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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국주의와 중화민족주의 추종자들의 불협화음
"미제국주의와 중화민족주의 추종자들의 불협화음" 내용보기
중종,인종반정자칭공신들 그들이 몰아낸 세력이 가지고 있는 여자들과 재산을 자기들이 나누어가지고 호의호식하였다. 장준하평전을 본다 해방후 독립군은 일본인이 끼고놀던 여자들이 있는 술집에서 그들이 끼고놀던 여자들끼고 술먹고 놀았다. 4.19학생혁명(정부구성이 안되었으니 혁명은 아니지) 학생들 기생끼고 놀았다. 민주화이후 의회에 진출한 박노해등 386의원들 룸싸롱에서 여
"미제국주의와 중화민족주의 추종자들의 불협화음" 내용보기

중종,인종반정자칭공신들 그들이 몰아낸 세력이 가지고 있는 여자들과 재산을 자기들이 나누어가지고

 

호의호식하였다. 장준하평전을 본다 해방후 독립군은 일본인이 끼고놀던 여자들이 있는 술집에서

 

그들이 끼고놀던 여자들끼고 술먹고 놀았다. 4.19학생혁명(정부구성이 안되었으니 혁명은 아니지)

 

학생들 기생끼고 놀았다. 민주화이후 의회에 진출한 박노해등 386의원들 룸싸롱에서 여자끼고 놀았다.

 

안희정,정봉주..... 정권교체후 어느 노인분의 말 '그늠이 그늠이여'


김일성의 기쁨조나 박정희의 채홍사나 진보의 기생파티나 쯧쯧

 

페이지360 레닌의 소위2개의 중앙조직이론 (레닌이 훌륭한가 그는 평생 노동한번 안해보고 지주로써

 

소작농들의 지대를 받고 살았다.) 여운형선생은 자신의집 노비들을 모두 해방시키고 홀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프라하의 소녀시대,여운형평전)

 

같은 기자출신인 한겨레기자가 쓴 '햇볕정책에 대한 변론'과 많이 차이가 난다.

 

독자들도 하나의 사건을 여러각도에서 보는 눈이 필요하다.

 

책이 전체적으로 급속히 진행하면서도 자세한 논술고 논평으로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여러사람들의 논고를 실었다. 조사 정말 철저히했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우리나라 진보의 대표적 양심인 장준하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 옥의 티다.

 

황당한 사건도 많지만 정말 황당한건 페이지384,자금모집하려 남의집털기(사노맹)

 

페이지252노무현정부들어 남의 집을 털고 예비군훈련장에서 소총을 훔친 '남민전'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선정

 

군사정부에서 전두환 닮았다고 박해한 사건 진보정권에서 개그맨 심현섭씨 보수정권에서 김제동씨

 

정말 독재,진보,보수가 너무 닮다못해 아예 똑같다. 그리고 서로 잘났단다 그리고 다르다 차별한다.

 

'굿바이 게으름'이란 책을 얼마전에 읽었다 뒤에 국정원직원 필독도서란 표식이 달렸다.

 

이 책에 그런 표식을 달아야하지 않을까 정말 진보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자세히도 조사했다.

 

내가 읽은 진보서적중에 최고였다.

 

전체가680페이지인데 컴퓨터사정상 pc방에서 어쩔수 없이 리뷰를 쓴다 그래서600페이지까지만 읽었다.

 

노무현에 대해서 페이지566손호철 '노무현이 유연할지는 몰라도 진보는 아니다.'

 

천성산 지율스님의 책'초록의 공명' 천성산 공약으로 해서 표를 몰아줬더니 이거 약속 안지켰다.

 

'새만금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이것도 공약으로 내걸더니 표받고나서 공약 없었던거로 했다.

 

너무 비겁한 신자유주의자 페이지509미국가서 아주 실컷하고 돌아오면서 갈릴레오을 이야기하다니..

 

페이지546민노당 제17대총선공약-이렇게만 된다면 진보는 어디서나 환영받을것이다.

 

당재정현황을 빠짐없이공개

의원의 세비도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인180만원만-대학생들의 학회비도 모두 공개해야한다.

당직과 의원직분리

 

이런 정신이 금방 사그라들어서 탈이지

 

455페이지가 적절한 비유같다.

사회복지는 먹고,병고치고,교육하고 거주하는 일을 정부가 책임지는 구호적 복지정책인데 반해

생산적복지는 제 힘으로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교육,훈련을 맡는 자활적 복지정책-나는 후자가 정답으로

생각한다. 새둥지를 생각해보자 언제까지 먹여주고 재워주어야하나

 

페이지450김대중의 국민회의 뿌리는 행방직후 창당된 정통보수정당인 한민당과 이를 계승한 민주국민당

 

및 민주당이다.

 

블레어수상의 브레인<<제3의길>>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는 김대중을 "중도좌파"로 평가했는데

 

이 책 유럽좌파를 소개하면서 많이 소개되었다 기회되면 빠른 시일내에 읽어봐야겠다. 리스트에 담는다.

제목 : 어느 운전사의 실수

 

 

1914년 6월 28일 오전11시 화창한 여름날 아침이었다.

 

승객 두사람이 탄 자동차가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비좁은 통로를 지나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

 

그런데 이날 이 자동차 운전사가 저지른 실수는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세계사의 진로를 바꿔놓았


다.

 

이 자동차는 불행하게도 열아홉살의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학생 가브릴로 프린시프앞에 멈춰섰고, 세르비

 

아 테러조직 '검은 손' 에 소속되어 있던 프린시스는 눈앞에 다가온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두 번 당겼고, 차 안에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

 

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소피 대공비가 30분만에 숨졌다. 오스트리아는 이 암살사건을 세르비아 침공의

 

빌미로 삼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편에 서자 세르비아의 보호를 공언하고 있던 러시아도 가만 있을 수 없

 

게 되었다.

 

단 30일만에 국가들 사이에 실타래처럼 얽힌 위협과 동맹의 연쇄 반응으로 거대한 군대가 동원되었다. 그

 

리고 오스트리아,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터키는 엉켜버렸다.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유이

 

며 5년뒤 1,000만명의 목숨이 사라진 뒤에야 이 전쟁은 끝이 났다.

 

  나폴레옹전쟁 이후 심심해하던 유럽역사에서 1914년 이전은 길고 평화로운 오후 같은 시대였음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 시대의 역사가들에게는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설

 

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닥친 듯한 사건이었다.

 

전쟁에서 영국은 미국을 끌어들이고 프랑스와는 기존의 두나라의 식민지로 있던 아랍땅을 나누자는 사이

 

크스-피코협정을 체결하고 유대인에게는 독립국을 세워준다는 영국수상 벨푸어선언을 해 군자금을 조달


하고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아랍의 하심왕조와는 전쟁후 팔레스타인을 주는 조건으로 후세인-맥


마흔서한을 각각 체결하게 된다.

 

하나의 땅을 놓고 책임질 수 없는 세가지 약속을 해 오늘날 중동사태의 발발 원인을 제공한다.

 

연합국편을 들던 소련이 1917년 공산화되고 전쟁에서 빠지자 공산혁명주체세력중에 유대인이 많다고 잘

 

못판단한 영국은 유대인에게 잘보이기위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을 적극지원한다.

 

형제국 터키를 배신할 수 없지만 결국엔 터키에 총을 겨눈 하심왕가에 의해 중동에서 겨우 승기를 잡은

 

연합국은 승리하게되고 발칸의 산악지대에 각각 독립국으로 흩어진 소국들을 달래기 위해 미국의 윌슨대

 

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는데 대한민국의 선각자들은 이걸 잘못해석해 발칸반도에 국한된 선언을

 

우리에게도 해당되는걸로 알아 3.1운동이 촉발되고 이에 영향을 받아 두달후 중국에선 5.4운동이 그후 인

 

도에선 비폭력저항운동이 간디에 의해 일어난다.

 

연합국이 독일에 전쟁배상금을 요구할때 정부의 간섭을 극대화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학설을 주장한 경

 

제학자 케인스가 만일 그렇게되면 인플레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다른 독재자가 등장해 세계는 혼란

 

스러워질거라 예견했으나 이를 무시당한다.

 

1933년 정당한 방법으로 집권한 히틀러는 세계대전을 일으켜 3,000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연합군에 항복

 

한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에 몰두해있어 관동군에 정보가 거의 없는관계로  관동군의 전력을 너무 과대평가해


 소련의 참전을 유도했고 천황직속군사령부인 대본영이 그은'38선'에 의해 그 북쪽은 소련군이 무장해제


시키고 남쪽은 미군이 무장해제 시키는 선으로 그은 것이 영구고착화된다.

 

이후 중국대륙을 거의 지배한 국공내전의 승자 장개석에게 소련은 1946년 1월5일 '중,소우호동맹조약'이

 

체결됨과 동시에 중국에 압력을 넣어 중국은 정식으로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중국공산당은 1933년 10월부터 국민당 정부군에 쫓겨 중국대륙을 남쪽으로 반바퀴돌면서 1만km를

 

걷는 이른바 대장정에 나서기도 했다.

 

1946년 6월 국민당정부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동북지역 남부권까지 밀린 중국공산당세력은 북한지역으로

 

까지 후퇴해야했다.

 

국민당정부 세력에 의해 최악의 순간까지 밀렸던 중국공산당 세력에겐 두가지 행운이 있었으니 하나는

 

조선인들의 목숨을 마다않고 전투에 임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북한이 후방기지로서 역할해준데 힘입어

 

1947년 7월부터 대반격을 취할 수 있었고  이 시기를 틈타 소련군에 의해 군사훈련도 더불어받아 강병으

 

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대전후 공업시설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미국의 제일 큰 걱정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는데

 

공산주의가 생겨난 가장 큰 배경은 '잘살아보세'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추워서 확산이 어려울 것이고 발칸

 

은 산악지대라 확산이 어려울 것이고 동서독 국경이 가장 위험한 지역인데 여길 막는 길은 마샬플랜으로

 

이름지어진 막대한 경제원조를 서독에 하는 것뿐인데 그렇게되면 독일에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우방국

 

프랑스가 등을 돌리게 되니 프랑스가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베트남에서 디엔 비엔 푸 전투이후 고전하고

 

있던 프랑스대신 베트남독립군(월맹)을 이끄는 호치민과 전투하는 길 밖에 없어 월남전을 개시하게되고

 

여기에 한국도 참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은 경제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었고 미국이 한국을 예쁘게 봐주어 토목기술이 전

 

수되고 중동특수를 누리게 되었고 미국에 의해 카이스트도 설립하게 되었다.

 

1949년 10월 중국의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돌아간후 중국은 8로군에 편입되었던 조선의용군을 대

 

륙평정후 북한으로 돌려보내 6.25전쟁을 수행한 중요한 병력이 되게한다. 북한군의 전투력이 0.5라면 조

 

선족의 전투력은 1.5였다고 한다.

 

이승만정권은 북한이 비밀리에 남침준비를 하는 위기상황에서 좌익 지창수의 선동으로 일어난 14연대 반

 

란사건등좌익에 의한 국가전복음모가 끊이지 않자 1948년 11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 그 전신인

 

김구,서재필,송진우선생과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한민당과 협의를 거쳐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처벌문제가  흐지부지된 것도 이승만정부로서는 공산당에 대한 수사경험이 풍부한


일제 고등계 출신을 다시 쓰지않으면 나라전체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갈 위급한 상황이라


김구선생님의 한민당과 협의하여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당시에는 좌익에 대한 걸름장치가 없어 사상에 관계없이 아무나 군대에 입대시킨 것이 현실이었다.


6.25발발이전 북한의 주력부대에 배치된 조선족은 무려 6만5천여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전쟁발발 당시

 

약20만명의 북한군 병력중 30%에 가까운 것이었다.

 

전쟁후 새로수립된 일본정부는국민들에게 제대로된 역사교육과 민주교육을 시켰으나 일본이 최후방어선

 

이라 여긴 미국은 일본내에서 군,정에 경험이 많은 전쟁범죄자들인 우익세력을 재등용하게 되고 오늘

 

날 자민당차원에서 야스쿠니신사참배를 하게되는 우경화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중.일 삼자구도와 중국의 남중국해로의 영해확장문제가 진행돼 2016년까지 다투게 되는데 여

 

기 산호섬은 수많은 생물의 서식처로 세계적 생태보고인데 여기다 군비행장까지 건설하고 지금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   진보여러분 꼭 읽어보세요

 

제목 :우리대통령 후진타오

 

얼마 전 한국국적을 취득한 조선족아주머니의 식당에서 들은 이야기다.

연변에서 조선족과 중국인이 일대일로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지나가던 조선족은 잠깐 싸움 구경을 하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처럼 자기 볼 일 보러 가지만


지나가던 중국인은 마치 자기가 당한 일 인양 흥분하여 한 명이 지나가면 이대일 두 명이 지나

 

가면 삼대일의 싸움으로 변한다고 한다.


60-70년대엔 조선족자치주에 사는 중국인이 10-20%비율이었으나 지금은 과반이 훨씬 넘은

 

지 오래라 한다.


  그 때가 북경올림픽전의 티벳봉기가 있었던 때인데 조선족 아주머니왈 티벳 탄압에 항의해

 

시위를 하던  황색승복 입은 사람들을 자기조카(조선족)가 티벳 진압부대에 배치되어 있을 때

 

골라가며 쏴 죽였다며 자랑을 하는 것이다.(오랜 시간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에 동화가 많이 되

 

었나보다)


또 서울시내에서 티벳 탄압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에게 돌을 던진 중국유학생의 행동은 잘한거

 

라 말을했다. 우리중 반대의견을 제시하자 불같이 화를 내던 조선족아주머니


자기딸이 북경항공사에 취직했는데 한국국적을 버려야 하는 조건이 있어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딸이 얼마전 보내온 소식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때 감동되고 가슴이 떨려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한국국적을 버린 그 딸의 자식은 과연 자기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알기나할까 연꽃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자신을 받쳐주는 푸른 잎이 필요하다.

간도,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구호가 있어도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정체성이 흔들리는 조선족의 현실을 보며 몹시 안타까웠었다.


한국에 있는 화교를 보자 자기들끼리 팔아주기 자기들끼리 있을땐 무조건 중국말 쓰기는 자연

 

스런 일상이다.


중국도 선박물량을 자국기업에게 몰아주기등 이런 경우가 외국에도 있겠지만 중국은 그것이

 

고대부터의 민족전통이다.


그들은 또한 필리핀 근해의 미스지프 산호초를 국제분쟁화 시켜 1995년 강제로 점령했으며 인

 

도네시아 나투나섬 인근 유전의 영유권에도 개입했고 우리의 이어도도 서서히 자기네 땅이라

 

우기기 시작했으며 인도중국전쟁으로 150킬로를 인도로부터 빼앗았다 일본과는 조어도분쟁

 

베트남의 스프래틀리제도 전체의 영유권문제도 79년 베트남중국 전쟁의 빌


미가 되었을 것이다.

토인비는 그랬다 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속성의 망상’ 에 눈이 멀어 자기네 문명이

 

인류사회의 최종 형태라는 명제를 신봉한다고...


  북경올린픽때 우릴대하던 그들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88올림픽때 미국과의 순간적인 감정싸

 

움과는 근원부터가 다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중국지도부의 부추김 아래 내부단결하여 한반도를 삼키는 노선이 이

 

어질 것이라는 건 여러 논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하버드대 석학 세뮤얼 헌팅턴교수의 문명의 충돌은 지구촌 지식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야하는

 

필독서지만 거기엔 ‘기원후 100년에서 400년 사이에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출현한 일본문

 

화’ 라는 문장이 나온다.


  ‘제국의 미래’를 쓴 중국계 재미교포2세 에이미 추아 교수는 방대한 자료를 개연성 있게 편집

 

해 제국의 흥망성쇠를 가장 치밀하게 다루었다는 찬사를 받지만 그는 책 중간에 한국은 고대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중국의 일개 지방이라 기록하고 있다.

팍스 시니카의 색채가 옅은 재미교포2세가 이럴진대 중국본토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663년

 

백강전투후 용산 미군처럼 실질적인 지배없이 8년간 주둔만 했어도 백제가 진짜 중국땅인걸로

 

인식하고 있으며 4군6진등의 고대한국의 북진정책은 자기들땅이 조금씩 한국에게 잠식당했다

 

고 인식하게끔 중국의 젊은 세대는 교육받고있다.


  모든 중국인들은 한국이 중국땅이 되어 하나의 성이되길 바라고 동북공정을 통해 이루려고

 

한다. 독도문제는 발끈하면서 한국땅은 중국땅이라는 논리인 동북공정엔 아무도 흥분안한다

 

왜일까.


진시황이나 마지막황제 푸이가 유목민이라도 상관없다 그네들은 스스로를 황제족이라 생각하

 

니까 은허의 갑골이 이미 유목민의 것이라는게 판명이 났어도 그네들은 팍스 시니카다.


김유신과 화랑이 당과 잘 싸웠지만 서쪽에서 지금의 터키와 위구르인 돌궐족이 국경을 침범하

 

였기에 본국으로 군대를 뺀것이고 6.25때 세계의 눈이 한반도로 집결될때 51년 신장지역을 침

 

공해 옛 돌궐땅을 병합해 버린다.


하지만 우린 중국인의 시각에서 돌궐을 무슨 괴물 바라보듯하며 우린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

 

이 있음에도 상종해선 안될 부류로 취급하고 있다.


중국인의 관점에서만 사대적으로 북방민족을 바라보니 겪어보지도 않고 밉게만 보이게 우리의

 

시각을 키운거겠지.


중국사서엔 고조선의 수도에 흐르던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송이나 원등 역대 왕조에서 고

 

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적고 있지만 지금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잘못 오기한 걸로 취

 

급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에는 국민적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몽고도 13세기에 와서야 민족

 

정체성이 성립되었지만 중국은 진시황이전부터 존재하였기에 그들의 고대사서엔 진시황을 더

 

러운 흉노로 기록했으며 유방을 정통 통일제국을 일킨 최초의 수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1951년 육이오로 인해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쏠릴 때 모택동은 8만5천의 병력으로 라싸로

 

진군을 명한다. 현 티벳정책에 대한 세계의 비난과 티벳인의 폭동은 다 부질없다.


반수는 죽이고 반수는 거란처럼 중국인으로 동화시켜 버리면 되기에 천장철도를 만들어 한족

 

을 대거 이주시키나 보다.


 또 관광산업을 위하여 포탈랍궁과 철도주변만 민속촌식으로 티벳고유의 가옥형태를 허용하고

 

그 외 유서깊은 건축물우리로 말하면 불국사나 명동성당 같은 건축물이나 유물은 모두 파괴했

 

다.


  우린 일제시대 이유야 어떻든 군장성까지 오른 인물도 있었지만 중국은 티벳 현지에서 단 한

 

명의 티벳인에게도 말단공무원자리 하나 허락하지 않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전에 티벳에서 봉기한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수많은 티벳인들이 목

 

숨을 잃었다 하지만 1987년에 있었던 티벳봉기를 유혈진압한 장본인은 그당시 그곳 수반으로

 

있던 후진타오였고 그들과 타협을 거부했던 건강했던 판첸라마는 5일후 아무 이유없이 심장마

 

비사 했다 그리고 세계언론이 아직 북경올림픽에 쏠려있을 때 그는 우리나라에 왔고 우리 정치

 

인들은 그와 같이 사진 못찍어 안달이 난 느낌을 난 받았다.


  삼국지 대목중 손견이 옥쇄를 주고 1,000명의 군사를 원술에게 청하지만 오히려 원술은

 

2,000의 원군을 준다 5,000명의 손견의 군대에 동화되지 않기 위하여....


  운남과 연변은 이제 중국인의 수가 월등해졌고 티벳, 신장, 내몽골의 원주민도 인디언이 쓸려

 

나가듯 중국인의 물결속에 쓸려나가길 그들은 내심 기대하는걸까. 네팔왕은 티벳독립군에게

 

온정을 베풀었지만 새왕이 등극하자 장쩌민은 네팔과 인도의 갈등을 이용하여 크게 후원해주

 

는 대신에 티벳독립군의 무장해제를 유도해 관철시킨다.


북한같은 개차반 정부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중국지도부에서 방문해 큰 선물꾸러미를 풀고가

 

는 이유는 왜일까


미얀마도 군사독재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음에도 매년초마다 중국지도부 인사가 돌아가면서 방

 

문해 큰 선물보따리를 풀고가 인구800만의 미얀마에 1-2곳에 불과하던 차이나타운이 지금은

 

10곳이상으로 불어났다. 티벳으로 한족이 이주하는 것과 너무 닮았다 단지 다른게 있다면 정

 

권이 중국이 아닌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는 정통성없는 군부지도자에게 있다.


는것뿐 중국이 개방을 했다하나 언론통제는 세계7위로 북한과 비슷하고 고위공무원의 비리를 


캔 기자는 구속에 더해 심한 외상을 입는다. 89년 천안문민주화운동직후 삼엄한 분위기속에 총


리 관저앞에 파룬궁회원 1만명이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시위를 한게 발단이 되어 국가전복의 위


험을 느꼈는지 파룬궁에 관련된 사람이 연행되었다 돌아오면 식물인간이 되어 죽을날만 기다


릴 정도로 고문을 받는다. 원리주의일까


왜 그렇게까지 과민하게 대할까 한낱 기체조일 뿐인데 체제붕괴에 대한 심각한 위기감이 작용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부대개발은 중국의 국채를 유지하며 티벳, 위구르 이족들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다.


유목민의 땅을 영구히 중국땅으로 만들려는 수천년동안 내려오는 이민족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우린 이명박정부휘하 기업들이 참여하길 희망하는 그 사업의 의도를 파악하고 하루 빨리 모든 


기업이 그곳에 대한 관심을 접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서부대개발은 서쪽에서 이루어지는 또 하


나의 동북공정일 뿐이다.


  노무현대통령말에 원자바오 총리가 대표단을 끌고 청와대를 방문해 회담을하며 우리는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걸 강조하며 지나치게 분위기를 띄운다. 왜 그 당시 동북공정, 교과서문


제등 시끄러운 때이고 우리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제스처일 뿐이다. 2009년 간도협


약 100주년을 얼마 안남긴 시기이기도 했다.


또 후진타오 총리는 이명박대통령이 대통령취임후 첫 중국방문때 하고많은 유적지중 건륭제현


판을 보여주었을까 그리고 그를 중국인이라 호칭했을까


건륭제는 중국인이 아닌 우리와 같은 동이인 만주족이었지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우리 


대통령이 웃는것 이외에 무얼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모든 행동의 초점을 은연중에 동북공정


에 맞춰놓고 있다.


동북공정은 한국의 역사를 사라지게 하는게 목적이고 역사가 사라진 민족은 주변민족에게 흡수되는 전철을 밟을 뿐이


다.


이성계, 인조가 집대성한 새끼중국인 사상인 소중화사상의 신봉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상실된 자리에 중국인의 전통인


장자세습, 과부의 재가금지, 남존여비, 시집살이, 항렬따지기 가 언제부터인가 가보로 전승되고 있다.


  조선건국 후 우린 무엇을 부탁한다는 주청사를 그들은 아랫사람을 훈계한다는 칙사를 보냈다. 무얼 그리 청할게 있던


가 려말의 간신 이인임이란 자의 아들이 이성계라는 잘못된 문구를 고쳐달라고 180년간 통사정을 하고 임란 20년전 선


조당시 그들이 조선의 청을 들어주었기에 선조는 임란때 조선의 복식과 제도는 모두 대명의 것이라 비굴한 모습을 보였


던가 기마 1만만 있으면 세계를 정복할 자신을 과시한 누루하치가 임란직후 3만의 기마대를 댓가없이 지원한다했지만


선조는 더러운 오랑캐라 하여 이를 거절하고 왜군보다 민초들에게 더 큰 해를 입힌 명군을 받아들인다. 또한 선조의 두


려움은 이성계가 왜구를 격퇴하고 군권을 강화해 왕위를 도둑질했듯 이순신도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오죽이나 불안했


을까 만일 역심을 품는다면 큰일 아닌가.


  그리고 1637년 정월 30일 지금의 송파인 삼전도 수항단에서 청태종에게 삼궤구고우(이마를 땅에 닿도록 세 번 절하는


의식)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고대부터 겨울철에 동남풍이 불면 양자강의 미꾸라지는 배를 뒤집는 습성을 보인다.


제갈량은 강가의 미꾸라지를 보며 기후변화를 간파하고 공격할 것을 명하지만 무슨 도술은 부린양 숭배하며 조조도 5만


의 원정군만 끌고가 현지에서 20만으로 늘린것뿐인데 무슨 100만의 정병으로 원정했다는 허풍과 입담으로 꾸민 이야기


를 우린 살수대첩보다 더 애착을 느끼며 믿음을 더 키워가는가 유비는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중국인을 연상시키기에 그


들이 좋아하는것이고 조조는 영웅임에도 고대부터 북방민족이 중국과 싸웠듯 조조가 북쪽에 있으니 중국과 북방민족과


싸우는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이겠지.


얼마전 우리의 공영방송에서 중국이 만든 드라마 칭기즈칸을 방영했다 그는 몽골인의 조상이며 중국을 침략한 침략자인


데 중국인들은 마치 그들의 조상인양 그를 찬미한다.


우리가 이토 히로부미와 풍신수길을 찬양하는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대충 맞을 것이다. 여기도 동북공정이 있


다 연개소문 누루하치 칭기즈칸을 중국인의 조상으로 만들면 그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땅도 중국땅이 된다. 그런데 왜


우린 그런드라마를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거기에 대해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중국의 선결과제인 이민족의 동화나 척결과 딱 맞는 조치이며 과거 거란, 여진. 고려가 성산으로 여긴 백두산에 등소평


은 자기의 화장한 뼈를 천지에 뿌리라 유언을 한다. 유목민의 정수리인 땅에 말뚝을 박아 중국땅으로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다가 정신병자로 인정되어 판결을 면한 오가와 슈메이를 중심으


로 동풍회가 조직되고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군국주의 학습에 열을 올린다. 미군정이 정말 속은 것일까 이런 일들이 있었


기에 1970년 자위대본부에서 할복한 미시마 유키오 1993년 아사히 신문사에서 자결한 우익의 거물 노무라 슈스케가


있는것이다.


나치의 독일은 미국과 같은 서구문화이기에 잘 알고 있었을까 미국속의 유대인들이 조정을 한 것일까 나치를 완전히 제


거하고 새로운 사람들은 앉혀 지금의 독일을 만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들을 미군정이 다시 정권에 있게한 것처럼


전후일본에서도 전범세력들을 그대로 정권에 눌러앉히니 오늘의 일본이 우경화로 치닫는건 아닌지


장개석은 모택동을 제압할 절호의 기회를 만주에서 얻었지만 미국의 입김으로 휴전을 했고 모택동에서 기사회생할 시간


을 제공해 결국엔 중국이 공산화되어 항복한 장개석군이 6.25때 중공군이 되어 소모품으로 참전한 거겠지 이렇게 잘못


된 동양의 역사를 만든 미국은 왜 이렇게 했을까 다른 문명권에 대한 이해부족에서일까


오늘의 남의 일이 내일의 나의 일이 된다는 일본속담처럼 동양엔 옥시덴탈리즘이 존재한다걸 그 당시 미국이 깊이 생각


했더라면 동아시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 압록강철교 옆에 중국이모든 자본을 대고 건설하는 신압록강대교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에 군사정변이 일면


압록강대교는 중국군의 진격루트가 된다. 매번 중국 최고지도부가 북한이 어려울때마다 선물보따리를 푸는 이유를 우린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


  나침반도 신라침반의 줄임말이란 개연성이 많지만 그들은 금속활자나 다라니경까지 그들의 것이라 박박 우기는 상황


이니 다라니경도 89년에야 국제적으로 공인 받는 실정이니 나침반은 말도 못꺼내고 있다. 고조선의 명도전이 연나라의


화폐로 둔갑한 것처럼.


중국은 스스로 문화민족이라 하지만 종이를 만든건 채륜이 아니었고 만두도 맹획을 정벌하기 위해 제갈량이 만든게 아


닌 기원전 6세기에도 이미 존재했던 음식이며 한자도 삼국지속 오나라땅이 원류가 아니라 유목민의 땅 발해만에서 나온


갑골문자가 원조이니 그들의 자랑도 궁색하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은나라, 진이 지나, 지나가 차이나로 변한 흉노의 나라 진 그리고 북위 거란 여진 운남 묘족까지 이민족동화의


역사는 100년후 티벳, 위구르가 거란처럼 되지 말란법이 없으며 그들이 중국화되면 그들의 다음 목표는 부탄, 투루키스


탄, 카자흐스탄, 미얀마, 네팔이 아닐까 또 그들이 다시 100년후 중국인이 된다면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아랍의 인구는


8억 정도이고 여러조각으로 나뉘어 있으니 이이제이하기 쉽게 서로 반목하는 지역도 많다. 야금야금 유목민의 땅을 차


지한 것처럼...


  그 옛날 중국의 머리위에 지금의 러시아보다 중국에 더 큰 위협을 주던 흉노가 한국, 일본, 만주, 헝가리로 내몰리거나


중국에 흡수되었다.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지금의 러시아도 1000년후엔 흉노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누구는 1000년이란 소리


에 걱정도 팔자려니 하겠지만 김유신부터 2010년까지는 순간이었다. 세계 정복을 꿈꾸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같은 정


복자들은 그들의 정복기한을 10년으로 잡았지만 그래서 많은 이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눈에 잘 띄었지만 은든히 영토야


욕을 채워가는 중국은 천년을 목표로 한다는 게 그들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유목민의 특징은 적응력이 빠르다는 것이다. 냄비근성도 그 뿌리는 유목민의 특징의 연장선상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고


선의 수도 아사달은 해뜨는 언덕 , 홍산 문병도 붉은산이니 해뜨는 산을 의미하는 모두 알타이산의 유목민에게서 갈라


져 나온 유산이다.


  유목민은 기록을 중시하지 않고 이주 시 지명만을 가지고 간다. 그래서 주몽의 엄리대수가 한강의 아리수이고 경주 사


로국이 아사달로 통하나보다 겨울에 러시아를 침략해 승리한 나라는 몽고가 유일할 정도로 유목민은 추위에 강하다.


 그들은 홍산 문명을 농경민인 중국인에게 베풀었지만 언어는 우리와 같은 주어 목적어 동사를 쓰지 중국인의 주어 동사


목적어를 쓰진 않는다.


스키토 시베리아 생태권인 팍스 몽골리카에 의해 서역의 증류주인 소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고려란 국명이 서역으로


전파되었다. 삼족오, 연오란, 세오녀 금오산 모두 까마귀 오자를 쓰듯 일본 초대 진무천황의 안내조 야타가라스도 까마


귀였다.


노무현이 터키를 방문해 미국보다 더 가까운 형제 국가라 말한 것도 팍스몽골리카나, 까마귀가 살려낸 알타이유목민의


정체성회복 작품이 아닐런지


 우리 역사의 가장 큰 오점은 부여 고구려 발해에서 북방의 역사가 멈추고 그 지역에 이민족이 자리를 잡았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말갈, 물길, 예맥, 동호, 숙신, 여진 모두 한 민족을 시대별로 다르게 부른것 뿐이다.


 유치원때 호칭이 다르고 초,중고등학교때 호칭 다르고 대학교, 군대, 사회있을 때 호칭이 다르듯 시대별 호칭이지 두 개


의 호칭이 한 시대에 같이 쓰인 적은 없다.


  또 하나 그럼 발해란 국가 해체 후 왜 부족국가로 역행하느냐는 문제인데 정주민인 로마도 에투루리아 -로마에서 피렌


체나 베네치아 같은 도시국가로 나우어지고 독일도 오토대제후 신성로마를 거쳐 수백개의 공국으로 나누어진다 발해는


반유목 국가였기에 정주농경민과는 조금 차이를 보인것 뿐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발해처럼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다른


민족으로 애써 분리하지는 않았다.


일본과 백제가 하나였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는 분이 계신데 663년 백강전투 668년 고구려 멸망후 왜국은 669년에 왜


국이란 칭호를 벗어버리고 일본이란 국호를 채택해 독자노선을 걷는다.  몽고의 원 제국이 망한 후 중앙아시아 건너로


출한 몽골족 타타르도 스스로의 제국을 건설해 독자노선을 걷고 영토의 대부분을 독일에 빼앗긴 덴마크도 독자노선을


걷는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처럼 과거제국의 일부였다는 걸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1700년대부터 만주족의 재혼풍습이 사라지고 조선도 이 시기에 재혼풍습이 사라져 한족처럼 과부의 정절이라는 규범을


모두에게 적용시키기 시작한다.


팍스 몽골리카 체제 붕괴이후의 한,중관계사는 조선시대 명과 조공 책봉관계가 성립되면서 임란이후 한족중심의 동아시


아 질서에 안주하고 과거제도를 통해 조선지식인의 뇌리에 각인돼 온 중국중심적 주자학적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받아


어느새 스키토 시베리안 유목민족 태반인 한국인은 자기 자신을 중국적 농경인으로 생각해 스스로의 의식속에서 농경중


화화하고 북방유목민을 한족의 시각과 같이 오랑캐(순록치기)로 바라보게 되었다. 마침내 역사적 사실로서 엄존했던 북


방유목민과의 태반공유관계가 고려역사에 미친 중요한 영향들은 간과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 민족공동체에 대해 같은 고향을 주장하고, 신화와 동일한 조상과 역사적기억과 특유한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의


집단이라 했다.


오토만의 엘리트군대인 예니체리 부대는 전투에 뛰어나고 절대적인 충성을 갖고 왕을 섬겼지만 모두 비이슬람 가정 출


신이며 다수 엘리트집단인 아스케리계급과 민족적으로 달랐다.


중국은 대동소이를 외치며 10개중 6개만 같아도 우린 동일민족이라 하며 다른 민족을 동화시켜 버리려하지만 오토만의


예와는 많이 다르다.


앞으로 한국이 강국이 되려면 자주적인 유연성을 최대로 발휘해야 100만 외국인시대에 잘 대처함은 물론 과거 우리의


무지로 멀리했던 스키토 시베리안 사람들과 유대감을 공고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평생 노력해 처음 목표의 4%만 달성


되어도 좋다.

생각한다 그거라도 이루지 않았는가 나는 그 결과에 만족한다.


중국은 한마디로 스테로이드를 투입한 일본이다. 중국은 경제적 규율보다 사회적인 관계를 더 중시한 국가이다.  자금을


정치적으로 분배하고 경제자료를 조작하는 공산주의 국가다.


이윤을 요구하는 주식투자자보다 현금을 요구하는 은행가들과 정부관리가 더 중요한 국가이다. 일본이 그랬듯 중국도


경제성장 속도가 조금만 늦춰지면 붕괴에 직면할 수 있고 나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건대 2020년쯤엔 중국의


경제가 붕괴되고 이 여파로 2025년엔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들어설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확신한다.


또,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앞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나는 족하다. 시


대는 그저 왔다가 갈뿐이다.


장부가 세상에 나와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할 것이오


만일 쓰이지 않는다면 물러나 밭가는 농부가 되어도 족하니라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8.11.07.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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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의 역사적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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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의 저서가 개정증보돼 나왔다.저자의 한국 보수세력 연구와 짝을 이룬다.한국 정치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진보세력의 탄생에서부터 역사적 변천,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에 이르기까지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한다.한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이며한국 보수세력 연구 역시 개정돼 나오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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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의 저서가 개정증보돼 나왔다.


저자의 한국 보수세력 연구와 짝을 이룬다.


한국 정치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진보세력의 탄생에서부터 역사적 변천,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한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이며


한국 보수세력 연구 역시 개정돼 나오길 고대한다

p******n 2018.11.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