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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처럼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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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류에서 소외된 여성, 장애인, 기타 하층민을 연구하는 인문학자 정창권님의 책이다. 제목만 보면 정조의 위인전 같지만 <편지로 상대의 마음을 얻은 옛사람들의 소통 비결>이라는 부제처럼 조선시대 사람 12명의 편지를 소재로 그들의 소통방법을 알고 더불어 편지의 주인공이 살던 시대의 역사도 배울 수 있다.   본문은 편지정치의 달인, 정조 편으로 시작된다. 정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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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류에서 소외된 여성, 장애인, 기타 하층민을 연구하는 인문학자 정창권님의 책이다.

제목만 보면 정조의 위인전 같지만 편지로 상대의 마음을 얻은 옛사람들의 소통 비결이라는 부제처럼 조선시대 사람 12명의 편지를 소재로 그들의 소통방법을 알고 더불어 편지의 주인공이 살던 시대의 역사도 배울 수 있다.

 

본문은 편지정치의 달인, 정조 편으로 시작된다.

정조는 즉위 후 편지로 신하들과 소통하며 민정을 파악하고 국정을 처리했다. 특이할만한 점은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노론벽파와도 끊임없이 소통했다는 것. 정적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친근하고 소탈한 표현과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정적임에도 자기 사람으로 만든 정조의 인간미가 곳곳에 보인다.

여성 성리학자 강정일당이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도 눈에 띈다. ‘여필종부’,‘부부유별이라는 차별적인 덕목이 당연하던 시대에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조언하는 아내의 편지는 소통의 교본이다. 예의를 갖춰 남편의 허물을 고치려하는 강정일당도 지혜롭지만 아내를 공경하고 정일당 문고라는 문집까지 발간한 남편 윤광연의 인품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존경스럽다.

성리학 이념이 지배하던 조선시대. 유교 덕목에 맞게 감정을 절제하고 살았을 것 같지만 군관 나신걸은 편지로 아내가 고생할까봐 농사짓지 마소.’한다거나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을 울고 가네라고 솔직히 표현한다. 지금도 남자는 울면 안돼라는 말로 남성의 감정표현을 금기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조선의 애처가 나신걸의 애정표현에는 거침이 없다.

 

책에 실린 편지글은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고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경우가 다수지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거나 자기 말만하고 끝내는 편지도 있다.

그 중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소통을 보여주는 편지를 소개해 보겠다.

 

집안은 다 별고 없느냐? 과거 볼 날이 가까우니 정신을 모을 일이며, 맹랑한 짓은 하지 않겠지? 시험에 붙고 안 붙고는 관계없는 일이며, 다만 과장에 출입할 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게다.

(p.134)

 

연암 박지원이 큰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조선의 선비에게 과거는 어떤 의미였을까? 성공을 하나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는 지금과 달리 차별과 유별이 당연하던 조선시대의 선비들에게 목표는 하나였다. 입신양명. 출세해서 가문을 드러내는 것이 최고선이라 여겨지던 조선에서 과거급제는 모든 이의 꿈이었다. 이미 입신양명을 경험한 선비라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기에 자손의 과거급제가 더욱 간절했으리라. 이황이나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서두를 어떻게 시작하든 한결같이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과거에 급제해야한다는 당부로 끝을 맺는다.

박지원의 편지는 다른 선비의 것과 결을 달리한다. 물론 아들의 교육을 걱정하며 과거급제를 바라는 마음이야 다르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과거급제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아들이 다치지 않는 것. 과거를 볼 정도로 장성한 큰아들에게 시험에 붙고 안 붙고는 관계 없, ‘과장에 출입할 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자상하게 살펴주고, 둘째 아들에게도 과거 공부나 하는 쩨쩨한 선비가 되지 말았으면 한다고 시험에 대해 부담을 덜어준다.

연암은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시대 가장과는 달랐다. 사별 후 당시 풍습에 따라 재혼하거나 첩을 두지 않고, 자녀들에게 어머니 몫의 사랑까지 주려 애쓰는 자애로운 아버지였다.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 보낸다. 사랑방에 두고서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p.131)

 

자식을 위해 손수 반찬을 만들어 보내는 아버지. 애석하게도 아버지의 반찬을 받은 아들에게서는 별 반응이 없었나보다. 다른 데서 접한 자료에도 고추장을 담가 주어도 반응이 없는 자식에게 서운해 하는 아버지의 편지만 남아 있다. 자상한 아버지와 그 사랑이 귀한 줄도 모르고 틱틱거리는 아들. 지금의 부모 자식 사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반면 최고의 실학자로 꼽히는 정약용의 자녀교육법과 인간적인 면은 기대와 달라 실망스러웠다. 18년의 유배생활 동안 자식교육을 걱정하며 수많은 편지를 남겼지만 그 내용이 한결 같다. ---공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자식의 생각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에 바쁘다.

 

네가 갑자기 의원이 되었다니, 이 무슨 의도며 무슨 이익이 있어서 그리했느냐? 네가 의술을 빙자하여 벼슬아치와 사귀면서 아버지의 석방을 도모하고 싶어서 그러느냐? 그런 일은 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럴 수도 없을 거다.

(p.180)

 

의사가 된 아들, 그런 아들이 못마땅한 아버지. 요즘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편지를 쓰던 때는 조선시대다. 의사는 고작 중인. 최고 명문가 출신 정약용의 기준으로는 천한 직업이다.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천하의 실학자 다산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의사가 된 아들이야말로 아버지의 실학 이념을 실천한 인물이 아닌가. 평생 다산이 추구한 실학은 그저 관념이고 학문을 위한 학문이었을까.

실망스러운 점은 자녀교육 뿐만이 아니다. 유배생활 중 그를 도와준 첩과 그녀의 딸을 유배에서 풀린 뒤에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외면했다고 한다. 위인으로만 알고 있던 그의 사생활이 놀라울 정도다. 전에 어떤 책에서 실학자들도 결국은 유학자라서 조선을 개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정약용의 일화를 보면 그 주장이 타당하게 여겨진다.

 

정조처럼 소통하라. 편지로 상대의 마음을 얻는 소통비결도 배우고,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옛사람들의 생활사도 간접경험 할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건 보내는 편지만 있고 답장이 없다는 점과 책에 나오는 자료가 모두 양반 계급의 편지라는 것이다. 아무리 한글이 배우기 쉬워도 상민 이하 계급에서는 문맹률이 더 높았을 테니 자료가 적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상류층의 이야기보다 빈곤과 차별을 온몸으로 겪어야했던 조선의 갑남을녀, 그들의 속마음이 궁금하고 생계를 위해 노동하고 집안일하는 진짜 생활이 더 알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s*****e 2023.04.13. 신고 공감 1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