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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랭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로 평가 받고 있는 저자를 만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에 대해 선입견 없이 작품만으로 그를 만날 수가 있었다. 이 작품은 그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그의 언어에서 완숙한 호흡을 보면서 오랜 글쓰기의 모습을 본다. 언어와 오랜 지기가 되어 살아온 그의 이력이 언어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정말 유려하고 심도 있는 언어의 형연이다. 그러기에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책은 우즈 강을 주 무대로 하고 있다. 잉글랜드에 있는 우즈 강은 버지니아 울프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곳이다. 이 글도 버지니아 울프를 따라가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떠올리면서, 그의 삶을 보여주면서 이끌어 나가고 있다. 그것이 우즈 강이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우즈 강에 얽힌 많은 얘기들이 양념이 되어 표현되고 있다. 정말 방대한 지식과 그들의 삶이 조각되어 우리들 앞에 펼쳐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만들어낸 일들을 보여준다. 그들의 감정과 행위, 작가의 마음에 녹아 흐르는 것들을 목걸이를 만드는 구슬처럼 엮어 나가고 있다. 저자는 우즈 강의 발원지를 찾고 있다.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우여곡절 끝에 발원지 비슷한 곳에 이르고, 그곳의 흙과 나뭇잎, 스며드는 물에 대한 감개를 가진다. 땅이 지니는 속성과 물을 수용한 강이 지니는 속성을 얘기하면서 강의 돌출적인 특성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고, 재생되어 왔던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땅은 자신의 보물을 감추는 속성이 있어 땅 속에 묻힌 것들은 가래나 쟁기로 발굴되기 전까지는 그대로 있지만, 강은 보다 종잡을 수 없어서 자신의 품은 소유물을 되는대로, 또 역사가들이 소중히 신봉하는 대륙적 연대기 따위는 나 몰라라 한 채로 불쑥불쑥 내어 놓는다. 물을 매개로 추적된 역사는 그 본질상 돌출적이고 유동적이라, 수두룩한 삶이 그 깊숙이 잠겨 있다가 내가 곧잘 그렇게 느끼듯 예기치 않는 순간에 불쑥 현재로 밀려 나온다.(p26) 자고로 많은 사장된 문명이 강이 가지는 속성으로 인하여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우리는 경이감을 가지고 그들을 우리 곁에 머물게 해왔다. 이런 일들이 숱하게 이루어져 오면서 역사라는 것이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찾게 되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된다. 저자는 <우즈>란 말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가까이 여긴다. 그러기에 이 강도 그의 삶의 터전이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할 것도 없이 <우즈>란 말이 좋아졌고, 우즈 강이 생명처럼 그에게 머물렀으리라 여겨진다. 그의 <우즈>란 말에 담긴 사랑이 다음 구절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우즈>는 물 또는 질퍽한 흙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 나는 이렇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유연성 있는 우즈라는 단어에 담긴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흙이 물을 스스륵 붙잡는 재주와 물이 흙 사이로 스르륵 흘러드는 재주에서 느껴지는 미끄러지는 듯한 인상이 좋았다. 단어에서 우즈강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월드에서 스며 나와 살금살금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한때 치명적인 습지대를 이루었던 지점까지 다다르는 그 소리가.(p38) 의성어가 멋스럽게 교차하는 밀착되는 느낌이, 물과 함께 이 단어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 느낌을 저자는 무척이나 좋아하고 빠져들었던 듯하다. 자자는 우즈 강을 따라 차츰차츰 내려온다. 그리고 많은 사람과 그들의 삶을 만난다. 물론 언어들을 통한 만남이 될 게다. 버지니아 울프가 주가 되지만 그 외에도 그의 남편, 그리고 그곳과 관련 있는 많은 작가들, 정치인들이 함께한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 그들이 추구했던 이념들, 그들의 삶의 결과까지 언어를 통해 해부해 들려준다. 우리가 책을 통해 만나 나가는 우리들의 기억을 그 속에 넣어 반추해 보면 되리라. 강을 통해 드러나는 지층, 그리고 깊은 지질학 지식까지 글을 이끌어 나가는 강한 힘이 되고 있다. 언어의 많은 부분이 강과 관련된 과거의 기억,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가다가 지인 매슈의 얘기도 한다. 한 때 사랑했던 사이다. 그런데 마음이 소통을 이루지 못하니 함께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은 늘 짠하다. 그런 속에 그의 우즈 강 여행은 지속된다. 단편소설집 ‘황금시대’로 유명한 케네스의 얘기가 한참 이루어진다. 그의 가족 관계, 그리고 작품 세계 등이 이 강과 더불어 얘기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 공간과 관련이 있다. 저자가 지나가는 지역과 전 시대의 작품들이 교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저자는 작품 속의 인물들을 끄집어내어 현실 속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를 해나간다. 그들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아무래도 버지니아 울프다. 그리고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언급된다. 베일리의 회고록도 들려준다. 존 홉스, 시몽 드 몽포르와 그의 군사들은 습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기억의 파편 속에서 떠올린 사람들이 저자에게 말을 걸어오고 그들도 언어 속에 박제되기를 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저자는 친절하게 그들도 울프의 한 곁에 놓아 우리들을 만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버지니아의 사전에서 물은 피상적 자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상징했다.(p270) 이 말은 그녀의 죽음과 관련시켜볼 수도 있겠다. 그녀는 정신적인 병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다. 그녀가 물에 걸어가기 전 그 물 속에 떨어지는 폭탄을 보면서 희망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든지 물속의 세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그의 자살을 추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말도 한다. 물에 대한 갈망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아마 물을 영원한 안식처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일련의 그녀의 사망에 대한 논란의 언급이 그려져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감정적인 처리보단 이지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검시보고서엔 ‘정신의 균형을 잃고 혼미한 상태에서 스스로 강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 세계에 대한 독특한 의식이 그녀를 물로 데리고 가고, 그의 길을 안내해 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물론 버지니아 울프를 그려내고자 했다. 그녀가 만난 세계와 그녀가 지녔던 세계관을 작품을 통해서 만나고자 했다. 그것이 저자의 강과 만나면서 우리들에게 다가온 것이지만. 이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기록도 의미 있지만 우즈 강이 주는 역사의 지혜, 파괴와 훼손에서 보존과 회복의 의미를 일깨워 보고 자연이 가져다주는, 강이 가져다주는 회생력에 마음을 가져가야 하지 않나 여겨진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귀, 우리가 존재할 곳이 훼손된 이곳밖에 없다고 하는 저자의 말은 자연을, 강을 어떻게 만나고 지녀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책의 언어가 참 부드럽다. 비교적 번역이 잘 이루어진 글이다. 물론 저자가 언어 선택을 잘 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우리들의 언어로 매끄럽게 채색한 번역가의 노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이 잘 읽힌다. 하지만 다양한 지식은 문학에 심취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다. 더구나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따라가기도 쉽지가 않다. 영국 문학에 관심을 가진, 특히 버지니아 울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무척이나 공감이 되리라 생각된다. 유려한 언어만이라도 독자는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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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랭 작가의 에세이다. 첫 데뷔작 <강으로 To the river>. 예전에 이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특별한 것은 없었으나 문장력이 좋았던 기억이 났다. 역시나 이 산문집으로 올리비아 랭이 글을 잘 쓰는 분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즈 Ouse 강. 잉글랜드 서식스 주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의 명칭이다. 생소한데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면 조금은 익숙할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버지니아 울프가 몸을 던져서 자살로 생을 마친 비극이 깃든 강이다.
대학 때 영문학을 부전공하면서 언젠가 울프에 대해 발제를 맡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세세한 내용은 잊혀졌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만 기억에 남았었다. 한 명의 작가가 끔찍하게 죽은 곳, 우즈 강. 되도록 외면하기도 바쁠 것 같은데 올리비아 랭은 작심하고 그 우즈 강을 탐색하는 여행을 한다. 10일 정도의 목표로 랭은 우즈 강의 입구에서 끝까지를 여행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작품들 이야기는 예상보다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아 의외였다. 하지만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거 아니겠나. 글을 읽으면서 랭이 울프의 모든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울프의 인생과 작품 세계는 책 전반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일반적인 문학 기행과는 또 달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울프 이야기가 나올 때는 긴장감과 함께 몰입감도 한껏 높여졌다. 올리비아 랭이 첫 작품인 이 책을 쓰기 전에 유수한 매체에서 칼럼을 기고했다고 한다. 그렇기는 해도 문학적인 향기가 가득한 이러한 에세이를 처음으로 써 내는데 무척 실력이 있었다. 데뷔작이라고는 느껴지지 않게 완성도가 높고 가독성이 뛰어났다.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서 마냥 비관적이고 염세적으로만 여기는 ‘편견’이 있음을 올리비아 랭은 처음에 지적했다. 나 또한 그랬다는 걸 느꼈다. 울프는 오랫동안 신경쇠약과 정신질환을 앓다가 1941년 4월 18일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환각과 정신혼미한 상태에서 스스로 우즈 강으로 들어갔다고 결론지어졌다.
울프의 초기작부터 죽음 직전까지의 여러 작품, 글들을 작가는 총망라한다. 울프의 작품에 대해서 이후의 평론가나 전기 작가들이 ‘자살’에 꿰어맞춰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내비친다. 물론 울프의 글들의 많은 곳에서 강, 물, 바다의 이미지, 익사 등의 소재가 많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를 정해놓고 그 논리에 끼워맞춰 울프의 인생을 쉽게 재단내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누군가가 자살한 곳, 유명인이 몸을 던진 곳인 우즈 강. 하지만 저자가 10일 동안 홀로 순례하듯이 걸은 그 곳은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곳이었다. 아니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장엄한 곳이었다.
작가의 묘사력이 어찌나 생생하고 섬세한 지. 처음 접하는 우즈 강의 다양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과 작품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글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1977년생인 작가여서인지 더욱 친밀함도 느껴졌다. 앞으로의 저작 활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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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작가와 술>로 만난 적이 있는 작가라서 우선 믿음이 갔다. 이 작품 <강으로>는 벌써 표지에서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 것 같아서 정말 기대했던 책이다. 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일부는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좀 어렵게 느껴졌고, 이 책으로 아직 만나지 못한 그녀의 작품에 접근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었다. 이 작품은 올리비아 랭의 데뷔작이라 한다. 많은 언론 매체의 호평도 기대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사람은 누구나 심란한 시절을 겪는다. 크건 작건 그것이 인생의 어떤 전환점을 만들기도 한다. 무엇이 그녀를 우즈 강으로 불러냈을까. 언제나 물에 사로잡혔다는 올리비아 랭은 직장을 잃고,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뒤 복잡한 마음을 말끔히 정리하고 싶은 강한 의욕이 우즈 강변으로 향하게 한다. 강은 우선 탁 트인 공간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복잡한 마음을 단순하게 하여 마음의 여유를 주는 대상이 아닐까.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것도 좋아하는 작가, 이미 푹 빠진 작가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이라면?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힘든 것도 모두 감수하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선 수많은 식물들의 이름 등 자연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게 된다. 심지어 토양에 대한 지질학적인 지식을 펼쳐 놓으며 이어간다. 글쎄 굳이 이런 지식까지 필요할까 싶을 만큼. 내가 지금 소로의 <월든>을 읽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약간 지루함도 있었다. <월든>이 정말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처럼. 신화, 역사, 많은 작품들과 함께 어우러져 세세한 주변과 자연의 묘사는 워낙 방대한 이야기여서 몰입감이 좀 떨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아마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어야 강으로 가는 여정에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알려진 바와 같이 버지니아 울프는 부모와 사별, 형제자매들의 연이은 죽음 등으로 신경쇠약에 빠진다. 그 후에도 신경쇠약은 여러 차례 발병하면서 결국 우즈 강에 빠져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그녀를 세상과 단절된 생기 없는 환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은 친구들이나 경쟁자들이 인정했을 정도로 좋은 매력을 가졌고 예리한 유머 감각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학교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는 울프는 부모에게 고전공부를 확실히 교육 받을 수 있어서 그나마 그것은 다행이었을까. 차별로 인해 학교를 못 다닌 그녀는 영원한 아웃사이더처럼 살아야 했다. 그것은 아마도 글쓰기에 대한 절실함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남편 레너드 울프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사랑했던 오두막 집 몽크스 하우스에서 집필했던 작품들 등을 통해서 둘 사이의 사랑은 비교적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살로 생을 마감 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울프와 비슷한 예로 올리비아 랭은 케네스를 이야기한다.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허락은커녕 삼촌들의 혐오를 샀던 케네스 그레이엄은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그 마음을 털어놓는다.
“강은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 땅의 심장이 보내 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종알거리며 흘러가 종국엔 만족할 줄 모르는 바다에게도 그 이야기를 전해준다.”(P111)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中
“인사이더들은 따분한 영어를 쓴다. 그들은 대학이라는 기계에서 배출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 그들은 로만 로드 Roman road 에 필적할 만한 뛰어난 공로를 세우고 있다. 하지만 숲과 도깨비불에는 관심도 없다.”(P100~101)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中
두 작가의 강에 대한 사랑이 공통점으로 느껴진다. 그들이 숨 쉬고 생활하는 곳은 영감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애증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슬라팜Slaugham 을 시작으로 한 여정은 어느새 로드멜에 이른다. 이곳은 버지니아 울프가 1919년부터 사망한 해인 1941년까지 오며 가며 머물던 산책로 로드멜이다. 역시 아름다웠다는 로드멜. 이어서 결혼 첫날밤을 보내고 첫 번째 소설 『출항』을 탈고했다는 아샴을 찾지만, 살던 집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는 물과 관련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항해』『등대로』『파도』『올랜도』『막간』까지.
물이란 생명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도 있지만 무섭기도 하다. 물에 대한 신화 중 노아의 방주는 얼마나 많은 것을 금세 사라지게 하는가. 로드멜 인근에 폭탄이 떨어져 우즈강의 둑이 터진 당시에 버지니아 울프는 가이 포크스 나이트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한다. “이 홍수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갈로식 별장이 없는, 처녀의 입술처럼 태초 같은 이 상태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P270)고.
또 넬리 세실에게 써 보낸 편지에는, “초록빛 홍수의 바닥에서 뒹구는 기분이에요. 부드럽게 정돈되어 완전히 흔적이 지워진 채로. 그런데 어떻게 내 호주머니에는 아직도 말들이 가득할까요?”라고.
어쩌면 그만큼 물을 사랑해서 자신의 마지막 생은 물에서 살고 싶었을까. 겉으로는 매력을 발산하며 유머 감각이 있었다지만 속마음은 많이 아팠을 것이다. 여성 차별이 없는 세상, 아픈 마음을 모두 치유해주는 그런 세상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해주는 태초의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부드럽고 정돈되고 흔적도 지워주는 깨끗한 순백의 삶을 간절히 원한 결과 우즈 강으로 뛰어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강으로>를 따라 여행한 덕분에 아직 읽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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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의 책이 두 권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하나는 F.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존 치버,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문호들이 술독에 빠져 살았다는 이야기를 다룬 『작가와 술』(현암사)이요, 다른 하나는 뉴욕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에게서 혼자 된다는 것, 고독의 의미를 탐색한 『외로운 도시』(어크로스)다.
우즈강(River Ouse) 어디에 버지니아의 영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지 모른다.
영국에 우즈강은 다섯 군데 있다. 버지니아가 살았던 강은 석세스 우즈(Sussex Ouse). 강은 헤이워즈 등지에서 시작돼 런던 남쪽 뉴헤이븐을 경유, 영프 해협으로 흘러간다.
1차 대전이 끝난 1919년 버지니아는 강의 반대편 로드멜(Rodmell)로 거처를 옮겨 오두막 한 채를 사서 '몽크스 하우스(Monk's House)'를 지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막간』 등 작품과 수백 편에 이르는 평론, 다수의 단편 소설과 수필을 집필했다.
현재 몽크스 하우스는 국립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관리되고 있다.
버지니아는 몽크스 하우스에서 정원을 가꾸고...
...온실도 만들었다.
올리비아는 버지니아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과거는 현재가 마치 깊은 강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흘러갈 때만 돌아온다. 바로 그런 순간에야 수면 아래의 심연이 들여다보인다"는 버지니아의 글을 떠올렸다. 강을 찾아 떠난 여행은 울리비아에게 상실의 시기에 치유의 여정이기도 했다. 그녀 역시 감정의 기복이 있을 때마다 강을 찾았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