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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떤 소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어렸고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아니, 살아남았다). 작가의 바람대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없이 굶어 죽은 비극에 대해 깊이 슬퍼했다. 그 일이 일어난 배경과 원인,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저 지금 이 일에 대해 말하는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 소년이 아직 살아남아 우리에게 질문조차 없이 똑바로 걸어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2000년 이전의 일이다. 매해 '기아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었고 그곳에 가면 봉사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말에 겁없이 참가했다. 난생처음 굶주렸다. 하지만 내 선택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죽이라기엔 묽고 스프라기엔 맹맹한 것을 사먹을 수 있었다. 진짜 굶주린 상태는 아니었다. 당시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대다수는 나와 같은 목적을 갖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끊임 없이 굶고 있는 타국의 아이들이 내보내지고 있었다. 조금은 속이 상했고 세상의 기울기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프로그램이 끝나자 마자 내 머리에서 전부 사라져버렸다.
나이가 들었다. 북한에 대한, 그곳 인권에 대해 떠도는 기사나 말들은 그저 일회성으로 소멸되기 바빴고 나는 먹고사는 일에 바빴다. 여기서 먹고사는 일은, 그들의 먹고사는 일과는 굉장히 거리가 있는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내 눈앞의 일이 더 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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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굶는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본다. 이 책에서 시작하는 굶주림의 마지막은 늘 죽음이다. 너무 평범하게, 일상처럼 쏟아지는 죽음 앞에서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 광경을 보는 소년도 역시, 굶주려 있었으니까. 개인은 땅으로 꺼지고 가족은 흩어진다. 그러나 그들의 국가는 여전히 단단하게 남아있다. 이 책은 체제나 그 사회에 대해 깊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 속의 사회가 분명 무언가 어긋나있다는 건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한 개인에게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 눈을 돌리게 만든다.
작가의 방법이라고 본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분노하기 전에 지성호 씨에게 다시 불편하지만 명확한 시선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덤덤하게 쓰였지만 팔과 다리의 가격을 그 감각 그대로 읽을 수는 없었다. 나는 책의 마지막 10페이지 정도에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 이렇게 거대한 불편함이 오는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어떤 개인의 울부짖음 "개 같은 나라-"라던 소년의 아버지,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싶었기 때문이다.
짧은 책을 거침없이 읽고 나서 "팔과 다리의 가격"은 무엇일까 싶었다. '아직 남은 팔과 다리'의 가격이라기보다는 '이미 소멸된 팔과 다리'에 대한 가격을 떠올렸다. 그리고 너무 숨을 참고 한번에 읽은 듯- 머리가 조금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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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제 보여주는 것을 그만하고 묻는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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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굶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매우 배가 고파진다. 몸에 축적한 지방층이 없는 상태에서 두 끼 이상을 연속해서 거르면 그때부터는 허기가 통증에 가까운 감각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급성 위염이나 위궤양처럼 속이 쓰린 느낌인데, 특히 성장기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이 이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다고 한다. 육체가 비명을 지르며, 신경 신호를 통해 뇌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먹을 것 외에 다른 일 따위는 생각하지 말라고, 식량을 찾는 작업에 집중하라고. (10페이지)
어른들은 총살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집단농장의 종자보관소를 습격한다. 아이들은 옥수수 몇 알에 목숨을 건다. 훔친 음식을 먹다 걸린 아이를 사납게 때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손을 들어 매질을 막지도 않는다. 입안에 있는 음식을 삼키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으면서 맞아 죽는다. (14~15페이지)
책의 목차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말하자마자 굶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놨다. 얼마만큼 굶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차례로 언급한다. 한 청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까지 온 젊은이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다. 소년에게도 부모님이 있고 친척들이 있었다.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할 게 없이 살았다. 고위직에 있는 친척들의 기세를 등에 업기도 했다. 부모님은 일하고, 소년은 공부하고 동네 친구들과 뛰어놓았다. 누구나 비슷한 삶이었을 거다. 그 나이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랴. 나조차도 흘려들으며 넘겼던,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던 북한의 그 시기,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다. 누가 처음 만들었을지 모를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슨 빡센 군사훈련을 말하는 줄 알았다. 지독한 훈련의 시간을 북한 주민 모두에게 경험하게 했다고 여겼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시기가 혹독한 가난과 굶주림이었다는 걸 알았다. 탄광 마을에 사는 소년이 본 모든 것을 이렇게 듣는다.
처음에 아사(餓死)는 소문이었다고 했다. 굶어서 죽는다는 말을 그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보다. 그러니 믿지 못했겠지. 카더라 통신으로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은 소문이 아니었다.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죽은 걸 보고 실감했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죽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먼저 죽은 거다. 소년의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배급이 줄거나 끊기면서 먹을 것이 없었다. 먼 지역의 친척에게까지 가서 먹을 것을 구해왔어도 굶주림은 끝나지 않았다. 소년과 가족은 그 지역의 탄광에서 실려 나가는 석탄을 훔치기에 이른다. 달리는 열차에 몰래 올라타고, 어두컴컴한 상태로 포대에 손에 잡히는 석탄을 마구 담는다. 적당한 때에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그 위험한 일을 몇 번을 했다. 그렇게 훔친 석탄을 먹을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만 했다. 너무 굶어서 발을 헛디딘 소년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소년의 비명을 어떻게 잊을까.
한쪽 팔과 한쪽 다리로 목발을 짚고 또 살아간다. 소년은 꽃제비가 되었고,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국경을 건너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대한민국에 왔다. 이 글은 그 소년을 만난 작가가 기록했다. 자칫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작가는 한 사람의 생을 들려줌으로써 아직도 그곳에서 살아갈 이들의 굶주림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꿈을 갖기도 전에 생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삶.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버티는 인생. 소년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자기 몫을 지키기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자기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며 같이 고통받았던 이들을 떠올린다. 아무 잘못 없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야만 했던 이들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다. 잃은 것이 아닌, 아직 남은 한쪽 팔과 다리로 살아가는 희망을 말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은 살아야겠다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는 북한을 탈출했고, 자유를 갖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삶에 적응하면서 그는 또 다른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세상은 겪으면 겪을수록 새롭고 어렵고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가 경험할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여전히 북한의 인권은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 폐쇄된 그 안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자기 이야기를 한 지성호 씨도, 그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놓은 작가도, 읽고 있는 우리도, 아마 바라는 건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북한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그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기를. 그렇게 그 안의 실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게 되기를. 우리에게 있는 팔과 다리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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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장강명이라면 이런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를 배우고 싶어서 읽었다. 북한 경제가 최악이던 1990년대. 소년은 기차에서 훔친 석탄을 식량과 바꿔야 했다. 기차에서 뛰려던 순간 빈혈을 느끼고 쓰러진 그의 팔과 다리는 기차 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옥을 살아낸 그는 탈북해 남한으로 왔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앞에서 인간은 짐승이 된다. 지금 내 삶의 사소한 고민들이 부끄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