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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준 뿌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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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라는 낱말을 듣거나 소리내어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일까? 어떤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를까? 아마 좀비에 대한 배경지식의 차이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는 좀비의 생성 배경도 역사도 전혀 모르고, 좀비영화는 한번도 안 봤다. 몇 년 전 공유가 나온다기에 보러 간 영화 "부산행"에 나온 좀비들이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래서 그저 징그럽고, 뱀파이어는 아닌데 물리면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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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라는 낱말을 듣거나 소리내어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일까? 어떤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를까? 아마 좀비에 대한 배경지식의 차이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는 좀비의 생성 배경도 역사도 전혀 모르고, 좀비영화는 한번도 안 봤다. 몇 년 전 공유가 나온다기에 보러 간 영화 "부산행"에 나온 좀비들이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래서 그저 징그럽고, 뱀파이어는 아닌데 물리면 질병에 감염될 것만 같은 끔찍한 대상 정도로 기억속에 남아있었다. 일부러 좀비물을 찾아보거나 좀비게임을 적극 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작가 '후지타 나오야'는 1983년생으로 30대 중반이다. 소개를 보니 공대를 나왔고 현직으로 SF•문예평론가라고 되어있다. 사회학 전공자도 아니고 나이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좀비'라는 키워드 하나로 이렇게 사회 각분야와 연결한 글을 썼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 좀비사회학이라는 독창적 연구는 그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영미권에 선연구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연구만으로도 작가는 좀비사회학 분야에서 선구자,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좀비가 어떻게 쓰이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또한 인간과 좀비와의 상관관계까지 촘촘하고 심도있게 그려내고 있다. 역사에 따른 종류 구분, 네이밍 작업, 그리고 근현대 학자들의 사회나 심리 분석과 좀비와의 연결도 자연스럽다. 단, 책에서 인용하는 좀비 영화(주로 미국 영화)나 일본 만화, 게임들 중 하나도 접해 본 것이 없어서 낯설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독자들을 논의하고 설득하는데에 부족하지는 않다.
1부는 정치•사회
2부는 과학•기술
3부는 신체•생사 로 구분했고,
각 부마다 3장씩 나누어 총 9장에 걸쳐 논증하고 있다.

1부 정치•사회에서는 신자유주의에서 드러나는 현상들과 좀비와의 유사성을 파헤친다. 그동안 좀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우리는 이미 좀비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던 'O포 세대'속의 그 세대들은 오히려 좀비를 부러워했단 말인가. 작가는 좀비화된 인간이 주인공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왜 그만두었는가.
그만둔 탓에 나는 쭉 죽어있는 것과 닮은 상태가 되었다.

•••
살아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생각도 못하고,
배회하기만 할 뿐인 존재가.
좀비가 되고 싶다."

 일본 사례지만 우리와 그다지 차이점도 없어 보인다. 또한 '우리가 좀비다!'라는 감각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데 그 이유로 뇌과학, 중독증, 비디오 게임, 쇼핑몰, 관리사회 등을 들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좀비와 가까운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2부 과학•기술 각 장의 제목은,
4장 '미디어테크놀로지와 좀비'
5장 '뇌과학화한 생명 권력:의사없이 관리되는 존재로서'
6장 '계산기와 좀비:흔들리는 인간 개념'이다
.

 

4장에서 작가는 마셜 맥루언의 논리를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태어난 새로운 주체가 미디어를 통해서 과거보다 유동적인 존재로 구축되었다면, 그런 자기와 유사성이 있는 좀비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5장에서는 우리가 이미 인간관리 테크놀로지를 통해 컨트롤 당하는 사회속에 살고 있다고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런 가설을 내세운다.

 

 좀비란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어떤 힘이 신체나 무의식 안에 작용하여 의사나 행동이 통제되는, 그러한 생명 권력이 작동하는 세게속 인간이 가지는 '살아간다는 감각'에 대한 메타포가 아닐까요. 즉 좀비란 인간이 의사나 의식 외부에서 컨트롤 당하고 있다는 무의식적 감각의 산물이라는 말입니다.

 

 6장에서는 여러 게임과 소설을 인용하는데 마지막에 2012년 출간된 하세 사토시의 소설 <BEATLESS>의 대사를 소개한다. 작가는 하세 사토시가 제시하는 '뇌과학화한 생명 권력'에 컨트롤 받으며 반쯤 좀비화한 유약한 우리와 인공지능과의 화해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지만, 등장인물 AI의 대사에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어째서 인간은, "사물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까?

 

"인간은 인간을 만든 존재를 신으로 숭상하며 부모처럼 사랑합니다."

"인간은 인간 자신이 만든 사물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언젠가 신에 대한 숭경도, 동포애도 아닌,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에 대한 사랑을 가리킬 수 있도록."

 

 3부 신체•생사의 7장에서는, 좀비는 가상 허구의 존재이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신체이자 허구라는 2중의 성질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2부에서 나온 개념인 '뇌과학화하는 생명 권력'을 통해 관리• 유도되는 우리의 신체를 투영하는데 좀비가 적절하고 우리와의 유사성도 있다는 것이다. 9장에서는 아이돌과 좀비의 유사성을 설명하는데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

아이돌은 미디어 속에 있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의 신체를 길들이고 우리 스스로 '보는 입장'에서 '보여지는 입장'으로 바뀌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감염'의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돌은 신자유주의하에서 가혹한 경쟁을 강요당하고 있고, 그런 '생존전략'자체가 하나의 구경거리입니다.

 

불안감과 위협을 안기며 무언가를 뺏아가는 존재들이 엉뚱한 화풀이 대상이 된다고 했는데, 작가가 분류한 대상들은 '재일 한국•조선인, 흑인, 외국인 노동자, AI, 비정규직및 정규직 피고용자'이다. 뭔가 기시감이 든다. 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그들을 좀비 대하듯 하지 않았나. 작가는 자신의 위협과 공포와 불안이 진짜 어디에서 왔는지 찾자고 말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좀비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자고도.

  작가는 많은 책과 다양한 미디어 속 좀비들의 모습으로 현대사회와 인간의 유사성을 논증해 냈다. 전혀 무관심한 대상이었던 좀비, 그 좀비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고, 오랜만에 시간들여 정독한 뿌듯함도 느낀 즐거운 시간이었다. 작가의 연구에도 경의를 표한다.

 

 

l******g 2018.07.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