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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를 닮은 사람, 가장 오래된 인류 화석: 사헬란트로푸스
인간도 동물계의 다른 동물들과 함께 진화한다는 문제는 항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자극한다. 오늘날에도 상당수 미국인은 인간이 동물계의 다른 동물과 연관이 있다거나 인간도 한갓 동물종의 하나라는 생각을 종교적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는 이 사실이 전혀 논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인 중에는 식물과 다른 동물의 진화는 받아들여도 인간의 진화만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
1960년대 후반에 DNA-DNA 혼성화라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 이 실험을 해보면, 각각의 동물이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대략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그러면 침팬지의 DNA가 인간의 DNA와 사실상 동일하다는 결과가 또다시 나온다. 그러다가 지난 20년 동안 기술은 크게 약진했고,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같은 방법으로 인간뿐 아니라 다른 여러 동식물의 DNA 서열을 직접 해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해독된 인간과 침팬지의 서열을 비교하자, DNA-DNA 혼성화로 얻은 것과 완전히 같은 결과가 나왔다.
우리 DNA는 침팬지의 DNA와 불과 1~2퍼센트 정도만 다를 뿐이며, 고릴라와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우리 DNA의 60~80퍼센트가 읽히거나 사용되지 않으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그냥 전달되기만 하는 ‘쓰레기junk’이기 때문이다. 이런 쓰레기 DNA의 일부는 오래전에 우리의 먼 조상을 감염시켰던 바이러스 DNA의 잔재인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다. 우리와 침팬지를 구별하는 1~2퍼센트의 유전자는 조절 유전자다. 일종의 ‘온-오프 스위치’라고 할 수 있는 조절 유전자는 유전체에서 나머지 다른 유전자들이 언제 발현되고 언제 발현되지 않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인간이 다른 유인원들과 유전자가 거의 같아도 모습이 크게 다른 까닭은 바로 조절 유전자 때문이다. 사건은 종결되었다. 인간은 살짝 변형된 유인원일 뿐이다. 해부학적 특징에서 나온 증거뿐만 아니라 유전자에서 나온 증거도 너무 강력하다.
그렇다면 인간과 유인원은 얼마나 오래전에 갈라졌을까?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했다. 하나는 인간이 아니라 유인원과 점점 더 비슷해지는 쪽으로 발달하는 화석을 찾는 것이다. 알맞은 시대의 알맞은 암석을 찾아내고, 그 속에 원시 호미닌 화석이 보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거는 것이다. 인간의 뼈는 화석화가 잘 되지 않는 편이다. 일단, 호미닌 화석이 발견되면, 다음 할 일은 신뢰할 만한 연대를 결정하는 것이다.
지난 25년에 걸쳐, 고인류학자들은 더 과거의 호미닌 화석 기록을 찾기 위해서 세계 전역의 오래된 지층들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다. 1974년에 ‘루시Lucy’(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발견된 이래로, 중요하고 심지어 더 오래된 표본이 몇 년에 한 번꼴로 발견되었다.(…) 호미닌 화석 기록은 이제 최소 600만 년 전까지 확장되었다.
2001년 브뤼네와 세 명의 차드인 연구원이 발굴한 표본에 대하여 예비 분석 결과를 발표했고, 2002년 7월 11일 네이처에 주요 논문으로 소개되었다. 브뤼네는 이 표본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라고 명명했다. 사헬란트로푸스는 침팬지나 다른 유인원보다는 확실히 호미닌에 더 가까운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자세한 설명은 책을 보세요). 언제라도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현재 호미닌 무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일원의 기록은 ‘투마이’(차드의 다징가족 언어로 ‘삶의 희망’이란 뜻이다.사헬란트로푸스를 이렇게 부른다)가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대는 지난 40년 동안 분자생물학자들이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진 시기로 예측하고 있는 700만~600만 년 전과 일치한다.
아래 이미지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머리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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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
도널드 조헨슨과 팀 화이트라는 두 인류학자는 아파르 삼각주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1973년에 하다르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1974년 11월 24일에 몇 개의 호미닌 화석 조각이 발견되었다. 발굴을 계속하는 동안 점점 더 많은 뼈가 나왔고, 결국에는 전체 골격의 40퍼센트에 가까운 호미닌 한 개체의 뼈가 발견되었다. 낱개의 뼈가 아니라,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오래된 최초의 호미닌 골격이었다. 그날 밤 그들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자축을 했고, 그들이 틀어놓은 비틀즈의 테이프에서는 ‘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나서 노래를 따라 부르던 패멀라 앨더만이라는 탐사대원은 이 화석을 ‘루시’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훗날 루시에는 발견 장소인 아파르 삼각주의 이름을 따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정식 학명이 붙었다.
1970년대 중반에 ‘루시’가 발견된 이래로, 고인류학자들은 더 놀라운 발견들을 여러 차례 이뤄냈다. 1984년에 앨런 워커와 리키의 연구팀은 트르카나호의 서쪽 기슭에서 ‘나리오코토메 소년’을 발견했다. 연대가 약 150만 년이고 전체 골격의 90퍼센트가 온전히 남아 있는 이 골격은 지금까지 발견된 고대 호미닌 골격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 이 골격은 호모 에렉투스나 H. 에르가스테르에 속할 것으로 추정된다(이 골격의 정체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1994년에 화이트와 그의 연구팀은 에티오피아에서 440만 년 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거의 완전한 골격을 발견했다.
지난 1세기 동안 우리는 참으로 먼 길을 왔다. 오늘날 호미닌에는 호모속 이외에도 6속(아르디피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케냔트로푸스. 오로린. 파란트로푸스. 사헬란트로푸스)이 있으며, 12종 이상의 유효종이 존재한다. 화석 기록은 인류가 하나의 계통을 따라 진화해왔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을 벗어나게 했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 여러 계통이 공존하는 복잡하고 가지가 무성한 진화 유형을 드러냈다.
하나의 호미닌 종이 지구를 지배한 것은 지난 3만 년 동안만의 일이다. 현재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 책에 설명된 화석들처럼 절멸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으로 화석 25의 내용을 정리하는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439쪽의 책을 읽기가 번거롭거나, 생소한 단어들로 읽기가 쉽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정리를 한 의도도 있지만, 사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기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제가 다음 기회에 책을 다시 읽지는 못하지만, 서평이나 정리한 내용을 읽으면서 기억을 소추하려고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모두 25장에 걸쳐 전이 화석에 대한 설명을 했던 책, ‘화석 25’는 참으로 좋은 책이라는 기억만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했으면서도 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아래 이미지는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골격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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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가장 오래된 인간 골격: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28
19세기 중반에는 선사시대의 인간을 암시할 만한 인공물이 매우 드물었다. 제대로 기재된 네안데르탈인은 1856년에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에 있는 네안더 계곡의 한 석회암 채석장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19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원시적인 호미닌 화석이 발견되었다. 네덜란드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인 외젠 뒤부아와 그의 자바인 조수들은 1891년에서 1895년 사이에 머리덮개뼈와 넓적다리뼈와 몇 개의 이빨을 포함한 표본들을 연달아 발견했다. 그는 이 화석을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그리스어로 ‘직립 원인’이라는 뜻)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이 화석은 발견된 섬의 이름을 딴 ‘자바인’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1871년에 다윈은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추론은 단순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들(침팬지와 고릴라)은 모두 아프리카에 살고 있으므로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조상도 아프리카에서 기원해야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거의 모든 인류학자와 고생물학자가 생각한 인류의 고향은 유라시아였다. 처음에는 네안데르탈인, 그다음에는 자바인과 베이징인(1921년 베이징 근처, 저우커우라는 이름의 동굴에서 발견해서 블랙이 1927년에 시나트로푸스 페키넨시스라고 명명한 표본을 말한다)이 발견되면서, 당시까지만 해도 화석 기록은 인간의 유라시아 기원설을 뒷받침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1924년 오스트레일리아 청년 레이먼드 다트는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에 새로 생긴 해부학과에서 자리를 얻었다. 그는 타웅이라는 채석장에서 채굴한 석회함으로 시멘트를 생산하는 업체의 임원에게 석회 동굴에서 발파할 때에 일꾼들이 발견한 화석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거기서 보내온 두개골을 기재하고 분석해서 1925년에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는 이 표본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그리스어로 ‘아프리카 남부의 유인원’이라는 뜻)라고 명명했다. 이 화석은 초기 호미닌이 아프리카에서 살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한다. 그러나 유럽의 저명한 인류학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표본을 ‘어린 유인원’의 것으로 치부했다. 다트는 크게 낙담했다. 인간의 유라시아 기원설로 인하여 아프리카에서 나온 유일한 표본인 불쌍한 타웅 아이와 다트는 그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서야 유럽 인류학계는 더 이상 다트를 무시하지 않고 그의 발견을 중요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20년대와 1930년대 남아프리카의 다른 과학자들은 다트가 옳고 그가 부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확신했다.(…) 아프리카에서의 이런 발견은, 유라시아에는 그렇게 원시적이거나 오래된 화석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맞물리면서, 논의의 중심을 ‘아시아 기원설’에서 차츰 다른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1947년이 되자 다양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가 기재되었고, 다윈이 옳았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그뿐만 아니라, 뇌와 지적 능력이 먼저 인간의 진화를 이끌었고 작은 이빨과 직립 자세가 나중에 나타났다는 생각도 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화석을 통해 증명된 바에 따르면, 직립 자세와 더 발달된 이빨이 먼저 진화하고 뇌의 확장은 훨씬 나중에 시작되었다.
아래 이미지는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타웅 아이)의 두개골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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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코뿔소, 가장 거대한 육상 포유류: 파라케라테리움
1922년, 미국 자연사 박물관 관장이자 과학과 사회 양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유명 고생물학자 헨리 페어필드 오즈번은 초기 인류 조상의 화석을 찾기 위해 몽골에 탐사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증거를 발견하는 것은 실패했다. 인간은 아프리카에서 진화했다. 최초의 진정한 고대 화석 인간(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은 1924년에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
박물관 고생물학자인 윌터 그레인저와 그의 중국인 조수들은 화려한 공룡 화석들과 함께 매우 중요하고 인상적인 포유류 화석도 많이 발견했다. 앤드루스와 그레인저가 발굴하고 책에서 설명한 발루키테리움류는 오늘날 파라케라테리움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뿔 없는 코뿔소다. 파라케라테리움 외에 발루키테리움, 인드리코테리움으로 이름이 붙여진 화석도 나왔다. 이 세 이름은 수십 년 동안 널리 쓰였다(가장 오래된 이름인 파라케라테리움이 더 나중에 지어진 다름 이름보다 우선권을 차지했다).
이 경이로운 동물들의 이름이 무엇이든, 이들은 올리고세에서 마이오세 초기인 약 3300만~1800만 년 전에 아시아 전역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파라케라테리움은 지금까지 발견된 육상 포유류 중에서 자장 거대한 동물이다(자세한 설명은 책을 보세요). 파라케라테리움은 코끼리보다 조금 더 컸기 때문에, 우리는 코끼리를 통해서 파라케라테리움의 생활 방식과 생물학적 특성에 관해 많은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다. 키와 몸집이 컸다는 것은 심장 박동이 느렸다는 것을 나타낸다(코끼리의 심박수는 1분에 30회에 불과하다). 큰 몸집에서 수명이 길었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다. 파라케라테리움의 수명은 오늘날 코끼리의 수명(대체로 50년~70년)과 비슷했을 것이다.
파라케라테리움의 멸종 원인에 관해서는 폭넓은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가장 가능성이 큰 사건은 두 가지다. 2000만~1900만 년 전, 최초의 마스토돈이 자신의 고향인 아프리카를 떠나서 유라시아로 건너왔다. 유라시아에 당도한 마스토돈은 숲의 식생을 광범위하게 붕괴시켜서, 파라케라테리움에게 필요한 울창한 숲의 대부분을 파괴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마스토돈의 포식자들까지 유라시아로 따라왔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파라케라테리움은 마스토돈과 그들의 대형 포식자들이 유라시아에 당도한 이후에 곧바로 사라졌다.
아래 이미지는 파라케라테리움의 모형입니다.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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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시조, 말의 기원: 에오히푸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에 당도했을 당시, 말은 아메리카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는 1493년에 있었던 그의 두 번째 항해에서 신대륙에 처음으로 길들여진 말을 들여왔다. 1521년, 에르난 코르테즈는 아즈텍을 정복했다. 이 정복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정복자들의 총과 질병만이 아니었다. 말도 큰 몫을 차지했다. 말을 타고 있는 스페인 군인들을 처음 본 아즈텍 사람들은 말과 인간을 켄타우로스처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고 공포에 질렸다.
1807년까지는 누구나 말이 유라시아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했는데, 윌리엄 클라크가 켄터키의 빅본 릭에서 북아메리카 말의 뼈를 발견했다. 1833년 10월 10일 비글호를 타고 항해 중이던 젊은 찰스 다윈은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이었다. 그는 풍화된 한 지층에서 화석 말의 뼈와 이빨을 발견했다. 이 화석들은 말이 아메리카 대륙 원산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지난 빙하기에 멸종된 동물들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까지도 증명해 주었다.
머지않아, 말이 북아메리카에서 먼저 진화하고 안키테리움과 히파리온 같은 유럽 말은 북아메리카에서 이주를 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1926년이 되자, 윌리엄 딜러 매튜 같은 고생물학자들은 시간에 따른 말의 진화에 관한 아주 간단한 도표를 그릴 수 있었다. 매튜의 고전적인 도표가 발표된 이래로 거의 90년 동안, 말의 진화에 관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축적되었다. 단순한 직선으로 이어져 있던 순서는 복잡하게 갈라진 가지로 바뀌어서 같은 시대에 살았던 다양한 말의 계통을 나타냈다.
최초의 말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살았을까? 대부분의 초기 말은 대략 비글이나 여우 정도의 크기였다(자세한 설명은 책을 참조하세요). 화석 증거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이들 작은 말들은 초온실 세계였던 에오세 초기의 울창한 밀림에서 살아가는 생활에 절묘하게 적응했다. 이 숲에는 작은 말뿐만 아니라, 말을 닮은 코뿔소, 그 외 다양한 원시적인 발굽 포유류도 풍부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 동물들에 대한 가장 큰 딜레마는 어떻게 부를지에 관한 문제다.
북아메리카의 에오세 말에 처음 붙여진 이름은 마시가 명명한 오로히푸스 앙구스티덴스였다. 이후 마시는 훌륭한 부분 골격의 대표적인 사례인 에오히푸스 발리두스를 토대로 1876년에 에오세 초기 화석 중 일부에 에오히푸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곧 에오세 초기의 에오히푸스가 에오세 중기의 오로히푸스와 같지 않다는 것이 뚜렷해지면서, 에오히푸스라는 이름은 에오세 초기의 말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던 1932년, 영국 자연사 박물관의 클라이브 포스터 쿠퍼 경은 아메리카 말의 화석이 1841년에 리처드 오언이 기재한 화석과 대단히 비슷하다는 것을 주목했다. 연대가 에오세 초기인 런던 점토층에서 발견된 이 표본은 히라코테리움(바위너구리 야수)이라고 불렀다. 히라코테리움이라는 이름이 에오히푸스보다 35년 앞서 명명되었기 때문에, 국제 동물 명명 규약의 우선권에 따라 히라코테리움이 초기 말의 유효명이 되었다. 그 뒤로 20세기의 대부분 동안,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나온 에오세 초기의 말들은 모두 히라코테리움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과학은 계속 전진하고 있다. 새롭고 더 나은 표본도 발견되고 있으며, 화석의 명명에 대한 철학도 바뀌고 있다. 확실히 초기 화석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더 나은 화석이 많이 발견되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에오세 초기 말 전체가 히라코테리움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타격을 주고 있다.(…) 따라서 쉽게 이름을 기억할 수 있고 간단한 도표로 나타낼 수 있는 에오세 초기 말의 단일 속이라는 것은 없다. 그 말들을 모두 에오히푸스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사실과도 다르고, 극도로 과도하게 단순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오용되었던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을 쓸 수 없는 것이나 명왕성을 행성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말의 진화를 나타낸 모든 도표나 모든 교과서의 말에 관한 부분에 등장하는 에오세 초기 말의 속명을 지칭한다면 그것이 에오히푸스든 히라코테리움이든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프로토로히푸스, 시프르히푸스, 미니푸스, 아레나히푸스가 열거되어야만 현재의 지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과 그들의 기제류 친척들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자세한 설명은 책을 보세요). 말의 빼어난 화석 기록에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기제류의 분기 진화와 특유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에서 진화했다가 플라이스토세에 서반구에서 소멸되는 과정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말은 15세기 후반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뿐이다.
아래 이미지는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히라코테리움의 골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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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매너티, 바다소의 기원: 페조시렌
인어 전설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기원전 2300년 무렵의 아시리아에서 나왔다. 아타르가티스 여신은 자신이 사랑했던 목동을 실수로 죽이고, 속죄의 의미로 인어가 되었다.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오딧세이’에서는 물고기의 몸을 한 신화 속 여성인 세이렌siren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홀려서 바다 위에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런 모든 전설에는 기반이 되는 사실이 있긴 있을까? 다수의 동물학자가 지적하는 동물은 매너티(서반구의 얕은 바다에서 주로 발견된다), 듀공(인도양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 밖의 친척들로 구성되는 해양 포유류의 한 목인 바다소목Sirenia(신화 속 세이렌에서 딴 이름이다). 듀공과 매너티는 배나 수면의 다른 물체를 관찰하고 싶으면 물 위로 머리를 내놓고 몸을 수직으로 세운다. 바다소 종류는 모두 한 쌍의 젖가슴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인간의 가슴처럼 보일 수도 있고, 바다소가 새끼를 돌보는 자세가 인간 여성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지독히 못생긴 동물을 어떻게 아리따운 여자로 잘못 볼 수 있을까? 매너티의 이마에 걸쳐진 물풀 가닥은 머리카락과 비슷해서 아주 멀리서 보면(특히 수면이 반짝이는 광활한 대양에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여자를 보았다고 착각하기가 어렵지 않다(오랫동안 육지와 여자를 보지 못했던 선원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매너티와 듀공이 포획되고, 자세히 조사한 결과, 이들은 전설 속 인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해부학적 특징을 처음 조사했던 자연학자들은 이들을 고래로 분류했지만, 린네는 최초로 이들을 코끼리와 매머드와 마스토돈을 포함하는 무리인 장비목(長鼻目)으로 분류했다. 해부학과 분자생물학에서 나온 증거는 바다소류가 5000만 년 전에 장비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했다. 화석 기록은 어떻게 나타날까? 최초로 연구된 바다소는 가장 원시적인 종류였다. 영국의 해부학자인 리처드 오언 경은 이상한 두개골 하나를 기재했다. 오언은 이 화석 두개골을 프로라스토무스 시레노이데스라고 명명했다. 해가 갈수록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 지역과 한때 바다가 침범했던 여러 육지에서 점점 더 많은 바다소 화석이 발견되었다.
열대의 낙원인 자메이카, 세인트제임스 지역에는 세븐 리버스라는 놀라운 뼈층이 있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채플턴 층에서 수집된 화석들은 점점 더 늘어갔고, 화석 바다소의 최고 전문가였던 하버드 대학의 대릴 돔닝이 이 화석들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자메이카에서 몇 번에 걸친 대규모 채집을 함으로써 수백 개의 뼈를 얻었다. 돔닝은 다른 프로라스토무스 화석을 또 얻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속의 신종 원시 바다소를 찾아냈다. 게다가 골격까지도 거의 완벽했다!
2001년 돔닝은 ‘네이처’에 이 표본에 대한 설명을 발표했다. 그는 이 원시 바다소를 페조시렌 포르텔리(포텔의 걷는 바다소)라고 명명했다(특징은 책을 참조하세요)(…) 물속 생활을 하는 바다소와 육상의 조상 사이의 완벽한 중간 단계, 즉 ‘빠진 연결고리’가 발견된 것이다. 페조시렌은 바다소의 두개골과 단단한 갈비뼈를 갖고 있었지만, 완전한 네발동물의 다리와 발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발견된 수많은 걷는 고래와 다른 전이 화석들처럼, 페조시렌은 또 다른 육상동물 무리가 어떻게 바다로 돌아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제 남은 퍼즐 조각은 하나뿐이다. 바다소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코끼리와 다른 테티테레류는 북아프리카, 파키스탄, 그 밖의 광활한 테티스해의 다른 지역에서 등장했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바다소 화석(프로라스토무스와 페조시렌)은 자메이카에서 나왔다. 2013년 쥘리엥 브누아 외 9명으로 이루어진 연구진은 튀니지의 에오세 초기(약 5000만 년 전) 지층에서 새롭게 발견된 표본들을 발표했다. 이 표본들은 참비라는 곳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참비 바다소’라고 불렸는데, 정식으로 학명이 부여되기에는 표본이 너무 불완전했다. 하지만 참비 바다소의 귀 부분 화석 덕분에 퍼즐이 완성되었다. 초기 장비류, 바위너구리류, 다른 테티테레류 같은 최초의 바다소류가 테티스해 지역(주로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나타났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아래 이미지는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매너티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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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동물, 고래의 기원: 암불로케투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경탄해온 가장 놀라운 바다 생물은 고래와 돌고래와 그 친척들이다. 고래와 요나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경 속 이야기 중 하나다. 당시의 사람들 대부분은 고래를 물고기의 한 종류로 여겼고, 그래서 고대인들은 고래와 돌고래를 물고기로 분류했다. 고래가 물고기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은 다름 아닌 현대적인 생물분류학의 창시자인 스웨덴의 자연사학자 칼 폰 린네다.
상태가 좋은 고래 화석들은 19세기 초반에 처음 발견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이 화석들은 자격을 갖춘 과학자에 의해 연구되지 못하고 장사꾼들에게 잘못 이용되었다. 그러나 다른 고래 화석들은 진정한 자연학자들 손에 들어갔다. 1834년, 해부학자인 리처드 할런은 몇 개의 거대한 뼈에 바실로사우루스(황제 도마뱀)라는 이름을 붙였다. 할런은 이 뼈들 역시 당시에 막 발견되고 있던, 오늘날 우리가 공룡이라고 부르는 거대 도마뱀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839년, 영국의 위대한 해부학자 리처드 오언 경은 바실로사우루스의 표본을 보고 공룡이나 파충류가 아니라 거대한 고래라는 것을 알아챘다.
더 훌륭한 표본이 발견되면서, 바실로사우루스가 고대고래라는 사실이 뚜렷해졌다. 이 표본은 오늘날의 일부 고래와 닮았지만, 어떤 현생 고래보다도 훨씬 원시적이었다. 고대고래의 앞다리와 앞발가락은 노 모양으로 변형되었지만, 미국에서 발굴된 불완전한 화석에서 뒷다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0년에 뼈들이 온전하게 연결되어 있고 뒷다리가 제자리에 있는 고대고래의 골격이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
고래의 기원에 관한 의문은 1세기 넘게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여러 화석 수집품 속에는 거대한 고대고래의 화석들이 많았지만, 부분적으로만 수생 동물인 더 원시적인 고래의 화석이나 완전히 육상동물이지만 고래와 비슷한 특징이 있는 포유류 화석은 거의 없었다. 한편, 더 원시적인 화석 고래의 특색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운 좋게 파키스탄에서 연구를 할 수 있는 넉넉한 자금이 생긴 고생물학자들은 육상 포유류에서 고래가 실제로 진화한 장소와 시대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고래는 에오세 초기(5500만~4800만 년 전)에 테티스해라고 알려진 얕은 열대 바다에서 진화했다.
고래의 진화에서 중요한 최초의 전이화석은 깅그리치와 그의 동료들이 1983년에 보고한 파키케투스였다. 파키케투스는 연대가 약 5000만 년 전인 강 퇴적층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이 동물이 기본적으로 육상동물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물속에서 보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들은 주로 달리기와 도약을 하기 위해 적응한 짧은 발가락이 달린 긴 다리를 갖고 있었지만, 다리뼈가 유난히 두꺼워서 바닥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파키케투스는 물속에서 헤엄을 친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걸어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약진은 1994년에 한스 테비슨이 암불로케투스 나탄스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하면서 찾아왔다. 이 학명은 말 그대로 ‘걷고 헤엄치는 고래’라는 뜻이다. 파키스탄의 상부 쿨다니층(약 4700만 년 전에 형성된 연안 해양 퇴적층)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고래와 육상 포유류의 딱 중간에 있는 동물의 골격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준다.
암불로케투스가 발견되고 몇 년 후, 달라니스테스라는 이름의 거의 완벽한 고래 화석이 또 발견되었다. 테비슨이 암불로케투스를 보고한 해인 1994년, 필립 깅그리치와 그의 동료들은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남부 지역에 있는 4700만 년 전의 지층에서 더 발달된 형태의 다른 전이 고래를 발견했다. 로도케투스라는 이름의 이 원시 고래는 돌고래 크기의 원시 고래 무리인 프로토케투스류에서 가장 대표적인 동물이다. 로도케투스가 발견된 이래로, 타크라케투스와 가비오케투스 같은 수많은 다른 형태의 전이 고래도 발견되었다. 육상동물에서 시작된 고래의 기원은 1980년까지만 해도 완전히 불가사의였지만, 이제는 화석 기록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진화의 전이 과정 사례로 꼽힌다.
1990년 대 후반, 분자생물학자들은 여러 포유류 무리의 DNA 서열 분석과 함께, 중요한 분자를 만드는 특정 단백질의 서열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래가 현존하는 다른 어떤 포유류보다 우제류와 가까울 뿐 아니라 우제류의 후손이라는 증거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고생물학자들은 더 풍부해진 해부학적 증거와 새로운 분자생물학적 증거를 활용해서 고래에 대한 분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곧바로, 고래는 우제류이며 하마로 갈라지는 가지에 속하는 한 집단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점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분자생물학적 증거에 따르면, 고래는 헤엄치는 곰에서 진화한 것도 아니고 점점 물고기가 된 것도 아니다. 고래는 안트라코테레, 하마와 함께 공통조상으로부터 나온 후손이다. 파키케투스, 달라니스테스, 암불로케투스, 로도케투스, 인도히우스 같은 화석들로 이루어진 화석 기록에는 고래가 육상동물로부터 진화된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래 이미지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암불로케투스의 골격과 복원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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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포유류는 아닌, 포유류의 기원: 트릭낙소돈
화석 기록에서 전이가 가장 완벽하고 가장 잘 기록된 사례 중 하나는 최초의 양막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련의 장면들이다. 말 그대로 수백 점의 멋진 표본에 거의 모든 단계가 기록되어 있다. 이 모든 화석 ‘원시 포유류’의 정확한 이름은 단궁강이다. 단궁강은 포유류의 조상뿐만 아니라 포유류 자체도 포함하는 무리다.
최초의 유명한 단궁강 동물은 텍사스 북부에 위치한 페름기 초기의 붉은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단궁류 중에서 가장 놀라운 동물은 거대한 포식자인 디메트로돈과 초식동물인 에다포사우루스와 같은, 등에 돛이 있는 동물이다. 이 동물들은 공룡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우리 쪽 조상이다! 디메트로돈은 페름기 초기 텍사스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이 지층에서 가장 흔한 화석 중 하나이기 때문에, 거의 완벽한 골격이 여러 개 알려져 있고, 두개골과 부분적인 골격도 수십 개가 알려져 있다.
남아프리카의 중심에는 카루라고 하는 거대한 사막지대가 있다. 카루는 생명의 역사에 관한 연구에서도 중요한 곳이다. 페름기 후기의 붉은 지층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단궁류가 나옴으로써, 이 무리가 약 3000만 년에 걸쳐 진화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 지층에서는 텍사스의 페름기 초기 지층에서 가장 유명한 디메트로돈 같은 돛이 있는 예전 단궁류는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더 진화되고 포유류와 비슷한 여러 가지 유형의 단궁류가 나왔는데, 이들을 한데 몰아넣은 잡동사니 분류군을 수궁목이라고 한다. 이들 중에는 최초의 육상 초식동물도 있었다. 페름기 후기에 진화하는 동안 내내, 이런 수궁류에서는 점점 더 포유류 같은 특징들이 나타났다(특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책을 참조하세요)
이후 페름기가 끝날 무렵(약 2억 5000만 년 전)에 일어난 가장 거대한 멸종 사건으로 곤충을 포함한 육상동물의 약 70퍼센트, 해양 동물의 95퍼센트가 절멸했다. 페름기 대멸종 시기에 일정 크기 이상의 육상동물은 거의 모두 사라졌고, 크기가 작은 단궁류, 파충류, 양서류, 그 외 다른 육상동물의 일부 계통만 페름기 최후기의 지옥 같았던 지구에서 살아남아서 트라이아스기 초기의 새로운 세계를 맞이했다.
페름기 후기의 수궁류가 대멸종으로 거의 사라진 후, 수궁류의 세 번째 거대한 진화적 방산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포유류와 훨씬 비슷한 견치류라는 무리의 방산이 일어났다. 원시적인 양막류가 포유류로 전이되는 과정은 단궁강 내의 풍부한 전이화석으로 증명되었다. 전이화석들이 너무 많아서 가장 결정적인 ‘빠진 연결 고리’라고 부를 만한 하나의 특별한 화석을 고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굳이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트리낙소돈이 가장 좋다. 트리낙소돈은 페름기 초기에 살았던 등에 돛이 있는 종류와 페름기 중기에서 후기까지 카루에 살았던 수궁류에 이어서, 단궁류에서 견치류 방산의 시작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트리낙소돈은 최초의 견치류 중 하나였고, 단궁류에서 포유류로 나아가는 마지막 단계의 여러 진화된 특징들을 보여준 첫 번째 화석이다.
트리낙소돈은 두 종이 있는데, 둘 다 크기와 형태가 족제비와 비슷했다(자세한 설명은 책을 참조하세요). 트리낙소돈은 파충류의 특징을 갖고 있는 가장 원시적인 단궁류와 포유류에 가까운 특징을 갖고 있는 더 진화된 견치류 사이의 완벽한 전이화석이다.
트리낙소돈은 트라이아스기 중기에 사라졌지만, 더 발달한 견치류 후손이 다음 세상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다른 동물군(특히 악어의 원시 친척과 최초의 공룡)이 등장하기 시작했음에도 트라이아스기를 계속해서 지배했다. 트라이아스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견치류는 사라져가고 있었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포유류(치악골/측두린 턱관절과 복잡한 어금니를 지닌다)가 등장했다. 이들은 겨우 쥐만 한 크기의 동물이었지만, 거대한 공룡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살았다. 이 중생대의 포유류는 (쥐만 한 크기의) 작은 동물로 남아 있으면서 복잡한 이빨과 다른 특징들을 진화시켰다. 이들은 공룡을 피해서 덤불 속에 몸을 숨겼고 공룡이 잠드는 밤에 주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6500만 년 전, 비조류 공룡은 사라졌고 포유류는 지구를 차지했다.
아래 이미지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트리낙소돈의 골격도와 복원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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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속의 깃털, 최초의 새: 아르카이옵테릭스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일 동부 아이히슈테트 근처의 졸른호펜 채석장에서는 석공들이 아름답고 세밀하게 층이 진 석회암 석판을 잘라내고 있었다. 이곳의 훌륭한 석회암은 대단히 입자가 고와서(화석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석회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판화용 석판으로 만들어졌다. 1860년의 어느 날, 한 석공이 석회암 속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뚜렷한 깃털 흔적이었는데, 오늘날 새들의 비대칭적인 날개깃과 매우 흡사했다. 이 표본은 결국 유명 고생물학자인 크리스티안 에리히 헤르만 폰 마이어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이미 초기 공룡인 플라테오사우루스를 비롯해서, 졸른호펜에서 발견된 공룡과 익룡들 대부분을 기재했다. 이 화석 깃털 하나를 토대로, 폰 마이어는 1860년에 아르카이옵테릭스 리토그라피카(석판에 새겨진오래된 날개)라는 정식 학명을 부여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독일 랑겐알트하임 근처의 채석장에서 거의 완벽한 골격이 발견되었고, 카를 해벌라인이라는 한 지역 의사가 진료비 대신 그 화석을 받았다. 이 발견은 영국 자연학자인 찰스 다윈에게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그는 파충류가 완전히 다른 종류인 조류로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를 이보다 더 완벽하게 보여 주는 사례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이견을 제출하는 사람은 있었다. 영국 자연사 박물관은 700파운드를 지불하고 해벌라인에게서 이 표본을 구입했다. 그래서 이 표본은 현재의 소재지를 따서 ‘런던 표본’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이 논쟁의 진짜 결정적인 사건은 따로 있었다. 1874년, 야콥 니엠마이어라는 농민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독임 블룸베르크 근처에서 알려진 모든 아르카이옵테릭스 표본 중에서 최고의 표본을 발견했다. 베를린의 자연과학 박물관은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로부터 자금을 받아서 이 표본을 2만 골드마르크(현재 가치로 약 2만 1000달러)에 구입했다. 그래서 이 표본은 ‘베를린 표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860년대에 헉슬리가 깨달은 것처럼, 아르카이옵테릭스의 골격은 대부분 공룡과 대단히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표본은 졸른호펜의 작은 수각류 공룡인 콤프소그나투스로 오인되기도 했다. 아르카이옵테릭스가 기본적으로 깃털 공룡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는데도, 왜 아르카이옵테릭스를 새라고 부르는 것일까? 사실, 아르카이옵테릭스는 다른 포식 공룡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새의 특징을 몇 가지 지니고 있다. 엄지발가락이 거의 완전히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이빨의 가장자리에는 스테이크 칼에 있는 것과 같은 톱니가 없다(…) 아르카이옵테릭스의 깃털이 육식 공룡의 깃털보다 더 발달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깃촉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비대칭적인 형태는 아르카이옵테릭스가 오늘날의 새만큼은 아니어도 날 수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르카이옵테릭스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후에 발견된 최초의 전이화석이고, 일부 공룡이 어떻게 조류로 진화했는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대단히 획기적인 화석이었다. 그러나 초기 조류의 화석 기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 북동부에 위치한 유명한 랴오닝 화석층에서 발견된 화석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확실히 날지 못하고 잘 발달한 깃털을 갖고 있던 여러 비조류 공룡의 화석일 것이다. 이런 화석에는 시노사우롭테릭스(…)그리고 조그만 미크로랍토르의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표본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이런 공룡은 확실히 날개깃이 없거나 그들의 깃털이 비행에 이용된 다른 징후가 없다. 오히려 이 화석들은 깃털이 육식공룡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특징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깃털은 비행이 아닌 단열을 위해 진화했다가, 훗날 날기 위한 구조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003년, 리처드 프룸과 앨런 브러시는 깃털의 기원을 완전히 다시 생각한 논문을 발표했다(…) 깃대가 전진 방향의 깃판에 가깝게 비대칭을 이루는 전형적인 날개깃은 아르카이옵테릭스에서 나타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과학자는 아르카이옵테릭스가 깃털이라는 오랜 유산을 진정한 비행을 위해서 변형시킨 최초의 공룡-조류 전이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아르카이옵테릭스는 공룡 시대에서 나온 수백 점의 놀라운 화석 조류 표본 중 하나일 뿐이다. 이 표본들은 공룡, 특히 조류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다. 공룡은 바로 지금 당신의 새장 속 횃대에 앉아 있거나 당신의 마당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그러니 다음에 깃털 달린 공룡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면, 벨로키랍토르 같은 무시무시한 포식자가 타조에서 벌새에 이르는 놀랍도록 다양한 새들로 변모한 진화의 경이로움을 음미해보자. 모든 새는 살아 있는 깃털 달린 공룡이다.
아래 이미지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아르카이옵테릭스 베를린 표본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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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설, 콩고강 유역의 살아있는 용각류 공룡, 모켈레 므벰베
오늘날 도시 전설 중에는 콩고강 유역에 지금도 용각류 공룡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켈레 므벰베라고 알려진 이 공룡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서, 이 공룡은 네스호의 괴물과 빅풋만큼이나 유명해졌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체가 없는 속임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공룡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물리적 증거도 없다. ‘증거’라는 것의 대부분은 원주민의 목격담이 미국인 탐험가(거의 대부분 생물학자가 아닌 선교사나 현대의 창조론자들이다)에 의해 통역되어 전해진 것이다. 이런 목격담과 증거에는 모켈레 므벰베의 존재를 극히 있을 수 없는 일로 만드는 수많은 문제가 있다. 모든 사진과 비디오 영상이 너무 멀고 흐릿해서, 모켈레 므벰베의 존재를 증명하기는커녕 그들이 무엇을 봤는지조차도 알아볼 수 없다. 개체군생태학에 따르면, 용각류 정도로 큰 동물은 행동권이 아주 넓어야 하고, 성체와 어린 개체들을 포함하는 상당한 크기의 개체군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뼈나 사체나 다른 물리적 증거가 아니라, 목격담과 조악한 영상이 전부다.
용각류에 대한 고생물학적 기록은 매우 훌륭하며, 그들이 뼈처럼 거대한 뼈는 화석화가 잘 된다. 따라서 6500만 년 전 이후의 퇴적층에서는 용각류 뼈 화석이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용각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꽤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래의 이미지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목격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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