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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길이 너무 잘 뚫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비단 고속도로 뿐만이 아니다. 국도로
빠져나와도 왠만하면 자동차전용도로이다. 시원하게 뚫린 길을 달리면서 주변의 경치에 눈길을 주기란 쉽지않다. 다들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지라 목적지에 다다르기에 급급할 뿐 여간해서는 도로 주위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운전을 하다 보면 길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것은 운전을 위해서 보는
것일 뿐, 그러다 보니 그곳을 지나기 무섭게 눈에서,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런 길을 가고 싶기도 하다. 고속도로를
피해서 옛 국도를 택하여 가다가 경치 좋은 곳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며 쉬어 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길을 만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속도에 밀려,
산업화에 밀려 그런 길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책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의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란 과목에 교재로 활용했던 글들을
재구성하여 펴낸 책이라고 한다. 제목이 [옛길이 들려주는
이야기]인지라 길에 얽힌 역사의 현장을 찾는 것이라 생각했고, 책
또한 내가 상상했던 대로 옛길에 스민 삶과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옛길에 대한 관심은 군에 있을
때 생긴 것 같다. 부대 앞으로 3번국도가 지나고 있었던지라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를 생각하곤 했다. 그리곤 잊어버렸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 앞으로 또 3번국도가 지나는지라 새롭게 옛길에 대한 관심이 들었다.
길은 전통시대부터 발달하였다. 길을 통해 물자의 이동이 이루어졌고, 또한 길은 교통과 통신을 담당했기에
왕조국가에서 길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은 주요한 정책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고대사회에서 길은 군사통신로이자
병참수송로 역할을 했다. 신라는 길을 관리하기 위해 우역제도를 실시하였고, 고려는 병부산하에 공역소를 두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주요역에
찰방을 파견하여 역도를 관리책임지게 했고,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로 원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한 옛길은 바로 이 땅에서 살아 온 민초들의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글 중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길은 의주대로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조선시대후기의 연행로, 그리고 영남대로였다. 영남대로는 우리가 말하는 3번국도일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간선교통로가 등장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개성과 경주를 잇는 행정, 경제, 문화적 기능을 가진 대동맥으로 발달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한양과
동래의 부산포를 종점으로 하는 영남대로가 구체화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민족의 대동맥으로 불리는 길이다. 그런가 하면 의주대로는 한양에서 의주까지 연결된 조선시대 제1대로
였다. 조선시대 의주대로가 제1로가 된 까닭은 한양과 서북지역을
연결하는 교통과 물류의 왕래가 빈번했던 도로망이었다는 것 외에도, 국가외교사절이 오간 사행로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가장 중요한 길이었으나 한국전쟁이후 단절되고, 통일로나
자유로와 같이 새로운 길이 개통되면서 우리의 삶과 기억에서 잊혀져 역사속의 길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비단 의주대로에 국한되지 만은 않는다. 영남대로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국도와 지방도의 정비에 따라
잊혀진 것과 같다.
전통시대 연행은 국제교류의 통로이자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인식의 유일한 창이었다. 국내노정은 의주대로를 따라 이루어졌고, 의주대로의 종점인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중국연행노정이 시작되었다. 단동에서
심양, 산해관, 북경을 거쳐 열하에 이르는 길이다. 현재에 사는 우리도 당시 자제군관으로 연행에 참여하여 기록을 남긴 이들의 연행록을 통해서 아는 바로 그 길이다. 또한 책에는 육로만 소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교통의 요지였던
남한강 유역의 폐사지를 통해 전통시대 불교의 흥망을 다루고 있으며, 남한간 뱃길을 통한 조선후기 진경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기도 한다.
그 밖에도 서울 서촌, 정약용의 고향인 마재, 그리고 대안농업의 현장 홍성과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이들의 영원한 고향인 지리산 지역의 삶과 문화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짧은 소견으로는 이들 지역이 옛길 이라는 주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길이라고 해서 전부 공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그런 길만이 다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주요 간선로 중 의주대로와 영남대로를 제외하고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화대로와 평해대로, 남서에서 북동으로 가로지르는 삼남대로와 경흥대로가 다루어 지지 않은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1번국도, 다시 말해 조선시대의 삼남대로는 한양과 목포를 잇는 길이었다. 왜 빠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남대로에 얽힌 삶과 문화의 현장이 가미되었다면 보다 풍부한 책이 되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