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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나라 즉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뉴먼은 유럽으로 여행을 온다. 신생국 미국에 비해 유럽은 역사와 전통이 깊기에 그만큼 유적이나 건물들이 많았기에, 미국에서 볼수 없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온다. 뉴먼의 가치관은 실용적이고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라고 하는 정신이 저의에 있으나, 그들이 만난 파리의 싱트레부인의 가정은 달랐다. 돈보다 명예, 가문의 존속이 제일이었던 것이다. OLD와 NEW의 갈등, 신대륙과 구대륙의 갈등,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등. [아메리칸]은 반대되는 구조를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간다. 독서회운들과 나눈 질문을 통해 책속의 내용을 더욱 곱씹게 된다. 31-1 평자는 이 작품을 '미국인의 오디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회원님 각자의 키워드로 이렇게 작품을 평하는 문장을 만들어 주세요 [가문의 비밀]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뉴먼을 계기로 가문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지만 끝내 공표되지 않는 약간 찝찝한 결말을 말하는 드라마 같아요 31-2 뉴만은 확실하게 싱트레부인을 사랑한듯 보입니다. 그런데 싱트레 즉 클레어는 어땠을까요? 정말 뉴만을 사랑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어느 부분 어떤 장면인지 말씀해주세요 딱 정확한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데 뉴먼의 갖은 구애에도 반응을 하지 않던 클레어부인이 뉴먼의 진심을 알고 기뻐하며 반응하는 장면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늙은 첫 남편으로부터 상처받고 자신의 집안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던 클레어에게는 뉴먼의 등장이 자신의 삶을 바꿔줄 사람이었다는걸 깨달은 거겠죠 31-3 (p.295) " 그 여자는 유럽에서도 으뜸갈 만큼 돈만 쫓는 귀여운 건달이랍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내 머릿속을 빙빙 돌면서 마음의 평화를 휘젖고 있어요." 발렌틴은 노에미 양의 실체를 알면서도 그녀에게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렌틴에게 인생 선배로써의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노에미가 갖고 있는 매력의 목적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는게 어때? 그녀는 루브르박물관에 있으면서 자신을 유혹할 귀족가문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잖아. 31-4 뉴만이 느끼는 유럽의 풍경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 싶었을까요? 제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유럽사람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묘사가 있는데 유럽의 경치와 건물, 거리를에 대한 묘사를 보면 상세하고 작가가 약간 부러워한다는 느낌이 있지 않나느껴집니다. 31-5 5장에서 뉴만은 여행을 즐깁니다. 본인의 최고의 여행 또는 하고싶은 여행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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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사의 회전>을 재미나게 읽고 난 후 <아메리칸>도 구입하지 않았을까 싶다.올해 헨리 제임스의 책을 여러 권 읽었으면서도 정작 <아메리칸>은 읽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책장에 꼿혀 있는 걸 발견한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신대륙 미국과 구대륙 유럽문화와 관습의 차이를 발견하는..." 문구를 읽는 순간, 망설일 필요 없이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성공한 미국사업가 뉴먼은 유럽에 대한 나름의 동경을 품었던 듯 하다. 해서 루브르박물관에서 아무렇지(?)않게 복제화를 주문하기도 하고..자신에게 있을지 모를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려진다.그런데 이 모습은 생각보다 길게 그려지지 않는데,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 트리스트람과 부인을 만나게 되면서부터다.트리스트람은 싱클레어부인을 소개해 주게 되고..이후 소설의 절반은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애쓰고 마침내 허락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그리고 어김없이 지루해지려고 하는 순간 반전이..찾아 온다.급 추리물로 시선을 돌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벨 가드 가문의 비밀이 바로 그것!! 사실 유럽과 미국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는 격하게 공감을 하기엔 일반화 오류에 빠질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했다.오히려 '사랑'이란 주제가 소설에 가장 큰 축이었고,그 사랑을 대하는 귀족이라는 이름을 단 가문의 사람들과,시민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의 차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해야겠다. 이 문제를 놓고 보면 굳이 유럽과 미국,혹은 구문화와 신문화의 차이가 아니라,그들만의 리그에 국한되어 있는 이들의 혐오스러운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목격하고 있는 터라 굳이 긴 역사의 시간을 따라가볼 필요도 없지 않을까..속된 말로 성공한 사업가임에도 내세울 가문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문제라니.그런데 귀족이란 이름의 타이틀을 가진 이들의 이중성은 어제 오늘일은 아닌데..그럼에도 볼때마다 악취가 풍겨지는 건 또 어쩔수가 없나 보다.
「당신은 폭로 위협으로 그 사람들을 굴복시키려 했나요?」트리스트람 부인이 추궁했다. 「그렇소,하지만 그들은 굴복하지 않으려고 했어요.난 선택권을 주었지만 그들은 허세를 부려 혐의를뒤엎고 나를 사기꾼으로 몰려고 했어요.하지만 그들이 두려워한 게 분명해요.」"/521쪽
결국,소설은 은근히,아니 어쩌면 노골적으로 '귀족'이란 이름 뒤에 가려진 혐오스런 면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교양있는 척하면서 실은 온갖 탐욕스러운 짓은 더 많이 하는..아니 할 수 있는..그래서 벨 가드가문의 발렌틴은 귀족의 악취를 느끼며 버티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권태와 결투가 되였고,어베인은 철저히 사라져 버린 왕가가 다시 부활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그래서 영원히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하기를 갈망하는 상징으로 그려진 건 아닐지.소설은,예술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실은 탐욕스러운 귀족가문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은 이유기기도 하다.그리고 자연스럽(?)게 뉴먼은 성숙된 인간으로 한단계 올라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재미난 점은,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연이어 읽은 덕분에 <한 여인의 초상>과 <아메리칸>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닮은꼴이 보였다는 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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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지 오래된 책을 꺼내들었을 때 난감해지는 상황은 책을 산 이유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 경우입니다. 몇 달 전 읽었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다행히도 구입한 이유가 생각나서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헨리 제임스의 『아메리칸(1999.06.30. 민음사)』은 그렇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무엇이 궁금했는지 기억났다면 지루한 도입 부분을 불편해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진득하게 참아냈을 테니까요. 소설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미국인 사업가 ‘크리스토퍼 뉴만’과 복제화가 ‘노에미 나오슈’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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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영어는 매우 정확한 단어 (수많은 단어중에 가장 적합한 단어..며칠전 본 [Absence of Malice]에서 여주는 true대신에 accurate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를 구사하며 문장에 있어 필요없는 것은 절대 넣지않음에 있는데, 이 번역서는 가독성에 있어...읽기 쉽지않다. 나중에 번역서가 더 나오길 바란다. 추가컨대, 맨날 곰국처럼 소개되는 작품만 계속 나오지 말고 다른 작품도 좀. 헨리 제임스는 [The turn of the screw]에서 더 나아간 호러작품도 썼는데... (모르는게 거의 없는 CSI:Las Vegas의 그리섬 반장은 한 에피에서 이 작품을 과연 호러로 볼지 심리서로 봐야할지를 얘기했던 적이 있다. 핵심을 정확히 찔렀다) 가지고 다니면 읽는 낮의 책이 있고 밤에 침대머리맡에서 읽는 책이 있는데, 후자가 바로 [50 shades of Grey]인데 이 작품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지 모르겠다. 헨리 제임스의 인물은 매우 복잡하며 모순된다. 그래서 한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선 한페이지 정도가 소요가 되는데, 저 후자의 작품에선 단 세가지의 형용사 단어로 다 된다.ㅎㅎㅎ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와 같은 인물이 듣는 음악은 소설 속에서 직접언급이 되는 만큼이나 그 인물을 또 달리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가끔 어떤 책에서 언급되는걸 찾아보면 전혀 쓰잘데기 없이 작가의 허영심에 남발되는 것들도 있지만.. 이 작품에선 뉴먼이 감상하고 복제를 원하는 작품중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의 결혼'이 있다. 앙리4세와의 정략적 결혼인데, 이를 통해 향후 뉴먼에게 다가올 것을 짐작케해준다)
소설에선 미국 서부에서 구리사업으로 향후 놀고 먹으면 살아도 돈이 남을, 아메리칸 누보리치 (nouveau riche) Chrostpher Newman은 유럽으로 건너와 파리의 그랜트 호텔에 머물며 루브르에서 그림을 감상한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에서 알았던 Tom Tristram과 그의 유럽피안 아내 트리스트람 부인 (Mrs.Tristram)과 루브르에서 그림을 그리는 파리지앵 노에미 니오슈 (Noemi Noiche)를 알게된다. 아버지인 Monsiuer Nioche에게는 근심스러운 순진한 딸이지만,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만큼 사람을 관찰하며, 문화적 갈증에 찬 돈많은, 그래서 문화의 후원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Newman에게 엄청난 그림값을 물릴만큼 세상사를 잘 알고있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물질적인 성공의 정점을 찍을 아내를 원하고, Mrs.Tristam은 영국과 프랑스의 귀족가문 출신 과부 클레어 싱트레 백작부인 (Claire de Cintre)를 소개해준다. 그녀를 얻기위해, 적극적인 미국인의 자세로 나서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녀의 어머니 벨가드 후작부인 (Madame de Bellegarde)에게 내쳐질 뿐이다.
...당신은 순진하고 기운차게 앞으로 나아가, 이 궁핍하고 쇠약한 구세계를 응시하다 와락 덤벼든 위대한 서부의 야만인이에요....이런 난 결코 야만인은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죠. 난 야만인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지 알거든요...난 당신이 코만치 주장이라고 하지 않았어요,,,p.50 (상대적 시선. 구대륙귀족이 신대륙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서부정복자가 인디언을 바라보는 듯함)
...내가 무엇때문에 고생하고 분투했겠어요? 난 성공을 했지만 내가 거둔 성공으로 지금 무엇을 하겠어요? 내 성공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선 마치 기념비 위의 동상처럼...아름다운 여성이 있어야돼요. 그녀는 아름다운 만큼이나 착하고 착한만큼 영리해야겠죠. 난 아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겠소..한마디로 나는 시장에서 가장 좋은 상품을 손에 넣고싶소...p.56
...미인은 아니지만 아름다워요. 이 두가지는 매우 달라요. 미인이란 얼굴에 아무런 결점이 없는 사람이지만, 아름다운 여인은 얼굴에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력이 유지되는 사람이죠...p.59
...인간의 천성을 가장 다양한 형태로 보게했던 괴테를 완벽한 인물...p.98
..셰익스피어가 데스데모나를 두고 '까다로울 만큼 섬세한 베니스인'이라고..싱트레 부인도 까다로울 반큼 섬세한 파리인...p.182
...고풍의 음각으로 새겨진 작은 바다요정의 형상만큼이나 단단하고 윤곽이 뚜렷해요. 마치 자수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정서와 마음을 지녔다고...그 여자는 다이아몬드로도 자국을 낼 수 없답니다...p.291
... 당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들의 용기를 과대평가했던거예요....p.365
...그들이 도전한 이유는 결국 당신이 실제 일을 벌이지 못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p.521
글쎄 [Romeo and Juliet]에게 비교되기는 하지만, 로미오만큼 순수한 정염에 불타는 것보다는 좀 불순물이 들어간 듯한 Christopher인데... 헨리 제임스가 높이 평가받는 것 중 하나인 화자의 시점을 도입이라든가 confidant (여기선 Mrs. Tristram, ..portrait에선 Ralph...난 이사벨이 랄프랑 결혼하길 바랬는데...) 는 역시나 [The portrait of a laday]에서처럼 알아볼 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그가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중 하나는 결혼과 사랑에 있어 매우 현실적인 시선을 두었다는 것 같다. [The portrait of a lady]에서도 Isabel Archer는 (난 항상 그녀를 톨스토이의 Anna Karanina랑 비교하는데..) 그녀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픽셔널한 엔딩에 반대되는 매우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그 작품보다는 보다 gothic romance적 냄새를 풍기며 (또 배경 또한 Jane Austen의 [Pride and Prejudice]보다도 더 후대이면서도) 마치 Charles Dickens의 [The Bleak House]를 연상시키는 음모가 마치 그냥 있으면 쳐다보지 않을 하늘위의 먹구름처럼 소리없이 지배한다. 마치 Jane Austen이었다면, 권력과 부를 가진 갑 쪽인 남주 Darcy가 강력한 의지를 구사하여 로맨스를 완성시키지만, 이 작품에선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 바로 Claire의 어머니였기에 미국의 재계나 사교계에서 아마도 갑으로 맘껏 여인네를 고를, Christopher Newman의 American Nouveau riche의 European Atistocracy로 들어가기 위한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 작품과 같이 읽어도 좋은 건, 아마도 Edith Warton의 [The House of Mirth (기쁨의 집)]인 것 같다. 그건 누보리치에서 탈락한 상류사회 여성의 이야기로 만만치 않은, 현실적 시선을 보여준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인상적이지 못한 크리스토퍼 뉴먼의 프로포절 이후 허락한 이유에서 그가 (우리들과)'달라서' 좋았다는 클레어의 말.
p.s: ...뉴만은 결코 애국자로 자처하지는 않았어도 조국이 친구의 콧수멍 냄새와 똑같이 취급되는데 화가 치민 나머지 큰 소리로 맹세했다. 즉,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이자 전 유럽을 깔아뭉갤 수 있고 미국인이 조국을 비난한다면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워 본국으로 송환하여 보스콘 쯤에 살게해야 한다고 (이것은 뉴만에게는 매우 복수심에 찬 말이었다)...p.41
ㅎㅎ, 동일 작가의 [The Bostinian]이 매우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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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틴은 라틴족의 젊은이들이 종종 그렇듯이, 어느 땐 흥겨울 만큼 젊게 보이다가 다시 깜짝 놀랄 만큼 성숙하게 보였다. 뉴만의 생각으로 미국에서 스물다섯 살에서 서른 살에 이르는 젊은이라면 머리는 노쇠해도 마음이나 도덕감만은 싱싱한 데 비해, 이곳의 젊은이들은 머리는 싱싱해도 마음은 매우 노화되어 낡아빠진 도덕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p138
# 신대륙 미국과 구대륙 유럽을 오가는 한 미국인의 오디세이
미국에서 성공한 장사치, 크리스토퍼 뉴만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이름이 같은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사업에 넌더리를 느끼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며 유럽으로 건너간다. 파리에서 친구 부부를 만나 머물던 중, 결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되고, 친구의 아내는 젊은 미망인 클레어 백작 부인을 소개해 준다. 그 부인은 가난 때문에, 나이든 백작과 악몽 같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뉴만은 클레어 부인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열정에 사로 잡힌다. 자신이 귀족은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축적한 재력 하나로 만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클레어에게 청혼한다. 하지만, 뉴만과 클레어 가족간에는 허물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뉴만은 그저 ‘아메리칸’일 뿐이었던 것.
“당신은 말 뜻을 모르고 있군요. 난 무척 자존심이 강하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늙은이오.”
# 그대로 머무는 것이 불가능한 미국인, 변화할 수 없는 유럽인
작가는 뉴만과 벨가드 후작을 통해 신대륙과 구대륙의 가치관의 대립을, 귀족 신분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발렌틴을 통해 신/구 사에에서 갈등하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 하지만 당신의 가난이 곧 재산이었죠. 당신은 미국인이므로 태어날 때 상태 그대로 머문다는 게 불가능해요. 그리고 가난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부자가 돼야 한다는 건 피할 수 없는 노릇이오. 당신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이 그저 다가가 붙잡기만 하면 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주위를 돌아보니 온통 <손을 떼시오!>라는 딱지가 붙어 있더군요. 그런데 기막힌 일은 그것이 단지 내게만 겨누어져 있다는 거였어요. 나는 벨가드 가문에 속하기 때문에 사업을 할 수도, 돈을 벌 수도 없었어요. 벨가드 가문이기 때문에 정치에 뛰어들 수도 없었고요. 우리 가문은 정치 가문을 싫어했으니까요. 게다가 둔치였기 때문에 문학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죠. 나는 부유한 소녀와 결혼할 수도 없었답니다. 벨가드 가문에서 평민과 결혼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으니 내가 시작한다는 게 적절치 않았거든요. 그래도 어딘가에 닻을 내려야만 되었죠. 하지만 우리 계층에서 결혼할 수 있는 상속녀란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그래도 말하자면, 가문이나 재산이 비등해야 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교황을 위해 싸우러 가는 것뿐이었어요.” –p138
<아메리칸>의 저자, 헨리 제임스는 1843년 뉴욕에서 태어나 파리, 제네바, 영국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파리인데, 시대적 배경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의 <고리오 영감>과도 일맥상통한다.
# 헨리 제임스가 21세기를 산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작가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미국의 가치와, 과거를 고수할 수 없는 유럽의 가치를 비교한다고 했지만 만약 헨리 제임스가 21세기를 살면서, 한국을 본다면 이렇게 말 할 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미국인이므로 태어날 때 그대로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그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오."
아니다, 에 아메리칸이라는 소설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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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버린 결정적 단서를 보고 트리스트람 부인이 마지막 발언을 날린다. "그들이 도전한 이유는, 당신이 실제 일을 벌이지 못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이 말을 듣고 뉴만은 본능적으로 그 종이가 정말 타버렸는지 보려고 몸을 돌렸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역사가 짧기에 무식한 (실제로 무식한 지는 모르지만, 유식한 사람들 기준에서는 무식한) 사람은 자신이 옳은지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의 유식함을 보면 주눅이 들지만, 어찌됐든 자신이 더 잘났다고 믿는다면, 대담하게도 자기 주도형으로 바뀐다. 그러나, 전통과 연륜은 이 무식함을 가지고 논다.
주인공 뉴만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파리의 하층민으로부터 무식함에 대해 당하고 파리 귀족에게도 당한다. 끝으로 철저하게 부서진 뉴만의 자존심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인생을 살아가는 매순간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전통은 지켜야만 하는가. 전통을 따르기엔 현실이 너무 가혹하지는 않은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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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알고나 읽는 건지, 알지 못하면 그게 무엇인지 그 자체도 모른다는 것만큼 역겨운 일은 없다. 외국 소설을 읽을 때마다 부딪히는 곤욕이다. 불안한 것은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인지 내가 사소한 선입견으로 잘못 파악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며, 더욱 미치게 하는 것은 남들 다 아는 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으니까. 이 책 또한 그렇다. 기운 쪽 빠지도록 읽고난 후에야 별것도 아닌 결과물 비쭉 내어 미는 게 여간 불친절한 게 아니다. 소설. 100년 전에 쓰인 소설들의 장황함.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을 읽기보다 명징한 단편, 깔끔한 수필 한 편 읽는 게 낫지 않을까. 민음사 ‘새 문학전집을 펴내면서’에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걸맞아야 한다. 독자의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하고, 번역자의 미련이 없어야 하며, 편집자의 정성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 ‘아메리칸.’ 미국인은 이 책대로 하면 정직하고 떳떳하고 한 치 흠 없는 완벽한 인간이다. 그러나 프랑스 벨가드 집안은 어둠침침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문화를 등에 업은 비열한 인간들이다. 문화인이란 자연인 - 정직, 순수란 선명도를 잃어버은 대신 인위적 허위로 날조되고 조작되어 회유와 강압,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인간이 아닐까. 결혼 지참금이 적어도 좋다는 조건에 현혹돼 60살이 넘는 노인에게 어린 딸을 결혼 시키는 어머니와 오빠, 딸을 보호하고 그 결혼에 반대하는 아버지의 죽음. 이 사실을 폭로하는 주인공 뉴만에게 사건의 진술자 하녀가 남편의 정부였다고 맞서는 노부인. 이 정도면 악마들의 행진이다. 돈이 아쉬워 미국 재벌가에게 결혼을 시키기로 작정하고도 또 다른 돈 많은 영국인 사촌 디프미어경에게 결혼시키려고 번복하는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돈 이외에 귀족이란 작위가 그렇게도 절실한 사회인가. 아마 당시 유럽은 그런 것 같다. 창녀 노에미에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디프미어경. 어딘가 부도덕한 구석이 있는 어베인 후작의 부인. 문화인을 자처하는 서양인의 불유쾌한 행각들에 비해 아메리칸 뉴먼은 언제나 당당하고 신선하다. 작가 - 헨리 제임스가 서구문명의 오만함에 대한 아메리칸의 순수성으로 반격을 가해 ‘자연인 : 문명인 = 아메리칸 : 유럽인’의 등식으로 내어 보인 것은 아닐까. 8할 쯤 읽어가면서 이 소설이 그냥 소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스친 건 매력적이지도 않고 크게 감명적인 것도 아니며 압축 파일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창녀 노에미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화가 지망생인지 사기꾼인지 창녀인지 모를 여자로서 문화촌에 피어나는 악의 요정. 자기 그림을 고가에 구매하겠다는 고객 앞에 당돌하게 어처구니없는 값으로 흥정해 바가지를 씌우지 않나, 진실로 말하건대 자기는 그림을 모르는 날라리 화가라고 정직해 보이기도하고 빼어난 미모로 이 남자 저 남자 홀리기도 하는 자유분방한 요부. 종당엔 한 젊은이를 결투로 죽게 하는 창녀. 발랄함, 신선함으로 작품을 탄력 있게 하고, 어느 남자하나 이 여자와 줄이 닿지 않는 사람 없으니 소설 구조의 중심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녀의 아버지, 엄격한 일생이 부정한 딸의 행위로 인해 한꺼번에 추락하는 순간들. 그러나 먹고 살아야 하는 노년의 비애가 한데 어우러져 비천한 프랑스인 단면을 도려내 보이기도 하는 걸 보면 글은 탄탄하고 고전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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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부분을 읽기 까지 죽을 맛이었다. 많은 고전을 접해보았지만 이책은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의 유럽 귀족계급 문화 탐방기. 흥미가 뚝 떨어지는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랑받는 고전은 결국 책을 다 읽고 난 후 느껴지는 여운으로 판단할 수 있다. 책의 50페이지를 남겨두기까지 그저 그런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발렌틴의 죽음을 겪고난 후의 스토리는 가파른 산을 넘듯, 그렇게 움직였다. 분위기가 너무 급반전, 확 바뀌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이것이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인지 아니면 쓰다가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인지 궁금하다. 내 생각엔 어쩌다가 그렇게 된 듯 하다.
어쨌든 제임스는 유럽과 미국 전체를 대표하고 아우르는 인물을 만들어 낸다. 뉴만과 벨가드 집안. 민족성이라는 것이 과연 검증될 수 있는 있는 상징성인가가 의문스럽지만 보편적인 생각이고 상식이기도하니 굳이 태클걸 진 않겠다.
도덕적이고 자유분방하고 선량한 뉴만과 단순성을 적으로 여기고 가문의 문장과도 같이 여기는 벨가드가. 제임스는 단지 유럽과 미국을 비교하고 어느나라의 문화와 민족성이 우위에 있는 지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어떤 상대적인 것 두가지가 존재할 때 그것을 비교, 대조해 서열을 메기는 것은 인간의 가장 치사한 행위이다. 또 가장 어리석은 짓이기도 하다.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일 뿐이다.
문화가 없는, 아니 단순하고 저급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도, 유고한 전통을 가졌지만 그 속은 부패한 영국도 결국은 인간 한계를 보여주는 허점이 분명히 있는 집합체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 민족 안에 있는 개인을 왜곡되게 개념화시켜서는 안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바닷가의 모래알 만큼이나 다르고 많기 때문이다.
로맨스 소설로 풀었다는 것이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좀 더 그의 책을 읽어보고 판단해야겠다. 사람이 하는 행동 중에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표츌되고, 생각지 못한 채로 분출되는 것들이 많아서 말다. (20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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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헨리 제임스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문학을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였어요. <노팅힐>이라는 영화였는데요, 거기서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동시에 좋아하는 작가로 소개되지요. 휴 그랜트와의 어떤 오해로 이별을 하게 된 줄리아 로버츠가 훗날 헨리 제임스 원작의 영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기실 그 영화가 해피 엔딩일 것이라는 복선이기도 했지만 여하튼 저는 그때, 헨리 제임스라는 이름이 왠지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땐, 제가 소설 문학 자체를 가까이 하지도 않았을 때였는데도 말이죠. 그러니 당연히 헨리 씨가 19세기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사실도 몰랐었습니다. 그냥 어쩐지 빠삐코처럼 의미와 상관없이 친근한 느낌이 들었던 이름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나서 제가 소설 문학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헨리 씨의 <나사의 회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묘한 공포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 작품을 저는 아주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그랬기 때문에 헨리 씨에 대한 호감도가 더욱 올라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의 작품을 읽게 된 것이야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은 좀 지겨웠습니다. 무엇보다 수동태 투성이의 번역 문장이 너무나 많았고 적절하지 않은 조사의 사용 등 조악한 번역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꾸미기에 치중하는 문장이다 보니 의미가 모호한 문장도 적지 않았고요, 난데없는 문장의 연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참 집중하기 힘들었던 문장들이었지요. 번역 때문에 짜증나서 돌아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세심한 재미들이나 하릴없이 이어지는 지루함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번역의 탓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한 내용입니다. 외피는 그냥 멜로 드라마로, 사업에 성공한 한 미국인 청년이 프랑스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겪게 되는 골치 아픈 이야기들이에요. 여기에 좀더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미국의 문화와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유럽의 문화가 상충하게 되는 그림이 이 작품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두 문화권의 극명한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두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볼모로 잡혔습니다. 그러나 사랑이야기가 주축은 아니에요. 그들을 둘러싼 유럽인들의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이 작품의 팔할이고요,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 인물이 미국인이다보니 아무래도 약간은 부정적인 시각이 우선입니다. 대체 얘네들은 왜 이러는 거야?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구만. 뭐 그런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이제 제가 이 작품을 읽다보니 단순히 미국과 유럽의 문화적 차이뿐만이 아니라, 19세기와 21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의 차이까지도 함께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공감대가 조금 적을 수밖에 없었죠. 백작이니 남작이니 후작이나 공작이니 뭔 작들이 그리 많은지 그들의 계급과 명예가 대체 그들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대충만 알지 상세히는 모르는 저인 바, 그러한 점에서의 심리적인 디테일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엔 다소 역부족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클래식한 분위기라는 맛에 읽어나갔던 것 같고요, 그 외에는 그다지 인상적인 부분이 없었던 소설이었습니다. 헌데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 읽기엔 조금 다른 입장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지들 얘기니까요. 우리가 우리나라 조선 시대 얘기를 읽는 것처럼 말이죠. 그럼 리뷰 끗. 안녕. 오늘부터 장마라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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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이 온통 영화로 오염(?)이 되어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그렇게 재미있게 읽었던 고전 소설들이 지금은 완전하게 몰입해서 읽어지지 않으니 말이야.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나 풍경이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장면.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대개가 그런게 많잖아.. 요즘에는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그런 장면들을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
주인공 뉴만은 미국에서 자수성가해 성공한 사업가야. 이미 30대 중반에 평생을 마음대로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재산을 모았고 이제는 삶을 좀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하여 유럽을 여행하고 있지. 그러다가 파리에서 인상적인 사람들을 몇 명 알게되는데, 그 중에는 기품있고 우아한 귀족 가문의 미망인인 싱트레 부인이 있었어. 뉴만과 싱트레 부인은 서로 호감을 가지고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 뉴만은 큰 재산을 가진 성공한 사업가에 풍채도 늠름하면서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었고. 싱트레 부인은 오랜 전통을 지녔지만 쇠락해가는 가문 출신으로 첫 남편과 사별한 상황이었으니..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싱트레 부인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생각될 것 같은데도, 오히려 싱트레 부인의 가문에서 반대하여 결혼이 무산되고...
미국인의 사고방식과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라고는 하는데. 음. 글쎄.. 어느 정도는 그런것 같아. 사고의 폭을 제한시켜서 생각한다면 분명히 뉴만이 만나는 여러 프랑스 인들은 계층이나 성격이 판이하더라도 어떤 공통점이 있었거든. 집중해서 잘 읽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감정이나 관계를 표현하는 단순하고 함축적인 표현들은 좋았어.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너무 로멘틱 풍이라고 한 사람은 무슨 소설을 읽었던 것일까.. 좀더 찾아서 읽아봐야겠어.
그리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가로가 짧고 세로로 긴 판형은 자꾸 읽어도 내겐 어색하고 불편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