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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영역에 관한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은 일단 부담스러워하는 편입니다. 이유는 종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적 논리를 섣불리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수과학과는 거리가 있는 의학을 전공하고 있고, 의학의 한계를 느낄 때는 종교에 기대야 하나 싶을 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과학적 방법론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과학이 밝혀낸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의 뇌>는 ‘신은 뇌의 창조물. 뇌과학이 밝혀내는 ’믿는 뇌‘의 메커니즘’이라는 부제에 끌려 읽기로 하였습니다.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생물 종들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신을 믿고, 신을 모시는 의례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구에 생물이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많은 책들을 읽어왔기 때문에 신이 세상을 만들고 만물을 창조했다는 천지창조나 지적설계론에 공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김상우님은 ‘신은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내놓고 있습니다. ‘존재의 이유’라는 옛날 노래도 있습니다만, 누구나 존재하게 된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종교에서는 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류학을 전공한 라이오넬 타이거교수와 정신의학 및 생물행태학을 전공한 마이클 맥과이어교수는 ‘신은 뇌의 산물’이라는 전제를 내리고 설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모든 종교는 사로 다르지만 두 가지 운명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모든 종교는 인간 뇌의 산물이며 둘째, 그렇게 만들어진 종교가 다시 뇌기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지상의 모든 종교가 존속하고 있다는 것이다.(22쪽)” 앞서 말씀드린대로 신의 존재는 의문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인데, “(종교가 흔히 제시하는) 낙원에 대한 믿음은 경험과 인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순수한 믿음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권위다.(41쪽)”라는 것이 저자들이 종교와 신에 대한 설명의 요지입니다.
암각화나 신에 대한 감사 및 경외를 드러낸 많은 돌조각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인류 사이에 종교가 등장한 것은 7만년 정도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두개골은 16만년 전의 것이므로, 기록이 남기 전에 종교가 등장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첫째, 지난 14만년에서 7만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진화론적 사건과 환경이 결합해 종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 기간 동안 침팬지가 인간보다 덜 진화하고 변화했다면,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뺀 나머지에서 이 둘이 공유한 비계의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잇다는 것이다.(147쪽)”
인간과 침팬지는 다양한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종교와 관련된 것으로는 위계구조의 유사성을 꼽습니다. 그 가운데는 중요한 점은 믿음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종교가 인간에 주는 가장 큰 힘은 삶의 스트레스를 달래주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답을 준다는 점일 것입니다. “종교적 경험과 행동은 많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그리고 신도와 종교 당국 간의 우호적 분위기는 뇌를 편안하게 해준다.(197쪽)”고 설명하는 저자들은 이런 현상을 최근에 개발된 뇌기능검사장비들을 통하여 확인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통한 교류, 의식 그리고 믿음은 종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이 세 가지 요소는 신앙인들의 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에는 감정, 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과 사고, 연상, 인식기능을 하는 하두정엽이 활성화되는데, 기도는 신을 만나는 행위이기 이전에 자신의 뇌와 마음을 달래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저자들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다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종교적 주장의 핵심에 있는 신비로운 힘과 경험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적 주장이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292쪽)” 종교가 주장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종교를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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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종교... 정말 뗄수 없이 지속되어온 관계이다. 종교와 인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왜 인간은 종교를 만들었는지.. 왜 종교를 믿는지를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가감없이 돌아다 보게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행복해 지려고 하는지 삶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인정하고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종교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에 대해 한국 사회도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해 볼 때가 온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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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교한 인간의 뇌의 발명품이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즉 신의 뇌는 인간의 뇌인 것이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이 쓰는 책처럼 무조건 종교의 위선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뇌과학적으로 종교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서술하고 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어떤 이익이 있기에 종교를 믿을까? 물론 태어날 때부터 강요된 종교를 믿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종교 생활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뇌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즉 종교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고 세로토닌의 수치를 높여 행복감을 준다. 종교 활동에서 얻어지는 인간관계는 일시적으로 평등감을 느끼게 세속적 삶(회사)에서 느끼는 위계질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소 시키다. 또 삶의 불확실성(죽음, 앞날에 대한 불안, 사후세계)에 대한 답을 제공하므로서 스트레스를 낮추어 준다. 기도, 암송, 종교를 반복적으로 하므로써 개인적 해석의 오류를 줄여준다. 또 일반적인 도덕적 규율을 유지하므로서 사회 안정에 기여한다. 등등
지구 상에는 많은 수가 종교가 있지만 각 종교가 행하는 종교의식이나 경전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결국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을 위안하는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 방식은 종교의식, 건축, 그림, 음악등 다양하다. 반복적인 종교의식은 뇌의 생화학적 체계를 바꾼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종교의 순기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극단적인 종교인들에 대한 폭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체로 좋은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된 종교가 지금까지 번성한다는 것은 그만큼 잇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비록 비판적인 불자이지만 불교의식이나 종교 공동체 활동이 안정감을 준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불교에서도 기도를 하는데 불교에서의 기도는 기독교와 달리 극한 체험이다. 108배는 기본이고 보통 300배 정도 절하면서 만트라는 읊으는데 보통 체력으로는 힘들다. 심지어 밤새도록 삼천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하고 나면 기도가 이루어졌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기분은 좋아진다. 또 절에서 하는 봉사활동도 심리적 만족감을 준다.
종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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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뇌의 창조물이며, 그렇게 창조된 신은 뇌를 만족시킨다"라는 주장이 <신의 뇌>의 가장 주된 주장이다. 책 소개에서는 이런 주장이 창조적인 주장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렇게 창조적인 주장은 아니라 본다.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 외에 종교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을 때 그 밖에 어떤 이론이 가능할지 생각해본다면 선택지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리고 여러 변이를 가진 주장들을 모아서 그 공통분모를 찾아보면 이런 생각, 즉 "인간의 뇌가 스스로를 위해서 신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종교에 대해서 진화론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흐름('종교의 진화심리학') 중에는 세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종교가 인간 마음의 적응이라는 하는 적응주의이고, 그 다음은 종교가 다른 인지 적응들의 부산물이라는 견해이다. 그리고 종교가 밈(meme)에 의해서 생긴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세 가지 중 <신의 뇌>는 맨 첫번째의 적응주의(adaptationism)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뇌'에 집중을 한 것 뿐이다. 에드워드 윌슨이 현대적인 의미에서 이런 적응주의를 처음 제기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인간의 마음(혹은 뇌)가 신과 같은 초월자를 믿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즉, 종교적 행위들은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기 위해 생겨났을 것이고, 따라서 종교 자체가 하나의 진화적 적응이라는 것이다. 그런 번식 성공도를 좀더 넓게 보면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해 두려움도 덜어주면 (<신의 뇌>에서는 종교의 가장 큰 발명품으로 '내세'를 들고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도 도와준다는 것을 포함한다. 이쯤 되면 <신의 뇌>에서 얘기하는 것들을 대부부 포괄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신이라는 것을 개인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만들어냈고, 발달시켜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집단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들은 종교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을 객관적 존재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뇌'의 필요에 의해서 창조해낸 것이 신이고, 그 신은 다시 인간, 그리고 인간의 뇌를 만족시키기 때문에 지금까지 번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은 말로 반복하고 있다. 즉, 종교는 생물학적인 것이며 진화적인 것이다. 이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믿음이 깊은 이들은 어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아시아에서 필리핀 다음의 기독교 국가인 한국에서는 더욱 궁금하다. 만약에 진화라는 과학적 사실마저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턱도 없는 얘기일 것이 분명하고, 진화라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어떨까? 그게 정말 궁금하다. (2012.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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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책을 살떈 종교와 뇌의 상관관계에 대해 매우 전문적인 이야기를 냉철하게 말하는 그런 책일거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과학적 접근으로 종교를 말하는 책들중 가장 종교에 대해 중립적이고 친절히 대한 책이라 느꼈다.
두 저자는 종교에 대해 부정하고 비난하지 않는다.오히려 종교의 순기능에 대해
매우 큰 호감을 가진듯 보인다. 책의 마지막에도 분명히 종교인들과의 논쟁을 원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보다 높은 권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어느 특정 종교가 우월하다 말하지 않으며
종교를 믿는 행위가 잘목되었다 말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우유부단해 보일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이 책은 종교와 인간과 사회메커니즘을 정말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 책인듯 하다.
두 저자는 비난도 공격도 하지 않고 뇌가 어떻게 신의 존재를 만들고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우리 삶에 얼만큼 큰 영향을 미칠수 있는지등을
정말 편하게 애기해준다. 요즘의 혼란한 사회에 수많음 잘못된 믿음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심지어 그때문에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는걸 보게 된다.
만약 그들이 이 책을 보고 그들의 믿음이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미리 알고 이해했다면
그런 잘못들을 막을수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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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종교는 '믿음'과 '위계질서'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신학자와 신경과학자는 믿음에 주목하고, 사회학자들은 위계질서, 즉 종교가 가진 매우 위계적인 성향에 주목한다. 가령 종교의 기능을 불평등한 현실과 대면하는 것(에밀 뒤르켐) 또는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카를 마르크스)으로 해석한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지닌 상부구조적 문화 특성에 주목한다. 여기서 종교의식은 사회조직 내에서 복종과 지배관계를 구축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간주된다.
"종교는 영감, 경외, 공포, 신비의 근원이다. 종교는 헌신, 연민, 희생, 복종, 자원, 시간, 노동을 요구한다. 종교만큼 인류의 모든 예술을 자극하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던 것도 없다. 종교는 중세의 가톨릭 교리에 반기를 든 학문과 예술마저도 자극했다. 종교는 위안을 주는 영원한 내세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하면서, 동시에 그 열정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지옥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또한 종교는 비신앙인들을 불안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임종 시에 종교에 귀의하도록 만들기도 한다."(40쪽)
진화론의 눈으로 종교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다음 세 가지 입장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에드워드 윌슨처럼 종교가 인간 집단이나 개인의 생존에 순기능을 한 결과 선택되어 진화했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처럼 종교가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발전시킨 인지 능력의 부산물이라는 입장이다. 셋째는 리처드 도킨스나 대니얼 데닛처럼 종교를 언어나 반복된 행동에 의해 하나의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 전달되는 밈(meme)으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인류학자 라이오넬 타이거와 신경과학자 마이클 맥과이어는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종교에 접근한다. 이들은 모든 종교는 인간 뇌의 산물이며, 이런 종교가 다시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종교가 존속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종교, 무신론과 유신론, 자연주의와 신앙주의의 충돌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종교적 믿음을 그저 망상으로만 간주할 수 없는 이유는 믿음과 상상력이 우리에게 미치는 실질적인 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뇌는 상상하고 믿고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기본적으로 뇌는 의심하는 것보다 믿는 데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일단 뇌가 뭔가를 상상하면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을 현실로 취급해야 쉽게 행동으로 옮겨진다. 상상은 선택하게 하고 이런 행동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인생은 혼란과 동요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혼란과 동요는 뇌에 스트레스를 준다. 뇌는 믿음을 분비하여 고통을 없애고 편함을 추구하게 된다. 종교는 바로 그런 위안의 역할을 한다. 모든 종교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스토리가 뇌를 즐겁게 한다. 종교적 스토리는 경전, 신, 교리, 행동규범들로 구성된다.
"종교적 믿음은 자부심과 사회적 효능감을 높여주며, 관계를 촉진하고, 한 집단 내에서 신뢰를 제고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이 특별한 뭔가는 마치 넓은 공간을 특별한 냄새나 향, 분위기로 가득 채우는 마법의 에어로졸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의 이 특별한 뭔가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기처럼 대단히 포괄적이고 비구체적이지만 아주 쉽게 느낄 수 있고 영향력까지 있기 때문에 거의 영적이다."(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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