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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0] 젊은 헤밍웨이의 파리 체류기
"[20-70] 젊은 헤밍웨이의 파리 체류기" 내용보기
<파리는 날마다 축제> <파리는 날마다 축제>을 읽으면서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에서 주연인 길 역을 맡은 오웬 윌슨(Owen Wilson)이 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Lost Generation을 대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이하 ‘헤밍웨이’)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과 비슷한 시기[1921~1926]의 파리에 거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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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파리는 날마다 축제을 읽으면서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에서 주연인 길 역을 맡은 오웬 윌슨(Owen Wilson)이 된 기분이었다왜냐하면 이 책은 Lost Generation을 대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이하 헤밍웨이’)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과 비슷한 시기[1921~1926]의 파리에 거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회고록이기 때문이다.

,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헤밍웨이의 이동경로에 따라 파리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기에 저자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느낌도 든다.

 

 

가난마저도 추억이 되는 도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헤밍웨이는 갓 결혼한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과 함께 파리로 향했다비록 그가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해외 통신원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가난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작가 지망생 혹은 무명의 작가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이 무렵의 헤밍웨이가 살던, “카르디날 르무안 거리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우리 아파트는 온수도 안 나오고 제대로 된 화장실 시설도 없이 간단한 변기통만 있었지만그래도 미시간의 오막살이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p. 35]

 

불편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베를린의 데어 크베어슈니트에서 보내온 원고료 600프랑을 받고 생 제르맹 거리의 리프(Lipp)에서 가졌던 한 끼 식사를 수십 년이 지나도록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짠했다.

이제 어디 가서 식사나 할까나는 리프 Lipp에 가서 한잔하면서 식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올리브유를 뿌린 감자 샐러드는 적당히 짭짤하고쫀득쫀득했으며 올리브유의 향미도 감미로웠다나는 통후추를 가루 내어 감자에 뿌린 다음빵을 올리브유에 적셨다첫 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서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마시면서 식사했다감자 샐러드를 다 먹고 나자한 접시 더 주문하면서 세르벨라를 추가했다세르벨라는 굵은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세로로 자르고 그 위에 겨자 소스를 끼얹은 요리다.

올리브유와 소스를 빵으로 깨끗하게 닦아 먹은 다음나는 맥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천천히 다 마시고는 반 리터짜리 맥주를 더 주문하고 웨이터가 맥주통에서 맥주를 뽑아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이번 것은 1리터짜리보다 더 시원했다나는 단숨에 잔을 반쯤 비웠다.” [pp. 83~84]

SNS에 사진을 올리고 기록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몇 십 년 전이 아니라 1년 전 식사도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도대체 얼마나 평상시에 제대로 먹지 못했기에 저 한 번의 식사가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문득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 실린 실직한 남편이 직장 다니는 아내를 위해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간장 한 종지를 마련해서 왕후(王侯)의 밥걸인(乞人)의 찬이라는 메모를 남긴 한 가난한 신혼부부 이야기가 떠오른다.

 

파리에서의 삶은 힘겨웠지만헤밍웨이는 굴복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스스로 자부했으며부자들을 경멸하고 불신했다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속옷 대신 스웨터를 입는 것이 내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그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자들뿐이라고 생각했다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pp. 50~51]고 얘기한다.

 

나아가 그는 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어떤 모습으로 변하든나는 평생 파리를 사랑했습니다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 덕분이 아닐까요아직도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군요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p. 361]라고 말했다.

 

 

나는 글을 쓰려고 태어났고지금까지 글을 써왔으며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이 시절 헤밍웨이의 동료였던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 1896~1940, 이하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에게 팔리는 글을 쓸 것을 권유했다헤밍웨이에 따르면, “[피츠제럴드]는 내게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가 원하는 단편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면 그런 잡지사에 팔기에 알맞은 단편 원고 쓰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일단노력을 기울여 좋은 단편을 써놓은 다음잡지사가 원고를 청탁하면 그 잡지사가 원하는 대로 잡지의 판매부수를 올릴 만한 작품으로 다시 수정해서 원고를 넘긴다고 했다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것은 몸 파는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그는 그렇긴 해도좋은 작품을 쓸 돈을 마련하려면 잡지사에서 돈을 벌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고 했다나는 그에게 작가라면 자기 능력이 닿는 데까지 가장 좋은 글을 써야 하면그렇지 않는다면 자기 재능을 파괴하게 되리라고 말했다그는 자기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팔릴 작품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 자기 재능에 해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진짜 작품을 먼저 써놓았기에 설령 그것을 파괴하고 변형한다 해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pp. 170~171]

 

하지만 가난해도 훌륭한 글과 문장에 대한 헤밍웨이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피츠제럴드와 달리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 [pp. 87]이라고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슬럼프가 와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 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p. 18]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실린 췌장암에 걸려 복수(腹水)를 빼내고 있던 에반 쉬프맨(Evan Shipman, 1901~1957)과의 대화는 헤밍웨이의 꾸준히 노력하는 글쓰기를 한 마디로 압축시켜 보여준다.

“ “헴글 쓰는 것잊지 않을 거지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내가 글 쓰는 걸 잊을 리가 있나.

나는 전화를 걸려고 밖으로 나갔다물론이지하고 생각했다글 쓰는 걸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나는 글을 쓰려고 세상에 태어났고여태까지 글을 써왔으며앞으로도 다시 글을 쓸 거야.” [p. 298]

w******f 2020.11.02. 신고 공감 1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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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를 따라나서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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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파리는 날마다 축제>>(원제는 a moveable feast)는 헤밍웨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퍼뜩 떠오르는 작품은 아닐 것이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그에게 안겨 주었던<<노인과 바다>>, 영화화되었던<<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가 그의 대표작 겸 유명 작품에 비해 제목조차 알려져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파리와 연결시키면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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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파리는 날마다 축제>>(원제는 a moveable feast)는 헤밍웨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퍼뜩 떠오르는 작품은 아닐 것이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그에게 안겨 주었던<<노인과 바다>>, 영화화되었던<<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가 그의 대표작 겸 유명 작품에 비해 제목조차 알려져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파리와 연결시키면 유명한 책이다. 파리 여행을 해 보았거나 정해지지 않은 어느 미래에 또는 정해진 시점에 파리로 향할 사람에게는 이 세 작품보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세 작품에도 헤밍웨이의 자전적 요소가 다분히 있겠지만, 헤밍웨이가 직접 젊은 나날에 대한 회고록으로 쓴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는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헤밍웨이의 목소리가  더 짙게  드러나있지 않다. 명소를 둘러보는 감격에 찬 여행길에서 한 걸음 비켜 나와 헤밍웨이의 고민과 희망, 열정적인 삶의 노력들이 다분히 베여있는 곳곳을 걸어보고 들러본다면 여행과 삶이 조우하는 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나의 개인적 의견이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을 읽기 전에, 헤밍웨이는 나에게 있어선 새침데기 같은 작가였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장면(영화가 아니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 때문이다. 분명 너무 비극적인 사랑인데 남자 주인공은 제대로 슬퍼하지도 않고, 작가 헤밍웨이도 감정적 서술을 아끼며 글을 끝내 버렸기 때문이다. 인생의 감당 못할 슬픔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위대한 작가로부터 한 수 배우고 싶은 독자로서 나의 바람은 아랑곳 않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모든 것을 압축해버리다니, 그의 결말이 얄미웠다. 그러나, 이제 <<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한 번이라도 읽고 나니, 헤밍웨이에게 나 혼자 꽁하니 틀어막혔던 마음이 풀린다. 그의 인생의 한 자락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절망과 희망에 공감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여행자로서 파리에 대해 품은'낭만'과 '아름다움'은 잠시 접어두고, 보통의 인간이 살아가는 생의 현장이라는 리얼한 시선도 갖게 되었다. 헤밍웨이가 말하는 파리는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꿈'을 향해 지난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기다림'의  도시이다. 이 책은 1957년에 시작하여 1960년까지 3년에 걸쳐 쓰다가, 그가 196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불과 3달 여전에 마무리했다 하니, 1921년부터 1926년까지 파리에서 보낸 자신의 젊은 시절을 헤밍웨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날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지금껏 내 삶에서 파리는 단 3일뿐이었고, 이 3일은 젊은 시절도 아니었지만 헤밍웨이의 파리에 대한'향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이 3일이 그리워 다시 파리로 향하는 이번에는 여행 가이드북이 일러주는 핫한 파리, 여러 영화가 보여주는 낭만의 파리 이외에 가난과 불확실함 속에서 헤밍웨이가 마주했던 파리도 들여다보겠다. 내 생애의 미래 언젠가 나만의 그리움으로 떠올리게 될 파리를 만날 수 있으리라. 

젊은 시절을 파리에서 보내고 있던 헤밍웨이는 가난했다. 잡지사나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버는 돈 -정기적이라 할 수 없고 넉넉하다고도 할 수 없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전적으로 소설 쓰는 일에 매달리기 위해 특파원일마저 포기했을 때는 생활이 더 위태로워졌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아내 그리고 곧 아들도 있었으니, 가장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을테다.  '잃어버린 세대'를 부각시킨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로 인지도가 올라가기 전엔 말 그대로 무명작가 또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난방이 잘 안되는 꼭대기 층의 거처, 수입이 생겨야 제대로 먹어보는 한 끼, 책을 살 돈은커녕 책을 빌리기 위해 보증금조로 내야 하는 돈도 없어 궁한 변명 내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들 --- 현재는 가난하고 미래는 불안한 어정쩡한 작가로 살아가는 헤밍웨이의 파리에는 결코 낭만이 끼어들틈이 없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이 가난하고 불확실한 시간들을 연거푸 아름답다고 술회하고 있고,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특별한 아름다움에 곧 동화된다. 구글맴의 도움을 받아 따라가보면 좀 더 선명하게 헤밍웨이의 발자국이 살아난다.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을 만날 수 있는 파리는  센 강의 좌안에 위치한 '생제르맹 데 프레'이다.  파리의 유명한 다리 '퐁네프'를 건느거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자리한 시테섬에서 센 강을 건너오면 있다. 여행이라는 코드로 파리를 바라볼 때는 너무나 많이들 가고 싶어 하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서점에서 시작하여 그 바로 뒤편으로 펼쳐진 동네이다. 누구나 '아~'하기 마련인 소르본 대학이라 묶어 부르는 파리 제1,3,4,5 대학(파리 제2대학은 원래 없는 거였나?)들이 자리한 '라탱지구'와 겹치기도 하고 맞닿은 곳이다. '생'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유명한 성당이 2개 있고 (생 쉴피스 성당과 생제르맹데프레 성당 ) 주변에 파리의 먹자골목이 형성된 '생미셀 광장'도 있다. 문학카페의 대명사이자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인 카페 '레 되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도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서점들이 즐비하다는 오대옹거리도 이곳에 소재한다. 20대 초반의 헤밍웨이에게 이 곳은 먹고 읽고 사람을 만나는 일상생활지역이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인정받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매일의 무게를 짊어지고 걸어 다녔던 지극히 현실적인 곳이었다. 지금처럼 그 때도 먹을 곳이 즐비한 곳이어서 늘 배고팠던 헤밍웨이에게는 피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생제르맹에서 행복을 실감하는 순간은 '한 끼의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날이었다. 이 곳의 '리프 Lipp'(지금은 '브라서리 리프 Brasserie Lipp'이라는 상호로 운영 중)에서 제대로 먹은 한 끼를 수십년이 지나서도 헤밍웨이는 아주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독일의 문학평론지'데어 크베어슈니트에서 보내온 원고료 600프랑을 받은 날이다) 자, 이제 어디 가서 식사나 할까? 나는 리프 Lipp에 가서 한잔하면서 식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 올리브유를 뿌린 감자 샐러드는 적당히 짭짤하고 쫀득쫀득했으며 올리브유의 향미도 감미로웠다. 나는 통후추를 가루 내어 감자에 뿌린 다음, 빵을 올리브유에 적셨다. 첫 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서, 그다음부터는 천천히 마시면서 식사했다. 감자 샐러드를 다 먹고 나자, 한 접시 더 주문하면서 세르빌라를 추가했다. 세르빌라는 굵은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세로로 자르고 그 위에 겨자 소스를 끼얹은 요리다. 올리브유와 소스를 빵으로 깨끗하게 닦아 먹은 다음, 나는 맥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천천히 다 마시고는 비나 리터 짜리 맥주를 더 주문하고 웨이터가 맥주통에서 맥주를 뽑아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번 것은 1리터 짜리보다 더 시원했다. 나는 단숨에 잔을 반쯤 비웠다. p. 83 ~84


지금은 리프에 감자샐러드가 없다 한다. 그래도 주변 성당이나 빅토르 위고 기념관을 둘러본 후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오는 완벽한 여건이 형성된다면 안으로 들어가서 백 년 전 헤밍웨이가 누렸던 '한 끼의 즐거움'을 떠 올려 볼 것이다. 헤밍웨이가 조이스와 만났던 '카페 되 마고'도 무조건 가 봐야 하고, 팡테옹과 소르본 주변을 다니는 날에는 카페 '폴리도르 Le Polidor'에 들러야겠다.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곳이고, 영화 '미드나잇인파리'에서 주인공 길이 피츠제럴드의 안내로 헤밍웨이를 만나게 되는 장면도 현재 이 카페에서 찍었다 한다. 헤밍웨이도 생각나고 미드나잇인 파리도 떠올려본다면 여행자로서 무척 감격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오데옹거리도 헤밍웨이가 노상 드나들었던 곳이다. 지금은 센 강변에 있지만 원래 실비아 비치가 운영하던 원조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오데옹 거리 12번지에 있었는데, 책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헤밍웨이는 이 서점에서 책을 무수히 빌려 읽었다. 돈이 없고 책도 거의 팔리지 않는 우울한 작가라는 사실을 간파한 서점 주인 실비아 비치는 언제나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돈 걱정 없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책을 서점에서든 빌려 가서든 읽게 해 주었다. 이 서점이 이젠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져 필수 여행코스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가난한 작가들을 위하는 정신을 이은 여러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비록 헤밍웨이 시절과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헤밍웨이와 실비아 비치를 기리는 마음으로 현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찾아볼것이다. 내부 사진촬영 금지' 권고에 맞게 일단 카메라는 내려놓고, '미드나잇 인 파리'나 '비포선라이즈'의 여운도 걷어 내자. 오래된 서가를 쓰다듬어보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들어가 역시 오래된 선풍기, 소파, 피아노를 유심히 살펴보자. 오늘날도 이 서점의 지원에 힘입은 무명의 작가들이 키워내고 있는 꿈의 기운을 진심으로 느껴보고 싶다.

오데옹거리12번지,셰익스피어앤컴퍼니앞에 선 실비아비치와그녀의친구들 그리고헤밍웨이


 생제르맹의 아래쪽에는 '뤽상부르 공원'이 있다. 파리지앵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으로 운운되며 여유와 휴식, 푸르른 아름드리나무들과 장미정원으로 여행자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곳이다. 헤밍웨이도 자신의 아파트가 있던 몽파르나스에서 생제르맹으로 오가기 위해 '뤽상부르 공원'을 뻔질나게 지나다녔다. 자연스레 공원 안에 있는 '뤽상부르 박물관'에도 자주 들렀다. 공원에서 몽파르나스까지는 지금도 도보 15분 정도의 거리라서, 버스나 지하철보다는 공원 산책도 할 겸 많이들 걸어 다닌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이 아름다운 공원과 이 우아한 박물관에서 여유와 멋을 즐기진 못했다. 그는 이 공원을 걸으며 자신의 배고픔을 있는 그대로 느꼈다. 동시에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배고픔을 무시하거나 잊어야 하는 극기의 걸음을 옮겨야 했다. 박물관의 그림들도 예술적 영감을 얻고자 하는 지고한 목적으로 찾은 게 아니다. 배고픔이 주는 교훈을 터득한 곳이다. 

특파원 일을 그만두고 나서 미국에서 아무도 사주지 않는 글만 쓰고 있을 무렵, 누군가와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집에 말하고 나왔을 때 가기에 딱 좋은 장소는 뤽상부르공원이었다. 옵세르바투아르 광장에서 보지자르 거리에 이르는 길에는 음식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뤽상부르 공원에 가면 나는 으레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 곤 했는데, 배가 몹시 고플수록 벽에 걸린 그림들이 더욱 맑고, 또렷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배가 텅 비었을 때 세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가 어떻게 풍경화를 그렸는지를 진정으로 꿰뚫어볼 수 있음을 깨달았다. p.78


헤밍웨이가 자주 보았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현재 대부분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졌지만, 모딜리아니, 고갱, 피카소, 드가, 샤갈 등의 그림은 상설전시로 남아있다. 거의 100년 전 20세 초반의 고달픈 시간을 통과하고 있던 헤밍웨이가 보았던 그림들 앞에 지금의 내가 서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다행히도 (어쩌면 생각만큼 다행이 아닐 수도 있고) 나는 현재 배고픈 인생을 살고 있진 않지만, 헤밍웨이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림들을 바라본다면 설렘보다는 한층 더 깊은 감흥이 몰려들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그 그림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우선 믿기지 않을 것이고, 책에서나 보았던 대가들의 작품을 내 눈으로 직접 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할 것이고, 배고픔을 안고 생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꿋꿋이 '꿈'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헤밍웨이를 떠 올리면 시공간을 초월한 어떤 울컥함이 솟아들 것이다. 뤽상부르 정원의 이곳저곳을 내 발로 밟으며, 자신의 절망을 넘어서려 애쓰던 헤밍웨이의 발걸음을 짚어본다면 여행자로서의 감격보다 더 깊은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젊은 시절은 무사히 관통했지만, 여전히 거듭되는 실망 속에서 꿈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미완의 인생 한가운데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현재 모습을 실컷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원래는 이 박물관 앞에 있는 유명한 디저트 가게 '앙젤리나'가 주관심사였다. 튈르리 근처의 본점에 비해 한적하다니깐 쉽게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앙젤리나와 박물관 중 양자택일하라면 (여행에서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므로 잔혹한 선택을 강요받기 일쑤이다)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인위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배가 좀 고픈 상태에서 박물관을 둘러보는 편이 이 책을 읽어 헤밍웨이 흉내를 조금은 내고 싶은 독자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제르맹 데 프레 지역과 뤽상부르 공원에 이어지는 지역은 '몽파르나스 지역'이다. 지금은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59층 건물 '몽파르나스 타워'가 이 곳의 랜드마크이다. 이 건물의 56층 실내전망대와 59층 실외 전망대는 에펠탑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유명하고, 56층에 있는 레스토랑 '시엘 드 파리 ciel de Paris'도 음식보다는 전망 덕에 핫스폿으로 등극했다. 헤밍웨이가 살던 시절엔 인기 있는 동네가 아니었다. 주머니 사정에 맞게 정한 거주지였을 테고, 헤밍웨이와 비슷한 여건의 사람들이 사는 파리의 외진 동네였다. 다행스럽게 착한 가격의 카페들이 여러 곳 있었다. 역시 다행스럽게 이 소위 문학카페들이 지금도 원래 자리에 남아 있다. 헤밍웨이의 경로를 따라가보자. 빨리 글을 쓰고 싶어 뤽상부르를 가로지르지 않는 패스트트랙이다. 생제르맹 지역의 어느 곳에 있든 일단 보나파르트 대로로 나선다. 귀느메 거리를 걸어내려와 아사스거리를 지나고, 노트르담 데샹 거리를 가로질러 카페' 라 클로즈리 데 릴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노트르담 데샹 거리에 있는 제재소 건물 꼭대기 층 아파트에 살던 시절, 집에서 가장 가깝고 괜찮은 카페는 '라 클로즈리 데 릴라 La Closerie des Lilas'였다. 사실 그곳은 파리에서 가장 좋은 카페 중 하나였다. 겨울에는 실내가 따뜻하고 봄가을에는 공원과 네 원수 동상( 무엇을 '네 원수'라고 번역했는지 잘 모르겠음) 쪽 나무 그늘에 테이블을 내놓은 테라스가 무척 쾌적했다. p.90


카페에서 공부나 일을 하는 요즘의 라이프 스타일을 헤밍웨이는 백 년 전 파리에서 실현하고 있었던 셈.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이 카페에서 집필했고, 거의 매일 자리 잡고 글을 쓰거나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데릴라에 가면 헤밍웨이가 즐겨 앉았던 테이블에 그의 이름을 새겨두었다 한다. 기필코 이 자리에 앉아봐야 할 텐데, 워낙 유명 카페라 이미 다른 사람이 분명 차지하고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벌써 걱정이다. 데릴라 지척에 있는 '카페 셀렉트'와 '카페 돔'에서도 헤밍웨이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고, 이 두 카페도 현재 성업 중이다. 이 세 카페들은 헤밍웨이뿐만 아니라 그의 절친 에즈라 파운드와 스콧 피츠제럴드를 비롯 피카소 미로 등 많은 그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이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다. 그들이 예술의 꿈을 품고 각자의 성취를 맛보며 부지런히 오갔던 거리, 여유 있게 그저 돌아다녀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여행자. 특히 이 날은 생미셀 광장에서 뤽상부르를 거쳐 도보로 몽파르나스로 내려올 것이므로 더욱 시간이 빠듯할 터. 간절히 바라는 바는 부디 이 날은 빨리 그리고 자주 배가 고파지거나 간식이 생각나서 리프 -되 마고-데릴라 세 곳 모두에서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부르델 미술관과 몽파르나스 묘지( 입구 가까이 있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 쟝 샤르트르의 묘소만) 들르기, 몽파르나스 타워의 전망과 '시엘 드 파리'에서 점심 먹기 등의 원래 계획이 헤밍웨이 덕택에 좀 더 풍부해졌다. 데릴라에서 커피와 디저트류를 먹으며 '헤밍웨이를 찾아서'라는 나만의 여정을 마무리할지 해 질 녘 그 어디보다 아름다운 파리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시엘 드 파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할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결정은 당일 현지에서.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한 권의 책 덕택에 이미 나의 파리 여행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여태껏 <<어린 왕자>>나 <향수>>이외에 이렇다 할만한 프랑스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없는데다 <<말테의 수기>>는 읽다 포기해버린 내 과거의 아픔을 상쇄하고자 이번 여행에 앞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중 제1권이라도 읽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웠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가 나의 여행 기본 모토이므로). 수개월 여행 계획만 세우다 시간이 다 간 지금, 정말 당차고 야심만 앞세운 계획임을 분명해졌다.이렇게 프랑스 또는 파리에 관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여행에 돌입해야 하는 씁쓸한 순간에 만난 책이 바로 <<파리는 날마다 축제>>이다. 얼마니 다행인지! 감성을 앞세우고 낭만으로만 덧씌운 여행이 아니라, 마음과 눈을 열고 경험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가난하지만 현재와 미래에 대해 끝없이 긍정하며 단호히 꿈을 불러내는, 그래서 위대한 인간 헤밍웨이가 일러주는 파리를 나도 거닐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게 파리는 더욱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마음속의 파리에는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에펠탑과 민트빛 센 강 못지않게 헤밍웨이라는 이름이 큼지막하게 각인되었다. 분명 낭만적이고 화려한 파리이지만,  헤밍웨이를 휘감았던 아련한 향수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이름난 스폿을 찾아다니며 인증샷을 찍어대겠지만, 이 책 속에 펼쳐진 헤밍웨이의 발자국을 기억해내며 걷다 보면 한 겹 더 짙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헤밍웨이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완전히 다른 시기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방식으로 나의 젊은 나날들을 보냈지만, 생제르맹 데 프레 ~뤽상부르~몽파르나스를 헤집고 다닐 9월 어느 날의 나는 분명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그리움'과 '향수'에 젖어들어 있을 것이다. 스스로 비극적 종말을 내게 될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우울증에 압도되어 예술적 기운이 스러져가는 인생의 말미에서, 헤밍웨이가 뒤돌아 본 가난한 젊은 시절의 파리는 그 어느 풍요로웠던 시절의 그 어디보다 아름다움으로 사무치는 곳이었다 --- 이 사실을 알고서 그가 걸었던 거리를 걸어보고, 그가 들렀던 곳곳을 들르고 있을 나도 지금껏 알지 못한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파리에서 걷어올리게 되리라 믿는다. 여행은 한바탕의 축제이고, 축제는 언제나 아름답지만 그립기도 한 것이므로.

 더 아름답고 감동서린 파리를 만나는 법, 헤밍웨이의 파리를 거닐어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e 2018.08.10.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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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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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파리생활 회고록이라니..바로 구매했습니다.종이질도 빳빳하니 좋고.. 중간중간 파리사진하며..맨마지막에 헤밍웨이의 연대기랑 사진이 있는 것도 좋았어요.내용은 말할것도 없구요.. 문장하나하나가 아름답네요. 한가지아쉬운점은 주석이 페이지나 장마다 달려있으면 들어있음 좋았을텐데 맨끝이랑 중간에만 달려있어서 주석찾기가 조금힘들었네요.. 주석이자세하고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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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파리생활 회고록이라니..
바로 구매했습니다.
종이질도 빳빳하니 좋고.. 중간중간 파리사진하며..
맨마지막에 헤밍웨이의 연대기랑 사진이 있는 것도 좋았어요.
내용은 말할것도 없구요.. 문장하나하나가 아름답네요.
한가지아쉬운점은 주석이 페이지나 장마다 달려있으면 들어있음 좋았을텐데 맨끝이랑 중간에만 달려있어서 주석찾기가 조금힘들었네요.. 주석이자세하고 내용이 길어서 그렇게 구성한 것 같지만요 ㅎㅎ
j*****1 2021.01.09.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