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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의 도리스 레싱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제부턴가 딱히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하는 작품들을 굳이 찾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아마 아내가 보기 위해서 구입한 책으로, 어느 순간 책을 펼치면서 이 작가의 역량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손에 잡은 이후 계속 읽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 소설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고, 남성중심적 문화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상황이 절묘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 책에는 모두 11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작품 해설에 의하면 이 작품들은 모두 1960년대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남성중심적 관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특히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울러 남성들의 허세와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식을 노출시킴으로써, ‘신사의 나라’라는 명성이 지닌 영국 사회의 허위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파악된다. 예컨대 가장 앞에 수록된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라는 작품에서, 무대 디자이너인 바버라 콜스를 유혹하기 위해 애쓰는 그레이엄 스펜서라는 인물의 형상이 바로 그러한 속물적 남성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레싱의 소설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의 심리와 함께 그들이 처한 상황이 매우 세심하게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분량이 아주 짧아서 단편이라기보다는 ‘장편(掌篇)’이리고 할 수 있는 <방>이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의 성격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당대 여성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작품의 짜임새가 탄탄하다고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소설 습작을 하려는 이들에게 ‘단편소설의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는 도리스 레싱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이해된다. 이 작품서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결혼 후 가사와 양육이라는 일상에 갇힌 여성이 느끼는 공허감이 잘 드러나 있다. 결혼을 하고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전의 내면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외형적 삶의 모습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다. 무료하고 공허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고 그것을 이루지만, 결국 집에서의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의 틈입으로 ‘모두의 공간’으로 변해버리게 된다. 어느날 장을 보러간다는 핑계로 마련한 시내의 허름한 호텔방 하나를 빌려 마음의 안정을 취하지만, 마침내 그것조차 남편이 알게 되면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심리가 매우 세심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레싱의 소설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외형이 아닌, 여성들이 안고 있는 내면의 상처가 무엇인지가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왜 레싱의 소설들이 페미니즘의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는지가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즉 남성중심의 문화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적 처지가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레싱의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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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소름이 끼친다. 냉철한 판단력이 깃든 소설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내리는 공포 같은 것, 문장들이 모여 자체적으로 서스펜스를 자아낸다고 할까? 《다섯째 아이》가 내가 읽은 첫 소설이었는데 이 작품 하나만으로 레싱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런 글을 평생에 걸쳐 쓴 작가라면 당연히 한 세대를 대표할 만한 이로 여겨지는 게 당연하다. 사회가 부여한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모두가 보려하지 않은 불안을 들춰보고 또 밝혀내는 통찰력이 대단했다. 옛날에 발표된 소설인데도 시대적 흐름이란 그냥 글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다음에 읽었던 중편집 《그랜드 마더스》는 또 어떠했던가. 나는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타입이 아니지만 이 책은 여러 번 다시 읽었다. 가끔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또 읽을 때 마다 감탄하곤 한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작가란 생각이 들어서다. 도리스 레싱의 초기작을 실은 《19호실로 가다》는 원래 종이책으로 소장하려 했지만 마침 전자책 페이백 이벤트가 있어 구입하게 되었다. 예상한 것만큼이나 좋아서 종이책도 따로 사기로 했다. 전자책 대여는 유효기간이 있어서 오래 드고 읽을 수 없어서다. 1960년대 쯤 쓴 작품들이라는데... 이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가 바라는 바람직한 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요즘과 아주 다르지도 않은 것 같고... 매슈와 수전은 그림과 같은 커플이다. 서로가 첫 상대였으며 나이가 들어 만났던 만큼 다른 커플들의 시행착오들을 유유하게 비껴가는 여유도 부렸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멋진 신혼을 즐기다 계획적으로 아이들을 낳고 교외에 아름다운 집을 샀다. 매슈는 언론인으로서 승승장구했고 수전은 가정을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 두 사람 모두 수전의 상실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명하게 대처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삶의 균열이 생겼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수전이 참석하지 못한 파티에서, 어떤 여자와 잠을 잤다는 매슈의 고백. 사실 그건 수전이 알아챈 것이지 고백도 아니었다. 수전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고 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누가 배우자의 외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수전을 흔든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점이었다. 수전은 무엇을 위해 가정을 보살폈나? 싱글일 때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지만 아이가 생긴 후 자신을 위한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서부터 자유시간이 생겼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다. 수전은 늘 집에 매여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소설에서 직접 읽어봐야한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호텔에 가 방을 하나 빌리지만 그 공간이 알려지면서부터 그 자유도 끝이 난다. 수전이 그 방에서 별달리 한 일은 없다.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고 침대에 누워 자지도 않았고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 자신만의 시간을 만끽했을 뿐이다. 서문에서 도리스 레싱은 이 소설의 결말을 두고 많은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왜 수전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말이다. 작가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나도 잘 설명하진 못하겠다. 이게 단순히 수전의 자아찾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압력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접근하면 조금 괜찮은 답변이 될까. 매슈는 수전이 외도를 했기를 바란다. 아내가 누군가를 만나 바람을 피웠다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외도 상대를 데리고 더블 데이트를 하자고도 한다. 수전은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그 상황에서 맞장구를 치므로) 가상의 상대를 만든다. 그리고 침범된 공간으로 돌아와 그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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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읽었었다. 지금처럼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상태였는데, 굉장히 어렵게 여겨졌었다. 그래서 그후 작가의 작품을 읽겠다는 시도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읽는 작가의 소설은 역시 좋았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동안 책을 읽어왔기 때문인지 그건 알 수 없다.
여러 편의 단편들 중에서 각자가 가진 고민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랑한다고 여겼으나 삶을 살다보면 결혼이라는 것은 그저 남의 일처럼 어쩌면 조금쯤은 지루한 것이 되고 만다.
또한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커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 공허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을 돌봐 줄 외국인 유모를 구하고 그 시간에 혼자서 보내기 시작하는 여인이 있다.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허름한 호텔에 가서 몇 시간을 홀로 보낼 뿐이다. 오전부터 오후 5시까지. 그 어떤 남자도 방문하지 않았고, 홀로 있는 시간이었다. 홀로 있는 그 시간에서야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다르게 보면 이상하다 여길 수도 있었다. 남편 또한 매일 나가서 몇시간을 호텔에서 보내고 오니 수상하게 여겨 사람을 붙였다. 자기만의 공간이 남편에게 드러났다는 것에 울분을 터트리는 여자가 보인다. 그녀가 묵었던 호텔에 다시 방문해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여자.
삶이란 이런 것일까. 홀로 지내는 시간의 소중함. 그때서야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던 한 여성의 독백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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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277쪽)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19호실로 가다 는 ‘참나’를 찾으려는 한 여인의 고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롤링스 부부는 세상물정을 알 만큼 아는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매슈는 런던의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였고, 수전은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결혼 전 두 사람은 쾌적한 아파트를 갖고 있었지만, 합의 하에 사우스 켄싱턴에 새 아파트를 마련했다. 결혼 2년 만에 수전이 임신을 했고, 그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리치먼드에 주택을 구입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2남 2녀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부러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정원이 딸린 리치먼드의 집에서 네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279쪽) 두 사람이 결혼 이전부터 바랐던 것, 계획했던 것들이 모두 착착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280쪽)이라고 작가는 쓰고 있다. 분명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두 사람은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삶에서 오는 설렘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모두 이것을 위해서”(280쪽)라고 말할 만한 ‘이것’이 그들의 삶에서 사라졌다. 신문사에 다니는 매슈는 자신의 일솜씨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그가 애독하는 신문은 다른 신문이었다. 매슈와 아이들을 챙기며 가정을 돌보는 수전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매슈와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빈자리를 느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가정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심한 폭풍이 치는 바다에서 무기력한 사람들을 가득 태운 작은 배를 돌보듯이”(282쪽) 가정을 돌봤다. 직장과 가정에 충실할수록 그들은 삶이 건조하고 단조로워지는 걸 느꼈지만, 그런 삶을 허물 만큼 삶에 대한 열정이 들끓는 것도 아니었다. 매슈와 수전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되도록 부드럽고 애정 어린 태도로 서로를 대했다.
어느 날, 밤늦게 집에 들어온 매슈가 파티에서 만난 여자와 자고 왔다고 고백한다. 수전은 당연하다는 듯 그를 용서해 주었다. 우리 통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전은 매슈를 대한 셈이다. 수전은 이제 매슈가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이전부터 두 사람은 농담처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평생 충실할 수는 없다는 걸 서로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실제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10년에 걸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조를 지켰다. 10년 만에 매슈가 다른 여자와 잤다고 비난을 하는 것은 지성을 지닌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다고 수전은 생각한다. “‘부정’이라든가 ‘용서’ 같은 극적인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지성이 그런 단어들을 금지했다. 지성은 싸움, 삐치기, 분노, 속으로 침잠한 침묵, 비난, 눈물도 금지했다. 특히 눈물을 금지했다.”(287쪽) 수전은 무언가 감정을 드러내야 할 때마다 지성으로 감정을 억압한다. 눈물만큼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는 것이 없는데도 그녀는 그런 눈물을 아예 금지해버린다.
지성의 이름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시간은 화살처럼 흐른다. 두 사람은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열 살과 여덟 살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여섯 살이 된 쌍둥이는 집에서 수전의 보살핌을 받았다. 아이를 돌보면서 수전은 자주 지루함을 느꼈다. 피곤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그녀는 스스로 아이를 돌보는 걸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10년만 더 지나면 자기만의 삶이 있는 여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한쪽에 새겨져 있기도 했다. 시간이 더 흘러 쌍둥이도 학교에 들어갔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크고 아름다운 집에 들어온 어느 날, 수전은 갑자기 대면하고 싶은 않은 뭔가가 집안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안일을 하는 파출부가 따로 있었으므로 그녀는 할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줄 몰랐다.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수전은 집안에서 느끼는 이 외로움을 매슈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현명하지 않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반가운 방학이 시작된 지 나흘째 되던 날, 수전은 쌍둥이에게 폭풍처럼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두 아이는 잔뜩 움츠러든 채 서로 손을 잡고 서서 (이 광경을 보고 수전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당혹스러움과 경악이 담긴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차분하던 엄마가 이렇게 고함을 지르다니. 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엄마한테 간단한 장난을 치려고 한 것이 이유였다. 그냥 터무니없는 장난. 두 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듯 가까이 붙어 서더니, 손에 손을 잡고 가버렸다. 수전은 거실에 혼자 남아 창턱을 매달리듯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수전은 위의 두 아이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고는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큰아들 해리가 동생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엄마가 머리가 아프셔서 그래.” ‘괜챃아’라는 말이 수전에게 고통스럽게 들렸다. (292쪽)
방학이 되자 수전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바쁘다. 혼자 있을 때 가슴을 울리던 공허감을 느낄 겨를이 없다. 하지만 이토록 반가운 방학도 나흘 만에 끝나버린다. 수전은 자기도 모르게 쌍둥이에게 폭풍처럼 화를 낸 것이다. 스스로도 왜 화를 냈는지 모른다. 지성으로 감정을 잘 눌러오던 그녀가 어떻게 한순간에 화를 터뜨린 것일까? 그날 밤 수전은 침대에 웅크린 채 하염없이 울었다. 매슈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남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든 부부가 그렇듯 그들은 그저 같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전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냥한 사람이 되었다. 방학이 끝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일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초조한 마음에 사로잡힐 것 같아 그녀는 날이면 날마다 요리를 하고, 바느질을 했다. 파출부인 파크스 부인이 반발했다. 수전이 집안일을 하면 파출부가 할 일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수전은 매일 일곱 시간씩 주어지는 ‘자유’가 실제로는 자신을 구속한다는 점을 깨닫고 분노에 휩싸였다. 지성으로 억누를 수 있는 분노가 아니었다. 매슈에게 말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성을 중시하는 매슈가 수전의 이런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수전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감정, 그녀 스스로 경멸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감정들이 너무나 강렬해서 떨쳐버릴 수 없었다.”(296쪽) 수전은 지금 도통 자기감정을 조절할 수 없다. 지성을 중시했던 그녀가 왜 이런 상황에 빠진 것일까? 수전은 분노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고 있다. 자기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녀는 바깥으로 보이는 현상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다. 간혹 수전이 매슈에게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는 말을 하면, 매슈는 당신은 여전히 멋지다는 말을 그녀에게 반복할 따름이다. 수전이 진심을 조금이라도 내보이면 매슈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매슈에게서 낯선 얼굴을 느낀다.
수전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매슈는 그녀의 말을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수전, 도대체 어떤 자유를 원하는 거야? 그런 건 죽기 전에는 불가능해! 나라고 자유로운 줄 알아? 나는 매일 10시까지 반드시 출근해야 돼. 그래, 뭐, 가끔 10시 반에 갈 때도 있지만, 어쨌든 나도 이런저런 일들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그러고 나서 일정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하지. 내 말을 오해하면 안 돼. 알지? 6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으면 당신에게 미리 전화하지. 그러니 나 역시 앞으로 여섯 시간 동안 책임져야 할 일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겠어?” (298~299쪽)
수전이 느끼는 외로움을 매슈는 자기 식으로 돌려서 해석한다. 그는 “그런 건 죽기 전에는 불가능해!”라고 단언한다. 수전이 느끼는 외로움을 매슈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지성은 사회의 통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누구나 수전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며 산다. 여자들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매슈 자신 또한 시간에 맞춰 반드시 출근해야 하고, 6시까지 집에 들어오는 반복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수전은 매슈의 말을 들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그는 왜 갑갑함을 느끼지 않는 걸까?”(299쪽)라고. 남편과 대화를 나눈 후 수전은 집 맨 꼭대기의 빈방에 자기만의 방을 마련한다. 식구들은 그 방을 ‘엄마의 방’이라고 부르며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매슈와 장남 해리가 이 문제로 대화하는 걸 듣고 수전은 이렇게 큰 집에서 엄마가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게 호들갑을 떨 일인지 생각한다. 참 힘들고도 힘든 게 ‘엄마’ 역할이다.
엄마의 방을 따로 만들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식구들은 정말로 엄마에게는 방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을까? 매슈와 해리는 쌍둥이들에게 여자는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로 엄마의 방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매슈는 무의식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한다. 남자는 제 감정을 절제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러기가 힘들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필요 없는 방이 여자에게는 필요하다는 논리. 집안에서 자기만의 방을 찾지 못한 수전은 혼자 있을 방을 찾기 위해 기차를 타고 빅토리아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작고 조용한 호텔을 찾아낸다. 여성 지배인은 혼자서 낮에만 잠깐 방을 빌리려는 여자가 수상쩍다. 수전은 몸이 좋지 않아 어디서든 자주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호텔 방은 익명의 장소이다. 수전은 얼마나 이런 방을 원했던가. 이 방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을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수전은 호텔 방에서 경험한 느낌을 “절대적인 고독”(306쪽)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자유를 시간이 남아도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자유는 절대적인 고독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고독은 홀로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에만 가능하다.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매슈가 그녀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리 없다. “매슈가 마침내 그녀에게 비이성적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308쪽) 수전은 며칠 말미를 얻어 시골의 거친 풍경 속을 헤맸지만, 전화기가 목줄처럼 그녀를 붙들었다. 당연히 시골 산속에서 마주한 마음속 ‘광기’를 그녀는 제어할 수 없었다. 이도저도 아닌 삶. 일상에 적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상 밖에서 자신의 광기와 마주할 수도 없는 삶. 그녀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수전이 집안일을 등한시하자 매슈는 일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십중팔구 만나고 있을 애인이 그에게 중요했다. 모든 것이 수전의 잘못이었다.”(312쪽)
수전은 소피 트라우브라는 스무 살 아가씨를 입주 가정부로 들인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온 그녀는 영어 실력도 상당했다. 집안사람들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어느 날 수전은 열차를 타고 패딩턴으로 가서 아주 낡은 호텔 방 하나를 얻었다.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여기서 그녀는 네 아이의 어머니, 매슈의 아내, 파크스 부인과 소피 트라우브의 고용주인 수전 롤링스가 아니었다. 친구, 교사, 상인 등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수전 롤링스가 아니었다.” ‘수전 롤링스’라는 이름을 채우는 모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그녀는 낡은 호텔 방에서 ‘절대적인 고독’을 체험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과 만나는 이 시간을 그녀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즐기려고 한다. 일주일에 세 번,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녀는 ‘프레드 호텔’의 19호실에 들렀다. 그 방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으면, 그녀는 그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에게 다른 방은 의미가 없다. 19호실만이 그녀를 절대적인 고독이 숨 쉬는 세계로 인도했다.
가족들은 수전의 빈자리를 입주 가정부인 소피를 통해 채웠다. 아이들은 엄마보다 그녀를 더 좋아했고, 매슈도 그녀와 잘 지냈으며, 파크스 부인 또한 소피의 지시를 두 말 없이 따랐다. 겉으로 보면 수전과 매슈의 사이도 한결 좋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언제나 프레드 호텔에서 느끼던 편안한 고독의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집안에 있는 수전은 껍데기이고, 호텔에 홀로 있는 수전만이 진짜로 느껴졌다. 그녀는 호텔로 가는 날을 5일로 늘렸다. 그러려면 돈이 더 필요했다. 그녀는 매슈에게 매주 5파운드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그녀에게 돈을 주고 이내 등을 돌렸다. 집안일뿐만 아니라 아이들 학교 일까지 이 모두를 소피가 도맡았다. 어느 순간부터 매슈는 그녀에게 애인이 생긴 거라고 생각한다. 애인도 없는 여자가 일주일에 5일을 어떻게 밖에서 지낸단 말인가? 탐정까지 고용해 밖에서 수전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조사한 걸 보면, 매슈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매슈는 수전과 헤어지는 게 싫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매달리고 싶지도 않다. 그는 수전을 자극할 마음에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도 만나는 남자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침이 되자 매슈가 수전에게 더블데이트를 하자고 말한다. 매슈의 본심이 아니다. 그녀도 상관없다고 맞장구를 친다. “네 사람이 교양 있게 관용을 발휘하며 몹시 복잡한 관계를 맺는 데에 장애물은 하나도 없었다.”(331쪽)라는 진술에 나타나는 대로, 매슈는 본심을 속이는 일에서 교양과 관용 정신을 찾는다. 그와 그녀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애인들과 더블데이트를 즐길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교양과 관용이라는 미명 아래 그(녀)가 원하는 것을 무심하게 들어주려고 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표현하며, 자신들이 교양 있고, 관용이 넘치는 사람들이라고 자위한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욱 멀어지는 관계로 이 상황을 표현하면 어떨까.
그녀는 다시 프레드 호텔의 19호실을 찾는다. 절대적인 고독이 있는 곳.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곳. 남편이 탐정을 사서 탐문하기는 했지만, 지금 그녀가 유일하게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이곳에서 그녀는 익명의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되찾았을까? “그러다 딱히 의식을 차리지 않은 상태로 의자에서 일어나 얄팍한 카펫을 문으로 밀고, 창문이 단단히 닫혔는지 확인하고, 벽난로 미터기에 2실링을 넣은 뒤 가스 밸브를 열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이 방의 딱딱한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서는 퀴퀴한 냄새, 땀과 섹스의 냄새가 났다.”(335쪽) 가스가 방안으로, 그녀의 허파 안으로, 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큰 만족감을 느낀다. 19호실에서 그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들어선다. 그녀는 죽음을 통해 절대적인 고독을 얻게 될까?
매슈와 수전은 소위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에 맞춰 그들은 자기감정을 절제한다. 말이 절제지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맞출수록 수전은 마음이 텅 비는 것을 느낀다. 한 남자의 남편, 네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면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수전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 이러저런 노력을 한다. 자기만의 방은 절대적인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방이다. 남편과 아이들이라고 해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방. 그녀는 프레드 호텔 19호실에서 그런 방을 얻었지만, 애초부터 그 방은 자기만의 방이 될 수 없는 곳이었다. 매슈가 탐정을 풀어 찾아낼 수 있는 방이 어떻게 자기만의 방이 될 수 있겠는가. 수전은 자기만의 방을 자꾸만 밖에서 찾으려고 했다. 자기 마음에 숨어 있는 자기만의 방과 치열하게 마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은 매슈도 문제지만, 마음 밖에서 자기만의 방을 찾으려 한 수전 역시 정작 제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데서 매슈만큼이나 문제적인 인물이라 할 만하다.
수전은 매슈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매슈는 수전의 행동을 자기 생각으로만 판단했다. 수전의 마음에만 ‘19호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매슈 또한 그만의 19호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수전과 매슈가 19호실을 자기 밖에서만 찾고 있다는 점이다. 수전은 ‘절대적인 고독’을 느낄 수 있는 내면 공간을 발견했지만, 그것과 맑은 마음으로 마주하지는 못했다. 매슈가 교양을 명목으로 가면을 쓰고 수전을 대했다면, 수전 또한 가면을 쓰고 매슈를 대했다. 교양이라는 가면을 쓰면 마음속 19호실은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교양은 자기 안에 갇힌 에고와 같다. 에고에 갇힌 사람은 자기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마음속에 있는 19호실을 활짝 펼치려면 무엇보다 에고라는 감옥에 갇힌 상황으로부터 먼저 벗어나야 한다. 수전의 자살은 에고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알려준다. 어찌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수전’이 되어 이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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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편집이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가, 작품들이다. 잘 알고 있는 작가, 작품이지만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몰두하게 되었다. 내가 이 분의 작품을 진즉에 많이 접했었나 스스로 질문하면서 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끌려들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지극히 사랑하는 관계다. 그것이 일상이 되어 아무것도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흐른다. 그만큼 둘의 관계는 신뢰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찮은 일이 일어나고.
사랑이 한결같은 믿음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특히 부부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서로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일은 쉽지 않음을 자각하게 만들어 주는 글이다. 하나의 사소한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홍수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의 삶은 증명해 준다. 이 책도 그런 사랑의 문제를 언급해 보고 있다. 4 아이의 엄마지만 관계의 환멸은 그녀를 호텔 19호실이라는 공간으로 인도한다. 그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을 하는 일없이 보내는 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남편에게 발견되고, 관계가 회복할 길 없는 암담함에 처하게 되면서 살아갈 기력을 잃게 된다. 그는 19호실을 마지막으로 방문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른 것인가? 얼마나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 여성들이 아기를 키우면서 자신의 삶을 빼앗기고 있는 것인가? 과연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죽여 나가는 것이 가능한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9호실은 질문만 가득히 던지고 독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사랑은 혼자만의 소유가 아님을, 서로 맞추어 나가야함을, 인내와 절제가 필요함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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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의 모음집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 책이 나온건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는데 과연 우리의 삶이 많이 변화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그 답은 변하지 않았다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개 페이지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다"라고 말한 레싱의 인터뷰를 보고 구입했는데 역시 제가 생각했던 대로의 이야기 같네요 그리고 그 레싱의 말처럼 자유로움에 대해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볼수 있는 기회를 주는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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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후보 명단에서 하나 빼기
-이런 극적인 일이 자신의 상상과 달리 전혀 독특한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굴욕감을 느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어쩌면 다른 무리에 속한 사람들도 모두 같은 일을 겪었을 것 같았다.
작가가 꿈이었으나 라디오나 서평을 쓰는 쪽으로 진출한 그레이엄은 사교 모임에서 무대 미술가 바버라를 성적 대상으로 지목한다.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녀와 인터뷰를 30분가량 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오자 그레이엄은 그녀와 동침을 할 계획을 세운다. 결국 그는 바버라의 집에서 성폭행을 시도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저항하는듯했으나 그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종 후보 명단의 천 명 중 한 명을 자신의 품에 안았다며 만족해한다. 바버라의 대응은 시대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의 상황에서는 무리수를 두는 처사일 수도 있기에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그레이엄의 어처구니없는 행각은 독자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도 하고 혐오감을 유발하기도 하며 비참하리 만큼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도리스 레싱이 의도한 것은 남녀 관계의 성문제와 일에 대한 기존 관념들의 시각뿐만은 아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레이엄이 서술한 결혼생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의 경우 사랑을 운운하기보단 의리나 동지애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결혼 생활도 가정의 파탄을 초래하는 일탈이라는 극적인 순간도 결코 독특한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성공한 여자를 성적으로 정복하려는 그릇된 행위로 자신의 만족스럽지 못한 일과 일탈이 주는 굴욕감을 보상받으려 한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두어 번 읽다 보니 바버라의 노련미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그레이엄의 끝까지 지질한 모습은 그 어떤 마침표보다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옥상 위의 여자
-톰은 여자가 아까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었다..... 중략..... 톰은 기뻤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볼 수 없을 때면, 그녀가 더욱 자신의 것이 된 것 같았다.
때는 유월, 장소는 옥상 위. 지붕 작업을 하려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굴뚝 옆 응달에 몸을 식히려던 세 남자는 굴뚝 사이로 갈색 담요 위의 태닝을 하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마흔 다섯즈음 보이는 해리, 석 달쯤 전 결혼한 스탠리 그리고 열일곱 살 톰은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그녀의 시선을 끌어보지만 개의치 않는 여자의 모습에 분노한다. 이 작품은 그 어떤 인물보다 톰의 심리 묘사가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해리와 스탠리를 따돌리고 톰은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녀가 그에게 남긴 것은 증오심이었다. 톰이 그녀를 엿보며 상상해 온 둘만의 유대감, 다정함 등은 한낱 꿈,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그들이 뜨거워진 지붕 연판에 물을 뿌려 더위를 식혀보려 했지만 이내 김으로 증발해버렸던 물처럼. 그들은 그녀를 '레이디 고디바'로 칭한다. 레이디 고디바는 영국 코벤트리 지방에서 전해지는 '고디바 부인'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 전설은 대략 이렇다. 11세기경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가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는 바람에 농민들이 몰락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게 된 레오프릭의 아내 레이디 고디바가 남편에게 세금정책을 개선해 줄 것을 청한다. 그러나 레오프릭은 그녀의 간청을 쉽게 수락하지 않았는데, 대신 농민에 대한 진실된 사랑의 징표로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고려해 보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그녀가 마을을 도는 동안 아무도 훔쳐보지 않기로 했는데 호기심 많은 톰이 커튼을 슬쩍 들추어 레이디 고디바를 훔쳐보게 되었다. 톰은 그 순간 장님이 되었고 레오프릭은 아내의 간청을 받아들여 코벤트리를 잘 다스렸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엿보는 호색한을 가리켜 영국에서 'Peeping Tom(엿보는 톰)'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의 유래가 바로 '고디바 부인'의 전설에서 비롯한 것이며 현재는 관음증 환자나 관음증 자체를 가리키는 명사로 쓰인다. 도리스 레싱이 이 작품에서 그녀를 고디바로, 세 남자 중 한 명을 톰으로 설정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쨌든 옥상 위의 세 남자와 여자 모두 이해하기 힘든 인물인 건 사실이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사람들은 옆구리에 불타는 창 같은 것을 하나 꽂은 채 돌아다니며 그것을 뽑아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상처처럼 고통스러운 어떤 것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어 안달하고 있다.
옛사랑 A와 B. 그들과 이별 후 이번엔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C를 만날 계획을 세운다. 그녀는 A와 B에게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C와의 만남도 두려워하는 눈치다. 온전한 사랑의 형태는 동그라미인 것일까? 나는 그녀의 고뇌 속에서 셀 실버스타인의 작품 동그라미 시리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떨어져 나간 동그라미의 조각을 찾아다니는 행위 그것은 완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라 하겠다. 지하철에서 만난, 사실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내면의 그녀에게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는 행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모든 사랑의 끝은 결국엔 쓰라린 고통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자문을 수없이 해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이 단편은 누군가에겐 아련한 기억 속의 오마주일 것이다. 위안이 되어주는 것 같다가도 철저하게 봉인된 상자를 여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한때의 사랑이 상처로 남아있지만 지워버리기엔 너무 소중해 가끔 몰래 꺼내어 보고 금세 숨겨버리는 아픔을 간직한, 그녀처럼 심장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어느 길 위에, 어느 카페 안에, 어느 마을에 가득할 것이다. 심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해방과 자유가 아닌 또 다른 구속일지도 모르겠다. 도리스 레싱은 이 단편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었지만 다른 사람도 반드시 좋아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단편을 그녀의 최애 작으로 꼽고 싶다.
*한 남자와 두 여자
-도로시가 갑자기 꿈틀거리며 다가오자, 작고 반항적인 그녀의 하얀 등과 담요로 꽁꽁 감싼 그녀의 아들이 대조를 이루었다.
예술가인 두 쌍의 부부 도로시와 잭, 스텔라와 필립이 스스럼없이 가깝게 지낸다. 도로시와 잭은 여름을 에섹스에 있는 오두막에서 지내고자 하고, 필립이 출장을 간 사이 스텔라는 그들을 만나러 간다. 도로시는 생후 6주가 된 아이가 있다. 그녀는 히스테릭한 언행을 보이며 잭과 스텔라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다. 도로시는 산후 우울증이다. 출산 임박 석 달 동안 그녀는 놀라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출산 후에는 자신 안에 창의성이 모두 죽어버렸다고 하소연을 한다. 결혼과 임신이 시간을 두고 일어나고 마침내 출산을 하게 되면 '아기'의 탄생이란 기쁨과 환희를 느끼지만 '나'라는 정체성 또한 잃어버리는 듯한 감정이 생기는데 그것이 산후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도로시의 제안은 일종의 투정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한 남자와 두 여자>는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기보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듯한 느낌이 내내 들었던 작품이다. 억지로 감정을 쥐어짜내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지도 않으며 극도로 절제하고 있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심리묘사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방
-나는 항상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긴 여행에 대한 흥미를 안고 오후에 꿈나라로 향한다. 그렇게 선잠이 들어서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곳으로 이끌려 간다.
상자 같은 작은방 네 개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온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집을 여기저기 손본다. 그녀는 밤보다 낮에 자는 것을 더 흥미롭게 생각한다. 어느 날 오후 전쟁 중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된 꿈을 꾼다. 그 이후로 그 꿈속의 방으로 돌아가 보고 싶어 한다. 이 단편은 매우 짧지만 임팩트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세상은 시간이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오랜 친구만큼이나 친숙하다고 한다. 칼 융은 무의식과 의식이라는 두 의식이 내포하고 있는 개인의 상징성이 꿈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주인공이 꿈속에서 만난 아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겪은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상실한 끔찍한 기억이 무의식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각자의 정신 속에 여러 개의 무의식이라는 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 대 영국
-노동계층과 중하층 가정 출신으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특히 취약하다. 그들에게 학위는 몹시 중요하다. 또한 그들은 낯선 중산층 관습에 적응하느라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은 기준의 충돌과 문화적 충돌의 희생자이며, 자신의 출신 계급과 새로운 환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영국 대 영국>은 몇 페이지 넘기다 보니 몇 년 전 보았던 뮤지컬 빌리 엘리엇이 오버랩 되었다. 작가가 쓴 서문에 따르면 돈커스터 근처의 광산촌에서 광부 가족의 집에 일주일 동안 머무른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빌리 엘리엇은 19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아버지 재키와 형 토니를 중심으로 탄광촌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편견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성장해 나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그 직업을 대물림해야 하는 노동계층의 숙명.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응원한다. <영국 대 영국>에서도 찰리의 가족들 모습에서 그러한 면모가 드러난다. 다만 빌리에 비해 찰리는 온 가족이 찰리의 대학 공부를 위해 헌신하지만 찰리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정신착란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찰리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의 어깨에 커다란 짐 꾸러미가 올라가 있는 듯 느껴져 읽는 내내 씁쓸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두 도공
-꿈속에서 내가 그 마을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깨어난 뒤에는 안 될 것도 없죠. 그래요, 토끼가 노인의 손에서 흙바닥으로 깡충 뛰어내렸습니다...... 중략...... 노인은 너무 행복해서 울었죠...... 중략...... 게다가 그 가엾은 노인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토끼 한 마리쯤 누릴 자격이 있어요.
<두 도공>의 화자인 '나'는 런던 외곽의 마을에서 교사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메리라는 도공을 안다. 그리고 어느 날 꿈속에서 빨간 흙으로 뒤덮인 황무지로 둘러싸인 마을 공터에서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빚고 있는 늙은 도공을 보게 되고 메리에게 꿈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보낸다. 늙은 도공은 계속 화자의 꿈속에 나오게 되고 처음 크게 반응이 없었던 메리는 점점 화자의 꿈속 늙은 도공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언젠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두 도공>이 상징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작가의 의도 측면에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메리가 현실에서 진흙으로 빚은 토끼를 화자가 받아 꿈속에서 노인에게 건네고 노인이 물을 뿌려 내려놓자 토끼(짐승)이 훌쩍 뛰어내려 정착지에 도달하는 장면은 현실 속 메리와 꿈속 노인, 즉 두 도공이 봉착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인 것 같았다. '토끼'는 그들의 문제를 와해시키는 매개체인 것이다. 화자의 꿈과 메리의 현실 세계는 표면적으로는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공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대판 마술적 사실주의의 면모가 돋보인 이 작품 역시 도리스 레싱의 훌륭한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와 남자 사이
-남자와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왜 여자라는 성을 잃어버리는지는 하느님만 아실 거예요...... 중략...... 잭은 그 빨간 머리 여자의 영리한 머리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정치에 대해 똑똑한 소리를 늘어놓는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 여자가 칼럼을 중단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죠.
톰의 정부였던 모린이 톰의 부인이 된 여배우 페기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누군가의 아내가 된 여자는 으레 여성으로써의 면모를 잃게 마련이라는 전제하에 모린은 페기의 망가진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페기는 이미 톰과 헤어진 뒤였고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모린과 페기는 술을 마시며 대화하다가 서로가 동병상련의 처지임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도모한다. <남자와 남자 사이>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가도 공감되기도 하고 이따금씩 폭소를 자아내는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웃으면서 읽기엔 두 여자의 대화는 매우 진지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이었을까?
*목격자
-그런 멍청한 여자애한테는 딱이에요. 그 애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결혼밖에 없잖아요. 그런 애들이 생각하는 건 결혼뿐이죠. 그 애도 이제 남자에 대해 알게 될 거예요.
50이 넘도록 연애도 한 번 못해보고 경리사원 브룩 씨는 정년퇴직 연령이 되었다. 저축한 돈으로는 살기가 힘들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앞에 새로 들어온 여자 경리 직원 마니가 나타난다. 그녀는 사장의 낙하산으로 들어온 데다 실무 능력도 형편이 없어서 직원들에게 미움을 사는데... 마니와 잘 엮여보려다 사장과 마니가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걸 알아차린 브룩 씨. 마치 블랙코미디를 한 편 보는 듯한 느낌이다. 브룩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지난달에도, 그전 달에도 주위에서 익히 봐온, 연예 기사에서도 흔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20년
-선명하고 차가운 분노가 전기처럼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방금 결단을 내린 사람답게 힘찬 발걸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향해 걸어갔다.
20년 전 엇갈린 약속으로 인해 헤어졌던 두 남녀가 칵테일파티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익숙한 소재지만 도리스 레싱은 원망이라는 감정을 두 사람의 짧은 만남에 짙게 담아낸다. 과거 한 번의 엇갈림으로 20년을 넘게 안 본 연인 사이라면 정녕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였을까? 분명 만나는 동안에도 서로에게 큰 믿음과 사랑은 없었을듯하다. 나라면 그냥 모른척했을 듯.
*19호실로 가다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 제목으로 쓰였을 정도니 단연 최고로 뽑을 만한 이야기다. 주인공 수전의 상황만 보아도 기혼층의 독자가 훨씬 더 많이 공감하지 싶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며 산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적이고 행복한 일이라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날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남편이 입던 목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나온 쫄바지 차림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마주하게 될 때,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건 사실이다. 수전의 19호실을 통해 도리스 레싱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지만 수전이 꼭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야 했나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극한 직업이 '엄마'라는 광고를 보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언제부턴가 헌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엄마라는 존재, 그리고 부부라는 관계와 육아라는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노동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작년까지 버지니아 울프에 심취하여 거의 모든 작품을 다 섭렵하면서 오랜 기간 헤어나질 못했는데 재독하는 내내 울프가 오버랩되어 힘겨웠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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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이 책은 이번 생은 처음이라 라는 드라마에서 알게 되었다 사실 소설 속에 나오는 가상 소설인줄만 알았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보았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막상 읽고보니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19호실로 가다도 그랬고... 같이 수록된 다른 소설들도 나는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아니면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을수도 있었을테고 어쨌든 19호실로 가다 이 소설이 제일 읽고 싶었던터라 끝까지 읽긴 했다 공감이 가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이해하기 어렵고 거기다 슬픈...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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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하얀 집. 딸과 아들에 딸 아들 쌍둥이 총 네 아이를 둔 부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롤링스 가이지만, 평온한 일상 속에서 점점 균형을 잃어 가는 수전은 프레드 호텔의 19호실에 자신만의 방을 만들었는데... 단편이라 금방 다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감정의 소모가 큰 작품이어서 표제작 <19호실로 가다>를 먼저 읽었습니다. 런던의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였던 매슈와,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수전. 일을 잘했었기에 회사에서 돌아오라 러브콜을 보내지만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가정을 위하여 자신의 커리어도 포기하고 아이와 남편에게 집중하던 그녀는 어느 날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아 채고 가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서서히 잃어 갑니다. 남편의 외도를 마음에서 내몰지 못한 그녀는 점점 일상에서의 균형도 상실하고 결국 모든 것을 버린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 과정이 참...너무 와닿기도 하면서 또 어리석다는 생각도 들지만 비난할 수는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196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지금 읽어도 예전 작품의 느낌이 나지 않고 현대에도 적용이 될 법한 이야기라니 놀라웠습니다. 페이백 행사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기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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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은 오랜만에 읽습니다. 도리스 레싱 작가님은 이름만 들어봤지 작품은 처음 읽어 보는데요. 단편소설이 11편이나 들어 있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한테는 적당한 작품인거 같습니다. 책 제목이 19호실로 가다로 되어 있어 제일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요. 결혼한 후 12년 동안 자신만의 시간이 없었다며..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