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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경제 민주화, 경제 정의라는 말이 낯설지가 않다. 정부와 대기업은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말하고 있지만 대기업이 돈을 잘 벌어도 서민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대기업이 사회에 지금보다 더 많은 의무를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대기업과 경제 단체들은 그런 의무는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켜 경제가 나빠지고 결국 서민의 생활이 더 나빠진다고 주장하고 왜 그런 의무를 기업이 져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기업이나 부자들이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이 책을 통해서는 그들이 얼마나 국가와 국민에 빚을 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기업이 아닌 다른 기업에 특혜를 주었다면 다른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져야 하는 의무는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할 것 같다. 현재 경제 민주화라는 말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과연 맏아들한테 집중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은 결정이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차라리 여러 자식에게 똑같이 교육을 시키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가정을 통해서 그러한 의문에 대해 논의한다. 물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좋은 방법의 순위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많이 후퇴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성취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못했다. 경제적 불평등이 극에 달한 지금에서야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은 왜 경제 민주화가 필요하고 경제 정의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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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 " 책 제목 보고 얼른 든 생각, '장가가기 힘들겠네.'였다. 하지만 그 밑에 자그맣게 쓰여 있던 글씨가 "대한민국 경제정의를 말하다"여서 비유된 표현인가 싶었다. 대한민국의 경제 정의와 가난한 집 맏아들, 무슨 관계가 있을까? 책 표지를 열어 책 날개에 설명된 저자의 이력을 먼저 읽어 본다. 저자 유진수 교수님의 전공 분야가 '공정거래와 국제통상분야'라고 한다. 평상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라 재미나겠다 싶어 읽기 시작했다.
책의 시작은 우리들이 좋아하는 옛날 이야기 형식을 빌린다. 시골에 아주 가난한 집이 있었다. 그 집 부모는 맏아들을 위해 둘째, 셋째를 희생 시켜가며 소팔고 땅팔아 맏아들의 의대 공부를 밀어주었다. 가난한 집 맏아들은 다행히도 성공한 의사가 되어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자, 가난한 집 맏아들은 자신의 부를 부모와 둘째, 셋째에게 나눠 주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얼마를 나눠줘야 하는가? 개인의 능력이 우수하여 의사가 되었으므로 나눠 주지 않아도 무방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렇다. 유진수 교수님께서 가난한 집 부모는 대한민국, 가난한 집 맏아들은 다양한 특혜를 받은 대기업과 부자, 한 집 나머지 형제들은 국민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의 기업과 부자들은 정부로 부터 어떤 특혜를 받았길래, 부를 나눠 줘야 한다는 것일까? 정부는 기업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혜택을 주었다.
첫째, 광복 직후 일제의 귀속재산을 불하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특정 기업에 커다란 혜택을 주었다. 둘째, 외화를 배정하는 과정에서도 특혜가 존재했다. 법정 환율이 실제 암시장의 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셋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이자율을 낮추는 과정에서 실질금리가 상당기간 마이너스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것만 해도 얼마나 정경유착이 심한지 알 수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역시 금융기관의 자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혜택을 주고, 해외에서 자금이나 기술을 도입하는데도 혜택을 주었다고 하니, 정부의 맹목적인 대기업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크게 성장한 기업들. 과연 개인의 능력으로 특혜없이 지금의 기업의 위치가 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니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금 걷어들이고 있는 이익의 일정부분을 기회비용을 부담했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유교수님께서는 가난한 집 맏아들이 형제에게 돌려줘야 할 돈은 부모님께서 투자한 돈보다 훨씬 많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도 특혜 받은 정도보다 훨씬 더 많이 국민을 위해 돌려주어야 한다는 계산이 맞다고 하신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훌륭한 기업이 되어 거대한 이익을 걷어 들이고 있지만, 국민들을 위해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명품이나 수입해서 손쉬운 이익을 기대한다든지, 모기업의 영업력에 기대어 빵집, 순대집을 운영하며 골목상권을 유린하는 일만 한다. 대기업으로서 국민들의 건강한 경제생활을 위해 아무것도 배려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가난한 집 맏아들의 배신으로 나타냈다. 그 외에도 갑작스런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자신이 개인적으로 운이 좋아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개발과정에서 이익을 얻었으면 잃은 사람이 있다는 제로섬 개념을 생각해 보면 자신의 부에 타인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해 주신다.
대한 민국의 대기업 CEO들, 갖가지 혜택을 골라 받은 졸부들, 온갖 반칙으로 부를 축척한 나쁜 맏아들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화두로, 경제발전만을 위해 달려온 대한민국이 이제는 파이의 크기에만 연연하지 말고 얼마나 똑같이 나눠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더 이상 빈부의 격차가 벌어져서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대한민국 경제의 정의를 위해서라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공정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라도 먼저 나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만들어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유진수 교수님의 작은 날개짓이 나에게 도달했다. 와~ 벌써 나비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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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내 주변엔 가난한 집 맏아들이 많았다. 힘들게 대학까지 보냈더니, 취업 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람도 봤다. 그 사람의 동생들은 학비낼 돈이 없어서 선생님들께 불려가고, 부모님께서도 병원비가 없어서 많이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상황에 새차까지 뽑아 타서 다니다가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당연히 벌 받은 것이라 욕하고 다녔다. 그 사람은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밥먹을 돈이 없을 정도여서 학창시절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간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다쳐서 몸져누웠고 어머니는 당뇨합병증이라 들었던것 같다. 그랬지만 그 사람은 일반 국립 고등학교보다 돈이 더 드는 사립 고등학교에 갔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서울권 대학에 장학생으로 붙었다. 하지만 동생들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집과 제일 가까운 지방 전문대에 전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등록금 낼일 없는 전장학생 이었지만 매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고, 독학으로 일본어 공부까지해서 일본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해서 아직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 만약 그 사람이 서울권 대학에 갔다면 더 좋은 곳에 취업해서 잘 됐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 사람의 친구들은 대부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봉 많기로 소문난 곳에 취업을 했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자신을 위해 희생한 가족을 외면한채 자신만 잘사는 사람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채 끝까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옳은 것일까? 물론 후자가 옳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직접 그들이 되보지 못해서 그 책임이 얼마나 큰지 힘든지 모른다....
이 책은 그런 가난한 집 맏아들을 예로 들어 우리 사회에 대기업이 져야할 의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물론 가난한 집 맏아들이 잘될수도 있고, 그렇게까지 희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쫄딱 망할 수도 있다. 그것을 우리나라의 대기업에 빗대서 얘기하고 있다. 요즘 같은 때 더욱 공감가는 말들만 있다. 특히 공리주의나 롤스의 주장, 자유시장주의 등의 이론적 접근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각각의 이론 하나하나 살펴보면 가난한 집 맏아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어떤 방면으로는 옳은것 같기도하고 어떤 방면으로는 그른것 같기도하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현실 속 대기업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얼마전 뉴스에서 대기업이 오랜기간 터를 잡고 빵집을 운영하던 자리에 커피 전문점을 한다는 걸 접한적이 있다. 뿐만아니라 서민들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분식집, 치킨, 피자 등등의 영역까지 중소 상권을 위협하며 들어섰다. 이는 꼭 큰 수로를 내서 흘어가는 모든 물을 독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리는 빗물이 고인 웅덩이의 물까지 가지고 싶어 각종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모두 말려버리는 것 같다.
물론 이 책에선 모든 부자나 대기업이 다 그렇다고 말하고 있진 않다. 어떤 부자나 대기업은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있드며, 정부의 도움이나 누군가의 희생이나 불행 없이 그런 위치에 오르게 된자들도 있다. 특히 경주 최 부잣집을 예로 들고 있는데, 얼마전 대통령이 경주 최 부잣집을 예로들어 대기업에 서민상권을 위협하는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는 것을 신문기사에서 본적이 있다. 그 때문에 일부 대기업들은 프랜차이즈 빵집 사업을 그만뒀고, 일부 대기업은 무슨 상관이냐는 듯 지속하는 곳도 있다.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서도 도덕이란것은 법과 같지 않아 지켜도 그만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란 생각이 팽배한것 같다. 많은 부자나 대기업들이 경부 최 부잣집을 모범으로 삼으면 좋으련만...
이 책에서는 꼭 대기업이나 부자만의 도덕적 의무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만은 않다.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을 예로들어서 우리가 개발 도상국에 져야할 도덕적 의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도덕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서 부자와 대기업들에게만 도덕적 의무를 기대하는 것만이 옳은것 같진 않다. 유니세프나 월드비전 같은 기관을 통해 그들을 돕기도하고 은퇴후에 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그들을 위해 그곳에 취업을 하는 일도 좋은것 같다. 대기업이나 부자들에게 바라는 도덕적 의무처럼 우리 개개인부터 사회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다할 때 차츰 차츰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에필로그에 저자는 학창시절 실제로 가난한집 친구들이 성공한 경우를 본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가 학교를 다닐시절만 해도 돈이 없어서 학업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한다. 그때문에 저자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겸손한 입장을 취하셨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과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저 사교육의 도움으로 혹은 제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 저자는 그때문에 저자 역시 이 사회에 대해 도덕적 의무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누군가의 희생이나 불행으로 인해 혹은 그것들을 외면함으로 인해 이렇게 편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혹시 내가 가난한 집 맏아들은 아닌가....? 어떤 사람은 우리 같은 서민이 무슨 가난한 집 맏아들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위를 잘 둘러보면 우리도 우리가 욕하는 자들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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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 ?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어깨가 무겁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서 많이 보아 왔던 그런 가난한 집 맏아들에게 촛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집 맏아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서 국가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았던 기업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떠한 도덕적 의무를 져야하는가, 그리고 우리사회의 부자들은 역시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이야기이다. 2010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정의의 문제를 철학적이고 원론적인 차원에서 다루었다면, 이 책의 저자인 '유진수'는 경제학자로서 정의의 문제를 경제학적인 논리로 다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의 문제가 많이 거론된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어려웠던 지난 시절에 우리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가난한 집 맏아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학벌을 가지게 되면 신분적 상승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가난한 집 맏아들이 우리 사회의 상류층으로 등극하게 되는 과정을 몇 가지 버전으로 각색해 본다. 소를 팔고 땅을 팔고, 심지어는 여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을 하여 그 집안의 맏아들을 대학에 보내게 된다. 그리고 맏아들은 의사가 되거나, 고시에 합격하거나 하여 성공을 하게 된다. 그후에 맏아들은 자신이 그러한 위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희생한 동생들에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꼭 맏아들이 대학에 가야했을까? 맏아들이 동생들의 희생으로 대학에 갔지만, 꼭 성공할 수 있을까? 동생이 대학에 갔다면 ? 이런 등등의 경우의 수도 생각해 본다. 이런 사례들을 거쳐서 맏아들은 동생들에게 어떠한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마이클 샌델은 도덕적 책임의 범주를 자연적 의무, 자발적 의무, 연대의무로 나누었지만, 맏아들이 성공해서 가족들을 지원한다면 그것은 가족들이 맏아들보다 못 살기때문에 돕는 연대 의무의 차원의 지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센델의 3가지 도덕적 의무가 아닌 추가적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다. 맏아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한 가족들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센델의 3가지 도덕적 의무가 아닌 추가적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다. 부모가 어려운 환경에서 맏아들을 선택했던 것은 가족 모두를 대신해 크게 성공해 훗날 어려운 동생들을 보살펴 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공한 맏아들들은 어떠했던가? 성공한 자신의 위치에 맞는 여자와 결혼하여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면서도, 자신을 위해서 희생한 가족들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한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가정환경의 차이, 사고의 차이, 생활 수준의 차이로 희생한 가족들과의 단절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이런 나쁜 놈 !!"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맏아들은 그 나름의 자기합리화가 있을 것이다. 가족이 희생했다해도 나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만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고....
가난한 집 맏아들 이야기는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야기이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형성된 기업들은 그동안 나라로부터 커다란 특혜를 받아 왔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특혜들에 의해서 성장하고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업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맏아들처럼 기업의 성공은 기업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업들만의 생각이고, 성공한 기업들은 가난한 집의 맏아들이 가족들에게 추가적 도덕적 의무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에게 추가적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감수한 희생에 대해서 기업이 사회에 환원해야 할 부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부자들 역시 그들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많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부자들도 그에 대한 추가적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주식, 펀드, 선물 등. 얻는 자가 있으면 잃은 자가 있었기에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의 노력만으로 부를 갖게 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례들을 들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한 특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적극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친일파 후손들이 그동안 많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누릴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식민지 약탈의 장본인인 일본에 붙어서 얻어낸 부를 그의 후손들이 가져야 할 것인가? 그밖에도 이 책에서는 한국의 부자, 기업들의 이야기에서 세계적인 부자, 기업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준다. 한국의 비도덕적인 금융기관들의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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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만을 보고 인문사회학적 고찰을 담은 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나라의 한 싯점에서 일어났던 사회현상인 가난한 맏아들이 가족들의 희생으로 성공을 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기업, 부자들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정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그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특혜를 받았고, 국민들의 희생에 힘입어서 성공한 기업, 부자들이 어떻게 그들이 사회에 무엇을 환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해 주는 것이다. 저자가 경제학자이기에 탄탄한 경제적 이론과 수치적인 계산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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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다. 일본으로 유학을 간 중국인에게 왜 일본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느냐 물으니 사회주의에 물들까봐라 말했다.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명색이 자본주의인 일본이 더 사회주의적이란 말이다. 강한 평등지향성은 한국이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강한 평등지향성은 그 사회에서 부자를 어떻게 보는가로 측정이 가능하다. 나보다 돈이 많은 것이 부러움의 기준인가 존경의 기준인가이다. 평등보다는 자유 즉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의 경우 부는 존경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자유보다는 평등성향이 강한 사회에선 부는 존경보다는 단지 부러움이 기준일 뿐이다. 나보다 잘 난 놈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인데 이 속담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한국인은 부자를 부러워는 하더라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강한 평등성향이 이유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부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지위의 기준이다. 지위에는 존경과 부러움이 모두 따르게 마련이다. 어느 사회든 평등성향과 자유성향(즉 경쟁지향성)은 모두 있게 마련이고 단지 그 비율이 다를 뿐이다. 어느 성향이 더 강한가에 따라 존경과 부러움의 비중이 달라질 뿐 어느 것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얼마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한국인들은 존경을 표시했다. 한국에서 존경이 없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그 지위의 정당성이다. 전통이 사라진 한국과 달리 전통의 무게가 장구한 일본이나 유럽에선 여전히 과거의 귀족이었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과거에 조상이 어떠했다는 자체가 권위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전통이 없는 미국의 경우 그 정당화는 실력이다. 어쨌든 부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실력이 있다는 증명이며 지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한국에선 전통도 실력도 지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요약한다. “혼자 힘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학교 다닐 때 철학개론 시간이었다. 젊은 철학과 강사가 맡았던 수업인데 나이든 교수의 의무적인 수업보다 더 생산적인 강의였다. 교과서를 무시하고 현대철학자 한 사람씩을 골라 강사가 그들의 철학에 대해 소개한 다음 그 철학의 기준에 따라 현재의 눈앞의 문제들을 학생들이 발표하게 하는 형식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주제 중의 하나는 동성애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학생들이 찬성, 반대로 발표했던 것이다. 그 강의에서 한번은 노직을 다루었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인 노직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탔기 때문인데 강의 중에 그의 이론이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를 설명할 때였다. 내가 내 노력으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왜 정부가 그돈을 뺐어가야 하는가? 그런 주장에 대해 내가 했던 질문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내가 벌었다고 주장하는 그 돈에는 남의 몫도 잇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시장근본주의자라도 세금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시장이 존재하려면 경찰과 군대라는 최소한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시장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번다는 주장을 하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에는 여러가지가 잇다. 계약이 지켜질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는 사법시스템, 물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교통 인프라 등은 모두 세금에 대한 국가의 서비스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노력으로 벌었다고 주장하는 돈에는 국가의 몫이 포함된다. 그러나 노직이 반대한 것은 세금 자체는 아니다. 그의 속내는 복지국가였을 것이다. 내가 번 돈에서 국가의 몫이 얼마인지 그리 분명하지 않지만 몫 자체가 잇다는 것은 인정할 수있다. 그러나 왜 국가가 그 이상을 거둬가느냐는 것이다. 내가 돈 버는데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세금은 강도짓이란 말이다. 레이건이 좋아하던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복지여왕의 예가 아니더라도 일리가 없는 불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할 몫은 정말 없는 것일까? 여러가지 근거가 있을 수 잇지만 저자는 한가지만 언급한다. 도덕적 의무이다. 사회를 가족이라 생각해보자. 맏아들이 성공햇다면 “맏아들은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을 도와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 그것이 연대의무다. 돈을 많이 번 맏아들이 부모와 동생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경우 우리는 그에게 도덕적 비난의 화살을 던진다.” 연대의무는 단순히 그러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사람이면 당연히 갖는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당신이 코칭하는 CEO들이 인생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게 뭡니까?’ 애니스에 따르면 CEO들의 소망은 주가상승이나 분기 영업이익률 향상 같은 게 아니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거에요. CEO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해요. 진정한 가치를 지닌 그 무언가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거죠.’” (하워드 블룸) 돈이란 것 자체가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돈은 생존과는 무관하다. “인간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이유는 돈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이야말로 인간이 마음 속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보여주는 감정의 산물이다.” (하워드 블룸) 그러므로 연대의무는 인간이면 누리고 싶어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무를 무시할 때, 그보다는 그런 권리 자체를 모르는 부자를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렵고 존경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권력은 행사되어야 하고 부는 쓰여져야 한다. 한국의 역사와는 별 상관이 없는 (군사귀족에게나 어울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유행한 이유는 쓰여지지 않는 부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의 부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보다 더 뿌리 깊은 것이라 말한다. 다시 저자는 가족의 비유를 든다. “세 명의 자녀를 둔 가난한 부모가 시골에서 근근히 논밭을 부쳐 먹고 살았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세 자녀 중 한명, 맏아들만 대학 공부를 시켯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소까지 내다팔았다. 다행히 맏아들은 공부를 썩 잘했고 의사가 되었다. 돈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가지 못한 둘째와 셋째는 가난을 이어받아 아직까지 어렵게 산다.” 저자가 말하는 맏아들은 물론 재벌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는 몰아주기 전략으로 재벌을 키웠다. 없는 형편에 되게 하려면 공평한 것보다는 될 놈에게 몰아주는 것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광복 직후 정부는 시장경제를 도입휴ㅏ는 과정에서 모든 기업과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지 못했다. 경제적 자원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심했던 것도 한 요인이었다. 당시 정부는 특정 기업 또는 특정인에 한정해 다양한 혜택을 주었다. 가난한 부모가 맏아들만 대학에 보내듯 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혜택을 입으면서 성장햇다.” 선택과 집중이란 전략은 성공했고 지금의 재벌이 있게 되었다. “2006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34.4%)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있다’고 답했다. 근로자의 복지와 발전에 있다는 응답도 27.8%에 달했다. 반면 ‘기업의 이익과 발전에 있다’는 응답은 16.7에 붏과했다. 한편 중국은 응답자의 59.4%가 기업의 목적을 ‘기업의 이익과 발전에 있다’고 대답했다. 기업의 목적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있다’는 응답은 12.4%에 불과했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보다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더 사회주의적인 답변이 나온 이유는 재벌이 성공하기까지의 역사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가족의 희생으로 성공한 맏아들, 재벌이 가족의 희생을 나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재벌의 나몰라라 하는 것은 얼굴에 철판 깔고 연대의무를 무시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재벌의 성공에는 분명 국가차원의 희생이 있었고 그 희생은 재벌의 성공에 대한 투자였다. “기업들에 대한 특혜로 인해 다른 기업들은 그와 같은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햇다. 정부가 국내의 경쟁을 억제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했고 노조활동이 억압되었기 때문에 근로자드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런데 성공하고 나니 계약서에 쓴 일이 없다고 투자에 대한 배당을 무시한다는 말이다. “맏아들이 대학에 감으로써 다른 가족들이 암묵적인 비용을 지불했다면 의사로서 성공한 맏아들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가족에게 해야 함은 당연하다. 비용은 다른 가족들이 지불하고 혜택은 맏아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은 타당치 않기 때문이다. 맏아들이 가족들에게 지원을 한다면 이는 사랑하는 가족이 자신보다 못살기 때문에 돕는 연대의무 차원의 지원은 아니다.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상해야 마땅한 의무이다.” 한국의 반기업정서는 자본주의나 시장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재벌의 배은망덕에 대한 반감이란 말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성공한 맏아들의 도덕적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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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서민들이 고통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야기들만 죄다 즐비하다. 어떤 대책이 있는것도 아니고 또 앞으로 더 나아진다는 삶이 보여지지도 않는 암흑같은 터널같은 힘든 시기를 우리 서민들을 힘겹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모재벌의 떡볶이 가게 점령과 같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욱 하고 무언가가 올라오는것을 느낀다. 또 대기업에서 동네 구멍가게 까지 차지하고 마는 편의점들의 이야기들도 듣다보면 정말 답답한 세상이라는 생각만 든다.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주변에 작은 구멍가게인 슈퍼들과 동네 빵집들 그리고 하물며 떡볶이집까지 모두가 대기업들이 죄다 차지하고 체인점으로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와 거의 상관이 없다고 느꼈던 기업들인데 이제보니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실정속에서 우리가 모르겠다고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아니 제목만 들었을때는 정말 책 내용이 그저 그런 우리나라 아들에 대한 기대와 또 그에 따른 다른 가족들 이야기가 소설처럼 등장하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 내용 즉 시작은 그러했지만 알고보니 이런 가난한 집 맏아들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희생하면서 대기업과 재벌들에게 몰아주기를 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데 자기 혼자 잘난것처럼 소팔고 논팔고 땅 팔아 대학을 겨우 보내놓고 보면 성공한 맏아들은 부모도 내 몰라라 하고 동생들도 어렵게 살건 말건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혼자서 잘나서 대학도 들어가고 졸업도 하고 멋지게 의사도 되고 결혼도 물론 잘 한것처럼 받아들인다. 자기에게 투자하고 그로 인해 희생한 가족들은 잊어버리고 만다.왜들 그렇게 해야 할까? 당연히 맏아들이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생들에게 자기 자신때문에 희생한 값을 치를 의무가 있는데도 모른척 한다면 이건 배신이다. 지금 이 이야기를 토대로 대기업들이 재벌들이 우리 서민들을 상대로 이렇게 가난한 우리 나라 맏아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미 성공했건만 자기 자식들에게 상속하기에 급급하고 모른척 하고 있다.하물며 남은 것까지 몽땅 빼앗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연결해 보다보니 하나씩 딱딱 잘도 들어맞는다. 이건 무언가 엄청난 음모가 있는것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괜히 울화가 치민다. 왜 혼자서 그렇게 잘 살게 되었던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고 수많은 혜택을 주었다면 그로인해 주변에서 피해를 본 국민들이 있는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알면서도 모른척 한단 말인가 이건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 어떠한 방법으로는 자신들이 성공하기 이전을 돌이켜보면서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 사회에 베풀고 기부도 하고 또 서민들을 위한 지원책을 찾아나서야 한다 생색만 내는 그런 지원은 너무 속보이는 행동이다. 이렇게 커가는 과정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알수 있을것 같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우리 기업들과 재벌들은 조금씩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눈에 보이는 행동이 필요할것이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고 나라도 지켜보고 있다 이젠 베풀어야 한다 방법은 엄청나게 많을터 이제부터라도 확실하게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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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이 왜 가난한 집 맏아들인지 궁금했었는데 가난한 집 맏아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니 정말 제목도 잘 지었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난한 집 맏아들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아왔던 가정의 모습이라 친숙하게 느껴진다. 드라마에서도 단골 소재로 나올 법한 가난한 집의 맏아들 이야기다. 가족 모두의 희생을 통해 엄마, 아빠의 희망으로서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되는 맏아들... 부모의 뒷바라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흔한 우리 주변에서 들어봄직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경제 문제와 도덕적 의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롭다. 나같이 경제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주제를 풀어내고 있는 점도 책을 술술 읽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전적으로 맏아들에게만 혜택을 준 것이 최선의 선택이였는지 벤담의 공리주의와 롤즈의 정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있다. 아무튼 그 문제는 그렇다치고 부모라고 말할 수 있는 정부에게 혜택을 받아 성공한 기업들은 비용을 지불해 준 사람들에게 그 빚을 제대로 갚고 있지 않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나도 항상 우리나라 대기업들과 재벌들은 기부하는데 인색하다고만 생각했지 자신들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막연하게만 했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들이 받은 혜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제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요구도 할 수 있는 법인데 그동안은 대기업들의 태도에 대해 한탄만했지 그들이 당연히 해야할 것들을 하지 않는다고는 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최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꺼내 읽었다. 정말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준 책이기도 하고 이 책에도 짧게 소개되어 있는 것처럼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정의로운 우리 사회가 되려면 이제는 가진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부자들의 도덕적 의무가 제대로 실현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크지만 이것이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 이상 자발적으로 지킬 부자들이 얼마나 될지 한편으로는 근심스러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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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
저자 유진수 / 한국경제신문 / 2012.02.10.
부모가 가난해서 맏아들만 대학에 보낸다면, 그 맏아들은 나중에 동생들에게 어떠한 도덕적 의무를 지는가? 이 질문은 ‘우리나라 정부가 특정 기업들에게만 특혜를 주었다면, 이 특혜를 받아 성장한 기업들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도덕적 의무를 지는가?’ 이 질문은 ‘우리나라 부자들이 정부가 제공한 특혜로 인해 부자가 되었다면 우리 사회에 어떠한 도덕적 의무를 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되어 우리 사회의 ‘도덕적 의무’에 대해서 우리 모두에게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 유진수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정거래와 국제통상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있으며 지난 수년간 공정거래위원회 및 외교통상부 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사)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을 맡아 스리랑카, 에콰도르 등 개도국에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한국공정거래조정원 분재조정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의 ‘공정거래론’ 수업은 최고의 명강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경제의 이해》(공저, 2005), 《국제통상론》(공저, 1998) 등이 있다.
1. 가난한 집 맏아들 이야기 세 명의 자녀를 둔 가난한 부모가 시골에서 근근이 논밭을 부쳐 먹으며 살고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세 자녀 중에서 한 명, 맏아들만 대학 공무를 시켰다. 등록금을 대기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소까지 팔아야 했다. 다행히 맏아들은 공부를 썩 잘 했고,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되었다, 돈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가지 못한 둘째와 셋째는 가난을 이어받아 아직까지 어렵게 살고 있다.
2. 마이클 센델의 도덕적 책임과 도덕적 의무 마이클 센델은 도덕적 책임의 범주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자연적 의무, 자발적 의무, 연대 의무가 그것이다. _ (1)자연적 의무란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다. 인간을 존중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며, 잔인한 행동을 삼가는 등의 의무가 여기에 속한다. _ (2)자발적 의무는 합의(또는 계약)에 의해 발생하는 의무를 말한다. 약속이나 계약을 지켜야 하는 의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_ (3)연대 의무는 가족, 국가, 민족 등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말한다. 아이를 돌보거나 부모를 모시는 의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_ (4) 도덕적 의무는 마이클 센델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맏아들이 대학에 감으로써 다른 가족들이 암묵적인 비용을 지불했다면 의사로서 성공한 맏아들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가족에게 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비용은 다른 가족들이 지불하고 혜택은 맏아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맏아들이 가족들에게 지원을 한다면 이는 사랑하는 가족이 자신보다 못살기 때문에 돕는 연대 의무 차원의 지원은 아니다.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다.
3. 한국의 성공한 기업 지난 세월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경제의 견인차는 한국 정부와 대기업 재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성공한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혜택을 입었다. 그동안 기업들이 이룩한 성공이 누구의 어떤 도움으로, 그리고 누구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결국 기업들의 성공은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지 못한 기업들과 정부가 제공한 특혜의 부담을 떠안은 국민들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결과이다. 정부로부터 특혜를 얻으면서 성공한 기업은, 그 과정에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 빚을 갚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그것은 성공한 맏아들과 똑 같다.
4. 한국의 부자들 우리나라 부자들 가운데 많은 수는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부를 축적했다. 강남 개발이라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탄생한 강남 땅 부자들이 있다. 이것은 강북 등 다른 지역 주민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도시 개발과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해 많은 이득을 본 사람들도 있다. 이것 또한 개발되지 못한 지역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성공한 맏아들이 훗날 형제자매에게 보상을 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듯, 정부로부터 특혜를 입은 기업은 다른 기업과 국민에게 보상을 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 또한 정부의 정책 덕분에 막대한 부를 모은 한국의 부자들도 희생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
5. 성공한 기업과 부자들의 도덕적 의무 방법 기업들에게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다른 기업보다 부가가치를 더 많이 창출함으로써 사회에 보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더 많은 소비자잉여를 제공하고, 근로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고, 원자재를 제공하는 기업에게 더 많은 대금을 지급하며, 이윤을 남김으로써 사회에 보답할 수 있다. 이것은 성공한 맏아들이 의사로서 훌륭한 의술을 펼쳐 사회에 보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강남이나 신도시 개발 등으로 땅 부자가 된 사람들은 기업들과 달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낼 수 없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 해도 국민소득에 아무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부자들이 사회에 보답하는 길은 ‘가진 것을 기부’하는 방법밖에 없다.
6. 성공한 대한민국의 도덕적 의무 한국경제가 놀라운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대결이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소련과 중국이라는 공산국들의 남하 정책을 저지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한국에 많은 원조를 했다. 경제 원조, 차관 제공, 기술 지원 및 노하우 전수 등이었다. 선진국들은 한국이 아니라 다른 개발도상국을 지원할 수도 있었지만 한국을 지원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들은 지원을 받지 못해 손해를 업었다. 그렇다면 ‘성공한 맏아들’이 암묵적으로 비용을 지불한 동생들을 도와야 하듯이, 성공을 이룬 한국은 암묵적으로 비용을 지불한 다른 개도국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
7. 나쁜 맏아들이야기 선진국들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많은 선진국들이 과거에 다른 국가들과 그곳 국민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피해를 주면서’ 발전한 역사를 갖고 있다. 식민지를 수탈하면서 얻은 이득은 그들 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심지어 식민지를 쟁탈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기업들도 성장과정에서 다른 나라와 그 기업들에게 많은 희생을 주었고, 부도덕하고 편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국내 재벌들 가운데도 그러한 부류의 기업들이 있다.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실패한 맏아들’의 경우를 가정해 보자. 혼자 대학에 가서 의사가 되었으나 병원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보증 선 동생들의 재산까지 다 탕진한 경우이다. 또한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부도가 나거나 없어져버린 기업들도 많다. 이들 기업들은 특혜의 대가를 사회에 돌려주기는커녕 실패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말았다. 문제는 도산한 기업의 총수들과 기업인들 일부가 지금도 남들보다 잘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도덕적 의무를 지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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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전통처럼 남아있는 것 중의 하나가 장남이 잘 되어야 집안이 잘된다는 표현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첫째를 아들 낳기를 원하고 만약 딸이라면 다시 아들을 낳기 위해 둘도 셋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대의 변화로 인해 하나만 낳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식에게 투자하는 법도 가르치는 법도 교육하는 법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정서가 남아있어서 장남이나 장녀에게 투자를 많이 한다. 가난한 시골집안의 경우 더욱더 장남에 대한 투자 의지가 강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가난한집 맏아들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고 둘째나 셋째는 뒷전이라는 부모님의 생각과 투자 가치의 형평성을 비교하여 장남과 둘째 셋째로 구분하여 자녀들이 성장하여 성공하였을 때 투자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장남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는 바람에 차남이나 차녀의 동생들에게 혜택이 주어지지 않은 만큼의 투자 가치를 성공 후에는 동생들에게 보상하여야 올바른 것이며 부모의 선택적인 투자에 비교 차트를 삽입하여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장남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동생들에게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간의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국가에 비유하여 부모를 정부라고 보고 장남을 성공한 대기업들 차남이나 차녀를 일반사람이라고 적용하여 이야기를 다시 전개한다. 정부의 혜택으로 초대기업이 성장하는데 성장과정에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초기업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익을 창출하고 이윤을 남겼으면 사회재단이나 사회에 환원을 하여야 하나 한국의 대기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혜택을 받아 성공한 기업 중에는 많은 재산을 환원하는 기업도 있기는 하지만 너무 적다는 것이다. 결국 맏아들과 대기업은 부모와 정부로부터 수많은 혜택을 받았다. 오직 자기가 성공하기까지 노력도 하였지만 결국은 입지적인 수혜를 입었고, 주위환경을 조성하여 주었고, 정부의 시책에 따라서 수혜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나 장남은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거나 기부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사회에 재산을 기부하고 있다. 그중에 석유왕 록펠러가 대표적이고 워런버핏, 빌게이츠 등 사업가와 기타 일반인들도 기부문화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들이 수혜를 받기까지 많은 정부의 지원이 있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진정성있는 대한민국의 경제정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도덕적의무가 무엇인지를 대기업과 장남들은 알아야 한다. 성공하기까지 노력을 많이 하였지만 결국은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만큼 도덕적의무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과 장남들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불어 사는 한국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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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집 맏아들. 내용이 궁금했다. 난 맏아들이기 때문이다. 한 권을 다 읽고 난 지금, 너무나 저자인 유진수 교수님께 감사하다. 맏아들인 내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나아가 국가에 까지 내게 따르는 책임이 무엇인지? 어떠한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자신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가난한집 맏아들과 대기업을 비교함으로, 궁극적으로 대기업의 도덕적 의무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참신하다. 성공한 맏아들이 가족에 대해 갖는 의무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자연적 의무, 자발적 의무, 그리고 도적적 의무. 그렇다면 자신의 사회적 성공의 기반이 될 수 있었던, 암묵적 희생을 치른 동생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하냐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국가의 혜택을 받고 성장한 대기업에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 저자는 대기업들이 어떠한 혜택들을 받아 왔는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도와 주었다. 아래 참조. 박정희 정부의 다양한 특혜적 지원 첫째, 과열경쟁에 따른 도산을 막기 휘해 투자 인허가 제도를 선택했다. 따라서 규제의 보호를 받은 기업들은 독점적인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 금융기관의 자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업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었다. 당시 국내 금리가 2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차관의 이자는 5% 수준이었다. 셋째, 정부는 특정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이나 기술을 도입하는 데도 관여했다. 넷째,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채택한 정부는 수출기업에 대해 다양한 세제 감면, 원자재 및 자본설비에 대한 수입관세 면제 등을 제공했다. 다섯째, 정부는 노동조합을 노골적으로 탄압해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근로조건의 향상을 사실상 억제했다. 여섯째, 시장개방을 늦춤으로써 외국기업과의 경쟁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했다. 물론 도덕적 의무는 어디까지나 도덕적 의무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강제성을 갖지 않는다. 그리하여 최근 정부는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다시 보이고 있다. 이는 아마도 성공한 대기업의 이윤은 사회로 환원되어야 마땅하다는 국민적인 정서가 깔려 있음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저 멀리, 유럽을 지나 중동, 미국에 이르기까지 탐욕스런 모습을 보여왔던 자본주의에 대하여 저항하고자 하는 사회적 열망의 표출이라 생각한다. ‘반자본주의’가 아닌, 지금의 자본주의 형태는 사회 양극화를 더욱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됨이다. 분명 경제 파이가 먼저 커져야 함은 옳은 것 같다. 하지만, 분배를 하는 과정에서 과연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군림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 환원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사실 자발적인 부의 분배에 동참하고 있는 여러 기업들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갈 갈이 멀어 보인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보다 적극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고 있다. 최근 삼성가의 쩐의 정쟁이 볼만하다. 또한 과거의 ‘초과이익 공유제’에 적극 반대하던 모습이 선하다. 물론 나는 경제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결코 사회 환원은 없다라고 외치는 것 같다. 맏아들인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다행스럽게도 맏아들에게만 보험을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직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독려한다. 작은 도움을 주는 손길의 시작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임과 동시에 내게 주어진 의무임을 생각해 본다. 왜? 사람은 저마다 재능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재능마저도 자신에게 부여된 하나의 특권이기에 이 또한 사회에 마땅히 환원되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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