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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근대 이후 각 국의 집권층들에 의해 상상된 것이라는 앤더슨의 관점은 이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으로 정착되었다. 처음 번역된 이래 다양한 글들에서 인용되어, 한국어 번역본을 구해서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지가 꽤 오래 되었다. 그동안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다각도로 알아봤으나. 결과는 절판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작년에 새롭게 개정판이 출간되어 구입을 하고, 이 책은 한동안 독서 보류 상태로 서가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완독한 지금, 왜 이 책의 번역본을 구하기 힘들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1983년 저자의 책이 영문으로 처음 출간된 이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도 1992년에 모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 책은 저자와 정식 출판 계약을 맺지 않은, 이른바 비합법적인 출판물(해적판)이었던 것이다. 물론 저작권법이 엄격하지 않던 시절에는 빈번하게 발생하던 일이었으며, 저자의 개정판(1991)이 출간된 이후 역시 출판 계약을 맺지 않은 번역본이 같은 출판사에서 2002년에 출간되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기까지 이 책의 한국어판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사실은 2006년의 ‘개정증보판’을 토대로 새롭게 번역한 이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저자의 ‘여행과 교통 : <상상된 공동체>의 지리적 전기에 관하여’라는 글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특히 이 글에서는 저자의 책이 처음 출판된 이래로 다양한 언어와 국가들에서 번역 출판되었던 상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만큼 저자에게 이 책의 출간이 주는 의미는 각별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동안 한국어판의 제목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나, 이 책은 <상상된 공동체>라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바로잡고 있다. 따지고 보니 ‘상상의’와 ‘상상된’ 이라는 수식어는 그 의미의 차이가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상상의’는 매우 주관적으로 상상된 형상이지만, ‘상상된’은 사람들의 상상에 의해서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는 형상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 그리고 원제도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가 더 정확하게 번역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내용과 의미들은 전체적으로 그동안 다양한 저작들을 통해서 내가 이해했던 인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서양 각국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인용된 부분에서는, 각 나라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에 결코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촉발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Go back!)’라는 언급이 지닌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미국은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유럽의 이민자들이 정착하고 이후 아프리카와 남미를 비롯한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땅의 원주민들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발언이 흑인과 유색인종의 여성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는 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트럼프는 그렇게 도발적인 언사를 내뱉은 것이리라. 이 역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백인들을 주류로 하는 ‘민족’ 혹은 ‘민족주의’의 관념에 기반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앤더슨의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불현 듯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최근 일본의 도발로 인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일본 불매’ 역시 ‘민족주의’의 관념에 기초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초기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에 대한 대타적인 의식이 강하게 형성되었고, ‘일본만은 반드시 ~’라는 의식이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분명 민족주의는 근대 이후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이념적 지표로 설정되었으며, 그것은 언어와 문화적 공통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 동서양의 각국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그리 중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근대 이후 사람들에 의해 상상된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신문이나 책 등의 인쇄매체를 통해 더 확고하게 전파되고 굳어졌다는 것을 저자는 다양한 측면에서 실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이 대중화되어 있는 현실에서도 오히려 이러한 경향을 강화되어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을 것이며, 실제로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기존 언론을 적대시하면서 SNS를 주요 선전 수단으로 할용하는 트럼프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모습이나, 최근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일본 불매’가 역시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것에서 매체가 지닌 역할과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민족주의’가 결국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 하는 점에 따라서, 그것이 지닌 긍정적 혹은 부정적 측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단 한 번의 독서로 그치지 않고, 필요할 경우 틈틈이 읽으면서 자세히 음미할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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