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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의 삶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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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변방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 지방에서 태어난 시골소년 무하(1860-1939)가 벨에포크 시대 파리에서 아르누보 예술의 총아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 이야기와 상징과 비의가 가득한 그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너무나 예쁜 책입니다. 스메타나, 야나체크 등의 음악가를 배출한 민족답게 무하도 어린시절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변성기가 되기 전까지 소년 합창단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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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변방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 지방에서 태어난 시골소년 무하(1860-1939)가 벨에포크 시대 파리에서 아르누보 예술의 총아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 이야기와 상징과 비의가 가득한 그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너무나 예쁜 책입니다. 스메타나, 야나체크 등의 음악가를 배출한 민족답게 무하도 어린시절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변성기가 되기 전까지 소년 합창단의 일원으로 음악 훈련을 받았고, 연극무대 장식이 미술가로서 처음 시작한 일이었던 만큼 음악, 연극, 미술, 문학 모두를 아우르는 종합 예술가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무하가 파리에서 처음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를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포스터는 까다로운 사라 베르나르를 만족시켰을 뿐 아니라 파리시민들에게 너무나 인기가 있어서 오천장이나 추가제작하여 유료판매했다고 하니 무하는 파리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셈입니다.

 

 

 

104-105쪽

 

 

 

   당시 파리는 산업발전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며 부르주아 시민의 부가 축적되어 퇴폐적이면서도 호사스러운 일상을 누리던 그야말로 댄디한  벨에포크 시기였습니다. 작년에 개봉했던 우디 알렌의 <미드나잇 인 파리 >http://blog.yes24.com/document/6612869 에서 당시의 아름다운 파리가 멋지게 그려졌었지요. 로트렉이 물랑 루즈의 무희들을 위한 포스터를 남기고, 영국에서 윌리엄 모리스 등이 예술 공예 운동을 벌였던 것과 거의 동시대의 일입니다.  전 세계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전무후무한 여배우인 사라 베르나르와의 작업은 포스터 제작을 넘어 무대장식, 무대의상, 장신구의 디자인까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 미국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고향 체코에 대한 향수를 떨칠 수 없었던 그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담아 <슬라브 서사시>라는 대작을 완성해서 장식미술가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체코의 독립과 함께 그는 체코의 화폐, 공무원들의 제복 디자인에서 시청사의 벽화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헌신한 애국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체코 프라하에 남아있는 무하의 작품들은 조국과 슬라브 민족에 대한 그의 뜨거운 사랑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최근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를 읽은 분이라면 프리메이슨 최고위원 중 하나였으며 반유대주의에 반대하여 드레퓌스편에 섰던 지식인으로서의 무하의 인생도 새롭게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덕수궁 미술관에서는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이라는 제목으로 체코 프라하 국립 미술관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무하의 작품은 전시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무하의 딸은 아버지의 소원대로 화가가 되었고 아들은 작가가 되어 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하는 무하박물관을 건립했다고 하니 이제 프라하에 가게 된다면 카프카나 스메타나외에도 무하의 발자취를 찾는 여행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장식미술가로서 과소평가되는 무하의 삶과 예술을 훌륭한 도판과 함께 소개해준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www.praha2013.co.kr/

 

 




y***d 2013.03.1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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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했던 보헤미안 -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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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했던 보헤미안 - 무하 어디선가 본 듯한데 어떤 사람의 작품인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다. 그림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기에 알 수 있는 화가가 그리 많지 않지만 친숙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대할 때면 마치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곤 한다. 어디선가 본 그림이고 그때의 느낌이 아직 남아 있어 그러한 착각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서양미술의 경우 기억하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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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했던 보헤미안 - 무하

어디선가 본 듯한데 어떤 사람의 작품인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다. 그림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기에 알 수 있는 화가가 그리 많지 않지만 친숙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대할 때면 마치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곤 한다. 어디선가 본 그림이고 그때의 느낌이 아직 남아 있어 그러한 착각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서양미술의 경우 기억하기 힘든 화가들의 이름이라 더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은 서양화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면서 우리 그림보다 서양화에서 더 친근함을 느낀다면 어딘가 모르게 어긋난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서양화 중심의 학교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특수성이라고 보면 대개는 맞는 말일 것이다.

 

화가로써 성공하여 자신이 살던 시대에 부와 명예를 누린 화가들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화가들이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말았다. 부와 명예를 얻은 화가나 가난에 찌들어 겨우 겨우 작품 활동을 이어갔던 화가나 그들에 대한 평가는 화가가 죽은 후에 보다 냉정하게 이뤄진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주목받고 있는 화가들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그들이 남긴 작품이 변한 시대 상황에 의해 재조명 되거나 작가가 미술사에 미친 영향으로 이후까지 살아남는 경우가 그것이다. 또한 당대에 누구보다 빛난 활동을 펼쳤지만 시대가 변하며 사라졌다가 현대에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는 화가도 있다.

 

세기말의 보헤미안이라 칭하는 ‘알폰스 마리아 무하’(1860 - 1939)가 그런류의 화가 중 한사람이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많은 화가들 중에서 무하는 이름만으로는 참으로 낯선 화가다. 미술문화에서 발행한 이 책 ‘무하’는 그런 ‘무하’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 예술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체코가 고향이지만 주유한 활동 무대는 프랑스 파리였고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다 고국으로 돌아갔다.

 

‘무하’의 주요한 작품 범위는 책의 삽화, 잡지 표지, 우편엽서, 달력, 포스터, 광고 등을 넘어 장식패널, 극장의 무대와 의상, 일러스트, 벽화,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보석디자인, 조각, 초상화 등 실로 다양한 범위에 걸쳐있다. 이는 전통적인 화가의 작품에서 일정정도 벗어난 장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무하’가 활동하던 당대에 화가라는 이름보다 ‘장식미술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무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이미지는 ‘매혹적인 여인과 화려한 장식의 상징성’이 아닌가 한다. 당시 일반적인 흐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미술 분야의 개척자로 변화하는 시대를 적극적으로 살아간 활동으로 주목받았던 것이다. 현대에 들어 ‘무하’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광고를 비롯한 상업미술의 획기적인 변화에 기인한 바도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이 책은 그러한 ‘무하’를 이해하기 위해 19세기 유럽의 상황을 자세하게 살피고 있다. 특히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는 등 산업사회의 발달에 이은 화려가게 꽃을 피운 도시문명에 의해 형성된 분위기를 살필 수 있다. 이는 당시 미술활동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면 그 한가운데 ‘무하’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시대적 상황을 살피면서 무하의 일생을 따라가는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 ‘무하’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또한 ‘무하’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으며 그 작품에 대한 해설이 있어 한발 더 ‘무하’에게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하’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할 작품이 ‘슬라브 서사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무하’의 예술정신의 근간이 되었던 고향 체코에 대한 그리움과 슬라브 민족을 위한 거대한 헌사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체코로 돌아와 시작된 이 작품은 18여 년 동안에 걸쳐 완성된 대작으로 슬라브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변혁의 단계를 20개의 장면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은 1928년 조국에 기증되었다. ‘무하’의 작품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할 것이 바로 조국을 생각하는 ‘무하’의 이러한 가치관이 아닐까 싶다.



m*****8 2012.03.15.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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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보헤미안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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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는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이고 엘리트적이면서 대중적이고 보수적이며 또한 급진적이었고 민족적인 양식인 동시에 국제적인 것이었다.세기의 전환점에서 유기적인 형태의 곡선,때로는 기하학적인 구조나 형태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풍경과 비전을 제시한 아르누보는 전통과 근대성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과 기대,세기말의 공포와 근심을 모두 드러내는 양식이었다.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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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는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이고 엘리트적이면서 대중적이고 보수적이며 또한 급진적이었고 민족적인 양식인 동시에 국제적인 것이었다.세기의 전환점에서 유기적인 형태의 곡선,때로는 기하학적인 구조나 형태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풍경과 비전을 제시한 아르누보는 전통과 근대성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과 기대,세기말의 공포와 근심을 모두 드러내는 양식이었다. /50

 

 

무하는 그런 그녀를 어떻게 화폭에 담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낮은 이마를 가리기 위해 항상 내리고 있었던 풍성한 곱슬머리는 그녀의 깊고 커다란 눈에 음영을 만들어 신비감을 더했다. 조금 크지만 오똑한 콧날은 그녀의 독립적인 성격과 예술적 감수성을 가늘지만 분명한 선을 가진 입술은 관능적이면서도 단호함을 드러내었다.그리고 희고 긴 목 드러난 어깨선은 그녀의 여성스러움을 강조해 주었다./102

 

 

삽화가로서의 무하는 글과 그림의 조화를 중시했다. 몇몇 문학작품을 위한 작업들은 무하가 보다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스타일로 발전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특히 1894년 루티와 함께 한 주디스 고티에르의 <<하얀 코끼리에 대한 추억>>은 무하가 프랑스 아르누보 양식으로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여전히 묘사적인 방법으로 화면을 구성하던 무하에게 연속된 끈의 꼬임처럼 상징적이고 양식화 된 루티의 표제 장식들은 커다란 영감을 주었고 이것은 곧 무하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식적 요소로 채용된다./140

 

이 시대의 감수성이란 역시 상징주의에 있었다.우리 시대의 눈으로 이 시대의 장식미술을 보고 있노라면 장식은 그저 장식일 뿐 표면적이며 궁극적 실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당시 상징주의 이론은 장식적인 회화의 새로운 개념을 끌어내고 있었다.징식 미술은 상징적이고 종합적인 형태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이상을 직감하게 하는 예술 표현의 가장 심원한 수단이었다.(...)아름다운 미술작품은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자연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르누보 작가들에게 자연의 형태는 상징적인 것으로,비의적인 종교적 의미를 띨 수도 있었다.(144~148쪽)

 

무하는 커다란 포용력으로 상징주의,신비주의,강령술,최면술의 이론과 당시 파리 예술계의 역동성 공업과 상업에 의해 대두한 예술상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흡수해갔다./215

 


 

 

무하

장우진 저
미술문화 | 2012년 01월

 

언뜻 보지 않아도 화려한 그림이다.그런데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부담감이 있었다.왠지 너무 친절한 사람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것 처럼.그래서 보기를 망설였던 전시였다.그리고 늘 하게 되는 생각,보지 않았다면 후회되었겠다 하는 반성.아니 후회가 아니라,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아마도 책을 읽게 된 것이 이유이자,동기부여가 된 것일게다.르네상스 그림을 재미있게 보기 위해 신화가 필수였듯이,무화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알아야 할 코스가 있다.물론 전문가가 될 생각이 아니라면,관심가는 테마로 잡아서 보면 될것 같다.그만큼 무하가 관여한 세계는 넓었다.그리고 책은 친절한 가이드를 잡아주었다.

아르누보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파리를 관통한 세기말의 풍경을 이해해야만 했었다.그리고 전시장에 등장한 고갱의 모습에 당황(?)했던 나에게,책은 알려주고 있다.자세하진 않지만,고갱의 상징주의에 영향을 받았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화려하기만 해 보이는 그림 속에 담긴 수많은 상징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당시 시대의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다는 사실은,지금 내 눈에 장식적인 면만 도드라지게 보일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수 있어 작은 위로가 되었다고나 할까?

처음 볼때는 화려하고 왠지 겉과 속이 다른 듯한 느낌만이 강했었는데,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책 속에 소개 된 그림을 통해 알았다.아마 이런 이유 탓에,무하전을 한 번 더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그림만 그렸을 것 같은 무하,그러나 정작 자신의 자화상이라든가 아들의 초상화는 무서울 정도로 어둡게 그렸던 것도,책을 통해 이해받을수 있어 좋았다.

 

  "삶은 결코 간단하고 기쁜 일로만 가득 찬 것이 아니며 죽음 또한 생의 명멸만은 아니었다.무하의 포스터는 언제나 명랑하고 생기 넘치는 삶에 대한 의욕을 보여주었지만 상업적 목적과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작업 해 온 파스텔화는 절망과 좌절 고독과 죽음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보여준다."/198

w*******i 2013.08.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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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보헤미안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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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장우진/미술문화 책의 삽화나 엽서, 달력과 포스터에서 쉽게 발견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친근하고 눈에 익지만 그 여인을 탄생시킨 화가의 이름은 모른다. 그가 바로 알폰스 마리아 무하이다. 무척이나 낯설고 생소한 이름이다. 100년 전 세기말 파리를 장식하였던 아르누보의 선두주자였던 알폰스 무하의 작품과 생애를 재조명하고 있다. 당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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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장우진/미술문화


책의 삽화나 엽서, 달력과 포스터에서 쉽게 발견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친근하고 눈에 익지만 그 여인을 탄생시킨 화가의 이름은 모른다.

그가 바로 알폰스 마리아 무하이다.

무척이나 낯설고 생소한 이름이다.


100년 전 세기말 파리를 장식하였던 아르누보의 선두주자였던 알폰스 무하의 작품과 생애를 재조명하고 있다.

당시 유럽의 문학과 예술 사조와 동유럽의 역사는 덤으로 주는 선물이다.


무하는 1860년 보헤미아의 땅으로 잘 알려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무하가 자신을 연마하고 꽃피운 곳은 고국이 아니라 세기말의 파리였다.

쿠엔 백작의 후원으로 파리 아카데미 줄리앙에 입학하여 미술 수업을 받았고

파리의 최고의 인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통해서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우연히 그리게 된 그녀의 포스터가 무하를 하루아침에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무하는 사라 베르나르와 관련된 포스터와 무대장치, 의상 소품과 보석 등을 디자인하면서 서로의 명성에 도움을 주는 동업자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사라 베르나르를 통해서 입지를 다진 무하는 자신만의 형식인 ‘무하 양식’을 형성해 간다.

무하 양식의 첫 번째 작품은 <황도 12궁>이었다.

굽이치는 머리칼과 별이나 원, 왕관 등으로 장식한 여인은 ‘무하 양식’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는다.

그것은 슬라브 민족의 전통이 선천적 감각과 융합되어 나타난 새로운 형식이었다.


무하는 포스터 화가, 삽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보석 디자이너, 조각가, 실내 장식가로서도 재능을 인정받으며 파리의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였지만 작품 중 상당량은 상업 포스터였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있었다.


무하는 조국 체코의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였다.

그의 오랜 염원은 미국인 사업가 찰스 R. 크레인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이루어진다.

20년의 열의를 바쳐 6×8미터의 거대한 캠퍼스에 슬라브의 역사를 담은 20편의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하여 조국 체코에 기증하였다.


팽창하는 범게르만주의에 저항하는 범슬라브주의의 이상이 담겨있는 위험한 이 그림은 프라하를 침공한 나치가 무하를 심문하는 빌미를 준다.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민족주의가 나치의 신념을 거슬렸기 때문이다.

결국 무하는 앓고 있던 폐렴과 심문이 겹쳐 79세의 생을 마감한다.


체코 공산 정권 아래서 잊혀졌던 무하의 작품은 1960년대 팝 문화와 더불어 부활하여

한 세기를 훌쩍 뛰어 넘은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생생히 숨쉬며 사랑받고 있다.

조국의 핍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며 온몸으로 저항하였던 그의 그림 속에서는 슬라브인의 슬픈 역사와 아르누보의 화려한 모습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서양 미술사에서 무하의 위치는 특이하다.

상업 미술과 디자인 부분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의 작품은 백년을 뛰어 넘는 지금도 찬란히 빛나며 무하의 예술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확인시켜 준다.


길게 흩날리는 풍성한 머리칼과 이국적인 의상을 걸치고 몽환적이고 관능적인 미소로 유혹하는 여인의 모습 속에 무하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5 2012.05.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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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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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정한 거처가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방랑객의 대명사 집시족인 보헤미안이었던 무하의 회화 세계를 광고,포스터,회화,판화를 통해 그의 삶과 당대 프랑스 및 조국이었던 체코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재혼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무하는 어머니의 바램대로 그림 그리는 일을 걷게 되는데 그의 어린 시절은 합스부르크 왕조가 해체되고 오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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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일정한 거처가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방랑객의 대명사 집시족인 보헤미안이었던 무하의 회화 세계를 광고,포스터,회화,판화를 통해 그의 삶과 당대 프랑스 및 조국이었던 체코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재혼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무하는 어머니의 바램대로 그림 그리는 일을 걷게 되는데 그의 어린 시절은 합스부르크 왕조가 해체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개편되는 시대적 상황이고 20대 초반 공방에서 해고되면서 그는 빈을 떠나 쿠엔 백작의 후원으로 파리로 유학을 하고 아카데미 줄리앙에 입학을 하게 되는데 이듬해(1888년) 그는 장식화를 제작하면서 그가 꿈꾸었던 그림의 창작에 몰입하게 된다.

 

 집시는 보헤미안과 같은 가난하고 꾀죄죄하며 하루 하루를 이어가기 위한 부류가 있는가 하면 댄디와 같은 귀족냄새가 나는 부류도 있다.당시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랭보는 온갖 방탕과 방랑을 일삼은 최고의 퇴폐주의자였으며,보헤미안이자 댄디,위대한 상징주의자였는데 무하는 그의 세계를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모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또한 19세기말 프랑스는 산업화로 인한 획일성과 기계주으에 대한 반대,대중주의의 속물 취향에 대한 혐오,부르주아지의 위선에 대한 항의,엄격한 도덕주의에 대한 반발,그 이전 시대의 자연주의,낭만주의,인상주의에 대한 반감이라는 거대한 부정문을 그의 회화 속에는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의 근대회화인 우끼요에(浮世繪)가 프랑스이 아르누보(신예술)에 영향을 끼치고 상징주의와 미학적인 면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면서 세기말 파리를 장식하게 되었다.그는 관능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광고와 포스터,사진 예술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다.그것은 세기말 사회분위기가 퇴폐와 향락,염세적인 분위기였고 지식인들은 무정부주의와 데카당스로 경도되고 문학은 암시와 모호함을 던져 줄 뿐이었다.또한 당대 유명한 고갱과의 조우를 통해 회화의 세계와 우정을 돈독히 하는 시간도 갖게 된다.

 

 그가 그린 대표적인 작품은 너무도 많지만 간단히 소개하면 보헤미아 왕 프리제미술 오타카르 2세,베들레헴 교회에서 설교하는 얀 후스의 종교적인 색채와 연인들,물랭주즈의 무도회의 포스터가 있으며 지스몽다 등의 석판화가 눈에 띄고 지스몽다를 그리고 난 뒤부터는 파리지앵들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는 일약 유명세를 달리게 된다.또한 무하가 디자인한 뱀팔찌와 반지,에나멜과 진주로 장식된 코르사즈 등도 독특하고도 섬세한 미적 디자인의 감각을 충분히 살린 귀중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상업성과 예술성이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명랑과 외설이 교묘하게 만나며,

 세속적인 동시에 영혼의 한 지점을 울리는 그의 작품은

 분명 벨 에포크의 파리 시민들이게 익숙하지만

 왠지 낯선 아름다움이었다. P182에서

 

 

 1850년대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그는 사진 모델에도 심취한다.반나(半裸)의 여체를 통해 관능미와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선보였으며 1900년 파리 박람회가 끝나면서 아르누보는 유행의 불길처럼 퇴색되고 무하는 '슬라브 서사시'쪽으로 착상을 하고 남은 생을 조국과 슬라브인에 대한 봉사로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되고 미국 체류기간 동안 그를 지탱해준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게 되고 서로 끌리게 된다.연어가 성장하여 자신이 태어난 강가로 회귀하듯 그도 조국인 체코로 돌아와 여전히 영감이 넘치는 포스터들을 창출하는데 화려함보다는 단순하고 민속적이 요소들이 강한 인상이 짙게 깔린다.

 

 성직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세기말 유럽의 예술 사조를 뒤로 하고 상징적이고 관능적이며 다방면에서 멋진 작품을 남긴 보헤미안 무하는 암울한 조국을 잊지 않고 여생을 조국과 슬라브인에게 봉사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이고 예술가임을 작품 하나 하나에 열과 성,혼을 바쳐 그만의 창작 세계를 풍성하고도 다양한 회화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외로운 삶이었지만 그를 사랑하고 지탱해 주었던 여인의 정신적 지원이 그가 창작활동에 더욱 빛을 발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j******6 2012.03.31.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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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파리가 사랑한 화가, 무하
"세기말의 파리가 사랑한 화가, 무하" 내용보기
" 세기말 파리, 우리가 우연히 시선을 던진 그 곳에는 항상 무하가 있었다. 침실 머리맡의 장식 패널, 어제 읽다 잠들어 버린 책 속의 삽화, 그리고 그곳에 꽂아 둔 엽서에서 그를 만난다. 그의 그림이 광고하는 회사의 코르셋을 드레스 아래에 입고 그의 그림이 그려진 접시와 주전자, 그리고 르 페브르 유틸사의 과자를 곁들여 티타임을 가진다. 아이들은 그가 광고하는 네슬레 사의 분
"세기말의 파리가 사랑한 화가, 무하" 내용보기

" 세기말 파리, 우리가 우연히 시선을 던진 그 곳에는 항상 무하가 있었다. 침실 머리맡의 장식 패널, 어제 읽다 잠들어 버린 책 속의 삽화, 그리고 그곳에 꽂아 둔 엽서에서 그를 만난다. 그의 그림이 광고하는 회사의 코르셋을 드레스 아래에 입고 그의 그림이 그려진 접시와 주전자, 그리고 르 페브르 유틸사의 과자를 곁들여 티타임을 가진다. 아이들은 그가 광고하는 네슬레 사의 분유로 배를 채우고 어른들은 모엣샹동의 와인으로 입술을 축인다. 페르펙타 자전거를 타고 나선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엔 서점에 들려 그가 표지를 그린 <라 플륌>을 한권 사고, 식당에 들러 그가 디자인한 메뉴를 보며 식사를 주문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라 베르나르가 출연하는 새로운 연극 포스터를 보고 서둘러 잘 차려입고서는 르네상스 극장으로 향한다. 연극이 끝나고 감동이 가시지 않자, 푸케 보석 상점에 들러 사라 베르나르가 무대 위에서 걸친 액세서리와 비슷한 것을 하나 고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포스터를 그린 모엣샹동의 와인으로 가슴을 진정시킨 뒤 무하 풍의 가구로 채워진 방으로 돌아와 <황도12궁>이 그려진 달력에서 내일의 일정을 확인한 후 침대에 들어 <주기도문>과 함께 명상한 뒤에는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p165,169)

 

이게 도대체 무슨소리인지 궁금하신지? 바로 세기말 파리의 중산층의 풍경이라고 해두면 무난하겠다. 체코의 시골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난 무하라는 소년이 세기말 파리가 사랑한 화가가 되어 파리의 상업과 예술의 중심에서 그 이름을 알리고 파리 시민들의 삶의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을 알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집어들어야 한다.

 

무하. 그의 이름은 생소할지 모르지만, 현재에도 많은 다이어리와 엽서에서 그의 아르누보 형식의 그림은 인용되고 있다. 특히 황도12궁과 사계절을 담은 그림은 나 역시 누가 이렇게 눈부신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 채 그동안 수도없이 보아왔던터이다. 그냥 삽화가인줄말 알았던 사람이, 세기말 파리전역을 지배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에게 심하게 미안해진다. 그리고 그가 그린 장식적 삽화는 흔히 말하는 '그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인 줄 알았던 나의 무지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무리 그의 디자인과 그림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였음을 이 책을 읽고 나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앤디워홀같은 사람은 팝문화를 예술로 변모시킨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하면서 무하라는 세기말을 장식했던 예술가의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가 달력이나 포스터, 엽서와 같은 기념품에나 들어갈법한 장식적 그림을 그려온 삽화가로 취급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의 선이 그려내는 몽환적인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마지막 저자의 말이 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인용해 본다.

 

" 여기 한 사람의 화가가 있다. 작업실의 커다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붓을 휘두르고 있는 한 성실한 화가가. 이 화가에 대한 짧은 여정을 마치면서 한가지 바라게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책갈피에서, 달력에서, 혹은 엽서에서 우연히 그의 작품과 눈길이 마주쳤을 때 '알폰스 무하'라는 그의 짧은 이름 하나가 기억되길..." (p271)

YES마니아 : 로얄 l********d 2012.03.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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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하 - 장우진: 세기말의 보헤미안
"[서평] 무하 - 장우진: 세기말의 보헤미안" 내용보기
세기말의 파리가 사랑했던 알폰스 무하     향락에 취한 세기말의 프랑스 파리. 19세기 말 짙은 명암의 대비가 이뤄지는 파리는 유례없는 자유와 번영의 기쁨이 자리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세기말의 파리를 주도한 보헤미안과 댄디의 등장 가운데 이를 한 몸에 가진 예술가들이 속속 등장하였고 그 가운데 미학적인 요소를 공유한 상징주의와 조형 예술의 공간적 측면을 장식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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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파리가 사랑했던 알폰스 무하

 

  향락에 취한 세기말의 프랑스 파리. 19세기 말 짙은 명암의 대비가 이뤄지는 파리는 유례없는 자유와 번영의 기쁨이 자리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세기말의 파리를 주도한 보헤미안과 댄디의 등장 가운데 이를 한 몸에 가진 예술가들이 속속 등장하였고 그 가운데 미학적인 요소를 공유한 상징주의와 조형 예술의 공간적 측면을 장식한 아르누보의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는 알폰스 무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 그리고 그 곳에서 유행을 주도한 무하의 예술과 삶은 아르누보의 전성기이자 세기말의 파리가 가장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예술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억하는 사람은 적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세기말의 파리와 알폰스 무하

 

  세기말 유럽 예술의 중심지는 분명 파리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택한 체코의 시골 소년 무하는 신이 내려준 선물들 즉 변치 않는 사랑과 향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무하-세기말의 보헤미안>(서울: 미술문화, 2012)은 세기말의 프랑스와 무하의 인생을 함께 살피면서 무하의 예술 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혼란과 불안이 자리하고 극과극의 명암이 대비되는 예술의 도시에서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모두에게 이해될 수 있는 대중적인 예술작품을 선보인 그의 작품들은 그가 왜 세기말의 대표적인 예술가이자 사랑받는 예술가였는지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무하는 이러한 아르누보, 특히 프랑스 아르누보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당시 세계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유행을 주도한

무하의 예술과 삶은 아르누보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중략-

아름답게 장식된 호텔의 외관, 지하철의 입구, 가판대에 진열된 엽서와 포스터에서

벨 에포크의 아르누보와 무하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p.50-51

 

세기말 아르누보의 끊임없는 재현

 

  도톰하고 매끄러운 살결에 흩날리는 풍성한 머리칼과 이국적 의상 몽환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는 독특하고 매혹적인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은 비록 세기말 파리와 함께 약화된 아르누보와 운명을 함께 하였다고 하지만 오늘날 세계는 그의 작품들과 아르누보의 향수를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 합니다.

  예술의 영역을 대중적인 삶과 경제로까지 연결시킨 그의 작품은 살아 숨쉬는 역사이자 미지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하지 못했던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었떤 세기말을 살아갔던 사람들처럼 여전히 그의 작품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힙니다. 누구나 보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예술가의 삶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그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도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세기말 그의 그림이 파리의 거리를 메웠듯 우리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백 년이 가고 이백 년이 간다 해도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상적인 세계는 영원히 지속 될 것이다. -p.271

 



s******a 2012.02.0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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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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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100년 전 강국들의 팽창주의에 약소국들이 비명을 지르고 나라마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꿈틀대고 세기말 '불안'이 엄습하던 시대, 예술로서 시대를 떨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이름. 알폰스 마리아 무하 Alphonse Maria Mucha.   저자   저자의 프로필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강의와 저술을 활발히 하고 있는 분이라는 게 보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흥미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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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100년 전 강국들의 팽창주의에 약소국들이 비명을 지르고 나라마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꿈틀대고 세기말 '불안'이 엄습하던 시대, 예술로서 시대를 떨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이름. 알폰스 마리아 무하 Alphonse Maria Mucha.

 

저자

 

저자의 프로필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강의와 저술을 활발히 하고 있는 분이라는 게 보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미술책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렇다. 덕분에 미술에 문외한인 나 역시 (미술 뿐이겠는가. 유럽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편안하게 작품들의 매력에 빠져들어 갈 수 있었다.

 

1900년대 초반의 사람들의 삶과 사상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 책에서 서술된 당시의 유럽의 시대상과 무하라는 한 작가, 그리고 역경의 삶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책 제목에는 '무하'라는 작가 이름만 명시되어 있지만, 그의 작품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무하를 조명하도록 하기 위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로 당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당시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착각을 할 정도로 자세한 묘사가 사진까지 곁들여 있다.

 

책의 흐름

 

책의 흐름은 대략 다음과 같다. 당시의 시대상, 예술사조에서부터 시작되어서, 무하가 태어나고 자란 이야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립해나가는 숱한 과정과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자신의 민족과 조국을 위해 말년에 완성해 나가는 <슬라브 서사시>의 이야기. 나치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지하 창고에 묻혀 있던 무하의 작품들이 자녀들의 노력에 의해 다시 빛을 보는 이야기, 이렇게 구성되었다.

 

어머니의 교육과 그림에 대한 성실한 노력, 몰입

 

무하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어쩜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재능만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라는 것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충분한 교육을 받았던 그의 어머니는, 자상하게도 온종일 온 집안에 낙서를 하고 돌아다니는 아이의 목에 크레용을 매달아 주었다.(p65) 그리고 교회에서 성가와 춤 등을 배우며 예술적인 감수성을 단련해나갔다. 8살에 그린 그림에서 "글자를 두른 리본장식 모양이 '무하양식'을 예견하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저자의 설명이 이후 무하의 작품에서 보니 딱 맞아떨어져서 감상하는 재미가 더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성실하게 그림에 몰입해서 작품활동을 해나간 무하의 일상 역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슬라브인으로서

 

슬라브인으로서 자신의 신념에 배치되는 게르만의 업적을 찬양하는 <독일 역사의 여러 장면과 일화>의 삽화를 의뢰받았을 때, 그의 망설임의 묘사. 그리고 그린 그의 대표적인 몇 작품과 저자의 설명은 작품과 무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하는 이 작업에서 게르만의 호전성이나 공격성을 드러내는 전투 장면 대신에 전투 후의 상실과 독일의 정신적, 지적 공적에 초점을 맞추고 체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을 부각하는 장면으로 33컷을 채운다. p138

 

식민지 시대를 내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체코나 한국이나 그런 역사적 공통분모가 있기에, 무하의 이러한 작품활동의 태도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초기 작품에서부터 만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친절하고 세세한 설명, 당시 시대상, 예술풍조와 아울러 무하의 양식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죽 지켜볼 수 있었다. 지하 창고에서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작품들이 이렇게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다행스럽다.

아르누보 양식과 100년전의 유럽이야기. 무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YES마니아 : 로얄 s*******0 2012.02.03.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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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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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파리, 우리가 우연히 시선을 던진 그곳에는 항상 무하가 있다. 침실 머리맡의 장식 패널, 어제 읽다 잠들어 버린 책 속의 삽화, 그리고 그곳에 꽂아 둔 엽서에서 그를 만난다. 그의 그림이 광고하는 회사의 코르셋을 드레스 아래 입고 그의 그림이 그려진 접시와 주전자, 그릭 르 페브르 유틸사의 과자를 곁들여 한가한 티타임을 가진다. 아이들은 그가 광고하는 네슬레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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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파리, 우리가 우연히 시선을 던진 그곳에는 항상 무하가 있다. 침실 머리맡의 장식 패널, 어제 읽다 잠들어 버린 책 속의 삽화, 그리고 그곳에 꽂아 둔 엽서에서 그를 만난다. 그의 그림이 광고하는 회사의 코르셋을 드레스 아래 입고 그의 그림이 그려진 접시와 주전자, 그릭 르 페브르 유틸사의 과자를 곁들여 한가한 티타임을 가진다. 아이들은 그가 광고하는 네슬레 사의 분유로 배를 채우고 어른들은 모에 앤 샹동의 와인으로 입술을 축인다. 페르펙타 자전거를 탁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엔 서점에 들러 그가 표지에 그린 <라 플륌>을 한 권 사고, 식당에 들러 그가 디자인한 메뉴를 보며 식사를 주문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라 베르나르가 출연하는 새로운 연극 포스터를 보고 서둘러 잘 차려입고서는 르네상스 극장으로 향한다. 연극이 끝나고 감동이 가시지 않아 푸케 보석상점에 들러 사라 베르나르가 무대 위에서 걸친 액세서리와 비슷한 것을 하나 고른 후에야 집으로 들어온다. 그가 포스터를 그린 모에 앤 샹동의 와인으로 가슴을 진정시킨 뒤 무하 풍의 가구로 채워진 방으로 돌아와 <황동 12궁>이 그려진 달력에서 내일의 일정을 확인한 후 침대에 들어 <주기도문>과 함께 명상을 한 뒤에는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책에서 발췌)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사실과 다음 세기에는 어쩌면 유토피아적인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뒤섞여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 ‘시대’는 언제나 우리에게 상반된 얼굴을 보여준다. 그 상반됨이 가장 극명할 때, 어쩌면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알폰스 마리아 무하처럼 말이다. 시대와 자아가 분열적으로 뒤엉켜 휘감아 내어 만들어 진, 슬프고도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 낸 화가.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세기말의 파리는 하루 24시간 동안 내내 무하를 사랑했다.

 

 

무하는 체코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프랑스 아르누보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되었다. 책은 무하가 태어나기 전의 시대상황과 그 시대의 상징조류인 보헤미안과 댄디, 아르누보의 계보를 살펴본다. 그리고 무하의 생애를 돌아보고 고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었던 슬라브인으로서의 자각과 예술로의 승화를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치 정권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까지. 고국을 떠나 ‘파리’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성공한 어느 젊은 예술가의 일대기라고 그의 삶이 포장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의 그림의 화려한 이면 뒤에는 ‘이민예술가’로서의 쓸쓸함이 더 묻어난 듯 했다. 대중적으로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끌기 위해, 무하는 얼마나 ‘그들의 화려한 삶’을 뚫어져라 바라보아야 했을까.

 

 

다만 조금은 유쾌하기도 한 그의 삶의 이력 중 독특한 점을 찾아보자면 1890년 무하는 샤를로트 부인의 카페에서 고갱을 만나게 된다. 1893년 타히티에서 돌아온 고갱과 무하는 아틀리에를 공유하며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무하에 대한 고갱의 영향 관계를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두 사람에겐 예술이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이어줄 것이라는 예술에 대한 정신적인 공감은 늘 있었다니, 무하와 고갱이라, 같은 선상에 두고 놓고 보아도 좋은 풍경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무하는 프랑스의 화려함을 고갱은 타히티의 원시적 생명력을 대상으로 했을 뿐이지, 스타일에 있어서는 어쩐지 공통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무하는 한 마디로 말하면 ‘대중적인 화가’였다. 그가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전체적으로 통일된 아르누보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었던 점이었는데, 한마디로 ‘무하 스타일’이 지금의 우리가 ‘명품’에 가지는 동경과 비슷했으리라 보여 진다. 허나 그런 성공 뒤에는 ‘예술가’이전의 한 사람으로서의 허전함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무하’에게는 자신의 조국, 체코인으로서의 부재(不在)였다. 그는 이 부재를 인식하고 슬라브인으로서의 자각을 통해 ‘슬라브 대서사시’를 완성하고 체코 국민 및 프라하 시에 기증한다. 폐렴과 나치의 심문으로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무하는 이미 고령이었음을 감안해보더라도, 그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는 ‘화려하게 빛나는’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그의 삶은 처절할 만치 고난스럽고 결핍되어 있었지만 결국 그는 그걸 채워나갔고 자신의 예술작품으로 인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고생스러워도 낙’이 있는 인생이 아닐 수 없다.



l*****2 2012.03.22. 신고 공감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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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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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                 장우진 지음 │아트 & 일러스트 미술문화 刊   방금 막 도착한 책을 에피타이저로 뒤져 보니 또 대단한 미술가의 론칭을 보는 듯 하다. 감각적이고 현란하지만 관능적인 포스터로 명성을 쌓은 보헤미안 '알폰소 무하'에 대해 여태 무지했으니 자괴스럽다. 눈에 선하지만 알지 못했던 아르누보의 알폰소 무하의 작품세계와 보헤미안의 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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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                

장우진 지음 │아트 & 일러스트 미술문화 刊

 

방금 막 도착한 책을 에피타이저로 뒤져 보니 또 대단한 미술가의 론칭을 보는 듯 하
다. 감각적이고 현란하지만 관능적인 포스터로 명성을 쌓은 보헤미안 '알폰소 무하'에
대해 여태 무지했으니 자괴스럽다. 눈에 선하지만 알지 못했던 아르누보의 알폰소 무
하의 작품세계와 보헤미안의 예술혼에 심취하는 호사를 누린다.

 

미술문화사의 미술 책들은 다 애지중지하다. 몇 달 전 본 책인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 시리즈가 주던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세기말의 보헤미안 알폰
소 무하를 다시 접하다니 올 임진년도 벽두부터 미술로 세례를 받는다. 도대체 손 안
댄 부분을 찾는 게 나을 포스터 조각 건축 벽화 일러스트 등등,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무하는 황홀한 미술의 백미다.

 

알폰소 무하Alphonso Mucha는 보헤미안의 나라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출생의 아르
누보의 페인터이자 디자이너로도 빼어낫다. 무하의 카툰cartoon적이고 화사하고 감각
적이고, 혹은 몽환적이고 곡선이 넘실대는 삽화는 아르누보라는 사조를 극명하게 표출
한다. 마치 그런 것이 회화의 사명이라는 듯.

 

지극히 슬라브적 문학은 프란츠 카프카에게서 음악은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에서 찾듯
이, 그림은 슬라브 서사시로 대표되는 영원한 보헤미안 무하에게 몰입하고 사로 잡힘을
어쩔 수 없다. 동유럽 여행은 독자의 로망이건만 무하의 로망이고 노스탈지어의 원천인
프라하에 가고 잡ㅎ다. 동기를 부여한 무하의 생과 작품의 근원지를 찾아서.

 

가끔은 아트로 세례를 받는 기분이 드는 책을 조우한다. 책을 즐기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행복함이다. 게다가 무하의 매혹적인 만곡선curve 이 철철 넘치는 그림은 피아노,
오보에, 바순이 삼중주로 풍겨주는 복잡하지만 단아한 아우라를 풍겨주니 그럴 수밖에.

 

친퀘첸토Cinquecento 시대 카라바조의 칙칙한 명암적 미학을 감상하다가 디톡스로 꼭
알폰소 무하를 봐야 뒤끝이 개운해진다. 심미학적 패러독스다. 석판화로 된 '황동십이궁'
을 볼라치면 그 텁텁함을 씻은 듯이 날려 보내는 화사함에 이내 취하고 만다. 묘한 마약
같은 극렬한 중독성에 현혹돼 앞으로 진도가 쉬이 나아가질 못한다 무슨 책이.



d****o 2012.02.03.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