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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작가로 알려진 최인훈의 글은 대단히 철학적이며 성찰적이다.
그의 작품은 서사성보다는 질문하는 대답이며 대답하는 질문들이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끌리기보다는 지적으로 매료된다. 대학 시절 그의 또다른 소설들 읽기에 실패했던 나는 이번에 나온 <바다의 편지>를 통해 우리 시대 우뚝선 작가 최인훈의 건재를 다시금 확인하는 동시에 그의 문학적 산책에 동행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우리 시대 자랑스런 작가 최인훈 특유의 저 도저한 사유의 너비와 깊이는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책이 무겁다 싶었지만 틈틈이 마음가는 대로 어디든지 펼쳐들 수 있어서 오히려 더 편하게 읽힌다. 문학의 본질을 질문하는 <코끼리와 시인>은 가슴을 환하게 하고, 예술가로서의 <공명>은 수많은 종들이 울리듯 기쁨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 글 <바다의 편지>는 '광장'의 이명준이 보내는 마지막 전언으로 읽혀서 가슴이 뭉클했다.
작가의 육성까지 CD로 담아서 생생하게 엮은 <바다의 편지>는 그의 사유를 역사적 망으로 포획한 에세이에 가깝다. 소설가 최인훈을 넘어서 우리 시대 인문학자로서 교양인 최인훈과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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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짊어지고 최인훈과 함께 떠나는 인류 문명으로의 여행
「광장」이라는 소설을 접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대학 진학을 위해 작품의 상징성만 훑던 시절이었으니 최인훈하면 ‘광장’이었고, ‘광장’의 상징적 의미와 이명준의 자살이 의미하는 것만을 암기하던 시절에 최인훈이라는 작가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무심코 집어든 책이 최인훈의「광장」이었고, 단숨에 읽고 난 후, 이 소설이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의 길을 넘어선 제 3의 길을 모색한 분단소설이라는 것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혐오를 느끼고 제 3국을 선택한 이명준에게 제 3국이란 공간은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처럼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은혜와의 사랑도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버리고, 결국 푸른 광장(바다)에 몸을 던짐으로 인해 그가 찾던 길은 저 넓은 푸른 바다를 날고 있는 갈매기에게 투영되어 버린 소설 「광장」, 그리고 최인훈, 그는 한국문단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소설가이자 철학가이고, 사상가였던 것이다.
그가 이번엔 『바다의 편지』란 책을 들고 우리곁으로 찾아왔다. 여기서도 이명준이 고뇌하고 괴로워했던 ‘광장’처럼 ‘길’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광장’이라는 공간이 이데올로기적인 공간이었다면 이번 ‘길’이라는 공간은 인간이 지나온 역사적 발자취를 길(자연, 지식, 환상)로 구분하고, 인간 문명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그 길에 문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에너지를 쉼없이 순환시키는 DNA(인간이 도구를 사용하여 환경을 극복하는 행동을 지시하는 의식)적인 인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길에서 바다로 바뀌면서 인간사회를 바다에 비유하기에 이른다.
바닷가 모랫벌에 묻혔던 알에서 방금 깨어난 바다거북이 새끼들이 바다를 향해서 기어간다. 그것은 평화스런 풍경이 아니다. 바다까지의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이동하는 사이에 바다거북이 새끼들은 천적들의 습격을 받는다. 갈매기, 독수리 같은 새들이다. 이 공격에서 살아남아 바닷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새끼들도 무사하지 못한다. 큰 고기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제대로 살아남는 새끼들은 알에서 깬 새끼들 총수의 1퍼센트라고 한다.(156쪽, 바다거북이 철갑 구성체 中)
그 비유는 인간의 진화에 대한 비유이자 인간이 먹이사슬이라는 범주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진화하며, 탈바꿈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근대 세계의 길은 ‘문명 DNA의 빛과 어둠’이라는 주제로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미국의 세계 지배 형태의 변화와 현대 문명의 모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한국 역사의 길은 ‘문명 DNA의 앎과 꿈’이라는 주제로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최인훈의 거시적이면서 역사적인 사상과 철학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 우리는 무엇인가를 느낀다. 옮아가는 것들은 소리없이 가지는 않으며 오는 자들도 또한 예고가 있다.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마디는 돌연히 이루어지는 법이지만 거기에도 연속은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전체상이 새로운 자세를 갖출 때, 그속에 살고 있는 개인의 대부분은 이것을 눈치 채지 못할는지 모르나, 다음 시대를 짊어질 층은 기상을 감득하게 되는 법이다.(467쪽, 세계인 中)
이 책에 마지막에 수록된「바다의 편지」는 최인훈의 실제 육성으로 들어 봤다.(이 책 초판에만 CD가 들어있음) 15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53분 30초의 분량으로 녹음된 시디를 통해 최인훈의 실제 목소리로 들으니 그 감회가 참 남달랐다. 처음에 어머니! 하고 부르는데 얼마나 가슴이 울리던지... 나이를 먹으면 늙는 건 당연한 이치고, 마음을 곱게 쓰면 곱게 늙는다는데... 말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최인훈의 목소린 곱게 늙은 목소리처럼 들렸고, 그의 음성을 통해 「바다의 편지」를 듣는 동안 난 최인훈이라는 소설가를 만났고, 최인훈이라는 철학가이자 사상가를 만났으며, 최인훈이라는 대한민국의 거목을 만났다. 피천득의 ‘인연’에선 세 번째는 아니 만나고 싶다 했지만 난 최인훈이라는 작가를 다시 만나고 싶고, 그 만남을 통해 그의 사유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만날 땐 내 사유의 깊이도 그처럼 넉넉하고 풍부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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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바다의 편지]
고급스러운 양장본에 두께도 장난 아니고 우리 시대의 독창적인 사상가 최인훈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사유의 깊이에 지레 겁먹게 될지도 모른다. 인류 문명과 역사적 진화 과정에 대한 통찰과 현대문명의 문제점과 한국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찰 등 쉽게 읽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말이 좋아 에세이지, 수준 높은 인문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이틀만에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단편 형식으로 나뉘어진 글이어서 어느 정도 읽어낸 다음 생각할 시간을 갖기에도 좋았고, 물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았지만(특히 현대사와 정치에 대한 사색 부분) 상대적으로 수월한 내용들은 그 발상이 기가 막힐 정도라 무릎을 치면서 읽었고, 곁에 두고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읽으며 되새겨 볼수록 많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문학의 노장이 보내는 거대한 철학적 사유로의 초대장에 놀라고 또 놀랐다. 나는 최인훈의 작품 중 [광장/구운몽]과 [화두]를 읽었는데 (심지어 [화두]를 고등학교 때 읽었... 당연히 이해못했으니 읽었다고 하기에도 참...ㅠ.ㅠ) 그저 [광장]의 작가로만 알려져 있는 최인훈의 문학론(혹은 예술론) 및 역사에 대한 독창적인 사유에 대해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 가운데 작가 최인훈을 넘어 사상가로서의 최인훈의 진면목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골라 엮은 책인데, 2003년 [황해문학]에 발표한 [바다의 편지]를 단행본으로는 최초로 수록했다는 의의가 있겠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신간들이 쏟아져나오지만 점점 쉽고 간략하고 노골적인 주제와 내용으로 독서 후의 어떤 깊이 있는 사색이 필요조차 없어진 마당에 이만한 내공의 작가가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이런 책을 써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이 책을 읽기는 쉽지 않지만 읽을수록 새롭고 놀라워 요즘 책들은 너무나 쉽게 쓰여지고 쉽게 읽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다만 작가들과 출판 시장의 탓이라 할 것인가. 컴퓨터 앞에 앉아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들이 자초한 일이겠지.
제 1부 [문명 진화의 길_문명 DNA의 힘과 흠]은 비교적 재밌고 수월하게 읽히는 애피타이저다. [길에 관한 명상]에서 보여주는 "길"이란 단어의 유래에 대한 심오하고도 경이로운 통찰과 거기서 뻗어나간 환상의 길(종교, 예술)에 대한 정의는 압권이다. 이어서 [문학과 이데올로기], [예술이란 무엇인가-진화의 완성으로서의 예술], [인간의 Metabolism의 3형식]은 거의 논문 수준인데 어렴풋하게나마 최인훈의 문명사론을 엿볼 수 있었다. 1부의 경우엔 용어나 문장에서 어려움이 있어 여러 번 읽어야 했지만 대략적으로 이해하긴 쉬웠으나 제 2부 [근대 세계의 길_문명 DNA의 빛과 어둠]은 내가 역사와 정치에 무지해서인지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그 은유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 중 [아메리카]는 간략한 소묘의 형태의 글이지만 역설적이면서 예리한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감정이 흐르는 하상] 역시 대단하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엄청난 지적 사유의 향연이다. 제 3부 [한국 역사의 길_문명 DNA의 앎과 꿈]은 한국의 역사에 대한 고찰과 미래에 대한 제언으로 되새겨 볼만하다. 제 4부 [바다의 편지_사고실험으로서의 문학]은 생명과 진화에 대한 비유적인 단편 소설이다. 책에는 1시간이 조금 못되는 분량으로 [바다의 편지] 육성 CD가 포함되어 있다. 처음엔 목소리도 좋고 좀 유명한 성우 같은 이가 녹음을 할 것이지, 왜 직접 하셨을까 싶었는데 찬찬히 들어보니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것이라 책을 읽을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광장]의 작가 최인훈으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더러 오래 전에 쓴 글도 있긴 하지만 현시대에도 중히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며 작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미래지향적이다. 또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넘쳐흘러 노장의 미소가 느껴지는 듯하다. 한 마디로 정말 대단하다.
민주주의나 자유가 그 말의 정의 그대로 실현된 지역은 지구 위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실현의 정도에 있어서 나라마다 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나라다. 멀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인 그들의 무력이 우리 국토 안에 있다. 가깝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멀고 가까움의 표준이나 보장이 될 수 있을까. 태평양 항공로는 돈과 뜻만 있으면 멀지 않다. 우리 국토 안에 있는 미국의 무력은 그 뜻이 달라지면 우리들에게 선전포고를 할지도 모른다. 즉 적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멀고 가까움은 지리적 조건도, 현재의 군사적 관계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 속에 우리가 우리들의 관계의 전제로 삼고 있는 이념에 대해서 얼마나 견해의 일치를 가졌는가에 달려 있다. 뜻만 맞으면 천 리도 지척이며, 뜻이 안 맞으면 지척도 천 리다. -[아메리카] 중
"임정"의 "정부"로서의 환국을 거부하고 "개인" 자격으로서의 환국만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이른바 해방 직후의 정치적 "혼란"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이 해방 후 정치 정세의 인식에 대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히 해방 후에 자동적으로 자연히 혼란이 존재한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만일 "임시정부"가 정부의 자격으로 환국하고 혁명정부로 집권하였더라면, 어떠한 "혼란"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따라서 미군정이 "임시정부"의 "정부" 자격을 부인한 것은, 우리 민족의 독립 투쟁을 통해 우리가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정치적 인격의 연속성을 부인한 것이 된다.
1910년에서 1945년까지의 상태를 우리는 막연히 "일제 36년" "식민지하" 등으로 표기한다. 위에서 말한 문맥을 응용한다면 이 기간은 분명 "36년 전쟁 중" 혹은 적점하敵占下 등으로 옳게 불러야 할 것이다. 어떠한 의미에서나 그 36년이라는 기간에 대해서 최소한의 합법적 위장을 허용하는 명명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명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광장"의 이명준, 좌절과 고뇌의 회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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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소설가최인훈을 생각하면 늘 습관처럼 남북한의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 광장과 함께 우선 떠오른다. 이 책의 저자는 '광장'이라는 작품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의 분산상황에 대한 아픔과 그것에 기인한 개인의 아픔을 인권적 시각에서 생명이 지닌 가치는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문명감각에 기초해 객관적으로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1960년대 문학의 지평을 연 혁신적 작품이었으며 또한 이 작품으로 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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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분의 소개로 접하게 된 책입니다. 바다의 편지라는 시적인 제목이 파란색 양장과 잘 어울리고 양장 역시 상당히 정성을 들여 만든 흔적이 보입니다. 아직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현대사 혹은 인류 문명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견지해오신 최인훈 선생님의 시각이 다양한 관점에서 투영된 내용이 인상깊네요. 지인 분의 추천대로, 선생님이 쓰신 문학과 이데올로기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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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게 읽혀지지 않는 최인훈님의 책 <바다의 편지> 몰입되지 않는 책, 책장을 넘겨도 겉도는 글씨들... 그안에서 피어나는 아스라한 감정들......난감함으로 다가선다. 사물 현상을 전체적으로 분석하거나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함을 강하게 느낀다.
이 책은 인류문명이 걸어온 길에 대해 역사적 진화과정을 분석하고 그 근원으로 나아간다. '길'이라는 관점에서 비롯된 인간문명의 탄생! 예술이나 종교라는 환상으로 표현되는 모순의 길은 무엇인가? 물길, 하늘길, 인간이 감각안에 들여 놓은 '길'은 과연 어느시점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길'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규칙성이나 주체적인것과 객체적인것, 그리고 추상적 형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길'의 개념을 최인훈님식의 세계를 통해 새롭게 일깨워 보게 된다. 최인훈님은 일반적인 우리들의 언어가 아니고 사상이 아닌 관점으로 현실을 읽어내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최인훈님식 인류문명의 현대세계사이다.
육성으로 보는 바다의 편지에서는 내가 물고기가 되어 보고 내가 햇빛이 되어 보고 내가 바다가 되어 보아도 지니지 못한 그 무엇. 결국 백골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나는 백골도 아닌것이 되고 만다. 의식없는 내가 되어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리고 저자가 살아 있을 때 부르고 싶은 마지막 감정. 어머니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중얼거림을 알 수 있다.
육체의 유기물들을 바다에 흘러 보내듯...... 먼 먼 미래의 어느날 어머니와 나는 희망을 노래한다. 현실로 돌아오는 나는 어쩌지 못하는 감정으로, 의식의 넉두리로 어머니를 불러본다 어머니.... 작가의 사유의 깊이를 본다. 제약되지 않은 자아를 본다. 죽어서도 죽지 않은 자아를 본다 (불사의 자아)
바다의 움직임에 내몸짓처럼 바다가 되어...... 아! 나는 53분의 육성을 듣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이 <바다의 편지>는 저자의 70년의 사고가 갈무리 되어 작가의 인류사와 한국사를 아우르며 탄생된 고뇌의 산물이였던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기억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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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이라는 대작가의 이름 앞에는 그가 쓴 대표작 <광장>이나 <화두>가 항상 따라다닌다. 너무도 유명해서 언젠가 읽었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아마도 국어 교과서에서 그의 작품 중 일부분이라도 접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들곤했다. 언젠가 지인과 갔던 '북 페스티벌'에서 그의 희곡집인 <옛날 옛적에 허어이 훠이>를 선물해 주었다. 지인이 좋아한 작가라고 꼭 읽어보라고 하여 요즘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던 차에 <바다의 편지>를 접했다.
작품 이외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에세이나 산문집, 여행기를 통해 해소를 하곤 하는데 본질적으로 나아가 그가 바라보는 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그가 오랜 세월동안 그리고자 했던 인물들을 알고싶었다. 그런점에 있어서 '바다의 편지'는 제목만큼이나 본질적인 것을 아우르는 것이기에 보통의 독자들에게는 그의 글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아마도 편집자는 그런점을 염려했는지 친절하게도 최인훈, 사유의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 안내문이라는 글을 기재해 놓았다. 내심 이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서문에서 알고 싶었는데 그를 따라 사유의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 안내문은 이 책을 간략하게, 핵심을 정리해 놓았다.
어떤 책이든 꼼꼼하게 읽어야하겠지만 이 책은 특히 밥을 꼭.꼭. 씹어서 먹는 것처럼 차근차근 음미해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글을 읽는다기 보다 두고두고 읽는다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사색, 문명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인간의 뿌리의 근원에 대해 쓰여져 있다. 문학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힘겹게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한번 보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해하고, 부대끼는 한 자주 책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살고 있는 범위가 아닌 넓은 시아로서 바라보고 싶다.사람이 살다보면 때론 시아가 좁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경계하고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을 돌이켜보는 '의식'이 필요하다.
때로는 인문서처럼, 때로는 시처럼 문학으로 읽히는 이 책은 최인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야 하는 책이며. 그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는 독자는 그의 작품을 읽은 후에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를 알고, 문학을 알고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문학작품 이외에 개념이나 작가의 사색에 대한 글은 언제 읽어봐도 묵직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베여있다. 마치 글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글귀들이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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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작가님의 신간 <바다의 편지>는 '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이라는 부제가 붙은 단편집으로 그 두께만큼이나 내용 역시 풍부하고 심도있는 작품이었다. 최인훈 이라는 이름 석자는 그의 대표작인 <광장>과 함께 소설가로서 우리들에게 익숙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소설가가 아닌 사상가 최인훈의 목소리를 내며 그가 생각하는 인류 문명 및 예술의 정의와 의미를 해석하고 전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문학 및 음악을 나름대로 자주 즐기고 접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예술이 무엇인가', '예술이 어디서로부터 나왔나'하는 것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에는 무지할 뿐만 아니라 의문조차 갖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내심 놀라웠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기술과 예술에 관하여>에서 작가는 문명과 예술의 정의를 기호화하고 도식화하여 하나의 이론처럼 전달하고 있는데, 그 구조와 정의가 논리정연하고 짜임새있어 과학자 혹은 철학자로서의 최인훈의 면모까지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동물이든 사람이던 생물적 자기동일성 I라는 자기 본질을 가지고 있다. 어느 종의 개체이건 영구불변한, 고정한, 이미 닫혀버린, 완성되어버린, 진화가 끝난 자기동일성을 이미 가졌고 앞으로도 계속 가질것이라는 것이다. 동물은 이런 I라고 하는 부호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것을 앞으로 영원히 지구와 우주 종말 때까지 덜함도, 더함도 없이 가지며 매 세대마다 똑같은 자기동일성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 동물과 달리, 생물적 동일성(I) 외에도 문명적 동일성(i)와 예술적 동일성(i)이라는 파라미터 두 가지가 더 추가된다. (Iinin) 문명이라는 것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해가지고 환경을 극복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이는 50만년 전 현 인류 탄생의 시점을 기준으로 i1, i2, i3...in 같은 요령으로 계속해서 상승선을 그리며 누적적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진화라는 말이 원래는 하급 생명이 고등생명으로 발전하는 것을 뜻하는 과학용어지만 비유적 용법으로 이런 인간 존재의 발전단계를 또 하나의 진화라고 부르자고, 작가는 제의하고 있다. 인간에 있어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또다른 특징은 자기가 생활속에서 감각적으로 접촉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 걱정, 계획, 및 구상을 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관심의 영역은 무한하며 무한히 확대되는데 문명이라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그 욕망이 그 무한한 것에 이르지 않고는 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무한에 대한 목마름, 욕망의 끝을 인간 진화의 완성 혹은 극한으로 생각해보면, 이 상태에서 인간은 극락이나 천당 혹은 무릉도원에서 죽음도 질병도 없고 오직 기쁨만이 있는 세상을 누릴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우리 문명이 잠재적으로 이념적으로 그와 같은 문명의 모형을 향해 나아가고는 있지만 앞으로 장구한 시간을 거쳐도 그와 같은 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확률은 대단히 적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때까지 존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 진화를 완성시키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근본적인 불안을 끄기 위해 탄생한 것이 (1)종교와 (2)예술이다. 상상력 속에서 인간의 의식이 자기 존재의 최종의 진화상태, 즉 I=무한의 상태에 도달하는 현상을 종교는 현실로 주장한다. 이를 (i=무한)+ 로 표시하기로 한다. 예술은 이 상태를 약속된 환상으로만 주장한다. 즉 (i=무한)- 로 표시되는 것이다. 즉 종교와 예술은 그 형식(상상력)에서는 같고 현실과의 관계(+/-)에서는 다른 것이다. 종교는 인간 진화의 마지막 단계가 신의 보장 안에서 현실로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예술은 그런 보장은 주장하지 않고, 약속에 의해 간주되는 환상(i의 기능)으로 진화의 완성을 경험하는 인간 행위이다. 예술품은, 그것에 접한 감상자가 그것의 도움을 받아 자기 안에서 I와 i로서 자기를 넘어 i로 변신하는 회심의 현상을 일으키게 한다. 예술을 감상하는 순간에 개인은 초일상급의, 초과학 수준의 개인이 되는 것이다. i1,i2,i3,....in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각 시대의 예술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예술이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유한수가 아니라 무한 그것 자체이며, 무한에는 작은 무한, 큰 무한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복잡한 예술의 형태를 취한다고 해서 옛날 예술보다 더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옳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예술이라고 하는 행위는 인간의 진화의 과정을 환상적으로, 즉 상상속에서 완성해보는 특별한 인간 행위다.’ 라며 작가는 이 이론을 마무리 짓고 있다. 물론 이것은 내가 내용을 최대한 간략히 요약한 것이고 원문은 언어영역 지문에 나올법한 분위기를 풍길 정도로 학술적이고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에 수록되어있는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그러했고,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고 완독하기 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책의 제목인 <바다의 편지>에서 부담없는 문학 장르의 작품일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기에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차이가 꽤 있었지만,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예술과 문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며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한 사람들, 인간의 속성과 문명에 대해 한번 쯤 고찰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분명 보람있고 후회없는 독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이 책에 수록된 많은 단편들 중에서 <코끼리와 시인>이라는 작품의 일부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문학 혹은 예술이 뜻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쉽게 명료하면서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훌륭하고 멋진 글이라 생각한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았다. 한 장님은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장님은 코끼리는 큰 배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나머지 장님은 코끼리는 가는 뱀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이 장님들은 저마다 코끼리의 다리, 배, 꼬리를 만져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다. 만일 이 코끼리를 ‘삶’이라 부르기로 하자. 개별 과학이란 것은 저마다 자기가 택한 테두리 안에서 삶을 본다. 모든 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 개별 과학의 본질이다. (중략) 철학자라고 하는 사람을 코끼리 앞에 데려왔다고 하자. 그는 뜬 눈으로 코끼리를 보는 사람에다 비유할 수 있다. 그는 덩치 큰 짐승이라고 볼 것이다. 철학자는 ‘삶’을 전체적으로 관련시켜서 본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와서 코끼리를 보았다고 하자. 그는 코끼리가 먼 나라에서 와서 먹이를 먹지 못하여 병들어 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눈물을 흘렸다고 하자. 이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라 부른다. 그는 코끼리를 관찰하거나 생각한 것이 아니고 느낀 것이다. 그는 코끼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 것이 이 세상에서 시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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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인연이 닿지 않아 최인훈氏의 작품을 만나본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할때만 해도 아주 호기심 어린 궁금증이 나의 내면을 가득 채웠다. 특히 광장이라는 작품은 그를 대표하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직접적으로 접하지는 못하고 간단한 줄거리 정도는 우연히 알게 되었다.아마도 그것은 역사적배경과 그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그가 받아들이는 관점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결단코 쉽지만은 않은 주제지만 인문학 관점에서 고심하면서 글을 써내려 간다. 그렇기에 지식의 폭이 넓지 않은 이들에게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짧은 지식에 대한 한탄을 하기도 할수도 있다. 여행을 갈때 목적지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그곳의 여행은 뜻깊을 것이나 반대라면 어느 유적지를 가더라도 가슴속에 박히는 느낌은 전혀 다를것이다. 이 책도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저자는 고차원적인 해석을 하고 있기에 처음에는 그뜻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으나 두번 세번 반복을 하다 보니 아주 조금 저자가 안내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아주 조금은 느낄수가 있었다. 또 색다른 세상을 만나는 느낌! 저자가 이책에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어떤것인지 사실은 파악하기가 좀 힘들었다. 인문학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분야인데다 저자는 역사, 철학, 문학학적으로 접근하여 고난도의 집중력과 인내가 있어야 이책을 독파할것 같다. 책을 접할때 책의 주제가 무겁다고 느꼈지만 이렇게까지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것 같다. 나의 부족한 지식을 보니 참으로 슬프고 또 슬퍼진다. 그의 다른 작품, 그리고 시대의 역사들 여러방면에서 접근하여 공부를 한다면 이 책은 나에게 조금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어렵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번쯤은 접해서 삶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을 할 필요성은 느껴본다. 거장 최인훈에 대해 오늘도 하나씩 배워가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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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숨은 진주를 발견하다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다. 분명 담고 있는 내용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겉도는 듯하여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처럼 넘긴 책장을 다시금 돌아본다. 보통의 경우 관심사에서 벗어난 내용이거나 내가 받아들이기에 범위를 넘어선 내용이 대부분이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경우 억지로라도 책장을 넘기며 내용에 몰두하는 경우와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과감하게 책을 덮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든 선택은 독자의 몫이기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감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어렵게 읽은 경우 남에게 내세우지는 못하지만 뿌듯함을 안고 책장을 덮은 경험이 간혹 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 삼인출판사 발행 최인훈의 ‘바다의 편지’다. 내용이 어렵기에 우선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저자에 관해서다. 최인훈은 ‘광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가다. 저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장’이 그렇듯 저자의 작품은 무게감이 있다. 이 무게감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안고 있는 삶의 무게감과 동일한 맥락에서 얻어진다. 저자 최인훈은 소설가로써뿐 아니라 희곡, 비평 등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펼쳐온 사람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최인훈은 ‘광장’이라는 작품으로 인해 소설가로 각인되어온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최인훈의 사상사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책이 이 ‘바다의 편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의 편지’에는 작가 최인훈에 갇힌 이미지를 사상가 최인훈으로 확장시키는데 필요한 작품들을 모아 놓은 부분과 2003년 ‘황해문학’에 발표한 바다의 편지를 수록했다. 1부와 2부에서 접하는 최인훈의 글은 쉽게 읽히는 내용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인류문명이 걸어온 길에 대해 문명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하면서 그 근원으로 나아가는 길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3부에서 보여주는 현실인식에 대한 글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아내 미래를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희망을 찾아 그 희망을 현실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최인훈의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읽은 부분도 다시 읽어야 비로써 무슨 내용인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정독을 요구한다. 일상적인 사람들이 평상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문어체가 보여주는 현실과 다소 동 떨어지는 표현들이 그것이다. 내용의 무거움에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의 낯섬이 함께 작용하여 더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무거움은 내용의 진중함에 이끌려들기에 최인훈의 사상에 대한 접근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책에 함께 수록된 육성으로 낭독된 ‘바다의 편지’를 틀어놓고 한참 동안 다시 접하는 동안 글을 읽으며 넘어갔던 행간의 간격과 침묵의 순간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읽는 기회를 준다는 점과 저자의 육성을 듣는다는 경험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작품에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최인훈의 사유의 깊이를 보게 된 것이다. 역사와 문명, 인간의 존재조건 등과 같은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이 문학론이나 예술론으로 구체화되고 이러한 바탕에 작품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모아진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 대한 진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너무나도 고독하고 깊은 성찰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광장’,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화두’ 등은 최인훈이 발표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광장’이외의 작품들이 일반 독자들과 얼마나 만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 듯싶다. ‘광장’을 비롯한 저자의 작품을 다시 찾아 꼼꼼하게 읽어야할 의무감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작가와 작품 이 양자 사이에서 독자는 서로를 이어간다. 작가의 작품이기에 찾아서 보는 경우는 그 작가의 사상과 가치관에 매료되어 그것이 담긴 작품을 찾는 경우가 될 것이고 반대로 작품을 통해 작가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양자는 결국 작가에게서 만들어졌지만 독립적인 작품에서 만나는 것이 된다. 오늘 나에게 작가를 통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 책으로 의미 있게 다가온다. |