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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무라 게이치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마쓰무라 게이치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내용보기
인류학자의        깊고 따뜻한  에세이   이 책과 저자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내게 임팩트를 주었다. 첫 번째는 문화인류학자 라는 분의 글을 처음 읽어서 신선했다. 두 번째는 한권의 단행본에서 에티오피아 라는 나라를 무수하게 접하는 일이 처음이었다.저자 마쓰무라 게이치로는 대학때 실습으로 에티오피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인류학 조사를 하는 학생으로 처음 시작한 이
"마쓰무라 게이치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내용보기

     인류학자의

        깊고 따뜻한  에세이

 

 

이 책과 저자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내게 임팩트를 주었다.

첫 번째는 문화인류학자 라는 분의 글을 처음 읽어서 신선했다. 두 번째는 한권의 단행본에서 에티오피아 라는 나라를 무수하게 접하는 일이 처음이었다.

저자 마쓰무라 게이치로는 대학때 실습으로 에티오피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인류학 조사를 하는 학생으로 처음 시작한 이래 20년째 이 분야에서 학자의 길을 걸어왔다.
서양권에서 아프리카를 연구한 책은 종종 접했으나, 일본 사람이 다룬 내용은 처음 만났다

책의 구성은
경제, 감정, 관계, 국가, 시장, 원조, 공평함의

7개 채프터로 목차가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인류학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저자가 키워드로 나눠서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
처음에는 그래서 조금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문화인류학 그리고 에피오피아. 이 주제들이 저러한 카테고리들에서 언제 어떻게 드러날까.


첫장 경제에서 교환과 증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품과 물건은 사람 사이에서 오고간다. 이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교환 혹은 증여.
교환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상품을 거래할 때의 행위다.

마쓰무라 게이치로의 어법은 간명하거나 건조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딱딱한 말투에 이 책의 성격이 이러한 줄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의 한 에피소드를 처음 소개하는 대목에서 나는 갑자기 심쿵했다. 너무도 따스한 사연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엄격 근엄했기에 예고도 없는 그 에피소드는 나를 확 사로잡았다.


에티오피아에서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더 놀라운 건, 그들 구걸하는 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대부분의 에티오피아인들은 구걸하는 사람에게 작은 액수라도 기꺼운 모습으로 적선을 한다는 것.
또한 돈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금액이 작아도 상대에게 복을 비는 말을 하고 웃으면서 감사를 표한다.

처음에는 작가는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꼭 매번, 모두한테 돈을 주어야 하나 고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를 자주 가고 그 사회를 알게 되면서는 일말의 고민도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주머니에 잔돈을 준비해두고 단돈 1비르 (50)라도 기꺼이 준다고 한다.

1비르를 받은 사람중에 그 누구도 작가에게 얼굴을 찌푸린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정도의 돈이라도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복 받으실 거예요라고 말해준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이든 어디든 그 나라의 멋진 모습에 반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 나라의 좋은 모습, nice한 것들만 보고 그 나라를 좋아하기는 쉽다.
반면에 그 나라에서 치부에 해당하는 모습, 외국인들에게 되도록 감추고 싶은 것을 보았을 때 그때도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의 에티오피아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이 작가가 에티오피아를 참 존중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상황에서라면 저럴 수 있다고 헤아려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류학자의 자질이구나 라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차츰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감정편에서는 교환이나 증여가 생성하는 감정을 말한다.
사회라는 구성체에서 우리는 결국에 사람이나 물건을 통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판매, 구매 행위에서는 대부분 어떤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요즘의 우리의 모습이다.
그마저도 직접 사람을 마주 대하지 않고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거래를 하면 아예 감정이란 배제된다.

줘야 하는 것을 주고 받아야 할 것을 받는다면, 관계는 그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교환 관계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 되는 공감을 억압한다.
상대방의 말이나 표정을 읽는(=공감하는) 것이 이 상황에 어울리는 커뮤니케이션을 이어나갈 열쇠가 된다.
( p.59)


저자는 일본을 포함한 1 세계 나라들에서 교환 행위가 성행할 때 공감 능력이 점점 결여되는 것이 아닌가 지적한다.
게이치로가 에티오피아에서 체류하면서 관찰과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인간적인 것들이었다.

에티오피아 식당에서는 누군가 혼밥하는 것을 자주 보지 못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누군가 식사하고 있을 때 식당으로 이웃이나 지인이 들어오면 바로 같이 먹자고 말한다.
심지어 외국인인 게이치로 작가가 길을 걷고 있을 때 모르는 에티오피아 사람이 다가와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권유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인 독자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긴 했다. ^^ 모르는 사람을 저렇게 턱 믿어버려도 되나. 그러나 적어도 작가가 거주하는 동안에는 작가가 도난을 당한다던지, 폭력을 입었다던지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으니 의심은 거두어도 좋았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사회를 형성한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도 있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때로는 공감/감정을 증대시키거나 부지런히 억압함으로써 다양한 타자와 맺는 관계의 그물코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다.
수많은 물건이나 말, 행위를 주고받으면서 공감/감정의 스위치를 on 또는 OFF로 하며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경제도 감정도 이런 스위치의 작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작동법을 이해한다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의 실타래를 풀어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 p.64)

 


3관계. 앞 장에서 다룬 감정은 자연스레 관계의 주제로 옮겨진다. 가족부터 해서 친구, 연인, 지인까지 우리는 매일매일 감정을 형성하면서 관계를 이루어 간다.
마쓰무라 게이치로는 주고 받음 없는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 타인과 관계를 이어가면서 우리는 자신의 어떤 감정을 상대에게 주고, 상대로부터 어떤 감정을 받는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지인. 직업상으로 만나는 동료들.
사람들은 이런 주변인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관계를 만들어가게 된다.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는 것, 국가를 변혁시키는 것. 학문에서는 이런 거대 담론을 다루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개인들의 관계에서 비롯한다고 강조했다.
마을,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의 아주 작은 관계부터 고찰하는 것이, 나라와 세계를 탐구하기 전에 먼저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문화인류학의 본질과도 궤를 같이 하였다.


에티오피아는 유명한 커피생산국이다. 남미나 다른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국 일부에서는 커피를 전량 해외로 수출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에티오피아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커피의 전체 수확량 절반을 국내에서 소비한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진정으로 커피를 사랑하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으로 느꼈다.

커피를 마실 때 에티오피아 마을에서는 자주 이웃을 초대한다고 한다. 행여 집에서 안의 사람들끼리 마시는 일은 있을 수도 없다고 한다. 혹시나 그렇게 하면 몰래 마셨다고 험담을 듣게 된다. 신기한 문화였지만 그만큼 커피를 나누는 일이 보편화되었음을 알았다.
커피 타임에는 원두를 가는 소리가 나고, 원두 볶는 향기가 동네에 퍼진다.

전혀 다른 민족, 종교를 가리지 않고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는 이야기가 참으로 훈훈했다. 에티오피아에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그리스도교, 무슬림이 공존한다. 그런데 그들이 커피를 마실 때 만큼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이웃이라면 늘 초대한다고 한다.
저자는 커피 문화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이웃끼리 얼마나 자주 함께 커피를 마시는지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많게는 하루에 다섯 번씩 근처에 사는 사람이 모여서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사람들은 민족이나 종교, 언어라는 고정된 틀만을 기초로 관계로서의 사회를 쌓아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시시한 소문에 즐거워하며, 각자의 체험을 재미있고도 우습게 이야기하면서 유대를 실현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쌓아나가는 행위가 공통의 이해나 인식을 형성하고, 언어나 종교의 벽을 넘어 함께 살아갈 여지를 만들어낸다.
민족이나 종교가 달라도 깊은 우정으로 결속되기도 하고,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일구기도 한다.
( p. 80)


작가가 경험한 에티오피아의 휴머니즘은 이른바 1세계 사람들이 타인을 대하는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각박한 사회에서는 외국인이라서, 문화가 달라서, 다른 종교라서, ○○이기 때문이라며 이질적인 타자를 정해진 카테고리에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은근하게 처음부터 타인과의 관계 쌓기를 거부해버리기 쉽다.
작가는 이를 배제의 시선이라고 했다. 이는 나아가서는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한다.
게이치로가 보기에 이런 식의 배제는 우리의 풍요로운 가능성을 좁히는 것이다.
풍족한 생활을 당연한 듯이 향유하는 많은 이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작가는 통렬히 말한다.

저자는 강조한다. 사회는 관계망이고 관계로서의 사회는 멈추는 법이 없다고.
좋건 싫건 누구든 이 운동의 연쇄에 속해 있다. 그렇기에 사회를 움직일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한다.

내가 누군가와 맺는 관계를 변화시킨다면, 아무리 사소해보일지라도 이는 반드시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주고받는다. 지금 나와 당신을 연결하고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본다. 이 움직임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주고받으며 그 관계의 자장을 뒤흔들어 그 위치를 비틀어놓으면 된다.
( p.84)


사뭇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작가는 자신이 에티오피아에서 경험한 것들을 적절히 대입하면서 논지를 전개한다. 저자의 문체에 적응하고부터는 그래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각 장 chapter의 끝에 작가가 20대 때 에티오피아에서 쓴 일기를 수록하고 있다.
일기는 20년 전에 쓰여졌기에 풋풋하면서 본문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 줬다.

저자는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국가와 시장이라는 거대한 체제를 고찰해본다.

그리고 마무리는 원조의 이야기로 향한다.
에티오피아가 원조를 많이 받는 최빈국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선진국들은 에티오피아에 식량 원조를 시행하고 있다. 원조 물자, 구호품은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선물도 아닌 기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선진국들이 무조건적으로 에티오피아 등의 빈국에 원조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나름대로 계산하여서 원조하고 있고, 외교 전략에 따르기도 한다. 또한 시장 개척이 가능한가를 고려하는 시장의 논리도 들어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이렇게 원조를 받으면 이것이 일반 국민과 빈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 걸까.
작가를 통해 듣는 얘기는 씁쓸한 것이 많아서 충격을 주었다. 에티오피아의 정치는 독재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이다.
선진국과 국제단체에서 원조 물품을 받으면 이는 정치권이 개입되어서 배분된다.
기관과 인권단체에서 감시를 하지만 이는 에티오피아의 정부 당국 깊숙이까지는 닿지 못하고 있었다.

게이치로는 국가시장이 처음부터 명확한 윤곽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 경제를 비롯한 국가와 시장 자체는 제도에 불과하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국가의 권력이 사람들을 짓누를 때, 시장이 사람들을 착취할 때이다.
우리는 이럴 때는 국가에도 시장에도 저항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무력하거나 어리석지만은 않다. 그래서 역사에서 발전과 진보가 이어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학은, 서양 근대의 국민국가와 시장경제라는 거대한 힘을 비판해 왔다고 한다.
현재는 라는 존재로부터 분리된 힘을 비판하기만 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국가나 시장이라는 세계를 생성하는 속에 있기 때문이다. (p.155)


관계를 통해 사회를 형성하고, 그렇게 구축된 공동체는 의미있다는 것.

당장 (거대한) 국가나 시장을 변화시킬 수 없을지라도, 자신이 구축한 세계의 힘을 믿는 것. 게이치로는 이를 구축 인류학 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세계에는 수많은 주의’(ism)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세계의 누구나가 안전하고, 자유롭고, 인간답게 사는 목표를 지향한다.

저자는 그렇게 현란한 용어가 아닌, 아주 단순하면서도 상식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결국은 공평한 사회가 많은 사상들이 지향하는 바 라는 것.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

엔딩에서 작가는 단언하고 있다. 공평한 세계를 실현하는 것은 혁명적인 수단이 아니라고 한다. 이미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 중에 공평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있다.


에티오피아를 포함한 빈곤한 나라들에는, 외국에서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는 이들과 견주면 절망적인 불균형이 있다.
작가는 그들을 생각할 때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는 문장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그리고 끝에도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진지하고 진실한 마음을 점차 또렷하게 느껴갈 수 있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
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자의 차분하면서 날카로운 이야기들로 이러한 깨달음을 주었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구축하는 관계, 그 사회의 변화의 힘을 믿는 것의 가치를 전해주었다.

 
( 책에서)

무조건 정의를 내세우는 것도, 소리 높여 혁명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다. 이미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가 분명히 경험해왔던 마음에 빛을 비추어 그 가능성을 연다.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의 바깥에 있는 힘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 우리 속의 공평함에 대한 욕구가 중요한 실마리다.
( p.169)

국가가 하는 일이므로 나와는 관계없다는 생각, 시장에서는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경계선과 벽 안에 머무른 채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그냥 지내라고 명령하는 무언의 압력이 가해진다. 그 답답한 분위기는 균형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을 옥죄고 불공평을 재생산한다. 세상에서 느껴지는 갑갑함불합리함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78)

우리에게 가능한 일은 당연함의 세계를 성립시키는 경계선을 어긋나게 만들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단을 새롭게 조합해 보고, 은폐되어 보이지 않는 이어짐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를 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다. 이는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나의 첫걸음은 다른 누군가가 한발을 내딛게 될 또 다른 떳떳치 못함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이런 작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경계 밖으로 살짝 발을 내미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184)

YES마니아 : 로얄 b********5 2020.01.06. 신고 공감 2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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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모로 독특한 책입니다. 작은 크기에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소책자인데 6개 장의 소제목들이 경제, 감정, 관계, 국가, 시장 그리고 원조라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는 인류학 책입니다. 그런데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이 왠지 요즘 많이 출간되는 인간관계나 심리학에 대해서 다루는 책처럼 보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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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모로 독특한 책입니다작은 크기에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소책자인데 6개 장의 소제목들이 경제감정관계국가시장 그리고 원조라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는 인류학 책입니다그런데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이 왠지 요즘 많이 출간되는 인간관계나 심리학에 대해서 다루는 책처럼 보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 조감도를 그려가며 지금껏 느껴온 개운치 않은 찜찜함과 마주하려 했다고 합니다이 책에서 인류학적 관점을 xd해 세계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를 탐구해 보고 있습니다저자는 문화인류학의 탐구는 먼저 타자의 곁에 서서 그 사람의 자세를 응시하는 일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그런 관점을 통해 세계의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는 탐구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타자는 20년 가까이 관계를 맺어온 에티오피아 사람들이었습니다그에게 에티오피아는 사회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불편한 것 투성의 나라입니다그럼에도 정신이상자도 병원에 가두지 않고 일반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처음 보는 외국인도 환대하며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에티오피아인들의 행동 양식에 점점 젖어들었고 10개월간의 에티오피아 체류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평생 살아온 일본이 오히려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본에는 이상한 사람이 부재하다는 점입니다바로 여기에 개인과 사회국가를 이어주는 열쇠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일본에서는 정신이상을 일으킨 사람은 가족이나 병원시설에 억지로 떠넘겨져 일상생활에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는 장소에 보내집니다그를 어딘가에서 마주치더라도 보이지 않거나 있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라서 쩔쩔맨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타자와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보통의 인간’, ‘보통의 세계라는 현상이 유지된다고 합니다그러나 그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 보통의 세계는 실은 바로 곁에 있는 타자에 의해 항상 근본이 뒤흔들린다고 지적합니다이 책이 목표로 삼는 구축 인류학은 그런 뒤흔들림을 통해 만들어질 도 다른 세계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구축주의(Social Constructionism)’란 개념은 어떤 일도 처음부터 본질적인 성질을 갖추고 있지 않고 여러 가지 작용을 받아 구축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젠더나 스트레스처럼 기존이 있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이나 관점은 계속해서 형성되는데 그러한 젠더나 스트레스라는 말이 일반화됨으로써 그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스트레스가 있는 상황 즉 그러한 좋지 않은 감각과 느낌을 설명할 길이 없게 됩니다즉 기존에는 없었던 이러한 단어나 개념이 계속 존재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현실조차 만들어 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이 사회와 시장과 국가의 모습이 원래 그랬거나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특정한 방식으로 구축된 것일 뿐이며허물고 다시 구축할 수 있는 구조물과 같다고 주장합니다그가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와서 본 일본사회는 걸인을 보고 드는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기꺼이 적선을 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게그러한 떳떳하지 못함과 같은 감정까지도 억누르는 지나치게 감정을 제어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그러한 사회를 변혁하는 길은 내 속의 떳떳치 못함을 인식하고경계를 새로 긋는 일이라고 저자는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이 얇은 책자를 통해서 인류학에서 다루는 기본 문제들을 사례 중심으로 쉽고 재미나게 풀어쓴 책입니다특히 일본의 젊은 문화인류학자가 공정한 사회를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입니다일본 사회에 대해서 기술하였지만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g 2018.07.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내용보기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지은이 마쓰무라 게이치로 / 옮긴이 최재혁 / 한권의책2018.08.13사정이 생겨 뒤늦게야 리뷰를 적는 이 책은 리뷰어 신청을 할 때부터 제목에 또 홀렸다.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나는 누구에게 떳떳하지 못한 걸까, 사회에서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마음으로 이 책에 홀린 듯 신청을 했었고, 사실 당첨될 거라고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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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지은이 마쓰무라 게이치로 / 옮긴이 최재혁 / 한권의책

2018.08.13


사정이 생겨 뒤늦게야 리뷰를 적는 이 책은 리뷰어 신청을 할 때부터 제목에 또 홀렸다.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나는 누구에게 떳떳하지 못한 걸까, 사회에서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마음으로 이 책에 홀린 듯 신청을 했었고, 사실 당첨될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잊고 있었다 ^^;

리뷰어를 신청한 것조차도 잊고 있었는데 신청을 하고 선정이 됐구나 깨달은 건 등기 미수취 쪽지가 붙어있으면서부터였다. 기대가 없는데 선물을 받았던 기분이라 좋았다. 그리고 선물은 선물이 맞았다. 책은 여는 글부터 강렬했다.


구절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슈퍼에서 점원들은 아저씨를 보면 항상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웃었고, 다른 손님들은 아저씨의 존재를 모르는 척하며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아저씨는 늘'이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함'을 만들어낸 것은 아저씨 자신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우리인지도 모른다. 아저씨와 대화를 나눈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계속 장을 보던 캐나다인 가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과 7 페이지에 있는 대목이다. 사실 아주 간단한 이치인데, 사람들은 이걸 모른다. 그리고 별 기대도 안 하고 들었던, 별것아닌 여는 글이 아주 묵직하게 한방을 날렸다.


누군가를 이상하게 만드는 건 다른 누군가도 아닌 그 누군가를 감싸고 있는 세계다. 보편적이고 보통인 건 무얼까, 평범한 건 또 뭘까. 일반적인건 또 뭐지, 정상인건 또 뭘까. 그 모든 건 사회 구성원끼리 이게 바른 거다, 라고 정의하는 것에서 나간다고 말한다. 나는 적어도 이 책이 말하는 구축주의에서 그렇게 느꼈다.


또 하나의 강렬했던 구절은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의 그 여성은 붐비는 인파에 등을 돌리고 자그마한 천을 깔고는 혼자 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황은 혼자서 선택한 결과는 아닐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곁눈으로 인식하면서도‘상관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결과다.] 이다.


나는 이 단락은 사회에 개인주의적 이기심을 말하고자 함인가 고민했다. 내가 느끼는 현재는 점점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지 않고 더욱 개인주의적이 되어가고, 더욱, 고립화 되어 간다는 거다. 지은이를 포함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사카 지하철 역에서 할머니를 지나치듯, 현대 사회에서 인류는 타인에게 쉽게 손을 뻗지 못하게 됐다. 그건 다시 또 원점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한다. 사회에 탓일까, 아니면 상대에게 쉽게 손을 뻗을 수 없게 만드는 같은 인류의 탓일까.


저 구절을 읽으며 작년인가 제작년 겨울에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드러누워있던 남자가 떠올랐다. 112에 신고라도 해야하나 생각했지만 취객과 얽히면 좋을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 사람이 취객인지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신고하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사실 인류학이든 인문학에든 관심이 없었다. 인류에 대한 박애로 교복을 입을 시절에는 국경 없는 의사회를 꿈꿨었고, 또 일생 종교에 귀의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도 했다. 또, 월드비전이나 유니셰프를 통해 봉사하는 삶도 꿈꿨고. 한때는 그랬는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이 책은 그런 내게 불편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이 책에 대한 무언가를 더 얹어 적지 않을 생각이다. 이 다음은 이 책에 흥미가 생긴 분들께서 직접 읽었으면 한다. 잘 만든 책이다. 이건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구축주의:

일본에서 구축주의라는 용어는‘(Social) Constructionism’을 가리키는데, 사회의 현실이나 현상, 실태 등이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감정, 언어 등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지고 제도화, 관습화된다고 보는 사회학적 입장을 뜻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골드 s*****3 2018.08.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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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왜 '혼커피'를 꺼릴까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왜 '혼커피'를 꺼릴까" 내용보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에 속하지 않고,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회가 나와 맞지 않으면, 사회가 나를 구속하고 억압하기만 한다면, 그래도 그 사회에 속하고 동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마쓰무라 게이치로의 책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것은 그 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왜 '혼커피'를 꺼릴까" 내용보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에 속하지 않고,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회가 나와 맞지 않으면, 사회가 나를 구속하고 억압하기만 한다면, 그래도 그 사회에 속하고 동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마쓰무라 게이치로의 책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것은 그 한 사람의 내면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정상' 혹은 '이상함'으로 규정하는 일과 관계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에티오피아의 농촌 마을과 중동의 여러 도시에서 현지 조사를 펼치면서 부의 소유와 분배, 빈곤과 개발 원조, 해외 이주 노동과 같은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경제, 감정, 관계, 국가, 시장, 원조 등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이제껏 관찰하고 연구한 바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마실 때 으레 이웃을 초대한다. 집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면 "저 사람은 집에서 혼자 몰래 커피를 마신대요."라고 동네방네 소문이 난다. 혼밥, 혼술도 아니고 혼커피가 안 된다니. 뭐 이런 풍습이 다 있나 싶지만, 저자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공적인 사실로 만들어 '유대감'을 과시하는 효과를 가지는 수단이다. 자기와 다르다고 해서, 낯설고 어색하다고 해서 다른 나라나 문화, 종교, 취향 등을 함부로 비난해선 안 되는 이유다.


에티오피아는 호적이나 주민등록이 정비된 제도로 잘 갖춰져 있지 못하다. 출생 신고도 하지 않고, 이름도 부모와 조부모가 각자 마음대로 지어서 부른다.'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이름이 없기 때문인지,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낮고 통제보다 자유를 선호한다. 주민등록이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인지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고 사회가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일본의 문화와 정반대다. 만약 국가 권력보다 개인의 자유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본에서 살면 얼마나 답답할까. 자기 이름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믿는 사람이 에티오피아에서 살면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맞는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고 세월아 네월아 살아가는 것도 '떳떳하지' 못한 태도다.



j****y 2018.08.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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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무라 게이치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마쓰무라 게이치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내용보기
에티오피아의 농촌이나 중동 도시를 현장으로 삼아 부의 소유와 분배, 빈곤과 개발, 원조에 관해 연구하는 신진 인류학자가 인류학으로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 평상시 잘 접하지 못한 이야기이고 구축 인류학이란 게 뭔지 잘 몰라서 궁금하였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를 마주하게 되는 역시나 불편하
"마쓰무라 게이치로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내용보기

에티오피아의 농촌이나 중동 도시를 현장으로 삼아 부의 소유와 분배, 빈곤과 개발, 원조에 관해

연구하는 신진 인류학자가 인류학으로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 평상시 잘 접하지 못한 이야기이고 구축 인류학이란 게

뭔지 잘 몰라서 궁금하였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를 마주하게 되는

역시나 불편하기는 하지만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하고 찜찜하지만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

우리는 타자와 대면할 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품는다고 한다. 무의식중에 타자의 감정이나 욕망에

자신의 마음을 공명시키는데 이런 공감이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그런데 상품 교환의 현장에서는 누구라도 투명한 존재가 되어 감정이나 마음없이 교환을 해야 한다.

구걸하는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동전을 받지만 슈퍼에서는 물건을 공짜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가난해 보이거나 나이가 많다거나 몸이 약하고 아프다는 식의 정보는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져

제거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길모퉁이에서 구걸하는 노파를 볼 때도 점차 이러한

교환 방식을 발동시킨다는 것이다. 동시에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들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떳떳치 못함이라는 감정을 은폐한다는 것..

그리고 구걸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것...

교환 방식에서는 물건을 받지 않는 한 공짜로 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서 샘솟는 감정에 따를

필요와 의무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 싹트는 공감을 억압하게 된다는 것...

저자는 에티오피아에 가면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주기 위해 물건을 살 때 될 수 있으면

잔돈을 남겨두려고 한단다. 자신이 그들보다 부당하게 부유하다는 '떳떳하지 못함'을 느끼고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것을 받았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런 떳떳치 못한 느낌에 가능하면

따르려 한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도와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들보다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압도적인 격차에 대한 떳떳치 못함 때문이란다.

남을 도와야 한다는 선의를 가진 경우에는 상대를 멸시하게 되고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자책하는 경우에는 상대를 두려워하게 된다는 말에 머리 속이 두둥~해졌다.

교환 방식에 굳어있던 몸과 마음에 경종이 울렸다고나 할까?

누구나 압도적인 격차나 불균형을 보면 자연스레 균형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숨겨져 있던 불균형을 눈앞에서 목격하면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변하고 그 변화가

세계를 움직여간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인류학은 여러 가지 차이를 가진 사회를 병렬적으로 비교하고

특권적인 것이라도 당연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학문이다.

구축 인류학으로 상품 교환, 증여, 재분배의 경계를 뒤흔들고 경계를 넘도록 촉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저자는 시장과 국가, 시장과 사회, 사회와 국가가 유착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유착이 없다는 듯, 세상에는 강고한 경계로 나누어진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거나 경계를 밟고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는데 국가가 하는 일은 나와는 관계없다는 생각,

시장에서는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다.

시장과 국가의 한복판에서 우리 손으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틈을 발견하고

당연하다고 떠받쳐왔던 틀을 우리 손으로 뒤흔들 필요가 있다고 당연함의 경계를 흩트리자는

저자의 말을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떳떳치 못함을 강하게 느끼면서 말이다.

t******1 2018.08.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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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내용보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우리는 어쩌면 괜스리 떳떳치 못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생각을 해보게 된다.세상이 나의 생각대로 움직지 않음에도 찜찜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속속 드러나는까닭에 또 찜찜하거나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세상은 원래 그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왠지 나는 떳떳치 못하다는 느낌을지울 수 없기에 이러한 마음의 불편함, 찜찜함, 떳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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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우리는 어쩌면 괜스리 떳떳치 못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세상이 나의 생각대로 움직지 않음에도 찜찜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속속 드러나는
까닭에 또 찜찜하거나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세상은 원래 그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왠지 나는 떳떳치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이러한 마음의 불편함, 찜찜함, 떳떳치 못함의 의미를 문화인류학을
통해 살피고 왜 그러한지를 알수 있게 설명해주는 책을 만나본다.


이 책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는  우리의 일상이든 생활이든 삶이든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개운치 않은 찜찜함을 느낄 수 있는 현상들에 대해 보통의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대하는 우리의 행동과 생각의 결과를 놓고 모든것은 구축된 구축주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그러한 구축주의에 물들어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가 보기에도 정신이상자로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을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끌어안고
삶을 살아간다.
일본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혹은 또다른 현대국가의 어느 나라라도 대부분 정신
이상자에 대해서는 자신과는 무관하고, 또 알고 싶지도 않은 상태로 그들을 격리 또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억류시키는 방법으로 관계의 단절을 만든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이나 억류가 아닌 관용적인 태도로
그 나름대로의 상황에 맞게 관계를 맺고 산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자신이 아닌 타자에 대해 일말의 관심이나 동정없이 가차없는
관계의 단절을 끌어오고 보통의 인간, 보통의 세계라는 어쩌면 결핍된 인간세계를
구축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이는 상호작용으로 구축된 결과이며 애초에 그러한 의미나 단어가 없었다 하더라도
처음 사용되고 처음으로 적용되는 의미들이 지속적으로 관계에 대해 적용되는 까닭에
구축되는 관점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이라 할 수 없다지만 이러한 구축주의에 함몰된 인간관계의 발전 가능성은
오히려 퇴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현상이나 물건을 재구축할 수 있듯이 인간의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희망적인 구축 혹은
재구축을 통해 더 나은 사회, 조직, 인간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를 통해 우리 스스로
왠지 떳떳하지 못함을 벗어나는 자세를 벗어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n********1 2018.08.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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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 lali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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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 lalilu   책의 표지는 제목 아래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과연 이 책은 무엇이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며 어쩌면 조금은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는 내용을 보게 된다.     저자는 에티오피아에서 인류학 연구를 진행하면 마음의 답답함과 갑갑함 그리고 그 원인은 우리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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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 lalilu

 

책의 표지는 제목 아래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과연 이 책은 무엇이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며 어쩌면 조금은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는 내용을 보게 된다.

 

 

저자는 에티오피아에서 인류학 연구를 진행하면 마음의 답답함과 갑갑함 그리고 그 원인은 우리 세상이 공정하지 못함에서부터 시작되는 떳떳하지 못함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 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누군가에 의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심각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에디오피아에서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이웃집에 불을 질렀을 때 우리 사회에서는 심각한 범죄가 되지만 그 나라에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범주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를 점검하며 반성하며 되돌아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준다.

 

 

저자는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정서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우리 사회에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떤 경제적 불평등보다는 오히려 부한 사회일수록 타자에게 있어서 관심이 적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왜 우리나라에 자살이 그렇게 높은가? 어쩌면 저자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부자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타인에게 그렇게 몰인정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그래서 신조어 내로남불이 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우리 사회 속에 무엇을 구축하며 살아야 할지 이 책은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제주도 난민의 문제도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를 앞으로 구축해 나가야 하는지 더욱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새로운 시대에는 다양함이 존중받게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을 보게 된다. , 자신의 기준과 가치를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 이 책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존중받기 충분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앞으로의 세상을 디자인하며 구축할 때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기대해보게 된다.

l****u 2018.08.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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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양식은 당신의 양심을 파괴한다
"교환양식은 당신의 양심을 파괴한다" 내용보기
사회학적 상상력 혹은 비판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내가 애용하는 두 종류의 텍스트가 있다. 하나는 인류학자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페미니스트의 글이다. 비판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적 타자와 주변, 변두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인데, 인류학과 페미니즘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학문이다. 인류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나와 세상의 관계를 낯선 이방인을
"교환양식은 당신의 양심을 파괴한다" 내용보기

사회학적 상상력 혹은 비판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내가 애용하는 두 종류의 텍스트가 있다. 하나는 인류학자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페미니스트의 글이다. 비판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적 타자와 주변, 변두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인데, 인류학과 페미니즘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학문이다. 인류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나와 세상의 관계를 낯선 이방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방식으로 나 자신을 고찰하는 일이다. 이른바 '화성인의 눈'으로 지구인을 관찰하듯 그렇게 '낯설게하기' 방식으로 자아와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의 관점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의 입장은 가부장적인 지배적 가치와  상식적 관점과는 매우 판이하게 보는 방식을 실천하는 것인데, 이는 타인과 세상을 다르게 보는 파워를 키워준다.

인류학자 마쓰무라 게이치로는 에티오피아 농촌이나 중동 도시를 필드로 삼아 부의 소유와 분배, 빈곤과 개발, 원조에 관해 연구한다. 저자는 나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해 새로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 방안으로 '구축 인류학'을 내세운다. 여기서 '구축'이란 90년대 말 서구에서 유행한 사회구성론(Social Constructionism)의 '구성주의'에 해당하는 일본식 번역이다. 존재와 현상의 본질론을 거부하고 모든 게 복잡한 사회적 그물망의 힘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구축 인류학의 목적은 시장의 상품교환, 사회의 증여, 국가에 의한 재분배라는 세 가지 경계를 뒤흔들고 경계를 넘도록 촉구해 보다 공평한 세상을 구성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저자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대비된 증여와 상품 교환의 개념을 빌어 에티오피아와 일본을 오가며 느꼈던 정체 모를 위화감인 '떳떳치 못함'(양심의 찜찜함)을 분석하고, 이를 보다 더 공평한 세상을 위한 윤리적 기초로 삼는다. 결국 비판적인 상상력이 갖추어야 할 기본 바탕인 '양심' 얘기를 인류학자의 버전으로 강조한 셈이다.

저자는 구축 인류학이라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우선 경제, 감정, 관계, 국가, 시장, 원조, 공평 등의 기본 개념을 파고든다. 이들 개념은 저자가 20대 학부 시절에 기록한 에티오피아 현지 조사 일기장을 재료로 삼아 한결 숙성된다. 저자의 핵심 논점은 이렇다.  


▶교환방식은 공감을 억누른다.
감정은 관계와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의 영역은 나의 신체의 연장이다.

▶공평함은 균형이다. 

현지 일기장이 보여준 에티오피아의 생활과 대인관계는 일본의 각박한 생활과 메마른 대인관계에 대해 반성케 한다. 좀 까칠하게 따진다면, 저자는 오지에서 일하는 인류학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진 셈이다. 에티오피아를 혈연과 지연 등 애정을 기초로 하는 공동사회로, 일본을 계약으로 이루어진 이해타산적인 이익사회로 본 이원론과 그리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장 경제와 교환가치의 부작용이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서, 신자유주의는 결국 양심에 기반한 의무감을 삭제하고 뭔가 빚을 졌다는 찜찜한 마음을 살균 소독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교환방식에 근거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관계의 단절을 불러오고 윤리성을 마비시킨다는 저자의 시각은 좌파적 입장과 일치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변혁의 길이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보수적 입장에도 손을 들어준다. 즉 마르크스주의자처럼 시장이나 국가를 전면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저자는 다만 내 안의 '찜찜함'을 인식하고, 지배적 가치와 통념의 경계를 새로이 긋는 일에 게으리지 않으면 된다고 강조한다. 바로 이것이 구축 인류학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z***a 2018.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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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서평]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내용보기
문화인류학이란 타자의 곁에 서서 그 사람의 자세를 응시한다. '이어짐'을 고려한다. 정신적인 아픔은 한 사람의 내면과 타인을 '정상', '이상함'으로 규정하는 사회가 혼합된 결과이다.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그것은 개인과 상대방(사회, 국가, 타자 등)과의 커뮤티케이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규칙이 선물에 대한 답례를 의무로 만드는가? 뇌물, 청탁과 구별이 되
"[서평]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내용보기

문화인류학이란 타자의 곁에 서서 그 사람의 자세를 응시한다. '이어짐'을 고려한다. 정신적인 아픔은 한 사람의 내면과 타인을 '정상', '이상함'으로 규정하는 사회가 혼합된 결과이다.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그것은 개인과 상대방(사회, 국가, 타자 등)과의 커뮤티케이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규칙이 선물에 대한 답례를 의무로 만드는가? 뇌물, 청탁과 구별이 되겠지. 구분하기는 힘들다. 법에서는 잣대를 가격(5만원)으로 본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학생에 대한 평가·지도를 상시적으로 담당하는 담임교사 및 교과 담당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의 선물은 안된다.  따라서 스승의 날 학급 학생들이 돈을 모아 선생님께 선물을 하는 것은 안된다. 다만, “학생 대표 등”이 스승의 날에 담임 교사 등 학생의 평가·지도를 상시적으로 담당하는 교사에게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카네이션·꽃은 수수 시기와 장소, 수수 경위, 금품등의 내용이나 가액 등에 비추어 법 제8조제3항제8호의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등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선생님과 상담, 음료수 가지고 가도 될까? 알쏭달쏭 청탁금지법,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118607&memberNo=4328593&vType=VERTICAL). 경제화는 상품답게 만드는 일이며, 탈경제화는 선물답게 만드는 증여이다. 스승의 날 선물은 마음(감정)을 주고받는 일인데 청탁금지법을 보면 씁쓸하다. 법으로 제한하고 규격화될수록 '정'은 퇴색되어 간다. 육아도 마찬가지겠지. 육아란 댓가를 바라지 않는 애정이다. 하지만 사회는 맞벌이를 강요하고 있다. 육아는 사회생활에 밀려있다. 육아가 경제가 아니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업무로 취급된다. 돈은 도덕과 윤리에 상관없이 교환의 가치가 크다. 그래서 공감을 억누른다. 국가에서는 신생아 수를 늘리기 위해 육아를 하는 가정에 돈을 지원하고 보조적으로 남자의 육아휴직도 권장한다. 하지만 기업, 학교와 같은 조직의 변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육아는 곧 승진과 경력 단절이라는 공식을 깨고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존중되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약자보다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압도적인 격차에 대한 '떳떳치 못함'이 발생하다. 감정(상대, 사건, 물자)는 타자와 관련이 있으니까. 인류학은 자신의 거처(고향)와 조사 장소(현지)를 왕복하면서 느끼는 차이나 위화감을 실마리로 삼는다. 2016년 3월부터 가족이 관사로 들어왔다. 현지에 살면서 주민들과 공감하지만 갈등 문제, 주민들과 소통법, 가정에서 내가 늘어난 일(전등갈기, 녹제거 방지필터 교체, 청소, 빨래 등), 좋은 일(자연친화적인 삶), 불편한 일(아이 교육기관과 병원, 마트)이 있다. 작가처럼 나도 일기와 보고서를 작성하며 낯선 상황에서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를 작성하고 싶다. 말은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고 분류하거나 구별하게 하여 경험의 사실성을 뒷받침한다. 마음을 말로 표현하고, 타자의 마음에 공감하기부터 인류의 진화가 이루어졌겠지. 우리 가족간의 생일, 행사(기념일)가 있으면 돈이나 선물이 오간다. 결론적으로는 0원이다. 번거로운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오고가며 '정'이 쌓인다. 기브앤테이크와는 다른 느낌이다. 공감/감정의 On/Off가 켜지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관계가 형성되지만 가정에서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투, 화제, 표정을 보며 관계를 예측한다. 이는 주고받는 운동행위가 쌓여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겠지.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로 유대감을 표현하는데 우리나라는 술이다. 상대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가에 따라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에티오피아는 이름 조작이 쉽지만 우리나라는 신생아 때 이름이 평생을 가기에 '이름'이 곧 '나'의 존재를 정한다. 확장하여 국가는 국민을 통제하고 국민들의 내면화/신체화를 통해 국가의 존재를 수용한다. 아프라카에서도 최빈국인 에티오피아에서 내전을 치르는데 선진국의 최신무기를 수입했다고 한다. 만일 우리나라과 북한이 전쟁을 한다면 주변국에게는 이익이 된다. 국가의 영역은 나의 신체의 연장이기에 나도 국가의 위급사태가 발생하면 자원해서 싸워야되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종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기심)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잘 활용한 것은 시장경제체제이지. 결정책임이 국가면 공산주의에 가깝고, 개인이면 시장경제에 가깝다. 개인은 선택할 수 있기에 민주주의, 자유와 연관이 깊다. 시장경제는 특정한 가치를 사려고 유도(광고)한다. 언론의 자유도 있기에 홍보를 할 수 있는거지. 내가 교사의 직업에 강연을 나가고 서적을 발간하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과 국가는 양면저이기에 균형(중용, 수정자본주의)이 필요하다. 작가는 시장과 국가 간의 얽힌 실을 풀어 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하던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지성인의 태도라는 점에서 교육자로서의 나의 자세를 추스린다.

추수 후의 잡초는 소의 여물이 되고, 소가 싼 똥은 비료가 된다. 서로 얽혀있다. 선진국에서 식량을 비축하고 국내 상황이 어려운 나라에 식량 원조로 사용된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식량 원조는 그 나라의 경제상황을 반영하기에 진심으로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는 마음은 적다. 원조는 시장을 개척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밥 대신 빵). 미국에서 지원(증여)받은 식량을 에티오피아에서는 정부가 주민들의 통치하는 수단 또는 시장으로 나오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북한에 보낸 쌀이 북한의 체제 유지에 쓰였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베푼 도움이 도리어 화가 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또한 '복지나라에서 혜택을 받는 국민은 지도자에게 고마워하지만 납세자에게는 고마워하지 않는다'에서 문득 왜 내 세금이 원하지 않는 난민들 복지를 위해 쓰이는가에 비판을 갖는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이 바뀌면 살아가는 세계가 바뀐다. 이를 위해 경험을 많이 하고 다독을 해야 한다. 자신이 출발점으로 삼았던 개념조차 훌쩍 뛰어넘어야 한다고 모스 학자가 주장했다. 이해했다고 생각한 지점에 멈추지 말고, 다시금 새로운 차이를 발견하는 자세가 지성이다. 지성인은 사회에 관심을 표출하여 균형 감각을 유지한다. 현 문제의 연결상태를 표면으로 드러내고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적 문제를 연결하는 노력이 공평함의 균형을 되돌린다. 당연함의 경계를 흩뜨려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과 깨끗함에 감춰진 불균형을 파악하고 드러내야 한다. 지성인은 문제를 잇고, 고리를 만들며 틈을 통해 사회를 변혁한다. 교육학자로서 나도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하려 한 '열정'이 필요하다. 교육은 증여이기 때문에 수업에 들이는 '노력'은 시간이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손해와 이득으로 계산하는 대상도 아니다. 교육을 시장에서 교환되는 '노동'으로 여기면 '성과'를 제대로 계량할 수 있는 한, 최저한의 노력만 들이면 된다. 그렇다면 교육은 허무한 작업이 된다. 교육이란 닿기 힘든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선물을 보내고 또 보내는 행위이다. 교사로서 교실의 학생(학부모)과 마주칠 때나 먼 훗날 대학 강단에 설 때를 상상한다. 학문과 사회적 문제를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 어떤 선을 어긋나게 만들지를 생각한다. 얼마나 경계를 넘는 말을 만들어내어 설득할 수 있을까? 학계나 학교와 같은 기존의 틀에서 나의 언어는 얼마나 경계를 넘어 비집고 나올 수 있을까?
지성인은 긍정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떳떳하지 못함을 남을 도와주는 윤리성이 아닌 국가의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s*****9 2018.07.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