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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 무슨 불행인가? 게다가, 여자이면서 자기가 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지독한 불행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더라... 참으로 신랄한 말투이면서도 묘하게 정곡을 찌르는지라 가지고 다니던 작은 수첨에 옮겨뒀었더랬다. "여자이면서 자기가 그 중의 하나라는 것을 모른다" 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나는 여자이지만 여자들 사이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남자들 사이에 있는 것이 더 편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일을 할 때, 친해지기엔 타입이 조금 다르지만 멀리하긴 어려운 그런 관계에서 서로에 대해 거리를 느끼면서도 매우 친한 사이인 것처럼 꾸미고 있으면 가끔씩은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라면서 꼬투리를 잡기라도 하면 매우 피곤해져서는 그만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어질 때가 있다. 굳이 여자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남자들 사이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같은 수컷끼리 누가 더 뛰어난지에 대해 겨루고 싶어지는 그런 호승심. 콘라트 로렌츠의 '공격성에 대하여'에서는 가장 공격성이 표출되는 관계는 같은 집단 내에서 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야생에서도 호랑이와 얼룩말이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는 호랑이와 견제하고 얼룩말은 같은 얼룩말과 견제한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얼룩말을 먹기 위해 사냥할 뿐이고, 얼룩말은 호랑이에게서 도망갈 뿐이다. 그러나 같은 호랑이들끼리의 영역싸움은 그들이 얼룩말을 사냥할 때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 된다. 얼룩말 역시 호랑이에게 저항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기 무리의 영역을 침입하는 다른 얼룩말에 대해 더 공격적이다. 이건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일로서, 사람은 자기를 잡아먹으려 하는 호랑이나 곰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지만 자기의 직업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동종의 라이벌들에게는 얼마든지 이빨을 드러낼 수 있다. 또한 닭이나 돼지 요리를 좋아하지만 실제로 사냥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꿩 사냥과 같은 것도 유희의 일종일뿐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면서, 사람인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