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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중에 사후에까지 존경을 받거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경욷 많지 않다. 최근 전 국무총리이자 전 국회의원이었던 이 책의 저자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도 빠지지 않았던 저자가 92년의 생을 마감했다. 정치는 관심도 없고 오래전 정치계를 떠난 정치인이라 잘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전 대통령들과 함께 '3김시대'의 주인공이었다고 하니 정말 현대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저자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 <남아있는 그대들에게>인데 젊은 시절 자신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이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 용산 숙소에서 식사 시중을 들고 있던 아내를 처음 보았고 인연이 되어 호감을 가지다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 아내가 임신한 상태였지만 6개월간 미국 유학을 떠났고 돌아온 뒤에도 전방으로 갔고 아내는 아이를 업고 최전방에 있는 남편을 찾아왔다. 그런 아내가 이 세상을 먼저 떠났다. 오래전이지만 신문사가 주간해 대학생들과 환담을 나눈적이 있는데 그때의 대학생은 이미 사회의 주역이 되고 장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대학생,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젊음은 무엇보다 커다란 무기고 큰 자산이다. 젊음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고 무엇이든 빠리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지금의 청년들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전할 말이 있다. 정치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었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저자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딸은 선거 유세 현장까지 따라다니며 아버지를 도운다. 이런 자식들은 언제나 정치인 누구의 자식으로 좋은 일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잘 이겨내어 고마워한다. <남아있는 그대들에게>의 저자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정치인이었는지 그 상황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책 한 권을 통해 본 모습은 가족에 강한 애정을 가지고 신념을 가진 정치인으로 보인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의 과거사와 그외의 많은 것들이 알려지면서 지금 다시 저자가 정치인으로 살았던 시대가 재해석되고, 재조명되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이 다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사를 좀 더 알 수 있게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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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나이 90을 훌쩍 넘긴 상태였고, 부축 없이는 혼자 일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접했던 터다. 우리 역사에 적잖은 흔적을 남긴 그의 죽음을 세상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김(金)씨 성을 가진 세 명 중 유일하게 그만 대통령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풍운의 정치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시대가 그에게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 절대 빈곤의 늪으로부터 벗어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그와 같은 선택은 필수였다는 믿음을 그는 끝끝내 버리지 못했다. ‘대통령’으로 불리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 권력자였다. 그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 대상이어서는 곤란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을 때 그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미 직접 글씨를 쓸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픈 욕심이 일었던 모양이다.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했는지가 궁금했다. 아직 충분히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아 그에 대해 평가하긴 이르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도 적용되리라고 생각한다. 더딜지라도 결국에는 옳은 방향을 향했던 게 우리의 역사다. 김종필은 1926년 태어났다. 일제강점기다. 가난은 오로지 그에게만 주어진 게 아니었다. 거기에 덤으로 나라 잃은 설움까지 삼켜야 했다. 사범대에 입학했던 그가 군인의 길을 걸었던 것 또한 가난의 탓이 컸다. 교육자의 꿈이 좌절했다고는 해도 그의 삶 전체가 꺾였던 건 아니었다. 전쟁은 군인에게 하나의 기회였고, 그는 중공군을 포로로 잡는 등의 공을 세워 훈장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개혁하는 데 적격인 방법으로 ‘혁명’을 주창했다. 군인답게 칼을 빼어들었고, 5.16의 주축으로 우뚝 섰다. 타락한 군부는 혁명의 움직임을 미리 눈치챘음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다. 그는 5.16을 성공할 수밖에 없는 혁명이었다고 기록했다. 계속해서 ‘혁명’이라는 불편한 단어를 사용한 까닭은 그가 실제 5.16을 혁명이라 칭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세 개의 신문을 구독해 읽고 있다는 그에게 허락된 관점은 딱 거기까지였다. 아마도 자신의 관점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의심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역사를 뒤흔들고도 남을 움직임을 자행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던지, 그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지닌 무기력함을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도 큰 자산인 젊음을 믿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을 젊은이들에게 주문했다. 원론적으로는 옳겠지만, 그의 시대와 오늘날이 같지는 않으며 같아서도 아니 된다. 난 믿는다. 그가 혹 오늘날 같은 움직임을 계획했더라면 분명 수많은 이들이 견제를 받을 것이고, 시도하기 전에 제재 당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인생은 스무 살이나 서른 살에 결정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더 마음이 와 닿았다. 자신이 원하는 세상과의 만남을 위해 쿠데타를 감행할 필요는 없다. 권력의 힘을 빌려 수많은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우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제 딴에 명분이야 충분했겠지만, 모든 행동은 비인간적이었다. 그와 뜻을 같이 했던 이들은 순간의 힘을 믿었고, 그 순간이 영원하길 꿈꾸는 조바심에서 국가 폭력을 자행했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에 대한 그리움, 평범하지 못한 아버지를 만나 맘 고생했을 자녀, 특히 딸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책 곳곳에 묻어났지만 이 또한 불편했다.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도 발휘했더라면? 품은 뜻이 흔들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애써 모든 감정들을 ‘사사롭다’ 평해야 했던 것이려나.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단 명제를 증명하며 그 또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메시지가 유언보다 강한 위로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 왠지 그는 모두가 죽지만 모든 죽음이 동일하진 않다는 걸 몰랐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