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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책읽고 느낀 바> 가을장마인가 싶게 미친듯이 비가 쏟아졌다. 식을 줄 모르던 대지가 맘껏 수분을 흡수했겠다. 폭염에다 초열대야까지 더위로도 많은 생명들이 죽는다는 걸 지구촌이 증명했다. 초목이 사라진 자리는 환경적 재앙으로 나타났다. 빙하가 녹고... 자연을 벗삼고 더불어 사는 삶을 영위하기가 그리도 어려울까. 훼손하고 무시하면 그 댓가가 혹독함을 알면서도 말이다.
소설일 거라는 생각은 안했다. 산을 좋아하기에 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초록에 안구가 편안해졌다. 드물게 자연을 접하다보니 초록이 소중하다. 푸르름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는 여름 나무, 헐벗으며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겨울나무, 생동하며 꽃을 피워내는 봄나무 다 좋다. 그림으로 봐도 좋고 실물도 좋다. 이 비 그치면 완연한 가을이겠다.
12년이라는 시간이 투자된 책을 읽는 내내 감동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12년은 아이가 태내에서 잉태되면서 탄생의 기쁨이 있고, 유치원 내지는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 5학년이거나 6학년인 긴 과정을 말함이다. 관찰하는 인내의 시간에 경의를 표한다. 철저하게 나무가 되어 나무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탁월했다.
저 달이 2만54천7백40번이나 떠오르기 전의 오랜 옛날,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그때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 얼마 동안 가슴 두근거리며 땅속에서 기다리다가 부드러운 대지를 헤집고 흙덩이 속에서 새싹으로 고개를 내미었을 때, 그 순간 엄마가 내게 건넨 첫인사의 감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넓고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그 벅찬 기쁨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 며칠 밤낮으로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때로는 장대비가 세차게 퍼붓기도 했다. 우리 어린 묘목들은 갑자기 불어난 사나운 빗물에 휩쓸려가지 않을까, 더럭 겁이 났다. '아직 뿌리도 제대로 못 내렸는데 몽땅 뽑혀서 떠내려가면 어쩌지?'그러나 무서운 기세로 내리던 비도 어느덧 한풀 꺾이더니 고마운 가랑비로 바뀌어 우리 형제자매들을 어루만져주었다. 엄마는 흐뭇한 표정으로 어린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셨느데, 아마도 우리들이 건강하게 쑥쑥 자라나주기를 간절히 빌고 계셨던 듯 하다. 9~10페이지
나무인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엄마의 딸로 태어난 공주. 여러 나무의 단계에서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주목. 딱 오늘 같은 날 그렇게 주목은 태어난 것 같다. 소강 상태로 느껴질만큼 빗소리가 잦아들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도 아니건만 지난 여름이 너무 혹독했기에 뿌리까지 가물었을 것 같다. 단비가 감질나지 않게 풍부하게 내리는 저녁, 지금은 분명 가을날이다. 한낮은 뜨겁고 조석으론 서늘한 날씨.
주목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눈뜨고 나무들의 언어를 다 들으며 시간에 따른 변화를 보여준다. 큰 나무와 중간 나무, 작은 나무가 어떻게 햇볕과 바람과 비를 흡수하는 지, 그 아래 풀들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지를 자신의 언어로 기술한다. 포용력을 가진 왕녀의 기품이 거기에 있다. 사슴과 벌레들과 이야기하고 작은 새에게 소식을 듣는다. 그런 모습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때로는 조언도 해주시던 엄마 나무가 죽었다. 죽어간다는 걸 알지 못했던 자책은 애도의 마음이 되었고 30년을 침묵하며 성장을 멈춘다.
문득 깨어나니 떡갈나무 군단들이 숲을 은밀히 독차지하며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독소를 발산시킬 수 있는 화학전의 비밀을 터득해 퇴치하기에 이른다. 그러는 중에 각양각색의 인간들을 보게 되고, 그네들이 결국은 벌목하는 걸 본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숲은 마구잡이로 베어졌으며 주목도 인간에 의해 쓰러진다. 땅 위의 몸은 인간에게 굴복했으나 오랜 기간을 뿌리박은 땅 속 뿌리는 건재했고 꽃을 피우며 살아난다. 죽었다 깨어난 삶 앞에서 지나간 시절을 반성하고 겸손해진 나는 숲의 여왕 주목이다.
주목이 전하는 메시지는 암울하고 경고도 담고 있다. 무조건적 비판이 아닌 철학이 담긴 울림이자 간절함을 내포한다. 단순히 주목의 이야기가 아닌 상생과 화합 그리고 소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질서가 유지되는지가 신기하다. 글로써 전달하는 능력이 딸려서 구체적 요약을 못한다. 주목의 일생이지만 그 안에 우리네 일생이 포함되면서 한낱 인간일뿐이라는 뼈아픈 깨달음이 있다. 더불어 사는 삶은 다같이의 암묵된 질서 아래서 이루어지며 그게 자연의 질서라는 걸. 인간은 미물이라 여기는 것들보다도 더 하찮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쉽게 읽히면서도 어려웠던 나무의 언어를 이해는 했다는데 의미를 둔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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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시선으로 인간이 만든 세상을 보다 - 귀도 미나 디 소스피로, 『나무의 언어』 나무가 자기 언어로 우리에게 세상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가 들려주는 세상이야기라, 참 흥미롭지 않은가? 사람에게 사람의 시선이 있듯이 나무에게는 나무의 시선이 있다. 나무는 어떻게 세상을 볼까? 어떻게 다른 대상과 만나 대화를 할까? 나무가 들려주는 세상이야기이므로 우리는 우선 나무가 되어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의 시선으로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나무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어떻게 나무가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나무가 하는 말을 듣기 위해 우리는 사람으로 쓴 탈을 벗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나무가 쓰는 언어에 적응을 해야 한다. 나무가 쓰는 언어는 대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대자연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무가 말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인간이 쓰는 언어는 대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삼는 걸 보면 인간의 언어가 대자연과 이어져 있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귀도 미나 디 소스피로가 지은 『나무의 언어』(설렘, 2018)에는 2000년을 산 주목나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2000살 주목나무가 인간의 언어로 쓴 회고록이다. 인간이 쓰는 언어로 이 나무(성별로 따지면 여성이다)는 자기가 살아온 역사를 이야기한다. 주목나무에 비한다면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은 참으로 짧다. 가장 늦은 시간에 지구상에 나타나 가장 빠른 시간에 지구를 정복한 인간들을 향해 ‘숲의 여왕’은 대자연이 지닌 품성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대자연은 사물들 저마다가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 주는 존재이다. 메마른 땅에 태어난 생명이나 습기로 가득 찬 땅에 태어난 생명이나 대자연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존재들이다. 2000년을 산 주목나무가 처음부터 숲을 지배하는 풍모를 지녔을까? 너무도 작고 미미했던 한 존재는 대자연을 통해 받은 정기로 숲을 지배하는 여왕이 된다. 작가가 왜 주목나무를 여성으로 표현하겠는가? 여성은 생명이 탄생하는 기원이다. 모든 생명은 어머니 대자연이 내뿜는 기운을 머금고 한 생명으로 태어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았을까? 주목나무 여왕은 동물들을 열등한 생물로 본다. 숲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윗줄에는 주목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있고, 그 밑에 동물들이 있다. 여왕은 처음으로 목격한 인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난생처음 보는 기이하게 생긴 동물이었는데, 모두 넷이었다. 우리 나무들과는 달리 그들의 몸에는 신체의 각 부분들이 건들건들 달려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다른 열등한 하급의 생물들이 대개 그렇듯 매우 균형 잡힌 모습을 하고 있었다.”(36쪽) 넷 중 하나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였다. 가장 키가 큰 자는 흰색 옷을 걸쳤고, 다른 둘은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몸을 가렸다. 흰옷을 입은 자가 달을 향해 뭐라고 말을 하더니 이내 가죽옷을 입은 자들에게 뭔가 말했다. 가죽옷을 입은 자들이 알몸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고는 칼을 꺼내들어 알몸의 목을 베었다. 세 사람은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알몸을 바라보기만 할 뿐 먹지는 않았다.
동물들은 먹기 위해 다른 동물을 죽인다. 그런데 인간이라고 불리는 동물은 알몸을 죽이고서도 먹지 않았다. 주목나무는 주변에 있던 암늑대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우두머리 늑대는 “인간은 먹기 위해서뿐 아니라 쾌락을 위해서도 죽이는 일을 한답니다.”(42쪽)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쾌락을 위해서도 생명을 죽인다고? 며칠 후 여왕은 전사 몇 명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먼발치서 보게 된다. 말에 사람 머리 몇 개가 대롱대롱 달려 있는 장면을 본 여왕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키가 큰 느릅나무가 그런 여왕을 보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나무들을 ‘목재’로 부른다고. 도끼나 곡괭이, 까뀌 같은 연장들도 손잡이는 나무로 되어 있다고. 나무줄기에 띠를 둘러 고리모양으로 벗겨내 나무를 죽이고는 어질러진 숲을 불살라 버린다고. 개암나무와 물푸레나무, 산사나무 그리고 호랑가시나무 등 숱한 나무들이 인간이 지른 불에 타버렸다고. 얼마나 사악한 인간들인가? 쾌락을 얻기 위해 생명을 죽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여왕은 이제 이해할 만하다. 물론 인간이 자연을 무조건 파괴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삶을 포괄하는 상징을 얻기도 한다. 주목나무 엄마 말을 들어보자.
“결코 나쁘지 않지. 이 인간들이 비록 거친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태어나고 또 결국엔 돌아갈 대자연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믿고 있으니 말이다. 저들은 바위와 언덕, 산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고 그 영혼이 강물과 냇물 그리고 저 깊은 호수에서 반짝이며 빛을 발한다고 믿고 있단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것이 나무, 특히 우리와 같은 주목의 영혼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야. 우리가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자이기 때문이지. 그들은 기도할 때 우리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이다. 또한 부족이 집결할 때에는 우리를 중심으로 집결할 것이며 우리가 마시는 물가에서 그들은 신을 부를 것이다. 몇 해 전에 네게 말한 것 기억나니? 주목이 여왕이 될 것이라는 말 말이다. 그건 예언이었어. 그리고 이제 그 예언이 실현되고 있는 거란다. 이 인간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얘야,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될 거야.”(49쪽) 인간이 나무를 숭배하는 시절이 있었다. 나무 숭배를 유일신 숭배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자연 속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있다. 인간도 자연 속 사물이니 당연히 영혼이 있다. 그 영혼으로 인간을 포함한 사물들은 서로 대화를 한다. 물론 인간과 인간의 대화처럼 언어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를 잇는 기운으로 대화를 한다. 흰옷 입은 사제가 주목나무가 있는 곳을 “신성한 숲이며, 이 숲의 지배자는 바로 이 주목이다.”(48쪽)라고 외치는 순간 인간은 신성한 숲과 이어진 신성한 존재가 된다. 신성한 숲이 있기에 신성한 인간이 있다. 아니, 신성한 생명이 있다고 말해야 정확하겠다. 신성한 숲에 있는 생명들은 주목나무 여왕을 중심으로 대자연이라는 한 영혼으로 묶여 있다. 사람들이 주목나무를 우러르고 숭배하는 마음은 영혼의 중심에 대자연을 배치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이 소설에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인간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우선 로마인 이이니어스와 호수의 요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이니어스는 로마 제9군단 히스파나를 이끄는 군단 사령관과 젊고 발랄한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두 살에 군대에 입대하여 사령관 아버지의 도움을 얻지 않고도 백부장 자리에 올랐다. 아버지는 주목나무 여왕이 사는 히버니아 섬을 정복해 황제에게 바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이니어스가 그 선봉에 서서 섬으로 들어간다. 그는 원주민으로 변장해 전쟁을 통해 이 섬을 뺏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섬 구석구석을 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된 그는 군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이 섬에서 만끽한다. 배가 고프면 그는 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했고, 어느 때는 원주민들이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는 주목나무에 말고삐를 묶고 텐트 속에서 숙면을 취했다. 전쟁터를 나돈 사람이 잠이나 제대로 자 본 적이 있을까? 주목나무가 있는 섬은 그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이이니어스는 운명처럼 호수의 요정을 만난다. 이이니어스와 호수의 요정이 만나는 이야기를 우리는 나무가 쓰는 언어로 들어야 한다. 인간이 말하는 언어로는 그 상황을 표현하기가 힘들다. 돌려 말하면 이성이라는 틀을 버려야 우리는 새로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이이니어스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아직 여자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에게는 호수의 요정이 첫사랑이라는 얘기다. 호수의 요정은 원래 이이니어스를 유혹해 호수 밑바닥에 영원히 처박아 두려고 했다. 마법을 쓰려는 순간 그가 요정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한다. 죽음이 새로운 삶으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바로 그 시각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수천 명의 아름다운 요정들이 군대를 유혹하여 요새 밖으로 멀리 끌어냈다. 요정들은 군인들을 섬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신붓감을 맞이하게 했다. 섬을 정복하려고 온 군인들이 도리어 섬에 정착하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이이니어스는 호수의 요정과 함께 ‘영원한 평온의 땅’으로 올라간다. ‘영원한 평온’이라는 말에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꿈이 서려 있다. 주목나무가 여왕으로 있는 신성한 숲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을까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은 또 한 사람을 여왕은 ‘초록 인간’으로 부른다. 초록 인간이 나타난 시기는 공교롭게도 주목나무 엄마가 생을 마친 시기와 겹친다. 엄마의 죽음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여왕은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혐오스러워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삼라만상을 낳은 어머니 대자연이 지금은 애통해할 시간이 아니라 엄마 뜻을 계승해야 할 시간이라고 속삭였지만, 여왕은 그 말을 묵살해버리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간혹 잠에서 깨어나 보면 엄마가 서 있던 자리에는 잡초만이 무성했다. 그것이 보기 싫어 여왕은 다시 잠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거슬리는 소음이 여왕을 깨웠다. 쇳소리였다. 한 인간이 곡괭이로 자기 키 세 배나 되는 커다란 바위를 내리치는 소리였다. “이리저리 뒤엉킨 머리칼은 사방으로 뻗어 있고, 몸 전체는 짐승의 모피라고나 할 털로”(96쪽) 뒤덮인 사람이었다. 여왕은 그 사람에게 흥미가 일었다. 엄마에 대한 애도 기간을 끝내고 여왕은 뿌리와 잎으로 생명 기운을 내보기 시작했다.
곡괭이로 바위를 내리치던 사람은 대륙에서 왔다고 한다. 돼지가 머릿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그는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다.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돼지가 황금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하늘을 날더니 뭉게구름에 있는 천사 옆으로 가서 앉는 꿈을 꾸었다. 종교적 소명으로 해석한 그는 이튿날 아침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엄격한 규율은 참을 만했는데 돼지고기가 문제였다. 그는 돼지고기를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구원이 가까워지리라는 확신으로 수도원장을 속였다가 망신만 당하고 수도원에서 쫓겨난다. 이래저래 해서 여왕이 사는 섬까지 온 그는 서릿발이 내리는 밤, 마음속에서 영적인 것을 느꼈다. 돼지고기와 여자에 대한 욕망으로 갈팡질팡하던 그는 어느 날 주목나무 가지 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주목나무가 겨울잠에 빠진 사이 거센 폭풍에 뿌리가 뽑힌 나무들을 끌어 모아 비를 피할 집 한 채를 지은 것이다.
몇 개월 만에 본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반듯한 걸음걸이로 편안하게 숲을 거닐었다. 그는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숲에 있는 나무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주목나무 여왕을 ‘지혜의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자기에서 주어진 삶을 그대로 즐겼다.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 괴로워하지도 않았고, 여자를 안고 싶어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어느 초가을 오후에는 끓인 물에 주목나무 잎을 우려서 마셨고, 독이 있는 주목나무 열매를 맛없는 씨까지 모두 먹기도 했다. 그가 그윽한 눈으로 위를 바라볼 때면 여왕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밑으로 깔았다. 어느새 그는 주목나무 여왕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사람 얼굴 한쪽에 나뭇잎이 몇 장 달려 있는 걸 여왕은 보았다. 얼굴에서 주목나무 잎이 자라는 것 같았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그는 온몸에 나뭇잎을 달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나무의 언어를 습득한 사람은 경계를 넘어 ‘초록 인간’이 된 것이다.
주목나무 여왕은 대자연을 대리해서 신성한 숲을 다스리는 나무이다. 그녀는 떡갈나무가 일으킨 반란을 성장억제제를 사용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성장억제제를 사용하면 주변 나무들 또한 피해를 입지만, 여왕은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성장억제제를 투입한다. 떡갈나무와 화학전을 벌여 이긴 셈이다. 여왕은 주목나무로 만든 활을 사용하는 사람(헤링본)을 통해 타락한 인간 세상에도 개입했다. 헤링본이 마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강탈한 재물을 거지와 병자, 버림받은 자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그가 세운 기사도가 수많은 노래와 시로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걸 보면 여왕은 헤링본을 의적(義賊)으로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자애를 베푼 것이다. 여왕은 한편으로 다른 식물들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능력을 터득했다. 연륜과 지혜가 깊은 나무만이 할 수 있는 이 능력으로 여왕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새록새록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여왕은 자기와 연결시켰다고나 할까?
여왕이 지닌 능력 가운데 가장 비상한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능력이다. 여왕은 자그마치 3억 년을 거슬러 올라 역사의 굴곡을 면면히 들여다본다. 3억 년이라는 시간과 인간이 이 지구상에 뿌리를 내린 시간을 비교해 보라. 시간을 거슬러 오른 자리에서 여왕은 주목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암나무를 발견한다. 인간 역사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시간을 주목나무는 살아왔다. 거대한 공룡들이 갑작스런 날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될 때도, 주목나무는 꿋꿋이 살아 자손을 이었다. 여왕은 “인류는 비교적 최근에야 나타난 ‘해충’이다.”(190쪽)라고 말한다. ‘해충’이라는 말이 눈에 걸린다. 인간이 지구에 가한 폭력을 생각한다면 ‘해충’이라는 말은 도리어 가벼워보인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같은 종족을 파괴하면서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한다. 같은 종족을 죽이는 걸 쾌락으로 느끼는 유일한 짐승이 인간이라고 하던가? 1천4백46번째로 맞은 따스한 계절에 여왕은 인간이라는 짐승들이 거침없이 행하는 폭력 앞에 그대로 노출된다.
그때 첫 번째 타격이 가해졌다. 그것은 내 줄기의 북쪽, 이끼가 많은 가지를 내리쳤다. “악마의 방향부터!”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시작을 상서롭게 여기서부터 합시다. 주여, 축복을 내리소서!” 그러더니 우지끈 소리가 나면서 두 번째, 그러고는 다음, 또 다음으로 점점 빠르게 타격이 가해졌다.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걸까, 이 미치광이 짐승들이! 성직자의 직분, 십자가를 섬기는 자들의 본분이 도끼를 휘두르는 일로 바뀌었단 말인가? 비열하고 천하고 야만적인 짐승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자들이며, 내게 무슨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왜? 어떻게 감히? 무엄하게 감히 내게, 숲의 여왕인 나에게 이런 불경한 짓을 하는가? 어떻게 그 도끼의 칼날을, 그 톱의 날카로운 이빨을 내 몸 속에 들이밀 수가 있는가?’ 고통, 그 고통은 나를 갈가리 찢어놓는 것 같았다. (200쪽) 도끼질은 계속된다. 주목나무 여왕을 지탱하는 수만, 수십만 세포들이 죽어갔다. 사람들이 제 몸을 내리칠 때마다 여왕은 ‘죽어, 죽어, 죽어!’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신성한 숲을 지키는 상징으로 받들던 나무였다. 시간이 흘러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 신성한 나무를 악마로 규정한 후 주목나무 여왕을 난도질했다. 여왕은 참혹하게 쓰러졌다. 여왕이 완전히 쓰러졌을 때 수도사들은 마음껏 기뻐했다. 그들은 생명을 죽인 게 아니라 악마를 죽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수도원이 들어설 자리를 가로막은 악마를 제거함으로써 그들은 비로소 신성이 이 숲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왕은 왜 악마가 되어야 했을까? 주목나무 여왕만 수도사들이 휘두른 도끼날에 무너진 건 아니었다. 우아한 딸기나무도 수도사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 대수도원과 호수 사이에 널찍한 산책로를 내기 위해 그들은 딸기나무를 망설임 없이 제거했다. 자연에 발을 들여 놓은 인간은 이렇게 힘으로 죄 없는 생명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여 버렸다.
“인간이 우리를 지배했고, 그들은 사악했다…….”(205쪽)라는 말로 작가는 이 상황을 정리한다. 종교를 앞세워 그들은 자연=생명을 죽였다. 주목나무 여왕이 죽은 판에 다른 생명이야 말해서 무엇 할까?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명분으로 산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를 거리낌 없이 내는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딸기나무와 달리 거대한 주목나무는 살아남았다. 수도사들이 주목나무 뿌리까지는 뽑아내지 못한 것이다. 뿌리가 살아있는 주목은 밑동 쪽에서도 쉽게 싹을 피운다. 한여름이 되어서야 의식을 되찾은 여왕은 마음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보다 더욱 강렬한 무언가를 느꼈다. 다른 주목들이 상황을 포기하고 죽어갈 때도 여왕은 명명하기 힘든 이 힘으로 하여 끝내 살아남았다. 그것은 증오심이었다. “가장 강렬하게 타오르는 증오!”(208쪽) 여왕은 인류에 대한 증오심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증오로 들끓어 오르는 마음으로 여왕은 수백, 수천만이 울부짖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들었다. 광기에 빠진 인간들이 휘두른 도끼에 속절없이 제 몸이 잘린 나무들이 외치는 끔찍한 소리였다. 여왕은 오기가 발동했다. 주목나무가 쉽게 죽지 않는 나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느 날 신앙심이 깊은 한 수도사가 숲을 산책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형제들을 불렀다. 그는 ‘기적’이라고 외쳤다. 기적을 외치는 수도사를 따라 ‘형제들’이 다시 살아난 여왕 곁으로 왔다. 자그마한 줄기에 잎사귀가 달린 새 가지 열두 개가 뻗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수도사는 부활을 외쳤다. 열두 가지, 수도사 열두 명, 그리고 구세주의 열두 제자가 겹쳐 부활을 입증했다. 수도사들은 부활한 주목나무 주변에 대수도원을 짓기로 결정했다. 절대적인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부활과 묘하게 겹치는 이 부분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훗날 한 은둔자가 폐허가 된 대수도원을 둥지로 삼으면서 주목나무에 얽힌 전설을 퍼뜨렸다. “한 병사가 이곳으로 왔지요. 그는 젊고 오만했습니다. 그가 이 주목을 보더니 가지를 하나 잘라내서 지팡이로 쓰겠다는 겁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 더러운 거렁뱅이야, 네까짓 게 뭘 안다고 그래?’ 하면서 그는 내게 사납게 발길질을 했어요. 내가 그 주목에 손대지 말라고 계속 말렸으니까요. 계속되는 발길질로 내가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되자, 그는 자기가 봐뒀던 가지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무에서 가지를 꺾는 순간, 가지에서 피가 흘렀고, 병사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답니다.”(218쪽) 신성한 숲을 수호하는 나무에서 악마로, 악마에서 다시 부활한 존재로, 전설 속에나 있을 법한 존재로 변신하는 주목나무 여왕이 재밌지 않은가? 인간이 마음먹는 바에 따라 주목나무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주목나무 여왕은 인간이 나무를 한 존재로서 대접하고 있는지 묻는다. 종교적 상징으로서 나무를 숭배하든, 정원 가꾸기 대상으로 나무를 기괴한 모양으로 변형하든 인간은 나무에 자꾸만 의미를 붙인다. 의미만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나무를 그 의미에 맞추려고 한다. 인간은 나무의 언어를 듣지 않는다. 인간이 쓰는 언어로 나무가 사는 방식을 제어하려고 한다. 나무는 나무로서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왜 꼭 인간이 중심에 나서서 다른 생명들을 자기 구미에 맞추어야 하는가? 나무의 언어를 알아듣는 어린 소녀(클레어)를 통해 작가는 주목나무 여왕이 품은 마음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녀는 외롭대요. 그래서 친구가 더 있으면 좋겠대요.”(228쪽) 주목나무 여왕은 인간에게 숭배를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정원수로 온몸을 기괴하게 잘려 인형처럼 살고 싶지도 않다. 그녀는 다만 인간과, 아니 모든 생명과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나무의 언어로 그녀는 이 소망을 인간을 향해 수도 없이 외쳤다. 이제 우리가 그 말을 들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나무의 언어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화성에 식물을 먼저 보내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서서히 만들려는 계획이다. 불과 1만 년 사이에 인간들은 이 세상을 길들였다.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 세상을 오직 인간만이 사는 세상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지금 그 잘난 과학으로 지구를 떠나 화성에 개척할 꿈에 부풀어 있다. 수많은 식물이나 동물이 화성에 선발대로 보내질 터이다. 그곳에서 언젠가 살아남는 식물, 동물이 생기면 인간은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인간은 자기 언어로 세운 왕국을 영원한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 대자연이 내보이는 이치가 이 나라에서는 통할 리가 없다. 주목나무 여왕은 지금도 우리에게 나무의 언어로 이 사실을 알린다. 마음을 열면 여왕이 전하는 이 얘기를 우리는 들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 대자연에 속한 한 생명이라는 진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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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다르듯
본 포스트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기증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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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탄생, 그리고 성장하고 진화하는 이 모든 과정을 그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인류는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오고 있지만 풀 한 포기, 작은 벌레 하나에 깃든 생명의 경이로움은 늘 놀랍고 의문투성이다. 나무의 언어라는 제목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둘째 아이의 참관수업에서 본 실험 내용이 떠올랐다. 요지는 긍정의 말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게 주제였지만 내겐 식물에게 나타난 반응이 더 놀라웠다. 똑같은 조건의 두 화분을 놓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들려주었을 때 나쁜 말을 들은 화분이 시들어 버린 실험 말이다. 그 결과에 식물이 귀가 있나? 식물도 감정을 느끼는 걸까?라며 멈칫했던 마음은 식물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로 옮아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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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언어 ○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순백의 빛나는 진실을 말한다. - p. 121 ○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미풍에 한들거리던 잎사귀, 그 잎을 떠받치고 있던 이리저리 뻗은 굵고 가는 가지들, 그 가지 사이에 둥지를 틀던 새들, 오소리, 다람쥐 그리고 내 줄기에 난 구멍을 보금자리삼아 지내던 여우들. 하늘과 비, 태양 그리고 광합성......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여, 안녕. - p. 205 ○ 내가 아주 어리고, 몹시 푸르렀던 시절 이후 처음으로, 나는 모든 것들에, 모든 이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느낀다. 이 세상은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할 수 없는 싸움터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모든 것을 떨치고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p. 245 주목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오랜 세월에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읽히게 됩니다. 그 동안 나무와 인간은 자신의 나뭇가지 한 켠을 주목에 의해 공생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인간에 의해 주목이 베어지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완전히 베어지고 난 후에는 생명력을 발현해 되살아나기도 하죠.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나무는 인간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듯 보입니다. 그리고 주목은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삶이란 사는 것이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오늘에 관심을 가지자고 말합니다. 식물학을 소설로 만들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되던 귀도 미나 디 소스피로의 이탈리아소설 나무의 언어. 꽤 재미있는 소재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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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언어]는 이천 년을 살아온 나무가 주인공이자 화자인 소설이다. 호수를 끼고 있는 울창한 숲의 여왕인 주목(朱木) 나무는 그녀의 삶과 자연의 섭리, 지구의 역사,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 등에 대하여 인간의 언어를 이용하여 이야기한다. 저자는 나무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12년에 걸쳐 연구를 하였고 아일랜드의 킬라니에 있는 주목을 찾아냈다. 사실, 작품의 주인공이 된 이 나무는 웅성(수컷)이지만 책 속에서는 여성으로 나온다. 엄마 나무에 매달린 열매였을 때부터 땅에 떨어져서 싹이 트고, 작은 나무가 조금씩 자라서 어느새 숲의 새로운 여왕으로 군림하기까지의 여정이 펼쳐진다. 어린 나무가 엄마 나무를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과 찬사로 가득하다. 쏟아지는 햇빛, 엄청나게 내리는 고마운 비, 새들의 지저귐,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엄마 나무 등 어린 주인공 나무는 천진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다른 나무처럼 자라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속상해하는 모습, 멀리서 날아오는 꽃가루를 받으며 열매를 맺는 나무의 사랑 이야기, 나무와 동물 생태계에는 등급이 존재하며 주목이 그중 으뜸이라는 이야기 등 나무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무, 특히 주목과 같은 상록수는 항상 푸르르기 때문에 절개와 기품을 상징해서 감정의 변화도 적을 것 같았는데, 소설 속 나무는 우리처럼 기쁨, 슬픔, 질투, 분노 등의 감정을 느낀다. 특히 엄마 나무를 잃은 상실감과 자신에 대한 실망, 슬픔 때문에 스스로 성장하기를 멈추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또, 숲의 왕좌를 넘보는 떡갈나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진행해 나가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동물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가 어떻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나무는 어떻게 해서 동맹군을 끌어모으고 전략을 짜는 것일까? 비록 이 책은 소설이지만 마치 정말 나무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천년에 걸친 세월 동안 나무는 여러 번 인간을 만나게 되는데 나무를 종교로서 숭배하는 인간, 섬을 정복하기 위해 들어온 로마 군대, 자연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인간, 켈트의 종교에서 기독교로 전환되는 모습, 헤링본의 활, 프란체스코 수도사들과 사원 건설, 국립공원 지정 등 나무의 이야기 속에서 인류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다. 로마 군대와 요정의 이야기와 헤링본(로빈 후드) 등 신화와 민담도 섞여 있어서 신비로웠다. 나무는 처음에 인간에 대해 재미있는 행동을 하는 특이한 동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이 행하는 무지막지한 자연의 파괴와 '자연을 정복하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종교로 큰 상처를 받는다. 나중에는 인간들 중 일부는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할 의지가 있음을 알고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여성이 파괴를 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은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였고,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고 있다. 반대로 남성은 파괴가 얼마나 쉬운지를 알고 있다'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나무와 자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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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나무의 언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랜 된 나무, 주목(朱木)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아무도 자신의 탄생 순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망각은 어쩌면, 무지와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오만하고 어리석고 사악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반면 나무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나무는 자그만치 2만4천7백40번이나 달이 뜨는 걸 봤다고 합니다. 맨처음, 나무는 얼마 동안 땅속에서 가슴 두근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고, 그다음 부드러운 대지를 헤집고 새싹의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새싹이었던 나무는 엄마가 건넨 첫인사의 감격을 기억합니다. 넓고 푸른 하늘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벅찬 기쁨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스스로 탄생의 순간을 만끽했고, 오랜 세월 동안 그 기억을 지닌 채 살아왔습니다. 어린 나무일 때부터 대자연의 섭리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만족할 줄 알았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나무는 자연의 법칙이 허용하는 대로 자신의 젊은 숲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나무의 언어를 모를 뿐더러 침략과 약탈, 방화를 되풀이하며 파괴의 본성을 지루하고 기나긴 역사를 통해 거듭 확인시켜줬습니다. 가끔 괜찮은 인간도 있었습니다. 나무의 언어를 주고받을 줄 아는 인간. 이 책이 아니었다면 결코 나무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읽으면서도 순수하게 나무의 언어를 받아들이진 못했습니다. 나무가 말하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존재라면 분명 인간보다는 훨씬 지혜로울 것입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배우고 싶은 지혜는 삶에 대한 의지입니다. 나무는 그것을 항상 '살아 있음의 기쁨'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나무는 이 책을 자신의 회고록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무의 언어>는 나무와 인간 모두에게 의미있는 기록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비트겐슈타인처럼 나무 앞에서 침묵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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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나무를 보면서 생각을 한다.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물이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가을엔 알록달록 아름다운 단풍을 선사한다. 겨울날의 앙상한 가지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인생의 희망을 엿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매일 걷는 산책길의 나무들은 나에겐 추억이자 희망이자 믿음직한 벗이기도 한다. ![]() <나무의 언어>라는 책을 손에 들자마자 나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이 책의 작가인 '귀도 미나 디 소스피로'는 나무의 시각으로 "전설과 환상, 자연과 인성, 역사를 아름답게 그려낸 어른을 위한 특별한 동화 소설 !" (책 소개글 중에서)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약 12년에 걸쳐서 나무를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작품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 주인공인 주목은 웨일즈에 있는 주목 생태지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킬라니 주목이다. ![]() 이야기는 "부드러운 대지를 헤집고 흙덩이 속에서 새싹" (p.9)이 고개를 내미는 순간부터 엄마 주목과 함께 성장하고, 엄마의 죽음 이후에 그녀의 자리를 계승하여 왕녀이자 여왕이 되고 주목 삼림지의 국가적 기념물이 되는 수령 2쳔 년의 오래된 주목의 자서전이다. 주목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다양한 나무들, 강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주목곁을 스쳐가는 곤충들과 동물들.... 그런데, 어느날 이곳에 나타난 인간, 충격적인 모습에 지나가던 여우에게 물어본다. 인간에 대해서... 여우는 말한다. 인간은 "사악하고 사악하도다 " 이후, 주목은 또다른 인간을 만나게 되면서 " 인간은 그렇게 사악한 괴물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월은 흘러 흘러, 이곳은 주목 삼림지가 되고 주목은 국가적 기념물이 된다. 그동안에 인간이 행하는 많은 악행도 보게 되고, 이제는 이곳의 나무들은 보호를 받게 되지만.... 인간의 욕망을 어디까지일까? 화성에 식물을 보내자는 이야기까지 엿듣게 되니.... 이야기 속에는 신화, 민간 설화, 역사적 인물 이야기 등이 함께 그려진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목의 시각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인간이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을 접고, 나무의 시각으로 보게되는 세상, 그 세상에서 나무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작가인 '귀도 미나 디 소스리로'는 <나무의 언어>, <강의 언어>, <화산>을 썼다. 이 작품들은 모두 자연을 주제로 한 책들이다. 나무이기에, 강이기에 들려줄 수 있는 언어. 그 언어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 듯 한다.
** 책에 오자가 많이 있습니다. 교정이 필요할 듯 합니다.*** <사진은 올림픽 공원에서 찍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만큼 해냈다는 것, 그것은 일단 내 삶이 성공적으로 출발했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그렇다! 내가 이렇게 해낸 것처럼, 바로 당신도 주변의 모든 것에 따뜻하고도 주의 깊은 눈길을 주며 살아가기를 나는 소망한다. 후각과 시각, 당신의 모든 긍정적인 감각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모든 것들에게! 나의 두 엄마인 나무와 대자연 그리고 나뭇잎과 풀잎, 시냇가의 풀, 호수, 구름, 봄이 오면 만발하는 꽃들 그리고 나처럼 푸른 희망에 부풀어 있는 어린 묘목들, 강물에서 헤엄치는 연어와 송어, 들판에서 뛰노는 여우와 수사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개똥지빠귀와 푸른 머리새……. 세상은 모든 존재가 함께 어우러져 돌아가고, 나는 빗물을 마시고, 햇살을 받으며 땅에서 자라났다. 시작은 그렇게 복되고 아름다웠다. 그뿐이 아니었다. 삶의 모든 질서와 나 자신의 품성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란 과연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온 지금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제 막 삶을 시작하던 그 시절에도 분명 난 그걸 느끼고 있었다. 삶 속엔 크나큰 희망이 숨쉬고 있으며, 대자연의 세계는 분명 경이로운 놀이마당이 될 것이라는 걸 나는 쉬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 p.14 인간들이 비록 거친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태어나고 또 결국엔 돌아갈 대자연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믿고 있으니 말이다. 저들은 바위와 언덕, 산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고 그 영혼이 강물과 냇물 그리고 저 깊은 호수에서 반짝이며 빛을 발한다고 믿고 있단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것이 나무, 특히 우리와 같은 주목의 영혼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야. 우리가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자이기 때문이지. 그들은 기도할 때 우리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이다. 또한 부족이 집결할 때에는 우리를 중심으로 집결할 것이며 우리가 마시는 물가에서 그들은 신을 부를 것이다. 몇 해 전에 네게 말한 것 기억나니? 주목이 여왕이 될 것이라는 말 말이다. 그건 예언이었어. 그리고 이제 그 예언이 실현되고 있는 거란다. 이 인간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얘야.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될 거야.”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주 기뻤는데, 그것은 우리 숲에 살고 있는 몇 그루의 느릅나무들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 숲 속에 살고 있는 한 그들을 해칠 자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때 내가 좀 더 총명했더라면, 엄마의 말 중에서 왜 내가 그냥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 인 간’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지 궁금하게 여겼을 것이다. --- p.49 여기서 밝혀둘 것이 있다. 시간 여행을 통해서나, 나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나 지금까지 여성 인간, 즉 여자가 주목을 쓰러뜨리는 걸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여자가 자신의 종족을 죽이거나 불필요한 살생을 저지르는 일도 본 적이 없다. 물론 예외는 있게 마련이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예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원칙에 관한 것이다. 여성들은 항상 출산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반면에 남성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파괴의 근성을 역사를 통해 거듭 확인시켰다. 인간의 역사는 침략과 약탈, 방화가 되풀이되어 이어지는 지루한 이야기와 같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여성은 능동적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체로 희생당하는 쪽이었다. 남자들은 활로 다듬어 쓸 목재가 필요하여 우리 주목을 탐냈고, 여자들은 모습과 색깔과 향기가 아름다운 꽃을 좋아했다.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감당하고 또 지금도 감당하고 있는 쪽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여자는 창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남자는 파괴가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안다. 혹, 이 세상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여자들의 어깨에 걸려 있다. --- p.192 숲에 있는 주목들은 모두 나를 존경했다. 통치자로서, 혹은 모권의 상징적 존재로서 내게 존경심을 보냈다. 강한 의지력을 소유한 주목이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어떻게 폭풍우를 잠재우는지, 또한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적이 생기면 그때마다 그들을 어떻게 제거하는지를 보여준 산 증거가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를 그렇게 여겼다. 사실, 나는 섬에 살고 있는 모든 나무들에게 있어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내 전투 전략은 다른 숲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권좌를 얻고자 하는 많은 나무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오로지 흐뭇한 일일 뿐, 조금도 염려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나의 전략을 연구한다 하더라도, 내가 이 섬에서 선구적으로 시도했던 화학전은 오직 주목만이, 특히 탁월한 능력을 지닌 주목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자연의 법칙이 허용하는 대로 나의 젊은 숲을 통치했다. 늘 그렇듯, 풍족하게 내리는 비와 생기 넘치는 대기, 장난기 넘치는 태양, 고요한 달빛 그리고 아득히 먼 곳에서 빛나는 별들…… 이 모든 것들을 나는 사랑했다.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진실로, 내가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더욱더 진실인 것은, 내게도 회한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최근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엄마가 내게 했던 선의의 거짓말에 의문을 제기할 권리가 내게 있다는 결론에 이르렸다. --- p.195~196 ‘오, 맙소사, 내가 증오심을 품다니!’ 나는 그들에 대한, 또한 인류 전체에 대한 증오심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때, 바로 그때, 나는 수백, 수천만이 울부짖는 고통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주목 뿐 아니라 수백, 수천만의 나무들, 인간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지각없이 광기 어린 망상 속에서 꺾고 자르고 쳐내고 껍질을 벗겨내고 쓰러뜨리고 넘어뜨린 수많은 나무들의 외침이었다. 이와 함께 나는 나자신이 자아도취에 빠져 동료 영혼들의 고통을 까맣게 잊은 채, 그 비명소리에 얼마나 둔감했었는지를 깨달았다. 오, 나는 얼마나 허영에 차 있었으며, 얼마나 둔했던가! 변덕스런 인간을 구경하느라, 혹은 시간 여행을 하느라, 그런 하찮은 일에 빠져서 나는 수백 년 동안, 수백만 그루의 주목의 생명을 앗아간 그 학살의 광경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활이 우리 주목으로 만들어졌던가! 그리고 그것이 그토록 강한 무기였다면, 어째서 인간이 인간을 멸종시키지 못했을까? 화살로 아무리 많은 인간들을 죽인다 해도, 또 다른 인간들이 버섯처럼 생겨나서 그 자리를 메웠을 것이다. 이 인간 잡초들에 대항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마,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증오가 나를 다시 일으켰다. 다시 일어나 적어도 세상에 보여주라고 했다. 주목 한 그루를 없애는 것은 보잘것없는 자작나무 화살 한 개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 라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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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을 꿈꾼다? 분명 어리석은 꿈이다. 오래 산다는 것이 지혜와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 또한 어리석은 믿음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현명했다는 성자는 수명이 80세였다. '노년의 지혜' 같은 케케묵은 수사법에 따르면 120세 노인이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과연 그러한가. 보통 나무는 동물보다 훨씬 오래 산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의 언어를 우리가 들을 수 있다면 과연 지혜로운 현자가 될 수 있을까? 이탈리아 작가 귀도 미나 디 소스피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일랜드 호숫가에서 2천 년 동안 살아온 주목(朱木)의 자전적 이야기다. 주목은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나무다. '살아있음의 기쁨'을 누릴 만큼 누릴 수 있는 운 좋은 나무다. 주목의 삶은 생존부터가 치열한 경쟁이며 억세게 좋은 운이 필요하다. 1천여 개의 씨앗 중에서 단 한 개만이 묘목으로 자라나 어린나무를 거쳐 장성한 나무가 되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주목은 나무들의 여왕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식물의 세계는 이른바 서열과 위계질서의 사회였다. 주목의 천적도 다른 나무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다. 인간 벌목꾼과 주목의 껍질을 주식으로 삼는 시카사슴 정도가 천적에 해당한다. 주목은 그 불멸의 상징성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최근에는 주목 삼림지가 생기면 인간들이 살뜰하게 보호해 주는 측면도 있다. 물론 한동안 활 제작과 목선 제작에 쓰여 대량 벌목되었지만 말이다. 대자연의 수수께끼는 최장수 나무도 풀 길이 없는가 보다. 주목은 자연선택을 강조한 다윈의 진화론에 딴지를 건다. 경쟁과 싸움, 투쟁 등을 자연의 섭리로 꾸미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한다. 또한 주목은 자신의 삶의 터전인 된 아일랜드에 대해 상전벽해의 탄식을 내뱉는다. 1만년 동안 삼림지였던 곳이 불과 2백년 사이에 초원지대로 바뀌게 되었다고. 주목은 인간의 문명화 과정(식민주의 포함), 극도의 인간중심주의, 자연에 대한 경시를 강도높게 비판한다. 인간의 정원 가꾸기 풍조까지 동물원보다 훨씬 나쁘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국립공원도 결국은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측면이 있다고 쓴소리를 가한다. 주목이 본 인간은 약탈과 살인, 파괴를 자행하는 무자비한 야수였다. 그리고 기독교가 인간의 그런 약탈적 성격을 한껏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가한다. 아닌게 아니라 주목은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의 도끼질로 죽음의 문턱까지 간다. |
<책소개> 우리나라에도 널리 자생하는 주목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늘푸른
나무인 주목은 성장이 매우 느리고 그런 느린 성장에 불멸의 삶의 비밀이 숨어있다. 엄마 나무의 보호
하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며 매우 느리게 성장하던 어린 주목은 폭풍으로 심하게 쇠약해진 엄마 나무의 죽음을 알지 못해 스스로 책망하다 30년을 정체기에 홀로 접어들었고 그 사이 떡갈나무가 숲을 점령해버려 숲의 다양성을 위협하기 전에 주목은 성장
조절제란 화학물질을 만들어 떡갈나무의 성장을 억제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여 숲의 균형을 회복시킨다. 성장
억제제로 떡갈나무나 적을 무찌르기도 하지만 성장 촉진제로 노화하여 죽어가는 딸기 나무를 살리기도 하면서 숲의 여왕으로 숲의 질서를 유지시키며 자신만의
생존전략으로 오래 살아남는다. 너무 많이, 너무 빨리,
너무 조급히 취하는 것,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파괴를 가져오고 떡갈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은
다스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숲이 다양해야 더욱 다양한 먹이망을 만들어냅니다. 본문 131쪽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조급히 취하는 방식은 인간의 방식이다. 가슴이 있지만 가슴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는 인간과 가슴이 없지만 가슴으로 말하는 나무의 방식 대조가 매우
인상적이다. 가슴이 없지만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한 나무가 세상을 천천히 관찰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닌지…… 자연계에 적이 없어 보이는 주목은 천4백년을 넘게 살아오며
숲의 여왕으로 고고하게 살아가지만 대수도원을 짓는 사람들에 의해 도끼로 찍혀 잘려 나간다. 사냥과 전쟁용
활로 베어지다가 함선의 재료로 주목들이 베어지고 오랜 세월을 생존해왔던 주목조차 수도원의 자재로 베어지지만 뿌리에서 가지가 뻗어서 다시 부활하여
불멸과 부활의 상징인 교회의 나무가 된다. 주목이 다른 나무를 제치고 살아남고 다른 동식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과 인간에 의해 벌채된 순환의
역사를 대조적으로 함께 보여준다. 감상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고전적이다. 고전 희곡작품처럼 서론과 매장에 작가의 설명이 부록으로 들어있다. 나무의
언어를 쓰기 위해 식물학자처럼 오래된 주목을 찾아가 관찰하고 연구하였다고 하는데 주목에 대한 특징과 다른 나무들의 특징들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음유시인이 노래하듯 나무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며 이색적이라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자연관찰책이 아닌 소설책에서 주목의 신비로운 독특한 특징들과 주목의 주변을 함께 살아가는
곤충들, 땅의 뿌리와 공생관계에 있는 균류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모든 꽃가루가 꽃을 피우는 곳, 태어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태어나 경쟁자도 경쟁도 없고 생명에 관하여는 그 어떤 구속이 없는 곳.’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라고 묻지 않고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라고 묻는 곳.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러면 우리의 염원이 큰 공명을 얻어 그곳을 실재하도록 만들 수 있지도 모른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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