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불(안하지만)행(복)했던 가족의 이야기
<좀도둑 가족>을 읽고
모르는 사람들이 이 장면을 봤다면 틀림없이 그들을 한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한 지붕 아래 모여 함께 사는 게 한 식구 같긴 하나,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수상쩍으면서도 닮은 구석이 참 많은 그들이다. 여섯 식구는 피가 섞이지 않은 사이로서 가장 연장자이자 집주인인 할머니 하쓰에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름을 두 개씩 갖고 있다. 가족 관계도에서 아들과 딸 ‘같은’ 쇼타와 유리는 노부요와 오사무를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을 뿐 부모‘처럼’ 따르고, 아키는 하쓰에의 손녀와 오사무의 이복동생을 오가는 역할이다.
그들이 사는 집은 또 어떤가. 꽤 오래전에 지어진 탓에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운 단층 건물로서 끝까지 재개발에 응하지 않은 하쓰에의 고집으로 이 집만 빼고 재건축된 키 큰 멘션들에게 둘러싸여 불꽃 축제가 벌어져도 폭죽 소리만 들릴 뿐, 폭죽 터지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집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집이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나눔으로써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임을 그들도 모를 리 없다. 쇼타와 아키, 오사무는 각각 벽장과 하쓰에의 이불, 욕조를 자기만의 ‘있을 곳’으로 애착하는데, 여기서 그들의 안정감에 대한 욕구와 동시에 여전히 가시지 않는 불안감이 읽혀진다.
아마 시간대는 달라도 그들 모두 가족이라는 타인들로부터 버림받은 경험이 있어서일 테다.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닌’ 유리와의 만남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발견한 노부요는 분노의 힘을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지키겠다는 애정으로 승화시킨다. 또한 부모와 친구들로부터 늘 부정(否定)당했던 오사무는 부정(不正)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쇼타에게 부정(父情)을 전하려 애쓴다. 이처럼 저마다 가슴속에 과거의 아픈 상처를 숨기거나 그냥 남겨둔 채 어떻게든 더 이상은 불행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서로에게 보일 듯 말 듯하며 다 같이 현재의 시간을 훔치도록 내버려두는 것처럼 보인다.
절도(竊盜)가 일상인 ‘좀도둑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절도(絶倒)할 지경이다. 오사무와 쇼타는 날마다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노부요는 세탁 공장에서 손님의 분실물을 슬쩍 숨겨와 살림에 보태는 식이다. 죽은 남편이 남긴 연금으로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하쓰에조차도 해마다 젊은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의 자식 내외에게서 위로금을 받고 이따금 파친코에서 구슬을 훔치는 걸 보면,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하는 데에 나름의 신념마저 느껴진다. 이를 단순히 물질적인 보상 심리로 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소설 속 인물들이 진짜 훔치고(갖고) 싶었던 것은 가짜 가족이라도 좋으니 ‘이상한 정상가족’ 말고, 정서적으로 결핍된 자신들을 진정으로 보듬고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가 봐도 괴짜 가족인 그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과정과 결과는 개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보통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으나 그래도 스스로가 골랐을 때 그 관계가 더 강하지 않겠냐는 노부요에게 "나도 너를 선택했어.(127쪽)"라는 하쓰에의 한 마디는 노부요는 물론,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로 살고 있는 나에게도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아울러 사회 통념상 정상적인 ‘혈연’이 아니라 기묘한 ‘인연’으로 맺어진 존재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처럼 위태롭고도 아름다운 동거인들이 행복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좀도둑 가족>을 소설 또는 영화로 만나보시길 바란다.
|
|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입니다. 남남끼리 모인 가족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불행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끼리 가족처럼 공동체를 이루어, 그 나름대로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불행한 진짜 가족들과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편의 바람으로 외톨이가 된 할머니 하쓰에, 남편의 폭력으로 힘들어하던 노부요(엄마), 노부요의 폭력 남편으로부터 노부요를 지키려다 폭력 남편을 살해한 오사무(아빠), 할머니 하쓰에가 자신의 남편을 빼앗아간 가족으로부터 데리고 온 큰 손녀 아키, 오사무가 무더운날 자동차 안에서 구한 아들 쇼타, 마지막으로 친부모로부터 학대받는 어린 소녀 린, 이렇게 여섯명은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좀도둑질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그려가는 이야기들은 마지막 장면의 린의 눈에 비추어진 진짜 가족의 허상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
|
어느 하나 가족의 기본이라는 피가 섞여있지 않은데도, 가족이라는 이름이 전혀 낯설지 않은 정말 희한한 가족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끔찍히 위하고, 실제의 가족보다도 더 끈끈히 엮여있는거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어느가족은 정말 사랑스럽다. |
|
가족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인간의 도덕성은 어떤 기준일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정의와 기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도둑질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 오사무, 그리고 어린 쇼타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면서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도둑질 외 다른 상황 속에 부딪힐 때 오사무의 생각과 행동은 도덕이나 죄책감 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쇼타는 훗날 주리가 집에 머물게 되었을 때 가게 주인의 한 마디에 이전에 알지 못하던 죄책감이 양심을 일깨우게 됩니다. 할머니 하쓰에 집에서 혈연으로는 무관한 이들이 한 가족의 테두리를 두른 채 살아갑니다. 할머니로 보이는 하쓰에, 부부로 보이는 노부요와 오사무, 아들로 보이는 쇼타, 딸일지 위치가 애매한 스물 셋의 아키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아동학대로 방임되던 주리가 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인물들의 감정선이 조금씩 달라지는게 느껴집니다. ■ 세상 사람들이 '좀도둑질'이라 부르는 범죄가 두 사람의 '일'이었다. 본문 14쪽 중에서 분명 도둑질은 범죄입니다. '좀'이라고 하여 자질구레한 것들을 도둑질 하였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목에서부터 '좀'이라는 표현은 읽는 우리에게 이 정도는 형편 어려운 이들에게 어쩌다 한 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일지 모른다는 변명을 스스로 덧붙이게 합니다. 정작 오사무와 쇼타는 '일'이라고 명명하고, 전문적으로 도둑질을 하고 점원이 많아서 감시가 잘 이뤄지는 곳보다 허술한 곳을 상대하고 때로는 작은 상점에서 이 일을 치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죄책감 없이 행해지는 도둑질을 지켜보면서 이상한 가족에 대한 반감이 듭니다. ■ 그때까지 줄곧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유리가 처음으로 얼굴을 들었다. "엄마 좋아. 옷도 사주는 걸" 본문 61쪽 중에서 쇼타는 언제, 어떻게 이 집으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리(유리)를 이 집으로 데리고 온 과정에서 자신의 과정을 유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렴풋이 주리가 학대 가운데 오사무로부터 탈출된 것임을 깨닫습니다. 다만 주리가 친모에 대해 좋은 감정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그 감정을 아리송해 합니다.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고민이 됩니다. 학대 하는 부모 밑에 있는 것보다 유괴일 수 있는 이 과정을 통해 보살핌을 주는 가정 안에 있는 것이 옳은 것일까. 어쩌면 오사무와 노부요가 주리를 받아들이기로 하는 시점부터 이들의 비도덕적이고 냉정하며 때로는 범죄인 듯 늙은 하쓰에에게 얹혀 사는게 다른 의미일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 대체 남자가 몇 살인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키는 전혀 몰랐다. "그럼, 시작할게요" 본문 91쪽 중에서 ■ "손목 긋는 대신?" 아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친구한테 복수?" "아니야."............나는 복수를 위해 여기서 일하는 것일까. 본문 156쪽 중에서 아키의 일은 성 상품화입니다.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렇다고 성적인 행동을 통하여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그곳에서 일하는 이유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쓰에를 통해 아키의 관계나 과거가 조금 밝혀집니다. 하지만 혈연적으로 가장 와 닿는 가족의 관계는 이 둘이었을 것입니다. 하쓰에와 노부요의 대화 중에서 태어난 순간 결정된 부모-자식 관계보다 선택적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관계가 어쩌면 더 좋은 것인지 모른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키는 하쓰에에게 가족과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자신이 가족에게서 찾는 따뜻함과 애정 등을 하쓰에에게 찾은 것입니다. 아마도 #좀도둑가족 에서 가족은 혈연보다는 따뜻함과 이해를 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이들을 통해 보여주는 듯 합니다. 정상적인 가정을 이룬 구성원들은 늙은 노인에게 부부가 갈취나 다른 목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해석하고 어린 쇼타와 주리가 이 곳에 머물고 도둑질 하는 것을 부부가 비도덕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압박을 가한 것으로 봅니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결과물 역시 결국 더 나을 바 없기에 이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울 듯 합니다. ■ 노부요는 생각했다. 차라리 유리가 굉장히 성격이 비뚤어진 아이였다면 지금 내 속의 분노나 악의에도 조금은 변명의 여지가 있었을 거라고. 본문 104쪽 중에서 노부요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본인 역시 학대 받는 과정에서 자랐고, 주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학대 받은 아이들이 모두 비뚤어지고 올바르게 성장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만 노부요는 직장에서 역시 좀도둑질을 하고, 숨겨진 과거 안에 큰 사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대 받는 주리를 과연 그 골목에서 오사무와 쇼타 말고는 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노부요는 자신의 과오가 들통날지도 모르고 실제로 주리로 인하여 실직도 하게 되는데 왜 받아들인 것일까요? 우리가 타인을 다 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듯 합니다. 그래서 쉽게 타인을 비난해서도 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상황에 내 판단이 모두 옳다고 할 수 없겠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 두 사람을 팔을 내밀어 상처를 비교했다. 린은 문득 손가락을 펴서 노부요의 흉터에 가져갔다. 그리고 따뜻하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본문 133쪽 중에서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이면서 이 가족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던 부분입니다. 상처 받은 아이와 상처 받았던 어릴 적 자신이 만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노부요는 비로소 치료되기 시작했으며 책임, 도덕성 등을 부여 받기 시작했다고 보였습니다. 린은 노부요의 딸이었고, 주리나 유리가 아닌 린으로 살았던 이 시절이 아마 가장 행복했었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보았습니다. 훗날 노부요가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주리로 살아가는 린은 다시 표정 없는 학대 받는 이로 돌아갔던 듯 싶습니다. ■ 우리가 대체 누구를 버렸다는 말인가. 아들 부부에게 버림받은 하쓰에와 함께 살고, 살 곳을 잃은 아키에게 있을 곳을 제공하고, 방치되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쇼타와 린을 보호했다. 만일 그것이 죄라면, 그들을 버린 사람들에게는 더 무거운 죄를 물어야 하는게 아닌가. 본문 226쪽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더럽다고 느끼는 길바닥. 사실 그 길바닥을 뚫고 작은 꽃이 피어납니다. 누군가 일부러 씨를 심지도 않았고, 특별히 물을 주거나 관심 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냈습니다. 하쓰에, 노부요, 오사무, 아키, 쇼타, 린이 한 가족으로 살아간 이야기가 길바닥이라고 느끼는 곳에 꽃이 피어났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길바닥보다는 꽃만을 바라보니까요. 버림 받고 상처 받은 이들의 서로를 향한 사랑과 이해를 보았습니다. 따뜻한 가족이야기입니다. #좀도둑가족 #어느가족 #2018칸영화제최고상수상작 #고레에다히로카즈 #추천도서 #도서추천 #베스트셀러 #따뜻한가족 #가족소설 #가족애 #고레에다소설 #영화어느가족
|
|
첫 장이 고로케인데, 좀도둑질이 잘 풀리면 두 사람은 고로케 가게에서 고로케를 산다. 물을 끓여 컵라면에 따른 다음, 뚜껑에 고로케를 올려 데운 뒤에 살짝살짝 국물에 적셔 먹는다. 컵라면보다 떡볶이 국물에 살짝살짝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을 것 같다. 아니면 따뜻한 오뎅 국물에. 특가 세일하는 슈퍼에 일을 하러 간다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바로 답이 나온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족들과 닮았다. 그래도 좀도둑 가족은 아직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
|
|
가족이라고 하면 보통 혈연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이루어지는 걸 말합니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3대가 같이 생활하고 사는 대가족이였습니다. 지금은 부부를 중심으로하는 가족이 이루고 있습니다. 소설 좀도둑 가족에서는 비록 혈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 기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가족입니다. 좀도둑을 바탕으로 가족들의 생계가 주된 수입원이였고 도둑질을 하는 것이 잘못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적인 가족의 의미에서 다소 어색하지만 진정한 가족에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였습니다. |
|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설이라서 기대를 하고 봤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소설이 더 좋은 점은 영화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한 또는 관객이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정확히 느낄 수 있고 또한 머리 속에서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도둑 가족 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소설 제목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더 궁금증을 유발했습니다.
|
|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동명의 영화를 소설화 한 책입니다. 감독이 직접 영화를 소설로 쓴 책으로,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고 하며 영화를 본 사람들은 책을 통해 영화의 한 장면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양한 가족들의 평범해보이지만 솔직한 모습을 담은 영화를 찍어왔는데,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서 수상작이 되기 전부터 우리 나라에도 책과 영화로 알려졌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어느 가족은 혈연공동체는 아니지만, 가족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고, 서로 다른 세상의 일부를 훔치는 좀도둑이기도 합니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의 동생과 아들이라는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소녀가 가족의 일원으로 합류하면서 이들은 여섯 가족이 됩니다.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의 이야기라서 낯설 수도 있지만, 유명한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독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좀도둑 가족>은 제7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어느 가족>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했습니다. 크고 작은 것들을 훔치는 좀도둑 가족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혈연이 아니지만 인연을 가진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은 원작에서 담지 못한 내용을 조금 더 담고 있을 것 같은 소개를 읽고 보게 된 책이었습니다. 여름에 읽으면 좋을 느낌의 소설이었습니다. 영화도 영화제 수상작으로 유명하고, 감독과 배우가 유명한 영화이지만, 소설은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의 섬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 영화 [환상의 빛]으로 데뷔한 이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걸어도 걸어도][태풍이 지나가고][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10년의 고민을 녹여 최신작 [좀도둑 가족](국내 개봉 제목: 어느 가족)을 발표했다.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기키 기린 등 명품 배우들의 열연에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완성된 [어느 가족]은 제71회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역대 고레에다 감독 영화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작품성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영화를 찍는 일 못지않게 글쓰기도 즐긴다는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 [어느 가족]을 직접 소설화한 영화소설 『좀도둑 가족』이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소설은 일본 출간 즉시 하루에 1만 부꼴로 팔려나가며 각종 도서차트 1위에 올랐으며 한국에서도 예약판매 즉시 화제의 책으로 자리 잡았다. 극장가에 이어 서점가에서도 ‘고레에다 열풍’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미처 그리지 못한 가족의 비밀과 결정적 순간의 디테일들을 담은 소설 『좀도둑 가족』은 고레에다 감독만의 애틋한 가족미학을 더욱 선명하게 설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