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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소 불쾌할 수도 있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책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이 급격한 인구증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책에는 일본정부와 재조일본인의 식민지경영과정이 풀이된다.
식민의 역사.
* 이 책은 네이버를 통해 출판사에서 지원받았으며, 책읽는 엄마곰의 솔직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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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 사이 저자 이규수님은 이 책을 출간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재조일본인을 주제로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만을 부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에서 새로운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함이며, 역사학 본연의 임무는 과거의 교훈 위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으며 역사학은 과거의 '기억 들추기'를 통해 '과거에 머물기'가 아니라, '과거 되살리기'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을 향한 '미래를 살아내기' 작업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민족이 민족을 침략하여 지배하거나, 개인이 개인을 사회.경제적으로 종속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제국'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는 동아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역사적 연원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와 일본은 아직까지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에 대한 인정과 사과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까지 너무나 일방통행인 일본인들의 태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적인 표출이 아닌 확실하고 근거가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 바탕에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며 어렵지만 제국과 식민지 사이를 읽으며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P 22 한국 사회는 자주적으로 근대화할 능력이 있었는가, 일본은 한국 사회와 한국인을 어떻게 변모시켰는가, 식민지의 유산은 해방 이후 고도 성장에 어떠한 영행을 미쳤는가, 한국 근대의 고유한 특징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인가 등 논쟁 고정에서 제기된 여러 질문들은 한국의 지난한 근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기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근대성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 치중해 식민성에 대해서는 부차적으로 다루는 데 그치고 있는 것에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첫번째 문제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P 32~33 재조일본인은 '제국'과 '식민지'의 접점에서 그들이 갖는 '근대성'과 '식민성' 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주제의 하나이자, 제국의 식민지 침략과 수탈이 국가 권력과 그들이 지원하는 민간인이 결합하여 총체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한 주요 연구대상이었으며, 재조일본인은 한일관계사의 접점을 이루는 공간이며, 재조일본인의 존재 형태를 규명함으로써 일본의 식민지배가 어떤 메커니즘 속에서 기존의 조선 사회를 재편시켰는가에 대해 실증적으로 연구 할 수 있고 이에 기초하여 제국과 식민지의 사회상을 종합적으로 구축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 인구, 직업 구성, 출신지와 지역적 분포등을 살며보고 일본의 토지 수탈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수탈을 논의 할 때 토지 조사사업이 아니라 일본인 농업 회사와 민간 지주들의 토지 수탈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강점 이전에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일본인의 토지 소유권이 한국강점 이후 외국인의 토지 소유 허가 문제와 무관하게 토지 조사사업을 통해 최종적으로 법적 소유권을 인정받았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또 한가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이해할 때 또 생각해야 한가지를 추가한다면 P 208 녹음기록은 자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관계에 일부 오류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녹음된 시점이 일본의 '패전' 이후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의 증언에는 식민지 지배자로서의 '자기 합리화의 감정'이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불리한 상황에서 본인위주로 해석하고 본인 위주로 합리화하는 물론 일본을 두둔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므로 우리는 좀 더 철저하게 더 확실하게 검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일상 삶에서도 진실이 중요한 법인데 역사에서의 진실은 더 중요하므로 역사학자분들께서 더 수고를 해 주셔야겠습니다. P 232 한 식민지 관료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증언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숨겨져 있던 과거의 많은 '비화'를 살필 수 있다. 물론 증언에는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일과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과거를 회고하면서 증언자 나름이 사실 평가 부분이나, 증언이 없었다면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을 진실도 발견할 수 있다. P 233 증언 기록을 살펴보면 최근 자주 거론되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관련하여 과거의 '사실'을 올바로 해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준다. 증언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 않을 것이다. 왜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며 진실된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일반인인 우리가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일이 아니라고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많은 무게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역사 인식에 평소에도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제국과 식민지 사이'를 읽으며 변화된 인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려운 내용도 많아 읽는 동안 어렵다고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P 263 일본의 통치는 비판받을 대상이 아니라, 한국이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들에게 지배 민족의 불법성 그 자체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이들 또한 이노하라처럼 식민지 지배를 통해 산업이 발전되었다고 강조하고, 한국 경제 발전의 출발점을 한일기본조약에서 찾고 있다. 왜곡된 '기억'의 재생산은 이렇게 노정되고 있다. 과거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일이나 후손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의 방향성을 잡는 일도 휠씬 어려워진다. 식민지 귀환자들의 역사적 체험과 기억을 평가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P 264 완전한 '종전' 상태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기억을 공동으로 재생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후지카이의 식민지 기억에 관한 검토는 해방 전후 연속과 단절의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인의 식민지 기억과 비교 작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해방 이후 '왜정시대'에 대한 한국인의 기억은 일본인 개인에 대한 호감과 일본 국가에 대한 분노라는 양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해방 이후 한국 민족주의의 국민통합 과정을 고려하면서, 일본으로 귀국한 일본인의 조선과 조선인,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기억과 연관하여 고찰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자 이규수님의 바램대로 우리의 기억을 공동으로 재생시킬 수 있는 장치 마련이 빨리 되기를 그리고 많은 참고문헌과 자료를 분석하여 '제국과 식민지 사이'를 연구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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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본연의 임무는 과거의 교훈 위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다.
역사학은 과거의 '기억 들추기'를 통해 '과거에 머물기'가 아니라, '과거 되살리기'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을 향한 '미래를 살아내기' 작업이라 믿기 때문이다.
-책머리에
동아시아 속의 한일관계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인
저자는 근대 일본 및 일본인의 한국 인식과 상호 인식을 규명하기 위한 글을 계속해서
써오고 있다.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이 패전 후 본국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머릿 속에 남아있는 기억과 그
기록들을 근거로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재조일본인 연구와 존재 양태, 식민정책론과 재조일본인 사회 그리고 식민자의 체험과
기억 이렇게 3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학술지로 출간된 책이기에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다.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일본에게 새로운 이주지로 아주 적합했단다.
거리상으로도 제일 가깝기도 했거니와 농사를 짓을 수 있는 넓고 비옥한 땅도.
사실 일본은 그동안도 수없이 침략을 해오지 않았던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계기로
조선을 장악한 일본.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온다.
당시 조선은 농업 중심 사회였다. 재조일본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정치적. 경제적인 장악에 보다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한다.
부산과 원산 이외에도 인천과 군산을 개항하여 침략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으니,
우리나라로 접근이 용이한 곳에 자리잡고 이 곳을 통해 수 많은 물자와 사람들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일본의 통치는 관료나 군부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식민지 지배체제는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재조일본인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이제 더이상 자신들의 안전과 특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
목숨마저 위험한 상황이 되었으니 그동 누리고 쌓아왔던 경제적 기반들을 포기 한 채
귀환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을 그들의 기억과 기록들. 그 당시 조선과 만주에 머물렀던
일본인이 약 90만 명에 이른다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닌가.
수탈을 당하며 피폐한 삶을 살았던 처참하고 아픈 역사, 독립을 위해 끊임없는 저항으로
맞선 우리들와 다른 기억,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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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 사이 두 아이가 어렸을 때 헬로우 키티 캐릭터를 아주 좋아했다. 옷과 신발 학용품등을 헬로우키티 제품을 많이 사 주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중학교 들어간 후 일본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용품을 포함한 자신이 가진 일본관련 제품을 모두 거부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일본작가와 작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혹시 아이와 마찰이 생길까 나 스스로도 일본 작가의 작품을 잘 보지 않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도 한쪽 구석으로 조용히 치웠다. 간혹 아이가 너무 극단적으로 흐를까? 한마디씩 충고하곤 했다. 극우주의자들의 행태는 밉지만 과거 자신들의 국가가 행한 잘못된 행동들을 비판하면 반성을 촉구하는 분들도 점점 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등등 그렇게 아이와 대화를 하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민들은 과거 자신들이 행한 많은 잘못들을 반성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거의 한세기가 다 되어가는데 진짜 반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일전 축구경기를 보면 아직도 제국주의 깃발을 버젓이 들고 응원을 한다. 누구 한사람 제지하지도 않는다. 언론에서도 그런 행태들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 머리가 혼란하던 차에 [제국과 식민지사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당시 일본은 늘어나는 인구와 부족한 식량문제의 해결 그리고 원료공급지로서의 조선은 매력적인 대상지였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을 빠르게 안착시키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도 필요했지만 그와 더불어 조선민중과 꿋꿋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존재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조선에 들어와 다양한 활동을 펼친 일본인들이다. 36년이라는 긴 시간을 식민지배할 수 있는 동력은 재조 일본인들의 든든한 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당시의 기억들이 지금의 일본이 힘이라는 제국주의의 논리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것과 함께 지금 일본국민들이 아무런 비판도 없이 제국주의깃발을 펄럭이는 이유가 아닐까 [제국과 식민지 사이] 이 책은 학술서답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작은 디딤돌의 역할은 충분하다. 끝까지 읽기 쉽지 않지만 외면하고 덮어버리기도 쉽지 않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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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 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인 이규수 교수님의 학술 논문이다.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인으로 생활한 재조 일본인의 체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식민지 수탈론’과 대비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한 연구 내지는 재조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된 식민지론의 재생산에 대한 현주소를 연구한 논문이다. 제 1부는 재조일본인의 연구와 존재 양태로 ‘연구의 현황과 과제, 재조일본인의 존재 양태’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 2부는 식민정책론과 재조일본인 사회이며, 제 3부는 식민자의 체험과 기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식민지 수탈론’이 한국 사학계의 통설로 자리매김하였는데, 1980년데 중반 이후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바로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식민지근대화론’이 민족주의 역사학에 기초한 ‘식민지 수탈론’을 비판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를 ‘수탈과 저항’의 역사가 아닌 ‘수탈과 개발’의 역사로 바라보자는 ‘식민지 개발론’이나 이를 수정한 ‘식민지 근대화론’ 등장하고,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양자를 모두 비판하는 ‘식민지 근대성론’이 1990년대 중반이후 탈근대주의 입장에서 대두되었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래 내용을 보면 그런 용어들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의 근대적 변화에 대해 변화의 주체 문제를 등한시한 채 경제적 측면에서 해방이후 한국자본주의 고도성장과 연관시킨다. 반면, ‘식민지 근대성론’은 사회문화 측면에서 민족주의의 차별과 배제논리, 규율권력의 개인적 내면화를 근대성 일반이 이미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음에 주목하고, 이를 탈근대의 문제의식과 연관시킨다. 요컨대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식민지 근대성론’ 모두 ‘식민지 수탈론’에 내표된 민족주의를 비판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은 선진근대국가의 완성을 지향하는 근대지상주의인 반면, ‘식민지 근대성론’은 민족주의에 기초한 근대국가로부터의 벗어남을 지향하는 탈근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이 지닌 최대 결함은 일제강점기의 ‘근대성’에 주목하면서 ‘식민성’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22p-
일본인들이 처음 조선에 진출한 것은 1876년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조일수호조규’에 의하여 부산이외에 원산과 인천에 개항장을 통해서였다. 이후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한다. 이 재조일본인들은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에 적극 협력했으며, 러일전쟁 이후에 개항장 인천은 일본의 식민기지로 변화했다. 1904년 전북 군산에 설립한 군산농사조합은 개항장 군산을 거점으로 비옥한 곡창지대에 토지소유권과 저당권을 획득한 일본인 지주의 토지 집적방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일본인 지주의 밀집지대인 군산 부근의 1단보당 가격은 상답 15~20원, 중답 10~15원, 하답 10원이었다. 또 전주는 상답 17원, 옥구는 중답 13.5원, 김제는 중답 8.3원이었다. 이런 한국의 매매지가는 일본 관서지방에 비해 약 10퍼센트에 불과한 것이었다. 1904년 일본의 1반보당 평균 매매 가격은 논 150원, 밭 86원이었다. 즉 일본인은 일본 국내의 토지를 처분하여 한국에 진출하면 토지 면적을 10배로 확대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저렴한 지가와 소작제 농장 경영을 통한 고율의 토지 수익률은 상업 자본가와 지주 계층의 토지매수를 가속화했다. 그들은 자본가의 임무를 내세우며 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임을 자부했다” -153p- 아울러 재조일본인들은 조선인들과 많은 갈등을 일으켰는데, 이 책에서는 전남 벌교에서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이 갈등은 일본인 지주의 소작제 농장경영과 가혹한 소작료 징수문제였다고 한다. 재조일본인들은 남아있는 자료만으로 판단한다 해도 관헌이상으로 아주 강렬한 식민지배자였으며, 조선인에 대해 국가의 논리로 무장한 냉혹한 에고이스트이자 편견의 소유자, 차별과 박해의 실행자였다. 이런 귀환자들은 지금도 자기 체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평가의 기회를 상실한 채 왜곡된 기억과 역사인식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운동, 1894년~1895년 청일전쟁, 1895년 민비시해사건, 1904년~1905년 러일전쟁, 1905년 을사조약,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한일합병조약)부터 광복까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저번 주 8월 29일이 경술국치일인지는 생각한번 해보지 않고 지냈다.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재조일본인들에게 경제적으로 수많은 수탈과 핍박을 했지만 아직도 이 나라가 이렇게 건재한 것은 슬픈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저자처럼 연구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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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는 동아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역사적 연원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미가 있다.' ? 책의 제목부터 일반적 흥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치, 정책등에 관해 관심이 있기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 *주 연구대상인 재조일본인 이란?? ? ? : 말 그대로 조선에 있는(거주한) 일본인들을 가리킨다. 군인, 정치가들도 있지만 그외 많은 일반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재조일본인에 대해 개인적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본 식민지로서의 조선에 대해 그리고 그 관계에 얽혀있는 정치적 관점에 대한 관심에서 이 책을 보게 된거라고 봐야할 것이다. 1910년부터 45년까지 35년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제국이었다. '이 책을 출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재조일본인을 주제로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만을 부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에서 새로운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불행한 과거를 거울삼아 이제 동아시아의 모든 민중은 평화와 화해를 향해 손잡고 나아갈 시점에 이르렀다. 역사학 본연의 임무는 과거의 교훈 위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다.' 후지이는 1919년 5월 조선은행 도쿄 지점장인 와타나베 류이치에게 보낸 '조선 독립에 대하여'라는 서간에서 재정 독립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인 이민 문제를 이렇게 말한다. " 조선을 이상적 낙천지로 만들어야 한다. 거주하던 정던 고향을 떠나 이주하게 될 내지인에게도 내지보다 조금은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후도 다르고 생활도 불편한 조선에 무엇을 바라고 오겠는가. 내지인의 이주가 지금처럼 미미해서는 동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재정 독립 같우 사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내지인의 이주에 편리를 제공할 시설에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조선의 재정은 현실적으로 독립되어야 하지만, 정략상 상당액은 본국으로부터 보조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다수의 내지인이 이주하여 이익을 얻는다면 표면삿의 보조는 결코 손실이 아닐 것이다." 일본은 1876년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조일수호조규'를 체결. 침략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전략적 근거지가 필요했다. ? 인천은 일본의 도쿄와 요코하마와 같우 의미를 지닌 개항지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화하는 것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들의 제국, 식민지화도 결국 원자폭탄으로 일본이 항복함으써 모든것이 끝나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제국의 붕괴는 식민지 거주 일본인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식민지 조선은 이제 더 이상 지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식민지에 군림하덬 지배자의 지위는 순시간에 사라졌고, 신변의 안전과 특권을 보장해주던 식민지 통치체체누 연합군에 의해 해체되었다. 일본인들은 식민지에 쌓아둔 경제적 기반을 포기한 채, 미래에 대한 보장 없이 본국으로 귀환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미주 p.266-306 참고문헌 p.307-355 특정분야의 전문적 자료들로만 가득찬 책이라 일반인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연구과정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의 하나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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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 사이(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 이규수 著/어문학사 술술 읽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몇 장 넘기지 않으면 덮어 버리는 책이 있다. 물론 술술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고 지루한 책이 나쁜 책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던 이 책은 지루한 책이다. 이 책은 2013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 대부분의 학술서가 그러하듯 전문분야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통계자료들이 졸음을 부른다. 저자는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동아시아속의 한일관계사를 전공했으며 헌재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책은 ‘제국’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서로 동아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문제의 연원을 밝힐 수 있다. 재조일본인은 ‘제국’과 ‘식민지’의 접점에서 그들이 갖는 ‘근대성’과 ‘식민성’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주제이며 제국의 식민지 침략과 수탈이 국가 권력과 그들이 지원하는 민간인이 결합하여 총체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한 연구대상이다. 역사학의 본연의 임무는 과거의 교훈 위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다. 저자는 “연사학은 과거의 ‘기억들추기’를 통태 ‘과거에 머물기’가 아니라, ‘과거 되살리기’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을 향한 ‘미래를 살아내기’”라 주장한다. 이 책은 3부로 제1부 재조일본인 연구와 존재 양태,로 서론부분이라면 제2부 식민정책론과 재조 일본인 사회, 로 본론부분이라 할 수 있고 제3부 식민지의 체험과 기억으로 편집되어 있다. 나는 일반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의 핵심결론은 제 3부에 있다고 본다. 지루해서 인내심의 한계로 책을 다 보기 어려운 독자라면 제3부라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재조일본인들이 역사인식이 오늘날 일본 정부 또는 대부분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으로 본다. 재조일본인들은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이 아니라 양국간의 합의”라는 것을 강조하며 일본의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재조일본인 귀환자들은 자기 체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평가의 기회를 상실한채 왜곡된 기억과 역사 인식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일본의 통치로 인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공업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관개 설비의정비, 농업기술의 개선을 통해 면적당 수확량은 대폭증가했다. 박정희 시대의 급격한 발전은 이본 통치시대에 기초가 만들어 지고, 한일기본조약의 체결에 따라 일본과의 통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또 일본인과 조선인과의 차별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지만, 양반과 상민과의 차별은 없어졌고, 노비는 해방되었다. 교육의 보급을 통해 노력하면 보상받을 길이 열렸다.” 일본의 통치는 비판받을 대상이 아니라 한국이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대상일 뿐이며 오히려 그러한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것에 대한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 또 다른 어느 재조일본인의 말에 귀기울여야 본다. “일본이 나쁜 일만 벌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 민족을 지배했다는 것 그 자체가 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