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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빈부격차가 상당한 나라이다. 감기에 걸려도 공적 의료보험이 존재하지 않아 가난한 이들은 그 간단한 치료도 받을 수 없다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는 우리의 머릿속에 부국으로 기억되고 있다. 부유한 이들이 누리는 어마어마한 생활이 참으로 화려한 탓이다. 한 국가 내에서도 그러한데 전세계적인 차원으로 시야를 확대해 보면 더욱 끔찍한 모습과 만날 수 있다. 너무 부유해 문제가 되는 국가들이 있는 반면 정말이지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국가들도 있다. 걱정할 이유가 없다 보니 삶이 무료해 자살로 삶을 마무리하는 이들로 들끓는 국가에 사는 이로서는 왜 아프리카나 남미, 기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배를 곯는지 이해가 힘들 수밖에 없다. 부라 하는 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례도 물론 없지야 않겠지만 최근 들어 더더욱 세습에 의한 경우가 많다 보니, 태생적으로 부유한 이들로서는 가난에 공감하는 능력이 미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에는 가난의 원인을 개인적으로 돌리기에 이른다. 너무 게을러서 돈을 벌지 못한 것이다, 머리가 따르지 않아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술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다 등등. 이러한 해석은 가난에 대한 채무로부터 모두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해석을 보고 있자면 가난은 죄와도 같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정녕 개개인이 게을러서 그들이 속한 국가가 가난한 것일까? 개개인의 학습 능력이 심히 떨어지는지라 아무리 노력해도 부유해질 수 없는 것이란 말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이 책의 대답은 “아니오”. 그것도 단호하게 “아니오”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간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가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들 평하지만, 무엇이 실질적인 원동력이었는지 여부를 떠나 우리는 가난에서 부로 움직여간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반면에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들 국가들은 60-70년대만 해도 우리보다 훨씬 부유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권부터 시작하여 국민 대다수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치안까지 불안하다. 이러한 사례들을 본다면 빈부라 하는 것이 서로 역전되지 아니하는 견고한 무언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걱정을 하는 까닭은 최근 들어 더더욱 부유한 이들은 부유해지는 반면 가난한 이들은 가난해지는 현상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하다고는 하나 각국의 원조가 아프리카를 향하고 있다. 이 검은 대륙은 막대한 돈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립에 성공하기는커녕 국가 중앙권력이 붕괴해 고초를 치르고 있다. 세상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해적이 출몰한단 말인가! 중남미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는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다. 멕시코나 다른 나라들도 어찌나 살기가 힘겨운지, 사람들은 자국에서 일하기보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북미로 옮겨가고 고된 노동을 하며 돈을 번다. 그들이 힘들게 번 돈은 미국인들이 평균적으로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약소하기 짝이 없는데, 자국에서는 그마저도 벌기 힘들다. 노동력이 해외로 이동한다. 모국엔 일할 수 있는 이들이 없고 혹 남아 있는 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이주한 형제가 보내주는 돈에 의지해 살 뿐 스스로 일하려 들질 않는다. 한 나라의 국가경제가 완전히 붕괴해 버린 것이다. 정치인들이 무지해서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는 말, 사실일 수야 있다. 막대한 부를 개인적인 재산으로 빼돌리면서 나라가 건전하길 바라는 지도자가 존재하는 나라는 건실하게 성장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모든 나라의 가난이 정치인의 무능력 때문이라는 말은 변명처럼 들린다. 엄연한 이유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변명 말이다. 오늘날은 모두가 경쟁한다.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 전제는 많이 미심쩍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많은 국가들과 그렇지 못한 국가들 간의 격차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같은 게임의 규칙에 얽매여 있다. 혹 그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국가가 있다면 바로 제재가 가해진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강요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안타깝지만 바람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출발이 전혀 다른데 같다고 박박 우기니 이처럼 염치없는 일이 또 있을까 싶은데, 그것이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태도이다. 모든 시장을 동등하게 개방하고 비교 우위에 놓인 분야를 특화해 그것으로 먹고 살라는 말은 분명 좋아 보인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시장을 개방했고 자신 있는 분야다 싶어 그 쪽으로 마음껏 추구했는데 그 결과 더욱 심란한 가난히 찾아온다. 명망 높은 IMF 같은 단체가 요구하는 사안을 모조리 수용했는데 오히려 경제는 혼란에 빠지고야 만다. 그게 현실이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바로 유치산업의 보호이다. 충분히 성장치 아니한 아이는 엄마 품에 머물러야 하듯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산업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어느 정도 보호를 해주어야지 시장에서 경쟁하며 알아서 크길 바라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탄탄한 기초를 다지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에 발을 디디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이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은 그래서 자국 내 모든 산업이 사라지는 비운을 맛보고야 말았다. 개개인의 능력만 놓고 본다면 실상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가 없는데, 마땅히 일할 만한 게 없다 보니 사람들은 제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가난에 굴복해버리고야 만다. 심지어 최근에는 특허권 등의 강화로 모방의 기회조차도 주어지지가 않는다. 비슷하게라도 만들어 보며 특정 원리를 터득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하는 길이 원천봉쇄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 보니 비싼 돈 주고 상품을 사와야만 하는데 돈이 애당초 없으니 사람들은 무리해가며 무언가를 구입하기 보단 없는 상태로 지내는 쪽을 택한다. 부족할 수밖에 없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가난의 진정한 원인을 꼬집을 정도의 용기를 경제학은 지니지 못한 듯하다. 변죽만 열심히 두드리다가 최근에는 그마저도 멈춘 채 열심히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짓을 설법하고 있다. 심지어 각국이 처한 상황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인 방법을 가난하다 싶어 보이는 모든 국가들에 제시한다. 착실히 이행하면 이행할수록 가난이라는 마법에 빠져들고야 마는, 그런 걸 감안한다면 가난은 순종이 불러온, 반항하지 아니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이다. 내가 후원하는 아이 중 하나는 우간다에 거주한다. 부모와 무려 10명의 아이가 한달에 7천원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개글을 읽으며 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제3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제1세계 사람만큼 생산적인데도 왜 훨씬 더 가난한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이 책은 희망을 담고 있다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 짓고 있었는데, 난 그와 같은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기적이고 영악하다. 이해는 공감과 다르고 공감은 실천과 또 다르다. 이해할 수 있으니 그게 희망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배고픔을 참다 참다 죽는다.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를 읽는 데 걸린 시간은 이틀 하고도 한 시간 반. 한 사람에게 생과 사를 오가게 만드는 가난을 객관적이라는 이라는 이유를 들어가며 강요하는 게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진면모였다니 우리나라가 비교적 성공적인 예에 속한다는 사실이 주는 위안보다도 더욱 깊은 상처를 책으로부터 얻었다. 안타깝게도 세상 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공감의 능력을 상실한 지가 오래여서 타인의 가난보다 제 부를 바라보는 데에 바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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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단순히 페루가 가난한 나라이고 잘 사는 나라는 잘 사는 이유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을 하면서 글을 이끌어 나갈까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경제라는 학문과 책을 이끌어가는 논리에 심취하여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경제에 관한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에 책의 모든 내용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아직도 무리가 있었지만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읽어나가는데 있어서는 큰 무리가 없었다. 요즘 양극화 문제가 많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양극화는 개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 조직 대 조직으로도 나누어 질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양극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장점이자 단점인 모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중국과 미국의 시진핑과 오바마의 만남이 있었다. 세계의 두 공룡은 자국의 이득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역과 정치적인 부분에서 경쟁과 다툼이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도 이런 부분이 나오는데 본인들의 이득을 위한 보호 무역에 관하여 언급한 부분과 자유 무역이다. 이것은 미국에도 해당이 되며 다른 유럽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해당이 될 것이다. FTA에 관하여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내부에도 이 이론과 각 나라간에 보이지 않는 이득 쟁탈이 있을 것이다. 지구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고 많은 직업들이 있다.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나라 마다 같은 직업인데도 소득과 인식이 다르며 각 직업에 따라서는 일명 넘사벽이라고 하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없는 것이 사실이고 이것은 점점 개인과 가정을 양극화의 길로 이끈다고 생각하고 이것 또한 사회적 이슈로 크게 떠오르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에 장하준 교수님의 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 솔직히 베스트샐러인 [나쁜 사마리아인]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데 반하여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을 함께 나누었다. 이 책은 그런 장하준 교수가 추천한 책으로 주류 경제학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한 실물 경제에 대한 이해도 도와준다고 생각을 한다. 각 나라가 취하는 액션과 정책들에 대하여 과거 사례를 통한 현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문헌과 사례가 제시되어 있는 것도 상당히 좋게 다가왔다. 한 번 읽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지식들이 녹아 들어가 있어서 시간이 될 때마다 여러 번 읽어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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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길어 아마도 이 보다 더 긴 제목의 책이 드물지 않을까 싶다. 책 내용도 제목만큼 쉽지 않고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솔직히, 굳이 이 책을 나는 왜 선택해서 읽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하다보니 선택해서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안 읽은 것보다는 읽은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건너온 금융자본주의와 세계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는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 내가 우리 나라이외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절대 선과 같은 분위기로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고 그에 따른 체계를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다른 대안이나 반대 이론들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이 특별히 논의의 상대가 되지도 못했지만 기회조차 주워지지 않았다고 본다.
오로지 금융이라는 현상만으로 시작된 금융 위기 이후에 전 세계는 우리가 추구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그때까지 오로지 미국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약간 맹목적으로 추구했지만 어느 순간 최면에서 풀리고 보니 바로 눈 앞에 아슬아슬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잘 못 되었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대안등에 대해서는 불행히도 제대로 된 논의는 없고 여전히 우리는 잘 먹고 잘 살아야한다는 화두에 메몰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내가 감히 더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그저 감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차이점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는 여전히 가난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어떤 문제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점에 대해 지지하고 고민하고 대안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공감이 되고 내가 너무 미국식 자본주의에 물들어있다는 부분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똑같은 기술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미국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고 한 사람은 베트남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기술은 똑같다. 심지어 베트남에서 택시 운전하는 사람이 미국에 와 택시 운전을 한다고 달라 질 것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다르다. 이처럼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에서 버는 수입은 틀리다. 물론,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버는 것 같지만 각자 나라에서 꼭 필요한 생활비 수준과 지출되는 금액을 볼 때 너무 도식화 한 것은 아닐까 하기는 하지만.
책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엄청나게 많이 언급이 된다. 그 이유는 대표적인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나라의 대표적인 나라가 되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왜 한국이라는 나라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변화하는 나라가 극히 드문것인가에 대해 이 책은 설명을 하고 있다. 단순하게 현 상황에서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의 출발점부터 들어가서 이야기한다.
철학에서 출발한 경제학은 아담스미스나 리카도와 같은 경제학자 - 지금은 경제학자라고 불리우지만 이 당시에는 철학자 - 들의 이론에서부터 출발하여 현재의 화폐통화와 관련된 경제학자까지 끌여들여서 논의를 확대하고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경제사와 경제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고 경제학 원론이나 그 유명한 맨큐의 경제학같은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어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산업 자본주의를 출발하여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그 전까지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기에는 수준이 미미한 자본은 산업이라는 획기적인 인류발달의 체계를 만든다음부터 거칠것 없이 질주를 했다. 그 후로 포드회사로부터 출발한 대량생산의 체계는 엄청난 자본가를 만들며 많은 사람들을 먹고 사는데 지장없게 만들었다.
그후로 산업자본주의는 현재의 금융자본주의로 발전을 했다. 산업자본주의까지는 여러 회사가 생기고 무엇인가를 만들어감에 따라 인류는 생산적인 일들을 창출했다.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여 먹고 사는 것 부터 출발하여 그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산업과 이러한 물건들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지만 그 후에 발달한 금융자본주의는 더 많은 자본가와 부자를 탄생시켰지만 실제로 인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본다. 오히려 인간들에게 먹어도 먹어도 갈증을 채우지 못하는 탐욕만 더 키웠을 뿐이다.
수확 체증과 수확 체감이 있다. 무엇인가를 하면 늘어나는 것과 줄어드는 것이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산업 자본주의는 수확체증이라는 법칙에 유효했다. 이러한 수확체증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부자나라가 되었다. 이제 가난한 나라들도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확체증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산업을 키워가야 한다. 하지만, 부자 나라들은 이 가난한 나라들에게 수확체증보다는 수확체감을 요구했다. 수확체감에 해당하는 것은 원자재 수출이다. 원자재를 수출하여 당장 먹고 살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발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수확체증을 통해 발전한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면성실도 있었고 교육열과 우리고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과 같은 국가적인 일심동체의 원동력도 있었지만 마샬플랜이라는 부자 나라들의 정책적인 도움도 있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점이다.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산업을 키워주었다는 점도 굳이 반박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후 마샬플랜이라는 것이 폐기된 후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정책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극단적으로 말하는 미국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산업을 키워주면 부자 나라들의 산업이 망가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자유무역주의를 관철한 것이다. 한국도 일본도 일정 수준이 될 때까지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정부가 방패막이를 해서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최소한 자신들 나라만의 산업으로 먹고 살 시스템이 만들어 진 후에 무엇인가를 해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지 못하니 가난한 나라는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도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도 독일도 모든 부자가 된 나라들은 똑같이 자신들의 산업을 보호 무역으로 철저하게 지켰다. 이들의 산업이 최소한의 경쟁력은 갖출 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개방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가난한 나라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왜냐하면 그 산업은 국민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엄청난 교육열은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국가가 된 원동력이라고 하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교육을 해도 교육을 활용할 곳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외국으로 나가게 되고 이들이 보내주는 달러는 자국의 국민들이 먹고 살 기회를 제공하지만 역으로 자신들이 버는 것보다는 보내주는 달러가 더 크기 때문에 게을러질 수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모기로 인해 죽는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모기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모기는 피할 수 있지만 가난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굶어죽게 된다는 것이다.
부자나라들이 부자가 된 것은 이러한 모방에서 출발한다. 자신 나라들보다 우수한 부분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한 발자취를 똑같이 따라하며 산업을 일으켰다.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반도체나 자동차라는 것을 우리나라 혼자 힘으로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서 몰래 훔치기도 하고 어깨 넘어 배우기도 하여서 우리 실정에 맞게 끊임없이 만들어 지금의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지금 부자나라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부자 나라가 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따라하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드는 것이 조금은 지나친 감도 있지만 특허권이나 지적 재산권과 같은 무기로 가난한 나라들이 모방을 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를 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의 자국의 산업을 일으킬 기회 자체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들이 산업을 일으키고 싶어도 부자나라들이 끊임없이 개방을 요구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결국에는 산업이 클 수 없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에는 끝까지 보호 무역을 관철해서 부자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뭐, 우리나라가 부자 나라라는 부분에서 동의를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 GDP라는 숫자로 보이는 부분을 보면 안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당장 우리나라가 수출과 수입에 여러 문제가 생긴다고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보고 여기서 개개인이 더 잘 살 수있는 부분은 없어 보인다. 국가의 GDP가 늘어나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선진국 기준에 부합할지라도 국가의 국민들은 더이상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중국과 인도같은 나라들도 지금처럼 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자국의 산업을 보호했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만이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시하는데 내가 다른 지식이나 연구를 해 본적이 없어 딱히 뭐라 할 수 없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주장이 옳다고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각 국가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에 속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샬플랜이 생긴 이유중에 하나가 공산주의때문이라 탈레반의 도발로 인해 마샬플랜과 같은 정책이 부자나라들에게 다시 도출되었으면 한다는 조금은 과격한 이야기도 아주 아주 살짝 언급한다.
산업 자본주의를 넘어 금융 자본주의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 다음은 어떤 자본주의로 들어가게 될 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자본주의가 아닌 체계로 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앞에는 다른 단어가 들어가도 뒤에는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아직은 존재할 것이라 본다.
이 책은 조금은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너무 한쪽 면에 함몰되어 있는 사고를 다른 쪽의 사고도 할 수 있는 측면을 제공해 준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나 세계화의 반대로 치부되고 있는 복지에 찬성하는 책이 아니라 더더욱 균형잡힌 시선을 제공해 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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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저 자 : 에릭 라이트너
“공간의 광활함과 발전의 변칙성을 깨닫기 시작한 21세기에 들어서는 세계가 인류의 변덕을 감당해낼 만큼 완벽하게 설계된 게 아니라는 볼테르의 통찰이 그만큼 더 명백해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와 정치가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자유방임을 실천하고 (대체로 이성적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개개인의 본능을 가장 기본적인 제재 이외의 그 어떤 개입없이 자유롭게 상호 작용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세계는 완벽해질 것이라며 죽은 신학자들처럼 확신에 찬 어조로 권위적으로 말한다.”
“일반적으로 수확체증은 불완전 경쟁과 짝을 이루는 데, 사실 단위 비용의 하락은 불완전 경쟁하에서 시장 지배력이 생기는 한 요인이다. 제품 차별화의 어려움과 결합된 수확체감이 원자재 생산에서 완전경쟁을 이루는 핵심요소이다. 따라서 부국들의 수출은 좋은 효과 (수확 체증과 불완전 경쟁)를 얻는 데 비하여, 빈국들은 전통적인 수출품은 그 반대인 나쁜 효과 (수확체감과 완전경쟁)를 얻는 것이다.”
“유럽이 그토록 강력해진 원인은 무엇때문인가? ......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럽의 큰 다양성과 (지리적, 기후적, 민족적, 정치적)분화가 낳은 여러 매커니즘이다. 거대한 아시아 제국에는 없었던 이런 다양성과 분화는 계획이 필요한 시장에서 대안과 접근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공동영역 (pool)을 만들었고, 그것이 여러 나라들 사이엣 모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경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시장의 바람이 전진하는 쪽으로 부는 것은 이미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루었을 때에야 가능하다. 이는 누적요인과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어떤 국가가 가난하면 가난할 수록 자유방임의 바람은 올바른 방향으로 불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이든 상업이든 인간의 경제활동을 모두 일체의 품질을 배제한 노동시간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리카도의 무역이론의 단초를 마련했다. ...... 리카도 이론구조에서는 어디에도 석기시대의 노동시간과 실리콘 밸리의 노동시간을 구별해 주는 것이 없다. 완전고용도 보장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통용되는 국제 무역이론에서 실리콘 밸리와 새로 발견된 아마존 강 유역의 신석기 시대 부족사이에 이루어지는 자유 무역이 임금균등화라는 경제적 조화 (요소 균등화)를 창출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할 수있다.”
이 책은 자유무역이 왜 모든 나라들이 다 같이 발전할 수있는 바탕을 만들지 못하는 지를 설명하였다. 읽으면서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와 같은 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도 대학때부터 지금까지 무역을 하면서 ‘과연 자유무역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왔다. 해보니까 아니다라는 생각이 좀 들었다. ‘좀’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국이나, 나는 언제나 무역으로 인하여 이익을 보는 편에 속했기에 그래도 ‘역시 무역은 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결론은 역시 ‘정도’의 문제이다. 좋기는 하되, ‘적당히 자유무역을 하자’라는 것이다. 현재는 지나치게 자유화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정말 새로운 개념을 받은 것이 있는 데, 시장의 발전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이기심때문이 아니라, 앞서 나간 나라를 모방하다보니 같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한국의 발전이 그랬다. 이제는 스스로 모방할 나라가 별로 없어, 새로움을 개척해야 할 정도까지 온 것도 다행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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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만을 추구한다고 보여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저에게 자괴감 보다는 살아야 한다는 현실감이 더 가까이 다가 오는 요즈음이네요 이 책은 개인적인 관점보다는 국가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부와 이동, 획득에 대해서 논리적이고 정보적으로 접근한 도서입니다
개인의 부를 쌓는데 국가 라는 거시적 외부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 개인이 부자가 되는 데에도 읽어야 할 포인트가 되는 점이 많은 도서로 좋은 정보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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