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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글쓴이인 마쓰우라 신야가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난 후 자신이 간병을 하면서 느낀 점 및 다른 치매 가족을 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는 책 입니다. 글쓴이의 감정이 글로 잘 뭍어나 있었고 치매라는 병의 무서움을 잘 표현해서 마음에 확 와닿았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치매로 인해 잘 화를 내고 고집이 심해지자 간병으로 지칠대로 지친 글쓴이가 어머니를 뺨으로 때리게 되었는데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그것을 치매 때문에 금방 잊어버리고 자신이 왜 화를 냈는지 마저 까먹는 장면을 보고 치매라는 질병의 무서움이 몸에 사무치게 느껴진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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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정했던 외할머니는 치매라는 이름으로 어느날 부턴가 우리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셨다. 아무런 대책없이 할머니를 맞이했던 우리 가족은 처음엔 안타까움으로 돌아가며 할머니를 돌보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끝없는 할머니의 부름과 예기치 못한 행동에 모두가 지쳐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족쇠아닌 족쇠를 매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치쳐갔다. 약 20여년 전의 일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3-4년 치매를 앓으시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가끔 할머니가 생각난다. 부모님이 형제들에게 힘듬을 토로하고 그 짐이 손주인 우리들에게까지 지워질때면 할머니한테 서운한 말도하고 화도 냈던 기억이 떠올라 할머니께 미안해진다. 치매였던 할머니는 기억을 못하실수도 있지만 내맘엔 할머니에대한 빚으로 남아 지금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엄마 미안해>를 읽으면서 치매 노모를 모시는 아들의 마음에 너무 공감이 가서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 써놓은 일본의 치매노인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년 전에 겪은일이라 지금 우리나라 치매 시스템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에서 권장하는 단계별 돌봄 시스템 얘기는 못들어본것 같다. 앞으로는 할머니가 아닌 나의 부모님께도 일어날 수 있는 일, 더 나아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겪는 사람은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지않은, 지워주고 싶지 않은 짐같은) 모습을 생각하니 정말 이 책이 널리 읽혀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스템이 빨리 만들어지고 정착되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가족의 문제가 아닌 국가에서 같이 고민하고 안아야할 문제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어느 한 가정도 모르거나 지나가지 않고 국가의 혜택으로 누리고 가정이 좀더 편안해 질 수 있도록 우리 나라가 더 좋은 복지 국가가 빨리 되는 그날을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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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시설에 모신 이들에게서는 홀가분함과 동시에 일말의 죄책감이 읽힌다.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돌봐 드렸어야 하는데 그리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다. 부모를 모시는 건 자식의 도리이자 의무라고 여겨온 우리 사회의 오랜 사고가 선사한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예전에는 가족이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정부는 가족의 순기능을 지금이라도 되살려 보고자 안간힘이다. 아예 결혼조차 않아 홀로 늙는 가구가 급증한 현실을 외면한 처사다. 저자 역시 정부의 시도를 책임 방기로 규정했다. 더 나아가 간병에 있어 중요한 건 효율성이라는 조금은 냉정한 선언까지 했다. 전문화된 인력이 달라붙음으로써 가족 구성원이 어설프게 간병에 매달림에 따른 손실을 줄여 주는 게 국가 전체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라는 주장에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꼈다. 모든 걸 비용으로만 따지는 사회는 끔찍하다. 저자의 사고가 너무도 단순하다며 비판하려는 찰나에 나는 이어지는 대목을 읽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최대한 존중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온기를 불어넣는 건 필수다. 아, 말처럼 모든 게 쉬우면 참 좋을 텐데, 그만큼 어려운 게 간병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보다 약 10년 가량 앞서 고령화를 경험했다. 급증하는 노인인구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적어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할 땐 괜찮았다. 문제는 신체의 노화와 더불어 발병한 치매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힘들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바쁜 나머지 어머니를 세세하게 살피지 않았다. 그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신다고 막연히 짐작했던 게 전부였다. 자꾸만 무언가를 잊는 건 단순 건망증으로 치부했는데, 어쩌면 그럼으로써 어머니와 자신이 겪게 될 문제를 부인했던 것일 수도 있다. 치매에는 약이 없다. 진행 속도를 약간 더디게 만들 순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은 불가능이다. 나아지진 못하더라도 지금의 상태를 당분간은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기대가 산산조각 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많은 증세가 언급됐다. 자꾸만 기억을 잊었고 대화가 끊겼다. 거액을 인출해 홈쇼핑 등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장기 계약하는 일이 잦아졌다.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잊고 배가 고프다며 울부짖는 이상식욕 증세를 경험하기도 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어머니의 실금 증세는 아들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전문가의 도움을 얻는 것에 처음에는 저항심이 일었다. 그러나 그건 항복이 아니었다. 시설에 어머니를 입소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적절한 도움을 얻는 건 어머니와 간병인 본인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어쩌면 어머니보다도 저자가 용인하는 게 더 힘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책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가족 아닌 제3 자가 더 수월하다는 말이 잘 와닿지는 않았지만, 교육을 받은 이들이 발휘하는 전문성은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분명 긍정적이었다.
고령자 간병은 사업이다. 감정과 분리시켜 고도의 사회적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 임무를 완수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너무도 냉정하게 여겨졌던 저자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저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내가 하게 될 선택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이 안 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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