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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 모두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충분히 읽지 못했고 사유하지 못한 작가들이다. 조현행의 책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질문하는 소설들'은 세 작가의 작품들에서 길어올린 질문들을 함께 나누며 생각할 수 있게 배치한 책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변신', '소송', '성(城)' 등이다. 카뮈의 작품은 '이방인', '페스트', '전락' 등이다. 쿤데라는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무의미의 축제' 등이다. 카프카는 우리가 실제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비밀, 어둠인바 거기에 진실이 거주한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처럼 벌레와 같은 존재가 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는지 묻는다. 있지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질문은 그레고르가 왜 벌레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이다. 이유라기보다 작가가 비인간적이고 소외된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그레고르를 벌레가 되게 했다고 생각한다. '소송'은 법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평범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서 체포되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이다. 카프카는 법에는 지혜가 담겨 있지만 십중팔구 그것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저자는 '소송'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난해했는지 논해보자고 말한다. 나는 그보다 왜 그의 소설은 난해한가를 알고 싶다. 나는 그의 소설의 난해함은 이해불가하고 수용할 수 없는 인생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은 작가가 건강이 나빠져 회사를 그만 두고 소설만 쓰다가 미완성으로 남긴 책이다. 친구 막스브로트에게 유고를 태워버리라 말했지만 친구는 그 부탁을 따르지 않고 출간함으로써 우리에게 명작을 선사한 셈이 되었다.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성'과 같이 거대한, 다가갈 수 없는 실체였다. 카프카가 법학과에 간 것도 아버지의 바람을 이기지 못해서였다. 그에게 글쓰기는 도피처였다. 그가 보험회사에 취직한 것도 글쓰기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성'은 성의 부름을 받고 토지측량사로 임명된 주인공 K가 마을 공동체를 움직이는 거대한 존재와 싸우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K는 성에 진입하지 못한다.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 k가 소송에 휘말려 법의 정의를 찾아 나서지만 진실을 찾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듯 '성'의 k는 성의 부름을 받고 일하러 가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성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해명을 요구하지만 명확한 이유를 전해듣지 못한다는 점에서 둘은 유사하다. 성은 높은 곳에 있거니와 중요한 사실은 그 이미지가 오랜 시간을 거쳐 전승된 무수한 말들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저자는 내가 기를 써서 도달하려고 하는 성은 오랜 시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추상적 관념이 아닌가 묻는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왜곡이나 문제는 없었는가 묻는다.(81 페이지) 저자는 k가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K의 불복종적 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84 페이지) 저자는 여러분이 만들고 싶은 성은 무엇인지 묻는다.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몇 가지가 있지만 프라이버시를 위해 침묵하겠다. 카뮈는 가난을 겪으면서 자유를 배웠다고 말했다. 카뮈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없기에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뮈에게 중요한 것은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카뮈의 중요한 개념이 부조리이다. 부조리는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사이에서 생겨난 틈에서 발생하는 불편감, 낯섦을 유발하는 것들이다. 부조리의 인간과 부조리한 인간은 다르다. 전자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세계와 불화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세계와 타협하고 화해하면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카뮈가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 부조리의 인간은 깨달은 자, 거부하는 자, 반항하는 자이다.(105 페이지) 외람(猥濫)되지만 이 부분에서 나를 떠올리게 된다. 책 읽는 나, 무언가 만들어내려고 하는 나. 그것은 기존의 통로와 다른 새 길을 만들려는 것이고 나에게서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유래한 생각을 정리해 보이려는 것이다. 카뮈는 육체가 내린 판단도 정신이 내린 판단 못지 않은 가치가 있다는 말을 했다. 부조리에 맞선 인간이 해야 할 것은 반항이다. 카뮈에 의하면 반항은 인간과 그 자신의 어둠과의 끊임없는 대면이다.(121 페이지) '이방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부드러운 무관심이란 구절이다.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카프카가 인간인 이상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카뮈는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 부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카뮈는 그 세계에 익숙해지는 삶은 노예의 삶이라 말했다.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실패할 수 밖에 없지만 싸운 그 만큼 이긴 것이다. 베케트가 말한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전락'은 카뮈의 마지막 장편이다. 이 작품은 자살하는 여자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 하는 한 변호사의 참회와 심판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쿤데라는 1968년 체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이 빌미가 되어 직장에서 쫓겨난 데 이어 시민권을 박탈당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쿤데라는 '농담'을 전체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한 소설로 읽는 것에 강력 항의한 작가이다. 소설은 다의적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작품을 하나의 눈으로 보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1945년부터 20여년간의 체코슬로바키아를 배경으로 쓴 '농담'은 한 마디로 농담하지 말라는 명령을 담은 소설이다. 1948년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혁명에 성공해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한 시기이다. 작품의 주인공 루드비크는 여자 친구에게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라는 농담조의 편지를 썼다가 대학에서 쫓겨나 탄광으로 끌려가 노역을 치르게 된다. 쿤데라는 "우리가 열망해 왔던 것, 우리가 모든 힘을 다 기울여 이루고자 했던 것, 이제 우리의 죽음까지도 바치려는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떨 것인가?" 묻는다. 이는 여러 사람들의 무수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성에 대해 물은 카프카를 연상하게 한다. '농담'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만든 신념에 매몰된 두 주인공(루드비크, 야로슬라프)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쿤데라는 인간은 자신의 개념 자체를 잃어버릴 것이고 파악도 이해도 불가능한 인간의 역사는 의미를 상실한 도식적 기호 몇 개로 축소될 것이라 말했다. 저자는 '농담'을 농담 한 마디 했다가 인생이 고약하게 꼬인 남자의 이야기라 말하며 농담이나 유머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나눠 보자고 말한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생각난다고 말하고 싶다. 쿤데라는 영원회귀 사상을 가장 무거운 짐이라 표현한 니체를 염두에 두고 그렇다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취하는 중용이고 균형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여주인공 테레자는 사랑 없는 섹스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엄마로부터 낙태해줄 의사를 찾지 못해 나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으로 항상 책을 끼고 다니며 읽는다. 그녀는 책을 읽으며 자신이 도달하려는 세계를 그린다. "책은 그녀에게 19세기 멋쟁이들이 들고 다녔던 우아한 지팡이와도 같았다. 책을 통해 그녀는 남과 자기를 구분지었다." 후에 그녀는 영혼이 없는 육체적 관계라는 가벼움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빨래를 하면서도 욕조 곁에 책을 두었던 테레자에게 책은 어떤 의미였을까 묻는다. 저자는 쿤데라가 인생의 무의미를 인정하자고, 그리고 소소하게 보이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한다고 말한다. 이는 부조리하기에 의미를 찾아내자고 한 카뮈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쿤데라가 전생에 걸쳐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묻는다. 그것은 사소하기에, 의미를 찾을 수 없기에 그럴 것이다. 의미 있고 가치 있고 대단한 것들은 우리가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나고 가치 있다. 생이 허망하고 덧없음을 알기에 쿤데라는 아니 모두는 그 작고 하찮은 시뮬라크르 같은 진실을 긍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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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우리 속 동물들은 그곳의 삶이 자신들의 진정한 삶이라고 믿고 있을까? 어항 속 물고기들은 그곳의 삶이 진리와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전에 내(우리)가 만든 진실이라는 거짓 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내 삶의 진실이 무엇일지 궁금해졌고, 답을 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공포감마저 느껴졌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다시 한 번 짧게나마 만날 수 있게 해주었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가 처음 읽으며 더디게 느꼈던 내 감정과 생각들을 깊이 있게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 알베르 까뮈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으면서 과거 내가 읽었던 내가 존재했던 시간과 장소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고, 그때 내가 가졌던 감정과 생각들을 다시 접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책에는 둘 외에도 밀란 쿤레라 작가도 만날 수 있다. 만약 이 작가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강추하고 싶은 심정이다. 앞서 언급한 나의 질문들은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작가들이 철저히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내용들이 단순하지 않고,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질문과 해석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은 고전소설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매력이다. 고전소설들은 내용이 단순하지 않아 좋다. 나를 단순히 유희의 목적으로 책을 읽도록 하지 않고, 보다 나은 나 자신을 탐구해내도록 읽은 내내 내 안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주요 작가들의 대표 소설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로 하여금 생각해보도록 한다. 소설에 앞서 작가들의 성장배경이나 인생 스토리를 먼저 들려주어 그 작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프란츠카프카의 경우, 내가 좋아하는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껏 알지 못했던 것이 나로서도 놀라웠다. 그리고 비로서야 「변신」이야기 속 아버지 존재를 왜 그렇게 묘사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소설의 주요내용이 군데군데 등장하면서 그에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대한 저자 자신의 해석도 함께 덧붙이고 있다. 마지막에는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종합해 정리해주고 있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그 생각을 이야기 나누고픈 충동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누군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만든 틀(제도, 법, 예절 등)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 이것이 진리인지 진실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무조건 순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속에서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만든다. 잘못된 틀을 깨고, 진정한 진리를 찾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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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한 독서는 독서가 아니었다는 반성을 하게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나서 든 생각이었다. 해마다 "00도서관 추천도서"가 발표되고, "00대학 선정 신입생 필독서"의 목록이 인터넷을 떠돈다. 나도 이 목록들을 참조해서 책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 그 책들의 대부분은 고전으로 채워져있다. 고전의 중요성은 늘상 강조되지만, 하루에도 수십권 쏟아지는 신간에 고전읽기는 늘상 뒤로 미루어진다. 어쩌다 "고전"이라 분류되는 책을 읽은 다음에는 늘상 찜찜함이 남았다. 이 책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내가 과연 그 의미들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온 것이었다. 아마 나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따라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한다. 경제, 경영서나 철학서들이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개념이나 의미, 저자의 주장을 드러내는 데 반해 특히 소설의 경우는 굉장히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주인공의 캐릭터나 줄거리 등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이 내재되다 보니 줄거리와 대화를 중심으로 책을 읽는 나의 경우에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뭔가 묵직함이 느껴지기는 하나, 그 묵직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읽기는 한 것인지 행간을 읽거나 이면을 파악하는데는 약한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었으되, 읽은 것이 아닌듯한 그럼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그런 나의 찜찜함을 제대로 풀어준 것이 이 책이었다. 이 책은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라는 걸출한 작가 3인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먼저 카프카의 <변신>, <소송>, <성>을 다루고 있고, 이어서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전락>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밀란 쿤데라의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무의미의 축제>를 다루고 있다. 이 각 작품이 전 내용이 실리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는 개괄적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작품을 게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삶과 사고를 소개하고, 각 작품에서의 내재된 의미들에 대해 설명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 작품의 마지막에 "깊이 읽기 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3인의 작가는 내가 꽤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이고, 좋아하는 작가에 속해서 이 책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작품들을 다 읽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이 책들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저 글자를 "판독"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과거 <변신>을 읽었을때, 주인공이 벌레가 되어 버린 이야기를 읽으면서 '뭐지 이건?' 하면서 독특함을 느꼈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는지, 이 연애 이야기가 왜 그리 뛰어난 작품으로 칭송받는걸까 의문을 가졌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 이야기들이 줄거리가 아닌 그 내재된 의미들을 알게 되고, 그 심호한 깊이에 경악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읽은 거란 말인가? 나는 제대로 읽지도 못한 상태로 이 작가들을 좋아한다 생각했던 것인가? 그동안의 독서편력들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 독서가 아닌 글자판독을 했다는 반성이 따라왔다. 어떻게 생각하면 중고등 학교때 국어나 문학시간처럼, 작품을 이리저리 분석하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교육을 받았음에도 행간을 읽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교과서와 참고서에서 알려주는 것을 단순히 받아들였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을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읽기는 하였으되, 중고등학교때와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의 이해가 아닌, 저자의 이해에 휘둘릴 우려도 있다. 그렇기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독서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단, 이 책을 읽어보기 전에 이 책에 언급된 작품을 먼저 읽고, 그리고 나서 이 책의 "깊이 읽기 위한 질문"만을 보고 스스로 생각을 해보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다. 작품을 읽고 먼저 스스로 생각을 해보고, 그리고 나서 이 책을 읽어 나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가 이 책을 통해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에서 간과한 것은 없는지를 비교해보는 것이 스스로 작품을 보는 능력을 키우는 유용한 방법일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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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질문하는 소설들 참으로 즐거운 책 읽기를 선사하는 책이다. 일명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솔직히 읽어도 읽어도 해석이 쉽지 않기에 그 흥미가 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몇 권의 책을 친절히 풀어 헤쳐 놓은 책이 좋다. 하지만 좋아함에도 이러한 책은 내가 안 찾아서인지 나의 눈에는 잘 띄지 않더라~! 운 좋게 만난 이 책은 무더운 여름날의 폭염 속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었다. 동화책을 시작으로 책을 참 좋아했었다. 읽는 재미는 늘 나의 취미가 되어 일상에 이르렀다. 책이 주는 감동과 위안은 늘 나와 함께 하는 친구 같았고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었다. 시간 투자에 비해 책을 통해 얻는 것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이는 늘 반복되는 일상이 우선시 되어 책 속 문구를 생각해 볼 겨를이 부족해서이고 나의 노력과 바람이 부족해서이리라. 제일 큰 문제는 해석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좋은 문장임에는 틀림이 없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도 어느 정도 느껴지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수준이 나온다. 수준 높이기! 이 책은 낮은 수준의 나를 한층 높이 올려주었다. 카프카, 카뮈, 쿤데라....... 익히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작품들은 나에겐 난해하게 다가왔다. 평소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기록하며 틈틈이 구입한다. 카프카의 '변신',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등을 샀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그 언젠가 '변신'을 읽은 적이 있었던 듯하다. 카뮈의 페스트와 시지프스 신화는 분명 읽었긴 하다. 근데 기억에 남는 건 없다. 이것은-? 이 책의 제목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질문하는 소설들]이다. 소설은 작가의 정신세계를 표방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각각의 작가의 삶과 문학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좀 더 깊숙이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특히나 저자가 들려주는 작품 해설을 통해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던 부분들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작품을 통해 어쩜그리도 휼륭하게 다루었는지 감탄이 흘러나왔다. 해석 또한 너무나 좋았다. ■인간은 묻기 위해 책을 읽는다 - 프란츠 카프카 ■남김없이 태워버려라 - 알베르 카뮈 ■커튼을 찢고 그 안을 보라 - 밀란 쿤데라 - 소설에 숨어 있는 질문들을 찾아내는 여정에 동참하는 것은 사유의 과정에 첫 발을 내딛는 일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을 통해 인간이라는 본질과 인간의 삶에 대해 가만히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들이 내게 너무나 뜻깊었다. 이 책을 계기로 읽으려고 사두었지만 읽지 않았던 책들과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어 다시금 읽어보고자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한 기술,
바로 '생각하는 기술'이라는 저자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참 재미있는 책인데 뭔가 생각거리를 너무나 많이 안겨주는 도서이기도 하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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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현행은 프롤로그에서 인문학(liberal arts)을 ‘자유롭기 위한 기술’이며, 인간이 자유로우려면 ‘생각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는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좋은 질문이다. 문제적 작가들인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통해 질문하는 일을 확장시켜간다는 것,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나는 프란츠 카프카하면 <변신>이 떠오른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 이야기가 기이하게만 여겨졌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그레고르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 가족들에게 구박받고 결국 죽는, 그리고 그가 죽자 가족들이 여행을 떠나는 마지막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조현행은 인간을 벌레로 설정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아상실, 완전히 소외된 존재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일까? ‘깊이 읽기 위한 질문’은 소설을 다시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그레고리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심한 부상을 당해 결국 죽게 되는데, 그레고르가 죽음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는다. 주인공의 벌레 변신으로 상징되는 자아 상실, 이것은 이미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그 벌레’가 죽었을 때 가족들은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 <전락> 이 세 작품 모두 읽어보았지만, 그 중 <이방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었다고 주장하는 주인공 뫼르소, 그는 ‘부조리의 인간’이다. 조현행은 카뮈에게 있어서 ‘부조리한 인간’과 ‘부조리의 인간’은 다르다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부조리의 인간’은 반항하는 인간, 스스로 이방인임을 느끼며 세계와 불화하는 존재다. 반면, ‘부조리한 인간’은 ‘부조리의 인간’ 반대편에서 ‘부조리의 인간‘에게 죄를 묻는 존재다. 카뮈는 ’부조리의 인간‘에게서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부조리의 인간’은 고뇌하는 시시포스처럼 포기하지 않는 인간으로 깨달은 자이며 자각한 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이다. 세 작가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그의 책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무의미의 축제>, 그리고 <커튼>을 읽었다. 그는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 가볍거나 무겁다. 그들의 인생에 우연이 끼어들고 충동이 끼어든다. 삶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쿤데라에 따르면 그 무의미한 인생 속에서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때 인생이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발견하는 눈을 가질 때 자신의 삶을 빛낼 수 있다.
이 책에게 계속 던지는 각 작품과 관련된 질문들은 문제적 작가들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유명한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내게 만드는 너무 멋진 참고서다. “책이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라는 카프카의 문장을 제대로 경험한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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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마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무더운 한여름 밤을 보내기 위해서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소설을 읽고, 누군가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오늘을 알기 위해 역사소설을 읽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소설을 읽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소설을 읽는 기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소설 속에 우리의 삶이, 인간의 본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 조현행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질문하는 소설들>은 소설을 읽는 이유가 바로 생각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이고, 생각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질문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소설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읽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소설에 담긴 좋은 질문들을 독자 스스로 찾아내고,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고, 실천한 사유의 여정을 담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3명의 작가들을 선택했는데, 그가 선택한 작가들은 바로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였다.
세 명의 작가를 모두 좋아하는 입장에서 저자가 어떻게 그들의 작품에서 좋은 질문들을 도출해내는지 무척 궁금했다. 물론 나도 책을 읽으면서 여러 질문들을 찾아내서 책 여기저기에 적어놓고 대답을 찾아보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지만 나와는 다른 독자 혹은 저자들은 어떻게 소설을 읽고 무엇을 깨닫는지 늘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각 작가들의 삶과 사상 등을 먼저 소개한 후 그들의 대표작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카프카의 작품으로는 <변신>, <소송>, <성>을, 카뮈의 작품으로는 <이방인>, <페스트>, <전락>을, 쿤데라의 작품으로는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무의미의 축제>을 선택해 각 작품을 어떻게 읽고 그 속에서 어떤 질문을 찾아내야 하는지를 설명한 후 ‘깊이 읽기 위한 질문들’을 수록해 독자를 더 깊은 사유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 책은 각각의 독자가 개인적으로 읽고 스스로 깊은 사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독서 모임이나 학교 수업 중에 활용한다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세상과 인간의 본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어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적극 활용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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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소설을 읽을까? 나는 왜 소설을 읽는가? 거의 잊어가던 이런 케케묵은 질문을 다시 떠오르게 한 책 <생각의 근욱을 키우는 질문하는 소설들>. 실재로 존재하지 않지만, 충분히 존재할수 있을 법한 인물들의 삶을 나는 왜 그리도 집요하게 쫓아다니는걸까. 이 책은 '소설'은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리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던 세 명의 소설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분석)하고 있다. 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살만한 가치를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여기서 삶은 그 자체로서 중요해집니다. 그러기에 카뮈는 '나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떠한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답을 구해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102쪽) 그의 이러한 생각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소설이 <페스트>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투쟁'을 카뮈 작품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라고 말하며, 부조리한 상황을 자각하지 못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대한 폭력으로 바뀌어 인간을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다. <페스트>에서 카뮈는 재앙 앞에서 '투쟁'하는 평범한 인간의 여러 모습을 통해 어떻게 부조리한 세계를 극복해 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정신은 복잡함의 정신이다. 모든 소설은 독자들에게 "사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라고 말한다. 소설의 영원한 진실은 이것이지만, 묻기도 전에 존재하면서 물음 자체를 없애 버리는 단순하고 성급한 대답들의 시끄러움 때문에 점점 들리지 않는다. (170쪽) 이 책에서 소개하는 소설은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그리고 <무의미의 축제> 이렇게 네 권이다. 이 중 아직 읽지 않는 <정체성>이 나를 가장 사로잡았다. 제목이 너무 본질적이어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쿤데라는 타인에게 주목받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이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진실을 여주인공 샹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왜? 그것은 인간은 결국 누구에게나 타인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인간이 타인에게 지니는 '그 의미 없음'에 대해 쓰고 있다고 한다. 쿤데라는 "당신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라고 냉담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의 정체성이 존재할 자리가 과연 있을까? 참혹한 현실, 인생의 무의미함을 우리의 눈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미는 것이 바로 쿤데라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가운데서 그가 말하는 희망은 있다.
어떤 질문이 우리 삶의 핵심을 관통한다면, 혹은 외면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묻는다면 당연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에 답을 찾아보고, 새로운 나만의 질문을 만들어 보는 과정이 바로 소설읽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을 읽는 일은 현실이 아닌 곳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보다 생생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현실 이면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걸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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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행 저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질문하는 소설들』 을 읽고 개인적으로 책을 참으로 좋아한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아버님이 수산업을 친구 분하고 하면서부터 점차적으로 가세가 기울면서부터 중학교 들어가서부터는 수업료를 내지 못할 정도까지가 됐고, 결국은 시골에서 집까지 내주고 남의 셋방에서 거주할 정도가 되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공부하는데 공납금을 납기 내 내지 못하면 집으로 돌려보내질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운 좋게 서울로 국비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행운이 따르면서 처음으로 청계천의 헌책방을 알게 되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용돈이 생기면 헌책을 구입하면서 읽기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 이후 졸업과 동시 바로 취업을 하였고, 군대복무와 이후 복직을 하고 나서 늦은 나이에 야간대학을 갔고, 천운으로 교직과정을 이수하여 졸업과 동시에 중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좋은 위치를 갖고서 퇴직할 때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퇴직 이후에도 습관적으로 항시 책을 매일 대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역시 앞서 간 훌륭한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희열을 느끼는 시간은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시간임을 매번 느끼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는 지금의 시간에도 도서관에 나가면 시원한 열람실에서 좋은 책들과 함께 하는 최고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최고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 기쁜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책은 수많은 종류들이 있다.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읽겠지만 공통적으로 많이 대하는 분야가 소설과 시 등의 문학작품이다. 특히 소설은 작가들이 온갖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작품들이기에 그 작품 안에는 진정으로 아주 의미심장한 질문들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의미심장한 질문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대답할 수 있다면 소설을 아주 잘 읽는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런 좋은 소설을 읽는 방법대로 확실하게 읽을 수 있다면 나름대로 정확한 공부방법이 될 텐 데, 솔직히 시간 없이 급하게 읽게 되면 그냥 대강 읽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내 경우도 이런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의 경우는 너무나 특별하면서도 소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짚어가면서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서 너무나 좋은 시간이 되었다. 왜냐하면 "소설을 읽고 질문을 찾아내며 그에 답하는 사유의 여정이 담긴 책!"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중에서도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 3명 소설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인간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던진다. <변신> <소송> <성>의 카프카의 작품, <이방인> <페스트> <전략>의 카뮈의 작품,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무의미의 축제>의 쿤데라의 작품 안내와 함께 소설이 던진 질문에 따른 대답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해도 좋다는 것이다. 우리 독자들도 얼마든지 질문도 찾아내어 만들고 그에 따른 답을 해보는 것, 소설가가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 자신의 사유를 가다듬고 진전시키는 일 모두가 생각의 근육을 신장시키는 일인 것이다. 세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좋은 질문'을 발견하고 만들어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부쩍 키우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꼭 필요한 정신의 연장을 확장시키고, 진정한 자유는 생각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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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소설들 책은 카프카 카뮈 쿤데라를 통해 질문을 통한 사유의 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귀한 책이다. 우리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의 세계에서 나오는 소설들과 질문들이 생겨 사유로 이어지게 하는 힘이 있기에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읽기와 질문들로 채워져 있다. 1장 프란츠 카프카 2장 알베르 카뮈 3장 밀란 쿤데라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3인을 등장시켜 질문하는 독서를 통해 사고력을 키우는 일석 삼조의 읽기가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성인들 뿐 아니하 청소년들에게도 깊은 독서의 세계로 나아가게 해주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유대인의 헤브루타는 그래서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는 증거다.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이 익숙한 유대인 학생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배출한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책을 읽으며 질문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을 길르는 것과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나는 마음의 진심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인간이 인간되게 하는 좋은 책은 소설과 종교와 인문철학이다. 모든 것을 경험할수록 사고의 틀은 넓어지는 것이 우리 뇌의 진화적인 적응역이기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아주고 균형잡힌 감각을 심어준다. 이 세상이 인간의 말초신경만 자극하고 우울함에 빠지게 만들며 쇼핑중독에 처하게 만들어 허무함속에서 세월을 흘러보내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생각해야 한다. 책은 세 명의 작가의 문학과 삶을 조명하며 그들의 책을 읽으며 질문하고 사고하는 이야기들을 연결해준다. 우리는 소설속에서 위로를 받고, 분노하며, 세상을 잠시 먼 발치에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나 자신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지 않아도 내 기억들과 어느정도 일치하는 순간이 오면 맞춤형 장치처럼 자동으로 나를 불러내어 추악함과 그리움, 그리고 누군가를 마주하게 만든다. 질문을 하지만 우리에게 적용을 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이 책은 문학과 작가를 통한 숨어있던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힘을 준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독서가 되었음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