주목 한다

고백하건데 매년 적지 않은 책을 읽지만 지독하게도 관심분야만 편독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매번 때를 놓치고 나서야 저자와 그의 책을 뒤늦게 발견한다. 최근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부음으로 처음 알게 된 황현산黃鉉産(1945~2018) 선생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조심스런 마음으로 처음 만난다.


무엇이 있기에 한 사람의 죽음에 다수의 사람들이 애석해하며 그의 부재가 가져올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사람의 살아온 삶이 지친 일상의 위안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사회적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할 것이라 짐작한다.


이 책은 ‘2013년 3월 9일에서 시작되어 2017년 12월 23일’에 이르는 시기로 이때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건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던 시기와 겹쳐진다. 이는 저자의 가치관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사회적 공감을 불러오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만큼 조심스럽다는 말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의 이력은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학이 담당할 사회적 가치와 더불어 동시대의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와, 사회구조적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사직 속에 존재해야하는 인간의 존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범위다. 문학을 기본으로 두고 있지만 이를 넘어서 사회와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인 부분에 구의 관심이 펼쳐진다. 바른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을 일상에서 실천하며 이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 그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글이다.


글이 가지는 힘의 원천은 바로 글쓴이의 일상생활과 글에 담긴 감정의 의지가 다르지 않을 때 형성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의 글이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오고 그들의 가슴에 온기를 전해주었다는 것으로부터 앞으로 그의 부재가 불러올 공허함이 크게 다가올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5부에서 만나는 문학작품에 대한 선생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나름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며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을 마련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사소한 부탁이지만, 이들 지엽적인 부탁이 어떤 알레고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한글날에 일상에서 쓰이는 한글에 관한 몇 가지를 국립국어원과 한글과 컴퓨터에 부탁한다. 이 부탁이 앞으로 그를 그리워하는 한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넘겨지지 않는다. 이제‘밤이 선생이다’를 손에 든다.

m*****8 2018.08.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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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사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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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맞아 하루만에 읽었던 책이다. 실상 전작 산문집인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다시 이 책을 구입하기까지 많이 망서리기도 했다. 쉽게 읽히는 저자의 문체와 달리, 전작에서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다소 가볍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사회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는 이 책의 문체에서 또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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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맞아 하루만에 읽었던 책이다.

 

실상 전작 산문집인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다시 이 책을 구입하기까지 많이 망서리기도 했다.

 

쉽게 읽히는 저자의 문체와 달리, 전작에서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다소 가볍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사회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는 이 책의 문체에서 또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만이 아닌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었고, 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부조리한 현실이라는 배경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2016년에 거대한 파도로 우리 사회를 감쌌던 촛불집회로 그 힘이 결집되었던 것이라 하겠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이미 저자가 유명을 달리하여 더 이상의 산문집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도 이 책의 구입을 결정하게 된 요인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첫 번째 산문집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는 목차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1~3부의 내용이 더 좋았다고 생각되었다.

 

대체로 1~3부의 글들은 신문이나 잡지 등에 2013년부터 기고했던 글을 모아 엮은 것이라 생각되는데, 당시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과 저자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고 여겨졌다.

 

저자는 '머습새와 밭 가는 해골'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대신한 글에서, 죽어서 박새가 된 머슴 이야기로 시작한다.

 

죽어서까지 박새의 또다른 이름인 머슴새로 불리는 불합리한 중세적인 신분제의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이 글을 읽다가 문득 시집살이 끝에 배고파 죽은 뒤 '소쩍새'가 되어, 밤마다 '솥이 적다'고 우는 설화를 떠올렸다.

 

결국 체념과 인종이라는 태도는 현실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라는 거대한 배에 갇혀 끝내 살아오지 못한 영혼들을 달랠 수 잇는 것은 그러한 현실을 초래한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결코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만큼 저자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냉철하고 비판적이라는 것을 다양한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의 원고들이 대체로 박근혜 정권이 출범했던 2013년부터 시작하고 있어서인지, 저자의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도드라져 표출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문학과 문화 현상에 대한 단평이 담긴 4부와 5부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책의 3부까지의 내용에 대해서 더 크게 공감했다.

 

늦게라도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선생께 명복을 빌어본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18.09.2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