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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폭력이다 박종성 인간사랑/2018.7.21.
정권이 바뀌고 과거사를 청산하면서 억울하게 국가의 권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무죄가 선고되고 국가 배상이 이루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어 한 사람의 인생과 한 가정의 평화를 앗아가게 되는 것인지 궁금한 것을 풀어 줄 책이 <국가는 폭력이다>다. 저자 발종성은 서원대학교에서 일했다. 저서로는 <혁명의 이론사>, <박헌영론>, <왕조의 정치변동>, <강점기 조선의 정치질서>, <한국정치와 정치폭력> 등 이성계부터 김대중까지 6백년 곡절을 살펴보았고, 유가의 논리로만 왕조국가를 보는 게 못마땅한 <조선은 법가의 나라였는가>, <백정과 기생>, <아전과 내시>, <평전 박헌영>과 이 책도 오늘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어제의 연장이다. <씨네 폴리틱스>, <영화가 뿌리친 정치사상>, <패션과 권력>, <사랑하다 죽다>, <퇴폐에 대하여>, <형벌을 그리다> 등 다수가 있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도록 법 적용규모와 대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기하려는 정치권력의 파격적, 전향적 실천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분단구조의 상황적 엄중함이라는 명분과 민중부문의 기왕의 정치저항에 담긴 부담을 모호하게 섞는 권력의 처지란 뭘까.(p.16)” 이런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해방 후 역대 정권들에게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짐’인 동시에 ‘힘’이다. 체제를 공격하고 격렬하게 정권을 비판하는 민중의 단속을 위해 궁극적 격리와 징벌의 정치성을 강화하는데 쓰인 법률이며, 이는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민중을 향한 국가의 폭력이었다. 국민을 유순하게 길들이는데 이만한 도구도 없었다.
“지배와 복종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효과적 수단은 곧 갈등의 통합과 해소가 아니라 갈등의 존치와 충돌기제의 관리를 통한 내부의 적 부각시키기. 바로 여기서 진영 논리와 상호대결의 정치학이 파생한다.(p.26)” 강자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모두 불온하며, 당국을 비판하는 이들은 동기 일체가 의심스럽고, 궁극적으로 체제의 위험요소가 된다는 편견도 거기서 등장한다. 남북으로 갈려 건국이 되면서, 건국초기의 민중폭력증가가 야기한 사법단속과 처벌 관행이 정치적으로 고착화 되었다. 이런 현상은 해방 후 한국 현대사의 고질적 비극이자 분단국가의 멍에라 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폭력지향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태우의 권력위축 이후 재문민화한 역대정권의 사법폭력이 통치공학적 근력을 확대재생산하는 정치관행은 두드러진다. 정치적 문민화의 역사와 정권 차원의 통치공학적 퇴행은 철저히 비례한다. 노태우의 퇴장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의 등장이 정치적 민주화를 자동 담보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은 허구다.(p.37)” 이들의 집권은 해방 후 한국 야권지도자들의 일대 약진이란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관심대상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개인의 이미지와 집권기 치적은 전혀 별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들이 재직하는 동안 국보법에 의해 구속되거나 집시법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증가함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민중압박의 효율적 방법 가운데 하나로 법 규범의 공포효과를 늘리고, 통치차원의 응용과 확장을 정교하게 고민하는 일은 결국 이 나라 역대 정권의 주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p.106)” 투쟁과 저항을 일삼는 시절의 ‘운동정치’와 당면한 권력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민중의 요구를 여과하는 역할변화가 예상보다 쉽지 않은 것이 ‘직업정치’이다. 하지만 국보법의 완전폐지나 근본개정은커녕, 기왕의 통치공학에 용이하게 동화하는 관행과 답습은 당대 정치의 치명적 한계로 고스란히 남았음을 저자는 토로한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저지른 결정적 패착 역시 권력을 잡기 전까지 외치던 ‘민주’와 ‘자유’의 가치 실현보다, 서둘러 다스리려고만 들던 통치의 실용적 ‘효율’ 때문이다.(p.120)” 예전에 자신이 그러했듯, 정작 자기를 항해 돌팔매 던지는 이들은 보려하지 않은 까닭이다. 정권 차원의 기능적 판단은 반성하기엔 한참 늦었다. 하지만 다시 살피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그다지도 경계, 경멸한 국가폭력을 정치권력 장악이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법정치적 오류는 당대의 긍정적 치적들을 덮는 치명적 오점으로 남는다.
“집시법과 근로기준법의 법정치적 폭력성보다 국보법의 정치적, 정권적 악용가능성은 이미 새삼스런 논쟁거리다. 앞의 두 법이 의존하는 정치적 격리와 통제 일변도의 폭력성 역시 사회질서의 재구와 지탱보다 도리어 다른 목적성에 치중한다.(p.168)”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독립이란 궁극적으로 허구다. 그것은 인간이 조어한 여러 어휘 가운데 ‘가치중립’의 모호함만큼이나 다의적이고 중층적 모순으로 결합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만큼 이 용어가 법정치적으로 ‘계획적’이며 ‘도구적’ 통치 메카니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박정권의 통진당 ‘해산’은 국가권력의 주문과 지배연합체의 공조에 따른 제도폭력의 극치다. 기습적이고 조직적이며 제도적 절차성을 완비한다는 점에서 탈법성을 사전 배제하는 반면, 정치적 경쟁자원을 사전 축출하려는 고도의 정치성을 전제하면 이 사건은 1959년 이승만 정권의 진보당 해산과 비견된다.(p.178)” ‘국가는 폭력’이며 ‘가진자들의 계급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폭력집단’이라는 믿음은 레닌과 마르크스의 전유물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토록 오래 국가가 주입한 안보의 허구성이란 권력의 자화상에 지나지 않는다. 겁주고 가두며 때리고 어르면서, 유순함을 학습시키려는 국가의 의도가 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을 ‘폭력’이라 말할 수 있는가. 군대와 경찰, 검찰과 법원, 감옥과 사법제도 스스로 강화하는 행정체제가 부르주아지와 동격의 ‘국가’라면, 그 같은 믿음이 고작 19세기 사회주의 사상에서나 가능한 생각이라면, 판에 박은 듯 되풀이하는 오늘의 ‘폭력’이란 무엇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야성 넘치는 운동주체로 군림할 때야 한결같이 국보법 폐기를 부르짖어도 권력 당사자가 되면 온순한 양처럼 변신하는 모습도 이제는 식상하다. 제도권에 편입하기만 하면 어쩔 수 없이 표를 의식하는 속내도 또 다른 환멸의 메뉴로 치부해야 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할까.(p.216)” 이와 같이 반문하면서 국보법의 미래는 가늠하기 힘겹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치’와 ‘운동’을 온 몸으로 섞어 투쟁을 업처럼 삼았던 이들도 현실 정치권력만 장악하고 나면 유순하고 온화해지는 저 정치적 돌변은 이미 볼만큼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버려야 할 법을 어쩌지 못하는 비겁은 족쇄로 남아 모두를 괴롭힌다. ‘누군가’ 없애주길 바라는 동안, ‘누군가’는 또 기어이 다칠 것이다. 그러기에 국보법이나 집시법은 고쳐 쓰는 것보다 없애버리는 게 나은 이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을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라는 많은 독자들이 읽고 잘못된 정치적 관행을 제지하는데 활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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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폭력이다 박종성 인간사랑/2018.7.21. sanbaram 정권이 바뀌고 과거사를 청산하면서 억울하게 국가의 권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무죄가 선고되고 국가 배상이 이루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어 한 사람의 인생과 한 가정의 평화를 앗아가게 되는 것인지 궁금한 것을 풀어 줄 책이 <국가는 폭력이다>다. 저자 발종성은 서원대학교에서 일했다. 저서로는 <혁명의 이론사>, <박헌영론>, <왕조의 정치변동>, <강점기 조선의 정치질서>, <한국정치와 정치폭력> 등 이성계부터 김대중까지 6백년 곡절을 살펴보았고, 유가의 논리로만 왕조국가를 보는 게 못마땅한 <조선은 법가의 나라였는가>, <백정과 기생>, <아전과 내시>, <평전 박헌영>과 이 책도 오늘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어제의 연장이다. <씨네 폴리틱스>, <영화가 뿌리친 정치사상>, <패션과 권력>, <사랑하다 죽다>, <퇴폐에 대하여>, <형벌을 그리다> 등 다수가 있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도록 법 적용규모와 대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기하려는 정치권력의 파격적, 전향적 실천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분단구조의 상황적 엄중함이라는 명분과 민중부문의 기왕의 정치저항에 담긴 부담을 모호하게 섞는 권력의 처지란 뭘까.(p.16)” 이런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해방 후 역대 정권들에게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짐’인 동시에 ‘힘’이다. 체제를 공격하고 격렬하게 정권을 비판하는 민중의 단속을 위해 궁극적 격리와 징벌의 정치성을 강화하는데 쓰인 법률이며, 이는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민중을 향한 국가의 폭력이었다. 국민을 유순하게 길들이는데 이만한 도구도 없었다. “지배와 복종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효과적 수단은 곧 갈등의 통합과 해소가 아니라 갈등의 존치와 충돌기제의 관리를 통한 내부의 적 부각시키기. 바로 여기서 진영 논리와 상호대결의 정치학이 파생한다.(p.26)” 강자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모두 불온하며, 당국을 비판하는 이들은 동기 일체가 의심스럽고, 궁극적으로 체제의 위험요소가 된다는 편견도 거기서 등장한다. 남북으로 갈려 건국이 되면서, 건국초기의 민중폭력증가가 야기한 사법단속과 처벌 관행이 정치적으로 고착화 되었다. 이런 현상은 해방 후 한국 현대사의 고질적 비극이자 분단국가의 멍에라 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폭력지향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태우의 권력위축 이후 재문민화한 역대정권의 사법폭력이 통치공학적 근력을 확대재생산하는 정치관행은 두드러진다. 정치적 문민화의 역사와 정권 차원의 통치공학적 퇴행은 철저히 비례한다. 노태우의 퇴장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의 등장이 정치적 민주화를 자동 담보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은 허구다.(p.37)” 이들의 집권은 해방 후 한국 야권지도자들의 일대 약진이란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관심대상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개인의 이미지와 집권기 치적은 전혀 별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들이 재직하는 동안 국보법에 의해 구속되거나 집시법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증가함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민중압박의 효율적 방법 가운데 하나로 법 규범의 공포효과를 늘리고, 통치차원의 응용과 확장을 정교하게 고민하는 일은 결국 이 나라 역대 정권의 주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p.106)” 투쟁과 저항을 일삼는 시절의 ‘운동정치’와 당면한 권력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민중의 요구를 여과하는 역할변화가 예상보다 쉽지 않은 것이 ‘직업정치’이다. 하지만 국보법의 완전폐지나 근본개정은커녕, 기왕의 통치공학에 용이하게 동화하는 관행과 답습은 당대 정치의 치명적 한계로 고스란히 남았음을 저자는 토로한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저지른 결정적 패착 역시 권력을 잡기 전까지 외치던 ‘민주’와 ‘자유’의 가치 실현보다, 서둘러 다스리려고만 들던 통치의 실용적 ‘효율’ 때문이다.(p.120)” 예전에 자신이 그러했듯, 정작 자기를 항해 돌팔매 던지는 이들은 보려하지 않은 까닭이다. 정권 차원의 기능적 판단은 반성하기엔 한참 늦었다. 하지만 다시 살피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그다지도 경계, 경멸한 국가폭력을 정치권력 장악이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법정치적 오류는 당대의 긍정적 치적들을 덮는 치명적 오점으로 남는다. “집시법과 근로기준법의 법정치적 폭력성보다 국보법의 정치적, 정권적 악용가능성은 이미 새삼스런 논쟁거리다. 앞의 두 법이 의존하는 정치적 격리와 통제 일변도의 폭력성 역시 사회질서의 재구와 지탱보다 도리어 다른 목적성에 치중한다.(p.168)”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독립이란 궁극적으로 허구다. 그것은 인간이 조어한 여러 어휘 가운데 ‘가치중립’의 모호함만큼이나 다의적이고 중층적 모순으로 결합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만큼 이 용어가 법정치적으로 ‘계획적’이며 ‘도구적’ 통치 메카니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박정권의 통진당 ‘해산’은 국가권력의 주문과 지배연합체의 공조에 따른 제도폭력의 극치다. 기습적이고 조직적이며 제도적 절차성을 완비한다는 점에서 탈법성을 사전 배제하는 반면, 정치적 경쟁자원을 사전 축출하려는 고도의 정치성을 전제하면 이 사건은 1959년 이승만 정권의 진보당 해산과 비견된다.(p.178)” ‘국가는 폭력’이며 ‘가진자들의 계급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폭력집단’이라는 믿음은 레닌과 마르크스의 전유물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토록 오래 국가가 주입한 안보의 허구성이란 권력의 자화상에 지나지 않는다. 겁주고 가두며 때리고 어르면서, 유순함을 학습시키려는 국가의 의도가 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을 ‘폭력’이라 말할 수 있는가. 군대와 경찰, 검찰과 법원, 감옥과 사법제도 스스로 강화하는 행정체제가 부르주아지와 동격의 ‘국가’라면, 그 같은 믿음이 고작 19세기 사회주의 사상에서나 가능한 생각이라면, 판에 박은 듯 되풀이하는 오늘의 ‘폭력’이란 무엇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야성 넘치는 운동주체로 군림할 때야 한결같이 국보법 폐기를 부르짖어도 권력 당사자가 되면 온순한 양처럼 변신하는 모습도 이제는 식상하다. 제도권에 편입하기만 하면 어쩔 수 없이 표를 의식하는 속내도 또 다른 환멸의 메뉴로 치부해야 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할까.(p.216)” 이와 같이 반문하면서 국보법의 미래는 가늠하기 힘겹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치’와 ‘운동’을 온 몸으로 섞어 투쟁을 업처럼 삼았던 이들도 현실 정치권력만 장악하고 나면 유순하고 온화해지는 저 정치적 돌변은 이미 볼만큼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버려야 할 법을 어쩌지 못하는 비겁은 족쇄로 남아 모두를 괴롭힌다. ‘누군가’ 없애주길 바라는 동안, ‘누군가’는 또 기어이 다칠 것이다. 그러기에 국보법이나 집시법은 고쳐 쓰는 것보다 없애버리는 게 나은 이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을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라는 많은 독자들이 읽고 잘못된 정치적 관행을 제지하는데 활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인간사랑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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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오늘에 이르도록 법 적용규모와 대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기하려는 정치권력의 파격적, 전향적 실천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분단구조의 상황적 엄중함이라는 명분과 민중부문의 기왕의 정치저항에 담긴 부담을 모호하게 섞는 권력의 처지란 뭘까.(p.16)” 이런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해방 후 역대 정권들에게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짐’인 동시에 ‘힘’이다. 체제를 공격하고 격렬하게 정권을 비판하는 민중의 단속을 위해 궁극적 격리와 징벌의 정치성을 강화하는데 쓰인 법률이며, 이는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민중을 향한 국가의 폭력이었다. 국민을 유순하게 길들이는데 이만한 도구도 없었다. “지배와 복종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효과적 수단은 곧 갈등의 통합과 해소가 아니라 갈등의 존치와 충돌기제의 관리를 통한 내부의 적 부각시키기. 바로 여기서 진영 논리와 상호대결의 정치학이 파생한다.(p.26)” 강자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모두 불온하며, 당국을 비판하는 이들은 동기 일체가 의심스럽고, 궁극적으로 체제의 위험요소가 된다는 편견도 거기서 등장한다. 남북으로 갈려 건국이 되면서, 건국초기의 민중폭력증가가 야기한 사법단속과 처벌 관행이 정치적으로 고착화 되었다. 이런 현상은 해방 후 한국 현대사의 고질적 비극이자 분단국가의 멍에라 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폭력지향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태우의 권력위축 이후 재문민화한 역대정권의 사법폭력이 통치공학적 근력을 확대재생산하는 정치관행은 두드러진다. 정치적 문민화의 역사와 정권 차원의 통치공학적 퇴행은 철저히 비례한다. 노태우의 퇴장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의 등장이 정치적 민주화를 자동 담보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은 허구다.(p.37)” 이들의 집권은 해방 후 한국 야권지도자들의 일대 약진이란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관심대상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개인의 이미지와 집권기 치적은 전혀 별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들이 재직하는 동안 국보법에 의해 구속되거나 집시법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증가함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민중압박의 효율적 방법 가운데 하나로 법 규범의 공포효과를 늘리고, 통치차원의 응용과 확장을 정교하게 고민하는 일은 결국 이 나라 역대 정권의 주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p.106)” 투쟁과 저항을 일삼는 시절의 ‘운동정치’와 당면한 권력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민중의 요구를 여과하는 역할변화가 예상보다 쉽지 않은 것이 ‘직업정치’이다. 하지만 국보법의 완전폐지나 근본개정은커녕, 기왕의 통치공학에 용이하게 동화하는 관행과 답습은 당대 정치의 치명적 한계로 고스란히 남았음을 저자는 토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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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사랑에서 출판한 책은 무조건 읽는, 소위 인간사랑의 애독자이다. 인간사랑에서 출판한 책은 항상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비록 소수여도 양서는 출간되고 있고 양서를 애타게 찾는 독자 역시 존재한다. 인간사랑은 성실하고 꾸준하게 양서를 출간하는 출판사이다. 그래서 2018년 7월에 출간된 박종성 작가의 <국가는 폭력이다> 역시 매우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국가는 폭력이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다. '폭력'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고, '국가'는 은연중 우리 모두에게 거룩하고 신성한 유기체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국가는 거룩하고 신성한 것일까. 물론 국가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에 대한 근거를 내세우며 주장을 강화하는 무리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의견 역시 존중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가라는 실체에 대해 한 번쯤 의심을 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무인도에서 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평생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자신을 손에 쥐고 있는 '국가'라는 존재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 따라서 나는 국가에 대해 막연히 긍정적인 입장을 취할 게 아니라 한편으로는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가 갖고 있던 국가, 특히 한국 정치에 대한 통념을 깨부수는 역할을 하는 아주 신선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의 근, 현대사를 결정한 힘의 근본이 '폭력'이었다는 가설을 이 책의 첫 부분의 제시한 저자의 강렬함이 아직도 인상적이다. 한국의 정치사가 상처투성이라는 점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한국 정치는 민주적으로 발전해 오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이 책을 읽으며 94~95쪽이 무척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는데, 그 이후는 94쪽에 제시되어 있는 자료가 다름 아닌 '6.29이후 연도별 해고/구속/수배 노동자수의 변화'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표를 제시하며 노태우의 정치적 두 얼굴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비단 노태우 정권에 대해 저자가 자세히 분석해 놓은 것에 놀란 게 아니다. 모두 다 한 면을 보고 설명할 때, 저자는 양면성을 보았다는 점이 나를 무척 흥미롭게 만들었다. 정치에 관심이 있고, 특히 뉴스는 빠지지 않고 본다고 자부하는 나도, 어쩌면 늘 편향된 정치적 견해만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박종성 작가의 <국가는 폭력이다>는 나에게 한국 정치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한국인이라면, 특히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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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폭력이다. 이 책은 저자는 박종성, 얼마 전에 읽은 『영화가 뿌리친 정치사상』에 이어 두 번째 만난다. 그 책은 ‘정치교육의 새로운 방법을 찾다’라는 부제가 붙어있어, 영화로 정치를 살펴보는 책이었는데, 이 책 역시 정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저자 소개를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나라 정치를 통찰하는 책을 여럿 써오고 계신 분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매우 도발적인 제목의 책인지라 그 내용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 I. 국가 건설 이후 권력과 민중의 충돌 : 한국의 사법 권력과 국가 폭력 II. 민주화 이후의 탈민주화 : 재문민화 시대의 국가 폭력과 정치억압 III. 민주화의 연장과 일탈 : 노무현과 이명박의 사법 권력 확장 IV. 국가보안법의 통치 공학 : 박근혜의 역민주화와 정치지배연합 그러니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 국가는 권력을 획득 또는 유지하기 위하여 권력을 어떻게 폭력적 방법으로 행사했는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며 제목이기도 한 폭력, 그 개념을 저자는 어떻게 내리고 있는가, 폭력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저자는 폭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단순하며 확실한 정치적 수단.>(30쪽) <사용주체의 의지대로 순식간에 혹은 의도한 범위를 크게 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상대를 제압 복속시키는 철저하고 지독한 일방성을 전제하는 ‘힘’이다.>(31쪽) 그러한 폭력이 정치적으로 사용되게 되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혁명적 변동의 기미를 알아차리고 이미 악화된 민심과 틀어져버린 질서의 꼬투리나마 기왕의 정치적 주도권 아래 붙잡아 매어 두려 억압을 기정화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이른바 국가폭력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도 정치의 시대가 빚은 작위적 통치와 그에 대한 지적 반발의 결과라고 한다. (7쪽) 국가가 사용하는 폭력의 구체적인 방법이 국가보안법인데, 국가보안법의 폭력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저자는 국가보안법의 폭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래서 <집시법과 근로기준법의 법정치적 폭력성보다 국보법의 정치적, 정권적 악용 가능성은 이미 새삼스런 논쟁거리다.>(168쪽)라고 한다. <이 땅의 국보법 역시 그 연장선상에 선다. 누구라도 단죄대상으로 예외가 없고 어디서든 증거 채집과 보전이 가능한 정치적 통제도구로 이만한 방법이 없다는 점 역시 주목하자.>(183쪽) 국가폭력은 사법부의 판결이라는 형태로 행사되기도 한다. 제도 폭력의 항구적 보장 수단으로 ‘국가’의 폭력성이 고점을 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건이다.(177쪽) 이 건에 대하여 저자는 국가가 발의 동의하고 국가가 해산 배제한 좀체 예외적인 사례로 손꼽히며 제도폭력의 일반적 관례에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고 평가한다. 밑줄 긋고 새겨 볼 말들 재문민화 이후의 민주화 과정 역시 허구와 내면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였음은 치명적이다. 민주화가 마치 자기 완결적 개념인양 생각하는 오류도 문제지만, 재문민화를 민주주의의 완성이나 합리적 복원처럼 이해하는 자동적 등식논리도 한계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같은 변화가 구체제의 모순을 당장 폐기할 것이라는 기대 또한 얼마나 위험하고 성급한 것인지 헤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14쪽) 사법부의 독립이란 허구다. 그것은 인간이 조어한 여러 어휘 가운데 ‘가치중립’의 모호함만큼이나 다의적이고 중층적 모순으로 결합한다. 그만큼 이 용어가 법정치적으로 ‘계획적’이며 ‘도구적’ 통치 메커니즘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데도 복잡한 전제는 필요 없다. (169쪽) 이해가 어려운 단어, 문장이 보인다, 외삽(外揷) 폭력이란 무엇인가 <외삽폭력마저 줄곧 견뎌내야 했던 민중 보편의 정치적 면역력이 지속적으로 ,,,>(22쪽) 내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많다. <역사의 부끄러운 변인이라 말할 요소들을 이들 모두가 끌어안는다 해도 정치분석에서 피치 못할 ‘결정론’은 따로 마련하기 힘들다.>(15쪽)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질책과 ‘해내지 못했다’는 무능이 겹쳐 기왕의 다른 실정들과 생화학적으로 결합 승수하는 문제의 중첩은 세기초 한국정치가 헤쳐야 했던 다중의 과제 가운데 하나다.>(167쪽) 위와 같은 문장들을 어떻게 따라잡아야 할지, 내 글읽기 수준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탈자, 몇가지 <이른바 ‘강제적 동의’와 ‘자발적 동의’는 엄연한 법이다.> (32쪽) 이 문장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른바 ‘강제적 동의’와 ‘자발적 동의’는 엄연히 다른 법이다.>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질책과 ‘해내지 못했다’는 무능이 겹쳐 기왕의 다른 실정들과 생화학적으로 결합 승수하는 문제의 중첩은 세기초 한국정치가 헤쳐야 했던 다중의 과제 가운데 하나다.>(167쪽) ‘헤쳐야 했던’은 ‘해쳐나가야 했던’이 올바르지 않을까 다시, 이 책은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은 국가 폭력이라는 정치적 행위가 타당성을 갖게 만든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자기 영토 안에 타자의 사상이 깃들거나 그로써 다른 믿음과 행동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애당초 용납하지 않는 숨 막히는 세월로 접어> 들게 된 것이다. 타자의 사상을 자기 영토 안에 깃들이지 않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국가폭력이다. 겁주고 가두며 때리고 어르면서 유순함을 학습시키려는 국가의 의도가 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을 폭력이라 할 수 있으랴. 그렇게 '국가는 폭력이다' 라는 명제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역사에 존재한다는 것,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런 폭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역사의 기록으로도 또한 내일을 위한 경보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 가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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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난번 탄핵당시 기무사에서 작성한
계엄령문건으로 말이 많다. 계엄령과 함께 그것이 친위 쿠데타를 계획한 것이든, 아니면 정치군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한 것이든 무위로 끝났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더욱 섬뜩했던 것은 그들이 촛불을 든 시민들을 적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혹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4.19와 5.18에 이어 또 다시 국가권력이
국민을 학살하는 비극을 목도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좌파와 종북으로 몰아 매도하는
것은 분명 폭력의 다른 이름임에 틀림이 없다.
박종성 교수가 쓴 [국가는 폭력이다]는 해방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국가의
폭력을 통계를 기준으로 살펴보고 있다. 부제 ‘법은 권력을
위해 어떻게 복무하는가’가 말해주듯 권력이 국가보안법, 근로기준법, 집시법과 같은 법률을 어떻게 적용하여 국민들을 억압했는지를 통해 국가가 지닌 폭력의 본질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해방 후 ‘한국에서의 폭력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단순하며 확실한 정치적 수단’이었다고
한다. 정권에 있어서 정통성의 상실은 항상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그러기에 정권은 이를 방어하고자 자신들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합법적 장치를 강구한다. 폭력사용의
절차적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한 규범적 근거와 사법적 단죄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의 폭력이 강제동의를 위한 직접고문이나
신체에 대한 벌 부과라면 민중의 폭력자원은 시위, 농성, 투신, 분신과 같이 자신들이 당하는 억울함을 표현하거나 혹은 정권의 부당성에 항거하는 최소한의 몸짓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이는 민주화를 향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정권은
이러한 민중폭력을 국가폭력의 부단한 강화와 정치 억압의 합리적 근거로 악용한다. 저자는 한국현대사에
있어 치명적인 한계는 정권교체와 국가폭력의 어김없는 성장에 있다고 강조한다. 군부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가폭력의 투입총량은 증가했고 이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온갖 논리개발에 적극적이었음은 비단 통계를 통하지 않더라도 피부로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민주화를 향한 숱한 희생의 대가가 더 강한 폭력을 강요하는 역설 속에서 우리는 국가폭력에 순응되어 왔던 것이다. 국가폭력의 최후 집행자가 경찰폭력이라면 이를 담보하는 것은 사법폭력이다. 정치폭력의
집행을 위한 사법폭력의 순응은 국가폭력을 제도화하는 최우선 요인이었다. 그래서 군부정권은 항상 사법부에
대한 길들이기에 나섰다.
국가의 폭력은 비단 군부정권 시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정권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등장이 정치적 민주화를 자동으로 담보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은 허구라고 저자는 말한다. 개인의 이미지와 집권기 치적은 전혀 별개라는 것이다. 국가폭력을
담보하는 대표적인 사법통제가 국보법이고, 정권을 잡기 전 그들도 이런 국가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집권 후
이를 폐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정부의 등장은
오히려 국가폭력의 수준을 이전 군부정권시절로 되돌린다. 통계가 말하는 기소된 숫자나 구속자수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국가위기의 규모를 절박한 수준으로 높이고 이를 방어 견제하기 위한 효율적 도구’로
국보법은 항상 국가폭력을 정당화시켰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속속 들어 나고 있는 사법농단 사례를 보더라도
‘권력이 법으로부터 초연하거나
법이 정치를 전혀 의식할 필요 없는 세상은 적어도 이 땅에서 실현된 적이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 책은 우리의 현대사에 투영되어 있던
국가의 어두웠던 민 낯을 우리에게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국가폭력의 주범은 바로 국보법임을
지적하고 있다. 고쳐 쓰기보다는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저자. 지금까지는 취약한 정치적 정통성을 위해 없애지 못했다면 이제는 국가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고려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정권에 기대를 갖는 것도 비단 나 뿐만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 박종성을 처음 만난 것은 그의 전작 [정사, 사랑하다 죽다]였다. 그 후 [퇴폐에 대하여], [영화가 뿌리친 정치사상]등의 책으로 만났다. 비록 몇 년 전에 읽은 책들이지만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의 독특한 글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렵지 않게, 이해하기 쉽게 써 내려간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그의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곤했다. 그러다 보니 비록 한 방면을 깊이 파고드는 글 일지라도, 설사 내가 그것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별 어려움 없이 읽었다는 생각이다. 이 책 역시 그 때의 기억들이 생각나 냉큼 읽기 시작했고 나의 기대 또한 어긋나지 않았다. 그의 다음 저작이 어떤 책이 될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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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트 투입니다. --------------------------------------------------------------------------------------- 국가폭력은 광범위하며 구조적인 강제력과 이를 집행/견인할 복잡한 하위영역의 자발적/타율 적 복무에 의해 구성되는 불편한 힘의 총체다. 검찰의 기소는 그 거대폭력의 한 모서리 아니면 일부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국보법 위반사범의 현저한 퇴조와 피의자 기소의 두드러진 감소는 노무현 정부의 이념적 기조 와 잘 어울린다, ...... 역대 문민정권 가운데 가장 많은 노동자 구속으로 압도적인 노 정권의 사법 폴경은 특이하다. 제아무리 합법적, 합리적 공권력 사용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높고 강한 사회적 설득력을 동원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137쪽 국보법의 재/개정이 모두 당대 남로당 활동을 비롯한 좌익세력의 제거를 목적으로 삼았음은 재론 의 여지가 없다. 141쪽 제도폭력의 민중통제효과를 극대화시킨 계기는 결국 사법권의 정치적 응용에 따른 공포확산이다. 적응하면 보상받고 일탈하면 제재 받는다는 강성정권 특유의 사회통제는 민중의 정치적 배체라는 통치 프로그램과 잘 어울리는 다스림의 수단이다. 148쪽
민중폭력이 동원하는 실질적 정치변화는 정치일정의 부분적 양보와 재고였을 뿐, 한 번이라도 계급구조와 권력구조의 동시변혁이 이루어지는 힘의 전면개편은 없었다. ...... 실질폭력의 한계 는 희생자의 무덤 뒤에 망각과 회한의 파편만 남길 뿐 세상의 진짜변화는 없었다. 151쪽
군부의 연장과 정치적 기득권 계승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폭력적 기형성을 한층 증폭시키고 민중연대의 정치력을 극단의 저항양식으로 견인함으로써 운동주체의 철저한 자기부정과 희생의 장을 연다는 사실. 죽음과 양심의 이름으로 펼쳐진 절대항변은 해방 후 민중폭력의 성장이 다다 른 절정의 역사단계였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의 민중폭력이 곧 민주화 종반부의 정치적 숙성을 자동담보하진 않는 다. 154쪽 문민체제마저 자신의 지탱과 관리를 위해 폭력적 지배 장치를 예비해야 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역설 가운데 하나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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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진보의 지탱은 커녕, 이 같은 세상을 구현할 사법적 안전장치를 방임/지체한 정치적 무책임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문제적 근본을 짚을 수 있다. 노무현 집권기 이후의 민주화 과정도 높은 정치비용을 요구하긴 마찬가지다. ... 민주주의란 이름의 저 오랜 정치사상을 이 땅에서 꽃피우려는 작업이 단지 역사의 이행과 세월의 흐름만 으로 가능하리만 기대는 어림없다. (중략) 사법부의 독립이란 궁극적으로 허구다. 그것은 인간이 조어한 여러 어휘가운데 가치중립의 모호함만큼이나 다의적이고 중층적 모순으로 결합한다. 169쪽
이명박...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민중폭력의 과잉학습과 권력수축에 법의 상대적 광잉적용이나 국정원의 국내정치동원 등도 이 같은 정치적 필요의 부수적 결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73쪽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 제도폭력의 일반적 관례에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177쪽 이 사건은 1959년 이승만 정권의 진보당 해산과 비견된다. 당시로서야 이승만 정권이 끝내 조봉암을 사형에 처하는 제도폭력과 사법폭력의 조율까지 기대할 수 있었지만, 끝내 정당 해산과 의원제명으로 귀결되는 박근혜 정권의 국가폭력은 모처럼의 예외사례로 기록된다. 178쪽 권력의 배타적 사고는 이처럼 유순하지 않은 피치자들을 비시민으로 몰며 불충과 무례를 우려한다. 180쪽
법의 중단은 공적 영역의 마비를 뜻하고, 근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해체한다. 185쪽 예) 미국 부시 정권에서의 대테러 전쟁에서의 예외상태.
박근혜 정부가 바라보는 통진당은 부시 행정부가 의심하는 외국인이거나 이라크 그 자체 다. 186쪽 국보법 제7조의 독소조항이 제3조의 그것과 연게도리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9조와 충돌하는 내재적 모순의 연결고리. 192쪽 문제의 핵심은 정당해산이 의도치 않은 절멸과 배제의 정치를 기정화함으로써 기왕의 정당 존속으로 인하여 향유할 불특정 다수의 정치적 자유와 그로인한 유/무형의 가치추구를 원천 부정한다는 사실에 있다. 194쪽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나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근안에게나 악의 평범성은 거기서 거기다. 생각은 커녕, 지시와 명령만 기다리는 기술자들의 손끝이 국보법의 존재 그 자체를 웃도는 국가폭력의 실체였음을 부인할 수 없는 역사다. 199쪽 폐기와 개정만 부르짖는 메마른 세우러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200쪽
1968년부터 2018년까지 살아왔다면 1972년 1979년 1980년 1987년 뿐만아니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됩니 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기억나지 않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그런 일들이 참 많았다싶습니다. 사람은 좋았는데 일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거나 10.26, 12.12,. 5.18, 88올림픽 백담사, 교도소 밥 잘 먹는 노태우 전 대통령, 김영삼의 변절, 수없이 바뀐 정당의 이름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문제, 노무현에게서 등돌린 정몽준! 이명박과 4대강, 박근혜와 통진당 해산과 촛불시위로 인한 정권 교체, 그리고 현재의 대통령!
잊지 말아야할 역사는 기억해야합니다.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자꾸 잊어먹고 있었는데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기억할 수 잇었습니다.
프랑스나 미국에서 당연하지 않은 국가폭력은 한국에서도 당연하지 않은 국가폭력이라는 생 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고 이런 책이 버젓 이 출판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대한민국이 달라지고 있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아니면 돼는 국가폭력 앞에서 절대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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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폭력이다."라고 쓰고 "국가의 폭력의 종류와 (그 폭력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고 상식 적인 권리를 누리기 위해) 국보법의 존폐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해야 함을 알고 시민이 제대로 움직 여야 한다."라고 읽어야 하는 책!
1. 역사적으로 본 한국의 국가 폭력 과 2. 폭력에 대한 정의 3. 최근의 경향과 교훈으로 나누어 리뷰 하겠습니다. 박종성 저자는 민중 열망이 사회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곳곳에서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으며, 국보법이 여러 진보적인 정권을 거쳤음에도 유지되었는지에 대해 이유를 밝히면서 이대로 계속 놔둘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롤로그 5쪽 1. 국가건설 이후 권력과 민중의 충돌 : 한국의 사법권력과 국가 폭력 19쪽 2. 민주화 이후의 탈민주화 : 재문민화 시대의 국가폭력과 정치억압 71쪽 3. 민주화의 연장과 일탈 : 노무현과 이명박의 사법권력 확장 117쪽 4. 국가보안법의 통치공학 : 박근혜의 역민주화와 정치지배연합 163쪽 에필로그 209쪽
1. 역사적으로 본 한국의 국가 폭력
우익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입지 곧추세우며 투쟁과 저항을 일삼던 진보진영도 득세와 집권이 보장되면 처신은 돌변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국보법 폐지에 둔감하거나 신중하려는 자세 로 돌아서는 건 도무지 뭘 뜻할까? (중략) 좌우의 대립이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핑계로 법까지 만들어 민중을 다스리려 들 때부터 정치적 비애는 예건되고 있었다. 그것이 분단의 대가인 것이야 당연하지만 식민의 세월이 심어놓은 미움 과 분노의 나날이 출구를 찾지 못해 애면글면할 때 하필 가장 가까이 있는 서로가 서로 싸울 차비 를 마쳐 가고 있음은 희한한 노릇이다. 동포가 동포의 심장을 겨누는 일부터 전혀 이상하지 않음 은 비국치고 지극히 희극적인 터였다. 그리고 해방공간의 질곡이 금세 끝나기 힘겨운 운명처럼 여 겨진 건, 천년만년 가리라 내다본 일제의 서슬과 그를 둘러싼 시퍼런 기억 때문이엇을 것이다. 210쪽
분단 상황은 남북한 공히 정치적 다원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 분단이 대결을 낳고 대결이 곧 대적의 강박과 전쟁의 부담을 잉태한 것도 회의와 실망의 상대로 방임해 버리고 말 성질의 주 제는 아니었다. 211쪽
전쟁을 치르고 나도 승패를 가르지 못한 양 진영...... 국가의 안전을 핑계 삼아 법부터 만들고 그 힘으로 적들을 무릎 꿇게 만들겠다는 절박감은 혹여 패배할는지 모를 미래의 전쟁을 미리 걱 정하는 권력 강박의 거울 조각이다. 내부를 먼저 단속하고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권력의 계산은 권력 그 자체의 내면의 공포를 명징 하게 반영한다. ...... 권력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면 자신의 두려움을 온전히 민중의 것으로 되돌 리려는 고도의 장치가 필요했던 터다. 공동체 구성원들을 두렵게 하는 것만이 타율적 통합의 지름 길이며 정치적 복속과 예종의 물꼬를 트는 방법이라고 절감했던 것이다. 213쪽
적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먼저 필요한 과업은 안의 적부터 골라 격리하고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 었다. 그래야 권력의 초상은 보다 의연할 수 있고 용맹하다는 전설까지 구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법의 힘으로 국가의 안전이 보장된 게 아니라 혹여 대들지 모를 내부의 적을 단속하기 위하여 민 중통제이 방편이 먼저 필요했던 이유......기실 정권의 생명부터 염려한 치밀한 계산의 결과 ...... 겁주고 무릎 꿇게 하려는 권력의 판단은 자기강박의 당연한 귀결이며 싸워 이기기 전, 자신의 힘 을 먼저 재확인하려는 통치공학의 합리적 선택이었다. 214쪽
겁먹을 민중이 상당 숫자 엄존하는 상황은 모두가 명민하고 활발한 경우보다 당연히 다스리기 쉽다. 권력에게 부담스런 상황이란 예외의 과격함이 부분적으로 돌출/상존하는 경우일 것이다. 다수의 동조와 순응에 힘입어 이를 민주적 지지기반으로 합리화하고 극히 일부를 격리/배제하려 는 당국의 의지가 폭력이라기보다 심지어 환호와 박수의 계기를 이루는 것도 극우적 발상의 특징 이다. 국보법이 국가의 안보보다 정권의 그것을 방호/옹위하는 절박한 정치수단으로 도구화하는 곡절 도 이 같은 배경에서 살필일이다. 국가는 폭력이며 가진 자들이 계급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폭력 집단이라는 믿음은 본디 레닌과 마르크스의 전유물이다. 하지만 어쩌랴. 정경유착까진 그만두더라도 그들의 말을 뒤집을 근거란 희박하다. ... 그토록 오래 국가가 주입한 안보의 허구성이란 권력의 자 화상 아니고 또 무엇이었을까. 215쪽
역사는 민주주의와 나란히 가지 않는다. ...... 민주화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앞날의 모습을 핑계로 인내를 요구한다. ...... 국보법은 여전히 정치적 효용성과 정권의 실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도구적 기능성을 유지한 다. (중략) 안보의 망령은 생각보다 깊고 넓게 퍼져있다. ...... 구성원들이 어느덧 방관자가 되고 민중 보편이 선호하는 자유의 극한이 방종과 혼돈의 궤도로 진입하길 애써 기다리는 악마의 표정도 국가는 숨기 는게 보통이다. ...... 버려야 할 법을 어쩌지 못하는 비겁은 족쇄로 남아 모두를 괴롭힌다. 누군가 없애주길 바라는 동안 누군가는 또 기어이 다칠 것이다. 고쳐 쓰는 것보다 없애버리는 게 나은 이유다. 218쪽
2. 폭력에 대한 정의
반정부인사들에 대한 추적과 감시, 투옥과 고문은 물론 정체불명의 죽음에까지 이르는 온갖 무리 수와 강제권력 사용이 이 같은 국가폭력의 산물이라면, 암살과 테러 혹은 특정인을 향한 겁박과 공 개 살인 등은 민중폭력의 선별적 극한 사례들로 주목할 것이다. 7쪽
이른바 민주화란 민중폭력의 정치적 적합성이 사회적 제도화 과정에 성공하여 정치질서의 형식과 내용을 동시 결정하는 지속적 절차를 뜻한다고 이해할 것이다. 민주화는 완성적 개념이 아니다. 8쪽
민중을 향한 국가의 제도적 권위와 국가를 겨냥하는 민중이 집단적 행동가능성은 서로의 정치자 원이자 긴장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암살과 테러, 쿠테타와 혁명, 억압과 단속, 투옥과 고문, 린치와 음해, 비난과 공격, 구타와 상해 등은 정치질서의 형성과정에서 등장/분화하는 극단의 사례들로 상황의 변화를 유도한다. ...... 대부분의 정치질서는 암묵적 폭력과 구조적 파괴력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늘 고요하거나 평화적이 지 않다. 9쪽
중요한 건 정치질서형성의 시/공간의 차이와 다름이 아니다. ... 기회의 정치학보다 정치의 주요 당사자들로 국가와 민중의 집단견제는 물론 상호통제와 지배의 사회심리학이 선행한다는 것이다. ...... 그에 조응해야 한다는 상대적 예지력 크기가 먼저라는 점이다. 정치폭력을 경험한 집단기억은 부피의 학습에 익숙해진다. 10쪽
권력은 민중의 거역으로 교체할 수 있지만 체제는 민중의 일탈을 끊임없이 감시/관찰하고 자신의 존재이유를 제도적으로 각인함으로써 권위적 정착의 온갖 메커니즘을 정치적으로 계발한다. ... 질서의 정치는 상호압박의 부담을 이겨낼 수 있었다. 13쪽
군부정치체제와 민간정치세력의 지배연합은 이익의 균점과 확장이라는 가치를 공유한다. 해방 후 역대 정권들에게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짐이다. 뿐만 아니라 힘이다. 민주화의 완성이라는 명분을 충족시키려면 무엇보다 먼저 민중통제와 정치억압은 물리적으로 최소 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 지치지 않는 민중을 조이고 겁주는 폭력수단으로 이를 대체할 방법은 따로 없었던 것이다.
모든 정권의 정치적 속내가 부담스러운 건 아래로부터 위를 향한 한결같은 저항과 그 물리적 근 거로 시위를 비롯한 집단행동의 잠정적 압박 때문이다. 15쪽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기하려는 정치권력의 파격적/전향적 실천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16쪽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클럽을 통해 인간사랑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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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지 못하는 권력은 늘 불안하다. 생각의 자유를 허용하면 자기가 밀릴 것이라고 염려하는 권력은 자신의 안전판으로 법을 들추며 뒤척인다. 하지만 버려야 할 법을 어쩌지 못하는 비겁은 족쇄로 남아 모두를 괴롭힌다. '누군가' 없애주길 바라는 동안, '누군가'는 또 기어이 다칠 것이다. 고쳐 쓰는 것보다 없애버리는 게 나은 이유다. - p.218
지금 내 입에는 달콤한 사탕이 하나 들어 있다. 여름의 더위 때문에, 반쯤은 이미 녹아 있는데, 입안에서 또 녹이고 있다. 맛있다. 졸음도 쫓을 수 있다. 달콤한 사탕의 유혹. 그런데, 이 사탕을 깨무는 순간, 그 맛있는 유혹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빨의 아픔만이 남는다. 왜지? 왜지? 왜지? 권력은 늘 그렇게 존재해 왔다. 아픔이 남을 것 같지 않은 순간에도, 우리를 아프게 했고, 달콤하게 유혹했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억압하는. 그런 권력의 끊임없는 투쟁은 지금껏 계속되어 왔다. 이명박, 박근혜는 당연하고 노무현 역시 그 권력의 억압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가 늘 사탕의 달콤한 유혹만 받아왔기 때문은 아닐까. 그 뒤에 숨겨진 씁쓸함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어느 지도자보다 민주주의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모범적 대통령으로 자처하고 싶었던 그(노무현)도 독재를 주도한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눈길은 꽂힌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 구속의 사유도 물론 있고 그 엄중한 명분 앞에 사법권력의 '폭력화'는 공권력으로서의 위세를 다 갖춘 다음이었지만 말이다. -p.138
『국가는 폭력이다』는 우리나라의 법이 어떻게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곧 폭력이고 그 폭력은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국가라는 것이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민을 억압하기 위한 개인의 국가라는 것이 문제다.
폭력을 폭력으로 적시 제거하지 못한 정치적 대가는 상상의 수준을 웃돈다. 국가건설과정에서 폭력은 민중의 과잉기대와 참여의 위기를 낳고 급조된 제도폭력과 충돌하는 동안 의도치 않은 비극의 단면들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 p.43
『국가는 폭력이다』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굳이,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는다. 드러나는 흐름, 드러난 실체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했다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정치폭력과 민주주의는 나란히 가지 않는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원인이자 결과인 까닭이다. 역사 속의 모든 혁명이 혁명이후 다시 그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자전自轉의 모습과도 이는 비슷하다. 세상은 변하였으되, 속내는 과거만 못하고 절박함과 야만성으로 넘쳐나는 현실은 여전히 오묘한 탐구대상이다. 이를 다시 바꾸기 위해 실천과 노력의 명분을 궁리하더라도 비상식의 상식화와 속절없는 '원시原始'가 반복하는 패러독스도 무릅써야 할 정치적 현재다. -p.73
독재를 "지향"하던 정권은 무너졌다. 지금의 정권이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는 개인의 이해와 득실에 따라 평가가 다를 거다. 그러나 적어도 "독재"와 "억압"의 패턴을 다시 반복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무리 평평히 빛나는 철판이나 온갖 소재의 말끔한 표면도 현미경쯤으로 들여다보면, 불규칙하고 거친 굴곡으로 가득한 물질임을 알아차리는 일과 같으리라. 숲의 사연을 어찌 이파리 하나에 깃든 엽록소로 모조리 풀겠는가마는 플랑크톤이 모여 바다를 이루고 톱니바퀴 한 개가 공장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미시정치의 스토리텔링도 이들 세 그래프의 굴곡과 변이의 속내를 살피자면 이해 못할 리 없다. '전체'를 전체 그 자체로 들여다보는 사회과학과 '개체'에 오롯이 집중하는 인문학의 조율 혹은 학문적 균형도모는 여기서의 작업범위를 넘어선다. 하지만 통계와 추세변화에 치중하는 역서의 작업이 끝내 소홀히 하거나 놓치고 말 부분이 무엇인지 미리 가늠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민주화의 '자동성'이나 역사적 '단계성'이 전혀 허구이며 지도자의 과거 투쟁경력과 권력 장악 후 통치형태의 '민주성 ' 또한 완전 별개의 것임을 명료하게 인식.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 pp.107~108
한사코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자기주문은 정치적 자기강박을 낳게 마련이고 어떻게든 일을 성사하려는 정치적 주도면밀함 역시 자극. 숙성시키는 게 관례다. 일의 추진 역시 출발부터 정치성을 배제할 수 없고 보면, 권력의 자의성이나 기획력에 의존하기보다 여론의 절반으로 나머지 절반을 제압. 통괄하려는 민중적 기반 역시 자원동원근거로 삼는 게 상례다. 뒤늦게라도 독재의 추억으로부터, 아니 그 기억에서 자유롭고자 애쓰는 건 모든 권력의 본능이자 행태의 기본이다. - p.197
지금 내 입에는 사탕이 남아있지 않다. 달콤하게 녹아내리던 사탕은 그 맛을 다하고 어디론가, (아마도 내 뱃속이겠지, 아니면 입 천장일까?), 사라져버렸다. 권력의 독재도 그 달콤한 맛에 취하다 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결국엔 남는 건 씁쓸함과 회한일 뿐이다.
겁주고 가두고 때리고 어르면서 유수함을 학습시키려는 국가의 의도가 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을 '폭력'이라 말할 수 있으랴. 군대와 경찰, 검찰과 법원, 감옥과 사법제도 스스로 강화하는 행정체제가 부르주아지와 동격의 '국가'라면, 그 같은 믿음이 고작 19세기 사회주의사상에서 가능한 생각이라면 판에 박은 듯 되풀이하는 오늘의 '폭력'이란 무엇으로 어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응용하며 사람이 갖다 붙이는 법의 허밍함을 도무지 이해할 길 없다면, 규범의 세계란 오로지 '공포'의 조합으로만 구성되는 걸까, 아니면 추종의 의지를 동원하는 특별한 자발성으로 이뤄지는 걸까. - pp.215~216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권력이란 그 자리에 오래 서 있게 되면서 점점 더 달콤한 맛에 취하게 되어, 서서히 변하게 되니까. 그 변화의 수준이 어디로 가느냐를 잘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독재, 또 다른 억압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때 높여야 할 것이다. 폭력이 동원되지 않는, 정당한 싸움이라면,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정당한 싸움을 위해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 그것을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 그 싸움 안에서 정당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그래서, 아픈 과거의 역사들이 치유되어 새로운 사회, 새로운 대한민국이 탄생할 거라 믿는다. 그 믿음을 위해, 『국가는 폭력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되새김 뒤에는, <대한민국은 잘 사는, 앞으로 더 잘 살, 그래서 잘 될 나라> 라는 문구를 마음 속에 깊이 박아놓는다. <이 여름, 잘 견딜 수 있겠다> 싶은 마음도 함께.
이 리뷰는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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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배려의 정치가 고프다 [국가는 폭력이다]
촛불집회로 지난 정권이 퇴진하고 새로운 희망의 정권이 들어섰건만, 집권 2년차의 정부는 최고점을 찍어야 할 때, 가장 낮은 지지율로 국민들의 바람에 보답을 하고 있다. 정치는 1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학부모로서 지금의 교육정책을 바라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대로 뛰쳐나가서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나, 고민할 정도다. 수많은 국가정책을 '민주화'의 과정대로 이행한다는 미명 하에 '국민참여' 제도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에 더욱 열불이 난다. 이것은, '민주화'라는 단어 하나에 홀린 듯이 맹목적으로 따르려는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총과 칼을 들어야만 '폭력'인가. 왠지 모르게 [국가는 폭력이다]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 속이 후련해지는 것은, 이 제목이 바로 지금의 사태를 대변해주는 문장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민주화'라는 단어가 정착된 지 오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 대통령을 뽑았지만 아직까지 존경할 만한 대통령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여러 정책 중에서 교육 정책 현안 한 가지만 놓고 [국가는 폭력이다]라는 제목과 결합시켜 봤을 때, 그런 것 같다, 라는 이해를 하지만, 사실, 이 책에서는 '법은 권력을 위해 어떻게 복무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근시안적으로 학부모 입장에서만 국가의 폭력성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건설 이후의 우리 역사를 살펴보건대 민주화 이후 국가폭력과 정치억압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다루는 것이다. 욱!해서 내게 닥친 현안과 이 책의 주제를 뒤섞어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같은 흐름일지도 모른다. 민중의 의중을 떠받들고 존중과 배려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파와 정당의 이익을 따져 거기에 폭력을 덧씌우는 형태로 정치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정치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국가는 폭력이다]에서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활용해 국가폭력의 흐름을 짚어나간다.
[국가는 폭력이다]에서는 국가 건설 이후 권력과 민중의 충돌을 통해 한국의 사법권력과 국가폭력을 살펴보고 민주화 이후의 탈민주화, 민주화의 연장과 일탈 과정을 통해 박정희 시대 이후 노무현과 이명박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속에서 정치와 폭력의 관계를 짚어낸다. 국가보안법의 통치공학에서 박근혜의 역민주화와 정치지배연합도 다루고 있다. 해방 후 역대 정권들에게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짐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으로 작용하고 있기에 정치성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 저자는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기하려는 정치권력의 파격젹, 전향적 실천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을 준열하게 꾸짖고 있다.
이만하면 우리도 엄연한 민주국가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싶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존중과 배려는 고사하고, 당연한 어조로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에게 도대체 뭘 더 바랄 것인가. 더 이상 실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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