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흐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고이는 시간이다." (6쪽) 이 책은 정말 특이하게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순서대로 합쳐져서 결말이 된다. 책 속의 시간도 두 종류의 시간이 있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나흘째부터 시작되는 정방향의 시간과, 현재에서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는 역방향의 시간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만나고 있다. 그리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흘러가 두 시간은 화해하고 있다. 2013년 제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검은 모래>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제주의 4.3사건이 소재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근현대를 살아온 제주 여인의 삶을 구월과 해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끊어지지 않는 한국인의 피는 켄과 미유를 통해 재일동포의 삶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렇게 구월의 어머니가 구월을 낳으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현대의 일본을 살아가는 미유까지 이어져 그야말로 대서사시다. 그래서 한편의 영화로는 엄두도 낼 수 없고, 60부작 드라마쯤은 되어야 어울리지 않을까싶다.
우리는 일제시대부터의 우리역사를 이야기할 때, 조선이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수탈과 중국 상해까지 이어지는 독립운동,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대한민국정부 수립,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을 거쳐 현정권이전 정권까지를 논한다. 하지만 그 속에 빠진 역사가 있으니, 바로 제주도의 역사이다.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육지의 역사만 논하고 있었고, 그래서 최근에 제주 4.3사건에 대해 재조명되었을 때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은 것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런 역사인식에 대해 이 책은 제주인의 역사에 한마디 더해서 일본에서의 한국인의 역사까지 보태고 있다. 제주 여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에서 2차대전을 겪고, 한반도의 분단을 겪으면 그나마 한반도 사람들만큼은 아픔을 겪지 않았을 줄 알았던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육지에 있어야만 아버지가 국군이 되고, 아들이 빨갱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살아온 한국인이라는 지위는 자국민을 우선으로 챙기는 일본정부에 걸림돌 같은 존재여서, 세계를 속여가며 최소한의 인권과 자유까지도 빼앗아버렸다. 저자는 오랜 조사를 통해서 역사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는데, 그 가운데 제국주의에 물들어 있는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생각, 조총련, 재일조선인의 북한귀국 등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한국정부는 이런 재일한국인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단 귀국을 골칫거리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농촌 지역의 빈곤을 타파하기 위하여 해외이주촉진을 장려하고 … 국내의 실업자를 라틴아메리카에 수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229쪽) 게다가 미국이 그런 일본에 동조하여, "주일 미국 대사 맥아더 2세는 주일 오스트레일리아 대사에게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에 남아 있는 조선인은 수준이 낮고 수많은 공산주의자 및 범죄자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껏 일본 정부가 아무런 귀환 계획도 실시하지 않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일이다.'" (230쪽)라고 했다. "저희들 땅에서 조선인을 몰아내는 대청소에 미국을 표면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지만, 그 계획이 여의치 않자 일본 정부는 일본적십자와 조총련을 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 (229쪽) 그리하여 이루어진 재일교포 북송사건의 놀랄 점은, 이 때 이주한 재일교포가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남한이 고향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더이상 일본에서 희망이 없다고 여긴 재일교포들이 남한에서조차 환대받지 못하고 의심스러우면서도 결국 안타까운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설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아들은 "(일본은) 세계 문명의 초일류를 이끄는 나라 중에 하나고. 한국은 식민지였던 나라야. 참 성가신 나라지. 우리가 너무 키워준 게 화근이라고 생각해." (201쪽)라고 말하고 있어서 화가 났고, 일본정부는 재일교포 3,4세에게까지 선거권도 부여하지 않는다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다가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의미를 찾아보고서야 일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제주 여인의 삶이 무엇이 그리 특별하기에 소재로 사용되었을까? 역사가 그들의 삶을 고달프고 애달프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손 미유는 그 아픔을 털어내고 행복한 인생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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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주도의 가엷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의 물결 위에 시달리던 이내 몸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 어린아이 젖 주면서 저녁밥을 짓는다 하루 종일 하였으나 버는 것은 기막혀 살자하니 근심으로 잠도 안 오네 이른 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코 온 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고 파도 세고 물결 센 저 바다를 건너서 기울산 대마도로 돈벌이 가요 ㅡㅡㅡㅡㅡㅡ "바다가 아무리 험악하고 모질게 굴어도 절대로 원망하지도 말고 탓하지도 말아라. 바다는 말이다, 우리 잠녀들의 목숨 줄을 쥐고 있으니까. 우리네 인생이 바다에 달렸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 . 2013년 제 1회 제주 4.3 평화 문학상 수상작 어둡고 가슴 아픈 우리의 옛 역사의 한자락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1910년 일본에게 치욕을 당하며 강탈을 당하고 짓밟히던 시절 이야기를 그려냈다. 소설이라기도 보다는 다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제주 우도에서 살아가던 잠녀들은 일제강점기에 팍팍한 삶에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물질을 하러 갔다가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일본에 정착하게 된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출가 물질을 하러 나갔을 뿐인데, 오랜 세월 이방인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아가며 일본땅에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일. 억지로 끌려가 생이별을 겪고, 많은 고통과 아픔, 멸시와 천대, 그리고 여러 갈등들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이어진다. 중간 중간 실제 있었던 그 시절 이야기, 정치적, 사회적 배경들이 적절히 섞여 현실감을 더 했다. 폭발적인 슬픔이나 아픔을 그려내지 않고 꾹꾹 눌러담은 슬픔과 아픔들이 시종일관 이어진다.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차별받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고통속에 살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고 하니 더 가슴 아픈 일이다. 혈통, 핏줄을 따지고, 여전히 인종차별을 하는 사회 곳곳, 세계 곳곳의 악행들.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배우는 생명존중사상을 왜 모르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위안부 어르신들이 바라는건 돈이 아니라 니들의 사과란 말이다 이 똥멍충이들아!!! 현재의 일본인들이 과거의 악행들에 대해 연대책임을 꼭 가져야 하느냐와 지금의 그들이 저지른 일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저 고통받았던 지난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올곧게 바라보며 죄송하다는 말한마디가 뭐가 그렇게 어려워 저렇게 똥고집을 부리는지.... . . 갑자기 확!! 열받네. 영화 해바라기에 김래원 대사가 생각난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 속이 후련했냐 이 XX 새끼들아!"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게 세상 이치라더라. 알아들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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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책의 첫 페이지만 읽어 보고 별 구미가 당기지 않으면 그냥 덮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작가의 역량이라든가 책의 유익함과 재미, 그런 것들이 딱 한 페이지만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대개는 첫인상과 첫느낌이 끝까지 가는 경우를 많이 경험한터라 안 좋다면 안 좋을 수 있는 버릇이겠지만 나는 책의 첫 장을 눈으로 훑고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사실 첫 몇 줄만 읽어도 소위 '느낌'이라는 것이 오는 책이 있다. 작가의 문체나 책의 몰입도는 단 몇 문장만으로도 대충은 확인이 가능한 것이어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책은 처음 몇 페이지만 읽어 보아도 충분히 가려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는 기준일뿐, 책의 '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절대 아니다. 소설 《검은 모래》는 첫 몇 줄에 느낌이 오는 그런 책에 해당했다.
《검은 모래》의 첫 장을 펼치면 가장 먼저 독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문장이다. 나는 이 첫 몇 줄의 문장을 읽고 작가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문장이 아니라 마음에 확 와닿는 그런 문장이었다. 소설의 시작이, 첫 느낌이 아주 좋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이 첫 페이지의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내게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아마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겪어본 적이 있거나, 아주 가까운 누군가나 어떤 존재를 떠나보내야 했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이 문장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문장들이 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작가가 내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처럼도 생각되었다. 공감. 그렇다. 공감이었다. 나는 이 문장에 크게 공감했기에 이 책을 계속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몇 문장에 소설 《검은 모래》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의미가 큰, 그렇기에 이야기의 처음으로 장식되기에 아주 탁월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필력에 대한 나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어느 정도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장들은 그녀가 신인작가, 그리고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내공이 느껴졌다. 문체는 내가 좋아하는 문체였고, 가끔씩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작가 자신의 철학들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는 물론 우리나라와 맞물린 세계사까지 총망라하고 있는 만큼, 게다가 더 세세하게 나아가 제주도와 일본 미야케지마의 역사와 지리까지 알아야 했으니 자료 조사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어야 했는지가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거나 무관심했던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뿐 아니라 이 소설에서는 정말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어떤 것들은 그저 교과서적인 기술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녹여 내어 풀어가기도 한다. 단순히 '디아스포라'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범위가 방대하다.
우리의 역사는 온갖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바다 속으로 잠수해들어가, 고통스러운 숨을 오랫동안 참아내야만 하는 해녀들의 기구한 운명처럼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런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소설 속 인물들 역시 비극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비극과 허무한 죽음은 아주 쉽게 예상되는 결과였다. 너무 뻔해서 시시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비참한 심경으로 읽어야 했다. 뻔히 아는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 뻔히 예상되는 그들의 죽음. 그 뻔한 비극과 죽음을 말릴 수 없고 막을 수 없어서 비참했다. 소설이니까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찰나의 희망도 어김없이 묵살당하고 말았다. 그러한 연속적인 죽음은 우리의 역사가 비극적이었음을 재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하였다. 소설의 아쉬운 부분이라면, 나는 미유와 요시다 토모야의 에피소드를 꼽고 싶다. 이 둘의 에피소드는 없는 것이 낫지 않았나 싶다. 아니 없었으면 했다기 보다도 다른 방향과 방식으로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둘의 에피소드 부분에서는 작가의 담담하던 문체가 갑자기 거칠어지기도 하고, 소설의 성격이 돌연 유치한 연애소설로 변질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이 소설에는 구월과 박상지의 사랑, 해금과 한태주의 사랑 이야기도 다루고 있지만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던 것과는 다르게 미유와 요시다 토모야 이 둘의 이야기에 와서는 작가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구월과 해금의 사랑을 잔인하고 슬픈 역사적 사실들과 맞물려 비극적인 실패로 끝을 냈다면 미유와 요시다 토모야 이 둘에게는 희망적인 미래를 남겨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구월과 해금과는 달리 미유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고 있는만큼 문체를 의도적으로 바꾸기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참신한 소재를 탄탄한 이야기가 뒷받침해주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나머지 것들, 소설의 제목,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들, 작가의 문체와 철학 등등은 모두 마음에 들었다.
일본의 무분별한 어업 침투로 생계에 위협을 느낀 제주도 주민들이 일본의 미야케지마라는 먼 이국땅으로 이주하여, 결국 고국으로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곳에 정착해서 살아야만 했던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하였다. 아니, 알지 못하기 이전에 아예 그들의 존재와 그들의 삶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었다. 작가는 이들에 대한 국가와 동포들의 무관심을 괘씸히 여겨 소설로 쓰고자 마음 먹었을 것이다. 검은 모래는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고 한다. 일본에도, 그렇다고 한국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독한 삶을 살다가 죽었갔을 수많은 우리 동포들, 그리고 그 고독과 무관심의 자리를 이어받아 여전히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을 그 후손들. 만약 건일과 미유처럼 철저히 일본어를 사용해서 살아가는 그들 중 누군가라도 이 검은 모래라는 소설을 발견해서 읽는다면 그들은 어떤 감상을 갖게 될까. 이 소설이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소설을 통해서 짐작만 해볼 뿐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그들이라면, 나의 이야기를 써주는 사람이 한국에 있구나라는 생각에 반갑고 감사할 것 같다. 많은 문학인과 예술인들이 이렇듯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배제되고 있는 역사들을 소재로 하여 작품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작품이 수상을 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다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좀 더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꼭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분명 그 책들은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책을 통하여 위안을 얻고,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그 책은 어떤 베스트셀러보다도 가치 있는 책으로서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검은 모래도 이 이야기가 필요로 되어지는 곳으로 당도하여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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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북스] 검은모래 ![]() 제주도 현무암이 잘게 부서져 만들어진 검은 모래해변, 그 반짝이면서도
거친 느낌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관련자료를
보게되었습니다. 1948년 발생한 4.3 사건의
진상보고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그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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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수십차례 여행지로, 근무지로 방문하면서 매번 세웠던 계획이 성산 앞바다에 길게 누어있는 "우도"를 가보는 것이다. 동서남북 투어를 하면서 꼭 가보고 싶은 우도를 결국 올해도 가보지 못했다. 내년엔 발들 디딜 수 있을까? 우도에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우도는 묘하게 다른 나라의 냄새, 색깔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거기에 해녀상 옆으로 검멀레 해변의 검은 모래도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통영의 몽돌로 이루어진 해수욕장과 같이 화산석이 부서져 검게 백사장이 아닌 "흑사장"을 이룬 해변도 걷고 싶고, 우도에서의 아침을 해녀가 맛나게 만들어준 전복죽 한그릇으로 시작하고 싶다. 아무튼 꼭 한번 이루고 싶은 소원이긴 하다. 우도가 갖고 있는 검은 모래가 작가 구소은에게는 귀한 글의 소재가 됐나 보다. 다시 재조명이 되고 있는 제주 4.3 사건의 역사를 이야기로, 역사의 흐름으로 풀어가는 작가 구소은이 2013년에 출간한 파란 바탕의 모래섶을 다시 검은 바탕의 모래로 표현한 "검은 모래"를 만났다. 검은 모래 해안가에서 태어난 구월이라는 인물의 역사,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독일 광부, 독일 간호사와 같이 먹고 살기 위해, 물질밖에 할 것이 없던 해녀들이 그들의 고향을 잠시 등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돈벌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물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해방 후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고향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아 결국 낯선 북조선의 땅에 자기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던 아들, 여전히 어머니 , 할머니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야만 했던 손녀 미유의 삶이 낯선 글 전개방식으로 풀어간다. 홀수 챕터는 할머니의 이야기, 짝수 챕터는 손녀의 시대를 풀어가며 글을 풀어간다. 대하드라마 한편을 본듯 하다. 마치 토지를 다시 읽는 느낌이라 할까? 4대에 걸친 가족사를 한땀 한땀 땀흘려 가며 읽어가야 했다. 일제 시대에 태어나 4대째인 나의 아들이 태어나던 그 해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갑자기 책의 이야기와 오버랩이 되는 느낌이랄까? 아직도 할아버지의 고향, 증조할아버지의 냄새게 베어 있는 바로 그 곳에 가지 못하고 우리의 말과 글을 읽고 살아가는 제일동포들의 삶은 비록 책을 읽지 않았어도 다양한 채널의 이야기로 익히 들어왔지만, 우도로 돌아가지 못해 다시는 검몰레 해변을 가보지 못하고 이국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제주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먹먹한 역사속 이야기로 다가온다. 내년 초 계획한 제주 여행에서 반드시 성공하고픈 우도 여행... 먹방이 아닌 역사탐방이 되어도 좋은 멋진 여행을 계획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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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북스 / 검은 모래 / 구소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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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태어났다고 하여 구월이라고 불리는 여인이 있다. 얼마나 얄궂은 이름인가 하면, 일제강점기, 1910년 8월 29일이 며칠 지나지도 않았을 때 태어나 힘없는 민족의 삶의 굴레를 짊어지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제주도 우도에서 태어나 해녀의 업까지 가지게 구월의 삶은 녹록치 않음을 예견했다. 열심히 일을 해도 갖은 명목으로 현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해양 자원까지 갈취해가는 바람에 전복과 생선의 씨가 말라 벌이마저 힘들어 진다. 곯은 배를 채울 수 있기를 바라며 일본의 미야케지마, 조선인 해녀집단으로 어린 딸 해금과 함께 정착을 하게 된다. 궁핍함을 벗어나고자 제주도 우도에서 일본 미야케지마로 이주하지만 그 생활도 결코 녹록치 않다. 구월에서부터 시작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삶이 딸 해금, 손자 켄을 거쳐 증손녀 미유까지 4대에 걸쳐 그려져 있다. 구월의 이야기에서는 일제의 약탈이 가져다준 조선인의 궁핍한 삶을 볼 수 있었다. 그를 벗어나기 위해 조선인 단체는 노력하지만 일제의 방해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고 남은 것은 가난밖에 없었다. 더불어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까지. 구석으로 내몰리는 삶이지만 억척스럽게 사는 구월의 모습이 해금의 삶에도 나타난다. 해금의 삶은 가난에 대한 저항과 더불어 일본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었다. 동생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인 한태준과의 사이에서 아들 건일이 태어나지만 내외부로 시끄러운 조선의 상황으로 한태준은 세상을 달리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해금은 일본에서 살아갈 아들을 위해 일본인의 호적에 오른다. 해금의 아들 건일은 일본에 사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냉대, 각종 부조리함을 겪으며 괴로워하고 그 부조리함에서 눈을 돌린다. 건일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켄이 되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정체성,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에 대한 사실에 대해 힘겨워한다. 해금을 좋아하는 딸 미유와 아내에 의해 해금에 대한 미움을 더 커져간다. 건일을 위한 삶을 사는 해금을 무조건적으로 미워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가난에 대한 저항하는 구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해금,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받는 건일, 그리고 조선인의 피를 받고 우익 집안의 남자와 사귀게 되는 미유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민족의 비애와 고충을 엿볼 수 있었다. 힘없는 나라의 민족이 겪는 삶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근현대사를 소홀히 생각한 게 부끄러워지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구월, 해금, 켄, 미유에 이르는 4대의 이야기는 역사와 함께 흘러간다. 때문에 역사적 사건이 많이 언급 돼서 역사를 잘 모른다면 초반에는 지루할 수 있을 것 같다. 힘없는 나라의 해녀가 일본으로 옮겨가고, 해방 후에는 반겨주는 곳 하나 없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미움 받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해금의 모습에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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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에 읽었던 손원평 작가님의 책 [서른의 반격]으로 <제주 4.3문학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제주 4.3문학상>에 관심이 생겼고 수상작들을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소 늦게 제1회 수상작인 [검은 모래]를 읽게 되었네요. 책명을 읽고 제주에 있는 삼양 검은 모래해변이 생각났는데 삼양해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네요. ㅎ
저는 제주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주여행을 종종 가고는 하는데 그러다 보니 제주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접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주의 이야기들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검은 모래]를 통해 다소나마 그런 갈증을 풀 수 있었네요. 책은 제주에서 태어난 구월이라는 인물로 시작해서 4대에 걸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구월의 어머니와 구월은 척박한 제주에서 잠녀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때는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고 제 고향에서 잠녀의 일을 하는데도 갖은 명목으로 돈을 내야하고 수입의 일부 빼앗기는 궁핍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척박한 삶 속에서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으로 출가 물질도 나가고 그러다 구월의 딸 해금은 일본의 섬에 터전을 잡게 됩니다. 구월의 사랑 이야기가 정말 마음이 아프고 그의 아들과의 이야기도 정말 슬펐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제주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재일 동포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금의 아들 켄 또한 어렵고 혼란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의 어머니 해금 또한 그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아냈던 것 같은데 켄은 어머니 해금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화를 내는 모습에 정말 마음이 아팠네요. 어머니와 자식이라도 그 삶의 깊은 곳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장면을 통해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슬픈 배경과 이야기 속에서 해금의 손녀인 미유의 장면이 이 소설의 청량함을 높여주는 좋은 캐릭터였다고 생각합니다. 미유의 이별 이야기는 다소 연극적인 요소가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소설 속 배경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네요. 일본의 정치인 집안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기도 했습니다만 그런 것 때문에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점은 유감스러웠네요. 그만큼 재일 동포의 삶은 우리가 멀리서 바라보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책의 마지막 부분쯤 해금과 아들 켄과의 화해는 가슴이 정말 뭉클했습니다. 그 화해의 동기 또한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점이 아쉬웠지만 언제나 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 그런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역사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볼 때마다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가를 다소나마 느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도 행복이라는 게 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벗어날 수 없는 시대의 운명 속에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아프고 슬퍼집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시대에도 작은 행복과 사랑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여행에서 해녀 할머니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섭지 코지를 걸어서 나올 때 해녀 할머니가 좀 도와달라기에 도와주었다 차를 태워주셔 함께 나오면서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눈 일인데 그 짧은 시간 속 추억은 저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기억이 생각났던 것은 어쩌면 그 할머니께서도 이 책에 나온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그런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아직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많이 있다는 생각에 다소 신기하면서도 놀랍게 느껴졌던 까닭입니다. 헤밍웨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모든 인생은 제대로만 된다면 모두 하나의 소설감이다"라는 말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지는 일입니다. 이 책은 제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구소은 작가님은 이 책이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이런 좋은 소설을 적으셨다는 것이 놀랍네요. <제주 4.3문학상>이라는 주제와도 정말 잘 맞는 소설인 이 책은 4대에 걸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어려움과 슬픔을 간접적으로 보고 느껴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들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고 우리가 이런 분들의 희생과 아픔 속에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좋은 책이었고 가슴 찡한 책이었습니다.
제주의 잠녀들은 타 지역으로 출가물질을 나갔지만 고된 노동의 대가는 보잘것없었다. 출가물질을 위한 준비 자금을 마련한다 해도 높은 이자율로 인하여 빌리고 갚아나가는 악순환은 반복될 뿐이고, 일본인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거나 다름없는 해녀조합에서 출가증을 사야만 출가물질이 가능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앞바다에서 물질하기 위해서는 조합비를 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그 조합비 내는 것도 아까운 판에 가족들 떠나 멀리 뭍으로 고생길 나서면서 3만원이나 하는 출가증을 사야만 한다니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p. 16)
거의 다 끝났나 싶었는데 히데오가 교단 앞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시카쿠 선생은 어려우면 들어가도 좋다고 했다. 그러자 히데오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더니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김우진입니다. 가네모토 히데오는 일본 이름일 뿐입니다. 나는 재일교포, 그러니까 재일한국인입니다. 일본에 사는 수많은 재일한국인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개의 이름 중에 본명은 숨겨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명으로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별이라는 불이익을 당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나는 거기에 대항하고 싶습니다. 이제 나는 본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나를 가네모토 히데오가 아닌 김우진으로 불러주십시오." 우진은 꾸벅 인사를 하고 제자리로 돌아갔고, 교실 안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박수를 친 사람은 시카쿠 선생이었다. 미유도 얼결에 천천히 박수를 쳤고 몇몇 학생도 따라서 박수를 쳤지만 소리는 작았다. 그 뒤, 우진은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어느 학급 어느 교실에도 있기 마련인 문제아들이 우진을 노골적으로 멸시하며 따돌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우진의 얼굴에 싸운 흔적이 심한 날도 있었고 팔에 깁스붕대를 하고 등교한 적도 있었다. 반면에 제일 골칫거리 문제아는 1주일을 결석한 뒤 가슴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우진에게 호의적이던 급우들도 문제아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귀찮아져서 아예 그의 존재를 지우려고 애썼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김우진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가네모토 히데오였다. 원래부터 말이 없던 우진은 왕따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리지 않았는지 염려스러울 정도로 한층 더 말이 없어졌다. (p. 204)
"네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든 항상 떳떳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네가 나를 오해하는 것은 상관없다만, 너를 낳게 해준 친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었어. 그런데도 넌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냐?" "한국인이요? 제가 어떻게 한국인인가요? 한국말? 전 다 잊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본인입니까? 천만에요, 일본인인 척 연기를 하면서 살 뿐이죠. 그까짓 피가 뭐라도 된답니까? 제 인생을 얼마나 아십니까? 생명 하나 준 것으로 생색냈으면 됐습니다. 그 생명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알기나 합니까? 일본 땅에서 일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려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디딤돌이 아닙니다. 걸림돌일 뿐이죠. 그것이 현실입니다." 켄은 말하는 내내 핏대를 올렸다. 해금은 예리한 칼날로 가슴을 난도질당한 것 같았고, 공중으로 냅다 던져진 것 같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p. 282)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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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아픈 기억들, 특히 한 시대를 드러내는 사건들은 여전히 그때의 날이 다시 돌아오면 여전히 가슴 한편이 아프다.
한반도란 땅에서 떨어진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읽으면서 역사의 한 부분을 관통하고 있던 부분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를 주었다.
2013년 제1회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검은 모래>란 이 작품이 다시 출간이 되면서 접한 기분은 여전히 당시의 삶을 이어간 사람들에 대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평생을 해녀로 살아간 제주도의 해녀들의 삶, 거친 자연환경도 그녀들의 삶을 같이 부여잡고 살아갔지만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한 일제의 강제 점령기는 결코 그녀들에게 평온한 삶을 주지 못했다.
제주 여인인 구월과 해금의 삶을 통해 본 그녀들의 삶과 그 삶 안에서 살아가려 했던 모진 세월의 극한을 그들의 자손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은 일본 속에 재일 한국인이란 신분의 세계를 같이 이어가면서 더욱 먹먹함을 지니게 한다.
세계 속의 각 나라들이 처했던 이러한 상황들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한 나라의 국민이 어떻게 자신의 고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 그 안에서 한국인의 뿌리가 점차 일본이란 나라에 살면서 어쩔 수없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워버려야만 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현실적인 고통, 고뇌,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생각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책은 4대에 걸친 제주 여인의 삶과 그 자손들의 삶까지 포함시키면서 육지에 극한 됐던 한국의 아픈 역사가 제주도라는 섬에까지 넓혀 그 역사의 현장으로 오게 만들었고 일본까지 그 범위를 펼친 저자의 필력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보다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다뤘다.
일본 내에서 같은 한국인이라도 조총련, 북송 귀국 민, 재일 조선일들에 대한 처우 개선들은 알고 있었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그렸다는 점에서 이 책은 책 제목처럼 한 손에 모을 수는 있지만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모래, 특히 제주 여인들의 한 많은 삶을 토대로 그린 개인의 삶과 역사가 검은 모래 그 자체를 연상시켰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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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래’는 제주에서 미야케지마로 삶을 위해 떠났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디아스포라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 / diaspora)’란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기존에 살던 곳에서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본토를 떠나 다른 곳에 항구적으로 정착한다는 점이 유목이나 난민과는 좀 다른데, 전쟁으로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아야만 했던 한국 사람들을 잘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 가족들도 그렇다. 이들은 개인의 바램이나 영화를 쫒아 이주를 한게 아니었다. 그저 일제강점기라는 국가의 이상 사태에 휘말려 여러 고초를 겪게되자 어쩔 수 없이 떠밀렸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 후의 일 마저도 썩 평탄하지만은 않다. 이들이 겪는 일들에는 때로 분노가 차오르기도 하고, 어쩔땐 슬픔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담담하게 기술해나간 것 치고는 의외로 짠내나는 이유다. 감정에 크게 젖지 않는 것은 작가의 성향으로 보이는데, 그게 조금은 이 이야기를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그건 작가가 그만큼 이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고 꼼꼼히 써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이책 기준으로는 300여쪽밖에 되지 않지만, 읽기에는 600여쪽 정도는 되어 보였다. 4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를 크게 둘로 나누어 전개한 것도 꽤 괜찮다. 각각은 할머니와 손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 두 이야기는 묘하게 서로 분위기가 다르면서도 또한 잘 어울렸다. 이들이 겪은 고초들은 시대가 남긴 아픔이었기도 하지만, 그들이 끝내 디아스포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단순히 그 뿐만이 아니었다는 게 우리에게 못내 부끄러움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