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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강하게 끌려서 펼친 책이다. 기대만큼 내게 행복한 시간을 안겨주었다. 작가의 겸손한, 다음의 말이 책의 내용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그들(카프카와 톨스토이)의 진지한 질문의 방식과 대답을 향한 성실한 탐구의 태도가 나를 매혹하고, 이 글들을 쓸 때 내 가슴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은 누군가 수수께끼 같은 이 세상에 대한 짧은 질문이나 희미한 대답의 실마리라도 찾아냈으면 참 좋겠다, 하고 감히 바라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의 글은 분명 잠시 멈추게 하고, 질문하게 하고, 답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27편의 이야기 중에 여덟 편을 발췌하여 정리해 본다.
○만든 눈물 참은 눈물
TV 화면 속 그의 ‘눈물’을 보고 그것이 만든 것인지, 참아서 나온 것인지를 생각하는 시청자로서의 그.
정황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할 때의 얼굴 표정과 억지로 눈물을 만들려고 할 때의 얼굴 표정을 분간해내는 일이 가능할까?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이고, 해석은 정황에 대한 이해에 의해 결정된다. 쏟아지려는 것을 쏟아지지 않게 막거나 나오지 않으려는 것을 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이 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짓인데 그것은 인간이 비자연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만들어진 무엇이든 우리에게 불편함을 준다. 자연스럽지 못한 무엇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우리이기에 진실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편안함을 추구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우리가 왜 눈물을 그 자체로 볼 수가 없는 걸까? 인위적인 세상으로 가득한 이 곳에서 우리는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걸작의 탄생
작가는 작품을 쓸 뿐 걸작을 쓸 수는 없다. ... 의미를 부여하는 우연한 손길이 그야말로 뜻하지 않게 작품의 폐를 열어 걸작을 탄생시킨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걸작의 탄생을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연결하게 된다. 작품이 걸작으로 탄생하기 위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우연한 손길이 필요하듯이,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변함없이 따뜻한 이들의 사랑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하며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최선의 문장
절판된 채 있던 장편소설의 개정판을 내자는 제안을 한 출판사. 담당 편집자가 전화를 해서 확인할 때마다 아직 교정을 보고 있다는 (작가의) 대답이 돌아왔다.
작가들은 자기가 전에 쓴 글을 늘 불만스러워하고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꾸 손을 대지만, 아무리 손을 대도 만족스러울 수 없고 그 작업이 반드시 더 좋은 쪽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처음 집필할 때 그가 쓸 수 있는 최선의 문장을 찾아 쓰기 때문이라는, 대부분의 편집자가 아는 사실을 아는 작가는 많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친 두 번의 교정 작업이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이 신선하다. ‘처음’이라는 말, ‘마지막’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개념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 처음과 같은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말하려 한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거리
대화 중에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이 자기가 하려고 했던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왜 말하려고 하는 것 그대로 말해지지 않는 것일까. 그가 가지고 있는 어휘가 부족해서기도 하고, 언어가 본래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상대가 이해하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순간 순간 느낀다. 상대를 알고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는 그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오해를 하게 되는 횟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없는 게 없어요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먼저 산 어른으로부터 직접 배우는 것이 아니라 책과 텔레비전, 특히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새로운 현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인류는 삶에 필요한 중요한 이야기들을, 심각한 것이든 가벼운 것이든, 사유 체계에 대한 것이든 일상적인 것이든, 구전을 통해 전달해왔다.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에는, 그 이야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화자)의 성격이나 인격까지 같이 담긴다. 정보만 건너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의 우려와 걱정, 관심과 격려 같은 정서가 함께 넘어오는 것이다. 아이 안는 법, 분갈이하는 법, 콩나물국 끓이는 요령을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없는 것이다.
터치 몇 번으로 궁금한 것을 알아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사람 냄새를 맡기 어려운 현실이다. 타인과 대면하는 것이 점점 더 낯설어지고,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 기계를 마주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우리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네 몸과 같이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어요. 이 집은 내가 태어난 순간을 알고 있고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어요. 나는 이 집과 함께 자랐고 같이 늙어가고 있어요. 집은 내 몸의 일부와 같아요. 몸 어딘가에 상처가 생기면 약을 바르고 다리가 부러지면 깁스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 거예요.”
크리스티앙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 있어요. 네 집을 네 몸과 같이 여겨라. 네 집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우리 아들에게 내가 항상 해온 말이기도 하지요.”
어렸을 적에 살던, 마당이 있던 집을 가끔 꿈에서 만난다. 세 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던 마당 한 가운데의 그네, 기분좋은 날에 마당을 수십 번 돌곤 하던 내 사랑 세 발 자전거. 봄이면 색색의 꽃들이 노래를 하고, 나비와 벌이 끊임없이 방문하던 곳. 우리가 머물던 그 집에는 추억이 쌓이고, 웃음이 번졌다.
언젠가부터 한 집에 오래 머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수리하거나 철거해야할 즈음, 우리는 주거지를 이동해야 하고 집과의 추억도 묻어두어야 한다.
○기이한 중독
그리하여 자연 치유의 시간, 실연의 아픔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은밀한 골방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슬픔이 그를 놓아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슬픔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슬픔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실연을 겪고 슬픔을 놓지 않는 그가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슬픔과 불행이 내게 오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안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쁨을 기쁨대로 슬픔을 슬픔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되, 그 안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튼튼한 구두
톨스토이는 오래 신을 튼튼한 구두를 주문하러 온 손님에게 그가 원하는 구두 대신 관 속에 들어갈 때 신을 슬리퍼 한 켤레를 만들어주는 미하일에 대해 들려준 적이 있다. 미하일이 그렇게 한 것은 그 손님 뒤에 그 사람을 데리고 가려고 서 있는 죽음의 천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까? 미래는 알 수 없어서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지고, 현재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어서 그 소중함을 쉽게 잊는다. 미하일이 슬리퍼를 만드는 김에 손님을 위한 구두도 준비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꿈꾸는 모두를 이룰 수는 없지만 꿈꾸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고, 웃을 수 있으니까.
다음은 작가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전에 새긴 글이다. 27편의 이야기 전체 주제를 아우르는 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이해하게 된 그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모두를 이해할 수 없듯이, 모두가 나를 이해할 수는 없다. 모두가 자신만의 이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하고 듣고 느낀다. 이해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이 ‘그’이니까. 이런 내가 ‘나’이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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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만난 작가의 책은 짧은 소설이다. 어찌 보면 소설 같지 않은 에세이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27편의 짧은 소설. 일일이 줄거리를 적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기억에 남는 단편 몇 개만 소개하고 싶다. ‘뛰는 남자’라는 단편은 웃픈 소설이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소유자이며 철인이라 불리던 사장님. 사장님은 자신의 공장 부지에서 쓰러져 죽는다. 병원에 실려 간 사장이 숨을 거둔 이유는 건강을 위해 공장에서 뛰었던 것이 쥐약이었던 것. 비단 이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울 시어머님도 그렇다. 늘 건강을 생각해 좋은 재료, 국산, 제철 음식을 이야기 하시지만, 부엌을 보면 깜짝 놀란다. 좋은 음식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건 깨끗한 부엌 환경은 아닌지
또 하나의 단편은 ‘집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집을 짓기로 생각한 남자는 자신의 집을 완성하지 못한다. 더 크고 웅장하고 멋진 집을 지어야 하니까. 매일 집을 짓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더 많은 돈을 들이고 더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집은 계속 변경되고 욕심을 부린다. 가장 화려한 집을 원했던 남자는 가장 더럽고 초라한 곳에서 외롭게 죽는다. 그런 남자를 애도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가장 크고 멋진 집에서 살기 원했던 남자는 결국 조그마한 관이 자신의 집이 되어 버린다.
어떤 단편은 언젠가 신문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야기를 담은 듯 한 것도 있고, 어떤 작가의 예를 짧은 소설로 각색한 느낌도 든다. 이럴 수 있겠구나 싶은 이야기들로 즐거움은 배가 된다. 어떤 때는 말장난 같은 문장도 이승우 작가가 쓰면 멋짐이 폭발한다.
쏟아지려 하는 것은 쏟아지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나오지 않는 것은 내보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모든 것은 비의도적이고(자연에는 의도가 없으니까) 부자연스러운 모든 것은 의도적이다. (문명은 의도의 산물이니까) 쏟아지려는 것을 쏟아지지 않게 막거나 나오지 않으려는 것을 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이 흔히 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짓인데, 그것은 인간이 비자연이기 때문이다. (19) 몇 번을 읽었던 문장이다. 말장난 같은 문장이지만 이승우 작가만의 매력이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연스러운 것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1등 공신이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일까? 자연스러운 것을 거스르는 짓을 할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반성하게 된다. 내 인생을, 내 삶을, 그리고 나로 인해 영향 받은 아이들 까지. 쉽지 않은 인생이고 매일 배움의 연속 같은 인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화가 나고 나를 다독이지만 평범한 인간이기에 수도 없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내공이 부족한 나이기에 오늘도 참을 인 세 개를 마음 속에 새기지만 쉽지 않다. 이렇게라도 나는 오늘도 인생 공부를 한다. 조금 더 참기, 조금 더 짜증내지 않기, 좋은 말 하기. 그런데 쉽지 않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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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교묘한 심리 게임인 까닭이다. 예컨대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서든 끝내기 위해서든 자기의 마음을 달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마음을 달래는 데애 효과적인 것은 합리화와 속임수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하는 질문은 보다 미묘하고 훨씬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질문은 '내가 사랑했던가?'하는 질문과는 다른 것이다. 이 심리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합리화된 속임수든 속임수를 쓴 합리화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 이해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러니까 의무감으로 한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이다. 설득해야 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연인들은 의무감에 사로 잡힌 자들'이라는 정의가 틀리지 않다면 이 변명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과장 과 입에 발린 수사가 허용되고 장려되는 유일한 영역이 연애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연애의 룰이나 관습 같은것이기 때문이다. 연인들이 의무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것은, 연애가 일종의 통치와 지배의 장치임을 일깨운다. 연애는 가장 작은 왕국이고, 이 왕국에서 연인들은 서로에게 군주이면서 신민이다. 서로를 통치하면서 동시에 지배받는다.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통찰력있는 시선과 표현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이승우작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감탄과 경의의 표시로 그의 글을 옮겨 적는일 뿐이다. 짧은 소설들과 중간 중간 삽화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승우작가의 긴 소설을 읽고 싶은 갈증이 생긴다. -20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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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소설가의 이번 책은 그동안 펴낸 묵직한 소설들과는 좀 다르다. 아주 짧은 소설을 썼는데 소설이라기 보단 에세이처럼 읽혔다. 카프카가 질문으로, 톨스토이가 대답으로 작품을 썼다면 저자는 이 짧은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삶이 주는 질문에 희미한 실마리를 찾기 바란다는 바람으로 썼다고 한다. 시시때때로 찾아온 생각을 붙잡은 내용들이 단편 소설이 되고 장편 소설이 되기도 하는데 때로는 이렇게 아주 짧은 소설로도 남아서 그것을 모았다고도 했다.
작가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이 글쓰기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훼손>, <최선의 문장>, <읽지 않은 것으로부터>, <오역> 등은 소설 작업이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않을 때 생길만한 단상들이었다. 개정판 작업을 하는 작가의 어려움, 최선의 문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설가들, 표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좀처럼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들의 곤혹. 번역에 대한 의심 등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한 번쯤 고민했을 내용들이었다.
두 번 째 이야기인 <걸작의 탄생>을 보면 《자정의 심연 》이라는 소설을 쓴 케이의 경우를 들어 우리가 걸작이라고 하는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가를 비틀어 보여주고 있다. 케이가 5년 전에 출간한 이 책은 딱 110권이 팔렸다. 그 후 출판사가 부도나자 케이의 소설도 사라졌다. 어느 날 한 원로 작가가 이 소설을 호평하자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빠르게 퍼져갔다. 한 신문기자가 사라진 책을 찾아내 원로 작가의 강연 내용과 함께 소개했고, 한 영화감독이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독자들이 책을 찾자 큰 문학 출판사에서 재출간 의사를 비쳤으며 글을 쓰는 대신 토마토농사를 짓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다. 작가의 순박한 모습을 호의적으로 본 독자들이 우호적인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름 난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작품은 작가가 만들지만 걸작은 우연한 어떤 힘에 의해 탄생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은 엇비슷하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지금 사면초가에 갇혀 있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도, 금자탑 위에 서 있다고 해서 자부심으로 뭉쳐질 필요 없다는 선승의 초연한 대답 같은 내용이었다.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를 붙잡은 내용들도 있었다. 이제 막 결혼한 며느리가 살림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아서 서운한 시어머니.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노출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노인 세대를 보며 공감이 차단 된 세대 간 갈등을 그렸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문제들. 문 앞에 죽음이 와 서 있어도 알지 못하는 우리는 늘 앞으로 천년을 살 것처럼 타인과의 벽을 높인다. <뛰는 남자>를 보면 공장의 기술자가 각고의 노력 끝에 부도가 난 그 공장의 소유자가 되면서 생긴 일을 보여준다. 자신 소유의 공장을 너무나 사랑해서 공장 안에 있을 때 기운이 솟는 남자는 공장 안에서 달리기를 열심히 했다. 근로자 출신인 그는 그 환경의 기억을 근로자를 착취하는데 사용한다. 그런 그가 여느 날처럼 달리기를 하다 공장 안에서 쓰러지고 의사는 그가 광부보다 못한 환경에 오래 노출된 사람처럼 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이야기 한다. 역지사지하지 못하고 처지가 바뀌면 안면부터 바꾸는 사람들이 읽으면 타산지석이 될 내용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삶이 희미하게 보여주는 대답을 듣기 위해 짧은 소설들을 읽었다. 스물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각자를 비춘 것처럼 다양하다. 스치듯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긴 이야기를 읽는 것은 부담스러운데 다른 이의 삶이 궁금할 때 아주 짧은 시간에 한 생을 들여다 볼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짧은 이야기에도 삶의 질문과 답은 각각 있어서 적게 읽고 많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마춤하겠단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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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질문을 통해 대답하고, 톨스토이는 대답을 통해 질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카프카는 대답하기 위해 질문하고, 톨스토이는 질문하기 위해 대답했다고 할까요. 사실이 그렇다면 이들의 소설에서 질문과 대답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첨예하고 지겨운 의문은 언제나 단 하나다. ‘인간은 무엇인가?’ 나의 일은 항상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나와 타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갈등이 이 의문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답은 이미 네 안에 있다’고 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는 존재다. 진짜를 알고 있어도 그 진짜가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 이상 내면의 소리에 제아무리 귀기울여봤자다. 연기하는 나와 그 연기조차 연기가 아닌 것처럼 감추려는 나. 그런 기묘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내가 찾은 답, 적어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거다. 도구적 인간, 사회적 인간 등등 호모 무슨무슨투스 중에 가장 앞서는 건 ‘속이는 인간’이라는 것.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은 27개의 짧은 소설을 함께 엮은 책이다. 소설의 길이도 저마다 다르고 주인공도 다 다르다. 하지만 구슬을 엮듯 각양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주제가 있다. 나는 이 책이 ‘속이는 인간’에 대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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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이기도 했고, 긴 호흡의 소설을 읽기 힘들 것 같아 이승우의 단편소설인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을
독서동호회에서의 첫 책으로 선택했다.
이승우의 책은 처음이었는데, 짦은 소설들 속에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들도 있었고,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글들도 있어 흥미롭게 책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글이 길지 않아 출퇴근하며, 육아퇴근(?)후에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으면서도 내용이 가볍지 않아 좋았다.
짧은 메모로 시작했다는...짧은 소설들.
책의 제목인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비의도적인것(자연스러운것)과 의도적인것(부자연스러운것)들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어 흥미로웠다.
글의 표현이 어렵지 않게 쓰여져 있어 쉽게 읽히지만, 각 글마다 생각할 거리들이 있어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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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억지로 눈물을 만들어야 했고 또 애써 눈물을 참아야 했다. 그들이 이해하게 된 그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책에서 한 페이지에 한 문장이 적힌 곳이 딱 두 곳이 있다. 바로 위의 두 문장이 적힌 곳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책을 뒤적거리던 중 이 페이지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 작가가 소설로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줄이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물론 이 두 문장은 책 속 소설에서 발췌한 것이다. 첫 번째 문장은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을 가진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이란 소설에서, 두 번째 문장은 '분실사건'이란 소설에서. 두 문장 모두 아이러니하다. 억지로 눈물을 만들었는데 그 눈물을 애써 참아야 하고, 그들이 이해한 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란 아이러니.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은 하나로 명확하게 귀결되지 않는 아이러니들을 그린다. '만든 눈물 참은 눈물'에서는 여자친구와 이별하기 위해서 눈물을 만들어냈으나 슬프게 보이기 위해 애써 만든 눈물을 참아야 하는 상황을 그렸다. '오역'은 W국에서 번역돼 인기를 얻었던 국내소설이 알고보니 번역자의 오역이 잔뜩 있었고, 점점 시끄러워지는 상황을 잠재우기 위해 번역된 소설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개정판을 발매한다고 선언한 상황을 그렸다. (이 상황은 작가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감정이입이 돼 안쓰럽기도 했다.) '합리화 혹은 속임수'에서는 '사랑해'와 '제발 날 잊어줘'를 예로 들며 사랑을 자기 설득적 합리화(혹은 속임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집 이야기'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집을 지으려는 부자와 작지만 튼튼하고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목수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많은 소설 중에서 우화의 분위기를 가장 많이 풍겼다. '사람은 죽는다'라는 비슷한 제목의 3가지 이야기에서는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볼 수 있었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에서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서는 타이밍도 타이밍이지만 발품도 중요하다는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근로자'라는 소설은 내 생각엔 책에서 가장 위트 넘치던 소설이었다.(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지만 이 소설에도 아이러니가 포함돼 있다.) 몇 개의 소설 이야기만 했는데도 이렇게나 길게 글을 쓸 수 있는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은 이승우 작가가 쓴 짧은 소설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짧게는 2페이지부터 길어봤자 20페이지 안팎의 초단편 소설들을 모은 책이다. 카프카의 질문 같은 짧은 소설, 톨스토이의 대답 같은 짧은 소설처럼 자신의 소설도 누군가에게 질문이고 대답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드러낸 작가의 말은 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에게 질문이고 대답일 수 있을까? 일단,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을 읽다보면 생각이 많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말하려고 하는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거리에 대해 그는 자주 생각했다. -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왜 말하려고 하는 것 그대로 말해지지 않는 것일까. - 어떤 말을 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말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 감정 상태에서 혼란을 겪는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려 한다고 할까. (50~51쪽) 특히나 내가 좋았던 소설은 '말하려 한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거리'였다. 에세이의 느낌을 팍팍 풍기는이 소설은 읽는 이가 백이라면 백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생각한대로, 틀림없이, 아주 만족스럽게 말을 뱉는 사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나 자신을 예로 고민해보면 자신의 말에 백퍼센트 확신을 가지고 처음 생각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거라 확신하게 된다.)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왜 말하려고 하는 것 그대로 말해지지 않는 것일까." 살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를 이렇게 마주하니 반갑기까지 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거나 전혀 반대의 뜻으로 말해버린 것들 사이의 아이러니. 내가 원하지 않았으나 내가 원한 것이 되어버린, 원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실제로 원했을지도 모르는, 그 사이에서 정작 내가 원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는 말도 안되는 방법까지 생각하게 하는 생각의 끝. 그래서 그때의 나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던가, 마음 편히 잊어버렸던가.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은 소설이라지만 우화에 가까운 글도 있고, 에세이에 가까운 글도 있으며,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에세이소설'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소설도 있다. 짧은 호흡으로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간들을 책을 읽으면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생각이 꼬리를 계속 물다가도 다시 소설로 돌아가면 생각했던 내용들 중 절반은 또 날아가버리긴 하지만.) 그 시간들이 재미있다. 소설 자체가 어렵지도 않고, 소설 속 상황들이 굉장히 익숙해서 평상시에 우리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새삼 깨닫게도 된다.
그 많은 생각들 중에서 답을 찾았는가. 혹은 질문을 찾았는가. 나는 둘 중 그 어느것도 찾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작품 '튼튼한 구두'를 읽으며 이 땅에서의 생이 길어야 세 달, 짧으면 일주일일 수도 있다는 선고를 받았음에도 3년 신어도 해지지 않는다고 선전된 양질의 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구두를 사는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책을 닫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아이러니를 이야기하는 책,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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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인생이 아니었어도 우리들 삶의 곳곳에는 눈물이 포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운영해 온 블로그 검색창에 눈물, 이라는 단어를 넣었더니 무려 이백여 개의 글이 검색되었다. 내가 쓴 눈물도 있고, 남이 쓴 눈물도 있다. 나는 내가 쓴 눈물에 대한 글을 몇 개 열어서 들여다보았다. 나는 눈물을 아끼기 보다는 남발하는 쪽에 가까웠고, 그것을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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