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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맘 먹고 한국 문학의 영원한 어머니,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전집 결정판을 들였다. 책장에 꽂힌 스무 권 남짓한 책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포만감이 든다. 사실 박완서라고 하면 '엄마'나 '할머니'의 푸근한 이야기를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다. 선생님의 문장은 나긋나긋하게 말을 건네는 듯 부드럽지만, 그 안에 숨겨진 통찰은 송곳처럼 날카롭다. 특히 중산층의 위선이나 인간 내면의 속물근성을 꼬집을 때는 읽는 내가 다 뜨끔할 정도로 징그럽게 정확하다. 앞서 읽은 남성 작가들이 전쟁을 총칼과 이념의 대결로 그렸다면, 박완서는 전쟁이 평범한 가정의 밥상머리를, 그리고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할퀴고 지나갔는지를 보여준다. 거창한 구호가 없어도 그 어떤 전쟁 문학보다 처절하고, 그 어떤 철학서보다 인간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무엇보다 감탄한 건 '우리말'의 맛이다. 어려운 한자어나 현학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도, 우리가 매일 쓰는 일상어로 이렇게나 풍성하고 깊이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바로 박완서의 소설을 원문으로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목』부터 시작해 후기 단편들까지, 이 전집은 한 작가의 일생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내밀한 풍경화나 다름없다. 빨리 읽어치우기보다는, 살아가면서 마음이 허기질 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고 싶은 곶감 같은 전집이다. 책장에 평생 두고 볼, 든든한 어른을 모셔온 기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