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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일 때도 이 책을 읽었다. 그 표지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다만, 내용은 어디간데 없고 알을 깨고 나온다던 그 메시지만 막연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일.고.십.에서 다시 만나게 된 <데미안>은 뭔가 마음이 복잡하다. 뭐랄까.. 그때 찾았어야 할 것을 찾지 못해서 다시 찾아보라는 미션이 주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데미안을 읽던 나는 글은 읽었지만, 글 속의 뜻을 찾으려하지 않았었다. 단순히 추천도서라서, 읽어야 한다기에 책 읽기 자체는 좋아했던 나인지라 그저 '읽었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이 책이 내게 주는 의미에 대해 찾아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같은 책이지만 전혀 다른 책이었다.
그리고 작중 화자가 나보다 한참 어리다는 것도 읽는 동안 기분을 묘하게 했다. '이 녀석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될텐데, 이렇게 하는 게 나을텐데' 처럼 잔소리꾼 모드가 되었다가, 얘는 내가 이 나이에 몰랐던 세계를 벌써 알고 고민한거야?하는 놀라운 마음도 가지게 된다.
열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두 개의 세계를 인지했다. 부모님 슬하의 안전한 세계, 그와는 반대로 불안정하고 비밀스럽고 위험한 세계. p.11 밤과 낮, 두 세계의 양쪽 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곳엔 두 세계가 얽혀있었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생략) 이 세계에는 곧바로 미래로 통하는 곧은길이 있었고, 의무와 책임, 양심의 가책과 고해, 용서와 선한 목적들, 사랑 그리고 존경, 성경 말씀과 지혜가 있었다. 인생이 맑고 명확하고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으려면 사람들은 이 세계의 편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다른 세계가 이미 우리 집 한가운데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냄새도 달랐고 말투도 달랐으며, 기대와 요구 또한 달랐다. (생략)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한편이 있다는 것은 꽤나 멋진 일이었다.
p.14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두 세계의 경계가 가깝게 닿아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프란츠 크로머와 벌어진 일들은 자신이 부모님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이끈다. 프란츠 크로머와의 일은 그래도 데미안 덕분에 해결이 되었지만, 해결되었다고 예전에 자신이 지내던 것과 똑같은 상태로는 돌아갈 수는 없었다.
p.28 "물론 농담이야, 하지만 이 농담으로 넌 비싼 대가를 치뤄야 할 거야."
p.33 나의 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악마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왜 나는 그 애를 따라갔던가? 왜 나는 아버지 말에 순종하는 것 이상으로 그에게 복종했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 따위 도둑질 이야기를 꾸몄댔던가. 그런 짓이 진정으로 영웅적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그때부터 악마가 내 손을 잡고 있었고 적이 내 뒤를 따라다니게 된 것이었다.
p.60
그때의 나는 분명 카인이었고 이마에 달린 표적을 수치스럽게 여기기보다는 훈장을 단 것처럼 으스댔다. 나의 죄악과 고통을 통해서 나는 아버지와 같은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도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p.92
내 부모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부모들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하겠다.
싱클레이는 김나지움에 입학하며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면서 부모님과의 세계에서 더 멀리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서 완전히 어둠의 세계에 자신을 맡긴다. 하지만 사랑과 꿈, 예술적 활동을 통해서 다시 자기가 나아가야 할 세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 세계로 넘어갈 때의 불안한 요소를 제공하는 인물과 사건들 넘어가야 한다고 이끌어 주는 인물들 넘어야 할 이유와 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열매들 그 과정에서 의심하고 방황하는 시간 그러다 꿈을 통해 표현하기도 하고 계시를 받기도 하는 시간 예술이라는 행위를 통해 표현하다 보니 문득 자기가 무엇을 갈구하는지 일들
싱클레이의 성장. 한 사람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서, '성장'이라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진정한 내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경우 부모님에 속해 있던 어린 시절의 세계가 딱히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하셨겠지만, 사랑을 보여주는 방법을 모르셨던 분들인지라 그 속에서도 항상 불안하고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날 버릴리도 없는데 내쳐질까 두려웠다. 그 속의 세계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던 것 같다. 진정한 나를 고민하기 보단, 어찌하면 사랑 받을까를 고민하며 커버렸고, 일단 어른이 되었다.
부모가 된 지금. 우리 아이는 어떤 세계에 뜻을 두고 나아가게 될까 궁금해 진다. 아직 어린 아이지만 이제 나름의 자기를 찾고 있는구나가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이 아이가 나를 의식해 자기를 찾기보단 나처럼 사랑받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진 않을지 마음이 쓰이다가도, 세상 혼자 사는 것 아닌데 사랑 받는 법도 알아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내 세계가 확고하지 못해서 내 둥지의 아이가 마음껏 자신의 알을 깨고 비상할 터전이 되어주지는 못할까 또 두렵다. 나 역시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라 여기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하겠다.
P.119 너는 아직도 '공인된 것'과 '금지된 것'이 무엇인지 너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어. 단지 진리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을 느낀 데 불과해. 다른 많은 부분들도 깨달을 수 있게 될 거야.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아파야 청춘이다라는 말이 비난을 맏기도 하지만, 아플 껀 아파야 낫는 게 이치인 것 같다. 조금이라도 빨리 아프고 나면 아프지 않게 자신의 길을 수월하게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때 아파야할 것을 미루고 어른이 되어 버려 지금 아픈 것은 아닐까? 그래도 이제라도 아파 다행인 것일까? 하는 물음들이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있었듯, 나에게도 가야할 길에 대해 힌트를 주는 이들이 있다. 책도 그렇고 책이 매개가 되어 만나 이들도 그렇고, 아이도 한 번씩 꾸밈없는 순수함으로 원래 그랬어야 하는 것과 내 것이 아닌데 내것인 듯 받아들인 세계에 대해 의심하게 한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며 바른 길을 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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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요.
부모의 보호속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던 싱클레어에게는 두 세계가 얽혀 있었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으로 이 영역의 대부분은 싱클레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엄격함, 모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였다. 이 세계 속에는 부드러운 빛, 명확함과 깨끗함, 그리고 따뜻하고 다정한 예절들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세계는 이미 집 한가운데에서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냄새도 달랐고, 말투도 달랐으며, 기대와 요구 또한 달랐다. 이 두 번째 세계에는 하녀라든가 직공들이 속해 있었으며 유령 이야기와 추한 소문이 있었다. 그곳에는 섬뜩하고 요사스럽고 끔찍한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넘쳤고, 도살장과 감옥, 주정뱅이들과 고함치는 여자들, 새끼 낳는 암소와 쓰러진 말들, 강도와 살인, 자살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선과 악, 이 두 세계는 경계가 가깝게 닿아 서로 공존하고 있었고 눈과 귀를 돌리면 어디에나 다른 세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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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난 신을 믿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존재인 신의 실체를 만난적이 없기에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허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믿음이 생길리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가끔 마음을 비워내고 싶거나 어딘가에 털어내고 싶을때 가끔 절을 찾긴 하지만 절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진 않다. 종교에 기댄다고 해서 내 삶의 고통이나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희망이나 기대도 가지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해야 하고 그 결과 역시 내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을 떠넘기거나 원망하고 싶지 않다. 사실 그건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편한 방법이지만 살아가다 보면 그런 방식의 삶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고, 스스로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 ![]() ![]()
<데미안>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다. 1919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창작에 임한 헤르만 헤세는 사실 처음 <데미안>을 출간했을 때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책을 출간했다. 그 당시에 이미 대문호로 불리던 헤세는 작가로서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만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헤세의 작품임이 확인되고 다시 헤세의 이름으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작가들이 필명으로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경우는 많다. 특히 이미 유명한 작가라면 네임밸류만으로도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화제가 되고 좋은 평가를 받곤 한다. 헤세라는 이름 없이도 충분히 작품성을 인정 받은 <데미안>은 그런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그당시 전쟁으로 인해 지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절망적인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며 암울한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을 던져주었다. ![]() ![]()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싱클레어는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는 평화롭고 따뜻한 세계만을 경험한 그는 어느날 또래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게되고 그로인해 프란츠 크라머에게 빌미가 잡혀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싱클레어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따뜻한 세계 이면의 또다른 사회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크라머로 인해 매일을 두려움과 고뇌에 빠져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전학생 막스 데미안을 통해 크라머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고 데미안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던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지만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을 통해 다시 모범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되고 꿈속에서 본 여인을 그림으로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데미안에게 받은 편지에 써있던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라는 내용을 통해 아프락사스에 대해 알게 되고 아프락사스를 통해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스승과 제자처럼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피스토리우스와도 멀어지게 되고 그로인해 그림에 몰두하게 된 싱클레어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신비로운 사람 그림을 그리며 그 인물에 심취하게 된다. 그러던 중 데미안을 우연히 다시 만나고 그의 집에서 데미안의 어머니와 만나게 되는데 자신이 꿈에서 본, 사랑했던 여인이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임을 알게 된다. 그 집을 드나들며 에바부인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1차 대전으로 인해 그들과 헤어지게 된다. 데미안은 전쟁에 나가고 싱클레어 역시 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게 된다. 부상 당한 병사를 치료하는 곳에서 그의 눈앞에 데미안이 나타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계속 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발견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
이 세상에 절대적인 선과 악이 존재할까?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지듯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그 이면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님에도 우리들은 단지 눈에 보이고 자신이 속한 그 세계만이 전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자신이 속한 따뜻한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는 일련의 과정속에 데미안이란 존재는 절대적이다. 처음 데미안을 본 순간부터 그는 데미안에 끌리게 되고 그를 통해 점점 자신의 진짜 내면을 알아가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모습으로 변하며 끝을 맺는데 사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데미안은 죽었다는 건가? 싱클레어의 상상으로 끝나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찬찬히 다시 읽어나가고 생각하다 보니 결국 데미안이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싱클레어 자신이었고 그의 참된 자아가 데미안이라는 인물로 표현되어 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절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시대에 신이란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종교에 대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가 아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아프락사스라는 신을 말하며 신보다 인간을 중요시한다. 신에게 의지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은 자신이 이끌어 가야 하고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새가 힘겹게 알을 까고 나오듯 자신만의 세계를 찾기 위한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이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만들어둔 세계에 갇혀 영원히 종교든, 신이든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다. 싱클레어가 긴 시간을 돌아 자신만의 자아를 찾을 수 있었듯, 우리 역시 스스로 치열하게 고뇌하고 부딪히며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가야 한다.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삶의 모순을 이겨낼 수 있는 힘 역시 스스로에게 있다.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환경과 신앙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데미안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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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몹시 괴로웠지만 모든 일에 대해서 언제나 후회하지는 않았다. 단지 때때로 벌어지는 일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불길한 운명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았다.(55p) 서양 고전으로 유명한 데미안을 처음 읽어보았다. 조금 어렵지만 읽다 보니 아!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구나라는 게 딱 느껴졌다. 싱클레어는 두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하나의 세계는 모범적이고 그저 바른 세계 아버지와 어머니이고 하나의 세계는 다른 말, 다른 환경을 가진 하녀, 직공들의 세계이다. 싱클레어 집안은 매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그런 신앙심이 깊은 집안이다. 그러다 싱클레어가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다 자기가 한 짓도 아닌 도둑질을 했다고 말한다. 이후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아귀에 걸려든 것 같아 괴로워한다. (아마 이런 시련을 이 전에 겪어보지 못해 더욱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러다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찾아간다. 데미안을 통해 크로머에게 속해 있던 세계를 깨어 나온 것이 싱클레어에게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첫 발판이 되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겐 두 가지 이상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세계(보통 많이 함께하는 부모 아래의 세계)와 내가 가고 싶은 세계, 그리고 학교에서의 세계에서 나는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 데미안의 우리는 신께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해야 한다는 말. 우리 모두 마음속에 악마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섬긴다는 성직자들도 하루가 멀다 하게 나쁜 짓을 해서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모든 사람 마음속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 모태신앙의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땐 부모님 따라 교회도 성실하게 다녔고 성경공부도 했었다. 그땐 그 세계가 진짜인 줄 알았다. 성경에 나온 이야기에 대해 맞다 틀리다를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른 세계와 소통하는 내게 더 이상 성경에 대한 믿음은 많이 퇴색됐다. 하나의 세계에서 살다 다른 세계로 나아가며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소년 싱클레어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나는 단지 그 어두운 거울 위에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완전히 그와 닮아 있던 나, 내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나를 이 책의 마지막 구절. 자신의 열망을 찾다 어떤 이미지에 도달하게 되고 그 여인이자 데미안인 그에게 입맞춤을 받고 난 후 그는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