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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한국인들은 '왜구가 일으킨 난', '조정은 무능했지만 의병, 승병, 이순신 등의 활약으로 승리한 전쟁' 정도로 이해하는 듯하다. 동북아시아 3개국의 대병력이 모여 7년간 치른 엄연한 전쟁을 난亂이라고 말하는 것부터 어폐가 있다. 일본에 대한 역사적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의 표출 방식이 아닐까 한다. 다행히 수 년 전부터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 임진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 책은 근세(에도 시대)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중국 문헌을 통해 일본과 중국이 임진왜란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서술한다. 한국이 임진왜란 3대 대첩만 기억하듯이 일본과 중국도 자신들의 업적과 승전에 초점을 맞춰 임진왜란을 기억한다. 조금 더 나아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평화 일본'이라는 기치 아래 이전의 침략 전쟁을 잘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자기 검열과 무의식적 편견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무위키(꺼라)를 인용하자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현대 일본 소설, 만화에서 임진왜란은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수준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이 국력을 소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이해하기 힘든 실책임에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책은 일본인들의 기억에 남은 임진왜란의 단편들은 주로 말하는데 개인적으론 가토 기요마사의 에피소드들을 재밌게 읽었다. 두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는 서로 라이벌 관계였으나 이후 가토 기요마사의 인기는 아주 높아져 두고두고 회자된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기억에서 잊히는 수준이 됐다고 한다. 전쟁 종료 후 발발한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가토 기요마사는 승자의 편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패자의 편에 붙었기 때문이라고. 게다가 가토 기요마사에겐 조선에서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 한반도 북쪽 끝에서 세루토스(절도사)를 붙잡고 오란카이(오랑캐, 여진족)와 전투를 벌인 이야기, 울산에서 치열한 농성 끝에 극적으로 구조된 이야기들이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판타지적 설화까지 섞여 가토 기요마사는 에도시대에 '세상의 끝'까지 가본 무협지 주인공과 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한국에선 이순신을 임진왜란 최고의 영웅으로 기억하지만 당시 일본에선 이순신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시민 목사(모쿠소 한간)에 대한 기억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김시민은 진주대첩 후 죽었지만 그 사실을 모른 히데요시는 김시민에 부들부들하며 모쿠소 한간의 목을 꼭 베어 오라 명했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당시 진주목사 서예원의 목이 베어져 바쳐졌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은 흡족해했다는 이야기 하하.
이순신과 류성룡에 대한 재평가는 17세기 말 류성룡의 <징비록>이 일본으로 유입돼 번역되며 이뤄졌다고 한다. 온전히 자의적으로 해석한 역사가 아닌 담담한 자기 반성적 기록이라 일본인들도 그 가치를 인정했던 모양이다. <징비록>이 1695년 <조선징비록>으로 번역되며 일본인들도 이순신에 주목하고 전쟁영웅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듯하지만 저자는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이순신과 같은 조선 영웅을 이긴 일본 장군은 더 위대하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187p)"이라는 말.
그 외 13세기 원, 고려의 일본 침공이 당대 일본인에게 피해 의식과 저항 의식을 남겼다는 이야기와 전쟁 무렵 쓰시마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무역으로 생존하는 입장이라 전전긍긍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런저런 일본과 중국의 임진왜란에 대한 입장을 읽어볼 수 있는 게 이 책의 가치인데, 그중에선 물론 견강부회도 있을 것이고 일련의 진실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실로 믿는 우리의 역사 해석에도 늘 견강부회가 섞여 있을지 모른다는 자기 의심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사건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살펴보는 건 재밌는 일이다. 김연아 일본 반응, 같은 것들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역사(특히 전쟁사)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 그다지 재밌게 읽히진 않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