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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유대 혈통 집안 고유의 교육 전통이란 참으로 힘이 큽니다. 자부심으로 찌푸린 표정에 지성과 사색의 흔적이 배어나는 얼굴선 등이 지난 시절 동유럽, 러시아 일대에 거주하던 유대 지성인 용모의 공통점인데요. 이들은 하나같이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리한 교육을 받고 자라났지만 현실과 체제의 모순에 대해 날카로운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점도 닮아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정 러시아나 소비에트 체제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자 미 신대륙으로 건너와 새로운 기반(그 밑천은 대부분 지적 자본)을 다져 입신에 성공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문학과 언론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이는 에이브러햄 캐헌입니다.
19세기 후반에는 많은 지식인들, 청년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되었음은 몇 주 전 리뷰에서도 말한 적 있는데요. 그는 러시아에서 알렉산데르 2세가 암살되자 진보진영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을 우려하여 미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모국어로 이디시어를 구사했지만 벨라루스, 러시아 일대에서 성장하였기에 러시아어에도 능통했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미국에 정착해서는 바로 영어를 체득하는 등 대단히 머리가 총명하고 특히 언어 재능이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대체로 제의되는 일이란 저널리즘, 문예 쪽 직업인데 그는 여기서 두각을 드러내었고, 자신 같은 유대 혈통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강의를 맡기도 하는데, 이때 동시에 그는 여성의 자립과 권리 신장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습니다. 이 무렵 사회 개혁 운동이 세부적으로 분파를 형성하지 않고 여러 주장이 한 패키지로 취급되었던 사정도 있겠으나, 여튼 전형적인 계몽 지식인, 활동가의 모습을 갖춘 열린 시야의 위인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또한 자신처럼 낯선 환경에 갓 이민자로서 정착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격려와 도움을 주었는데, 현재 포퓰리즘에 편승해 강력한 반(反) 이민 정책을 밀어붙이는 미국의 현실과 대비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죠.
그는 신대륙에 건너와 자신의 능력만으로 자립한 사연에 대해 적지 않은 긍지를 지녔고, 그 체험을 토대로 창작한 게 바로 이 <The Rise of David Levinsky>입니다. rise of ~ 라 하면 슈퍼히어로물 제목에나 어울릴 것 같지만, 이름 없던 존재가 세상에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 혹은 치열한 성장담, 성공 스토리에는 두루 붙어 잘 어울리죠. 이름은 바뀌었지만 주인공의 역정은 너무도 자기 자신을 닮아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인데, 유대교 교육 시설에서 또래 친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 가며 두각을 나타내던 십대 시절, 탈무드 암기 실력으로 자신을 주눅들게 한 폴란드인, 그리고 호르몬 분비가 왕성하던 시절 처음으로 마음을 설레게 한 어느 이성에 대한 회고까지,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필체로 한 총명한 유대인 소년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어른이 되었는지, 세상과 소통한 방식은 무엇이었는지를 흥미있게 그려냅니다.
레빈스키(캐헌 자신이기도 한)에게 언제나 든든한 자산이 되어 준 건 독서였습니다. 중산층 유대 가문이 보편적으로 자녀에게 확실히 체득시키는 게 지식과 독서, 교육의 중요성인데, 이것이 규칙적인 생활과 금욕적, 절제된 습관을 강조하며 줏대를 지켜 나갈 것을 강조하는 유대식 종교 문화와 결합하여, 큰 부자가 되든 타인에게 영향을 두루 끼치는 지성인이 되든 중요한 추동력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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