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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현대의 물질에서 라스푸틴과 같은 존재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쪼개고, 자르고, 갈기갈기 찢고, 불사르고, 파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죽지 않습니다. -스티븐 페니셀 (화학자) 태평양에는 지도에 없는 섬이 있다. 그 섬은 '태평양 대쓰레기장(Great Pacific Garbage Patch)'을 의미하는 영어 약자 GPGP로 불린다. 대략 남한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그 섬의 국명은 ‘Trash Isle(쓰레기 섬)’이며 화폐는 ‘debris(쓰레기 잔해)’이다. 그러나 더욱 치명적인 사실은 쓰레기가 가속화되면 앞으로 2050년이 되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구를 ‘골디락스(Goldilocks)’ 행성이라고 불렀다. 태양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생명체가 존재하는데 적당한 기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결코 적당하거나 이상적이지 못한 환경의 위기에 놓이면서 ‘플라스틱(Plastic)’행성이라는 암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지구촌 곳곳을 오염시키는 수수께끼를 탐구하다가 예기치 않게 플라스틱이 지구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플라스틱은 값이 싸고 원하는 형태로 만들기 쉽고 원하는 색을 입힐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생활용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플라스틱 컵과 빨대는 가볍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너무도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놀랍게도 물티슈에도 플라스틱 성분이 들어가 있을 정도다. 그러니 현대사회에서 플라스틱 없이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플라스틱과 함께 진화하면서 지구를 인간만을 위한 행성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다. 그러나 진화의 이면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수많은 동물들을 죽이는 주범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동물들의 처참한 죽음을 보면서 인간의 파괴적인 탐욕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우리가 먹는 천일염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는 보도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플라스틱의 역습 때문에 인간이 뜻밖의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비극은 점차로 현실화 되고 있다. 지금까지 지구 행성의 다섯 번의 대멸종은 운석이나 혜성의 충돌, 대규모 빙하기 같은 자연적인 현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은 ‘가짜 신(神)’이라는 인간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플라스틱 지구에서 동물들이 멸종되고 있으며,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도 충분히 하게 된다. 만약에 인간이 없다고 하면 동물들은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아가겠지.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방법이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존재를 너무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에드워드 윌슨의『지구의 절반』을 읽으면서 이런 절망적인 원리와 법칙과 다른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지구의 절반을 생명하게 양보하라.”는 저자의 메시지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지구는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대를 ‘인류세’보다 더 위험한 ‘에레모세(Eremocene)’’라고 부르면서 오로지 인간을 위한 ‘고독한 행성’이 되고 말았다고 경고한다. 인간이 건강한 생태계를 파괴한 나머지 다양한 생물들이 멸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지구에서 종(種) 하나 사라지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적자생존에 따라 인간에 적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정당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모순에는 인간을 침입자가 아닌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한다. 한편으로 좀 더 탐욕적인 생각에 따르면 생물들을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정복자다. 다양한 문화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들이 풍요로운 생활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생물들은 빈곤해졌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반드시 짚고 지나갈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많은 생물들의 종(種)에도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종의 역사는 종의 계통도이다. 계통도를 따라 지구의 다양한 생물들의 지도를 작성할 수 있다. 그리고는 환경 보호론자 배리 커머너가 간파한 생태학의 제2법칙인 “우리는 한 가지만 할 수는 없다.” 는 것을 알게 된다. 바꿔 말하면 다양한 생물은 공생(共生)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분명하면서도 단순한 사실이다. 『지구의 절반』은 여섯 번째 대멸종의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생태발자국을 줄이는 데 필요한 정신을 새롭게 밝혀 주고 있다. 인간이 야생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라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지구의 절반을 생명에게 양보해야 한다. 이러한 지구 전체에 대한 반성적인 노력 없이는 인간의 삶은 있을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의 역습에 맞서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이라는 소비자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매장에서 물건을 산 후 과대 포장된 플라스틱과 비닐 등을 분리해서 버리고 오는 운동으로 불필요한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 플라스틱의 낭비를 줄이는 작은 실천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건을 살 때는 장바구니를, 음료나 커피 마실 때는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한다. 손을 씻을 때는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는 것이다.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플라스틱 어택은 매우 힘겨운 도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다양한 생물을 위해 기꺼이 불편을 참아야 한다. 더 이상 생명들을 파괴해서는 우리의 미래는 건강할 수 없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지구의 절반만큼 줄이는 한편 재활용이 더 잘 되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작은 실천은 지구의 절반이 비로소 자연이 살아 숨 쉬게 하는 착한 소비다. 우리가 자연을 소비하는 위험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지구는 모든 생명의 역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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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이미 기후 변화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2017년 11월, 독일 함 고등 법원은 페루 농민 사울 루치아노 릴루야가 독일의 한 에너지 기업에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을 받아들여 증거 조사를 개시하라고 결정했다. 지방 법원의 각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이제 법원은 그 기업이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녹아 침수된 릴루야의 고향과 기업 활동 사이의 인과 관계를 따지게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15년에는 키리바시 출신의 이와네 테이티오타가 기후 난민으로서 보호를 신청한 것에 대해 뉴질랜드가 거부하고 그를 추방한 바 있다. 두 사건은 모두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가 국제 정치의 첨예한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환경 문제가 인류에게 미치는 파급력은 국가와 대륙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를 해결하려는 인류의 대응책도 마찬가지로 전 지구적인 규모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하는 『지구의 절반: 생명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제안(Half-Earth: Our Planet’s Fight for Life)』은 “지구의 절반을 자연에 위임하라.”라고 호소하는 세계적인 자연사 학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전 지구적 처방이자 「인류세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다. 저자는 지구의 절반을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고 서식지를 보전한다면 현생 종의 약 85퍼센트가 살아남으리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생명 세계의 청지기’라는 인류의 자기 이해가 뿌리내리지 않는 한, 많은 생명들이 인류의 무자비한 파괴 앞에 스러져 갈 것이다. 구체성과 실효성, 당위성을 두루 갖춘 환경 대책을 고심해 온 이들에게 이 책의 제안은 심도 깊은 논의의 출발점으로 유효하다. ‘인류세(Anthropocene)’란 홀로세와 구별되는 오늘날의 지질 시대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인류가 등장한 후 지구 환경이 과거와 같은 지질 시대로 묶일 수 없을 만큼 확연히 변화했기 때문에 고안된 것이다. 인류를 위한, 인류에 의한, 인류만의 지질 시대를 만들어 낼 만큼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 자신 또한 생물 세계의 일원인 생물 종, 인간이란 무엇인가? 『지구의 정복자』와 『인간 존재의 의미』,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기획되었다. 사회 생물학의 창시자이자 퓰리처 상 2회 수상자이며, 인문학과 자연 과학 사이의 ‘통섭’을 제창한 거장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사유를 통해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
| 지구환경이 위험하다는 논리가 유행한지도 한참이지만 여전히 지구환경은 위험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생물학의 대가가 과학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서술한 책이다. 지구를 인간만의 것이 아닌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것으로 바라보고 지구의 절반을 내어주자는 흥미로운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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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은 위기 의식에 이 책을 썼다. 지구라는 제약이 있는 생태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웃들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웃들의 존재마저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심지어 그 이웃들을 지금까지 유례 없이 빠르게 소멸시키는 것이 우리라는 위기감에서 절실하게 호소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무지한 대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물종의 위기가 생각보다 정말 심각하다는 것도 잘 알겠다. 하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을까? 윌슨은 BNR의 시대에 우리가 결국 자각과 기술을 통해 위기를 넘어설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넘어야 할 선을 넘어버린 것이 아닐까. 깊은 고민에 잠기게 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