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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을 소심하게 기웃거리는 나는 여행자로서의 면모가 한참 부족한 사람이다. 여행을 꿈꾸면서도 근거리 산책에서 결코 탈피하지 못하는. 그런 이유로 나에게 여행은 더 이상 모험과 도전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대체할 방편은 찾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기를 통한 잠깐의 행복한 상상 같은. 정여울 작가의 다른 월간 도서와 마찬가지로 재독 중인 <어슬렁 어슬렁>
“- 집중이 반드시 효율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정보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그 밖의 것들을 쉽게 놓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중이라는 것은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대상’을 배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 아무리 눈에 띄는 존재라도,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관찰은 세상을 파악하는 기술일 뿐 아니라 세계를 ‘편집’하는 기술인 것이다.”
각각의 월간 도서에서 중복된 내용을 제외한 나름의 특이점을 선별해 리뷰로 남기고 있다. 오늘 가슴에 꽂힌 내용은 ‘집중(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우리가 한눈파는 동안 스쳐 가는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너무도 적확한 소제목을 재확인하며, 나는 내가 스쳐 보낸 것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을 무용한 일에 할애하느라 가족과 내 주변 심지어 나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닌지.
나는 가끔 지리멸렬한 잡념을 떨치기 위해 작정하고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을 찾곤 하다. 독서와 글쓰기, 물고기 게임 같은. 물고기 게임은 최후의 수단이고, 앞의 두 가지 방법이면 거의 하루 반나절 이상은 잡념에서 해방된다.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나의 집중력은 때때로 고맙기까지 하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나 역시 바로 그 점이 문제 될 때마다 책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진다. 이럴 땐 내가 놓친 것들에 대해 헤아리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 독서와 글쓰기는 그러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않기 위한. 이 정도면 나에게 ‘집중’은 그 본연의 의미 외에 다른 의미는 소용없다는 말이 된다. 자연, 그러느라 놓친 것들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게 되레 나은 일. 대신 나에겐 문득문득 발견해낸 어떤 존재들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있지 않은가. 그것으로 족한.
데생을 하면서 나도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그리기 쉬운 쪽’으로 왜곡”해 그린 적이 제법 있다. 그것은 테크닉 문제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어도 좋은 자기 힐링적 작업이었을 터다. 그저 “무언가를 오래오래 관찰하는 일”은 “마음 챙김의 기술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에 대한 불신보다 타인의 그것으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았을 때 억지로라도 “내 안의 신화”, 즉 “무의식 안에 이미 가지고 있지만 아직 발현하지 못한 잠재적 힘”을 총동원하고 싶은 오기가 생길 때가 있다. ‘두고 봐, 당신의 그 믿음이 잘못됐다는 걸 증명해주지.’라는 각오와 함께. 그러고 보면 불신은 왜곡보다 더 폭력적인 듯하다.
심리학과 불교의 접목을 다룬 장에선 전에 없던 불심이 생기려는 듯한 경험을 했다. 나는 무신론자다. 굳이, 무조건 종교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래도 기독교보다는 불교가 낫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면서 유독 유일신만을 강조하는 종교엔 왠지 믿음이 안 가기 때문이다. 내가 종교나 신에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결국 신도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에서다. 약자와 강자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 자체가 인간의 것이라면 어떤 상황에서 신을 찾던 그건 모두 인간이 스스로 자신들을 찾는 거나 마찬가지란 얘기다. 고통에 빠져 한없이 흔들리고 약해진 자신을 강하게 붙들어주길 바라며 기도하는 거나 강한 척 교만에 허우적대는 자신이 좀 더 겸손하게 살도록 참회와 반성의 기도를 하는 따위의 모든 것이 다. “붓다가 자신을 압도하려고 덤비는 욕망과 공포를 사적인 것이 아닌 마음과 몸의 일시적인 상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자, 그제야 욕망과 공포는 그를 현혹할 힘을 잃었다.” 붓다 역시 자신의 공포를 스스로 극복해내지 않았던가. 그도 신이기 전에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신이라 칭한 적 없는. 이런, 어쩌다 신성神性을 논하게 되었나. 아니, 이건 인간을 말하기 위한 글이다. 마침내 ‘사랑’으로 귀결되는 희망적 메시지를 생략한.
『빨간 머리 앤』과 『삐삐 롱스타킹』은 7080세대들에게는 뭔지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다. 결핍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강한 의지와 밝은 에너지로 충만한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 속 두 주인공은 환골탈태한 나비들 같다. 그러고 보면 나비 효과란 말은 참으로 그럴듯하다. 그 날갯짓의 힘을 알기에 말이다. 봄에게서 다소 멀어진 지금은 곧 매미들이 목 놓아 울게 될 계절. 나비 보기 힘든 계절이어도 누군가는 가슴속에 건강한 나비 한 마리쯤 품고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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