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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의 깊고 따뜻한 에세이
이 책과 저자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내게 임팩트를 주었다. 첫 번째는 문화인류학자 라는 분의 글을 처음 읽어서 신선했다. 두 번째는 한권의 단행본에서 에티오피아 라는 나라를 무수하게 접하는 일이 처음이었다. 7개 채프터로 목차가 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의 한 에피소드를 처음 소개하는 대목에서 나는 갑자기 심쿵했다. 너무도 따스한 사연이었기 때문이다.
1비르를 받은 사람중에 그 누구도 작가에게 얼굴을 찌푸린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정도의 돈이라도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복 받으실 거예요’라고 말해준다고 한다.
각박한 사회에서는 외국인이라서, 문화가 달라서, 다른 종교라서, ○○이기 때문이라며 이질적인 타자를 정해진 카테고리에 집어넣는다. 내가 누군가와 맺는 관계를 변화시킨다면, 아무리 사소해보일지라도 이는 반드시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게이치로는 ‘국가’와 ‘시장’이 처음부터 명확한 윤곽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 경제를 비롯한 국가와 시장 자체는 제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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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모로 독특한 책입니다. 작은 크기에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소책자인데 6개 장의 소제목들이 경제, 감정, 관계, 국가, 시장 그리고 원조라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는 인류학 책입니다. 그런데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이 왠지 요즘 많이 출간되는 인간관계나 심리학에 대해서 다루는 책처럼 보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 조감도를 그려가며 지금껏 느껴온 ‘개운치 않은 찜찜함’과 마주하려 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인류학적 관점을 xd해 세계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를 탐구해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문화인류학의 탐구는 먼저 타자의 곁에 서서 그 사람의 자세를 응시하는 일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관점을 통해 세계의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는 탐구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타자’는 20년 가까이 관계를 맺어온 에티오피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에게 에티오피아는 사회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불편한 것 투성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정신이상자도 병원에 가두지 않고 일반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처음 보는 외국인도 환대하며,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에티오피아인들의 행동 양식에 점점 젖어들었고 10개월간의 에티오피아 체류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평생 살아온 일본이 오히려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본에는 ‘이상한 사람’이 부재하다는 점입니다. 바로 여기에 개인과 사회, 국가를 이어주는 열쇠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일본에서는 정신이상을 일으킨 사람은 가족이나 병원, 시설에 억지로 떠넘겨져 일상생활에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는 장소에 보내집니다. 그를 어딘가에서 마주치더라도 ‘보이지 않거나 있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라서 쩔쩔맨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타자와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보통의 인간’, ‘보통의 세계’라는 현상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 ‘보통의 세계’는 실은 바로 곁에 있는 타자에 의해 항상 근본이 뒤흔들린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이 목표로 삼는 구축 인류학은 그런 뒤흔들림을 통해 만들어질 도 다른 세계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구축주의(Social Constructionism)’란 개념은 어떤 일도 처음부터 본질적인 성질을 갖추고 있지 않고 여러 가지 작용을 받아 구축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젠더’나 ‘스트레스’처럼 기존이 있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이나 관점은 계속해서 형성되는데 그러한 ‘젠더’나 ‘스트레스’라는 말이 일반화됨으로써 그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스트레스가 있는 상황 즉 그러한 ‘좋지 않은 감각과 느낌’을 설명할 길이 없게 됩니다. 즉 기존에는 없었던 이러한 단어나 개념이 계속 존재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현실조차 만들어 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이 사회와 시장과 국가의 모습이 원래 그랬거나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특정한 방식으로 구축된 것일 뿐이며, 허물고 다시 구축할 수 있는 구조물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와서 본 일본사회는 걸인을 보고 드는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기꺼이 적선을 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게, 그러한 ‘떳떳하지 못함’과 같은 감정까지도 억누르는 지나치게 감정을 제어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를 변혁하는 길은 내 속의 ‘떳떳치 못함’을 인식하고, 경계를 새로 긋는 일이라고 저자는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이 얇은 책자를 통해서 인류학에서 다루는 기본 문제들을 사례 중심으로 쉽고 재미나게 풀어쓴 책입니다. 특히 일본의 젊은 문화인류학자가 공정한 사회를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일본 사회에 대해서 기술하였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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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지은이 마쓰무라 게이치로 / 옮긴이 최재혁 / 한권의책 2018.08.13 사정이 생겨 뒤늦게야 리뷰를 적는 이 책은 리뷰어 신청을 할 때부터 제목에 또 홀렸다.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나는 누구에게 떳떳하지 못한 걸까, 사회에서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마음으로 이 책에 홀린 듯 신청을 했었고, 사실 당첨될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잊고 있었다 ^^; 리뷰어를 신청한 것조차도 잊고 있었는데 신청을 하고 선정이 됐구나 깨달은 건 등기 미수취 쪽지가 붙어있으면서부터였다. 기대가 없는데 선물을 받았던 기분이라 좋았다. 그리고 선물은 선물이 맞았다. 책은 여는 글부터 강렬했다. 구절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슈퍼에서 점원들은 아저씨를 보면 항상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웃었고, 다른 손님들은 아저씨의 존재를 모르는 척하며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아저씨는 늘'이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함'을 만들어낸 것은 아저씨 자신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우리인지도 모른다. 아저씨와 대화를 나눈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계속 장을 보던 캐나다인 가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과 7 페이지에 있는 대목이다. 사실 아주 간단한 이치인데, 사람들은 이걸 모른다. 그리고 별 기대도 안 하고 들었던, 별것아닌 여는 글이 아주 묵직하게 한방을 날렸다. 누군가를 이상하게 만드는 건 다른 누군가도 아닌 그 누군가를 감싸고 있는 세계다. 보편적이고 보통인 건 무얼까, 평범한 건 또 뭘까. 일반적인건 또 뭐지, 정상인건 또 뭘까. 그 모든 건 사회 구성원끼리 이게 바른 거다, 라고 정의하는 것에서 나간다고 말한다. 나는 적어도 이 책이 말하는 구축주의에서 그렇게 느꼈다. 또 하나의 강렬했던 구절은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의 그 여성은 붐비는 인파에 등을 돌리고 자그마한 천을 깔고는 혼자 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황은 혼자서 선택한 결과는 아닐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곁눈으로 인식하면서도‘상관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결과다.] 이다. 나는 이 단락은 사회에 개인주의적 이기심을 말하고자 함인가 고민했다. 내가 느끼는 현재는 점점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지 않고 더욱 개인주의적이 되어가고, 더욱, 고립화 되어 간다는 거다. 지은이를 포함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사카 지하철 역에서 할머니를 지나치듯, 현대 사회에서 인류는 타인에게 쉽게 손을 뻗지 못하게 됐다. 그건 다시 또 원점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한다. 사회에 탓일까, 아니면 상대에게 쉽게 손을 뻗을 수 없게 만드는 같은 인류의 탓일까. 저 구절을 읽으며 작년인가 제작년 겨울에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드러누워있던 남자가 떠올랐다. 112에 신고라도 해야하나 생각했지만 취객과 얽히면 좋을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 사람이 취객인지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신고하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사실 인류학이든 인문학에든 관심이 없었다. 인류에 대한 박애로 교복을 입을 시절에는 국경 없는 의사회를 꿈꿨었고, 또 일생 종교에 귀의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도 했다. 또, 월드비전이나 유니셰프를 통해 봉사하는 삶도 꿈꿨고. 한때는 그랬는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이 책은 그런 내게 불편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이 책에 대한 무언가를 더 얹어 적지 않을 생각이다. 이 다음은 이 책에 흥미가 생긴 분들께서 직접 읽었으면 한다. 잘 만든 책이다. 이건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구축주의: 일본에서 구축주의라는 용어는‘(Social) Constructionism’을 가리키는데, 사회의 현실이나 현상, 실태 등이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감정, 언어 등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지고 제도화, 관습화된다고 보는 사회학적 입장을 뜻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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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에 속하지 않고,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회가 나와 맞지 않으면, 사회가 나를 구속하고 억압하기만 한다면, 그래도 그 사회에 속하고 동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마쓰무라 게이치로의 책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것은 그 한 사람의 내면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정상' 혹은 '이상함'으로 규정하는 일과 관계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에티오피아의 농촌 마을과 중동의 여러 도시에서 현지 조사를 펼치면서 부의 소유와 분배, 빈곤과 개발 원조, 해외 이주 노동과 같은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경제, 감정, 관계, 국가, 시장, 원조 등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이제껏 관찰하고 연구한 바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마실 때 으레 이웃을 초대한다. 집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면 "저 사람은 집에서 혼자 몰래 커피를 마신대요."라고 동네방네 소문이 난다. 혼밥, 혼술도 아니고 혼커피가 안 된다니. 뭐 이런 풍습이 다 있나 싶지만, 저자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공적인 사실로 만들어 '유대감'을 과시하는 효과를 가지는 수단이다. 자기와 다르다고 해서, 낯설고 어색하다고 해서 다른 나라나 문화, 종교, 취향 등을 함부로 비난해선 안 되는 이유다. 에티오피아는 호적이나 주민등록이 정비된 제도로 잘 갖춰져 있지 못하다. 출생 신고도 하지 않고, 이름도 부모와 조부모가 각자 마음대로 지어서 부른다.'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이름이 없기 때문인지,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낮고 통제보다 자유를 선호한다. 주민등록이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인지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고 사회가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일본의 문화와 정반대다. 만약 국가 권력보다 개인의 자유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본에서 살면 얼마나 답답할까. 자기 이름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믿는 사람이 에티오피아에서 살면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맞는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고 세월아 네월아 살아가는 것도 '떳떳하지' 못한 태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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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농촌이나 중동 도시를 현장으로 삼아 부의 소유와 분배, 빈곤과 개발, 원조에 관해 연구하는 신진 인류학자가 인류학으로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 평상시 잘 접하지 못한 이야기이고 구축 인류학이란 게 뭔지 잘 몰라서 궁금하였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를 마주하게 되는 역시나 불편하기는 하지만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하고 찜찜하지만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 우리는 타자와 대면할 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품는다고 한다. 무의식중에 타자의 감정이나 욕망에 자신의 마음을 공명시키는데 이런 공감이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그런데 상품 교환의 현장에서는 누구라도 투명한 존재가 되어 감정이나 마음없이 교환을 해야 한다. 구걸하는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동전을 받지만 슈퍼에서는 물건을 공짜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가난해 보이거나 나이가 많다거나 몸이 약하고 아프다는 식의 정보는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져 제거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길모퉁이에서 구걸하는 노파를 볼 때도 점차 이러한 교환 방식을 발동시킨다는 것이다. 동시에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들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떳떳치 못함이라는 감정을 은폐한다는 것.. 그리고 구걸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것... 교환 방식에서는 물건을 받지 않는 한 공짜로 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서 샘솟는 감정에 따를 필요와 의무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 싹트는 공감을 억압하게 된다는 것... 저자는 에티오피아에 가면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주기 위해 물건을 살 때 될 수 있으면 잔돈을 남겨두려고 한단다. 자신이 그들보다 부당하게 부유하다는 '떳떳하지 못함'을 느끼고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것을 받았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런 떳떳치 못한 느낌에 가능하면 따르려 한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도와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들보다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압도적인 격차에 대한 떳떳치 못함 때문이란다. 남을 도와야 한다는 선의를 가진 경우에는 상대를 멸시하게 되고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자책하는 경우에는 상대를 두려워하게 된다는 말에 머리 속이 두둥~해졌다. 교환 방식에 굳어있던 몸과 마음에 경종이 울렸다고나 할까? 누구나 압도적인 격차나 불균형을 보면 자연스레 균형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숨겨져 있던 불균형을 눈앞에서 목격하면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변하고 그 변화가 세계를 움직여간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인류학은 여러 가지 차이를 가진 사회를 병렬적으로 비교하고 특권적인 것이라도 당연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학문이다. 구축 인류학으로 상품 교환, 증여, 재분배의 경계를 뒤흔들고 경계를 넘도록 촉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저자는 시장과 국가, 시장과 사회, 사회와 국가가 유착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유착이 없다는 듯, 세상에는 강고한 경계로 나누어진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거나 경계를 밟고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는데 국가가 하는 일은 나와는 관계없다는 생각, 시장에서는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다. 시장과 국가의 한복판에서 우리 손으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틈을 발견하고 당연하다고 떠받쳐왔던 틀을 우리 손으로 뒤흔들 필요가 있다고 당연함의 경계를 흩트리자는 저자의 말을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떳떳치 못함을 강하게 느끼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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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우리는 어쩌면 괜스리 떳떳치 못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이 책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는 우리의 일상이든 생활이든 삶이든 우리가 우리가 보기에도 정신이상자로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을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끌어안고 우리 사회는 그렇게 자신이 아닌 타자에 대해 일말의 관심이나 동정없이 가차없는 현상이나 물건을 재구축할 수 있듯이 인간의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희망적인 구축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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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 lalilu 책의 표지는 제목 아래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인류학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과연 이 책은 무엇이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며 어쩌면 조금은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는 내용을 보게 된다. 저자는 에티오피아에서 인류학 연구를 진행하면 마음의 답답함과 갑갑함 그리고 그 원인은 우리 세상이 공정하지 못함에서부터 시작되는 떳떳하지 못함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된 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누군가에 의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즉,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심각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에디오피아에서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이웃집에 불을 질렀을 때 우리 사회에서는 심각한 범죄가 되지만 그 나라에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범주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를 점검하며 반성하며 되돌아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준다. 저자는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정서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우리 사회에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떤 경제적 불평등보다는 오히려 부한 사회일수록 타자에게 있어서 관심이 적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왜 우리나라에 자살이 그렇게 높은가? 어쩌면 저자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부자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타인에게 그렇게 몰인정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그래서 신조어 내로남불이 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우리 사회 속에 무엇을 구축하며 살아야 할지 이 책은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제주도 난민의 문제도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를 앞으로 구축해 나가야 하는지 더욱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새로운 시대에는 다양함이 존중받게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을 보게 된다. 즉, 자신의 기준과 가치를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 이 책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존중받기 충분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앞으로의 세상을 디자인하며 구축할 때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기대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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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상상력 혹은 비판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내가 애용하는 두 종류의 텍스트가 있다. 하나는 인류학자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페미니스트의 글이다. 비판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적 타자와 주변, 변두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인데, 인류학과 페미니즘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학문이다. 인류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나와 세상의 관계를 낯선 이방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방식으로 나 자신을 고찰하는 일이다. 이른바 '화성인의 눈'으로 지구인을 관찰하듯 그렇게 '낯설게하기' 방식으로 자아와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의 관점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의 입장은 가부장적인 지배적 가치와 상식적 관점과는 매우 판이하게 보는 방식을 실천하는 것인데, 이는 타인과 세상을 다르게 보는 파워를 키워준다. 인류학자 마쓰무라 게이치로는 에티오피아 농촌이나 중동 도시를 필드로 삼아 부의 소유와 분배, 빈곤과 개발, 원조에 관해 연구한다. 저자는 나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해 새로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 방안으로 '구축 인류학'을 내세운다. 여기서 '구축'이란 90년대 말 서구에서 유행한 사회구성론(Social Constructionism)의 '구성주의'에 해당하는 일본식 번역이다. 존재와 현상의 본질론을 거부하고 모든 게 복잡한 사회적 그물망의 힘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구축 인류학의 목적은 시장의 상품교환, 사회의 증여, 국가에 의한 재분배라는 세 가지 경계를 뒤흔들고 경계를 넘도록 촉구해 보다 공평한 세상을 구성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저자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대비된 증여와 상품 교환의 개념을 빌어 에티오피아와 일본을 오가며 느꼈던 정체 모를 위화감인 '떳떳치 못함'(양심의 찜찜함)을 분석하고, 이를 보다 더 공평한 세상을 위한 윤리적 기초로 삼는다. 결국 비판적인 상상력이 갖추어야 할 기본 바탕인 '양심' 얘기를 인류학자의 버전으로 강조한 셈이다. 저자는 구축 인류학이라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우선 경제, 감정, 관계, 국가, 시장, 원조, 공평 등의 기본 개념을 파고든다. 이들 개념은 저자가 20대 학부 시절에 기록한 에티오피아 현지 조사 일기장을 재료로 삼아 한결 숙성된다. 저자의 핵심 논점은 이렇다. ▶교환방식은 공감을 억누른다. ▶국가의 영역은 나의 신체의 연장이다. ▶공평함은 균형이다. 현지 일기장이 보여준 에티오피아의 생활과 대인관계는 일본의 각박한 생활과 메마른 대인관계에 대해 반성케 한다. 좀 까칠하게 따진다면, 저자는 오지에서 일하는 인류학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진 셈이다. 에티오피아를 혈연과 지연 등 애정을 기초로 하는 공동사회로, 일본을 계약으로 이루어진 이해타산적인 이익사회로 본 이원론과 그리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장 경제와 교환가치의 부작용이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서, 신자유주의는 결국 양심에 기반한 의무감을 삭제하고 뭔가 빚을 졌다는 찜찜한 마음을 살균 소독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교환방식에 근거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관계의 단절을 불러오고 윤리성을 마비시킨다는 저자의 시각은 좌파적 입장과 일치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변혁의 길이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보수적 입장에도 손을 들어준다. 즉 마르크스주의자처럼 시장이나 국가를 전면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저자는 다만 내 안의 '찜찜함'을 인식하고, 지배적 가치와 통념의 경계를 새로이 긋는 일에 게으리지 않으면 된다고 강조한다. 바로 이것이 구축 인류학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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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이란 타자의 곁에 서서 그 사람의 자세를 응시한다. '이어짐'을 고려한다. 정신적인 아픔은 한 사람의 내면과 타인을 '정상', '이상함'으로 규정하는 사회가 혼합된 결과이다.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그것은 개인과 상대방(사회, 국가, 타자 등)과의 커뮤티케이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